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삼각 목마, 그리고 가스파르의 접대
‘부인. 다른 방은 얼마든지 열어서 봐도 좋지만 저 방은 절대 열어보지 마시오.’
가스파르의 별장으로 돌아온 아일럿은 문득 푸른 수염의 한 구절을 떠올리고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도망칠 곳도 도와줄 사람도 없이,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푸른 수염의 아내가 된 기분이었다.
푸른 수염의 아내는 남편이 다른 지방으로 간 사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고 했던 방의 문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그 안에는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던 아내들의 시체가 걸려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준 열쇠에는 피가 묻어 지워지지도 않았다. 꼼짝없이 푸른 수염에게 이 사실을 들키게 된 아내는, 다른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서 푸른 수염을 죽이고 그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는데-
도와줄 수 있는 가족도 없고.
가스파르를 죽이게 된다 해도 들키지 않을 리가 없고.
상속은커녕 화형대로 끌려갈 게 뻔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전히 허벅지 안쪽에 새겨진 숫자 2는 지워지지 않았고, 꼼짝없이 이 방 안에서 가스파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비참함도 비참함이었지만, 편지에 적혀 있던 그의 경고가 떠올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어젯밤에도 혼자서 세 번이나 했다고, 사실대로 말해 버린 참이지만, 몸에 아예 흔적까지 남아 버린 것은 또 이야기가 달랐다. 그가 자리를 비운 지 얼마나 됐다고- 가스파르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잠들고 나서 이대로 깨어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아.
다음날 새벽에나 스칸다로 돌아올 것 같다고 편지에 적혀 있던 대로, 자정이 넘었음에도 가스파르는 별장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나 아일럿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런 생각을 반복했다. 그러다 하늘이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을 즈음, 피로가 눈을 덮어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가스파르는 새벽이 아니라 아일럿이 눈을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정오에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좋은 아침, 아일럿.”
겉옷을 집사에게 넘겨준 가스파르는 산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도에서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얼굴이 활짝 피어나 있는 것을 보고 아일럿은 무심코 뒷걸음질을 쳤다. 하나, 아랑곳하지 않고 막 얼굴을 씻고 나온 아일럿의 하얀 뺨에 입을 맞춘 가스파르는 유달리 뾰족한 한쪽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말 진저리가 나게 잘생긴 얼굴을 하고서.
“다녀왔어.”
얼굴만 보면 성화에 등장할 것도 이상할 게 없는데, 하는 짓은……. 내면이 극단적으로 썩어 버린 탓에 외면으로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일럿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굴렸다.
“정조대는 계속 차고 있었어?”
“그… 걸 끼고서 어떻게 생활을 해.”
“그건 그렇지.”
혹시나 그걸 계속하고 있어야 했던 걸까. 가스파르가 물었을 때 움찔했지만 그의 대답은 담백했다. 예상대로, 계속하고 다니게 할 생각으로 입혀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네 손으로 직접 풀었으면 해서 채워둔 거기도 하고.”
……속으로 욕을 해 버리고 말았다.
“참, 아일럿. 오늘 조사가 끝나면서 압수가 해제됐어. 딱 절반이지만.”
“그러면-”
“나머지도 시간문제지. 내가 계속 힘을 써 준다면.”
“…….”
“일이 굉장히 관대하게 진행됐다는 건 잘 알고 있니? 몰라주면 서운해.”
“…어떻게 모르겠어.”
“어쩐 일이야? 제법 마음에 드는 답인걸.”
기껏해야 입이나 다물고 있을 줄 알았더니. 의외의 대답에 가스파르가 한층 유해진 표정으로 아일럿의 어깨를 잡았다. 함께 안으로 들어왔던 하인들은 알아서 자리를 비켜준 지 오래였다.
“자, 그럼 옷 벗어봐.”
“지…… 지금 하려고?”
“널 위해 힘쓰고 왔으니 그만한 보답을 받아야지 않을까? 수도에 가서 계속 일하고 왔는걸.”
그렇게 일만 했으면 피곤할 테니 잠이나 자 버려. 아일럿이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애써 삼키는 동안, 가스파르는 벌게진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서 그가 숨기고 있는 일을 눈치챘다.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 수치로 인한 망설임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망설임인 것이.
“이미 알고 있는 거면 저질러 버렸다는 거네?”
“그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살짝 아픈 일을 당하게 될 거라고.”
“아… 싫어!”
가스파르가 제 바지와 속옷을 무릎 아래로 내려버렸다. 그러고는, 다리를 오므릴 틈도 없이 허벅지 사이로 양손을 넣어 두 뼘 넓이로 벌리게 만들었다.
“어디 볼까.”
늘어진 페니스가 거슬렸는지, 가스파르가 물건이라도 된다는 양 아일럿의 것을 잡고 들었다. 그러고는 숫자가 적힌 그의 허벅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두 번이나 했어?”
“으, 흡…….”
거기까지 보고 나서 아일럿은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두 손안에 가려진 얼굴이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눈 주변까지 열이 올라왔다.
