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 골목 시뮬레이션-24화 (24/75)

00024 공중 폭발 =========================

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던 걸까. 물론,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레이첼이 나와 함께 꽁냥질을 하다가 조직 관리에 소홀해서 실각했다. 정도로 정리가 되기는 한다.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하면 세계 1차대전도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권총만 안 맞았어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표면적으로 드러난 원인과 실제로 일이 일어나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항상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바라봐서는 절대로 내가 가지고 있던 커다란 종기의 뿌리를 뽑아낼 수가 없다.

우선, 나는 나의 기반 조직이라고 할 만한 물건이 없었다. 오메르타는 호핑 존스의 권위를 등에 업은 것이고. 펌킨 게이트의 초고속 발전 또한 레이첼과 아가페의 도움이 없었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들이 기가막힌 우연과 약간의 잔머리로 인해서 일어난 우연의 콜라보레이션이었을 뿐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었다.

그 진실이 커다란 망치가 되어서 내 머리를 내려쳤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펌킨 게이트라는 작은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을 뿐인, 이 킹스 크로스에도 널리고 널렸고. 로고스 시티를 통틀어서는 내일 총 맞아서 죽어도 놀라울 일이 없는 지극히 자그마한 존재였다.

거기에 이 모든 물거품들이 꺼지게 될 도화선이 위치해 있었다. 레이첼이 열과 성을 다해서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 있던 남자가. 내가 아니라 호핑 존스의 보스였어도 아래의 사람들이 레이첼을 실각시켰을까? 설사, 그녀가 실각이 되었다고 해도 그 여파가 곧바로 내가 운영하던 사업장인 펌킨 게이트가 아가페로 넘어가는 이유가 되었을까.

그럴리가 없었다.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겉포장을 부풀리는 데에 치중해서 내실을 제대로 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그 2달. 정말로 짧은 기간이었을까. 이 게임의 시간은 리얼타임으로 돌아간다. 2달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동안 나는 나름대로 내실을 다지는 데에 치중했어야 했다. 쓸데없이 벽지 색깔이나 무늬 디자인을 고민하는 따위의 삽질을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세운 것이 아니기에. 세우는데 도움을 준 요인들이 없어지면 그대로 무너진다. 나는 내 옆에 누워서 자는 레이첼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펌킨 게이트는 이제 내 소유가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게 뭐 어떻다고. 씨발 어느순간부터 펌킨 게이트는 내 것이 아니었는데. 회사가 망하면 바지사장이 일자리를 잃는 건 당연한 것이다. 나는 묵묵히 벽을 바라보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찌질거리는 것도 남자답지는 못하지만."

나에게 엿을 먹인 상대가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는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도 남자답지는 못하지. 레이첼은 잠을 자고 있고. 방 안은 고요하다. 이따끔 들리는 초침 움직이는 소리만이 이따끔씩 들리는 어두운 방 안에서. 나는 캔커피를 한 잔 꺼내서 마셨다.

뒤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몸도 안좋으면서 왜 일어나."

그 말에, 레이첼이 몸을 한 번 움찔한다.

"당신, 부탁이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아줘."

그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무슨 쓸데없는 생각?"

그 말에, 레이첼이 소리치며 고개를 푹 숙인다.

"아가페 따위는 상관 없으니까! 그딴건... 그딴건!"

그 말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레이첼을 바라봤다. 레이첼이 고개를 숙인채로 말을 이었다.

"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당신만 곁에 있으면 나는 괜찮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봤다.

"로고스 시티, 떠나자. 우리 그냥 바깥 세상에서 남들처럼 살아가자. 나는 집에서 요리하고, 청소하고. 당신이 돌아오면 함께 저녁 먹고... 나, 잘 할 수 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노력할테니까. 응?"

- 게임의 엔딩이 준비되었습니다. 레이첼과 로고스 시티를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걸로 게임의 엔딩이 시작됩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레이첼, 그럴 수 없어."

레이첼이 울기 시작한다.

"나는, 이 도시를 너무나 잘 알아. 내일 당장 당신이 실종되고, 십년이 지난 뒤에 바닷가에서 끌어올려진 드럼통에 당신의 시체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지금 당장 이 집이 폭발해도 이상할게 없는 도시라고!"

제발... 제발... 레이첼이 그렇게 흐느끼듯이 말하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당신은 아가페의 전 보스였고. 나는 호핑 존스에게 오메르타를 받았어."

