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70-1과 수많은 기구들
아일럿은 그 뒤로도 몇 날 며칠이 지나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약을 받아먹으며 지냈다. 잠을 자고서 씻고, 식사를 하고 나면 몇 시간쯤 뒤에 가스파르가 늦은 디저트라도 되는 양 색이 다른 잔들을 가지고 왔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약을 받아 마시고, 여성기가 생겨나는 감각에 몸부림을 쳐야 했다.
그게 싫어서 약간의 저항을 해 봤지만, 네 번째부터는 그것조차 그만두었다.
“너희 아버지의 재판이 코앞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쩔 수 없어서 이러는 거야. 아일럿은 잔을 입술에 기울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잔속의 액체가 목을 적셨다. 그 무렵부터는 이상하게도, 약이 메스껍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후로도 쉽게 잔을 비웠다.
“읏… 흐, 아아…….”
물론 약을 마신 다음, 여성기가 생겨나는 감각은 여전했다. 여전히 좋지 않았다. 언제는 가스파르가 보지 않는 틈을 타서 간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손끝으로 긁어 보았다가, 아래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촉에 진저리를 치며 손을 빼낸 적도 있었다.
“이리 와. 아일럿.”
도저히 적응이 될 것 같지가 않은 기분이었다. 비틀거리며 가스파르의 앞으로 다가가자, 그가 저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몸을 뒤로 돌려서 등을 보이게 만들었다.
“…뭘 하려고.”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
“어, 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을 휘젓는 동안, 천천히 뒤로 몸을 눕히는 가스파르의 위로 엎어졌다. 며칠 전에, 그의 성기에 링을 끼우기 위해 엎드렸던 때와 퍽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날과는 달리 바지를 입고 있기는 하지만, 다리 사이에 그의 얼굴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벌써 젖었을 것 같은데. 안 봐도 알 수 있어.”
그렇게 말하면서 바지를 잡아 내린 가스파르는, 엉덩이 골 근처에 아슬아슬하게 바지를 걸쳐두게 만들고는 그 사이로 손을 밀어 넣어 끈적끈적해진 틈새를 어루만졌다.
“느껴져?”
“하으…….”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젖었어.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아무것도, 아, 안 했- 읏!”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매끄러운 살결 위로 이를 세우자, 갑작스럽게 비부를 매만져지고 엉덩이를 깨물린 아일럿은 몸을 앞으로 움츠렸다. 가스파르에게 다시 잡혀서 원위치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렇게 떨지 말고 입으로 해 봐. 그럼 내일 하루는 쉬게 해 줄 테니까.”
입으로 했을 때도 가스파르는 그런 말을 했었다. 하나,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것을 떠올려 보자면 그가 주는 휴식은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가스파르는 기어코 제가 원하는 것을 받아갈 테고, 이 상황을 끝내려면 그의 말을 듣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흐, 으으읏…!”
가스파르의 바지를 내리는 동안, 자신의 그곳으로 뜨겁고 축축한 것이 달라붙어서 미끄러졌다. 손으로 쥐고 있던 그의 옷을 잡은 채 무심코 이를 악물자, 이번에는 조금 딱딱한 것이 스친 듯도 했다. 딱딱한 것은 가스파르의 코, 부드러운 것은 입술일 터였다. 꾹 참으면서 바지를 내리자마자 밖으로 튀어나온 페니스를 입으로 어설프게 물었다.
“흐…… 우웁.”
싫어도 처음으로 구음을 했을 때, 가스파르가 말해 주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입으로 머금고, 혀로 감싸고, 조금 더 입술을 아래로 내려서 깊게 삼켜야 한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식은땀이 났다. 그때는 손을 더 사용했었는데……. 슬그머니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가스파르가 그러지 말라는 것처럼 제 등을 몇 번 두들겼다.
“…….”
방법이 없었다. 눈을 질끈 감고서 혀를 내밀었다. 귀두와 그 바로 아래 정도를 머금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안이 꽉 찬 듯했다. 거기서 혀를 움직여 보려는 찰나,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비부를 입으로 소리 나게 빨았다.
“웁, 읏… 으우, 흐, 읍!”
살짝만 매만져도 물소리가 날 만큼 젖은 곳에 갑작스러운 자극이 쏟아지자 아일럿은 몸을 둥글게 말아 피하려고 했다가, 도리어 더 가까운 곳으로 끌려들어 갔다. 가스파르는 그곳에 완전히 입술을 묻고는 뻐끔거리듯 움직이면서, 혀끝으로 틈새를 갉작거렸다.
음핵에는 닿지도 않았고, 틈을 혀로 가볍게 애무한 것뿐인데도 아일럿은 수차례 사정감을 참아내야 했다. 언뜻 가스파르의 숨결만 닿아도 아랫배가 묵직해졌다.
“기분 탓인가?”
