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아일럿을 괴롭히는 다양한 방법 ② (14/17)

2. 아일럿을 괴롭히는 다양한 방법 ②

‘자, 가만히.’

불안해하는 몸을 쓰다듬고서 매듭을 단단하게 했다. 두 팔목이 머리 위로 묶여 있었다. 혹시나 밧줄이 심하게 파고들어 상처가 날까, 손수건까지 덧대어 놓았다. 그다음에는 다리. 한쪽씩 넓게 벌려진 채로 허공에 매달리게 되자 가스파르가 원하는 모습이 되었다. 이렇게 묶어 본 건 처음이던가.

‘가스파르…….’ 

분명 이건 꿈이었다. 자각몽임을 인지한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부름에 답하는 대신 장골에서 치골로 넘어가는 길을 어루만졌다. 제 몸보다 더 만져왔던 몸인지라 촉감마저 생생하다.

‘아…!’

거기에 소리도. 표정도.

자기 전에도 아일럿과 몸을 섞었는데, 꿈을 꿔도 이런 꿈을 꾸다니. 이런 꿈이라면 하루의 반을 소비해도 기꺼이 바치리라.

‘나, 나 무서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치만.’

꿈이니까, 살짝 더 심하게 굴어도 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나름대로, 본인의 기준에서는 잠잠해져 있던 가학심이 슬그머니 머리를 들고 가스파르를 유혹했다.

어차피 꿈이잖아.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지. 마침 근처에는 제가 원하고 자주 사용하는 도구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가스파르는 저곳에서 적당한 것을 고르거나, 제 손으로 직접 눈앞의 아일럿을-

‘살살… 해줬으면 좋겠어.’

음, 안 되겠군. 가스파르는 빠르게 계획을 철회했다. 꿈속의 아일럿도 아일럿이었다. 그렇지만 묶어둔 팔다리는 그대로 두고서 가스파르는 몸을 겹쳤다. 아쉽게도 처음부터 다 벗겨져 있었던지라 옷을 벗기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였으니, 다른 즐거움으로 대신하려 했다. 거치적거리는 안경을 벗기고서 오뚝한 코끝에 입을 맞췄다.

‘노력할게.’

그저 노력만 할지도 모르는데 아일럿은 제 말을 듣고서 안도하는 기색을 띄었다가, 맨살에 손이 닿으니 바로 긴장했다. 둥글게 말아 쥔 손이 발기한 페니스 끝에 닿았다. 감싸지 않고 새끼손가락으로만 살짝살짝 건드린다.

‘자.’

‘……?’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다. 설명을 해주는 대신 귀두만 잠깐 감쌌다가 손을 위로 올리고,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러다 더는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아일럿은 그제야 제가 원하는 일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허리를 들었다.

‘흣… 아읍.’

스스로 허리를 쳐들어야 가스파르의 손안으로 페니스가 들어간다. 원하는 자극을 얻으려면 볼썽사납게 허리를 흔들어야 했다. 게다가 미세하게나마 손이 위로 올라가거나 위치가 바뀌는지라 빠르게 움직여도 소용이 없었다.

‘아…!’

거의 들어갈 뻔했는데, 닿기 직전에 손을 위로 올려 버린 가스파르가 새빨개진 아일럿의 얼굴을 보고서 제 손바닥을 펼쳐 페니스를 쓰다듬어 주었다. 별로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래로 운다. 기특하고 귀엽다. 끈끈하게 묻어나온 실을 나온 곳으로 도로 밀어 넣듯 손을 놀리고, 귀두 아래로 오목하게 들어간 밑 부분을 간질였다.

‘으응, 흐…… 아, 읏.’

‘어떻게 좋은지 말해 봐. 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가 해 줄 이유가 없잖아.’

손길을 거두는 척만 해도 동요하는구나. 꿈속의 아일럿은 망설임이 없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서 이성을 다 흩트리고 넋을 놓게 만들어야 할 말을 쉬이 입 밖으로 꺼냈다.

