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야외, 공개수치
“다음에는 언제 내보내 줄지 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스파르가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웃으면서,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 말을 아일럿은 거짓말로도 싫었다고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생각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매일, 매시간이 그랬다.
“아일럿 님의 하인이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거기 두고 나가봐.”
30분 전. 그리고 아일럿이 제 발로 가스파르의 저택에 머물게 된 지 사흘 차 되던 날. 아일럿의 어머니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일이 잘 해결되었고, 아버지의 일도 정상적으로 굴러가게 되었으니 스칸다만큼이나 시원한 미시아트로 여행을 가자는 내용의 편지였다.
[어머ㄴ.]
[ㅇㅡ_]
[어머니ㅇㅡㅡㅡ.]
“흐으윽… 아, 아…….”
아일럿은 거기에 답장을 보내야 했다. 해서 힘주어 글씨를 쓰다가도 펜으로 종이 위를 쭉 긁어내려서 망치고, 그게 아니라면 잉크를 흘려서 한 장을 통째로 못 쓰게 되었다. 벌써 버려진 종이가 대여섯 장에 달했다. 가장 위에 써야 할 한 마디를 쓰지 못해서.
“읏, 아… 으읍.”
[어머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간신히 첫 줄을 쓴 아일럿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쾌감이 머리를 몽롱하게 만드는 탓인지도 모른다.
“흐으…….”
잉크병에 펜촉을 넣을 때 정도는 가스파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빠져나갔던 성기가 멈추지 않고 퍽, 치고 들어왔다. 귀두가 입구부터 내벽을 긁으며 들어오자 잘 썼던 글씨를 망칠 뻔했다. 천만다행으로 팔을 들고 있었기에 편지지는 무사했으나, 손이 벌벌 떨려서 글을 더 쓸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가족 여행은]
편지지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눈물을 짜내는 것처럼 간신히 써낸 글씨를 보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가족 여행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실망하실 터. 그러니 이유를 잘 지어내 둘러대야 할 텐데, 마땅한 이유도 준비되어 있지 않거니와 변명을 생각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생각을 하려 해도 가스파르가 계속-
“가스파르, 흐. 흐악!”
“응, 아일럿.”
“그만, 그, 으읏… 아, 안 돼. 흐, 앗… 아!”
계속 허리를 잡고 박아대고 있었다. 이를 악물어 보던 아일럿은 이내 고개를 마구 저어 버렸다. 유두에 매달려 있는, 자석으로 만든 액세서리가 테이블 위에서 비벼지고 있었다. 가스파르가 허릿짓을 할수록, 그것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유두를 괴롭혔다.
“이… 이대로는, 히, 윽, 모못… 못 써. 으읍.”
“벌써 한 줄 썼잖아.”
“아윽… 읏…!”
“마저 써. 다 쓸 수 있을 거야.”
다 쓰기 전에는 끝내줄 생각이 없는 가스파르는 느긋하게 허리를 잡고 움직였다. 나름의 배려로 잉크병에 펜촉을 담글 때는 가만히 있어 주었지만, 그 순간에도 아일럿의 손끝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이 뒤에 닥쳐올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흑, 으으으읏… 아, 으윽-”
기대에 부응해 주지 않을 수가 없지. 사납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니, 아일럿은 결국 일곱 번째 종이마저 버리고 말았다. 미리 얼굴 앞에 거울을 놓아두었기에, 가스파르는 편지를 망치게 된 아일럿이 얼마나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는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라서 입을 벌리고, 곧장 당혹감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은 퍽 귀여웠다.
“자, 다음.”
“으, 흐으…….”
근처에 놓여 있던 편지지를 다시 앞에 놓아주자, 아일럿은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펜을 쥐었다. 아일럿은 애가 타서 괴로웠다. 가스파르가 평소처럼 해 주지 않고 자꾸만 멈춰 버리니까. 편지를 다 써야만 원하는 대로 해 줄 것이라는 사실이 손을 움직이게 만들었지만, 조급함도 함께였다.
“아일럿?”
“쓸… 쓸게. 쓸 거야.”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애써 움직이면서 아일럿은 편지에 쓸 변명을 생각하고 손을 움직였다.
“아, 으읏…….”
이게 몇 장째더라. 흐린 시선을 편지지에 고정하고 한 글자를 적었다. 등 뒤에 서 있는 가스파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덕에 글을 쓰는 것은 편했지만,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걸까. 엉망진창인 머릿속에 편지 내용이 아닌 다른 것이 섞여들었다.
가스파르가 움직여줬으면 좋겠어. 하고 싶어. 탁자 위에 있는 물건들이 다 쏟아질 정도로 마구 박아 주었으면.
“으하, 윽.”
다디단 상상에 구멍이 바싹 조여들었다. 가스파르는 나른한 숨을 흘리다 허벅지를 소리 나게 두드렸다.
“아아!”
“누가 이렇게 조여대라고 했어.”
바로 벌을 줄까, 고민하다 허벅지를 때리는 것에서 멈췄다. 대신 열이 오른 허벅지를 주물거리고는, 아일럿이 편지를 쓰기 위해 손을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쓰면서 이따금 떨리는 숨을 내뱉는 입술이 예뻤다.
“하… 흐으, 읏… 으-”
한 줄, 이어서 두 줄까지 쓰는 것을 보고 별안간 몸을 뒤로 빼냈다가 깊게 짓치고 들어갔다. 아일럿은 용케 참았지만 이어지는 것은 참지 못했다.
“흐윽, 아, 아아아…. 아, 안 돼. 잠깐, 잠까, 마, 안!”
그래도 이번에는 편지를 지켜냈다. 펜을 급히 내려놓고서 탁자의 가장자리를 잡고 버티자, 가스파르는 몇 번 거칠게 움직이다 아쉽다는 듯 멈춰 섰다. 집사가 문을 두드렸다.
“거기서 말해. 무슨 일이야?”
제법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가스파르가 집사와 대화하는 틈을 타서 어느 때보다 손을 빠르게 움직인 아일럿은, 내용도 글씨체도 생각하지 않고 적어버린 편지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내용이 머리에 들어올 리 없었지만, 어찌 됐든 말이 되는 내용인 것 같기는 했다.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가족 여행은 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스칸다에서 친해지게 된 학교 동기와 같이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방학 내내 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일이에요.]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다시 편지 드릴게요.]
때마침 가스파르도 집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다, 다… 썼어.”
“어디 볼까.”
혹시나 글씨가 번질까, 편지지의 끄트머리를 잡고 가스파르에게 넘겨주었다. 얼마 안 되는 내용을 단숨에 읽어 내린 가스파르는, 편지를 탁자 위로 날려 버리고는 아일럿의 허리를 틀어쥐었다.
“하아…….”
기다리는 쾌감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달아오른 몸이 탁자 위로 무너져 내렸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이 아프지 않게 머리채를 틀어쥐고는, 고개를 뒤로 젖히게 만들었다.
“글씨가 좀 이상한데, 이대로 괜찮겠어?”
“응, 으응. 괜찮… 하, 으.”
“뭐, 네가 괜찮다면야.”
“으, 우으읏…!”
눈이 풀려 있었다. 대답은 잘하는데 정말 괜찮은 건지, 땀에 젖은 등줄기를 더듬어 보다가 아일럿이 몸을 돌리게 만들었다. 매달린 액세서리 때문에 평소보다 새빨갛게 변한 유두가 입에 넣고 녹여 주고 싶을 만큼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었다.
“편지도 다 썼으니 어제 배운 건 잘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해 볼까.”
“흐으… 읍. 으, 응.”
“다 기억하지?”
의자에 앉은 가스파르를 향해 비척비척 걸어오면서 아일럿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나 오래, 철저하게 배웠는데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어제는 다른 날보다 유독 길고 집요하게 가르침을 받았다. 가스파르는 뛰어난 교사였고, 그를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기승위, 손과 입으로 하는 법, 참고 견디는 것. 어제는 그나마 쉬운 편에 속하는 기승위를 배웠으나 완전히 녹초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은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가스파르의 위에 엎어지자,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지나친 보상이 돌아와 버린 것이 그 이유였다.
“가스파르.”
그리고 오늘은 복습. 다리를 넓게 벌리고서 비부를 드러냈다.
“나… 잘하는지, 봐 줘.”
“응. 전부 봐 줄게.”
복습을 하기 전에 해야 하는 말이었다. 그 짧은 말을 중얼거리는데도 얼굴을 붉힌 아일럿은 의자에 앉아 있는 가스파르의 어깨를 잡았다. 아직 둥글게 벌어져 있던 구멍이 가스파르의 것을 수월하게 받아들이는 듯싶다가, 까치발을 세워서 멈춰 섰다. 위에서 받아들이면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가 버리는 탓이다. 전신에 잔뜩 힘을 준 아일럿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잠깐 숨을 고르고는 발바닥을 조금씩 땅에 붙였다.
“아, 으으읏…….”
하지만 특정 지점을 지나서부터는 다시 발바닥이 땅과 멀어졌다. 가스파르가 박을 때면 어떻게든 견디면 그만이나, 스스로 닿기에는 여전히 두려울 정도의 쾌감이 올라오는 곳이었다. 너무 깊다. 안절부절못하던 아일럿이 티 나지 않게 골반을 들썩이려는 찰나, 가스파르는 슬그머니 올린 손으로 아일럿의 유두에 달려 있던 액세서리를 잡아당겼다. 잘그락, 하는 소리와 동시에 그만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히, 으윽! 우으으으…. 아, 아…!”
“잔꾀 부리지 말라고 했었지.”
“잘못했…. 아흐, 윽, 끄으…….”
“이런 걸 보여주면 안 돼, 아일럿.”
유두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쾌감에 이어, 배가 꽉 차버렸다. 혹여나 가스파르가 허리를 짓쳐 올릴까 봐, 급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은 아일럿은 지독한 쾌감에 몸을 떨고는 느리게나마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사정을 참아서 다행이었다. 참지 못하면 둘 중 하나였다. 달아오른 몸으로 방치를 당하거나, 엉엉 울어 버릴 정도로 몰아붙여 지는 것. 아일럿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전자였다.
