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밤마다, 계속
‘왠지 큰일이 생길 것 같기도 하고. 요새 꿈자리가 뒤숭숭했어. 갑자기 무슨 일이 팍 생길 것 같았다고. 말 같은 데서 떨어지면 어떡해.’
라고 말하면서 아일럿에게 조심하라고 했던 부친은 본인이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떨어지면서 갈비뼈가 세 대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졌으며 머리에도 큰 충격을 받아서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아일럿이 집에 도착한 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부친은 일주일 뒤에야 겨우 눈을 떴다. 가스파르가 보내 준 의사는 물론이고, 마력을 사용하는 치료사들이 밤새 부친을 보살핀 덕이었다.
“불길하긴 불길했네.”
“으으.”
“그게 자기 일인 것도 모르고 아일럿이나 걱정하고!”
“그러게. 그게 내 일이었네…….”
“입만 살았어, 아주!”
어머니가 아버지를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침대를 퍽퍽 두들겼다. 이것도 상태가 호전되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일럿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심각했을 때에는 죽은 듯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며 두 사람 모두 침묵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다행스럽게도 눈을 뜬 이후, 부친의 상태는 빠르게 좋아졌다. 치료사들마저 신기하다고 할 정도로 뼈가 빨리 붙었고, 머리에도 큰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소견을 듣기까지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처음 상태를 떠올리면 놀랍도록 빠른 회복이었다.
그쯤 되자 아일럿도 자연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가스파르는 교류회를 마치고 슬슬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두 달을 채우기가 무섭게 마법석을 사용해서 귀환할 거라는 편지를 보냈다. 글을 다 읽은 아일럿은 편지지와 봉투를 다 끌어안고서 끙끙 앓았다. 복합적인 감정이 북받쳤다.
가스파르에게 고마웠다. 치료사와 의사를 보내준 것, 제가 답장을 전처럼 하지 못하는데도 꾸준히 편지를 보내준 것도. 그리고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만약 눈앞에 있다면, 마치 가스파르처럼 가스파르에게 덤벼들어서 밤새도록 그를 탐냈을 것이다. 아일럿이 아는 집요함의 단위는 가스파르였다.
그런데 그가 제 몸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며칠 전에야 우연히 변화를 알아차린 아일럿은, 셔츠를 걷어서 제 몸을 살펴보다가 손 부채질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이쪽이 익숙한 모습인데도 보고 있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어떡하지.”
신경 쓸 틈이 없어서, 몸을 씻는 동안에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동안 유두가 안으로 쏙 들어가 있었다. 가스파르 때문에 항상, 반쯤 서 있다시피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옷에 닿으면 살짝 따끔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이걸 보면 가스파르가 어떻게 할지 뻔했다.
일주일도 안 돼서 돌아올 텐데.
약속했던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시소에 태워진 것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그 기저에 항상 깔려 있는 것은 긴장과 두근거림이었다. 아일럿은 무릎 위에 손을 얌전히 올려두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다가도 힘껏 옷깃을 붙잡기를 반복했다. 관계를 가지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 내부가 제 안을 가득 채우던 가스파르의 것을 기억해, 전신으로 그때의 감각을 퍼뜨리는 것 같았다. 이런 적이 전에도 여러 번이었던지라 아일럿은 아래를 세우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사라져 갔다. 매일은 한없이 길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눈 깜짝할 새처럼 느껴진 64일. 무려 64일 만에 가스파르가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그날이 되자마자 새벽같이 일어나, 그를 마중 나가려던 아일럿은 역으로 납치를 당하고 말았다. 그가 도착하는 곳으로 향하던 도중, 저 멀리서 거대한 마차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아일럿이 탄 마차 앞을 가로막고 섰다. 당연하게도 가스파르였고, 그는 직접 문을 열고 내린 다음 그 안에서 아일럿을 쏙 빼냈다.
“룹, 아무 데서나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집으로 가…!”
“도, 도련님.”
그게 아일럿의 마지막 말이었다. 거리에 황량하게 남겨진 룹은 어쩔까 하다가 도련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두 사람이 탄 마차가 금세 멀어졌다.
“푸, 흐으, 하-”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고 나니 서로의 타액으로 젖어 있었다. 아일럿은 멍한 표정으로 가스파르를 쳐다보다가, 재차 저에게 덤벼드는 그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가스파르, 어디든… 빨리 가자.”
정말 어디라도 좋았다. 마차에서 하는 것도 물론 좋았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저 가까운 곳, 침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하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질수록 몽롱해지는 머리로는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어서 그저 가스파르를 조르는 동안, 그의 대답이 얼핏 들린 것 같기도 했다. “알았어. 그럴게.” 하고.
그런 와중에도 마차는 어딘가를 향해 계속 달리다 멈춰 섰다. 이제껏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가스파르가 사는 저택이었다. 물론 아일럿은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몰랐다. 문 앞에 내리기가 무섭게 집사는 급히 하인들을 물렸고, 아일럿이 거의 들리다시피 해서 1층에 있는 손님용 침실로 들어가게 된 탓이었다. 더욱이 주변을 살펴보려 해도, 그때마다 가스파르가 제 뺨을 감싸 쥐는 탓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등 뒤에서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는 그가 어련한 곳을 찾아왔으려니, 하는 생각만 들었다. 가스파르에게 매달린 아일럿의 두 발이 지면에서 떠올랐다. 그러나 위태롭기는커녕 지극히 안정적이었다. 다만 제 귓가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가스파르의 목소리는 위험했다.
“어느 날은 꿈에… 네가 나왔어.”
“으으응…….”
“아침에 내 침대로 들어와서 입으로 하고 있는데, 막 일어난 나는 당황하고. 너는 너답지 않게 웃고. 그래서 꿈이란 걸 알았어.”
방에 들어오고 나서야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옷을 걷었다. 흥분이 지나쳐, 당장이라도 옷 속에 손을 밀어 넣고 싶었으나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발레리아에 있는 동안 아일럿에 대한 소유욕을 마구 키워 온 가스파르의 눈이 번들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아일럿을 수십 번 잡아먹었을 텐데. 아직은 그러질 못해서 입맛만 다셨다.
“근데 좋아서 깨기가 싫더라.”
꿈에서 아일럿을 만난 건 처음이 아니었다. 홀리다 못해 상대에게 푹 빠진 가스파르의 시선이 눈앞에 있는 사람을 위험하게 훑었다. 단추가 잔뜩 달린 셔츠를 걷고서 몸을 지분거리다, 그게 잘 안 되자 여유가 없어서 단추를 뜯어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앞섶에 아일럿은 놀랄 틈도 없었다. 제 옷을 머리 위로 벗어던진 가스파르의 굴곡진 몸이 아일럿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몸이…… 가스파르…….”
좋았다. 훌륭했다. 그의 몸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장관이었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겨야 할 모습이었다. 원래도 좋았지만 지금은 예술가가 인생을 다 바쳐 만든 역작이 되어 버렸다. 왜 이렇게까지… 좋아진 거지? 아일럿은 남자의 몸을 보고서 이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엉켜 있을 때부터 몸이나 힘이 좋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손을 대어보지 않을 수가 없어서, 무심코 앞서 나간 손은 가스파르의 팔에 닿기도 전에 멈춰 섰다. 그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저에게 한시가 급한 양 덤벼들었는데, 지금은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했다. 많이 부끄러웠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손을 물리려 했더니, 멀어지는 손을 가스파르가 낚아챘다.
“이리 와. 떨어지지 마.”
“우웁.”
약간이나마 멀어진 아일럿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가스파르가 입술을 막아 버렸다. 그리고 뒤로 떨어졌을 무렵 짧게 한마디를 했다.
“마음에 들면 만져야지. 왜 안 만지고 그냥 가는데?”
“네가 그렇게 보니까… 어떻게 만져.”
“그럼 더 대놓고 만져야지. 만지고 싶은 곳이 어디든 전부 다 만져봐. 어디가 마음에 들어?”
저에게 온갖 부끄러운 소리를 다 시킬 수 있는 건, 그만큼 가스파르가 부끄러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 때문이었다. 안면이 달아올라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아일럿은 말을 돌린답시고, 몸이 왜 그렇게 좋아졌냐고 중얼거렸다.
“밤마다, 계속.”