‘좋아, 조… 아, 아, 으읏……. 네가, 내, 내 걸. 만져 주니까. 거기 만져주는 거 좋아해. 가스파르, 가스파르, 좋아아아…….’

쏟아지는 선정적인 말들은 가스파르의 숨을 멎게 하기 충분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요구한 것을 아일럿이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끓어오르는 욕구는 기이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여기로 해 볼까.’

‘응… 읏……. 할 수 있어.’

손가락을 미끌미끌하게 적신 액을 윤활제 삼아 애널을 건드렸다. 두 개를 모아서 넣어 주기는 해도 그닥 길지 않으니 보지 않고 넣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일럿이 신음했다. 넣고 싶은데 손가락이 회음부 위로 미끄러지거나 자꾸만 밑으로 가 버리니까.

‘흑. 아.’

손끝에 닿은 회음부가 팽팽하다. 이번에도 실패. 위로 떠오른 허리를 약간 내려서 재차 시도하는데, 한 마디도 삼키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할 수 있다더니?’

기승위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쓰는데도 잘 되지 않는다. 발개진 얼굴이 울상에 가까워지자 가스파르는 제가 더 손가락을 넣고 싶었으면서, 선심을 쓰는 척했다. 녹녹한 입구를 지나서 깊은 곳 근처까지 다가가곤 멈춘다. 막상 넣어 주고 나니 아일럿은 알아서 손가락을 넣었다 빼거나, 꽉 조여서 제가 좋아하는 부분에 닿게 했다.

‘하으으… 아, 하아, 흑-’

‘잘 무네. 원래 넣어주던 거랑은 비교도 안 되게 작은데.’

‘네 거니까, 좋아……. 아…….’

‘너 좋아하는 곳까지 들어가려면 좀 더 들어가야 하는데도?’

‘으, 응, 다, 다아.’

기특한 말만 하면서 달싹거리는 입술이 예쁘다. 저 입으로 제 것을 구음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찰나, 눈앞의 세상이 변해 버렸다.

‘아니, 잠깐만! 이렇게 끝나 버리면 어쩌자고?!’

극이 막을 내린 듯 잠잠하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꿈속의 아일럿을 걱정하는 이타심이 버럭 소리를 높이게 하였으나 꿈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제 꿈속에서 일어난 일은 어디에 항의해야 하는가? 잠에서 온전히 깨어나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찰나 꿈속 세상에 빛이 돌아왔다.

침대에 묶여 있던 아일럿은 이번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가스파르의 다리 사이에 엎드려 있었다.

‘세상에.’

불만이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펼쳐진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제 꿈속이기 때문에 취향이 과도하게 퍼부어진 결과일까. 아일럿의 손목은 리본 모양의 매듭에 묶여 있었고, 무릎을 꿇고 있는데 나신이었다. 게다가 목줄. 입을 동그랗게 벌리게 만든 볼 개그… 일반적인 형태의 작은 공 같은 걸 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앙이 크게 뚫려 있는 은색의 링이었다. 제 성기를 넣기 딱 좋은 크기인 것을 확인하니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아일럿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동물의 귀였다. 단이 수술을 한 도베르만의 것과 얼추 비슷한 뾰족한 귀.

‘…이거 좋은데.’

아일럿에게 이런 모양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제 생각이 틀렸다. 하긴, 뭔들 안 어울리겠어.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은 가스파르는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자각몽이라는 게 이렇게 간편할 줄이야.

‘손.’

‘우… 으…….’

앞으로 손을 내밀면서 명령을 했더니 머뭇거리면서도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펴지 않고 꼭 오므리고 있는 형태가 앙증맞다. 내친김에 턱 아래를 간질여 주자 입을 억지로 벌리고서 힘겨워하면서도, 유순하고 가여운 얼굴을 했다.

‘착하네.’