“아흐, 으……. 으응-”
넣기만 해도 안쪽의 모든 성감대가 자극됐다. 스스로 움직일 때마다 사정 직전까지 몰아붙여 지면서, 아일럿은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가스파르를 바라보고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 딱 한 번, 버릇처럼 신음을 참았다. 저도 몰랐다가 뒤늦게 눈치챌 정도였는데, 가스파르는 그렇지 않았다. 아일럿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손을 어디론가 뻗더니, 집게 같은 것을 가지고 왔다. 가슴에 달았던 것과 똑같은, 그렇지만 더 작은 크기의 나무집게였다.
“아.”
“어…?”
“입 벌리라구.”
입을? 당연하게도 그 집게를 액세서리가 달려 있었던 유두에 달아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아일럿이 입을 벌리자 집게가 혀에 닿았다. 그러고는 끄트머리를 콱 물었다.
“우… 으읍.”
“참지 마.”
어쩔 수 없이 혀를 빼물게 되니 신음을 참는 것은 물론이고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가스파르는 조금 바보 같아진 아일럿의 얼굴을 만족스레 쳐다보다 엉덩이를 두드렸다. 마저 하라는 신호였다. 입을 열지도, 다물지도 못한 상태로 아일럿은 몸을 들썩거렸다.
“흐으, 아, 아… 아, 윽…!”
말랑말랑한 엉덩이가 가스파르의 손에 찰싹 달라붙어 감겼다. 이윽고 시선을 맞추자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이던 것이 미약하게나마 달라졌다. 나름대로 과감하다면 과감했다. 아일럿은 혀를 아랫입술에 걸치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잠깐 후회했다. 집게를 하고 있으면 저 혀를 빨아줄 수가 없었다.
“하으읏… 아, 하읍, 아-”
성기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보고 있기만 한 듯한 이상한 기분. 그러는 동안에도 선정적인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풀린 눈을 가늘게 뜨기도 하고, 가쁜 숨소리를 내며 움직이다 화들짝 놀라 몸을 굳히기도 했다. 배 속이 오싹해지는가 하면, 적당한 열로 부글거렸다.
“우, 흐…. 으읍…….”
“응, 잘하고 있어.”
만족스러워하는 가스파르의 음성을 듣게 되면, 아일럿은 좀 더 몸을 밀착하고 골반을 찧어댔다. 처음으로 위에 태웠을 적에는, 어설프고 넣었다 빼는 것도 힘겨워했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가스파르를 사정시킬 정도는 되었다. 참지 않는 경우라면.
“아아, 아, 아, 아… 하, 읏.”
손끝으로 더듬어 본 몸이 점차 단단해지는 것을 알아차린 아일럿이 어렴풋 끝을 짐작했다. 바라보는 상대의 뺨도 붉었다. 상기된 시선을 자신에게 흘리는 것을 보면 흥분이 넘실거렸다.
“아일럿.”
그에 반해 가스파르는 극성스러운 갈증이 입안에서 점차 커지고 있음에, 힘겹게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잘 익은 열매처럼 탐스럽게 흔들리는 것을 입으로 머금어야 할 듯싶었다. 혀끝에 달려 있던 집게를 빼고서 혀와 입술을 통째로 물고 나서야 사라진 갈증의 자리에, 진득한 쾌감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사정을 했다. 아일럿은 제 배와 몸속이 동시에 젖는 것을 느끼고는 가스파르의 품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일럿, 나 봐.”
“하아, 흑.”
“많이 능숙해졌구나. 넌 배우는 게 빨라.”
안아 주고 싶으면서도 얼굴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가스파르는 말랑말랑한 볼살을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예뻐하다가 보조개가 있는 부분을 눌렀다. 아일럿이 어설프게나마 웃고는 슬그머니 가스파르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이내 조금 더 가깝게 몸을 붙였다. 지친 몸으로 안기려 하는 것은 퍽 사랑스러운 일이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등을 가만가만 어루만져 주고는 살짝 고쳐 안는데, 문득 다른 날보다 더 화창한 날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날씨가 참 좋은 것 같지 않아?”
창을 등지고 있었기에 아일럿은 바깥 날씨가 어떤지 보지 못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스파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에 눈길을 두었다. 스칸다는 대체로 맑은 날씨에 선선한 바람이 불었지만, 오늘은 특히나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아일럿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기 좋을 것 같은 날씨.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숨을 고르는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가스파르의 입가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
“주인님. 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가스파르의 집사가 그렇게 말했을 때만 해도 아일럿은 갈아입을 옷이라고만 생각했다. 몸을 씻고서 어설프게 가운을 입고 나오니, 가스파르는 집사에게서 받아든 옷을 탁자 위에 놓아두고 수건을 들고 왔다.
“이리와, 아일럿.”
가운이 그의 손에 벗겨졌다. 나신이 된 아일럿이 안절부절못하다가 고개를 숙였다. 커다란 수건이 어깨와 등, 배, 팔을 차례대로 감싸며 아래로 내려갔다.
“잠깐 이대로 있어.”
“…옷도 입혀 주려고?”
“아니,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물기를 전부 닦고 나니 몸이 뽀송뽀송하면서도 점차 건조해졌다. 수건을 걸친 채로 팔을 문지르고 있던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들고 온 것을 보고 멈칫했다. 그가 손에 흘리고 있는 건, 어쩐지 익숙한 병이었고 아일럿의 짐작이 맞았다. 투명한 오일이 손바닥 안에 고였다.
“그거, 혹시 나한테.”
그러고는 아일럿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번들거리는 두 손이 몸에 닿았다.
“으, 으으…….”
쇄골 아래였다. 어느 정도 데워져 있는 오일이 피부 위에 닿아 미끄러지자, 몸을 맡기면서도 발끝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가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가스파르는 손을 살며시 아래로 내렸다. 쇄골 아래에는 가슴, 거기서 약간만 더 아래로 내려가면 나와 있을 유두가, 원래대로 숨어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씻으면서 만졌구나.”
“씨… 씻어야 하니까.”
“정말 그것 때문이야?”
통통하게 튀어나온 곳이 손가락 끝에서 흔들렸다.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진짜인 듯싶지만 가스파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아일럿의 뒤로 걸어가서 갈비뼈 쪽으로 손을 밀어 넣어, 가슴을 가볍게 움켜잡았다. 매일 여러 가지를 달아놓았던 탓일까. 예전보다 더 붉게 부풀어 오른 유두는 손으로 굴리기 좋았다. 한참을 검지로 괴롭혀 주다, 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아프지 않게 잡아당겼다. 아일럿은 차마 그 손을 잡지는 못하고 가스파르의 상의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거, 거기만 자꾸.”
“계속 집혀 있었잖아.”
“으응… 으-”
“손가락은 싫어?”
“싫은 건 아닌데, 읍.”
네 손가락이 차례로 유두 위를 스쳤다. 신음을 참아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벌리긴 했는데, 목 안쪽에서 가느다란 소리가 새었다.
“가스파르, 아, 읏…….”
세게 눌러 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손가락에 스스로 가슴을 문지르기 시작하니, 가스파르는 기다렸다는 양 손끝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가슴 위에 머물던 손이 대뜸 아래로 내려가서 골반, 이어서 엉덩이에 닿는데, 갑자기 허벅지가 간지러워졌다.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허벅지를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을 쓸 틈은 없었다.
“어, 어어…?”
가스파르의 커다란 손이 적당히 살집이 있는 희고 매끄러운 엉덩이를 몇 차례 소리 나게 두드렸다. 힘을 풀어 보라는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가 된 아일럿의 꼬리뼈를 가스파르의 양손 엄지가 훑었다. 손가락을 넣으려고? 방금 씻고 나온 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기대가 부풀었다. 끈적끈적해진 입안을 열었다 닫는 찰나, 차가운 것이 입구를 꾹 눌렀다.
“뭐. 뭐, 너, 넣는…….”
“움직이지 말고.”
그가 말하는 동시에 작은 구슬이 한 알,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하나, 단순히 마개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하얀색 긴 꼬리가 아일럿의 종아리를 건드렸다.
“이 꼬리가 너한테 어울릴 것 같더라구.”
“이걸…… 하루 종일 하고 있어야 돼?”
“그렇게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는데.”
사색이 된 얼굴이 귀여웠다. 뺨을 콕 찌르자 얼떨떨한 표정이 된다. 가스파르는 손바닥에 재차 오일을 묻히고는, 아일럿의 발등까지 꼼꼼하게 발라준 뒤에야 근처에 두었던 얇은 코트를 들고 왔다.
“이거 기억나?”
멍해져 있던 아일럿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제 발로 저택에 찾아왔을 때, 몸에 걸치고 있던 얇은 소재의 코트였다. 스칸다는 서늘하니까 저걸 입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저택에 있는데 왜?’ 하고 의아해했다.
“나 아직 옷 안 입었-”
“입을 필요 없어. 이것만 입고 나갈 거거든.”
계속 의아해할 필요는 없었다.
“나간다고? 어딜?!”
“기껏해야 정원이야. 그렇게 겁먹지 마.”
어떻게 겁을 안 먹을 수가 있어?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아일럿의 뺨에 입을 맞추면서, 가스파르는 코트의 끈을 리본 모양으로 묶어 버렸다. 아일럿의 감정과는 달리 앙증맞은 모양을 한 리본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가자.”
리본을 목줄처럼 잡은 손이 아일럿을 이끌었다. 코트가 길긴 했어도 발목까지 가리지는 못했다. 누가 보면 반바지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달랐다. 종아리를 훑고 지나가는 바람이 괜스레 더 차가워서,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는 가스파르의 뒤를 어렵게 따라가면서 주변을 살폈다. 고용인들은 늘 그렇듯 제 할 일을 하기에 바빴다. 어쩌면 주인과 제가 무얼 하든 신경 쓰지 말라고 미리 얼러둔 것일 수도 있지만……. 아일럿은 불안하게 발을 내디디며 밖으로 나섰다.
“…….”
정말 계속 가려나 보다. 처음으로 가보는 정원으로 가는 동안, 못 보던 고용인들이 가스파르에게 인사를 했다. 제 차림에서 위화감을 느끼면 어쩌나, 혹시나 쳐다보기라도 할까 뒤에 숨어 있던 아일럿은 정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스파르가 무언가를 시킬까 걱정되어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속에 입은 옷이 없으니 부끄럽기도 했다.
“흠, 흠.”
머쓱하게 근처에 있는 돌담을 어루만졌다. 제 갈비뼈 근처까지 오는 돌담은 여러 색의 돌이 섞여 있어 몹시 예뻤다.
“아일럿.”
“어, 어어.”