또 입술이 눌렸다. 입질을 하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입술로 깨물다가 떨어진 가스파르는, 젖어 버린 아일럿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더니 꽉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몸만 움직여서 그래.”
“아, 아읍. 흐…….”
“하루도 안 빠지고. 아니, 못 빠졌지.”
얼마나 운동을 했길래? 생전 해 본 운동이라고 해봐야 학교에서 한 것뿐이었던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무얼 어떻게 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가스파르는 64일, 그 길고, 길고, 긴 시간 동안 정말 운동만 했다. 처음에는 잠이 오지 않아서 산책을 했는데, 당연히 그걸로 해소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몸을 고되게 하기로 작정했다. 지쳐서 빨리 잠자리에 드는 방식으로 밤을 보낼 생각이었다. 한데 거기에 몸이 익숙해지자, 처음과 같은 운동량으로는 지치지 않게 되고 말았다. 그렇게 나날이 운동량이 증가한 결과는 몸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걸 딱히 신경은 쓰지 않았는데 아일럿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되었다고 생각했다. 제 몸을 보며 어찌할 바 몰라 하는 아일럿을 두고, 가스파르는 가스파르대로 아일럿의 옷을 벗겼다. 아일럿이 만지지 못한다면 저라도 만져야 했다.
“아, 아, 잠깐-”
바지를 벗기는 것도 아니고, 단추가 다 뜯어진 셔츠를 벗기는데 아일럿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힘을 준 손끝에서 단추가 터져 나갔다. 앞섶이 벌어지면서 아일럿의 하얀 가슴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앙증맞게 맺혀 있는 중심까지. 가스파르는 그제야 아일럿이 당황했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세상에.”
대놓고 감탄하는 반응에 아일럿은 숨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걸 가스파르가 내버려 둘 리가.
“귀국 선물이야?”
“무슨 소, 소리야!”
통통하게 나와 있던 유두가 안으로 쏙 들어가 있었다. 작고 여린 선이 그어져 있는 모습은, 처음 아일럿의 가슴을 보았을 때와 똑 닮은 형태였다.
“나 없는 동안 여긴 만져보지도 않았어?”
숨어서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유두를 검지로 약하게 찔러봤다. 그 상태로 천천히 원을 그리자 아일럿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동시에 눈을 꽉 감았다가 뜨는데, 눈동자가 그새 촉촉해져 있었다. 그걸 제 입으로 말하게 할 거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다. 애원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기에 가스파르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말해봐. 왜 안 만졌어?”
그러면 훨씬 짓궂어지는 날 알면서. 아직도 그러는구나. 손끝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읏…!”
“넌 내가 가슴 만져주고, 핥아 주는 거 좋아하잖아.”
“아…… 안 했어.”
“그러니까, 왜?”
“네가 만져주, 주는 것만 못해서. 가끔 혼자 하긴 했는… 데.”
그걸로는 만족이 안 돼서 그냥 참게 됐다. 사정하긴 했어도 해소되는 게 아니라 더 쌓이는 기분이 들어서.
“보여줘. 너 혼자서 하는 거.”
“다… 다음에.”
“그런 게 어딨어.”
“다음에 얼마든지 보여 줄 테니까, 지금은, 다른 거 하고 싶어.”
다른 거라고 말하면서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허벅지 위에 제 다리 사이를 문질렀다. 그러자 당연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닿았다. 오랜만에 닿는 그건… 너무 묵직했다. 손으로 만져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읏!”
용기를 내서 만져보는 찰나, 몸이 뒤집혔다. 침대에 눌리게 된 아일럿은 제 위에 있는 가스파르를 헐떡이며 올려다보았다.
“아일럿.”
“으응.”
“그럼 나 감당할 수 있겠어? 나중에 안 도망칠 거야?”
“어? …뭐?”
“한 번이라도 빼고 해야 네가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는데.”
“아…….”
“…….”
“아… 앗…….”
이렇게 배려심이 깊을 수가 있나.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말문이 막혔던 아일럿이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가스파르는 열이 올라 벌게진 얼굴을 하고서도, 차분하게 물었다.
“어떻게 할래.”
“그, 그렇게 하자. 네 말이 맞아, 가스파르.”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 아일럿은 손 부채질을 하고는 말을 덧붙였다.
“…맞아. 맞는데.”
“응?”
“그럼, 손가락… 만이라도, 넣어줘.”
“……좋아.”
입안이 마르는 기분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묘한 표정을 지은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옆에 앉아, 몸을 뒤로 기울였다. 붉은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내 위에 올라 타봐.”
잠깐 머뭇거리던 아일럿은 시키는 대로 올라타긴 했는데, 방향이 틀렸다. 가스파르의 얼굴 쪽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보라는 뜻이었다.
“……!”
몸이 쉽게 들려서 자세를 바꾸게 된 아일럿은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너무 오랜만인지라 이조차도 부끄러웠다. 순식간에 얼굴과 귀, 목이 붉어졌다. 그걸 놓치지 않은 가스파르는 발갛게 된 살결을 가볍게 어루만져 보았다. 따뜻해진 피부가 손끝에 생크림처럼 감기는 기분이 들었다.
“아!”
물어서 잇자국을 남겼다. 녹아서 없어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 깨물었던 자리를 손으로 잡아서 끌어당긴 가스파르는 손가락 하나도 용납할 것 같지 않은 구멍을 혀로 두드렸다. 연한 색의 주름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면서 허벅지가 경련했다. 제 음부를 가스파르가 다 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온몸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겨우겨우 가스파르의 페니스를 쥔 아일럿은 어렵사리 선단에 입술을 눌렀다. 동시에 가스파르도 입을 대고, 손안에 들어오는 부드러운 살덩이를 잡고 흔들었다. 성기를 입안 가득 머금은 아일럿의 신음이, 목 안에서 울렸다.
“흐, 읍, 후으…….”
무척 길고 두툼하다. 하여 미처 삼키지 못한 부분은 손으로 쓸어 올리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서 뭉근하게 퍼져가는 쾌감에 자꾸만 손이 멈추었으나, 아일럿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젖은 구멍에 가스파스가 자신의 긴 손가락을 넣기 전까지는 그랬다.
“힛…!”
그의 손가락은 여전히 길었고, 마디가 굵어서 민감한 내벽은 그 형태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흐으읏… 으으, 흑.”
처음부터 두 손가락이 들어왔다. 중지와 약지를 함께 넣은 가스파르는 안을 조금 세게 치고 들어갔다. 아일럿의 등줄기가 크게 움찔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느릿느릿, 손끝을 굴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견디지 못한 아일럿은 손으로 가스파르의 무릎 부근을 붙잡았다. 하지만 혀에 힘이 들어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
좁은 입안이 가뜩이나 더 좁아지고, 따뜻한 혀로는 제 기둥을 눌러대기 시작하자 가스파르는 예상외의 자극에 당황했다.
“못 참겠으면 말해.”
그 전에 제가 못 참을 것 같은데 부러 여유로운 척 말해보고는, 아일럿을 못 참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심호흡을 하고서 반 이상 넣어 보려던 아일럿이 끙끙거렸다. 그 작은 입에 들어가는 것도 신기한데, 기특하게도 목구멍까지 밀어 넣어 보려 한다. 언젠가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무리일 것 같은데.
“으웁… 헉-”
역시 무리였다. 아래에서 급하게 아일럿이 입을 떼는 소리가 들렸다. 목젖을 살짝 넘어간 것 같기는 한데 더 하지 못했다.
“괜찮아?”
가스파르는 뒤에서 아일럿의 어깨를 잡아, 제게 등을 기대고 앉게 해 주었다. 저에게 안긴 아일럿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때까지 기침했다. 사례가 제대로 들렸는지 연거푸 재채기하고 나서야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침대 근처에 있던 물병을 들고 물을 따라 주었더니, 망설이다가 한 컵을 다 마셨다.
“힘들면서 왜 그렇게 무리를 해. 어디까지 삼키려고.”
그것마저도 귀여워 보여서 실실 웃으며 아일럿의 동그란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목을 가다듬던 아일럿이 고개를 돌렸다. 약간 충혈된 눈을 손등으로 문지르고는, 시선을 묘하게 피하다가 시선을 맞췄다.
“그치만.”
“그치만 뭐?”