“어디서?”
아일럿이 대답하지 못하자 가스파르는 엉덩이 바로 아래를 소리 나게 후려쳤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원체 수치스럽다 보니 유독 아픈 듯했다.
“내, 내 별장에서.”
“기껏 별장에 보내줬더니, 하고 온 일이 그거야? 혹시 하인들이랑 붙어먹고 온 건 아니고?”
“아니야…! 하인들과는 절대. 흐, 윽.”
손가락 끝이 다물어져 있던 입구 위에서 빙글거렸다. 들어가지는 않은 채, 위에서만 원을 그리는데 아일럿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이렇게 예민해졌는데 다른 남자를 안 찾는 게 이상하긴 하지. 그렇지만 아일럿, 난 이미 경고했어.”
“아, 흐……. 앗!”
가스파르가 손쉽게 아일럿의 성감대를 찾아내어 자극했다. 이미 눈을 감고도 손끝으로만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셀 수 없이 만져 주었던 곳이었다. 다른 곳보다 약간 부풀어 있는 곳을 손끝으로 굴리던 가스파르는 장난스럽게 아일럿의 목에 이를 세웠다.
“마침 수도에서 재미있는 선물을 받아서 가지고 왔는데, 오늘 사용할 수 있겠구나.”
*
스카프 비슷한 것으로 눈이 가려졌다. 거기에 양손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아일럿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떨리는 몸을 애써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바지는 이미 벗겨진 지 오래였고, 상의는 입고 있긴 했으나 가스파르와 몸이 맞닿았을 때 윗부분의 단추가 죄 풀려 버렸다. 어떻게 봐도 단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꼴은 아니었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가스파르가 그렇게 말한 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방안이 고요했으나 두려웠다. 혹시나 하인들이 들어와서 이 꼴을 보게 될까 봐. 이미 어느 정도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지만, 특히 그와 가까운 집사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피할 길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오래 기다렸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가스파르의 발소리가 들렸다. 다른 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뻑뻑한 바퀴 소리가 들렸다. 끼리릭, 끼리릭, 제법 무게가 있는지 소리조차 묵직했다.
“……?”
가스파르가 그것을 제 가까이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 얼핏 느껴졌을 때, 그가 제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뭐 하는…!”
“조금 더 앞으로 가, 아일럿.”
“앗……. 흐으.”
가스파르가 들고 있던 세 뼘 길이의 원형 나무막대기로 아일럿의 엉덩이를 찔렀다. 몇 발자국 더 가라는 것처럼 서너 번을 더. 가늘지만 딱딱한 탓에 여린 살이 꾹꾹 눌리고, 그때마다 움찔거리며 수치스러워하는 아일럿의 반응이 따라오니 가스파르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아. 멈춰. 움직이지 마.”
아일럿은 어깨너비보다 조금 넓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그 사이에 있다는 것은 알았어도 눈이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거친 숨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입술을 사리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기다려.”
음식을 앞에 두는 개한테나 할 법한 말이었다. 아일럿은 다시 방치되었다. 아마도 이전에 기다렸던 시간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그 기다림의 끝에 돌아온 가스파르는, 다리 사이에 있는 물건을 몇 번 만지는 듯싶었다.
“네가 골라. 여기에 약을 뿌려 줄까, 말까?”
여기?
의아해하는 찰나, 정체를 알지 못했던 물건이 제 허벅지에 닿았다. 여전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위로 갈수록 좁아진다는 것과 딱딱하고 서늘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아프지 않게 여기에 약을 뿌려 줄게.”
“무, 무, 무슨.”
“바르고 방치해두면 기분 좋아지는 약이야. 아픈 일을 당하더라도 몸이 그렇게 느끼지 않게 해 주지.”
제대로 대답을 하려 했으나 입술이 발발 떨렸다. 가스파르가 제 발목을 그 물건에 묶어놓은 후에는 더욱 그랬다. 발목이 완전히 밀착되었다.
“아일럿, 대답해야지.”
무심코 몸을 앞으로 굽히자,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 고개를 뒤로 젖히고 허리를 똑바로 펴게 만들었다.
“이렇게 변태 같은 짓인데 기분 좋아지는 건 싫지? 그럼 차라리 아픈 편이 낫지 않아?”
“아… 윽.”
“어떻게 할까. 말해 봐.”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랐다. 가스파르는 이제까지 한 번도 아플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놓고 벌을 주겠다고 선언했고. 당장 눈이 가려져 있어서 발밑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엇인지 모르기에 두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약 뿌려줘.”
“크게 말해.”
이 거리에서 아무리 작게 말한다 한들 들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 다시 말하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약.”
울컥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소리를 내었다.
“약. 뿌려줘.”
“왜. 참아보지 않고.”
“…….”
“그렇게 기분 좋아지고 싶어? 하긴, 너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두 번이나 자위를 해 버렸으니.”
말을 마치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병을 아일럿의 엉덩이 골 사이에서 기울였다. 주르륵 흐른다기보다는 꿀처럼 진득하게 흘러내리는 액체를 골고루 펴 바르면서,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고환과 성기를 쥐었다 놓기도 했다. 아니, 장난감처럼 주물거렸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하지?”