가스파르가 말을 걸기가 무섭게 아일럿은 돌담에 두었던 손을 거두고 고개를 돌렸다. 장미가 감겨 있는, 수풀로 만들어진 작은 터널 안에 가스파르가 서 있었다. 저와는 불과 대여섯 발자국 정도의 거리였으나 담 너머에서 보면 저만 보일 터였다.
“아니야, 오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
“여기?”
“응. 거기 서 있어.”
옆으로 다가가려 하자 고개를 젓는다. 도로 제 자리에 서게 된 아일럿은 멀리서 들려오는 고용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도구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니, 근처에서 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가지를 좀 더 치는 편이 좋을까요?”
“그게 낫지 않겠어? 참, 오늘은 꽃도 새로 심어야 하는데.”
“그건 바질 씨가 내일부터 하자고 하셨어요.”
일 이야기로 바쁘던 그들이 아일럿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들의 위치에서 가스파르는 보이지 않았기에, 아일럿에게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재빨리 제 할 일을 하러 달려가는데 그 위치가 그리 멀지 않았다.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망설이다 가스파르를 돌아보는 찰나, 불안함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앞에 풀지 말고, 아랫단만 잡아서 그대로 걷어봐.”
“…어디까지?”
끄트머리를 어설프게 붙잡은 아일럿의 얼굴이 붉어졌다. 가스파르는 말없이 손가락을 위로 까딱거렸다. 멈추라고 할 때까지 위로 올리라는 제스쳐와 같았다. 무릎 위까지 코트를 올리고 나서, 아일럿은 잠시 멈춰 섰다. 손가락은 여전히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서 더? 입술 안쪽에서 앓는 소리를 내고는 손을 느릿느릿 올렸다. 그렇게 허벅지의 반. 이내, 약간 단단해졌을 뿐 여전히 허벅지에 닿아 있는 성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하게도 털이 복슬복슬한 꼬리가 다리 사이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 여기까지만 와.”
터널 바로 앞이었다. 주춤주춤 앞으로 다가가 서자마자, 아일럿은 몸을 돌리게 되었다. 차가운 손이 허벅지 사이로 들어와, 여린 살을 길게 쓰다듬으며 무릎 뒤를 만졌다.
“벌써부터 너무 느끼지는 말고.”
그러다 무릎 뒤 볼록한 살이 올라온 곳을 검지 끝으로 살짝 눌러 보기만 했는데 다리 전체가 후들거렸다. 이번에는 파인 곳을 지분거렸다.
“아!”
이 무렵, 하마터면 코트를 놓칠 뻔했다. 친절하게도 가스파르는 옷자락을 아일럿의 손에 다시 쥐어 주고는, 손을 좀 더 위로 올리게 만들었다. 꼬리를 물고 있는 동그란 엉덩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씻고 나왔기 때문인지 탁자 앞에서 쥐었을 때보다 손에 더 감기는 듯 보드라운 살결이 마음에 들었다.
“엉덩이만 이쪽으로 내밀어.”
직접 잡고서 당길 수도 있지만 부러 아일럿에게 시켰다. 왼쪽 손으로 담을 짚은 아일럿은 밖에서 보기에 이상하지 않게 엉덩이를 뒤로 빼면서도 앞에서 누가 오지 않을까 걱정했다. 코트의 옆 부분을 들고 있으니 앞과 뒤가 전부 노출된 상황이었다.
“심하게 움직이면 들킬지도 몰라.”
“윽, 아. 압.”
되묻기도 전에 가스파르가 아일럿의 엉덩이를 깨물었다. 갓 구워져서 부풀어 오른 하얀 빵. 그다지 세게 물지도 않았는데 놀란 몸이 반 뼘 정도 튀어 올랐다. 여기서 더한 짓을 하면 어쩌려고? 묻는 대신에 입을 위로 올려, 꼬리뼈 위에 입술을 누르자마자 이번에는 끙끙 앓았다.
“여, 여기서 하려고?”
“어깨보다 조금만 더 넓게 다리 벌려 봐.”
당황하면서도 발목이 저절로 옆으로 움직였다. 꼬리를 지나서, 앞으로 손을 넣은 가스파르는 곧장 귀두를 쥐었다. 상처 입기 쉬운 꽃을 손안에 가두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하지만 어느 정도 선액으로 젖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귀두를 손으로 굴리는 양 다소 거칠게 다뤘다. 코트를 쥐고 있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아일럿의 몸에도 제법 힘이 들어가 있다는 걸 가스파르는 알 수 있었다. 아일럿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 이를 악물었다.
“약간 대칭이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 이쪽을 좀 더 손볼까요?”
“음. 아냐, 그보다.”
고용인들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아일럿과 가스파르의 귓가에 들려왔다. 일에 바빠 아일럿이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큰소리를 내버린다면 이쪽을 돌아볼 것이다.
“흐… 으응…….”
짧은소리가 새긴 했어도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어떻게든 소리를 참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별개로 점차 발끝으로 서기 시작한 아일럿은 돌담에 거의 온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숨이 흘러나왔다. 더 이상 깨물지는 않았어도 야릇한 손길로 성기가 만져지는 것은, 수증기에 피부가 젖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자극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렇게 되면 몸은 그 이상의 것을 바랐다. 그렇지만 여기서 했다가는-
“하, 끅…! 으, 우읏!”
생각이 마무리되지 못한 채 교성이 터졌다. 마침, 고용인 두 사람이 다른 곳으로 걸어간지라 들키지는 않았으나 아일럿의 얼굴은 검붉게 보일 만큼 새빨갛게 물들어 가스파르를 돌아보고 말았다.
“너, 너어!”
“기분 좋았지?”
안에 들어갔던 구슬들이, 가스파르가 꼬리를 확 잡아당기는 것에 따라 내벽을 긁으며 몸 밖으로 한꺼번에 빠져나왔다.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던데다 차분히 달아오르고 있던 신체는 고여 있던 쾌감을 터뜨렸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은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손에 의해 억지로 다시 서게 되었다.
“읏, 으…….”
너무해. 너무해. 아일럿이 얼굴처럼 빨간 눈동자로 가스파르를 돌아보며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바닥을 짚고 선 두 다리는 후들거리며 떨리고 있었고, 막 여러 개의 구슬을 내뱉은 구멍은 순식간에 오므라들어 버렸다.
“아, 잠깐. 또 넣으려고, 윽-”
“한 번만 더.”
“흐읏, 으… 앗.”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서 한 손으로는 담벼락을, 다른 손으로는 제 무릎을 쥐었다. 옷자락은 이미 놓친 지 오래였으나, 가스파르는 제 손으로 코트를 들췄다. 하나하나가 연결되어 있는 구슬들이 좁은 입구를 벌리면서 내부에 부딪쳤다.
“어휴, 왜 이렇게 무겁담.”
“꽉 담아서 그래요.”
“이쪽으로 놔. 이쪽.”
전부가 들어가고 나서, 아일럿은 다리가 꺾여 제 자리에 얌전히 서 있을 수 없었으나 억지로 버티고 서 있었다. 하필 그때 고용인들이 돌아왔다. 그들 중 한 명이 제 쪽에 시선을 두는 것을 얼핏 느꼈으나, 아일럿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고용인들이 모두 일하는 것에 여념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제 허벅지를 콕콕 누르고 있던 가스파르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고용인들… 왔어.”
“알아. 여기서도 다 들려.”
커다란 손이 꼬리를 손에 말아서 쥐었다.
“안 돼, 그, 그렇게 하면 못 참아, 아…!”
말리는 것보다 신음을 참으려 애써야 했다. 아일럿의 입이 벌어져 있음에도 가스파르의 팔꿈치가 아래로 훅 내려갔다. 이전보다 강한 자극이 내벽은 물론이고 배 속까지 두드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빠져나가는 감각이 강렬했다. 너무 강렬한 나머지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로 아일럿은 몸을 굽히고 바닥에 무릎을 대었다. 쾌감이 과해서 잔기침까지 했다.
“하, 으……. 흐, 윽.”
하나 그 뒤에 쏟아져 나온, 한 박자 느린 교성의 떨림은 달착지근했다. 물기 어린 눈으로 저를 쏘아보다, 간헐적으로 탁한 숨을 들이키는 아일럿의 뺨에 가스파르가 입을 맞췄다.
“미안.”
사과는 진심이었다.
“한 번만 더 하자.”
전혀 진심 같지 않아도, 어쨌든.
“아아, 아, 아, 아… 읏!”
입을 한 손으로 틀어막은 아일럿이 몸을 앞으로 굽혔다. 바닥을 짚고 있는 손이 바들거리고 있었다. 예민해진 내벽 속으로 구슬이 하나씩 들어왔다. 이미 두 번이나 강한 자극을 받은 곳이었다. 처음 들어올 적의 쾌감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성감대를 짓누를 때는 성기가 저릿했다. 사정할 것만 같았다.
“윽, 으, 읍…….”
꼬리가 움찔했다. 구슬을 전부 품은 구멍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고, 아일럿은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실로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그 꼴에 가스파르는 구슬 같은 것은 다 빼버리고서 제 것을 처박고 싶은 마음이 간질거렸다.
“하으, 읏, 아… 윽.”
아니야, 조금만 더. 애가 타서 허리를 들썩이는 모습이 좋았다. 해서, 꼬리를 잡아당겨 구슬을 한 알 빼는 시늉을 하다가 도로 밀어 넣었다. 당연하게도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마음에 쏙 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벌어졌던 허벅지가 맞닿고는 경련을 일으켰다. 보나 마나 앞도 젖어 있으리라. 고용인들이 시끄러운 톱질을 시작하자,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페니스를 쥐고서 귀두의 움푹 파인 곳을 엄지로 슬며시 건드렸다. 끈적끈적한 액이 첫 마디의 도톰한 부분에 묻어 투명하게 늘어났다.
“이제 앞은 만져 줄 필요도 없겠네. 그치?”
대답을 해야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고 아일럿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응, 신음과 함께 짧게 끊어지는 목소리가 퍽 마음에 들었기에 상을 주기로 했다.
“흑, 힉… 읏, 으으읍……!”
입이 단단히 틀어 막혔다. 거기에 당황할 틈도 없이 몸 밖으로 빠져나간 구슬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고개를 쳐들었던 아일럿은 끙끙 앓으면서 몸을 굽혔다. 입을 막고 있던 가스파르의 손가락에 질척하고 통통한 혀가 얽혀들었다.