“입으로 더 하고 싶어…….”
가스파르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하고 싶어?”
“으응.”
“아깐 넣어달라며.”
“이, 이, 이것도 넣는 거잖아.”
“…….”
맞는 말이긴 했다. 반박할 수 없었던지라 가스파르는 입꼬리를 들썩였다. 이 순간은 왜 제 물건이 두 개가 아닌지 원통했다. 그러면 하나는 아일럿의 입에 물려주고, 다른 하나는 욕심껏 쑤셔 박아줄 수 있을 텐데.
“안 돼. 다음에. 대신 더 잘해 줄게.”
일순이나마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아일럿을 거절하기란 참 힘든 일이었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이 저를 보도록 돌려 눕힌 뒤,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리 사이를 맞댔다. 방금까지 서로가 입으로 해 주었던 곳이 닿았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가스파르의 것은 아일럿의 팔목과 엇비슷한 굵기와 길이였다.
“하고 싶은 거 있어서 못 참겠어.”
“…뭘 하고 싶은데?”
“여기.”
검지로 장난스럽게 유두를 누르는데, 손끝이 갉작거리자 아일럿은 딸꾹질을 하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네가 입으로 하고 있으면, 여길 빨아줄 수가 없잖아.”
한 달을 건드리지 못했던 곳이다. 원래도 제 음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지만, 보란 듯이 원래대로 돌아가 있는 모습을 보니, 귀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어쨌든 결론은 괴롭혀 주고 싶다는 진심으로 귀결되었다. 다시는 제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 하아, 읍. 흐…….”
애써 저를 내려다보는 아일럿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가스파르는 느리게 혀를 내어 살갗 위를 기었다. 마침내 유두에 직접적으로 도달했을 때, 거세게 피어나는 쾌감은 아일럿의 고개를 뒤로 젖혀지게 만들었다. 신음을 참지 못하는 아일럿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잠깐이나마 이를 딱딱 맞부딪쳤다. 앞으로 가스파르에게 예민한 부위를 잔뜩 희롱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떨림이 전신을 울렸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가스파, 르, 흐, 하윽.”
아일럿의 모든 피부는 가스파르에게 달콤하게 녹는 음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 혀가 데굴데굴 구르다 지그시 누르기도 하고, 입술을 모으고 빨아올리기도 했다. 닿을수록 점차 붉게 물드는 살점의 표면은 서서히 단단해졌으나, 그 속에서 숨기고 있는 것을 꺼내놓지는 않았다.
“흐앗…! 아, 아아!”
젖은 살점을 손끝으로 튕기자 아일럿도 튀어 올랐다. 반응이 흡족한 나머지 가스파르는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서도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유두 주변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아일럿은 더 창피해졌다.
“왜 이렇게 안 나오지? 예전엔 살살 만져 주면 금방 나왔는데.”
“아흑, 흡, 으… 흣.”
“이러니까 처음 했을 때 같아. 한쪽 먼저 빼주고, 다른 하나도 천천히 꺼냈었잖아.”
검지와 중지를 모아서, 두 손가락 사이로 유두가 있는 부분을 쓰다듬던 가스파르는 유륜을 꾹 누르다가 판판한 가슴을 모아서 쥐었다. 아주 조금 볼록해진 가슴이 사랑스러웠다.
“내가 너무 오랜만에 만져줘서 삐졌나 봐.”
“흐으으… 거기서, 마, 말하면…….”
“말하면 안 돼?”
“이상… 해.”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거지. 한 달 만이라 잊어버렸니?”
말을 하면 숨이 자꾸 닿았다. 그건 직접 빨아주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자극적이다. 간질간질, 피부 속까지 그 묘한 간지러움이 남아서 가스파르가 뭔가 해주기를 바라게 된다. 아일럿은 그의 머리를 잡아서 끌어당기고, 안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신음했다. 혀끝을 살살 굴리던 가스파르는 함몰되어 있던 유두를 힘 있게 빨아들였다. 이번에는 입을 바로 떼지 않았다. 나오지도 않는 젖이 빨리는 듯하여 몸서리가 나다가도, 아래가 반응했다. 섬뜩한 쾌감이 목소리를 높였다. 더 해, 계속, 멈추지 마, 보드라운 입술 사이에서 살며시 드러나는 앞니가 위아래에서 유륜을 짓이겼다.
“아…!”
“귀여운 게 나왔네.”
내내 숨어 있던 유두는 그제야 밖으로 드러났다. 짧은 감상을 들려준 가스파르는 희롱에 여념이 없어졌다. 빼꼼 고개를 내민 유두는 못 견디게 귀여웠다. 빨갛게 익은 것을 손가락으로 가지고 놀다 입을 맞췄다.
“흐, 우으읏. 읍… 으응…….”
“보고 싶었어.”
부러 입으로 소리를 내며 냠냠, 먹는 시늉을 했다. 먹을 때 소리도 안 내면서…! 아일럿은 이상한 부분에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가스파르의 입술이 유두를 물었다 떨어질 때마다 움찔거리며 허리 아래를 들썩였다. 그러는 동안 허벅지 사이에 닿았던 것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무엇인지는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그게 제 안으로 들어올 생각을 하니, 사정도 하지 않았는데 절정 때나 느낄 수 있는 떨림이 온몸을 훑었다.
결국에는 두 곳이 가스파르에게 모두 끌려 나와, 손가락 사이에 끼워졌다. 그것이 퍽 만족스러워진 가스파르는 양쪽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고는, 따끔함이 느껴질 만큼 아일럿의 유두를 잡아당겼다. 그곳이 이전처럼, 눈에 익은 색을 하게 되자 비로소 만족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곳에 클립 같은 거라도 달아 줄까? 그걸로 유두를 고정시켜 볼까 생각하던 가스파르는 떠올랐던 생각을 금세 흐트러뜨렸다. 그럴 필요는 없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제가 매일같이 해 주면 그만인 것을.
“으… 하으, 으으읏…!”
“아일럿. 그대로 잘 잡고 있어.”
제 머리와 어깨를 잡은 아일럿이 겨우 엉덩이를 들었다. 참지 못하고 무너진다 해도 제가 받쳐줄 테니 상관은 없지만… 힘겹게 무릎으로 서서 하반신을 뒤로 빼고, 바르작거리는 게 보기 좋았다. 가스파르의 손은 꼬리뼈를 지나서 그 아래에 있는 구멍으로 미끄러졌다. 옴죽옴죽대는 구멍이 손가락을 반겼지만, 역시나 좁았다. 두 손가락을 넣어 만지는 동안에도 내내 생각했었다. 덜 풀린 게 아니라 안이 그냥 좁은 거라고. 이대로는 제 것을 도저히 부드럽게 삼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녹진해질 때까지 풀고 나서 하는 것보다는, 적당히 버거운 느낌이 들 무렵 넣는 것을 서로 선호하긴 했지만 그게 지금 같은 상태는 아니었다. 가스파르는 비좁은 입구를 두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빨갛게 된 아일럿의 귀를 핥았다.
“아일럿, 혼자 안 했어?”
“…했는데, 그거랑 네 건 다르잖아…….”
그건 그랬다. 아일럿의 말이 맞다. 또다시 할 말을 잃은 가스파르는 머리가 뜨거워져서, 자기도 모르게 아일럿과 이마를 맞대었다. 아일럿의 체온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기에 좀 더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입구만 조금 더, 문질러줘. 그, 그럼 될 것 같아.”
“그걸로 안 될걸? 아플 텐데.”
“아파도 돼.”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말을 내뱉은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손길을 재촉했다. 흥분으로 말도 잇지 못하는 가스파르는 두 손가락으로, 지시받은 곳을 문지르고 들쑤셨다. 그때 들려오는 마찰음도 마냥 야했다.
“후으, 흐, 으으응… 흑, 하아, 흐읏…….”
“…….”
“가… 스파르, 이제, 아, 아윽, 빨리, 이, 흣, 아… 안 돼. 못 참겠어… 아!”
노골적인 소리에 아일럿의 신음과, 애달픈 요구까지 섞이자 가스파르도 참기 어려웠다. 곧장 제 것을 가져다 대었다. 젤을 쏟아붓다시피 한지라 오물거리는 입구도, 그곳을 파고들 귀두도 푹 젖은 채였다. 오므라든 주름 위에서 단단한 살덩이가 살짝 미끄러진다. 하지만 제가 들어갈 곳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 아으으으, 흣, 으흡…!”
