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1 흑장미 -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
며칠 뒤 새벽, 눈을 뜬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뒤척였고. 나의 옷깃을 꽉 잡고 있는 레이첼의 손이 보였다.
"... 어디가?"
레이첼은 눈을 몇 번 비비고는 멍하게 말했고. 나는 대답했다.
"목말라서."
응, 이라고 말한 다음 다시 눈을 감는 레이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베이컨과 달걀을 구웠다.
"물 마신다면서."
레이첼이 그렇게 말하면서 란제리 차림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는 대답했다.
"물 마시려고 나왔는데. 배가 고파서."
나는 레이첼의 몫과 나의 몫을 준비해서 식사를 마쳤다. 식사 후 레이첼이 나를 바라보았다.
"... 다녀올게."
그래, 잘 다녀와라. 나는 가볍게 손을 몇 번 흔들어주고. 소파에 앉았다. 며칠 만에 주부 생활에 적응이라도 한 건가. 나는 레이첼과 나의 옷을 세탁기에 넣고 설거지를 한 다음 청소를 시작했다.
"... 엄청났구만."
침대 시트는 하얗게 말라붙은 정액과 마찬가지로 말라붙은 레이첼의 체액이 온통 가득이었다. 그걸 싹 들어내서 시트를 갈아 끼고 있는데, 바깥에서 울리는 벨소가 울린다.
나는 천천히 문으로 향했다.
"경찰입니다."
갑자기 왠 경찰? 나는 가슴팍에 뱃지를 달고 있는 청색 옷차림의 경찰들을 보면서 대답했다.
"예, 경찰이시군요. 무슨 일이시죠?"
그 말에, 경찰 하나가 대답했다.
"남자 한 명이 감금되어있다는 제보가 있어서 확인차 들렀습니다."
그 말에 나는 머리를 긁었다. 경찰이? 누가 신고를 한 건가.
벗어날 수 있는 기회다. 내 머릿 속에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단 그거였다. 경찰이다. 게다가 감금에 관한 문제로 나에게 찾아온 것이다. 아마 말하면 백프로 벗어날 수 있겠지.
어떡할까...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글쎄요. 이곳에서 사는 남자는 저 뿐인데, 저는 감금당한 기억이 없습니다."
중간에 탈선하는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끝가지 가기로 했으면 끝가지 간다.
나의 말에, 경찰이 대답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서 방 안으로 걸어들어오려는 경찰들. 들어오게 된다면 방에 있는 쇠창살들과 열기 힘든 창문들을 보면서 이것 저것 귀찮게 굴 텐데.
나는 재빠르게 한 마디 했다.
"영장은 있나요?"
그 말에 경찰들이 들어오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영장이 없는데 가택수색을 할 권리가 경찰한테 있습니까?"
그 말에, 경찰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요. 정말로 감금된 사람이 없는 겁니까?"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랑 동거하고 있는 여자가 있는데. 성벽이 둘 다 특이해서... 그러네요, 오해했을 수도 있겠군요. 이웃들이."
그렇습니까. 라는 말과 함께 경찰들은 다시 돌아갔고. 나는 머리를 긁엇다. 갑자기 왜 이렇게 이웃간의 정이 끈끈해졌을까. 평상시에는 옆 집에서 누가 강간당해도 신경쓰지않던 저 도넛성애자들이.
약간 더 시간이 지나고. 내가 점심을 만드는게 끝나자. 레이첼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또 뭐가? 그것보다, 아까 경찰들이 찾아왔던데."
나의 말에, 레이첼이 대답했다.
"그게 미안해. 사실, 경찰이 아니었어."
그 말에, 나는 가만히 서서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무슨 소리야?"
"내가 아랫것들 시켜서 보낸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허허허 하고 웃었다.
"사랑한다더니 너무 못 믿는거 아니야?"
그 말에, 레이첼이 미안해 하면서 나의 목에 걸려있던 폭탄을 풀었다.
"... 진작에 이렇게 해주고 싶었어.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확인하고 싶었어.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와도. 당신이 도망치지 않을까."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녀의 이마에 꿀밤을 아프게 먹였다.
"말했지. 네 사랑의 형태가 그렇다면. 나는 받아들인다고."
그 말에, 레이첼이 대답했다.
"응, 그래서. 내가 사랑의 형태를 바꾸려고. 당신도 마음에 들어할 수 있는 형태로. 당신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희생했는데. 나만 계속 고집하는건 이기적이잖아."
레이첼은 그렇게 말하면서 목걸이에 열쇠를 넣고 돌린 다음, 창 밖으로 던졌다. 열쇠를 넣고 돌리는게 터지지 않게 만드는 방법이었는지, 밖으로 던져진 목걸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간만에 목에 닿는 바깥 공기의 서늘함을 느끼면서 레이첼을 바라봤다. 레이첼이 나를 보다가 시선을 돌린다.
"고마워."
"별게 다 고맙다."