“힘 풀어.”
“흐으, 윽, 응…!”
서로가 한계였다. 말을 하기가 무섭게 내부를 꿰뚫었다. 오늘은 벌써 두 번째였다. 불과 두 시간 전에도 안았던 몸이었으나, 느슨하게 풀어져 있다기보다는 들어오는 것을 아그작 씹어 먹는 듯했다. 안이 어찌나 세게 조이는지, 골반을 잡고서 뒤로 허리를 빼는데 아일럿의 몸도 뒤로 빠졌다. 손으로 엉덩이 양쪽을 잡아 벌리는데도, 내부는 도리어 더욱 조여올 뿐 가스파르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를 악물다 입술까지 깨물어 버린 아일럿이 결국은 입을 열고 신음을 흘렸다.
“흐, 아아, 아… 좋아… 아……!”
그렇게 크지는 않은 소리였다. 시끄럽게 일하고 있으니 들리지는 않겠지만, 대뜸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서 아일럿을 끌어안았다. 몸 전체가 심장인 것처럼 쿵쾅거리고 있었다. 코트 속으로 손을 넣어 보니, 발기된 유두가 괴롭히고 싶을 만치 단단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마주 보고 박았다면 사정없이 이로 깨물어 주었을 텐데. 그러한 생각이 고스란히 손짓으로 드러났다.
“아읍, 으… 흑-”
유륜을 두 손가락을 구부려 괴롭히는 손길에 견디지 못한 아일럿이 눈물을 보였다. 너무 좋아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굴리다가 안으로 넣고, 다시 당겨대면서 가슴을 손으로 움켜잡자 교성을 참기 어려웠다. 그러나 안을 가득 채웠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전처럼, 다물어지지 않을 때까지 추삽질을 해주어야 만족할 수 있으리라. 아랫배가, 혹은 그보다 밑에 있는 곳이 절절 끓었다.
“계속 저기 있으니까 들키겠는걸.”
“흐. 아냐, 아. 아…….”
“아니긴. 소리 들어 봐. 가까워졌잖아.”
어느새 톱질은 끝낸 모양이었다. 묘하게 가까운 곳에서 고용인들이 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스파르가 쉬, 하고 소리를 죽이자 목소리가 거의 근처까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아무래도 주인이 있는 곳까지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 두 사람이 모습을 감춘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갔다고 생각해서 이쪽으로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다려 봐.”
부러 말을 해두지 않았다. 삽입까지 할 생각은 없었던 탓이다. 아예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굳어 있자 아일럿이 가스파르의 다리 어딘가를 붙잡았다. 단순히 붙잡기만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조르는 거야?”
“움직여어……. 응?”
“들키면 어쩌려고.”
그 말에는 차마 답하지 못하고 애원하는 시선을 보낸다. 사실상 들켜도 좋다는 애원처럼 보였다. 잠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가스파르가 더운 숨이 쏟아지는 아일럿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그러고 나서 한 번. 다시 한 번. 아주 얕은 움직임에도 아일럿은 가스파르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애를 태울 생각이었던 가스파르는 검은 머리카락과 희고 말랑한 뺨 위에 입술을 누르며 움직이다, 대뜸 성기를 빼내고는 아일럿의 몸을 뒤집어서 제 위로 앉혔다. 분명 자제할 수 없을 텐데, 봐주지 않고 몰아붙이다가 무릎에 상처를 남기고 말겠지.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구석이 없는 몸에 괜한 상처가 생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으, 으… 읏.”
“내 어깨 잡아 봐.”
망설이다 가스파르가 시키는 대로 어깨에 손을 올린 아일럿이 손에 힘을 주자, 아래에서 그 커다란 것이 힘껏 치고 들어왔다. 배꼽 아래까지 길게 울렸다. 살에 달라붙는 것처럼 조여 대던 내벽이, 그새 가스파르의 것에 맞는 형태로 늘어난 듯했다. 훨씬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된 가스파르는 열기가 어린 숨을 내뱉고, 아일럿의 목덜미 어딘가를 물었다. 그 상태로 허릿짓을 했다. 일순 뭉근하게 번졌던 쾌감은, 이내 날카롭게 아일럿의 몸을 찔러버렸다.
“나, 흐윽, 하, 할 것 같, 아, 아, 아아…!”
“…또 그러지.”
“흑, 으으읏… 아, 안 돼, 흐-”
“참아 봐. 조금만 더……. 할 테니까.”
몸이 맞붙은 채 비벼진 순간, 짧게 끊어지던 교성이 한층 가늘어졌다. 위에 올라타 있다 해도 아일럿이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배 속이 쾌감과 함께 시큰거려 허리가 안쪽으로 휘었다. 가스파르는 두 손으로 아일럿의 허리를 잡아, 제 위에서 아래를 문지르게 했다.
“하아, 흐, 으읏. 아흐으…!”
원래도 빈틈없이 꽉 찼던 공간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온몸에 힘이 다 풀렸다. 별다른 기교 없이 급하게 박아 넣는 행동이었으나, 그만큼 가스파르도 여유가 없다는 뜻도 되었다.
“아, 윽, 읏……. 아, 흐아, 읏!”
거의 다 빼내고 귀두까지 밖으로 나왔다가 아일럿을 내려앉게 해 뿌리 끝까지 쑤셔 넣었다.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아일럿의 의식도 끊겼다. 금방 돌아왔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니 배와 몸속이 젖어 있었다. 으, 으, 입속으로 신음하며 아래를 조였다. 그러나 페니스가 빠져나가고서 정액이 따라 나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천천히 밀려나온다.
“하-”
가스파르의 바지를 더럽힐 텐데, 쾌감에 둔해진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고작 그 정도였다. 일어나려고 다리를 꿈지럭거렸더니, 도로 안기게 되어 허벅지에 앉고 말았다.
“바지, 더러워져.”
“그럼 네 코트를 빌려 줄래?”
“난 코트 밖에 없는데.”
상의도 하의도 멀쩡하게 갖춘 사람이 그렇지 않은 자신의 하나뿐인 옷을 탐내다니. 아일럿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친 얼굴로 짓는 새침한 표정을 보며 가스파르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일럿, 네 덕분에 여름방학이 너무 짧았어.”
말하고는 비뚤어진 안경을 제대로 씌워주었다.
“늘 지루할 정도로 길었었는데.”
그건 아일럿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매년 돌아오던 여름방학. 가장 싫은 계절이니만큼 마냥 길었던 여름방학이 그로 인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과거가 아득했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은, 마지막까지 특별했으면 좋겠어.”
지금까지도 충분하지 않았나?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저 가스파르가 말하는 특별함이 궁금했다.
“여름방학을 어떻게 장식해 볼까.”
“…생각해둔 거라도 있어?”
“방금 떠오른 게 있기는 한데, 말해주지는 않을 거야.”
그답지 않게 열기가 스며든 숨을 내뱉으며 속삭였다. 뭐라고 대답을 하면 좋을까. 고민해 보았으나 옷을 추스르고 일어날 때까지도 답을 하지는 못했다. 가스파르는 딱히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던 듯, 미소만 지으며 아일럿의 옷매무새를 정돈해 주었다.
“…….”
대체로, 아니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즐거운 기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던 가스파르였다. 그가 미소를 짓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른 위화감이 느껴져서 약한 불안함이 피부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이미 있을 법한 일은 충분히 다 일어났다고 생각하지만…. 아일럿은 눈동자를 아래로 굴렸다.
*
“주인님.”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가스파르의 집사가 편지를 들고 다가왔다. 그러다 곧바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하지. 더럽혀진 바지를 정원에 있던 우물물을 퍼서 씻어낸 탓에, 발걸음이 닿는 자리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바로 답장을 보내긴 해야겠네. 연락은 이것뿐이고?”
“네. 다른 편지는 없었습니다.”
그가 집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멀뚱히 서 있던 아일럿은 뒤늦게 제가 코트 외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스파르가 바빠 보이니 먼저 방으로 올라가도 되겠지? 조용히 계단 위로 올라가서, 옷부터 찾아 입었다. 평소대로 시원한 재질의 셔츠 하나에 바지 하나. 아일럿이 주로 머무는 방에는 평상복으로 입을 수 있는 옷이 수십 벌씩 준비되어 있었다.
다시 돌아오게 된 이후로 하루에 한두 번씩 갈아입고 있었는데, 한 벌이 사라지면 세 벌이 준비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벌써 한 달이던가.
가스파르가 여름방학이 다 끝나간다는 이야기를 꺼낼 법도 했다. 곧 있으면 학교가 개학을 하고, 그렇게 되면 이 생활도 끝나게 된다. 그와 함께 보내는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탓일까. 우습게도 학교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이 짧은 시간에 온갖 일이 다 있었다. 황족과, 아니 그 이전에 가스파르와 엮이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몸이 변해 버린 것도 그랬다. 분명한 것은 이제 그 이전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정도.
그에게 물렸던 목덜미가 괜스레 뜨끈거렸다. 목을 슬슬 매만져 보던 아일럿은 근처에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운이 남아서일까. 몸에 매달린 노곤함이 제법 무거웠다. 낮잠을 잘 것까지는 아니고, 잠시만 앉아서 쉬면 될 정도라고 생각해서 등을 대고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책을 들었다. 딱 절반만 읽어볼까. 어림잡아 짐작을 해 보고는 목차를 읽고 책장을 넘겼다.
마음과는 달리, 잠이 드는 건 한순간이었다. 딱 다섯 페이지를 읽고는 아일럿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등을 감싸는 의자는 편안하고 안락했으며 지친 몸을 포근하게 받아 주었다. 두어 시간쯤 지나, 의자에 앉아 잠든 아일럿을 발견한 가스파르는 잠깐 자리에 멈춰 섰다가 옆으로 다가갔다. 세상모르고 잠든 얼굴이……. 아, 그래도 하루 세 번은 너무했지. 마음을 바르게 고쳐먹었다.
“침대에서 자.”
“…가스파르?”
“이리 와, 아일럿.”
반쯤 잠에 취한 빨간 눈동자가 주변을 훑었다. 눈을 감기 전과는 달리 실내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이 낯설다는 눈치다. 일어나려다가 몸이 들리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서도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어깨 부근을 붙잡았다. 그대로 향하게 된 곳은 자주 몸을 눕히는 침대였다.
“잘 자. 나중에 깨울게.”