삽입은 쉽게 이루어졌고 전혀 아프지 않았다. 쾌감이 너무 커서 고통이 다 가려진 걸까. 날카롭게 숨을 들이켠 아일럿은 제 몸속에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린 가스파르의 것을 단숨에 받아들이고 전율했다. 끝까지 삽입한 가스파르는 페니스를 빈틈없이 감싸는 내벽을 강하게 짓치고 들어갔다. 그제야 다소 느슨해지는 듯하였으나 잠시였다.
“하-”
“아윽, 그, 흣, 흐아아아, 읏… 우읍, 흑…!”
들이닥치자마자 배 속을 쿵쿵 찍어대는 감각이, 눈앞에 별을 튀게 만들었다. 헉, 거칠게 숨을 뿜어낸 아일럿이 가스파르의 등을 잡고 버텼다. 발끝에서 시작된 전율이 순식간에 머리까지 올라왔다. 아일럿은 도리질을 치다가 가스파르에게 붙잡혀 입술을 짓눌렸다. 잡아먹히는 키스가 이어졌다. 위아래 입술을 통째로 빨리다가 혀가 질척하게 뒤섞이고 있었다. 황홀함이 농후하게 퍼져 나갔다.
“우으으으, 흣, 흐읍, 아아, 응, 흐앗, 아, 아, 아!”
짐승의 교미라도 이보다 거칠고 원초적일까.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던 배려를 집어치운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안이 지나치게 좋아서 멈출 수 없었다. 단순한 이유 때문에 추삽질을 하고, 똑같이 단순하게 아일럿을 가지고 싶다는 이유로 작은 머리를 틀어쥐고 혀를 얽었다.
“흐아아, 읏, 흐윽, 읍…!”
페니스가 결장까지 치고 들어가면서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혀나 입술을 깨물기도 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이를 세우면서도, 깨물고서 질겁하는 아일럿을 보는 게 즐거웠다. 제 입술을 너덜너덜하게 만든 대가는 아래로 주면 그만이었다.
“아아, 앗, 하으으으… 읏, 아윽, 흡, 으흐윽-”
안경을 쓰고 있는데도 아일럿의 시야로는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스파르의 얼굴도 보이다 말기를 거듭했다. 그래도 그의 입술을 제가 깨물어서 기어코 피를 본 것은 알 수 있었는데, 허리 짓이 이토록 거친 건 깨물 틈을 주지 않으려 하는 게 아닐까. 아일럿에게는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흑…… 아, 아, 흐으읍, 그, 흑, 하으, 아!”
몸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끝도 없이 상승했다. 처음에는 어찌 됐든 가스파르의 위에 올라타 있던 아일럿은 아래에 깔려서 다리를 벌리고, 제 몸속을 찍어대는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으으으… 읏, 아…… 아으흣…!”
거의 다 빠져나갔다고 생각해도 가스파르의 것 중 반은 제 몸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처음에는 전부 받아들이지 못해서, 가스파르가 뿌리에 링을 씌웠던 일도 생각이 났다. 그런 걸 하고 있다는 것에도 놀랐고, 나중에는 그걸 빼 버려서 더 놀랐다.
“너무, 흐, 흑, 깊… 어어, 아, 아, 흑, 거기, 아냐, 아직… 안 돼. 흐으읏, 못 해…….”
링을 사용했던 건 처음 관계를 가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뿐이었는데, 아일럿은 지금 그 링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스파르, 가스파르, 조금만. 정신을 반쯤 읽고 있던 아일럿이 고장 난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중얼거림의 반 이상이 신음이었고, 못 한다고 말하면서도 두 다리가 가스파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해서 연결된 곳을 더욱 가깝게 밀착했다. 그 상태에서 멈추었다가 잘게 허리 짓을 하기 시작하니, 배 위로 몸에 들어찬 것의 형태를 고스란히 드러낸 아일럿은 부르르 떨었다. 머리에 피가 몰렸고, 바짝 굳은 몸은 제멋대로 경련했다. 사정하지 않고 오르가슴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기분 좋아… 아일럿?”
“흐… 허억, 헉, 읍, 으으읏……. 아, 흐…….”
“말해봐. 기분 좋니?”
눈이 풀린 아일럿의 얼굴을 잡고, 굳이 자신에게 끌어와 시선을 맞추고는 또 물었다. 가스파르는 평소에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제 밑에 있는 아일럿이 온몸으로 그렇게 말해 주고 있으니 굳이 물어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듣고 싶은 걸까.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면서, 뺨을 감싸 제게 시선을 두게 했다. 거의 울먹거리던 아일럿은 겨우겨우 가스파르와 눈을 맞췄다.
“좋, 아… 아아…… 흑!”
“그럼 난?”
“…너도, 너도 좋아.”
“계속 말해봐.”
말을 하려고 했다. 하려고 했는데.
“너한테 그 소리 듣고 싶어.”
아일럿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러면서 쾌락점을 제대로 찔려, 히으으으 하고 흐느끼다시피 하는 소리를 내다가 페니스를 적셨다. 가스파르는 제 배가 묽은 체액으로 더럽혀진 것을 알았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허리가 들린 채로 경련하던 아일럿은 몸부림을 치고, 손에 잡히는 가스파르의 팔을 다급히 붙잡고 버텼다. 하나 둔탁한 살덩이는 도리어 더 사납게 몸속에서 요동쳤다. 가스파르를 받아들이는 아일럿의 몸에 잔물결이 일었다.
“빨리.”
“흐아, 읏, 응…!”
못 하겠다. 말해달라고 하면서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 없게 몰아붙이고 있는 탓이었다. 정말 듣고 싶은 거 맞아? 하고 반문하게 될 만큼, 강했다. 이 상태로는 사랑한다는 말은커녕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든데 가스파르는 그것도 모르고, 제가 원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 아일럿을 몰아붙이기만 했다.
“흐으, 그만, 그… 아, 으흐, 아윽, 아, 힉…….”
천국과 지옥에 동시에 빠졌다. 안쪽을 사정없이 치대면서 가스파르는 제 페니스의 윤곽이 드러나는 아일럿의 배를 보았다. 별생각 없이 손으로 허리를 잡았더니, 안경 너머에 있는 아일럿의 눈이 커졌다. 배가 눌리는 찰나 체내에 있는 것이 더 커진 것만 같았다.
“좋아, 좋아… 아, 좋다구…… 다, 좋아, 하아. 앗, 흐악!”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말을 했는데.
“아아, 아, 안… 흐으, 지, 지, 지금, 아으흐으윽!”
결론은 더 심해졌다. 가스파르는 너무 쾌감이 강해, 어떻게든 닿지 않게 하려는 곳을 집요하게 쫓았고 아일럿은 계속 도망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벗어나려는 행동이 가스파르를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걸 아는데,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버틴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 후윽, 흐, 힛… 하아, 윽… 아…… 흣…?!”
목덜미가 따끔해졌다. 가스파르는 흥분으로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도, 심한 자국이 남지 않을 선에서 아일럿의 목을 물었다. 그러나 씩씩거리는 숨은 여과 없이 아일럿에게 닿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가스파, 르으… 으, 흑, 우으읍…….”
서로의 배 사이에서 문질러지는 아일럿의 페니스는 아까부터 실금에 가까울 만치 질질 싸고 있었다. 그런데도 몸을 빼려고 하니 안달이 나기도 하고, 괜한 심술이 나서 가는 허리를 잡고 거세게 움직이게 된다.
“아…! 흡, 으읏, 아으흐, 흣, 하, 아아, 흐!”
하체를 제 마음대로 움찔거릴 수도 없게 된 아일럿은 소리 없이 경악했다. 제 허리를 조여오는 가스파르가 사정감을 느꼈는지, 두려워질 만치 격렬하게 페니스를 쑤셔 넣고 있었다. 제 안을 난도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함으로써 제 흔적을 내부에 새겼다. 그가 닿는 모든 곳에 파문이 일었다.
“흣, 아아아… 읍, 흣, 흐으, 브, 우으읏, 흐, 앗… 아…….”