전 보스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걸 그냥 두고 넘어갈 아가페가 아니고, 호핑 존스는 나에게 이유 없이 오메르타를 준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나에게 바라는게 있으니까 주었겠지. 근데, 오메르타를 받고 난데없이 내가 사라져버리면 그들이 나를 추격하지 않을까? 오메르타는 나에게 있어서 든든한 방패지만. 마찬가지로 내 목에 들이민 칼날과도 같다.

"레이첼, 너도 알고 있잖아."

그 말에 그녀가 가슴을 꽉 부여잡는다.

"싫어. 나, 처음으로 이 도시가 너무 싫어졌어. 더러운 뒷골목,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뇌물을 요구하는 경찰. 전에는 그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 유쾌하고 짜릿했는데. 지금은 다 싫어. 당신이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내딛어도 죽을 수 있는 원인이 삼백가지가 넘는다고!"

그녀의 말에, 나는 레이체을 바라봤다. 설마...

"당신 밖으로 나가기 전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동선을 확인하고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확인하고. 이동하는 동안 아가페의 조직원들을 몰래 붙이고. 카메라로 확인하고... 전화와 문자를 걸어서 확인하고! 그래도, 불안이 전혀 사라지지 않는단 말이야. 여기에 더 있기 싫..."

어차피 0과 1로 이루어져 있는 프로그램 안에 있는, 가짜 인격일 뿐이다. 내가 오큘러스 시스템에서 로그아웃을 하면 그걸로 끝나고. 내가 다시 돌아올때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을 그런 존재. 쓸데없이 게임이 너무 잘 만들어지는 것도 심각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그녀를 끌어안은채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래서야, 프x세스 메이커를 하면서 딸한테 애정을 가지는 녀석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잖아.

"나를 믿어?"

그 말에, 레이첼이 나를 향해 고개를 홱 치켜올린다. 붉은 머리카락이 그 반동에 출렁인다.

"그거랑은 별개의 문제잖아. 당신을 믿어. 믿어도!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매시간, 매분, 매초마다! 내 머리속을 붙들고 뒤흔든다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가페는 네 거야. 다시 너의 것이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겠어."

싫어, 그러지마. 라고 레이첼이 중얼거린다. 나는 그녀의 턱을 검지로 살짝 들어올리고 눈을 마주친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다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레이첼?! 지금 갑자기 뭐 하는...?"

순식간에 내 하반신을 벗겨낸 그녀가. 내 양물을 먹어치우듯이 빨이들이고 애무하기 시작한다. 츠우웁, 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에 불꽃들이 번쩍거리고. 그 축축한 소리 가운데에 들리는 그녀의 속삭임.

하지마.

나는 내 하반식을 끌어안고 있는 그녀를 밀어내려고 하지만, 그녀는 강하게 저항하며 계속 내 하반신에 달라붙는다.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내 물건을 완전히 입 안으로 밀어넣은 덕분에, 레이첼의 목젖이 나의 귀두에 부딪친다. 우욱, 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상관하지 않고 빨아들이는 그녀의 입 속에서. 결국 나는 움찔거리며 사정했다.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고. 그대로 레이첼의 목구멍을 넘어간다. 그녀가 나를 바라봤다.

"로고스 시티를 나가는게 안된다면. 최소한 이대로 그냥 있어줘.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우리 둘이 그냥 같이 있자. 영원히."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다가 양 겨드랑이에 손을 밀어넣고 그녀를 일으켰다.

"레이첼, 레이첼."

"당신도 죽을거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이 떨리기 시작했다.

"죽어버릴거라고. 죽어서, 이 아파트 안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소포를 받는거야. 소포를 열어보면. 당신의 머리통이. 눈이 없고, 입이 꼬메진 채로 들어있어."

멍하니. 그녀의 입이 계속해서 움직인다.

"하루에 하나씩. 나는 충격때문에 방 안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소포를 받아. 하루는 없어졌던 눈. 하루는 팔, 하루는 심장... 그렇게 가다가. '네년이 제일 좋아하는 자위기구를 동봉한다.'라는 말과 함께 내 앞으로 온 작은 소포를 열어. 그리고 그 안에 당신의 성기가 잘려서 박제되어있어."

나는 그녀의 몸이 간질환자처럼 경련하는 걸 느낀다.