“나중에……?”
“파티에 가야 하는데, 너도 거기 데려갈 거야.”
파티에 데려가려면 지금은 재우는 게 좋겠지.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아일럿에게서 멀어지자, 루비 같은 눈동자를 눈꺼풀이 깜빡, 깜빡 짧게 덮었다가 완전히 감겨 버렸다. 푹신한 침대에 푹 빠져, 아일럿은 깊게 잠들었다. 세 시간쯤 지나, 저녁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이불에 둘둘 말린 채로 마차에 타게 되었을 때도 그랬다. 심지어 말이 출발했을 때도 잠에 취해 있었다.
“음…….”
이렇게 잘 자도 되는 거야? 이러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는걸.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도 몸을 만지고 있는데 꽤 오랫동안 눈을 뜨지 못했었다. 삽입을 하고 나서야 잠에서 깨어났었던가.
그렇지만 아무리 흔들림이 덜하다고 해도 이건 좀 심했다. 언제까지 자나 두고 보았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었다. 이제 곧 도착할 텐데. 덜컹 거리는 마차 안에서 누에처럼 이불로 감싸인 아일럿은 푸우, 푸우, 하고 안정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약간은 본인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서 누워 있는 아일럿의 뺨을 손가락 끝으로 콕 찔렀다. 서너 번 그렇게 찔러보는데도 일어나지 않아서 두 손으로 볼살을 꼭 쥐어 보았다. 말랑하다. 내친김에 조물조물 만지는데도 일어나지 않아서 입술을 꾹 눌렀다.
“푸우웁.”
숨을 쉬지 못하게 되니 아일럿이 눈을 떴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 마차 안이라는 것에 다소 놀란 표정이 되었다.
“뭐, 뭐야? 여기.”
“마차 안. 물 좀 마실래?”
막 일어난 참이었다. 목이 마르지 않을 리가 없어서 주는 대로 물병 속의 물을 3분의 1 가량 비우고 나서 물병을 꼭 쥐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긴장한 아일럿은 귀를 쫑긋 세운 고양이 같았다. 왜 갑자기 가스파르가 저를 데리고 저택을 나섰는지 알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직접 물으려는 순간, 상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파티 가기로 했었잖아. 너도 거기 데려간다고 말했었고.”
그런 말을 했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던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입고 있는 옷을 보고 당황했다. 소매만 봐도 화려하다 못해 부유함이 느껴지는 예복이었다. 우연히 가까이에서 봤었던 황태자도 저만큼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있었던 걸로 기억했다. 저런 옷을 맞추려면 대체 얼마나 들까. 현실적인 생각을 하다, 제 소매를 내려다본 아일럿이 헉 소리를 냈다.
“언제 입힌 거야?!”
“너 자고 있는 동안. 바지 입힐 때는 일어나겠지 싶었는데, 잘 자더라. 많이 피곤했나 봐?”
“다 구겨졌겠-”
“괜찮아.”
몇 번 가보았던 파티에서도 이런 옷은 입은 적은 없었다. 아일럿은 제 모습이 무척 낯설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재밌을 거야.”
“뭐 하는… 곳인데?”
“맞춰 봐.”
아는 게 있어야 맞추지. 오페라를 보러 갈 의상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오페라도 보러 간 적이 없어서 잘 몰랐다.
“무도회?”
“춤도 좋지. 같이 춤출까?”
아닌가. 그럼……. 한참 생각해 보던 아일럿은 고개를 젓고 말았다.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가스파르는 그제야 옆에 놓아두었던 작은 상자를 내밀고는 열어 볼 것을 권했다. 열리면 폭발하는 상자일 리도 없건만 열어보는 걸 망설이게 되는 것은 왜인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보던 아일럿은 상자의 윗부분을 조심스레 들춰보았다.
“가면이잖아.”
“네가 쓸 거야.”
“내가?”
안경을 쓰는 아일럿에게 맞추어진 가면이 들어 있었다. 밖으로 나오는 부분은 입술과 턱 정도. 하얀 가면 위에 새겨진 세공이 섬세했고,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장식이 흔들거렸다.
“가면무도회 같은 거야?”
“춤을 추지는 않아. 그래도 넌 가면을 써야 할 것 같아서.”
“……?”
얼떨결에 가면을 두 손으로 든 찰나, 마차가 속도를 늦췄다. 가스파르는 천천히 바깥을 내다보았다. 파티가 열리는 저택의 불빛이 반짝거렸다.
“가스파르.”
“너무 겁만 먹지 마. 네가 겁먹으면 즐거워할 사람들투성이거든.”
두 손에 들려 있던 가면을 가져간 가스파르가, 직접 가면을 아일럿에게 씌워 주고는 끈이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매듭을 묶어 주었다. 뜻밖의 상황에 당혹스러워 하는, 가면 너머에 있는 눈이 크고 둥글어졌다.
“괜찮아. 내가 같이 있을 테니까.”
이윽고 마차가 멈춰 섰다. 굳어 있던 아일럿과는 다르게, 가스파르는 나는 듯 문을 열고 내려서 상대의 손을 잡아 주었다. 대체 무슨 파티이길래 가스파르는 가면을 쓰지 않고, 저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면서도 손에 힘을 주고서 바깥으로 발을 내디뎠다.
“어…?”
바깥에 서 있는 마차는 한두 대가 아니었다. 적어도 열 대는 훌쩍 넘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일반적인 마차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에, 아일럿은 무심코 가스파르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뒤쪽에 있던 마차에서 두 명의 사람이 내렸다. 그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있지는 않았는데, 문제는……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목줄을 차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목줄을 쥐고 있는 게 앞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생소한 광경에 아일럿의 입이 벌어졌다.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사람도 저렇게 산책을 시켜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다면 가스파르가 재미있을 거라고 한 이 파티는 역시-
“학교에서 보는 이미지랑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응?”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후자가 정확하겠지만 아일럿은 띄엄띄엄 말하고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왜인지 모르게 뺨에 약간 열이 올라 있었고, 그로 인해 발음이 뚝뚝 새어 나갔다. 거부하면서도 기대하고 있어서 그렇다. 가스파르는 그것을 알기에 가면 아래로 아일럿의 뺨을 만져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뭘 새삼스레. 네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 텐데……. 같이 들어가자, 아일럿.”
몸이 알고 있다. 가스파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무엇이 좋은지. 대가로서 무엇을 받게 되는지도. 해서 결국에는 망설이다가도 손가락을 겹치고 말았다. 가까이로 다가갈수록 저택은 그 호사스러움을 더했고, 문이 열리고 나서는 완전한 신세계가 펼쳐졌다.
어떤 파티에서도, 혹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화려한 모습이었다.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구조나 장식은 물론이고, 안에 있는 사람들도. 멀리서 언뜻 본 적이 있는 사교계의 스타들이나, 유명한 화가, 연주회를 한 번 열 때마다 집을 몇 채씩 가지게 된다는 피아니스트 등, 사교계에 대해 무지한 아일럿마저 알 만큼 유명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파트너를 옆에 데리고 있었고 그 파트너들은-
“너무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 돼.”
“으, 으응.”
낯선 광경에 눈알이 빙글빙글 돌았다. 목줄을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대놓고 다른 사람의 앞에서 앞섶을 풀어헤쳤다. 얼굴이나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만져 보라는 것처럼. 실제로 만지고 있기도 했다. 옷 속으로 손을 밀어 넣던 장면을 떠올리자,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후끈해졌다.
이러는 동안에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나누듯 그런 행위를 하고 있었다.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저에게도 그런 일을 시킬까, 긴장해서 통나무처럼 굳어 있었지만, 그는 마주치는 몇몇 사람들과 짧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창가 근처에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다.
“여기 앉아.”
안쪽 자리였다. 거기에 앉으니 맞은편에 가스파르가 앉았다. 끈 하나만 풀면 천장에 있는 베일이 내려오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베일이 반투명하여 안과 밖을 완벽하게 차단해 줄 것 같지는 않았다.
“뭐라도 좀 마시는 게 좋겠는데, 어떤 게 좋겠어?”
“그… 그냥 물.”
목이 타들어갔다. 가스파르와의 행위는 익숙해졌어도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보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여기, 물.”
“고마……. 왜, 왜?”
손을 뻗으려고 하니 가스파르가 고개를 저었다. 기껏 맞은편에 앉혔지만 옆에 앉으라는 것처럼 제 바로 옆자리를 두드렸다. 원형의 소파 사이에 테이블이 있는 것이었기에 주춤주춤 다가가니, 가스파르는 직접 아일럿의 입술에 물컵을 기울여 주었다.
“아.”
머뭇거리던 입술이 벌어졌다. 달아오른 입안에 들어오는 차가운 물이 정신을 다소 맑게 해 주는 기분이다. 한 잔을 다 비우고 나서야 갈증이 사라졌다.
“묻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도 괜찮아.”
질문이 산더미였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인가.’ ‘왜 저 사람들은 저러고 있는지.’ 대표적인 질문부터 꺼내려 하는데 넓은 홀의 저편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사람이 가스파르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이야, 가스파르!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았네.”
그와 똑 닮은 금발이 살랑거렸다. 서글서글한 얼굴을 한 여성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뒤에 파트너를 데리고 있었는데, 이 여성이 누구인지 처음에는 가물가물했다가 뒤늦게 확신한 아일럿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했다. 황태자였다. 오르페 디케 가디테로안.
“3층에서 보니, 네가 다른 사람이랑 함께 내리더라구. 안 올 수가 없더라. 하던 게임도 접어놓고 왔다니까?”
“그랬어? 소개할게, 이쪽은 내 파트너야.”
“이름은?”
“그건 비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아일럿을 제 옆으로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며 가스파르가 말했다. 덕분에 아일럿은 잠시나마 안심할 수 있었지만, 눈앞에 장갑을 낀 하얀 손이 다가왔다.
“어디, 얼굴 좀 볼까.”
“아, 그건 안 돼. 손대지 마.”
“아니, 왜!”
가스파르가 황태자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사촌이라지만 황태자가 하려는 일을 저렇게 막아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남매보다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 리 없는 아일럿만 혼란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황태자와 눈앞에서 마주친 적은 없지만, 어쨌거나 가까이서 황태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저는 군중이었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얼굴을 보게 되면 들키게 될까 겁이 났다.
“근데 말이지, 음… 입술이랑 턱만 보이는데도 왠지 낯익다? 누군지 알 것 같은데.”
