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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골목 시뮬레이션-52화 (52/75)

00052 냉이꽃 -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 =========================

눈 앞이 노랗다. 시야도 흔들린다. 술이라도 잔뜩 퍼먹은 것 처럼. 몸이 비틀거린다. 병상에서 일어서는 것 만으로도 내장들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덮친다.

"너 그러다 죽는다고 병신아."

소피아의 말이 들려오지만.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때 되면 죽을 몸뚱아립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소피아가 혼자서 씨발 씨발 하는 소리를 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를 부축했다.

"내가 별 걸 다하고 있네."

소피아는 그렇게 한탄하고 나를 부축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그렇게 돌아다니면 상처 덧납니다?"

여전히 열정이 없는 간호사의 말이 들린다. 그리고, 소피아가 나 대신에 대답했다.

"뒤지고 싶단다."

그러시다면야. 라고 말하면서 간호사는 별 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저 죽으러 가는게 아닌데..."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니 바디 랭귀지가 지금 딱 '뒤지고 싶어요' 거든."

소피아의 부축을 받아서 나는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어디로 가야 할 지는 알아?"

소피아가 운전대를 잡고 말하자. 나는 대답했다.

"일단은, 로얄 플로렌스 호텔부터."

레이첼이 어디로 갔을까. 나는 생각해보다가 소피아에게 말했다. 소피아가 전화를 한 통 했다.

"애들 풀어서 로얄 플로렌스 호텔 주변이랑 객실 싹 뒤져봐. 레이첼 발견하면 접촉하지 말고 연락해."

그리고, 소피아는 차를 끌고 호텔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시끄러. 내 차를 달리는 관짝으로 만들 생각 없으면 닥치고 얌전히 있어."

소피아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고 한동안 차를 운전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거야? 레이첼, 불안정하잖아. 이번 기회에 떼어내고 싶지 않아?"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닥치라면서..."

"지금은 대답해."

지 맘대로야. 나는 그렇게 종알거리고 대답했다.

"제가 물론 저한테 이익이 된다면 사람 몇백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는 놈이지만...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따스하고 싶어서요."

그 말에, 소피아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배에 칼빵 맞고 떠드는 소리치고는 지랄이 수준급이네."

그리고, 소피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 또 칼빵 맞을 수도 있다? 그때는 죽을지도 몰라."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안 맞게 노력해야죠."

그 말에, 소피아가 다시 대답한다.

"너 그게 데이트 폭력이라는거야. 마음에 안들면 칼빵 놔버리고. 고치면 다시 엉겨붙고."

그 말에 나는 큭큭거리면서 웃다가 으윽하는 소리를 냈다.

"진짜 어디에서 캔따개 하나 구해서 두개골을 열어보고 싶네."

"열어봤자 별 거 없을겁니다."

그 말에, 소피아가 백미러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별 거 없는거 꺼내서 락스 같은 걸로 청소라도 해줄려고."

그러면 뇌 녹는데. 소피아와 나는 그렇게 실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플로렌스 호텔로 향했고 잠시 뒤에 소피아에게 연락이 왔다.

"... 없는 모양인데?"

그 말에, 나는 다시 대답했다.

"그럼 제 집으로 한 번."

집 근처에는 조용했다. 가끔씩 근처의 집에서 부부싸움 하는 소리나 들릴 뿐. 나는 차에서 내리려고 했고. 소피아가 부축하려고 차에서 내릴 채비를 했지만. 내가 제지했다.

"오해할겁니다. 그냥 혼자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를 악문 다음 차에서 내려 주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아 씨바, 근데 이거 진짜 더럽게 아프네. 나는 조금씩 피로 젖어들어가는 복부의 붕대를 보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병원복 차림으로 배를 붙잡고 돌아다니니 길거리의 사람들이 나를 무슨 정신병자 보듯 쳐다본다.

... 사실 정신병자 비슷한 느낌이잖아. 지 한테 칼빵 놓은 여자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집 근처에도 레이첼은 없었다. 다음으로 도착했던 엔젤스 니플에도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피가 제법 많은지. 붕대가 엄청 빨갛다. 걸어다닐 때 마다 새롭게 칼이 몸에 꽂히는 기분이어서 몸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거, 수술 제대로 한 거 맞습니까? 뭐 이렇게 허술합니까?"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바라봤다.

"의사한테 가서 그 말 한 번 해봐라. 내가 뭐하러 이런 병신을 살려놨나 한탄을 할 거다."

소피아가 잠깐 차를 멈추고. 뒷자리로 붕대를 들고 왔다.

"야, 윗도리 벗어봐."

그 말에, 나는 가슴 앞으로 팔을 교차시키면서 말했다.

"저는 첫 경험은 근사한 호텔에서 하고 싶습니다."

소피아의 이마에 핏줄이 확 돋아난다.

"깝치면 상처에 손 집어넣고 헤집는다."

그 살기에, 나는 상의를 벗고. 소피아가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뭐, 그냥 그렇네."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내 몸에다가 다시 붕대를 감기 시작한다.

