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3 도시전설 - 오징어 남자 =========================
목요일 깊은 밤, 나는 사업장에 앉아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메리와 로라는 이미 보낸지 오래다. 적막한 사업장 책상에 앉아서 나는 이것 저것 확인하고 섬세하게 공업용 네일건에 들어가 있는 화약들을 뜯어내서 하나로 묶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꽤 많은 화약이 분리되어서 내 앞에 쌓였고. 나는 그것들을 하나로 합쳐서 개목걸이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전기충격기를 연결했다.
"구하기 쉬운 물건들이 많으니까, 할 수 있는 것들도 엄청 많구만."
나는 웃으면서 손에 들고 있는 발신기의 버튼을 눌렀고, 그거에 맞추어서 테이져 건의 방아쇠가 탁 하고 당겨졌다.
"완벽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작업을 마치고 몇 시간 전까지 로라가 노가다 꾼이랑 뒹굴고 있던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쿰쿰한 냄새 사이로 지워지지 않는 구질구질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르지만 어차피 여기에서 잠을 잘 것도 아니고.
호핑 존스에서는 지금쯤이면 이미 준비가 완료 되었겠지. 내가 소피아에게 잠깐 전화를 해 보았을 때에는 주변이 소란스럽고, 바람소리와 차 지나가는 소리 같은 것들이 들렸다. 지금 쯤이면 자리를 잡았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까 만들어 놓았던 원격 발사기를 네일건에 끼우고 네일건은 기다란 목재에 단단히 고정시켜 창 밖으로 내밀어 창을 겨누었다.
그리고, 버튼을 누르자 네일건이 발사되면서 창문이 박살나 안으로 쏟아진다. 나는 그 다음으로 이어서 사업장 안을 엉망진창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이제 제일 하기 싫은 걸 해야 할 차례다.
나는 바닥에 쏟아진 깨진 유리들 위에서 몸을 한 번 데굴데굴 굴렸다. 박혀들어가는 유리조각들에 순식간에 몸이 벌겋게 물든다. 그리고, 벽에다가 이마를 강하게 한 번 박아서 마빡에 커다란 혹도 만든다. 흐르는 코피는 굳이 닦지 않는다.
좋아, 이정도면 제법 얻어터진 녀석 같아. 나는 거울을 보며 만족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지...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고작 게임인데?
하지만 확실하게 하려면 이러는게 가장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책상에 네일건을 고정시키고 몇 발인가 네일건을 발사해보았다. 나름대로 한 장소를 겨누어서 박혀들어가는 네일건들을 확인하고. 나는 눈을 질끈 감은 다음 팔뚝을 그곳을 향해 내밀었다.
"이 나이 쳐먹고 자해를 하게 되다니!"
오른손으로 버튼을 누르자 네일건이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팔뚝에 대못을 틀어박는다. 팔에 깊숙하게 박혀들어간 네일 건을 보면서 나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흘러나오는 피로 적셔지기 시작하는 셔츠. 나는 준비된 박스를 바라봤다. 티슈통보다 약간 더 큰 사이즈의 상자 정면에는 마른 오징어가 하나 붙어있는데, 그 입 부분에는 스피커가 하나 달려있다.
위에는 돈을 넣을 수 있도록 세로로 길쭉한 홈과 목에 걸 수 있는 노끈까지. 완벽하게 지하철 앵벌이꾼들을 위한 조합. 나는 그걸 한 손으로 목에 걸었다.
마지막으로, 내 목에 아까 만들어놓은 폭약 개목걸이와 전기충격기를 건다. 인이어 수신기를 귀에 끼는 걸로 모든게 종료.
준비는 완료. 나는 그 상태로 콜택시를 불렀다.
"손님...?!"
그 말에,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대답했다.
"빨리, 빨리 킹스 크로스 174번지로..."
그리고 나는 끄으윽, 하는 소리를 냈고. 택시가 엄청난 속도로 그곳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택시가 킹스 크로스 174번지에 멈추고, 나는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곧바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예? ...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내리자마자 앞에 보이는 가게 앞에서 스피커의 버튼을 눌렀다. 꽤나 적막하고 고요한 밤거리에서, 기괴하게 끽끽거리는 것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 식사들은하셨습니까?
그 소리에, 길거리에 앉아있거나 서 있던 행인들, 심지어 길거리의 행상인들까지 일제히 일어나서 나에게 총을 겨눈다. 역시, 호핑 존스 무섭잖아. 이렇게 위장을 해놓고 있었어? 게다가 들고 있는 총들 중에는 아무리 막장인 도시에서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제식 라이플을 들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한 점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빌딩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잠깐! 쏘지 말아봐 새끼들아! 야, 니가 거기 왜 있는거야?!"
소피아.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미친 놈 처럼 허공에다가 대고 외쳤다.
"알았어! 알았다고! 지금 하고 있잖아!"
- 저로. 말씀. 드리자면. 1991년. 서울 하얏트 호텔 테러 사건. 으로 수용소에 감금. 되어 있다가. 탈옥한 신사동 '알 카포네' 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지지징,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 음이 섞이다가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한다.
- 조그맣게 사업 하나 해보려고 아는 아이들과 함께 로고스 시티로 넘어왔는데. 벌써부터 저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다니. 동네 인심이 각박하기 그지 없군요.
그리고, 나는 안색을 퍼렇게 질리게 하고 외쳤다.
"미안해! 알았어! 다시는 안 그럴테니까! 빌어먹을... 씨바알!"
원맨쇼도 생각보다 엄청 힘들다. 귓구멍에 끼워져 있는 인이어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미리 구색을 짜놓은 각본에 맞추어서 혼자 떠들고 있으려니 그렇게 벌쭘할 수가 없다.
- 이 친구는 제 작은 사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 궁금해하더군요. 이 바닥에서도 예외일리는 없지만. 한국은 관습 상 그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이후 다시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 이 친구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는, 제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대로 폭발합니다. 사실 그냥 터뜨려도 크게 상관은 없는데. 그랬다가는 길을 청소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도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을 한 번 기대해 볼 까 합니다. 15분 드리겠습니다. 딱 1500$, 만들어서 이 함 안에 넣으면 우리의 친구는 질긴 목숨을 조금 더 이어가겠지요. 만약 그게 안된다면. 이 친구는 오늘 여기에서 돌아가신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지게 될 겁니다.
그리고 잠깐 있다가.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 정정, 이야기는 못나누겠네요. 머리가 없어서야. 그쵸?
그리고 이어지는 침묵. 속에, 밤의 킹스 크로스 174번지는 긴장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대충, 3000자 정도를 한 화로 잡고 뽑아놓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이네요.
내일부터 다시 이것 저것 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픕니다.
그래서, 하나 더 올릴까 생각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