가장 깊은 곳이었다. 더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그가 사정했다. 가스파르가 자신을 내리누르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밑에 깔린 아일럿은 배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덕였다. 몸속에 새로운 길이 난 것 같았고, 그 안에 가스파르는 자신을 온전히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한 치도 물러나지 않는다.
“어쩌지, 아일럿. 이러다가 애라도 생기는 거 아닐까.”
“안… 생겨…….”
“나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말하면서 가스파르는 살살 눈웃음을 쳤다. 살가우면서도 자신만만한 웃음을 바라본 아일럿은 어쩐지 뒷목이 서늘해졌다. 말도 안 되지만 그라면 진짜로 가능하게 해 버릴 것 같아서. 일반적인 크기를 아득히 뛰어넘은 걸 달고 있는데, 그거라고 못 할까? 찰나 혼란해하는 아일럿의 얼굴을 보면서 가스파르는 사실, 황족들은 남자도 임신시킬 수 있다며 농담을 했다.
“흐… 이상한 말 마.”
“아, 안 속네.”
“어떻게 속아.”
지쳐서 곤죽이 된 아일럿이어도 정상적인 판단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속아 주지 않는 아일럿에게 밉지 않게 눈을 흘긴 가스파르는 곧장 입술로 호선을 그렸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저 말은 굉장히 위험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종이 머릿속에서 세차게 울렸다. 지금 도망가지 않으면 내일은 못 일어나! 이전에도 이 종이 울렸을 때 아일럿은 도망을 친 적이 있었다. 가스파르가 순순히 놓아줘서… 그렇지만 저번과는 달리 오늘은 두 달째였다. 도망치는 걸 끌어왔으면 끌어왔지, 놓아줄 리가 없지 않은가.
“생길 때까지 하자.”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벗어나려던 아일럿의 어깨 위로, 한층 단단해진 두 팔이 바위처럼 자리를 잡았다. 아무리 다리에 힘을 주고 상반신을 밀어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두 발이 애처롭게 시트 위를 문지르기만 했다. 발목이 가스파르에게 붙잡히기 전까지만.
“…아으, 으, 잠깐…!”
아일럿은 침대에서, 가스파르의 품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발목에 이어서 무릎을 잡히고 몸이 겹쳐졌다. 순식간에 제 배 속을 터질 듯 가득 채우는 페니스가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몸속을 죄 뒤흔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두 번은 더 빼고 할 걸 그랬나 봐.”
선고가 내려졌다. 이제 남은 일은 아일럿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붙어먹는 것뿐이었다.
*
예언이 들어맞았다.
아일럿은 눈을 떴는데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을 감기 전에는 그래도 팔다리를 들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전신이 녹아서 침대에 눌어붙은 게 아니면, 이럴 수가 있나? 아일럿은 팔 한쪽을 드는 것도 긴 시간이 지난 후에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던 지난밤 일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침대에서 버둥거리던 아일럿은 문득 생각난 기억 때문에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까지 할 수 있지? 이게 가능해?
가능했어. 가스파르가 그 정도를 넘어버렸지.
자문자답한 아일럿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스파르를 만나고서 아일럿이 계속하게 되는 생각이었다. 매번 이 이상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또다시 기록을 경신했다. 현재에서 벌어진 일이기에 과거보다 더 크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니, 그런 것 같지 않다. 어젯밤이 이제까지 중에 제일 격렬하고 길었다.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하룻밤 동안 두 달 치를 해 버렸으니까.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기준일 것이다.
‘아일럿.’
‘으으… 흐, 으응…….’
‘내일은 더 하자.’
‘나, 날 죽이려고.’
‘안 죽어. 절대 그럴 일 없어.’
가스파르는 마지막까지 부족해했다.
처음에는 두 번은 더 빼고 할 걸 그랬다고 하더니, 나중에 가서는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체 몇 번을 사정시키고 해야 했던 걸까.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는 막 사정을 한 직후에는 허리를 움직이지 않고 입과 손으로 저를 울렸다. 허우적거리다시피 하며 애원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구멍을 채우고 있던 흉기가 몸집을 부풀리고 있었다. 그걸 기절할 때까지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안을 두들겨대는 감각만을 겨우 느꼈다.
“…시간이…….”
지금이 몇 시일까. 시계를 보고 싶어서 머리맡을 더듬어 보았다. 거기에는 가스파르가 깨끗하게 닦아놓은 안경이 있었지만, 덥석 안경을 쥔 손 때문에 지문이 남아 버렸다. 본인도 그걸 알고 미간을 좁혔다가, 일단 안경을 썼다.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정오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 시간이긴 한데, 한동안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스파르와 밤을 보낸 날이면 흔히 그랬듯, 일어날 수 없는 상태였다. 저와는 달리 가스파르만 쌩쌩했다. 새벽녘에 저를 안고 2층으로 올라가더니만, 아침 해가 뜨기가 무섭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일럿은 그제야 이곳이 가스파르의 저택이며 지금은 가스파르의 침실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넌 가만히 있어. 배앓이 하면 안 되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
‘으흡… 아, 너, 너무 긁지… 마아.’
‘이 정도에 일일이 소리내지 마아.’
제 말을 다소 얄밉게 따라 한 가스파르의 손가락이 내벽을 살살 긁었다. 그렇게 그는 비몽사몽한 제 몸을 씻겨 주고서, 자신도 씻고 뭔가 분주히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눈을 떠서 보았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가스파르는 제 앞에도 있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도 있었다가… 또 눈을 떴을 때는 제 뺨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고는 가만가만 제 얼굴을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뭔가 들고 있었다.
‘아일럿. 이거 선물.’
물론 다른 것도 많다면서 가스파르는 흥얼거렸다. 그리고는 보랏빛 술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잠결이라 제대로 듣지는 못했으나 발레리아는 술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네가 마셔도 좋고, 부모님께 선물해도 좋을 거야. 그런데 조심해야 될 게-’
그렇구나. 한 병은 내가, 한 병은 부모님께 드리면 되는구나… 멍하니 생각하던 아일럿은 도로 눈을 감았다. 그 뒤로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완전히 잠에 들어 버린 탓일까. 눈을 비비고 테이블 앞으로 다가간 아일럿은 술병을 하나 들었다. 일반적인 술병처럼 생겼지만 표면에 복잡한 세공이 되어 있었고, 표면에 언뜻 비치는 술은 보석이라도 갈아 넣은 양 반짝거리고 있었다.
애초부터 알고 있는 술이 적긴 하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보는 술이었기에 마냥 신기했다. 해서 살펴보고 있노라니 이내 맛이 궁금해졌다.
하나쯤은 지금 맛봐도 괜찮지 않을까? 낮부터 술은 좀 그랬지만, 살짝만 맛을 보는 게 뭐 어때서.
그 술 한 병이 멀쩡한 저택 한 채의 가격과 맞먹는다는 걸 모르는 아일럿은 대수롭지 않게 마개를 열고,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 농후하고, 달착지근한 냄새였다. 깊게 스며드는 냄새가 꽤 좋았다. 마침 근처에 잔이 있었기에 술을 아주 조금만 따라서 살며시 입술 끝만 대 보았다.
“…음?”
이게 술이야?
남은 걸 다 마시고 나니 더더욱 의아했다. 그냥 음료수, 과일에 설탕을 잔뜩 넣고 재워놓은 음료수 같았다. 톡 쏘는 듯한 맛이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도저히 술 같지 않았다. 이번에는 잔의 반 정도를 채우고서 마셨다. 역시나 술 같은 느낌은 없었고, 속이 좀 따뜻해지는 게 다였다. 혀에 잔향이 깊숙하게 스며드는 게 신기하기는 했다. 입안에 꽃향기를 머금고 있다면 이럴까.
그래도 이런 건 맛 좋은 음료수일 뿐 도저히 술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술병을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길 수차례, 문밖에서 집사가 노크했다.
“아일럿 님, 일어나셨습니까?”
“예?”
“괜찮으시다면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아… 네, 부탁드립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양 혼자서 먹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메뉴가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입맛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좋아하는 음식들만 준비하게 했는데, 그 양이 과하게 많았다. 이 방 안에 일주일을 갇혀 있어도 다 먹을 수 있을까 말까. 고민 끝에 한 메뉴를 한 번씩만 먹었을 뿐인데 금방 배가 찼다. 제가 식사를 마쳤음에도 산처럼 쌓여 있는 음식들이 다소 낯설었다.