"야, 그냥 돌아가자. 칼빵 맞은 놈 하나 둘 보는게 아닌데. 그 상태로 걸어다니다가 좋은 꼴 되는 놈 못 봤어."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거면 진작에 쳐박혀 있지 뭐하러 나왔겠습니까."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꺼져. 이 차는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거야. 그렇게 알아."

잠깐. 이라고 말한 다음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딱 한 군데만 더. 거기에도 없으면.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노려본다.

"... 마지막이다. 그 뒤에 말 바꾸면 기절시켜서 병원으로 끌고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한 곳은, 나와 레이첼이 술을 마셨던 장소. 소피아는 양 팔을 꼰 채로 시트에 등을 기댔다.

"다녀와."

감사합니다. 라고 나는 말한 다음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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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시트에 기댄 상태로. 비틀거리면서 술집으로 걸어들어가는 그를 바라봤다.

"멍청한 새끼."

소피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한숨을 쉬었다.

"하여튼, 꼴에 남자라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소피아는 하품을 한 번 했다. 복부에 칼 맞고 저렇게 걸어다니는 새끼는 본 적도 없다. 앞으로도 볼 일이 없지 않을까.

"그래, 고집 하나는 꽤 봐줄 만 하네."

소피아는 리볼버를 꺼내 빙글빙글 돌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 씨발, 그래! 그 빨강 대가리가 좀 부럽기도 하고."

내가 사라진다고 저렇게까지 할 사람이 있기는 할까. 아, 물론 그녀의 아버지는 경찰을 동원해서 찾아다니겠지만. 그건 가족이니까. 소피아도 아버지가 실종되면 미친년마냥 찾아다니겠지. 그거랑 저건 논외다. 저 둘은 순전히 남이잖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게다가 두 사람 만난지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게 아니다.

"정신병자 주제에..."

남자 하나는 잘 만났네.

소피아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빙글빙글 돌아가던 리볼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 거, 더럽게 짜증나네. 그냥 가버릴까!?"

리볼버의 속도가 빨라질 수록 소피아의 머릿 속도 뭐가 비비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괜히 심술이 나면서 그냥 가버리고 싶어진다. 이 택시기사 짓거리가 끝나고 나면 돌아가서 총이나 잔뜩 갈겨야겠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돌리던 리볼버를 딱 멈추고 자신의 뺨을 한대 후려쳤다.

"미쳤구나. 응? 니가 부러워 할 게 없어서 저 싸이코 커플을 부러워해!? 주변에 멀쩡한 새끼들 많잖아!"

멀쩡한... 멀쩡한... 소피아는 갑자기 자기 신세가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누구는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살았는데. 짜증나네."

호핑 존스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버지가 나를 대대적으로 숨겨서 밖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20살이 다 되어서야 들어간 호핑 존스에서는 그럴 여유와 관심이 없었다. 물론 소피아에게 구애의 춤을 추는 발정난 수컷들은 많았지만. 성욕이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닌 소피아가 남자가 고파서 아무거나 집어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그녀가 핸들을 내려치면서 악악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생각을 멈춰! 괜히 스트레스만 더 받잖아!"

그렇게 말하고, 소피아는 밖을 바라봤다. 오래 걸리는데. 진짜 만난건가. 제 아무리 몸이 정상이 아니라도 술집 하나 돌아보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다.

"와아. 찾았나보네. 더 짜증난다."

이유는 자기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머리 끝으로 뭐가 확 쏠리는 기분이 든 소피아는 차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크리스피 크림 도넛 가게로 들어가서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을 한 상자 사서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도넛을 다 먹는 동안 2시간이 지났는데. 녀석들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소피아는 이를 갈면서 차 안에서 외쳤다.

"사람을 밖에 세워두고! 지들은 술집 안에서 뭐 하는거야!? 설사 그 안에서 섹스를 해도 이미 돌아올 시간이 지났겠다! 오냐 잭! 돌아오면 그 구멍난 배에다 또 구멍을 뚫어주지! 그 다음에 다시 병원에서 살려낸 다음 다시 뚫어주마아아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아는 일단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1시간이 더 지나서야 두 사람은 술집 밖으로 기어나왔다.

"... 진짜 만났네."

소피아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차의 상향등을 몇 번 깜박거렸다.

"근데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소피아는 머리를 핸들을 꽉 잡고 있다가 고개를 몇 번 저었다.

"밤이라서 센치해졌나보네."

============================ 작품 후기 ============================

어제 쓴 걸 보았는데. 어...

제가 많이 맛탱이가 간 상태였나봐요. 꼭 넣어야지. 하고 있던 소피아와 보스의 씬도 빼먹고. 뭐가 마음에 안들어서 전에 썻던 거에 양을 더 추가했습니다.

어제 밤에 읽어주신 분들은... 시간이 있다면 49화부터 한 번 다시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용을 추가하면 가끔 뒤편의 내용들이 뒤틀려버릴 때가 있어서요.

아, 물론 크리스틴이 얀데레가 아니었듯이 소피아도 다른 종류의 병든 사랑이에요. 세상에 사랑의 종류는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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