가학심이 새로이 돋아나 아일럿을 향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살살 하는 게 아니지 않나? 다른 손에는 보란 듯 끝부분이 가죽으로 마감된 크롭까지 하나 들려 있었다. 이전에 휘두르기도 했는지 아일럿의 등도 마냥 매끈하지 않고, 연한 분홍색 줄이 여러 개 겹쳐져 있는 것을 보니 절로 침이 넘어갔다.

‘으음.’

사용하려다 멈칫했다. 다시 생각해 봐도, 크롭을 들고 있는데 살살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양심을 어디 먼 곳에 다 팔아먹지 않는 한.

‘이를 어쩔까.’

휘두르지는 않고 가죽 부분으로 아일럿의 피부 위를 길게 훑어보았다. 맞는다고 생각하였는지 살짝 닿는 것만으로 파르르 떠는 게 눈으로도 보일 정도라 크롭을 놓으려 했다. 바닥에 생겨나는 작은 점들을 보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무서운 거면 왜 아래는 적시는 거야?’

꿈과 현실이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로 봐도 좋을 만치 똑 닮아있다는 것을 오히려 가스파르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특유의 자기 합리화만은 기민하게 작동했다.

살살해달라고 했던 건 침대 위에 있던 아일럿이지, 여기에 있는 아일럿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양심이 없지. 만족스럽게 크롭을 위로 들었다가, 적당한 높이에서 내리쳤다.

‘흐, 우읏!’

내내 어디선가 약하게 울려오던 소리가 한순간 커졌다. 들고 있던 크롭을 쳐다본 가스파르가 뒤늦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어디서 방울 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여기 방울을 매달고 있었구나.’

방울이 달린 집게에 잡힌 유두가 평소보다 크고 토실토실해 보였다.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확실히 그랬다. 손끝이 기억하는 것보다 큰 유두를 툭툭 칠 때마다 방울이 잘랑잘랑 좋은 소리를 냈다. 그중에 하나는 가스파르에게 잡아당겨져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흑. 읍.’

딸꾹질하는 소리와 비슷하게 신음을 내고, 입을 벌려서 침도 마음 내키는 대로 삼킬 수 없는 아일럿의 목울대가 들썩였다.

‘아일럿, 가까이로 와.’

‘…….’

대답을 못 하니까 고개를 끄덕끄덕. 손을 사용할 수 없어서 가스파르가 자신의 페니스를 꺼내어 주니, 아일럿은 시키지 않아도 그다음에 할 일을 알았다. 통통한 유두를 귀두에 대고서, 몸을 굴려서 애무한다. 훨씬 커져 있으니 어쩔 때는 탁, 탁, 튕겨지는데 금세 선액이 묻어 반질반질해졌다. 안 그래도 빨아주고 싶은 색에 윤기가 더해졌으니 아주 먹음직스럽지만.

‘잘했어. 이젠 입으로 해.’

꿈이 또 바뀌어 버릴까 봐 욕심을 접어두기로 했다. 하는 것보다 해 주는 게 좋아서 잘 시키지 않았던 것을 시키고 싶었다. 아일럿은 볼 개그를 착용한 입을 발기한 물건에 가져다 대고 머리를 내렸다. 입술 사이로 제 페니스를 느릿느릿 삼키는 광경에, 가스파르는 메마른 입안을 축였다. 둥글게 만 축축한 혀가 살점을 감싸고 볼 안쪽이 닿는 듯도 하다. 삼킬 수 없는 타액이 페니스를 흠뻑 적시고 난 이후에는 아일럿이 좀 더 과감하게 굴었다. 그래봤자 목에는 닿을까 말까 할 정도다.

‘다른 건 다 잘 흉내 내면서, 왜 입으로 하는 건 안 느는 거야?’

‘우으읏…….’

혼내는 건 아닌데 아일럿이 눈을 굴렸다. 기대에 부응해 주지 않을 수가 없어서 크롭을 들었다.

‘흐웁…! 흐!’

‘더 밀어 넣어. 이도 못 세우니까 더 편하잖아. 뿌리 끝까지 넣어야지.’

