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 골목 시뮬레이션-34화 (34/75)

00034 토끼와 함께 춤을 =========================

평상시랑 같은 밤이었다. 어차피 잭을 감시하는 일 이외에는 딱히 하는 일도 없는 소피아는 이전과는 다르게 편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머그컵에 포도주를 담고, 한 손에는 도넛 상자를 든 채로 드라마 하나를 잡아서 정주행하고 있던 그녀는 울리는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받았다.

"아빠, 무슨 일이세요?"

보통 자신의 아버지가 밤에 전화하는 일은 없다.

"아, 그 실종사건이요. 네, 알고 있어요. 아니요, 제가 맡고 있는 건 오징어라서 그건 호핑 존스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따로 조사 중이에요."

2주간 일어나고 있는 무차별적인 실종에 대해서 호핑 존스도 신경이 서서히 곤두서기 시작했다. 따로 조사를 시작하고, 거리에 조직원들을 풀어놓고 살피기 시작한다. 범죄 조직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지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이전에 하던 싸구려 범법 행위들을 접고, 본격적으로 자경단원의 행세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로고스 시티의 경찰들처럼 범죄에 너그러운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 오징어가요?"

소피아의 표정이 약간 바뀐다. 그리고, 자신의 컴퓨터로 가서 전원을 넣고 메일들을 확인해서 그 안에 떠오르는 정보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네요, 확실히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 쪽은 어떻게 진행 중이에요?"

가만히, 수화기를 들고 있던 소피아가 말했다.

"... 그러네요. 예, 자료 보내주시면 저도 확인하고 진행할게요."

소피아가 전화기를 잠깐 막고 하품을 한 번 했다.

"잠깐 편하나 했더니."

소피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남은 도넛 조각을 입에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나는 천천히 생각을 되돌리기 시작했다. 일단은, 그 토끼 새끼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장소는 역시 마로니에 시립공원 쪽이다. 그곳이 자주 출몰하는 장소라고 되어있으니까.

머리를 북북 긁으면서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지만. 아무래도 답이 안나온다.

"젠장, 자료가 너무 부족해."

그 토끼 새끼랑 얽히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실종자 명단과 시간만 가지고는 알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소피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잭, 집이... 밖이야?

주변의 소음을 들었는지 소피아가 대뜸 그렇게 물었다.

"예, 조금 일이 있어서."

그 말에, 소피아가 한숨을 쉬었다.

- 오래 걸리겠어? 도움을 조금 받으려고 했는데.

그 말에, 나는 약간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떤 일이시죠?"

그 말에, 소피아가 대답했다.

"최근에, 킹스 크로스에서 계속 일어나는 실종 사건 때문에. 호핑 존스의 영역이다보니 신경이 쓰이네."

그 말에, 나는 대답했다.

"재밌네요, 저도 지금 그것 때문에 나와있는 참이라."

그 말에, 소피아의 목소리가 한 결 밝아졌다.

- 좋아, 너 머리 굴리는 능력은 인정하고 있으니까. 지금 어디야?

그 말에, 나는 레이첼의 눈치를 봤고. 레이첼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고양이 손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나은데, 소피아라면 능력은 신뢰 할 수 있고."

요즘 많이 부드러워진 느낌인데. 소멸도가 80%에 육박하고 있어서 그런가. 최근 1주 간은 거기에서 더 소멸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이제는 보통 여자의 질투 정도로 보인다. 나는 살짝 고개를 까딱해서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고 소피아에게 현재 장소를 말했다.

- 알았어. 있어봐. 필요한 거 챙겨서 갈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소피아는 전화를 끊었다.

얼마 뒤, 소피아를 만나자마자, 그녀는 노트북을 열었다.

"잘 봐, 여기에서 뭐 건질 거 있으면 바로 건져."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노트북을 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그걸 바라보다가 소피아를 바라봤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해온 겁니까?"

그 말에, 소피아가 어깨를 으쓱한다.

"호핑 존스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아니, 이건 내가 예상하고 있던 범위 밖인데. 이 정도로 세세하게 조사를 할 수 있었다고? 호핑 존스가? 이 정도 수준이면 루드비히가 죽었을 때에 진작에 나와 루드비히의 통화내용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내 짐작으로는, 이거 절대로 호핑 존스에서 뜯어낸 정보가 아니다.

소피아가 나를 의심하는 것 처럼, 나도 슬슬 소피아가 의심되기 시작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나는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닌데... 나는 주변의 CCTV 자료까지 있는 걸 보고 등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나는 찍혀 있는 사진들을 바라봤다.

"... 이건 뭡니까?"

찍혀 있는 사진에는, 기다랗게 그려져 있는 스키드 마크(자동차가 급정거 하면 생기는 그 까만 줄)와, 놓여있는 작은 캐릭터 사진이 있었다.

"벅스 바니? 고약한 취향이네요."

벅스 바니의 캐릭터 사진에 온갖 낙서들을 해놓아서 보는 것 만으로도 불쾌감이 들게 만든다. 사진을 클릭하자, 당시의 CCTV가 재생된다.

"... 이거 쉽겠는데요."

나의 말에, 소피아가 대답했다.

"저 차 따라가려는 생각이면 포기해. 이미 우리 쪽에서도 쫒아가 봤어."

그 말과 함께 노트북을 소피아가 몇 번 조작하자, 보고서 같은 양식의 내용이 띄워진다. 요점은 간단하다. 렌탈한 소형 승합차량이고, 그 차량이 정지한 장소의 CCTV에서는 차량이 폭발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안에서 발견된 것은 운전자로 짐작되는 시체 한 구.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자동차의 움직임에 따라서 CCTV를 따라가기 시작했고. 펼쳐놓은 지도에 한 곳을 체크 했다.