그가 입술을 떼었지만, 여전히 그의 것을 입으로 물고 있던 아일럿이 거칠어진 숨을 애써 골랐다. 제 자리에서 수백 바퀴는 돈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쾌감의 여운이 심장 근처까지 죄 덮어 버린 듯하여 아무리 고르게 숨을 내쉬려 해도 거친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여기가, 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 같아.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작은 틈만 생긴 것 같았었는데.”
쾌감에 벌벌 떨리는 눈꺼풀을 간신히 벌리고 있던 아일럿은 여성기를 양손으로 꼭 쥐는 행위에 크게 놀랐다. 이어지는 바르작거림은 작은 반항이었다. 가스파르는 그럴수록 오히려 자극을 더하듯이 여성기를 한꺼번에 쥐고 양옆에서 문질렀다.
“손으로 잡는 느낌이 처음이랑은 많이 달라졌어. 여전히 작기는 하지만.”
음핵은 물론이고 민감한 질 입구에까지 자극이 전해지자, 당연하게도 아일럿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따라 가만히 있지를 못하네.”
엉덩이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내려치고 나서야 얌전해진 그를 보고, 가스파르는 음핵과 질을 천천히 혀로 핥아 준 다음 다시 손으로 여성기를 쥐어 보았다. 딱 한 번 핥아주고 나니 이제는 손가락에 액이 묻어나올 정도였다.
“아일럿.”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지만, 가스파르는 짐짓 낮은 목소리를 내며 자세를 바꿨다.
“그렇게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
“……?”
아일럿은 여전히 엎어진 채 그에게 비부를 전부 보이고 있었지만, 가스파르가 몸을 뒤로 빼면서 입으로 물고 있던 페니스가 빠져나갔다. 동시에 엉덩이를 바싹 치켜들게 되었다.
“그걸 또 해줘야 정신을 차릴까?”
다정한 척하는 목소리가 제 귓가에 가까워지면서, 손가락이 여성기와 가까워졌다. 젖어 있던 곳으로 손가락 한두 개가 출입하는 것은 무척 쉬웠다. 뒤늦게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고 몸을 버둥거렸으나, 목이 깨물린 채 침대에 납작하게 눌리고 말았다.
“아흐, 아, 아, 안 돼, 그… 그거 하지 마, 아. 흐앗, 읍…!”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질 속에 있는 성감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곳만을 손끝으로 누르고 비벼 주면 얼마 안 가서 몸을 바르르 떨며 이 좁고 뜨거운 곳에서 흘러나온 희멀건 한 액체가 허벅지와 시트를 흠뻑 적시고 만다.
“으, 흐아…. 앗, 윽!”
아일럿은 그 순간에 느끼는 쾌감이 어지간히도 낯설고 괴로운 듯했다. 원래 신체에는 없었던 부위였기에 더.
“시, 러, 어흐, 읏, 하…. 아아!”
액이 쏟아져 나오는 곳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페니스에서도 같은 쾌감을 느끼고 사정을 해 버리자, 아일럿은 축 늘어진 채로 시트만을 움켜잡았다. 지독한 황홀경이 섬광처럼 쏟아져 내렸다가 사라졌다.
“…하, 으읏….”
쾌감의 절정에서 굴러떨어진 몸이 후희를 즐기듯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들썩이며 아직까지 내부에 있던 손을 조여댔다. 그 순간에는 이제 끝났으면 하는 마음과 더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어지러이 충돌했다. 머리가 바라고 있는 것은 전자였다. 하지만 몸이 바라고 있는 것은-
“이제 괜찮을 것 같은데? 링 같은 거 없어도.”
어떤 행동을 취할 틈도 없었다. 그 뒤에 곧장, 링을 하지 않은 가스파르의 것에 몸이 퍽, 소리 나게 꿰뚫렸다. 아일럿은 뒤집힌 채로 제 어깨 위에 있는 그의 손목을 붙잡고서 울부짖듯 신음했다. 질뿐만이 아니라 배 속까지 희롱을 당하는 것 같았다. 몸이 흔들릴 적마다 머릿속마저 범해졌다. 몸에 죄 담지 못할 감각이 뇌를 곤죽으로 만들려는 듯했다.
“하, 읏, 으…. 으그, 흑, 끕…. 하아, 흐악!”
가스파르의 것이 더 이상 들어올 곳이 없다고 생각한 곳으로 끊임없이 밀려 들어왔다. 한계까지 몰아붙이며 귀두로는 내벽을 거듭 긁어내고 있었다. 가스파르가 자세를 바꾸어 제 엉덩이를 두 손으로 쥐고서 추삽질을 할 무렵에는, 치부를 보여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모든 구멍이 가스파르의 것으로 꽉 채워졌으면. 세게 박아줘. 계속. 계속.
“아, 앗… 흐, 좋… 아, 윽…!”
뒤에서 박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 안쪽마저 아픔이 느껴질 만치 찔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될 무렵에는, 제정신이라면 하지 않을 소리가 줄줄 새어 나왔다.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그곳뿐만이 아니었다. 여성기, 그 뒤쪽에 자리 잡은 곳도 그랬다.