두 번째 매에 연달아 세 번째까지. 한 대를 더 맞을 줄 몰랐던 아일럿이 얼굴을 붉히고는 그의 말대로 페니스를 받아들인다. 아일럿이 더 하지 못하고 끙끙 앓을 때마다 크롭은 거듭 위에서 허공을 가르고 살에 부딪쳤다. 가뜩이나 좁은 목구멍이 더 좁아지면서 정액을 유도했다.

‘그만.’

‘하… 아읍.’

이대로 목구멍까지 밀어 넣고서 사정을 할까 했다가 페니스를 꺼내고서, 아일럿의 입술 앞에서 제 것을 잡고 쓸어내렸다.

‘……그대로 있어. 삼키지 마.’

몇 번 만지지 않았는데도 새어 나온 정액이 아일럿의 입안에 고이거나 입술과 뺨에 묻었다. 가스파르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면서 볼 개그를 풀어 주었다.

‘후, 하아……. 하, 으…….’

‘아일럿, 내가 뭘 시킬 것 같아?’

그가 시킨 대로 동그랗게 입을 벌린 아일럿은 모르겠다는 의미로 도리질을 쳤다. 그러다 가스파르가 정액이 묻은 손을 내밀고 나서야, 혀 위에 고여 있던 정액을 애써 삼키고 혀를 내밀었다.

‘흐. 으읏.’

가장 긴 손가락에서부터 혀끝이 올라와서 손바닥에 묻은 것을 할짝거린다. 바쁘게 핥아주고 나서는 다른 손가락으로 향하고,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놓치지 않았다. 사이의 여린 살이 핥아졌을 때는 가볍게 소름이 돋아났다.

‘그래, 잘하네.’

중지에서 검지, 엄지에 다다라서는 두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제 눈치를 본다. 올려 뜬 붉은 눈이 위에서 아래로 번갈아 움직인다. 입술을 오므리고서 매달리다 진즉에 깨끗해진 손을 다시 핥았다. 그리고 나서야 칭찬해 달라는 시선을 하고, 조금 물러나서 자리에 앉는데 가스파르는 참지 못하고 아일럿을 끌어안았다.

사랑스러워. 너무 사랑스러워서 꽉 껴안아 터뜨리고 싶어.

꿈에서 깨어나면 이 분야의 장인을 찾아내서, 진짜 도베르만의 귀와 똑같은 귀가 달린 머리띠를 만들 것이다. 가스파르는 거듭 다짐했다. 그걸 아일럿에게 꼭 씌우고야 말리라. 거기에 꼬리나 동그란 손발도.

그리고.

그리고 나서는-

*

“…윽.”

달콤한 꿈이 끝나자 괴로움이 밀려왔다. 위가 아프다 못해 얇은 실로 칭칭 감아 잡아당기는 고통이다. 가스파르는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숙취에 가슴을 붙잡았다. 어젯밤 있었던 일이 기억날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물을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면서 테이블로 다가갔다. 테이블 위에 물병과 물 컵이 각각 한 개씩, 그리고 바닥에 엎어진 하나. 그것을 보니 자연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가스파르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벽에 붙어서 등을 돌리고 자고 있는 아일럿의 하얗고 깨끗한 등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마냥 하얗지는 않았다. 붉은 얼룩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으니 그 이유는 제가 하염없이 입술로 아일럿을 괴롭힌 탓이었다.

“아, 이런.”

너무 과했어. 잊혀 있던 기억들이 하나씩 돌아오기 시작하니,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싶었다. 지쳐서 늘어진 아일럿을 온갖 체위로 다 괴롭혔다. 들어서, 뒤에서, 앞에서, 옆에서, 손도 까딱 못하는 걸 다리만 벌려서 박아댈 때는 눈이 다 풀린 아일럿이 울다시피 신음했었다.

“…….”

자는 거겠지. 고른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너무 심했다는 생각에 제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린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잠을 방해할까, 한숨조차 삼키고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 내가 너무 심했어.