스칸다에 있을 때도 가스파르와 살다시피 했으니 나름대로 익숙한 광경이기는 한데… 그때 일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스파르 한 사람을 감당하는 것만 해도 벅차서, 그 외의 자잘한 일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지금도 벅차긴 하지만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그리고 과거의 전쟁은, 지금에 와서는 감정을 고조시키는 추억이 됐다. 떠올리기만 해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러다가는 가스파르가 오기 전에 혼자 하게 될 것 같아서 괜스레 방 밖으로 나가 보았다. 문 앞에는 여전히 집사가 서 있었다. 아까 미처 묻지 못했던, 가스파르의 부재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주인님께서는 폐하를 알현하러 가셨습니다. 저녁이 되기 전 돌아오실 겁니다.”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꽤 남아 있었다. 하나 그 시간이 무료하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길게 목욕을 했고, 목욕이 끝난 뒤에는 가스파르가 미리 준비해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일럿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가스파르는 제 침실을 한 사람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꾸며놓았다.
흥미로워할 만한 고서들을 쌓아 놓았고, 온도에는 특히나 신경을 썼다. 따뜻하되 절대 덥지 않도록.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준비했고, 햇빛은 철저하게 가리되 독서에 방해가 없도록 적절한 빛을 제공했다. 특히 가까이에는 언제든 마실 수 있는 음료를 여러 가지 배치해 두었는데…… 아일럿이 선택한 건 가스파르가 준비해둔 여러 가지의 음료가 아니라 술이었다.
아일럿은 독서 도중에도 간간이 그에게 받은 술을 잔에 따랐다. 정말 아무리 마셔 봐도 취하지 않았고, 음료수랑 다를 게 없었다. 그래서 세 잔을 더 마셨다. 맛도, 향도 좋았으니까.
그러던 차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걸 자각하자 머리가 붕 뜨는 듯했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두 발도.
“어라?”
몸은 가벼운데 왠지 모르게 무거워진 눈꺼풀을 깜빡여 본다. 그동안 아일럿은 제 몸이 두둥실 떠오른다고 생각했다. 두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니 날개처럼 가벼웠다.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개와 상반신이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했다.
그건 완전히 취한 상태였다. 하지만 취한 사람은 자기가 취한 걸 모르고, 아일럿도 스스로의 상태를 몰랐다. 다만 멋대로 움직이는 몸을 신기해할 따름이었다.
*
“아일럿은 내 방에 있지?”
알현을 마치자마자, 마차가 아닌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돌아온 가스파르가 말에서 내리는 것과 동시에 집사에게 물었다.
“예. 침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식사는.”
“두 시간 전에 하셨고, 그 후에는 목욕하셨습니다.”
“별일은 없었고?”
“주인님께서 준비해두신 책을 읽으셨습니다.”
침실로 걸어가는 동안 가스파르는 급하게 겉옷을 벗어 집사에게 넘기고, 성큼성큼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아일럿을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아서 내내 어깨가 들썩들썩했다. 그러다 마지막 계단은 밟지도 않고, 한꺼번에 두 계단을 올라갔다.
“아일럿!”
뛰다시피 하여 침실로 달려간 가스파르가 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거기 있는 건 바닥에 주저앉아서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귀여운 아일럿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취한 기색이 역력했다.
“가아스파르.”
“왜 이렇게 취했니…… 아일럿, 설마.”
제가 선물로 준 술 중에 한 병이 열려 있었다. 술맛이 나지 않는다고 그냥 마셔 버린 건가? 병을 들어 살펴보니 적어도 네 잔은 마신 것 같았다. 분명 취기가 갑자기 훅 올라오니까 조심하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아일럿. 아일럿. 고개 흔들지 말고. 자, 바닥 말고 다른 데 가서 앉자.”
아무래도 잠결이라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런.”
제 부주의함을 짧게 한탄했다. 주저앉은 아일럿을 쉽게 안아 올린 가스파르는 사방으로 휘청이는 상반신을 단단히 붙잡았다. 의자보다는 침대에 앉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침대 위에 놓아 주었더니, 눈을 마주치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게 보기 좋아서 가스파르는 저도 따라 웃고 말았다.
“나 취했어?”
“엄청.”
“음, 미안해.”
“기분 좋아 보이니까 됐어.”
그 말에 또 웃던 아일럿은 금방 앓는 소리를 냈다. 눈동자가 밑으로 데구루루 내려갔다.
“가스파르. 나… 아래에…….”
아래? 의아했지만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바닥에 익숙한 약들이 엎어져 있었다. 아일럿에게 먹이려고 상인에게 사뒀던 약들이다. 가루가 아니라 알약 형태로 되어 있어서 먹기가 훨씬 편할 거라고 짓궂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나중을 기약하다 결국 방학이 되어 집으로 가져왔던 것 같은데… 저걸 먹었다고?
“이 약도 먹었어?”
“있길래.”
“있길래 먹었다고?”
“물 마시려다가 물이랑 같이 먹었어…… 어쩌지…….”
“글쎄, 이걸 어쩔까.”
가스파르는 아일럿을 어르는 듯한 목소리를 내면서 뺨을 감쌌다. 어느 때보다도 따끈따끈해진 뺨이 손에 부드럽게 감겼다.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따끈한 밀가루 덩어리를 손으로 쥐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제 손안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작은 얼굴이, 해롱해롱한 표정이 되어 좌우로 움직였다. 굳이 참을 이유가 없었기에 이마에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아일럿이-
“어떻게 할까, 아일럿?”
“하고 싶어. 많이많이 하고 싶어.”
“…….”
“오늘도 한다고 했잖아.”
어찌나 솔직한지. 가스파르가 도리어 놀랐다.
“계속 말해봐.”
술을 마신 아일럿은 대체 어디까지 솔직해질까. 의문이 생겨난 가스파르는 오래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가… 시간 지나서, 없어질 때까지 해줘.”
“…음.”
“여기, 틈에 혀 넣고. 네가 해주는 대로. 막 혀끝으로 쓸고. 으으, 아니야. 그 뒤에도 계속하고 싶은데.”
듣고 있노라니 머리가 다소 어지러웠다. 너무 흥분된 탓이다. 아일럿의 말을 끊고 싶지는 않지만, 가스파르는 아일럿을 침대에 밀어 눕혔다. 그때 몸이 겹쳐진 것만으로도 아일럿은 흐으, 하고 작은 신음을 쏟아냈다.
“왜 더 말 안 해? 소리 내서 빨아주는 것도 너 좋아하잖아.”
“응, 좋아아… 으. 흣. 다 좋아해.”
“또 뭐 좋아해?”
“네 거, 넣는 거어. 그것도 좋아. 진짜 커. 왜 그렇게 크지?”
손을 펼친 아일럿이 손바닥으로 스스로의 배를 팡팡 두들겼다.
“여기까지 닿는다? 알아? 모르지?”
“…들어가는 게 난데 어떻게 몰라.”
“아, 하긴 그렇겠다.”
“…….”
“되게 좋아. 너도 알게 해 주고 싶은데. 좋은 거니까. 으응.”
“난 여기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미치게 좋아.”
바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단숨에 페니스를 지나, 그 밑에 생겨난 여성기를 매만져 주자, 아일럿이 목을 뒤로 젖히고 바르르 떨었다. 기둥 밑에 바로 생겨난 여성기는 귀두가 푹 젖어 있는 만큼, 물기가 어려 있었고 데일 듯 뜨거웠다. 말랑한 살점을 손가락으로 열어젖힌 가스파르는 손끝을 느리게 둥글렸다.
“하윽-”
커다란 손의 손바닥은 페니스를 압박하고, 기다란 손가락은 한없이 부드럽게 여성기 위를 유영했다. 먼저 안달이 난 건 가스파르였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 만지는 데 금방 감질맛이 나서, 서둘러 아일럿을 침대에 눕히고는 급한 손길로 바지를 벗겨냈다. 갑작스럽게 추위가 몰려들자 아일럿은 일순 다리를 오므렸으나, 파고드는 가스파르의 손이 더 빨랐다. 제 체온보다도 뜨거워진 가스파르의 손바닥이 중심을 쥐고, 약으로 생겨난 여성기마저 건드리자 아일럿은 금방 다리에 힘이 풀려 상대에게 의지했다.