"깊은 밤이라서 차라리 다행이었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도를 바라봤다.

"미친 놈의 새끼."

나는 그렇게 내뱉고는 체크를 한 부분을 가르켰다.

"일단은 여기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소피아가 나를 바라본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다.

"자동차가 멈춘 장소들 중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바로 밑에, 맨홀이 있었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차를 이유 없이 터뜨렸을 리는 없어요. 밑창을 뜯어낸 걸 걸리고 싶지 않았겠죠.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어."

그리고, 소피아가 나를 바라봤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러 가는 녀석들은 돌 마스크야. 펑키 바니의 휘하지. 예전에 물어봤을 때 대답해 줬지? 그 싸이코 새끼."

그러면서, 소피아가 나와 레이첼에게 뭔가를 던져줬다.

"얼굴 가리자고. 펑키 바니 만날 일 있으면 무조건 해야 하는 절차니까."

역시, 다만 레이첼만이 그걸 걱정하고 있던게 아니었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호핑 존스의 간부 소피아라고 해도. 굳이 얼굴을 팔면서 그런 싸이코를 만나고 싶지는 않겠지.

그리고 나는 나에게 주어진 물건을 바라봤다.

"진심입니까?"

그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뭐, 정화통 빼고 나면 숨쉬는거 어렵지 않아. 처음 써봐? 씌워줄까?"

아니 그건 알아. 나도 군대 갔다 왔어 씨발. 근데 진짜 이걸 끼자고? 물론, 우리쪽에서 준비했던 아이들 장난 칠 때 끼고 다니는 캐릭터 가면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방독면을 쓰다니."

나는 그렇게 꿍얼거리면서 방독면을 챙겼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내가 지정한 장소로 향했다.

맨홀을 바라보던 나는 소피아를 바라봤다.

"이거, 어떻게 엽니까?"

이거 더럽게 무겁단 말이다. 힘 수치가 말도 안되게 낮은 내가 들 수 있는 물건이...

"이제 됐지?"

그걸 한 손으로 들어서 옆으로 툭 던지는 레이첼을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저게 무슨 강아지랑 장난칠 때 던지는 프리스비도 아니고. 소피아도 옆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한 마디 했다.

"저거 뭐하는 괴물딱지야?"

그 말에, 레이첼이 발끈한다.

"사랑의 힘이야!"

마이 애스, 라고 소피아는 한 마디 툭 던진 다음에 방독면을 쓰고 하수도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으드득, 하는 소리를 내는 레이첼과 함께 나는 방독면을 쓰고 그 뒤를 따라들어갔다. 그 안에 들어가고 한 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데.

하수도가 이렇게 깊이 들어가야 했었나. 내가 떠올린 질문은, 우리가 바닥에 도착하자 금세 밝혀졌다. 여긴...

"하수도가 원래 이렇게 청결합니까?"

그 말에, 소피아는 대답했다.

"내가 들어가 봤어야 알지. 근데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보통 하수도를 상상해보라고 한다면, 게임이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그 장면들을 연상한다. 벽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더러운 물들과, 발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는 똥물.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역겨운 냄새.

근데 여기는 다르다. 나는 발부리에 걸리는 철조각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선로?

"이러니까 그 토끼가 그렇게 잘 도망다니는 거였군. 그래, 마로니에 공원이 생기기 전에 그 아래에는 지하철 노선이 하나 지나가고 있었지. 지상에 맨홀로 위장해 놓은 통로들로 그 폐선을 연결해놓은 건가."

소피아가 이를 갈면서 한 마디 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로고스 시는 맨홀 관리 같은 거 따로 안합니까?"

그 말에 소피아가 대답했다.

"내가 공무원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그 말에 별 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입맛을 다셨다.

대신 손에 석궁을 들고, 함께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나는 멈춰서서 욕을 시작했다.

"... 이건 또 뭐하는 지랄이야. 진짜 존나 짜증나는 토끼새끼네. 돈이 썩어나나?"

나는 눈 앞에 있는 거대한 벽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분명히, 뒤편에 뭔가가 연결되고 있는데 그걸 통째로 공구리를 올려서 막아버리고 작은 문을 하나 두었다. 형광색으로 번쩍이는 글자는 다음처럼 써져 있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흑,청,적. 내 앞에서는 쥐가 여우를 이기고, 불꽃이 두 그루 나무한테 진다. 나는 때로는 짝수, 때로는 홀수가 된다. 그대, 나의 이름을 입력하라.]

[ps. 집에 이거 없는 경우는 없던데? 정답 컴퓨터 아니야! 모니터도 아니야! 그런 장난 안쳤다.]

형광 스프레이로 그려진 토끼모양과 함께 써져있는 문구. 그리고 그 앞에 놓여있는 작은 키보드와 점멸하는 화면.

"내가 지금 여기에서 무슨 밀실 탈출 하고 있는 줄 알아?"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눈 앞에 있는 문구를 살펴봤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 작품 후기 ============================

그러게요, 잭은 납치가 안됐었네... 왜지?

다음화에 계속됩니다.

머리 아픈거 안쓴다고 했는데... 또 쓰고 자빠졌네요. 못해먹겠다 진짜. 그냥 다 폭발시켜버릴까.

ps. 봐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요새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값 정도는 항상 지원받고 있어요. 사랑해요.

ps2. 문제 풀어보시려고 하는 분들은, 저걸로는 조금 모자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몇 개 더 말씀드리면... 이거 앞에서는 달과 해가 같이 뜨는데. 달이 항상 앞서가요. 불꽃은 물한테 지고요(이건 당연한가?). 이 소설의 배경은 한국이 아니랍니다. 이상!

그리고 컴퓨터 아니에요! 내가 이거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