“겁먹지 마. 아무한테나 이렇게 말하니까.”
“아, 가스파르. 왜 그래? 살짝만 놀린다는데.”
“…….”
아일럿만 심장이 철렁했다.
“그건 그렇고, 만져 봐도 돼?”
“안 돼.”
“왜?”
“안 되니까.”
“그게 뭐람.”
이어서 한 번 더. 이번에는 아예 바닥으로 내팽개쳐졌다.
“너무 무르게 대하는 거 아냐?”
투덜거리던 황태자가 아일럿을 흘긋 쳐다보았다.
“그래도 안 돼.”
“한 번만.”
“그만해.”
“보는 것도 안 돼?”
“응.”
“그럼 얼굴은? 턱 정도는 괜찮잖아.”
“안 돼.”
이런 순간에 할 생각은 아니지만……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제 몸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게 하는 데 안도하는 한편, 주점에서 있었던 일을 걸리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주점에서 있었던 일이 부디 영영 묻혀 버리기를. 보다 못해 만지고, 거의 하기 직전까지 갔었던 걸 들키게 된다면…….
“손가락 네 개만.”
“허락해 주지 않을 거야.”
“한 개도?”
“반 개도 안 돼.”
“와, 너무했다. 진짜. 손가락을 넣어 본다고 한 것도 아니고.”
스멀거리는 불안함을, 가스파르의 공격적인 태도 덕에 떨쳐낼 수 있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보는 건? 어차피 자정이 되면 벗겨놔야 할 텐데.”
“보는 것도 안 돼. 이미 벌금은 지불했어.”
“네가 이러니까 더 해 보고 싶은데…. 아, 그럼 이건 어때. 손 말고 깃털이랑 막대기로 건드려 보기만 할게.”
“안 된다니까, 건드릴 생각 마.”
“이 정도는 괜찮잖아!”
“괜찮지 않아.”
“쪼잔하기는!”
황태자는 끈질겼다. 물론 가스파르는 거기에 철벽같이 대응했지만, 문득 아일럿의 귀와 목이 새빨개진 것을 보자 마음이 바뀌었다. 그 순간, 가면 너머의 눈과 가스파르의 눈이 마주쳤다. 그는 황태자에게 보이지 않는 쪽의 입술을 약하게 실룩거렸다.
“좋아, 오르페.”
“음? 정말?”
“어…?”
아일럿과 황태자가 동시에 가스파르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을 동시에 받던 가스파르가, 아일럿의 등을 살짝 밀어서 오르페와 가까워지게 했다.
“깃털이랑 막대만 사용해. 하지만 딱 상반신까지야. 그 아래로 내려가지 마.”
입고 있는 옷은 두 겹이었다. 둘 다 얇았으나 겉에 입고 있던 옷이 그나마 두께가 있는 편이어서 가스파르는 직접 겉옷을 잡아당겨, 안쪽의 셔츠가 드러나게 했다. 살이 비치지는 않았다.
“쉬, 착하지.”
가스파르는 움츠리려던 아일럿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단순히 끌어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펴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턱 밑으로 내려간 손이 여린 살을 간질이는 듯하다, 다른 손으로 물병을 들어서 반쯤 차 있던 물을 고스란히 가슴팍 위로 흘려버렸다. 하얀 옷은 아니었지만 축축해진 셔츠가 피부 위에 달라붙었다.
“좋은데? 피부도 곱고 몸 선이 예뻐.”
도드라진 몸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감탄한 황태자의 입술에 미소가 걸렸다. 테이블 아래에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물건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막대 여러 개와 풍성한 깃털을 꺼냈다.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작은 손짓에도 열기를 품은 숨을 흘렸다. 직접 만지지 못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게 아쉽다고 황태자는 생각했지만, 구두쇠인 사촌이 모처럼 내어준 기회였다. 까만 깃털이 길게 뻗은 목덜미를 턱 근처부터 쇄골까지, 아주 느리게 쓸었다.
“아…!”
옷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깃털 끝이 쇄골을 간질이다, 다시금 목을 타고 올라갔다. 귀 근처에 닿았을 무렵에는, 가면이 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일럿이 가스파르를 쳐다보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고 앞을 봐. 그게 더 보기 편할걸.”
자리 근처에 있던 기둥은 모든 면이 거울로 되어 있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그걸 통해서 가스파르의 얼굴은 물론이고 제 몸까지 볼 수 있었다. 가스파르에게 안겨, 황태자에게 희롱당하는 몸이 제 것 같지 않게 음탕했다.
“읏, 으… 흐…….”
깃털의 끝으로 귀를 쓸고 지나가는 감각은 핥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에게 안겨 있는 등이 뜨거웠다.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애무를 당하는 것도 아닌데, 체온이 근처에 있으니 누가 저를 애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가 맞물렸다. 신음을 참으려는 볼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가스파르는 그 입에 두 손가락을 가위처럼 밀어 넣었다.
“참지 마.”
“아, 하, 아…!”
애달픈 교성 뒤, 붉은 눈이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손을 빼 주고는 아랫입술을 문질렀다. 새어 나온 타액마저 야했다. 입술을 빨아주고 싶었지만 가면이 방해가 되어 그럴 수가 없었다. 하여 손가락으로 대신 입을 맞추었다. 입술 가장자리를 쓸어내리고, 안으로 파고들자 아일럿이 혀끝으로 손가락의 아랫부분을 긁어내렸다.
“이걸로 써 봐도 되지?”
어쩐지 그 사이에서 배제당하는 기분이지만, 지금은 처음 보는 이를 희롱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황태자는 여러 개의 막대 중에 가장 짧고 유연한 것을 골랐다. 끄트머리가 잘 다듬어져 있어서 둥글고 미끈했다. 가스파르의 허락은 이미 받았기에, 막대를 쥐고 젖은 셔츠 위에서 더디게 움직였다. 처음부터 유두에 직접 닿지는 않았다. 가슴 아래를 콕콕 찌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으로 하는 입맞춤에 거의 도취 되어 있던 아일럿이 몸을 떨었다. 몸이 젖고, 얇은 천은 달라붙어 있으니 자극이 괜스레 더 심했다. 단순히 찌르는 행위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 아, 짧게 신음하면서 아일럿은 가스파르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황태자는 별거 아닌 기구를 사용하면서도 얼마든지 타인을 안달 나게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윽고 유두에 가까워지자 아일럿의 신음은 한층 더 야살스러워졌다. 거부하는 듯, 끌어들이는 듯, 물기 어린 교성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아, 아아… 읏, 흐…….”
주변이 고요했다. 그걸 아일럿만 모르고 있었다. 규칙에 따라 자정 이전에는 대놓고 시선을 두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아닌 척하면서도 아일럿에게 시선을 흘렸다. 가면을 쓰고, 옷을 제대로 입고 있기에. 그러면서도 가디테로안 공작과 황태자의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
“흑, 으으읍… 아, 앗-”
아일럿이 그걸 눈치챈 건, 무심코 고개를 내저었을 때였다. 다른 기둥에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닿아 있었다. 거울을 통해서 아일럿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신음하는지,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뭐야, 함몰된 것 같은데. 안에 쏙 들어가 있어.”
“밖으로 나오게 하기가 좀 힘들걸. 입으로 빨거나 비틀어줘야 겨우 나오거든.”
“그래? 난 이걸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 봐, 어디.”
“으읏…!”
막대로 유륜을 간질이는가 하면 탁, 탁, 작은 소리가 나도록 유두를 두드렸다. 그쯤 되자 가스파르도 아일럿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했다. 만지지 못하는 황태자에게 과시를 하듯,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힘이 들어간 성기를 아플 만치 세게 움켜쥐었다. 아일럿이 힉, 하고 바람 소리가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황태자가 가지고 있는 막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흑, 으… 우, 으으읍.”
더 가느다란 막대로 바꾸었다. 쏙 들어가 있는 부분을 조심스레 자극하고는, 유륜을 섬세하게 건드렸다. 가스파르에게는 성기가 붙잡히고, 황태자에게는 유두가 괴롭혀지는 상황에서 아일럿은 거의 울먹거리다시피 했다. 가스파르는 자신의 유두를 괴롭힐 때 주로 손이나 입을 사용했고, 기구를 사용해도 그와 비슷하거나 무언가를 매달아 놓는 식이었다. 황태자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생전 처음 접하는 기교가 아일럿을 궁지로 몰았다.
“가스파르, 나, 나아…. 안 돼, 읏, 흐… 윽.”
“참아 봐. 황태자 전하께 네 귀여운 유두를 보여드려야지.”
“흐으으…. 읏, 하으…!”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 납작한 가슴 위에서 삐쭉 솟아서는 손가락으로 잡았다가 놓으면서 장난치기도 좋고.”
“아, 아……. 아, 윽, 자, 잠깐-”
“입으로 빨면 혀로 굴리기도 좋지.”
“자꾸 그렇게 자랑하면 해 보고 싶잖아. 너무 자랑하지 말… 아, 이제 슬슬 나올 것 같은데?”
바지 속으로 들어간 손이 고환까지 잡고서 흔드는 와중에, 함몰되어 있었던 유두가 반 정도 솟아올랐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유륜을 누르며 괴롭히니 오른쪽 유두는 기어코 머리를 보였다. 옷 위에서도 윤곽이 뚜렷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큰 유두는 조화를 이루지 않았기에 오히려 선정적이었다.
“살짝만 뚫어서 뭘 좀 달아주면 예쁘겠는데. 그럴 생각은 없어?”
“지금으로 충분해.”
“푹 빠졌네.”
피어싱을 하고 나면 아파서 엉엉 울어댈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렇지만 가스파르가 싫다니 어쩌겠는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아직 그만하라는 말이 없었으므로, 황태자는 재빨리 막대를 두 개 들어 양 옆에서 유두를 문질렀다.
“흑, 아, 아아앗, 아… 아!”
가는 막대 사이에 낀 도톰한 유두가 이리저리 비틀리면, 아일럿은 그 작은 공간에 온몸의 신경을 저당 잡힌 양 반응했다. 황태자의 손도 절로 빨라졌다. 막대의 옆으로, 혹은 뾰족한 끄트머리로. 묵직한 깃털을 가지고 와서 쓸어 주니 아일럿의 허리가 들썩거렸다. 이미 가슴을 만져주는 것으로 아래까지 반응해 버리는 몸이었다.