“…여기가 자꾸 움찔거려.”
“후… 으읏, 흐, 아…. 응…….”
구멍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가스파르는 움직이는 것을 잠깐 멈추고 연한 주름 위를 손으로 지분거렸다. 어제와는 달리 플러그도 물지 못해서 허전한 걸까. 가스파르가 애널에 엄지손가락을 밀어 넣은 채, 손을 위로 올리는 시늉을 했다. 애널은 물론이고 그 밑의 여성기까지 함께 벌어지는 기분이 들어, 아일럿은 다시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흐, 앗…!”
“여기도 채워지고 싶지?”
“으읏, 응……. 응-”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마음 같아서는 입을 맞춰 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 대신, 가스파르는 포상처럼 손가락을 움직여 아일럿에게 기쁨을 건넸다. 민감해진 몸은 그것으로 또 오르가즘을 느꼈는지, 땀에 젖은 등줄기가 부르르 떨리며 비틀렸다.
“양쪽에서 박히는 건 즐거운 일일 거야, 아일럿.”
말을 마친 가스파르가 제 뺨에 입을 맞추었음을 얼핏 알아차리고 난 이후, 아일럿은 헐떡이는 숨을 달래다가 그만 잠에 빠져버렸다. 자지 않으려고 노력을 할 것도 없었다. 누군가 의식이라는 촛불을 호수로 던져 버린 듯, 순식간에 눈이 감기고 깊은 잠이 찾아왔다.
“자는 거야? 그럼 잠깐만 쉬고 있어.”
가스파르도 준비할 것이 있었기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잠들어 버린 아일럿을 굳이 방해하지는 않았다. 잠깐은 이대로 재워 주는 게 좋겠지. 머리를 쓰다듬고서는 손을 물렸다.
“금방 돌아올게.”
몇 차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변이 고요해졌다. 방에 혼자 남은 아일럿은 꿈과 현실을 부유하며 양쪽을 차례로 오가고 있었다. 가스파르가 말하는 것을 듣긴 들었지만, 팔다리가 침대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고, 어느덧 잠이 깊어져서 더더욱 짙은 어둠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꿈은 꾸지 않았고 그저 사방이 어두웠다. 짙은 어둠이 잠을 몹시도 달콤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그러다가 따끔.
약간의 간격을 두고서 두 번째의 따끔함이 생겨났다. 바늘의 뾰족한 부분은 아니고, 굳이 표현하자면 바늘귀 부분으로 피부 표면을 약하게 누르는 것과 비슷한 아픔이 이어졌다. 크게 신경이 쓰일 법한 것은 아니었다. 잠깐 부스럭거리긴 했어도 이내 다시 잠에 들 수 있을 정도의 일.
“흐, 으읍.”
하지만 그 따끔함이 짧게 아픈 것으로 그치지 않고 민감한 곳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눈꺼풀을 덮고 있던 수마가 서서히 물러났다. 아일럿은 꾹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잠들기 전에는 몸이 침대에 엎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있었다. 물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으, 윽!”
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던 아일럿은 페니스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 허벅지를 좁혔다. 가스파르는 긴장으로 딱딱해진 피부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쉬, 가만 안 있으면 다쳐. 아일럿.”
“아프…흐, 읏…!”
“네가 움직이면 더 아플걸.”
가스파르가 경고하듯 말했지만, 아일럿은 제 다리가 벌벌 떨리는 것과 그의 손을 잡고 버티는 걸 그만둘 수가 없었다. 도저히 벌어질 것 같지 않은 곳으로 이물질이 밀려들어 오는 것은 너무… 너무나도-
“으읏… 아, 아… 윽!”
“하루 종일 꽂고 다니게 만들기 전에 가만히 있어.”
상냥한 목소리로 엄격한 경고를 거듭 내뱉고는 요도 안으로 반쯤 들어간 막대를, 안에서 천천히 돌렸다. 그 아픔을 온전히 감내하게 된 아일럿은 발끝에 잔뜩 힘을 주며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잘 참잖아.”
애널 플러그와 마찬가지로 가느다란 막대의 끝에도 보석이 달려 있었다. 밖으로 나와 있는 부분이 요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서, 아일럿의 눈동자 색과 꽤 흡사한 빛을 띠고 있는 커다란 루비가 귀두 위에서 반짝거렸다.
“5캐럿 정도가 딱 좋은 선택이었네.”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는 새빨간 이슬을 머금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 예쁘다. 좋아.”
“흐-”
잠깐 동안 그 모습을 감상하던 가스파르는, 같은 크기의 다이아가 붙어 있는 막대를 가지고 왔다. 이쪽을 넣었어도 좋았으려나? 더 꽂아줄 구멍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힉…!”
“응?”
몸을 꿈틀거리면 아프다는 걸 아는지, 자신이 감상하고 있는 내내 발끝 한 번 움직이지 않던 아일럿이 허리 아래를 들썩였다가 다시 몸을 굳혔다. 무언가에 놀란 표정이었다.