"나는, 그래도 계속해서 소포를 열어. 왜냐면, 열 때마다 참혹하지만. 당신의 몸이 들어있으니까. 장례식을 치루어야 하니까. 그래서 매일매일 오는 신체의 하나하나를, 꼬메서 하나로 이어붙여. 그동안 당신의 몸은 점점 썩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포가 하나 더 와. 거기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고. 쪽지 하나가 들어있어. 내가 이어붙여서 가까스로 형체를 만들어낸 당신의 시체가. 사실은 다 다른 사람들의 몸이라는 내용이야."

나는 당신의 시체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당신이 어디에 묻혔는지, 바닷가에 버려졌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렇게 당신의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채로... 레이첼이 눈물을 흘린다.

"그런 기억은, 하나도 너무 많아! 근데, 당신까지 그렇게 되는 꼴을 볼 수는 없어! 내가 왜 아가페를 만들었는데. 왜, 아가페를 그렇게까지 키웠는데."

레이첼이 눈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최근까지만 해도, 아가페를 키운 이유는 하나였어. 언젠가. 내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그딴 식으로 죽여버린 자식을 찾아내려고."

그리고, 그녀가 손을 뻗어서 나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당신이 그와 많이 닮아서 호감이 갔어. 일종의 대체제였지. 아니, 혹시 그가 어떤 충격으로 기억을 잃고 내 앞에 나타난게 아닐까. 생각했어. 당신, 그랑 정말로 많이 닮았었으니까."

근데 아니야. 레이첼이 그렇게 단언하면서 나를 바라봤다.

"지금은, 예전의 그보다. 당신이 훨씬 좋아. 그래서 더 무서워. 그가 그런 꼴을 당했을 때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는데. 그보다 훨씬, 사랑하고 있는 당신이 그런 일을 당하면. 나는..."

============================ 작품 후기 ============================

=== 후기가 깁니다!(꼭 보실 필요는 없는 물건입니다) ===

제가 조아라에 이야기를 올리면서 항상 초점을 맞추고 있는게 전개 속도입니다.

출판되는 책이나, E-book은 '권' 단위로 나옵니다. 때문에 이야기의 호흡이 조금 길더라도 진행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화' 단위로 올리는 글 같은 경우에는,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재 이 글의 분량은 대략 250kb 정도 입니다. 이 정도면, 책으로 출판한다면 1권에서 약간 떨어지는 수준의 분량이겠지요.

1권이 약간 덜 되는 분량 안에 주인공은 사업하다가, 오징어 남자도 했다가, 얀데레를 만나고, 갇혔다가 풀려나서, 사업이 망하는 것까지 들어가 있습니다.

세세하게 들어간다면 3권에서 4권 정도까지는 충분히 나올 분량이겠지만... 하나의 내용으로 10~15화 정도가 뽑혀나와버리면 화 단위로 올라가는 이야기에서는 단점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 않은 내용인데 속도감을 늦추는 것 같으면 과감히 버리고 있습니다.

위에 말들을 언급한 이유가...

레이첼의 경우,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차라리, 여기에다가 추가적인 내용들을 더 넣으면(데이트라던가, 평일에도 주인공때문에 제대로 일을 못하는 모습이라던가) 훨씬 부드러운 전개가 가능하지 않을까. 레이첼이 가지고 있는 저 기억들도 조금 더 개연성 있게 만들 수 있지 않나.

그러려고 했더니. 흑장미 에피소드에 적어도 3~4화 정도는 더 집어넣어야 겠더라고요. 그러면 너무 길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능력이 된다면야 필요한 내용들을 모두 집어넣고 나서도 분량이 그닥 늘어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제가 능력이 떨어져서.

현재 전개되고 있는 공중폭발 에피소드도 일단 5~6화 정도 안에서 정리를 볼 예정입니다.

요점은 그겁니다. 글을 올릴 때에 내용을 질질 끄는게 싫어요. 노블레스는 돈 지불하고 보는 소설이잖아요. 근데 전개도 안하고 질질 끌고 있으면 얼마나 빡치겠어요.

만약에 e-book 같은거 출판 한다면 그때 가서는 다시 뜯어고치겠죠. 하지만 그럴리가 있나(헛웃음).

여튼, 이런 속도로 질주하고 있어도 이야기가 갈 길이 멉니다! 못해도 200화는 뽑혀야 소설이 끝나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레이첼이랑 사랑의 도피를 해서 소설을 끝내버릴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