“흐, 읏, 으으응…….”
중지 끝에 닿은 입구는 연약하고 좁았다. 그리고 푹 젖어 있었기에 가스파르는 입으로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따뜻하고 매끄러운 살결이 입구 근처를 훑다가 손가락 하나도 겨우 무는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원을 그려보는데 예상대로 쉽게 틈을 내주지 않았다.
“아, 흡, 후으. 윽.”
하얗고 잘 다물려 있는 살점 사이에, 붉은 곳이 자라났다. 손가락을 떼어내니 끈적한 실이 묻어나왔다. 가스파르는 거침없이 그 틈새에 입술을 파묻고는 혀끝을 세웠다. 도톰해진 둔덕을 한입에 넣었다가 스며 나오는 액을 혀로 내리 핥았다. 여기서 더 젖을 것 같지 않았는데, 입술 주변마저 적시게 할 만큼 흥분한 아일럿이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하으읏, 읏, 흑, 아, 아아아…!”
이렇게 젖었으니 손가락도 쉽게 받아먹겠구나. 여린 점막 속으로 손가락 한 마디가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입술을 대고 있었기에 아일럿은 헉, 헉, 숨을 들이켰다. 약을 쓰지 않더라도, 가스파르는 매번 그곳을 입으로 해 주곤 했다. 하지만 조금 위쪽에 생긴 여성기를 입으로 해 주는 것은 그때와는 많이 달랐다. 가스파르의 높은 코 때문이었다. 그 코가 음핵을 꾹꾹 짓누르면… 손으로 해 줄 때와는 결이 다른 짜릿함이 온몸을 내달렸다.
“흑, 으으… 아, 으흡!”
가스파르의 코가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 무심코 손끝에서 표출되었다. 단정하게 넘기고 있던 금발이 마구 헝클어졌다. 물론 가스파르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일럿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서 부러 얼굴을 파묻고 도리질을 쳐주다가 손가락으로 음핵을 빠르게 털었다. 잔뜩 일그러진 아일럿의 얼굴 속에서 눈만 커졌다.
“흐, 으하, 아, 안 돼, 잠까… 아으으윽, 흣…… 히으, 읏.”
뭔가 나올 것만 같았다. 방금 간신히 참아냈는데, 저 손가락이 계속 움직이는 한 다음에는 못 참을 게 뻔했다. 그것만은 안 된다는 생각에 어디서 괴력이 솟았는지, 아일럿은 가스파르를 급하게 밀어냈다. 동시에 체액이 왈칵 터져 나와 시트를 적셨다.
“아일럿?”
얼떨결에 밀린 가스파르는 젖은 손가락을, 여성기 안의 균열에 대고 문지르면서 입꼬리를 실룩였다.
“뭘 빼고 그래. 서로 얼굴에 정액도 잘만 떨어뜨리는데.”
“그, 그으만해. 이거 말고… 다른 거.”
“다른 거? 뭐 할까?”
“왜 안 넣어줘어…….”
투정 부리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얼굴은 발갛고, 제가 물고 빨았던 입술은 부르튼 채로 입꼬리를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양, 뭘? 하고 되물었다.
“손가락으로 아까부터 계속 만지고 있는데?”
“손가락 말고. 흐, 다른 거.”
“그렇지만 손가락으로 쑤시기만 해도 좋아서.”
“히으, 으… 너무해.”
“종일 이러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 두 곳을 같이 만져 줄까?”
“힛… 아흐윽!”
말이 끝나자마자 두 손가락이 뿌리까지 들어와서 안을 뒤흔들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손으로는 바로 아래에 있는 구멍을 들쑤셨다. 손가락이 제 내벽을 사이에 두고 겨루는 것만 같았다. 양쪽에서 휘저어지자 아일럿은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흐아아… 아, 하으, 흣, 으으응…….”
말을 할 수 없는 대신 손에 닿는 가스파르를 벅벅 긁어댔다. 미약한 통증조차 없어서, 솜방망이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렇게 해줘도 만족이 안 돼?”
“넣어. 흐, 넣어어… 빨리. 읏. 히으으으… 흑, 으읍!”
네가 조르는데 어떻게 참을까. 아일럿의 몸을 뒤집은 가스파르는 좁고 빠듯하면서도, 신기하게 제 것을 받아 삼키는 질 속으로 파고들었다.
“……!”
엎드린 채로 가쁜 숨을 내쉬던 아일럿은 정신이 없었고, 쾌락에 반사적으로 신음했다. 조금 전까지 가스파르와 다리를 얽고 있었는데, 막상 그의 얼굴이 안 보이게 되자 잠시 멍해진 탓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러다 고개를 들자 먼 곳에 있는 거울로 언뜻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힛… 아으흑!”
짐승이 되어 저를 덮쳐 누르는 가스파르도.
제가 감탄해 마지않았던 몸이 제 골반을 붙잡아 끌어 올렸다. 그걸 본 아일럿은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여성기에 미끄럽고, 둥글지만 흉흉하기 그지없는 게 닿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제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허윽, 허, 헉… 으으으… 아…….”
가스파르는 뒤에 박을 때도 비어 있는 구멍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여성기에 제 것을 쑤셔 넣어, 더욱 좁아진 엉덩이 사이의 구멍에 엄지를 넣고, 그 안의 성감대를 엇박으로 눌러 주었다.
“안 돼, 안 돼, 다, 다 만지지 마아, 하나만 해…….”
아일럿은 편하게 숨을 내쉴 시간도 없이 몰아 붙여져서, 탁성을 내지르다 축 늘어졌다. 어떻게 해도 그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뒤로 내민 팔 하나는 가스파르에게 붙잡혀서 이따금 제 몸이 들리는 데에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미약하게나마 다른 곳이 자극되어 버렸다.
“으, 하아, 으으읍, 흐… 아으, 헉…!”
깊었다. 계속 깊다. 들어오면 안 될 선까지 넘어 버린 귀두가 쿡, 쿡, 안을 눌러대고 몸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 한 방울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허리를 붙이는 찰나, 눈을 질끈 감은 아일럿은 별을 보았다.
*
“흐으으… 아… 읏…….”
한참 후, 여성기에 딱 한 차례 사정하자마자 몸이 뒤집혔다. 다른 구멍도 만족시켜 주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러자 아일럿은 제 얼굴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두 팔로 얼굴을 가리려 했지만-
“아일럿. 나 말고 뭘 보려고 그러니.”
“으우… 흑.”
헛된 시도였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두 팔을 잡아 고정시키고, 그걸 지지대 삼아 아래를 강하게 내리찍었다. 항상 모든 구멍이 범해져야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단숨에 관통당하자 허리가 절로 떠올랐다.
“아아아, 아, 헉, 흐으, 끕…!”
두 성기에서 동시에 물이 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앞에 싸준 정액을 질질 흘리면서 아일럿은 가냘프게 흐느꼈다.
“한 곳으로만 싸는 걸로는 부족해?”
“아흐, 아, 앗, 흑, 아아, 히… 읏, 으으으응…!”
가스파스는 한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늘 그랬듯 목소리만 다정해서 아일럿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흐윽, 흡, 으응… 아으읏!”
들어올 때는 한없이 묵직했고 나갈 때는 아래가 다 빠지는 것 같았다. 내벽이 끌려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페니스의 존재감이 컸다. 제 안이 온통 다 가스파르였다. 맞닿은 곳은 얼얼한 데다가 뜨거웠고, 캄캄한 머릿속은 그가 들어올 적마다 하얀 불빛이 터졌다.
“흑, 흐…… 흣…….”
이러다 좋아서, 혹은 숨이 넘어가서 죽을지도 몰라.
아일럿이 한계에 도달하기 직전에 움직임이 뚝 멈췄다. 그러나 아쉽거나 안달이 나지 않았다. 세차게 제 안을 짓쳐대고 있었던 데다 여전히 뿌리까지 넣고 있었으니, 여운이 남아 온몸을 돌아다녔다. 그것만으로도 아일럿은 절정 직전까지 올라가 헐떡거렸다. 다 넣으면 움직이지 않아도 내부의 모든 성감대를 자극하니, 멈춘다고 해서 사라질 쾌감이 아니었다. 아일럿의 허리 아래는 간헐적으로 흔들리다 지쳐서 늘어졌다.