“아… 안에서, 움직여.”
“조금씩 움직이긴 할 거야.”
“…….”
상인에게서 구입한, 마법이 걸려 있는 막대였다. 아마 요도 안에서 약하게 진동하고 있겠지. 그런데 뭐 어쩌라고? 저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아일럿을 보며 가스파르는 마냥 웃었다. 마치 제가 한 일이 아니라는 양 생글생글 웃다가 덧붙였다.
“처음에만.”
아일럿이 눈을 크게 떴다. 그가 그렇게 말한 찰나에, 요도를 막고 있던 막대의 진동이 처음보다 더 세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고는 조금 더. 더.
“으, 으… 흐으, 아, 아!”
몇 분이 지나자 페니스 전체가 떨리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진동으로만 끝나는 것도 아니고, 끄트머리에 달린 루비가 위아래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막대가 요도 안쪽으로 파고들다 빠르게 나오기를 반복하니, 그 기괴한 통증과 감각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싫어… 흐윽, 아… 아. 읍.”
“이제부터 앞뒤로 박힐 건데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
방금 뭐라고… 되묻지 못해서 입만 벌리는 아일럿의 옆에, 가스파르가 주저앉았다.
“내가 말했었잖아.”
“아, 흐으… 그, 으읏…!”
막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빨리 움직이다 10여분이 지났을 무렵부터 상태를 유지하는 마법이 걸려 있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아일럿은, 이 상황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다급하게 가스파르를 붙잡았다.
“아니면 뭘 생각했는데?”
물론, 그는 아일럿이 원하는 일을 해 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원상태로 돌아간 고환을 제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응? 아일럿.”
“하, 아아…….”
며칠간 잠들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여성기가 자리를 잡고 있던 곳이기에, 그의 손끝에서 양쪽 고환이 굴려지는 감각이 몹시 낯설었다. 금방이라도 가스파르가 좁은 틈새로 손을 밀어 넣고 휘저어대거나 한곳만을 집중적으로 자극할 것만 같았다.
“이쪽에 만든 구멍으로 박히는 거? 그것도 앞뒤로 박히는 거긴 하지.”
순간적으로 통증도 잊고 아일럿은 얼굴을 확 붉혔다. 두 구멍을 다 사용하겠다고 말해서, 당연히… 그럴 거라고만 생각했다. 요도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이 비좁은 공간에 뭔가를 넣으리라고는-
“차라리… 약 먹을게, 약 먹게 해줘.”
“그렇게 하고 싶니?”
“제발…….”
“그렇게 박히는 편이 더 좋아?”
“흐윽, 으… 응. 응……. 그쪽에, 바, 박히는 게… 더 좋아.”
아일럿은 마구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무엇이 됐든 지금보다는 나을 듯싶어서 가스파르가 시키는 말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입으로 말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쩌지, 아일럿? 약이 다 떨어져 버렸어. 아까 먹은 게 마지막이더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머리맡에 앉아 있던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한쪽 다리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다른 쪽 다리도 잡아서 저와 가랑이 사이를 얽게 만들었다.
“하지 마, 아…!”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전히 녹진녹진하게 풀어져 있던 애널은 가스파르의 귀두가 닿자마자 그의 것을 물으려 했고, 요도에 들어가 있는 막대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거기에 가스파르가 자신의 것을 반쯤 삽입하고는 내벽을 자극하며 강하게 치고 들어왔다.
“흐, 익… 힛, 아… 아아-”
“미안. 네가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 다음에는 약을 좀 더 구입하도록 할게.”
“하으윽…!”
진심 어린 얼굴로 사과를 하면서 가스파르가 아일럿의 발목을 움켜쥐고 다리를 벌리게 했다. 딱딱해진 페니스의 끝에 달린 루비가, 반짝거리며 요도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흐읏, 하… 윽, 으응…!”
무릎이 어깨에 닿았다. 그대로 내리찍어대니 긴 페니스가 배 속을 퍽퍽 찧어댔다. 내부가 그에 의해 조율되는 기분이었다. 아니, 아마도 틀림없이.
“아으, 읏, 흐… 아, 앙!”
뾰족할 리도 없는 살덩이가 날카롭게 안쪽을 비집고 들어와서, 제 몸을 절벽으로 몰아붙였다. 끝도 없이 매섭게 밀려들어 오며 격렬히 움직일 적에는 등 뒤에 있는 것이 침대가 아닌, 계속 추락할 수밖에 없는 허공인 것만 같았다.
“그… 아윽, 우으읏… 으으, 앗….”
잠깐 왕복을 멈추는 것 같다가도 요분질을 해대면서 안을 마구 저어놓는 탓에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딱 한 번, 그가 발목을 놓고서 자세를 바꾸며 배가 맞닿을 만치 몸을 붙였을 때 가쁜 숨결을 토해냈으나 곧이어 들이닥치는 쾌감이 목을 조였다. 두 사람의 몸 사이에서 페니스가 짓눌리자, 요도에서 느껴지는 통증도 몇 단계는 올라갔다.