“대단한 걸. 성노예도 이 정도로 반응이 좋기 힘든데. 그새 취향이 바뀌었어?”
“난 성노예 같은 거 안 둬. 귀족집 아드님이야.”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걸. 얼굴을 못 보는 게 아쉽네.”
쿠퍼액이 질질 새어 나와서, 손가락도 속옷도 모두 끈적끈적하다. 부러 액을 귀두 아래까지 문지르고는 곧게 선 페니스를 손아귀에 가두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유두와 성기가 모두 저릿하여 끊임없이 신음하고 바르작거리는 아일럿을 보며, 가스파르도 갈증 같은 성욕을 느꼈다. 최근 들어 안 그런 적이 없지만.
“하……. 으, 윽.”
“내가 여름방학 내내 같이 지내면서 예뻐해 줘서 그래.”
애초부터 제 취향으로 존재하던 소재를 더 다듬었다. 그런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바지 안에 들어가 있던 손이 고환에서 그보다 아래로 내려갔다. 살이 맞닿아 가려져 있는 공간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얼마나 세심하게 만져줬는지 몰라.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만 넣어도 심하게 앓았었거든.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금방 좋아하게 되더라. 처음에 성감대를 찾았을 때는 어찌나 놀라던지. 다만 너무 좁고 약하니까 내 크기로 넓히는 게 쉽지는 않더라. 약간 고생했어. 워낙 반응이 좋아서 고생 같지도 않았지만.”
황태자에게 말하면서도 아일럿에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의 일이 하나하나 되새겨졌다. 첫 삽입부터 끔찍하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여기. 한참을 빨아줘야 나오던 곳도 쉽게 나오게 만들어줬고. 특히나 공을 들였지.”
유륜이 딱딱해져 있을 뿐, 함몰된 채로 모습을 보이지 않던 곳을 가스파르가 솜씨 좋게 비틀었다. 두어 번 그렇게 하니 반대쪽과 마찬가지로 밖으로 불거져 나왔다. 황태자는 그쪽에도 막대를 가져가려 했으나, 그 전에 손바닥이 가슴을 감싸는 것이 먼저였다.
“그만. 여기까지야.”
막대가 멀어지자마자 가스파르는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만지고 직접적으로 유두에 손가락을 얽었다. 골 사이로 파고들어서, 야트막한 곳을 들쑤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흐아, 응, 읏. 흐-”
입구만 만져주는데 안쪽이 맞물리면서 들어오지도 않은 것을 기다렸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이 제 손가락을 삼키려 허리를 아래로 내리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고는 미소 지었다.
“이왕 하게 해 줄 거 서비스 좀 주지. 그럼 난 이제 뭐 해?”
“보는 건 괜찮으니까 거기서 보고 있어도 돼.”
“어휴, 고마워 죽겠네. 베일은 내릴까?”
“그렇게 해줘.”
관객으로 초대받은 거라도 고마워해야 하는지! 입술을 비죽이며 끈을 잡아당기자 불투명한 베일이 가스파르와 아일럿, 그리고 오르페와 파트너가 앉아 있는 자리와 외부를 나누었다. 가스파르는 다급하게 목덜미를 물고, 물었던 자리를 핥으면서 올라가 귀 근처로 다가갔다. 열이 오른 귀가 하얀 피부와는 별개의 것인 양 붉었다.
“흐, 으, 아흐읏…!”
“오줌이라도 싼 줄 알았잖아. 사정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적시면 안 되지.”
“하지만… 으, 하으…….”
“여기서도 질질 싸 버릴 거니? 저택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냐, 아니, 아, 아-”
귀두가 끈적끈적했다. 드라이 오르가즘은 이미 느끼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한 번 사정하는 모습은 보고 싶어서, 페니스 전체를 잡고 흔들었다. 쥐어 짜내듯이. 노골적이고 거친 움직임에 아일럿은 저항할 수가 없었다. 바지 속에서 요란하게 움직이는 팔을 잡고 매달리며, 몇십 초도 되지 않아 사정을 하고 말았다. 아찔한 순간이 전신을 빠르게 스쳤다. 가면 밑의 입술이 달싹이며 단숨을 토해냈다. 길들여진 몸은 본능적으로 그다음 것을 원했다.
“얌전하게 생겨서 혼자 허리 흔들 줄도 아네?”
가스파르의 손길을 바라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황태자가 웃음을 삼키며 제 옆의 파트너를 끌어당겼다. 아일럿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터져나갈 것 같았지만 수치심보다 앞서는 감각이 몸을 끓이고 있었다. 사정을 시킨 후에 멈춰선 손이 야속했다. 결국, 몸으로 조르다 못해 입을 열었다.
“더, 더… 안 해줘?”
“삽입은 금지거든. 여기서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럼-”
“지금은 이걸로 참아.”
테이블 밑을 뒤지고 있던 가스파르의 손이 갈고리 모양으로 휘어 있는 딜도를 꺼내들었다.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지, 스스로 미끌미끌한 액을 뿜어대고 있는 것은 제법 두툼했으나 그런 것보다는……. 안달이 난 아일럿이, 황태자가 있다는 것도 잊고서 재차 말하려 했다.
“시, 이, 으으… 읏.”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약한 부분을 찌른 딜도는 안쪽에서도 듬뿍 액체를 내보냈다. 비좁은 공간에 들어가 조여져서 더욱 그랬다. 오므라든 입이 가냘프게 떨리는 소리를 내보냈다. 그러나 딜도의 끝에 매달린 검은 끈을 잡아당긴 이후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벌벌 떨면서 고개를 뒤로 젖힌 아일럿은 쾌감을 감당치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끅, 흐… 읏, 아, 아, 아흐… 아, 아아!”
꾸역꾸역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안에서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날뛰는 딜도는, 예전에 욕조에서 몸속으로 파고들었던 촉수와 비슷했으나 그보다 딱딱하고 사나웠다.
“이거, 흑, 으, 이… 이거, 뭐, 어, 야. 아아…….”
크지 않아도 액체를 내뿜고 있으니 배 속에서 요동을 쳤다. 무심결에 배를 감싸 쥐는 아일럿의 손등 위에 가스파르는 제 손을 겹쳤다.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기나 할 작정은 아니었다.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상한 아일럿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아랫배를 지그시 눌러 버렸다.
“우으, 흣, 흐…… 아, 우으윽!”
저절로 안을 조이게 되니 자극은 더 심해지고 말았다. 발끝이 거의 바닥에서 떨어지다시피 했다. 아일럿은 수치도 모르고 다리를 넓게 벌리고서 경련을 일으켰다. 엉덩이도 볼썽사납게 들썩이고 있었다. 힉, 흑, 어금니 사이에서 새된 소리를 흘리는 것을 들으며 가스파르는 꽉 맞물린 내부에 자신의 손가락을 더했다. 파르르 떨리던 다리가 우뚝 멈췄다가 긴 신음과 함께 흔들렸다.
“안 돼, 애, 아, 으, 끄읏… 으으, 욱…!”
입구에서 전해지는 새로운 자극에 이어, 안을 뒤흔들고 있던 것이 훨씬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주인이 그렇듯 달달 떨고 있던 성기에서 투명한 액체가 줄줄 흘러나왔다. 가면 속의 눈동자에서도 쉴 새 없이 흘러내린 눈물이 뺨을 끈적끈적하게 만들었다. 온몸을 할퀴며 오르가즘이 지나갔다. 아일럿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넘어갈 듯한 숨을 간신히 토해내는 것뿐이었다. 강렬한 감각이 훑고 지나간 자리가 아릿했다.
“후아, 아, 흐…….”
여운이 사라지기 전이었다. 끈을 잡아당기자 딜도가 투명한 실을 질척하게 만들어내며 내부에서 빠져나왔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일럿.”
황태자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작아진 목소리가 고막을 건드리자 의식이 맑아졌다. 발개진 눈꺼풀이 열었다 닫히길 반복하면서 새빨간 눈동자를 드러냈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눈이었다. 가스파르는 한 박자 느리게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숨을 미처 고르지도 못했으면서 벌어진 입술로 키스를 조르고 있는 것이다. 입을 맞춰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하니 가스파르는 저답게도 아일럿을 놀리고 싶었지만, 그게 저다운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제 안의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막 맞닿았을 무렵에는 서로의 들끓는 체온을 공유하고, 아일럿이 입을 벌리자 가스파르는 가면이 거슬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돌적으로 파고들었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었다면 한층 가까웠을 텐데. 무의식중에 가면을 고정하고 있는 매듭에 손을 대다가 멈추고,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입맞춤이 길어졌다.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 버린 이들을 지켜보는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내 존재감이 이렇게나 흐려진 건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야.”
“전하.”
“날 위로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
좋은 구경은 했지만 이게 무슨 일이람. 옆에 있던 파트너의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오르페가 고개를 저었다. 사촌과 잠시 눈이 마주치기도 했으나 제가 데리고 온 파트너의 몸에 푹 빠져 정신이 없어 보였고, 방해되니까 슬슬 나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표시하고 있었다. 오르페는 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아쉬운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저런 걸 주워왔담. 사촌을 향해 툴툴거리는 소리는 닿지 않았다.
“하으으…….”
가스파르의 입술 바로 앞에서 아일럿의 입술이 벌어졌다. 아랫입술을 제 입술로 무는데 헐떡이는 숨을 담지 못했다. 허벅지 위에 앉고 있으니 다리 사이에 그의 것이 닿았다. 어떻게 움직여도 닿아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그럴 때면 가스파르로 인해 젖은 내부가 좁혀 들었다. 먹고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탐욕스러움이 미숙한 말로 튀어나왔다.
“…가스파르, 하고…… 싶어. 아, 읏, 흐으.”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서로의 앞섶을 맞닿게 해서,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바로 제 안에 삽입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여 서투르게 자세를 잡으니 가스파르는 속으로 조용히 앓았다.
“여기선 안 돼. 나머지는 나가서 하자.”
입는 의미가 없을 만치 풀어헤쳐진 옷을 죄 벗기고서 몸을 겹치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아일럿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반길 텐데. 그런 충동을 이겨내고 아일럿의 몸 위에 겉옷을 입혀 주는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
“……파트너나 노예를 데리고 오기도 해. 신분이 노예라는 뜻은 아니고.”