“아…!”
그때, 기다렸다는 양 가스파르가 손을 들었다. 너부러진 몸은 가벼운 손짓에도 놀라서 튀어 올랐다. 말랑거리는 살덩이를 후려친 가스파르는 그 자리를 꽉 쥐었다. 손안에 부드럽게 가득 차는 엉덩이를 한 번 더 때리자, 이번에는 놀라는 대신 신음했다. 고통은커녕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거 좋아했었지.”
“하으으, 응!”
“아니야?”
“으읏… 흑…….”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오므리는 찰나, 가스파르는 제 성기를 뒤로 빼내고는 귀두만 걸치다시피 한 상태에서 아일럿의 다리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정한 이후 미처 다물리지 못한 구멍에서 정액이 샜다.
“제대로 삼키지도 못해?”
“흐으윽!”
손바닥으로 여성기를 작은 소리가 나게 두드렸다. 생각보다 세게 친 것 같은데, 아파하지도 않고 교성을 흘린다. 가스파르의 눈이 가늘어졌다. 둥글게 말린 입술 사이로 더운 숨이 흩어졌다.
“왜 좋아해?”
물으면서 추삽질을 했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지라, 질벽이 맞물리면서 정액을 새고 있었다. 움츠러드는 작은 여성기를 방금과 같은 강도로 후려쳤다. 아일럿은 이번에도 여지없는 교성을 쏟아냈다. 달착지근한 소리였다.
“좋아하게… 만들었잖아!”
“내가?”
“네가 그렇게 만들면서. 흐, 왜, 왜 좋아하느냐고, 묻고. 자꾸. 으응, 앗…!”
새빨간 눈으로 울먹이다시피 하며 가스파르에게 항의 아닌 항의를 했다. 그러자 몸속을 재차 두드리는 페니스가 내부의 모든 쾌락점을 짓누르고, 다져댈 기세였다. 한계가 금세 찾아왔다. 절벽에 매달린 양 절박하게 가스파르를 붙잡았다. 다물리지 않는 입에서 신음과 함께 온갖 소리가 다 튀어나갔다. 못 하겠어, 살려줘, 살살, 아일럿은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랐다. 쾌감이 혀를 꼬이게 만들고 전신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으으, 잘못했-”
“…응?”
다른 말에는 대답해 주지 않던 가스파르는 그 말만은 정정해 주었다.
“네가 뭘 잘못해. 지금 얼마나 잘하고 있는데.”
“힛… 아, 아흑, 아, 아, 응…!”
“내 것도 잘 받아먹고. 야한 소리도 잘 내고. 양쪽으로 질질 싸고 있는데.”
허리를 비틀어 피하려는 일이 다 부질없었다. 꽉 채워진 내벽이 오로지 쾌감만을 호소했다. 날카롭게 숨을 토해낸 아일럿은 쉰 목소리로 앓았다. 눈동자가 반쯤 넘어가, 정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 읏, 흐으으으, 으흡, 조, 좋아, 아아, 흑!”
손으로 아일럿의 가슴을 감싸 쥐다가 엄지로 유두를 밀어 올렸다. 동시에 애널에 들어차 있던 것이, 윗부분을 찔렀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기가 자극당하면서, 묽은 액이 픽 튀어 올랐다. 많지는 않았으나 가스파르가 찌를 때마다 조금씩 튀는 액체는 귀두 끝에서도 마찬가지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등을 세게 긁어댔다.
“흐으, 아아, 앗, 히으으… 흐, 으웁…!”
손톱이 짧게 깎아둔지라 어떤 흔적도 남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가스파르를 한층 음험하게 만들었다. 저와 만나는 날을 위해서 이런 곳까지 세심하게 준비를 한 걸까. 머릿속에 전류가 튀었다.
“아… 아읍, 흑, 으으읏, 하, 하으, 흡, 응… 흐우…….”
허리가 크게 움직였다.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잇따르고 이내 멈춘다. 잔뜩 힘이 들어간 가스파르의 등 근육이 뚜렷한 선을 만들어냈다. 그 등을 팔로 감싸고 손으로 잡고 있던 아일럿은 안으로 울컥 쏟아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동안 눈앞이 아득해졌다. 가스파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달궈진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일럿의 취기가 제게 옮겨지기라도 했는지 몸이 반쯤 떠오르다가 추락하고, 다시 높은 곳을 향해 솟구쳤다. 그런 와중에 아일럿의 이름을 얼마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제게 안겨서 응, 응, 나지막한 소리로 답하는 아일럿의 음성만이 가스파르를 현실로 이끌었다.
오르가슴이 주는 고취의 순간은 두 사람 모두에게 여느 때보다 지독했다. 이번에는 가스파르도 다소 길게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여운이 짙게 남아서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한테 키스해줘.”
이 순간을 한껏 즐기고 싶어서 연결된 부위를 움직이는 대신 살을 맞대고, 저에게 입을 맞춰주는 아일럿의 입술을 머금었다. 키스는 여전히 서툴기만 한데 아일럿은 제 말을 들어주려 바삐 움직였다. 가스파르는 그에 대한 보답처럼 뺨, 귀, 목, 입술로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을 순서 없이 오갔다. 넘치는 사랑스러움을 단순하지만 확실하게 표현하는 행동이었다.
“…….”
붉은 눈동자는 꿈을 꾸는 것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그리고 얕게 신음하다 가스파르에게 시선을 두었다. 뭔가 하고픈 말이 있는 눈치였다.
“할 말 있으면 지금 말해야 할걸.”
저 눈알은 저렇게 예쁜데, 핥아 줄 수도 없고 어쩌나. 고민하면서도 가스파르는 아일럿에게 나름대로 차분하게 물었다. 그러고는 눈동자를 핥지 못하는 대신 눈꺼풀 위에 입술을 눌렀다. 언뜻 스며드는 눈물의 맛마저 자극적이었다.
“있지… 가스파르.”
“응.”
“내가 복상사로 죽으면, 부모님한테는.”
“무슨 말도 안 되게 귀여운 소릴 하는 거야.”
“다른 것 때문에 죽었다고 해줘야 해…….”
이렇게 귀여워서 어쩌면 좋지. 살짝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너무 좋아. 이렇게 좋으면 안 되는데… 나, 나 아까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
아일럿이 마신 술은 생각이 뇌를 거치는 길을 막고, 입으로 곧장 나오게 해 버렸다. 심각한 얼굴로 자꾸만 자기가 복상사로 죽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조금 고민하던 가스파르가 너는 대체로 배 아래에 있으니, 배 위에서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정정을 해 주었다. 그 말에 아일럿은 바로 납득해 버렸다. 그마저도 귀여워서 가스파르는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어?”
그건 가스파르도 모르는 스스로의 버릇이었다. 극도로 흥분해서, 저걸 어떻게 먹어치울까 하고 생각할 때 가스파르는 아랫입술에 앞니를 세웠다.
“잠깐… 만. 우리, 잠깐만.”
그걸 아는 건 아일럿뿐이어서, 이성을 감싸고 있던 취기가 한순간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도망쳐야 한다고 본능이 말했다.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엇보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가스파르도 아일럿이 도망치려 하기 직전의 반응을 다 꿰고 있다는 거였다. 큼직한 두 손은 꿈틀대는 허리를 단숨에 붙잡았다. 사로잡힌 아일럿은 놀라기 이전에, 앞으로 있을 일을 예감하고 반응하는 몸이 아주 조금 원망스러웠다. 발기하고 만 아래를 가스파르에게 들키지 않으려 다리를 오므렸으나 소용은 없었다.
“어딜. 아일럿 넌 도망 못 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입술이 아일럿의 이마 위로 내려앉았다.
곧 개학이었다.
방학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말았지만, 그래도 학교에서도 내내 붙어 있을 수 있으니까. 새해에는 아예 방을 바꿔서, 바로 옆방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개학 당일에나 말해 줄 생각이었다.
“내가 계속 붙들고 있을 거니까.”
그걸 알게 되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상기된 아일럿의 얼굴을 본, 가스파르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일럿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새겨둘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