일어난 아일럿에게 꼭 해야 할 말을 속으로 되뇌고서 욕실로 향했다. 일단 씻고 정신부터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았던 가스파르는 가슴 위를 두드리면서 머리와 몸에 물을 끼얹었다.

지난밤 그렇게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아일럿은 씻겨 놓았는데, 정작 본인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옆에 누워서 기절해 버렸다. 술 냄새가 나는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잤을 아일럿을 생각하니 더 미안했다.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물기를 닦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아일럿은 아직 자고 있는 걸까. 들어갈 때와 모양이 달라진 이부자리를 보고서 고개를 돌리는데, 방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어라.”

가스파르의 방문 옆에는 편지를 보낼 때 사용하는 작은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아침이 되면 집사가 들어와서 통에 든 편지를 수거해 사람을 시켜 수신인에게 보내곤 했다.

거기에 못 보던 편지가 하나 들어 있었다. 분명 욕실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없던 거였다. 가스파르가 의문을 품으면서도 편지를 들어 보니, 봉랍도 되어 있지 않았다. 적혀 있는 주소는… 아일럿의 본가. 수신인은 오르덴 바슬레인.

“…….”

자고 있는. 아니, 자는 척하는 아일럿을 돌아본 가스파르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쑥스러운데 웃음이 나는 게 먼저였다. 헛기침을 하고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조심 편지를 꺼냈다. 제가 욕실에서 나오기 전에 서둘러 넣은 모양새였다.

[아버지께]

[결혼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지금은 다른 일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졸업 이후에 어떻게 할지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요. 예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선박 운영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졸업 이후의 일에 대해서 아버지와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실은…… 소개를 받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요. 자세한 건 내일 집에 가서 말씀드릴게요.]

사실상 저에게 보낸 편지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에게 가기 전에, 그를 대신해 편지를 봉랍해 주고서 통 안에 부러 소리 나게 편지를 떨어뜨렸다.

“아일럿? 계속 자는 척할 거니?”

앞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까 귀가 빨갛고 만져보니 뜨끈뜨끈하다. 아마 뺨이나 목도 달아올라 있겠지. 가스파르가 가까이 다가갈 때도 계속 자는 척을 하던 아일럿은, 귀를 왕왕 깨물리고 나서야 어깨를 움츠리고서 고개를 돌렸다.

“후, 으으.”

“오늘 수업 있어?”

“…이, 있어.”

순간 속아 넘어갈 뻔한 가스파르가 달력을 확인했다.

“오늘 토요일인데.”

“…….”

“금방 드러날 거짓말이나 하고.”

거짓말을 안 하는 아일럿이 얼마나 급박했으면 이럴까도 싶었다. 가스파르는 거짓말의 대가로 말랑한 볼을 감쌌다.

“또, 하려고?”

“글쎄, 어쩔까.”

깨물었던 귀에 입을 맞추고, 관자놀이나 뺨에도 입을 맞추고. 그러다 입술 근처까지 와서 기어코 입술까지 겹친 가스파르는 부드러운 뺨을 쓰다듬었다. 평소에는 차고 말랑한 뺨이 그새 열을 머금은 것이 좋다. 입을 맞추는 내내 얼굴을 쓰다듬던 가스파르는 자연스럽게 아일럿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내일… 수업 끝나면 네 방으로 갈게. 할 말도 있고… 사감이 새벽에 인원 확인하는 날이라서 아침까지는 못 있을 거야.’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우물쭈물하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입술을 떼고, 부끄러움에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아일럿의 시선을 집요하게 쫓았다. 가스파르는 부러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말을 걸었다.

“아일럿, 나한테 할 말 있다고 했었지?”

“하… 할 말?”

“그거 뭐였어?”

“다 잊어버렸어. 네가, 밤에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아침까지 기억을 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가스파르는 그 일에 책임을 지기로 했다.

“그럼 기억날 때까지 해야겠다.”