무슨 뜻인지는 알지? 숨겨진 뒷말을 이해하고 아일럿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파티장에서 빠져나온 이후, 가스파르는 파티에 대해 짧게 설명을 해 주었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끼리 가지는 일종의 교류회. 파트너는 동등한 입장에 선 관계일 때도 있지만 주종의 관계일 때도 있다. 또, 가면을 쓰거나 교류를 허락하지 않으면 벌금이라는 명목의 돈을 낸다.
‘가디테로안 공작님. 오늘은 교류를 하지 않으시나요?’
‘그럴 생각입니다. 비용을 두 배로 내게 되겠군요.’
‘어머, 아쉬워라.’
파티장에 들어설 때, 인사를 나눈다고 생각했던 것이 벌금을 내겠다는 뜻이었다. 아일럿은 말없이 가스파르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네가 그런 상황에서도 흥분하는지 궁금했어.”
“…….”
“실은 목줄까지 채워서 데리고 다니려고 했는데. 아니, 원래 계획은 이랬어. 잠깐만 자리에 앉혀두고 분위기에 익숙해지게 한 다음. 널 만졌을 거야. 여기.”
귀에 닿았던 손은 점차 아래로 내려간다. 상대의 성감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손끝이 달아오른 몸을 조율했다. 하지만 결코 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감각을 기억해내는 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여기, 여기……. 네가 좋아하는 곳은 전부 만져 준 다음, 네가 발기해서 잘 걸을 수도 없게 되면.”
“응.”
가면이 들어 있던 상자 밑에는 목줄이 준비되어 있었다. 가스파르는 그걸 꺼내서 아일럿의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붉은색으로 된 가죽 목줄은 제법 무게감이 있었고, 만져보기만 해도 무척 튼튼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목줄을 채우고, 널 파티장 이곳저곳에 끌고 다녔겠지.”
말만 들어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목줄을 두 손으로 꼭 쥐고서 가스파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다리 사이가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었다. 발기했는지도 모른다.
“넌 틀림없이 흥분했을 거야. 네가 걸어 다니는 자리마다 물이 뚝뚝 떨어져서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르겠어.”
이야기를 듣는 걸까, 아니면 만져지는 걸까. 목소리가 손 같다. 긴장한 목으로 침이 흘러 들어갔다. 조금 몽롱해졌다.
“허벅지를 좁히고, 발끝을 오므렸겠지? 혹시나 유두가 옷 밖으로 도드라질까 봐 걱정했을 거야. 주먹은 꽉 움켜쥐고서, 한 걸음씩 내딛는 것도 어려워하면서 이따금씩 날 애원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
“그러면 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널 대놓고 만졌을 거야. 물론 오르페의 앞에서 만지긴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볼 때 너를 과시하는 것처럼 만지고 싶었어.”
“아…!”
앞으로 뻗은 손이 아일럿을 주인에게로 끌어당겼다. 어조와 표정은 지극히 차분하였어도, 눈동자와 손끝에 담긴 감정은 주체하지 못한다. 정돈되지 않은, 날 것의 흥분이 이글거리며 화살처럼 상대를 향했다. 이윽고 목소리까지 전염이 되었다.
“요즘은 너만 보면 왜 이렇게 갈증이 이는지 모르겠어. 막상 파티장에 들어서니까 입안이 말라서 씁쓸할 지경이 되더라. 덕분에 목줄은 준비해놓고도 채워보지도 못했네. 일부러 네 눈동자랑 똑같은 색으로 골랐는데.”
“…다음에.”
열기가 묻어나오는 소리에 황홀감이 번졌다. 아일럿은 스스로가 이미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거듭 받아들여야 했다.
“다음엔, 그렇게 해줘.”
“다음에도 나랑 와줄 거야?”
고개를 바로 끄덕이려던 아일럿이 멈칫했다. 당연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가스파르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저 의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일럿?’ 하고 부르려던 찰나, 망설이던 아일럿은 제 바지를 스스로 허벅지 중간까지 내렸다.
“……지금… 해 주면.”
“응?”
“여기선, 해도 되는…… 거지?”
바지가 속옷과 함께 무릎 아래로 내려갔다. 어설프게나마 다리를 벌리고, 손으로 잡아서 다리 사이를 보이는 모습이 유혹적이었다. 가스파르는 본인이 말한 대로 갈증이, 최근 들어 강하게 느끼고 있는 그 목마름이 제 입안을 메우고 있음에 저도 모르게 입술을 짓씹었다. 쑤셔줄 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주름이 움찔했다. 기구를 사용했으니 어느 정도 풀리긴 했을 테지만, 손가락을 가져가려다 아일럿에게 붙잡혔다. 눈이 마주치자 먼저 고개를 저었다.
“바로 넣어도-”
돼, 라는 말은 숨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누구의 숨소리인지는 모른다. 흥분에 못 이긴 가스파르가 한번 이를 갈았다. 그러다 바지를 벗기는 시간도 견디지 못하여, 아일럿의 몸을 옆으로 돌려 눕히고서 왼손 엄지로 구멍을 잡아 벌렸다. 제 것을 쑤셔 넣을 곳이 벌름거리고 있었다. 파티장 안에서 넣어두었던 딜도가 안을 적시는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인 덕에, 내벽에 고여 있던 액체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숨을 짧게 들이키고는 곧장 귀두를 가져다 대니, 굶주려 있던 아랫 입이 침을 흘리며 받아먹었다. 입구에서는 퍽 부드럽게, 하나 안쪽에서는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오물거리다가도 짓씹는다.
“으, 응…!”
나머지 부분이 깊게 밀려들어 갔다. 전부 담고 나서는 내벽이 가스파르의 것에 달라붙어서 스스로를 그에 맞추어 모양을 바꾸고, 상대방을 잡아먹으려 했다. 허리를 뒤로 뺄 적이면 혼이 빠져나가는 양 어질해졌다. 서로의 머리를 찍어 내리는 듯한, 섬뜩하기까지 한 쾌감이 수차례 이어지자 가스파르도 평소처럼 아일럿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탐하기 바빴다. 아일럿은 추삽질을 당하며 신음조차 턱, 턱, 끊기고 있는데, 제 어깨를 잡고 있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 물었다. 손가락 사이의 연약한 살이 혀에 닿았다.
“하아, 읍, 으… 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몰아붙여 지는 주제에-
발목에 걸려 있던 바지가 완전히 벗겨져서 마차의 어딘가로 던져졌다. 성기를 빼내지도 않고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몸을 들어 자세를 바꿨다. 이번에는 양쪽 발목이 단단한 손아귀에 붙잡혔다. 열꽃이 피어오른 신체가 눈앞에 훤히 드러났다. 나는 네 것이라고 속닥거리는 몸이 참기 어려울 만큼 사랑스럽다. 감정은 곧 행동으로 나타났다.
“흡!”
다 빼내고서 단숨에 쑤셔 박았다. 길들여진 몸은 약간의 통증을 느끼면서도 뒤이어 다가오는 쾌감을 알아서, 그 이상을 원했다. 살이 매섭게 맞부딪쳤다. 상기된 얼굴로 가스파르를 쳐다보는 아일럿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가깝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이미 서너 번은.
“히, 윽…. 아흐, 읏, 우, 흑, 읏…!”
박히는 동안 물 같은 것이 아일럿의 귀두 끝에서 짧게 쏟아졌다. 필시 제가 무엇을 싸지르고 있는지도 모를 터였다. 접합부과 조여들었다. 안으로 출입하는 핏줄 선 성기를 반겼다.
“좋아, 너무 좋아. 아……. 거기, 흐, 너무 좋아아, 아-”
배 속을 뒤집을 만치 꽂혀왔다. 의식이 까맣게 물들었다가 이내 밝아졌다. 겨우 가스파르의 얼굴을 보면서 버티고 있었다. 몸을 겹치고 나서는 유두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손가락 사이에서 비틀리고, 잡아당겨지고……. 위에 저를 태워서 주변의 살까지 입에 넣고 빨아들여 주는 찰나에는 눈물로 안경이 더러워졌다.
“힉, 아, 아, 아으… 흐으으윽!”
아무리 잡아도 모이지 않는 가슴을 약간이나마 봉긋하게 만들어 놓고, 차례로 씹어대다 내키면 유두를 앞니 사이에 대고 빨아들였다. 타액으로 젖게 된 유두는 짙은 붉은색이 되고, 뾰족하게 솟아올랐다. 가스파르는 그리 된 유두를 만족스레 쳐다보고는, 핥아주는 시늉을 하다 멈췄다. 아일럿이 기대하는 눈빛을 보낸 걸 알아서.
“읏, 아, 아…….”
느렸다. 피부결마저 세세하게 더듬는 듯이. 부풀어 오른 유두에 닿기 전에 멈춰 섰다가, 입술과 혀로 짓누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래에서 허리를 쳐올렸을 때, 아일럿은 가스파르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두 다리로 엉켜 들었다. 무리 없이 그를 받아내는 몸이 받아먹고도 욕심을 냈다. 연달아 몸속 가장 깊은 곳을 꿰뚫렸다.
“마구 해줘, 내 안에, 네, 네 거… 넣어줘. 어. 흐, 으으읏…!”
다리가, 그리고 살집이 적은 배에도 떨림이 일었다. 감당할 수 없는 쾌감이 한계까지 치솟았다. 가스파르의 것에 맞게 벌어진 구멍은 다물어지지 못하고, 알맞게 저를 채우는 것에만 반응했다.
“흐, 으윽, 아, 아!”
“으, 읏… 하아, 아일…….”
호흡마저 멈추어 숨을 갈구하며 벌어진 아일럿의 입술을, 가스파르는 저에게로 끌어당겨 집어삼켰다. 끝이 다가왔다. 번져나간 쾌감은 지독했고, 두 사람 모두에게 단 한 번의 절정이 길었다. 신음은 숨결로 변했다. 주변의 소리마저 잠재워 버리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끓어오르던 성욕이 기이한 충족감으로 변했다, 정사를 더 이어가기보다는 신체를 얽은 채로 있고 싶다는 생각이 더 짙었다.
열에 휩싸여 있었던 몸은 서로 겹치고 있는데도 식어가고 있었다. 마차로 스며드는 서늘한 바람 때문이었다. 덥지 않은 건 좋지만……. 이곳은 스칸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니, 여름방학이 너무 짧았다던 가스파르의 말이 떠올랐다. 스칸다도 아닌데, 밤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나 차가운 바람이 분다. 여름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