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0 도시전설 - 오징어 남자 =========================
킹스 크로스 일대에는 뒷골목이 아주 많다. 깊은 밤이 되면 그 뒷골목에서는 별별 사건들이 다 일어난다.
"식사들은 하셨습니까."
예를 들면, 여자 하나를 붙잡고 강간하려고 하다가 마른 오징어를 대가리에 뒤집어쓴 정신병자를 만나기도 한다.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상의를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던 여자도. 그 여자에게 달라붙어있던 세 명의 남자도. 자신의 상황과 위치와 역할을 잃어버리고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오곡이 풍성하게 익어가는 가을을 맞아, 귀댁에도 안정된 수확의 결실이 맺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금 여름인데.라는 누군가의 중얼거림을 나는 무시했다. 얼굴을 구기며 나이프를 꺼내드는 남자의 옆을 향해 손을 들고 네일걸을 한 발 갈겼다.
"저로 말씀드리자면. 2008년 연예인 K모씨의 섹스 동영상 유출 사건에 연루되어 수용소 생활을 하고 이제 막 출소한, '제천 아다폭격기'라고 합니다."
섹스 동영상 누출이 형사 처벌이 되는 물건인지 아니면 민법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가져다 붙이고 보는 나의 혓바닥. 슬쩍 손을 소매 안으로 집어넣는 남자를 향해 대못을 하나 쏴주며 한숨을 쉬었다.
"출소하고 나니, 세상이 참 빡빡해서 먹고 사는게 참 힘듭니다.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 셋. 늙은 노모를 모시고 있는 제가 살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작은 호의를 조금 기대해 볼 까 합니다."
그리고, 나는 주머니에서 껌 한 통을 꺼냈다.
"딱 150$ 받겠습니다. 세상이 아직 아름답고, 살아갈만하다는 것을 저에게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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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 호핑 존스의 보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앞에 서 있는 간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린 오징어를 대가리에 쓴 병신들이 지금 킹스 크로스를 돌아다니며 껌이나 볼펜 같은 걸 강매하고 있다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그가 크리스탈제 재떨이를 앞의 남자에게 집어 던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안면에서 코피가 흐르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랑 씨발 장난하냐 니들?"
간부의 위치로 서 있던 소피아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냥 왠 병신같은 좀도둑 하나가 컨셉잡고 싸돌아다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보스."
그 말에, 중절모를 눌러쓰고 있던 보스가 턱을 까딱 해서 계속해보라는 신호를 보내고, 소피아가 대답했다.
"여의도 대못포, 제천 아다폭격기, 이천 탈곡기, 성북동 불주사, 한라산 볼케이노..."
모두들 대가리에는 오징어를 쓰고 있지만.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는 말이 다 다르다. 인상 착의는 하나같이 말린 오징어. 그리고, 하나의 이름에는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못포는 종로 빈대떡 사거리 피떡 사건에 연루되어서 수용소 생활을 했고, 볼펜을 판다. 제천 아다폭격기는 유명 연예인 모씨의 섹스 동영상 유출 사건으로 수용소 생활을 했고, 껌을 판다는 식으로.
모두 공업용 레일건을 들고 다니며 뒷골목, 작은 상점 가릴 것 없이 들어가서 물건을 강매하고 바람처럼 사라진다.
"저희 구역 안에서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말에, 보스가 크리스털 잔을 집어들었다. 순간적으로 앞에 서있는 간부들이 움찔거린다. 보스가 잔을 앞으로 내밀고, 소피아는 태연하게 위스키를 잔에 따른다.
"만약 소피아의 가정이 맞다고 하면, 상황이 더 심각하다."
단순히 지역의 관리를 제대로 안 한게 아니라. 어떤 정체 불명의 조직이 노리고 킹스 크로스를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계획된 범죄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징어 가면도, 막상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길거리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고, 범죄가 끝나면 그냥 먹어치우면 됩니다. 공업용 네일건 또한 공구상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니. 총기와는 다르게 추적도 곤란합니다."
그 말에 보스가 소피아를 바라보며 입에 시가를 물었고, 소피아가 라이터를 꺼내 거기에 불을 붙여준다.
"대책은?"
그 말에, 소피아가 대답한다.
"일단, 킹스 크로스 바깥의 다른 조직들에게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해야합니다."
"이유는?"
후우, 하고 연기를 뱉는 보스와, 그 앞에 서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피아.
"만약, 그 오징어들이 킹스 크로스에서만 출몰하는게 아니라면, 녀석들의 베이스 캠프가 킹스 크로스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조직들이 오징어에게 받은 피해가 없으면 킹스 크로스를 이 잡듯 뒤지면 답이 나오겠군. 좋아, 소피아. 네가 진행해봐라."
그 말을 끝으로, 보스는 코트를 입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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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 전설 : 오징어 남자
킹스 크로스에서 이제는 왠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그 전설, 오징어 남자입니다. 뭐, 소문은 소문을 먹고 커지는 법이라... 당신이 무슨 다리가 열 개에다가 양 팔이 오징어 다리 같아서 여자를 감아올려 촉수로 범한다는 이상한 내용도 있고, 오징어 남자가 나타났을 때 자기 머리에 먹물을 붓고 네모바지 스폰지밥 오프닝을 부르면 그냥 간다는 이야기도 도는 모양입니다. 뭐, 여튼 킹스 크로스 내 조직들은 자신들의 통제권에 속해있지 않은 이 오징어 남자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오징어 남자에 관한 전설이 갱신되었다. 나는 그래서 내 앞에서서 대가리에 먹물을 들이부은 남자를 바라봤다. 먹물로 얼굴을 적신 남자는, 나를 바라보면서 힘차고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심지어 오른 팔은 하늘 높이 들면서.
"깊은 저 바닷 속 파인애플!"
나는 어이가 없어서 네일건을 들어 종아리에 한 방 갈기며 말했다.
"보글 보글 스폰지밥. 뭐 어쩌라는건데."
크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종아리를 바라보다 자빠지는 남자의 얼굴에는, 깊은 불신이 서려있었다. 이럴리가 없는데라는 표정.
한숨을 쉰 나는 내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에, 불미스런 사태 때문에 잠깐의 잡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라산 볼케이노'라고 합니다. 내용은 대충 아실테니 각설하고, 오늘 준비한 이 박하사탕, 150$에 모시겠습니다."
이걸로, 한 동안 밤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뜯어내던 고된 작업도 끝이다.
떡값 돌리기에는 충분한 돈을 모았으니. 이제 추가적인 자금난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을 쉬어야지. 나는 오징어를 맥주와 함께 먹으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그 보글보글 스폰지밥은 어떤 병신새끼가 퍼뜨린거야?"
진짜 대가리에 네일건 한 방 박히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기괴한 루머다.
============================ 작품 후기 ============================
이 소설은 범죄미화... 일지도 몰라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