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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골목 시뮬레이션-54화 (54/75)

00054 늦게 일어났다고 덜 위험하지는 않은 법이다 =========================

잭이 퇴원한 다음날,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고 있는 내 손이 흔들린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내가 고민을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정신차려 소피아. 너는 자랑스러운 경찰청장의 하나 뿐인 딸이고, 호핑 존스의 보스야. 게다가 몸매도 빵빵하고. 니가 꿀릴께 뭐가 있다고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개새끼마냥 이러고 낑낑거리는데? 내가 레이첼보다 못한 게 뭔데.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소피아, 니가 레이첼이랑 너를 비교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 두 사람 행복해 보이고...

심호흡이 깊게 들어가고. 나는 문고리를 잡아서 돌린다. 그리고 그 안에 펼쳐지는 풍경.

레이첼과 잭이 도시락을 열고,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는 풍경이 들어온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둘.

"괜찮아? 쇠고기가 상태가 괜찮아보여서 속으로 넣었는데."

밝게 웃으면서 식사를 하고 있던 두 사람이.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먹던거 먹어.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몸은 좀 괜찮아?"

"뭐, 배에 칼 박혔던 치고는 굉장히 멀쩡합니다."

잭이 나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한다.

평상시랑 같았지? 나 뭐 이상하지 않았지? 스스로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나를 반기면서 레이첼이 나의 팔을 잡는다.

"소피아님, 식사 안하셨으면 같이 해요."

그 말에, 잭이 대답한다.

"맛있습니다. 한 번 드셔보시죠."

그 말이, 귓가에서 한 번 턱 하고 걸린다. 그러고보니 잭은 나한테는 항상 존대말을 하는구나. 아침은 고사하고 어제 저녁부터 별 다른 것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도. 나는 대답한다.

"아, 오면서 먹었어."

요리에 자신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무심코 떠오른 비아냥을 나는 애써 부정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냐, 소피아. 그냥 점심 같이 먹자고 권하는 거잖아. 원래 비아냥은 내 특기지만. 이렇게 진심이 섞여 있었던 적은 없잖아.

"그러지 말고, 한 번 드셔보세요."

아무 악의도, 사심도 없는 그 순수한 웃음과. 내밀어진 샌드위치.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그 샌드위치 조각을 받아들었다.

"그럼. 맛만 조금 볼까."

그리고, 나는 레이첼이 건넨 샌드위치를 한 입 물었다.

맛있어서 기분이 조금 나빠진다. 아니, 별로 맛 없어. 이깟게 뭐라고. 기껏해야 빵조각에다가 야채랑 고기 끼워넣은거 잖아. 이런건 나도..

미쳐가는구나. 니가 미쳐가. 반성해라 소피아! 눈을 감고 가볍게 머리를 흔든 나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 눈에 두 사람이 들어왔다. 세상에 자기들 둘 밖에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듯 보이는 그 둘의 모습이. 온 몸을 쑤시고 들어오는 밝은 빛이 그들에게서 뿜어지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내뿜는 저 행복해 보이는 빛무리 속에, 내가 들어가고 싶다. 내가 저기에 앉아서 빛을 뿜고 싶어.

나도 샌드위치 만들 줄 알고, 나도 웃을 줄 알고. 나도 저 여자만큼 이쁜데. 나도 집안일 할 수 있는데. 나도, 같이 살아도 집안일 할 수 있는데. 한 번도 해보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잠자리에서는 처녀가 더 유리하잖아. 시간이 지나면 나도 잠자리에서 잘 해줄 수 있는데.

나도 할 줄 아는데.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는지, 소스가 약간 흘러나온다.

심장이 두근거릴 때마다. 굉장히 불쾌한 무언가가 혈관을 타고 돌며 머리통을 울린다.

내가 저 저 여자보다 못한게 뭐야. 난 저기에 있을 자격이 있어. 저 빛무리 속에서 웃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근데 어째서.

잭은 나를 보지 않는거지?

"소피아님, 소피아님?"

존대말 하지 마. 나한테 거리 두지마. 머리 속에서 나는 그렇게 외치면서도. 평상시와 같은 표정으로 나는 잭을 바라본다.

"귀 안 먹었어. 두 번이나 부르지마."

그 말에, 잭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갑자기, 안색이 안좋아보여서."

그 말에 나는 태연하게 대답한다.

"그럼 안색이 좋겠어? 호핑 존스가 뒷골목 구멍가게도 아니고. 일에 치여서 이러다가 연애는 할 수 있을라나 모르겠네."

그 말에, 그 여자가 대답한다.

"소피아님은 아름답잖아요. 분명히 좋은 사람이 있을거에요."

몸 안에서, 용암 비슷한게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그래, 너는 다 가졌다 이거지. 더 여기에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나는 재빠르게 대답했다.

"지금 몇 시지?"

그 말에 잭이 시계를 한 번 보고 대답한다.

"한시 반이네요."

그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 젠장 내 정신봐라. 나 약속 잡아놨는데. 먼저 일어날게."

그리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잭의 사무실을 나왔다.

사실, 오늘 딱히 할 일도 없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여기에 찾아올 시간이 있을까. 나는 차에 타서. 어디로 모실지 물어보는 기사를 향해 말했다.