“아, 아, 아… 하아, 흐으윽…!”
하지만 그게 고통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아까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보답 받을 작정일까. 거친 움직임에 쉬는 틈이라곤 없었고, 또 자세를 바꾸었을 때는 제 가슴을 두 손으로 잡고 쏙 들어가 있는 곳을 손끝으로 짓눌렀다.
“…아일럿.”
탁하고 뜨거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어렴풋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안에 쌀 테니까.”
“힛, 으… 흐윽, 흐, 아… 아!”
“다 빨아 마셔. 알았지?”
“흐… 응, 으… 그. 럴…….”
빠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가스파르는 제 것을 안쪽에 쑤셔 박아 넣었다. 이내 그의 몸에도 힘이 들어갔다. 이어지는 짧고 뜨거운 숨이 아일럿의 위에서 터져 나왔을 때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이 아래로 내려가 막대를 잡았다.
“흣, 아… 흐아…….”
가스파르가 사정을 하고 나서 막대를 빼내자, 아일럿은 앞과 뒤에서 동시에 정액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끼고 기이한 쾌감에 무심코 상대의 팔을 움켜쥐었다. 머리는 물론이고 아래마저 얼얼해질 정도였다.
“다 빨아 마시라니까, 너도 참.”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린 얼굴을 쓰다듬으며 가스파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래를 조일 여력도 없는지 제가 들어갔다 나온 자리가 고스란히 남은 구멍에서 정액이 느릿느릿 흘러나왔다.
저걸 정조대로 막아줄까? 잠시 고민해 본 가스파르는 다른 일을 하기로 했다.
“너한테 쓰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
숨소리를 뱉어내는 것도 힘겨워하는 입술이 달싹이는 게 퍽 매력적이었다. 참지 못하고 입을 맞추고 나니, 풀려 있던 눈이 가스파르를 향했다. 아일럿은 떨리는 숨결을 참을 수 없었다. 마냥 다물려 있는 제 입술을 가스파르가 자신의 아랫입술로 감싸는 과정이 무척이나 농밀하고 부드러웠으나, 두 눈은 감겨 있지 않았다.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고 보겠다는 의도가 투명했다. 마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배꼽 아래가 저려올 지경이었다.
“같이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속삭이며 다시 입술을 기울인다. 아일럿은 자연스레 입술을 벌리고 그를 반겼다.
“……우린 앞으로 좀 더 즐거울 거야.”
*
함께 지내는 동안 아일럿이 가스파르에 대해 알게 된 얼마 안 되는 사실, 그건 가스파르 루는 본인이 한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지킨다는 것이었다.
약간은 결벽주의적인 성향이 느껴질 만큼.
그가 교내에서 성자 혹은 천사의 재림 같은 별명으로 불리었던 것이 떠올랐다. 뒤에서는 어떻든 다른 사람에게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었겠지. 그건 지금도 어느 정도는 비슷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일럿은 문득 두려워졌다. 혹시나, 그가 자신의 입으로… 가령, ‘세 달만 지나면 너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선언해 버린다면 정말 석 달이 다 지나기 전에 그렇게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가스파르는 앞으로 좀 더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하게도 그건 성적인 즐거움을 의미한다. 자극. 거기서 더 강한 자극.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그다음이 있거나 알지 못했던 감각이 있었다. 하루에도 수차례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아일럿은 요리를 하기 직전에 팬을 달구는 과정처럼, 여성기가 자라나는 약을 먹였던 것은 그저 첫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매일매일 몸으로 깨달았다.
더욱이 가스파르가 이국의 상인에게서 구입한 물건들은 약과 스스로 움직이는 요도 마개뿐만이 아니었다. 유두를 고정시키지만 집게보다는 고통이 덜한… 반짝거리는 자석, 혹은 링. 내부에서 이리저리 모습을 바꾸거나 끊임없이 진동하는 둥그런 막대도 있었다.
“아!”
하지만 그중에서 아일럿이 제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한 개의 끈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구슬들이 부딪쳐대는 일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흐으, 또…….”
식사 시간과 수면을 취할 때를 제외하고는 시시때때로 몸 안에 들어 있는 구슬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벽을 울렸다. 가만히 있을 때도 뭉근하게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데, 이렇게 되면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으, 읏.”
이런 일은 가스파르가 저를 찾아야 할 일이 생기거나, 괴롭히고 싶을 때 일어났다. 그 대신이라고 할지. 혼자 있는 시간이 종종 생기긴 했지만 이래서는 가스파르와 내내 함께 있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그를 찾으러 다녀야 했기에 더 불편했다.
“저기, 가… 가스파르가.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 나요.”
“주인님은 2층 오른쪽 복도 끝에 있는 방에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하인과 떨어지자마자 아일럿은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등을 입으로 물었다. 부디 멀쩡하게 걷는 것처럼 보여야 할 텐데, 한 발 한 발을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발끝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엉뚱한 곳을 디디는 듯했다.