그녀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사업장, 나가도 괜찮아. 확신이 섰어. 당신은 당신의 일을 해. 나는 나의 일을 할게."
나는 그 말에 가볍게 웃었다.
"괜찮겠어? 그 일 하면 나 다른 여자들을 엄청 많이 볼텐데. 나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그 말에 레이첼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건, 그 여자들이 나쁜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벌줄테니까. 다시는 당신 주변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와 역시, 아직 완전히 나은 건 아니구만. 그냥 약간 약해진 정도? 그녀는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고, 집의 인터넷 선이랑 전화선 같은 것들을 다시 연결했다.
"그리고, 사업장. 내가 관리해놓고. 이것 저것 개선시켰어. 가보면 깜짝 놀랄걸."
그 말에, 나는 잠깐 게임을 멈추고 가게를 확인해봤다.
[펌킨 게이트 : 매춘사업]
가게의 청결도 : 가게의 청결도에 전미가 울었다(9)
서비스 수준 : 테이크 마이 퍼킹 머니!(9)
가격 : 현재 230$(권장가격 270$)
인지도 : 108
인테리어 : 뭐냐, 가우디라도 왔다 갔냐?(9)
직원 복지 : 78
오늘의 수익 : 6783$
사용중인 부가기능 : 고급 피임약(매월 100$), 접대교욱, 카드 결제 가능, Durx 콘돔(매월 50$), 청소시간, 손님 제한.
이야 이게 다 뭐야. 하루에 7000달러 가깝게 벌어들이고 있다고?
"그리고 당신, 그렇게 다니지 마. 좋은 거 입고 다녀야지."
그러면서 레이첼이 한 벌의 양복을 건네었다.
"선물이야."
내가 무슨 미시 골수를 뽑아먹는 제비가 된 기분이라서. 받지 않겠다고 하니 레이첼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잘 입을게."
응, 이라고 말하는 레이첼.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차?"
"걸어다닐 수는 없잖아."
와 나 진짜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내가 나오는 걸 확인하자. 기사가 나와서 나를 안내한다. 근데. 이 친구 눈이 꽤 살벌하다.
레이첼은 내 뺨에 가볍게 뽀뽀를 하고 자신의 차를 타고 가버리고. 나는 기사의 안내를 받아서 차에 탔다. 근데, 역시 이 친구 눈빛이 영 좋지 않다.
"나한테 무슨 불만 있나?"
나의 말에, 운전하던 남자가 대답한다.
"무슨 짓거리를 해서 보스를 꼬신거냐?"
그 말에 나는 픽 웃었다.
"별로 한 거 없는데."
생각해보면 딱히 한 건 없다. 그냥, 만나서 잠깐 욕을 하고... 레이첼은 나이스 보트를 가지고 있었고. 엄청난 속도로 검은 꽃이 피었을 뿐이고. 그러고 그냥 감금이라고 하는 동거를 했을 뿐이다. 갑자기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에 호감도가 올랐던 것을 떠올리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생각해보니 욕을 했는데 호감도가 올랐지. 다음번 잠자리에서는 매니악하게 나가볼까. 그 편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내가 혼자 실실거리고 있자 기사가 나를 바라본다.
"뭐가 웃기지?"
"아, 레이첼이랑 했던 밤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 기사의 얼굴이 더 구겨진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서 시간을 확인해보는데.
"오늘 금요일이네. ... 금요일?!"
시발, 저번주 일요일에 호핑 존스 보스 만나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온다.
- 잘 가고 있어?
라는 문자. 나는 그걸 보면서 쯧 하고 혀를 차며 문자를 보냈다.
- 오래 버텼네.
- 응...
내가 문자를 보낸지 3초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날아오는 레이첼의 답장.
- 최대한 대답해 줄테니까. 보내고 싶은 대로 보내.
역시 빠르게 날아오는 답장.
- 고마워
- 고마울 것까지야. 매사에 그렇게 고마워 하면서 살거야?
15분 동안. 자그마치 80개의 문자가 오간다. 말 그대로 경이적인 속도.
가게에 도착한 나는 순간적으로 멈췄다.
"오셨습니까!"
라고 나를 맞이하는 열명의 여자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바뀐 분위기. 바닥은 반질거리고. 말 그대로 뜯어 고쳤는지 이전의 그 구질구질한 사업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러브 하우스 브금같은게 내 귓가에 울리는 환상이 든다.
- 정식으로 레이첼에게서 잭 오 랜턴을 다시 인수받았습니다.
- 축하합니다! 감금상태에서 벗어났습니다. 고생이 많았겠네요. 아마도? 10포인트를 받았습니다.
10 포인트?! 진짜냐!? 여태동안 고생했던 그 시간들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
- 하지만, 밤에 당신이 즐긴 일도 있고 러브러브한 분위기도 풍겼기에. 기분 나빠서 9포인트 차감합니다.
그래,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니가.
- 분석 중입니다. 연애 100%.