몸에 두르고 있던 이불 위에 손을 대기만 했을 뿐인데 아일럿이 화들짝 놀랐다. 간밤의 여운이 아직도 몸에 남아, 안 그래도 예민한 몸을 간질이고 있던 차에 손을 대니까……. 놀란 토끼눈이 된 아일럿이 눈을 끔뻑였다. 가스파르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웃으며 넘기기에는 간밤에 저지른 일이 너무 화려했다.

“농담이야. 내가 너무 심하게 굴어서…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몸은 괜찮은데……. 너무 붙지 마.”

“응?”

아침이었다. 자고 일어난 직후라 그런지 발기한 페니스를 숨기기 위해 아일럿은 다리를 오므리고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알몸을 가리려 하는 행동인데, 간밤에 가슴을 숨기는 행위에 가스파르가 과도하게 흥분했던 것을 떠올리니 이게 옳은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해서 뒤늦게 눈치를 보는데… 아, 역시나 위험해져 있었다.

“안 되겠다. 기억날 때까지 하자.”

술에 취해 있던 와중에 아일럿 본인은 원치 않던 뒤처리를 해준 것도 부족해 몸을 씻겨주기까지 한 가스파르였다. 그 뒤에 옷을 입히지 않고 맨몸을 끌어당겨 안은 채 자 버리긴 했지만, 그 덕에 보송보송한 아일럿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그 몸에 제가 만든 자국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더 좋다. 이불을 잡고서 밑으로 내렸다. 아일럿이 숨기려 하는 부위에는 흔적이 더 많이 남아 있어서, 도리어 나는 네 것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여기부터 한 번 빼줄게.”

반쯤 서 있던 성기는 가스파르의 시선과 닿으며 한층 상기된 색을 띠었다. 그러고 보니 학교 수업이 바빠서 아침부터 하는 건 오랜만이지 않던가? 아랫입술을 천천히 핥고서 아일럿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입에 다 넣고서 빨아주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끄트머리만 괴롭혀 주면서 아일럿의 가늘어진 교성을 들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날, 아일럿과 가스파르가 내내 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동안 학교에서는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금요일에 기숙사를 비운 학생들의 명단을 들고 있던 기숙사 사감이, 교내에 있는 호수에 그만 빠지고 만 것이다. 덕분에 잉크는 다 번져 버리고 월요일에 벌점이 예상되어 있던 학생들은 환호했다.

사감은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서 자신을 물에 빠뜨렸다고 주장했으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다만, 가스파르만이 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보수에 인색하지 않은 가스파르가 문밖으로 손만 내밀어 금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없는 집사는 왜 주인의 팔에 옷이 걸쳐져 있지 않은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신속히 보수를 받고 문을 닫은 뒤 저만치로 물러설 뿐이었다.

“프, 후… 아.”

“잘 참았어.”

벽을 짚고 있던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한쪽 손을 물고서 신음을 참아내고 있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혹시나 문 너머로 소리가 들릴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간신히 참아내긴 했는데 머리가 얼얼했다. 가스파르가 너무 깊었다. 내벽 속을 찧어대던 것이 멈추었는데도, 그득하게 차 있는 건 여전하니 쾌감이 멎지 않았다.

“아, 아읏…….”

반도 안 되게 빠져나갔을까. 천천히 내벽을 긁어대는 감각이 치켜세운 발끝을 위태로이 흔들게 만들었다. 몸속에서 생겨난 길이 좁아지며 페니스를 조여대다, 곧이어 짓치고 올라오자 모양에 맞게 벌어졌다. 

“으하아… 흐으윽…… 흐…!”

“아일럿, 하려고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 안 나니?”

기억난다고 하면 멈출 것도 아니면서.

물어보는 목소리에 솔직하게 답해 주려다 그만두었다.

“몰라. 기억 안 나.”

꽉 잠긴 목소리로 답하고 나니 얄미운 입술이 뒤에서 다가온다. 아일럿은 그냥 눈을 감아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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