“흐, 으… 하, 아읍.”
피부 위로 조금 더 이를 세우고서 계단을 향해 걸어가다가 손잡이를 쥐었다. 제 별장보다 몇 배는, 아니 열 배는 족히 클 것 같은 가스파르의 별장은 계단도 많았다. 걷고, 또 걷는 동안 수십 번 주저앉을 뻔하고 나니, 제가 어디 있는지 확인을 한 뒤에 부러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윽… 아, 하아…….”
아마, 분명히.
계단을 오르게 만들려고 거기 있는 게 분명하다. 계단에서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은 뒤 아일럿은 제 자리에서 바싹 굳은 채 몸을 벌벌 떨었다. 사정감이 한계까지 치솟았다. 루비가 달려 있는 막대로 요도가 막혀서 사정을 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정이 임박해지면 막대가 안에서 심하게 울려댔다.
“으으, 읏, 흐. 응-”
빨리 가야 해방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독려하며 간신히 가스파르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스파르의 구두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가 문을 열기 전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벽을 잡고서 다리를 오므렸다. 문이 열리는 데 걸리는 몇 초 정도의 시간이 이 순간은 수십 분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와.”
비틀거리며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내부에서 진동해대는 막대와 구슬 때문에 아일럿은 골반 아래를 벌벌 떨고 있었다.
“가, 갈 것 같… 흐, 앗.”
“그래?”
“가게, 해 줘. 읏…….”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어느 날은 가스파르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결국 스스로 바지 지퍼를 내렸는데, 루비에 손을 대기가 무섭게 진동이 더욱 심해져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몸을 떨어야만 했다.
주인으로 설정된 사람의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 닿으면 그런 식으로 더 난리를 친다고- 가스파르는 뒤늦게 설명을 해 주며 바닥에 엎드려 꿈틀거리던 저를 보고 웃었다.
분명 그때도 숨어 있었을 것이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매일 보면서도 새롭다는 자신의 추태를 보기 위해서.
“좋아. 잘 찾아왔으니까 가게 해 줄게.”
“으으, 흐, 윽.”
아일럿이 서둘러 바지 지퍼를 내밀고는, 가스파르의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바지를 무릎 아래로 끌어내렸다. 막대기를 빼 주려면 굳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처음에 지퍼만 조금 내렸을 때 가스파르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을 보고 나서부터는 바지를 거의 벗고서 허리를 들었다.
“하으, 아… 앗, 흣…!”
빼내기 전에 부러 서너 바퀴를 천천히 굴리는 가스파르의 버릇 때문에 숨통이 조이는 듯했다. 그런가 하면 거의 다 빼냈다가도 도로 밀어 넣는 시늉을 하고, 결국 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질 때가 되어서야 루비를 잡고 막대를 뽑아냈다.
“아, 아… 흐으, 아흐윽!”
그 순간에는 압축된 쾌감이 알싸한 통증과 함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마구 내젓다가 몸을 웅크린 아일럿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천천히 몸을 흐트러뜨렸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팔다리가 간헐적으로 떨리는 것을 보면서, 가스파르는 엉덩이 골 사이로 삐죽 나와 있는 끈을 단숨에 잡아당겼다.
“흐윽, 아, 아… 흐, 큿-”
방심했던 몸에 폭력 같은 쾌감이 가해지자, 애처롭게 떨리던 허리가 잘 벼려진 칼날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휘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허리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기니 헐떡이는 몸이 가스파르의 몸에 감겨오는 듯했다.
“침대로 갈까?”
“…….”
“아니면 다른 곳이 좋아?”
요구를 들어주었으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였다. 가스파르가 나지막이 물어오자, 아일럿은 몇 번 제 입술을 깨물고는 겨우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침대가 좋아.”
체격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데, 가스파르는 자신을 안아 올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목에 팔을 감은 채로 매달려서 침대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제는 희미해진 수치심과 거부감이 신발 속으로 들어간 모래알처럼 얕은 불편함을 주었지만 그것조차 침대에 등이 닿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아, 해 봐.”
“아…. 아?”
머뭇거리다 그가 벌린 크기대로 입을 벌리자, 혀가 질척하게 얽혀 들어왔다. 가스파르는 종종 키스를 한 적이 있었지만 매번 달랐다. 그가 숨을 불어넣으면 호흡마저 그의 통제하에 들어갔고, 입안의 감각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을 만치 예민해졌다. 그 상황에서 이어지는 손길에, 열이 솟구쳐 전신을 덥히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링은 필요 없지?”
쾌감에 젖어, 아일럿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저녁이 되기 전까지 가스파르와 몸을 엮은 채로 보냈다. 앞서 사용했던 기구들은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역할일 뿐인지라, 내내 전희만을 오가고 있었던 몸은 익숙한 침입을 기쁘게 반겼다.
“아… 으읏!”