별로 어렵지도 않게 결론을 내려놓은 시스템을 보면서 나는 대답했다.
"탤런트 하나 더 열자."
- 탤런트를 엽니다. 추후 연차를 올리기 위해서는 2배의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그래. 일단 딱 여기까지만 열까 생각 중이다.
- 탤런트 '매력적'이 열렸습니다. 어라, 당신은 이미 장점으로 매력적을 가지고 있군요. 매력적이 강화됩니다. 탤런트는 사라지고. 당신의 장점이 강화됩니다. 장점 '매력적'이 장점 '매혹적'으로 변합니다.
[매혹적 : 당신은 매혹적입니다. 진화된 장점인 매혹적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매력적이라는 장점이 가지고 있는 이득을 모두 가진채로, 추가적으로 이성에게 거의 저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당신을 적대하려고 하는 모든 여성들은 당신에게 저항하기 매우 힘들어집니다. 게다가, 검은 사랑의 씨앗이 완전히 피어난 상태에서. 굉장히 어려울 수 있는 어떤 미션(시스템에는 안내가 되지 않습니다)를 해결하면 검은 사랑에서 피어난 꽃이 분홍색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라고 하지만, 사실 상 포기하는게 좋을 정도로 어려울 겁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드디어 살 길을 한 조각 열어주시는군요. 검은 사랑의 꽃을 바꿀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 장점이 강화되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반작용으로 가지고 있던 단점 '나이스 보트'가 '병든 사랑'으로 강화됩니다.
야 그거 강화판이 있어?! 장난치지말라고! 병든사랑?! 나이스 보트랑 마찬가지로 존나 위험해보이잖아.
[병든 사랑 : 당신이 하는 사랑은 병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의 분홍빛 사랑의 씨앗은 심을 수 없습니다. 분홍빛 사랑이 심어질 행위를 하게 되면, 그 모든 공적은 검은 사랑의 씨앗을 성장시키는데 한몫할 뿐만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검은 사랑의 꽃을 자라게 할 겁니다. 경고하는데, 한 번에 두 개 이상의 검은 사랑의 씨앗을 심지 마세요. 솔로몬의 판결에 올라선 아이처럼 두동강 날 지도 모릅니다.]
와 시발. 너무 좋은데!? 나에게 남은 연애의 방식은 이제 다 감금인가?! 나는 레이첼의 창을 한 번 열어봤다.
= 레이첼 맥콰이어 : 32세 조직 '아가페'리더 =
지능 : 당신 한정 초천재♥[8]
매력 : 넌 내 취향 저격♥[8]
카리스마 : 여왕님은 32세♥[8]
체력 : 사랑의 기적♥[8]
힘 :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8]
성적특성 : [마조히스트], [깊은 상처], [뇌살미], [나이스 보트(소멸 중, 현재 10% 완료)], [의부증]
검은 사랑의 꽃(흑장미,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 성장 완료
성적 특성이 몇 가지 바뀌어있었다. 여왕님(fake)는 깊은 상처로. 외로움은 의부증으로. 그리고 나이스 보트는 소멸 중이라는 상태가 뜨고 10% 진행되어있다.
없어질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작은 희망 한 조각을 발견하고 숨을 후우 내쉬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말했다.
"자, 일하자."
확실히, 레이첼이 아가페의 보스 답게 뽑아놓은 아가씨들은 굉장히 아름다웠지만. 감히 눈을 다른 곳으로 보낼 생각이 들지를 않는다. 일단, 볼 것도 없이 레이첼은 이 사업장에 수많은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을 테고. 내가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였다가는... 그 여자가 불쌍해진다.
책상에 위치해 있는 컴퓨터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그 사이 날아온 문자들을 컴퓨터를 통해서 답장한다.
- 레이첼, 로라랑 메리는?
- ... 그건 왜?
아... 실수 한 것 같은 기분인데.
- 아, 아무래도 처음 시작할때 같이 했던 애들이라.
그 말에, 잠깐 문자가 끊기고. 다시 문자가 날아왔다.
- 가게 격이랑 맞지 않아서. 일단 해고했는데.
거기에 더 신경쓰면 해고가 아니라 그 두 명이 죽을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 뭐, 그건 사실이니까. 그나저나 가게가 많이 바뀌었더라고.
- 마음에 들어?
- 응, 신경써줘서 고마워.
몇 분 정도 더 전화를 나누고 끊은 나는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엇다.
- ... 너 뭐하는 새끼야?!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오는 거친 한마디. 뭐, 나 같아도 이런 반응이 나올 만 하지.
============================ 작품 후기 ============================
이걸로 검은 장미 에피소드는 끝내려고 합니다. 제가 오래 질질 끄는 걸 싫어해서. 깊은 맛이 없어도 이해해주세요.
가능하면 템포를 빠르게 해서 탁탁 튕기듯 나가려고 합니다.
ps. 감금되고 2화 만에 풀려날 줄은 몰랐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