"집으로."

그 말에, 기사가 차를 움직여서 나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내 머릿 속에는 이상한 생각들이 가득하다. 잭이랑 그 여자가 귀가할 때, 운전은 누가 하려나. 잭이 하려나? 적어도 나처럼 뒤 편에 짐짝처럼 던져저서 집에 가지는 않겠지. 두 사람 키스도 했겠지? 키스만 했을까. 이미 섹스도 했겠지.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언제나와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차가운 공기. 아무도 없는 거실. 내가 직접 불을 켜기 전까지는 어두운 공간.

갑자기 피로가 몰려온 나는 신발을 벗고는 바로 침대에 누워서 잠이 들었다.

그 뒤로, 며칠이 지나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생각들이 가득하다.

몸을 씻기 위해 들어간 샤워실에서, 나는 나의 몸을 바라봤다. 몸매는 내가 더 나은 편 아닌가?

잭이랑 그 여자.. 같이 샤워도 했으려나. 서로 등도 닦아주고. 나는 맨날 혼자서 닦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몸 안에서 피가 다시 부글부글거린다. 그리고, 나는 타일에 손을 올려놓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감은 눈 위로 떠오르는 그때의 장면과 내가 봤던 그 눈부신 빛. 가슴 속이 뜨거워져서 나는 샤워기의 물을 냉수로 돌렸다.

처음으로, 내가 비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머릿 속에 어디가 끝인지 모를 검은 장막이 펼쳐진다. 내가 뭘 해냈는데. 호핑 존스의 보스? 경찰청장의 딸?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난 그 년처럼 아름답게 빛났던 적이 한 번도 없잖아.

그 빛을, 내가 가지고 싶어.

가지고 싶어서 미치겠어. 그걸 원해. 내가 잭의 곁에 있고 싶어. 한 번도 못 해 본 것들. 내가 27년 동안 바라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해보고 싶어. 나도 누군가랑 도시락 같이 먹고, 머리 기대고. 서로 쓰다듬어주고...!

내 머릿 속에서 뭔가가 반짝거렸다.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던 나의 머릿 속의 어둠을 커튼처럼 가르며 나타난.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반짝이는 하나의 생각.

아니, 가지고 싶은게 아니야.

그 년이 빼앗은거야.

애초에 내가 제일 먼저 만났잖아. 내가 제일 먼저 이야기를 나눴잖아. 그 백치 년이랑, 네 년 보다 내가 훨씬 더 먼저 잭을 만났잖아!

내가 먼저였어. 내가 가지기로 되어있었어. 그게 운명이었고, 정해진 사실이었어.

남의 것을 빼앗으려고 하는 건 내가 아니야.

그 년이 내 것을 먼저 가로챈거야. 내가 누려야 할 행복. 내가 즐길 수 있었던 추억을 모두 가져갔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아무도 없는 샤워실 안에서 혼자 거울이나 바라보고 몸매 타령이나 하고 있는거고. 그 년은 실실 쪼개면서 잭이랑 함께 탕에 들어가서 서로 끌어안고 있는거야.

나쁜 년. 도둑 년.

내가 다시 가져갈 거야. 원래 내가 가지기로 되어있던 걸.

잭도 말했잖아. 내가 뭐 물어보면 항상 내 생각하고 있다고. 나랑 같이 자고 싶다고. 나한테 마음이 있는거야. 그래, 잭은 나한테 마음이 있어. 그게 아니면 나한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 없잖아?

"맞아!"

나는 샤워실 안에서 혼자 소리치면서 미소지었다. 하지만, 잭이 나를 미워할 수도 있으니까. 그 멍청한 년처럼 굴지는 않을거야. 천천히, 조금씩. 나에게로 돌아오게 할 거야. 잭도 그 편이 좋겠지. 누가 뭐라고 해도 나와 함께 있기로 되어있던 사람이니까.

그러면 마침내 나도, 이 돌아오면 맞아주는 이 하나 없는 차가운 방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 작품 후기 ============================

어...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다른 사람을 시기하는지 잘 몰라요.

해본적이 없어서★

그냥, 대충 이런 느낌 아닐까요? 물론 훨씬 약하겠지만.

대외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소피아는 거의 항상 외로워야 했겠죠. 외로움은 마음의 병이 일어나는 근원입니다!

이번 편은 여러분의 불편한 잠자리를 목표로 썼습니다(메롱)

아, 그리고 몇 분이 소설에 의문점들을 남겨주셨는데요.

ex) 주인공 게임에 너무 몰입하는거 아니냐. 저거 이게 게임인건 자각하고 있냐.

예전에 자주 써먹던 그 장점과 단점은 엿 바꿔 먹었냐. 아니면 홀랑 까먹었냐.

대답 못 드려요. 비밀이거든요. 조금 당황했지만 아직 독자분들이 다 찾아내지는 못해서 다행이에요(소근)

ps. 서평 처음으로 받았어요! 사실 가지고 싶었는데! 애새끼도 아니고 징징거리기 추해서 그냥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물론, 항상 소설 보시면서 코멘트 달아주시고 추천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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