그 시간 동안은 목전에서 일어나는 일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기에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당장 해야 할 걱정거리가 없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상황이 달라졌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가스파르가 전날 사용했던 기구에 질리게 되면, 베개에서 머리를 떼기도 전에 새로운 물건이 침대 위로 도착했다.
처음에는 유두에 붙여놓는 자석과 모양을 바꾸며 진동하는 두툼하고 물컹거리는 막대였다. 그다음이 요도와 애널에 들어가는 아주 가느다란 막대와 끈 하나에 줄줄이 매달린 구슬.
벌써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전날에 가스파르의 밑에서 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신음했던 아일럿은 매번 무방비한 상태에서 그의 선물을 열게 되었다.
“자, 열어 봐.”
“또…?”
“어서.”
오늘 아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이 세 번째. 아일럿은 주먹을 꽉 쥔 채로 리본을 잡아당기고, 미약하게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상자의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구슬 같은 것은 아닐 것이라 짐작했으나, 종류가 다를 뿐 구슬과 다를 바 없었다.
“얼굴이 창백해.”
손가락 끝으로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뺨을 찔렀다. 한 번. 두 번. 가스파르는 굳어진 턱밑을 슬슬 간질이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겉옷은 입혀줄 테니까. 이것도 내가 입혀줄 거고.”
안에 들어 있는 건 가죽끈이었다. 차마 옷이라고도, 속옷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냥 끈. 이전에 입었던 것은 천 쪼가리 비슷한 것이라도 달려 있었으나 이것은 그것마저도 없었고, 가죽끈이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데다 입고 나니 가슴, 엉덩이, 허벅지를 꽉 조였다. 설상가상으로 그중에 가장 얇은 끈이 엉덩이 사이로 파고들어서 고간을 지나고 있었다.
“으…….”
살짝 움직였는데도 성기를 자꾸만 건드리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가스파르가 가죽끈을 온몸에 두르는 동안 움찔, 움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끝을 오므리던 아일럿은 그가 마지막으로 끈을 잡아당겨서 고정했을 때, 화들짝 놀라서 하마터면 근처에 있던 상자를 엎을 뻔했다.
“앗. 윽.”
“안 되지. 아직 여기 들어 있는 게 있는데.”
가스파르는 상자가 바닥에 엎어지기 직전에 안에 있는 물건을 낚아챘다. 안에 삽입하는 형태만은 아니길 바랐던 아일럿의 소망대로, 삽입을 하는 형태는 아니었으나 안타깝게도 유두에 부착을 하는 형태였다.
“이걸 쓰려면 나올 때까지 좀 만져줘야… 음?”
“…….”
주렁주렁 장식품이 달려 있는 자석을 한 손에 든 채, 아일럿의 한쪽 유두를 손가락으로 굴리다 쥐어짜는 것처럼 움켜쥔 가스파르는 눈을 크게 떴다. 평소보다 쉽게 밖으로 튀어나온 유두가 손끝에 걸렸다.
“요즘 들어 빨리 나오게 되긴 했지.”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 입으로 할 필요도 없이 손으로 만져줬을 뿐인데 금세 모습을 드러낸 유두에 각각 두 개의 자석이 달라붙었다.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고, 장식이 달려 있긴 해도 옷으로 가릴 수 있을 정도인 건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모양은 별로인데 방울 소리가 듣기 좋더라.”
맑은 방울 소리가 났다. 잘랑잘랑, 귀를 기울여도 다른 사람이 듣기는 힘든 소리였다. 밀착을 한다면 모를까……. 그렇다고는 해도, 들킬 요소가 있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어깨만 살짝 틀어도 들려오는 방울 소리에, 하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가 차게 식기를 반복했다.
“아일럿.”
“…가스파르, 이건.”
“겁먹지 마. 나 말고 너한테 이렇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이 없게 하면 되잖아.”
방울 소리를 내는 유두를 가볍게 찌르고 손끝으로 작게 굴리면서 가스파르가 속삭였다.
“그럼 들리지도 않을걸.”
속삭임이 가까워지는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이 좁아졌다. 때마침 2층으로 올라온 집사가 문을 두드리지만 않았어도, 가스파르는 밤새 울렸던 몸을 아침부터 다시 울렸을 것이다.
“주인님.”
“아침부터 무슨 일이지?”
가죽끈으로 묶인 몸을 가리기 위해 아일럿은 황급히 옷깃을 여미고, 방해를 받은 가스파르는 다소 불친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주인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집사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다름이 아니오라 아일럿 님의 하인이 아일럿 님을 만나 뵙길 청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집사의 말을 듣고 난 아일럿이 무심코 가스파르를 향해 눈을 굴렸다. 그 또한 아일럿을 바라보고 있었고,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만나야지 어쩌겠어.”
가스파르의 대답은 의외로 시원스러웠다.
“다녀와, 아일럿.”
엉거주춤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아일럿은 집사의 뒤를 따라 응접실로 향했다. 어쩐지 마음이 심란했다. 그래서 응접실에 도착하자마자 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하인을 향해 이상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도련님!”
“룹, 어쩐 일이야? 여긴 왜 왔-”
“예?”
“아니… 그러니까.”
저지르고 나서야 문제점이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아일럿은 말하고 난 직후에 바로, 위화감을 느끼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같은 집안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을 맞이하는 듯한 말투 같지 않았던가. 그 탓인지 룹도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얼굴을 보며 아일럿은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냥. 호, 혹시 큰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버벅거리다 황급히 말을 이었다. 룹은 그제야 당황스러운 기색을 덜어낸 듯했다.
“네, 도련님. 그게… 노메인에 사시는 숙모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별장의 응접실에 앉아 계십니다.”
“숙모님께서?”
노메인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족히 며칠은 걸릴 텐데, 그 먼 곳에서 숙모가 스칸다로 오다니. 물론 인접한 다른 도시에 용무가 있기에 겸사겸사 왔을 가능성이 컸지만, 인사조차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일단은 가스파르한테 이야기하고 올게. 먼저 돌아가서, 숙모님께 내가 곧 가겠다고 전해드려.”
“알겠습니다. 도련님.”
“그래. 고마워.”
가스파르에게 이야기를 하면 집으로 보내 줄까? 룹을 응접실에서 먼저 보내며 자리에 멈춰선 아일럿은 문득,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때부터 며칠이나 지났지? 내내 잊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가스파르가 말한 시간은…….
‘앞으로 6일 더.’
벌써 다 지나고도 남았다. 아니, 적어도 보름은 되었으리라. 한데 그동안 단 한 번도 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별장에 관해서는 다 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에 대해서도.
가스파르의 별장에 얽매여진 이유가 애초에 무엇이었던가. 전부 집안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집안에 대해서도, 부모님에 대해서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몹시도 충격적인지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아.”
우두커니 한 자리에 서 있던 아일럿은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2층 방에 있던 가스파르가, 응접실 문 앞에 서 있었다.
“하인이 뭐라고 했어?”
유순하게마저 느껴지는 얼굴을 보고, 아일럿은 숨을 집어삼켰다. 가스파르의 얼굴은 정말인지 온화하고 상냥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줄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별장에 숙모님을 뵈러 다녀오고 싶다는 부탁 정도는 들어 줄 것처럼 보였다.
“저기.”
“응. 말해.”
입안의 침이 긴장으로 끈적끈적해졌다. 어떻게든 말을 하긴 해야 했으므로,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숙모님께서 별장에 찾아오신 모양이야. 멀리서 오셨는데 만나지도 않고 그냥 돌아가게 하실 수는 없으니까.”
“그래?”
“잠깐만 다녀올 순 없을까? 가서 인사만이라도 드리고 올게.”
가스파르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일럿은 혀 위에 고여 있던 침을 꿀꺽 삼켰다. 가스파르라는 사람 자체가 두렵다기보다는,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두려웠다. 하나, 지금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과는 사뭇 다른 듯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무심결에 소매 끝을 쥐었다 놓고 나니, 가스파르는 룹을 만나는 것을 허락했을 때처럼 시원스럽게 답했다. 문제는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었다.
“다녀와. 지금 그대로.”
“이대로 다녀오라구?”
“옷은 그렇게 입고 가도 괜찮지 않아? 숙모님 앞에서 옷을 벗을 게 아니라면 말야.”
셔츠가 얇지 않은데다 어두운색이니 속이 비치지도 않고, 베스트를 입고 있으니 유두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일 리도 없었다. 심한 자극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조심히 다녀와, 아일럿. 너무 늦지는 말고.”
옷으로 가리긴 했어도 숙모의 앞에서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뜨거워지고 안면에 열이 몰렸다. 저한테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실 텐데. 숙모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죄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것만 같았다.
“아일럿. 대답.”
“…응. 알았어.”
“좋아.”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가스파르는 몸을 돌렸고, 아일럿은 달아오른 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벨트와 유두에 붙어 있는 자석들이 약간씩 더 조여 오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걸 벗고서 가겠다고 말하면 혹시나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더 심한 짓을 한다거나…. 예를 들면 정조대 같은 것. 그런 걸 채워서 보내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 여기자고 애써 생각하며, 아일럿은 편하게 풀어헤치고 있던 두어 개의 단추를 괜스레 여몄다.
“참, 말하는 걸 잊고 있었네.”
응접실을 나서려던 가스파르가 자리에 멈춰 섰다.
“너희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 잘 해결된 모양이야. 최종 재판도 좋게 끝낼 예정이라고 새벽에 연락을 받았어.”
“정말?”
“내가 말해 주는 것보다 별장으로 돌아가서 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낫겠지. 아마 저녁이 되기 전에 그쪽으로도 사람이 도착할 거야.”
“…….”
“그러니까 너무 늦지 말고 돌아와. 알았지?”
“그렇게 할게.”
이번에는 가스파르가 대답을 종용하기도 전에 아일럿이 먼저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