헐떡이고 있던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무어라 말했는지 듣지 못했다. 그가 손을 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운이 몸에서 떨어지지 않아 가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아래쪽에 있던 것이 불쑥 위로 솟아올랐다.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고, 좁고 날이 서 있는 윗부분이 제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이게 뭐… 뭐, 흐악!”
“네가 혼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럼 실컷 혼자 하게 해 줄게.”
윗부분이 단순히 좁아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뾰족한 부분이 다리 사이로 파고들자 아일럿은 기겁을 하며 몸을 버둥거렸지만 양쪽 발목이 옆으로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버둥거리면 더욱 파고드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힘을 주고 날뛸수록 맞닿아 있는 모든 부분에 날카로운 고통이 스며들었다.
“흐으윽……!”
하나 가스파르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던지, 아픔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선연한 쾌감이었다. 찌르는 듯한 아픔 뒤에는 반드시 쾌감이 뒤따라왔다. 그러나 고환같이 예민한 곳이 눌리면 얌전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곳에도 약을 발랐을 텐데, 거듭 통증이 느껴져 눈을 가린 천 위가 젖어 들어갔다.
“많이 아프지?”
“아, 아, 윽……. 아파, 앗…….”
“이럴 때 다른 감각에 집중을 하면 훨씬 나아져.”
“…하, 으읏, 아!”
아일럿이 앉아 있는 삼각 목마의 아랫부분에는 여러 장치가 있었다. 가령, 아일럿이 앉아 있는 위치에 맞춰서 적당한 사이즈의 딜도를 나오게 하는 기능 같은 것. 제대로 풀어지지도 않았던 곳으로 딜도가 파고들자 아일럿은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도 잊고서 골반을 꿈틀거렸다.
“으… 하아, 하…….”
곧바로 몸을 굳히기는 했지만 아픔은 빠르게 사라지고 쾌감이 자리를 잡았다. 턱을 치켜든 채 끊어질 듯한 신음을 토해낸 아일럿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를 슬그머니 움직였다. 환희가 뭉근하게 피어올랐다. 몸이 그 감각을 조심스레 쫓고 있었다.
“흐읍. 윽…… 우, 으읏-”
싫어. 싫어. 가스파르가 옆에 있는 걸 잊은 아일럿이 도리질을 쳤다. 가스파르는 만면에 미소를 띠운 채 그의 어깨를 잡아 아래로 내렸다.
“안 돼. 하지, 하지 마, 앗, 아, 아…!”
“왜? 기분 좋잖아. 계속해, 아일럿.”
한꺼번에 노도처럼 찾아온 감각이 아래뿐만이 아니라 전신을 두들겼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오로지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마, 눈을 가리지 않았더라도…….
“흣, 그… 읏, 흑. 으읏… 흡!”
가스파르가 제 허리를 잡아서 딜도를 더 깊숙한 곳까지 받아들이도록 하는 동시에, 뾰족한 부분으로 회음부와 고환을 짓눌렀다. 그 순간에는 아픔이 쾌감으로 변하는지, 아니면 아픔 자체가 쾌감인지 알 수 없어졌다. 몇 분도 채 안 되어 허무하게 사정해 버린 아일럿은 삼각 목마 위에서 처량하게 늘어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너무 흥분한 거 아니야? 평소보다 빠른걸.”
“…….”
“2가 3으로 변했어. 네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무렵이면 얼마나 숫자가 바뀌어 있을까?”
제발 이걸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벌만이라도 끝나면 좋을 텐데.
바람과는 달리 가스파르는 이제 시작이었다.
“자, 그럼… 내가 편지를 쓰는 동안 잠깐만 혼자 놀고 있어.”
“뭐어?”
“어쩔 수 없어. 중요한 편지인걸.”
아일럿이 무어라 더 말하기 전에 가스파르가 덧붙였다.
“너희 집안에 생긴 일 때문에 보내야 하는 거니까. 굉장히 중요한 편지지.”
“…….”
“관련 기관에 압박을 넣어주지 않으면 안 되잖아. 아니면 보내지 말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이기는 했다. 지금 당장 보낼 필요는 없어도 보내긴 해야 하는 편지였다. 보내지 않으면 아일럿의 집안은 상당히 곤란해질 것이다. 순전히 제힘으로 상당한 특혜를 제공받고 있는 상태였으므로.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아일럿? 아니면 지금 너랑 놀아줄 수도 있고.”
풀어헤쳐진 앞섶 사이로 손을 넣은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유륜 주변을 잘 다듬어진 손톱 끝으로 살살 건드리다가, 근처에 놓아두었던 병을 가지고 왔다.
“어, 얼마나 걸리는데….”
“글쎄. 내가 의외로 편지를 쓰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거든.”
가스파르가 유두를 자극하는 것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천 속에 가려진 눈을 꽉 감으며 견디는데, 그가 다리 사이에 사용했던 액체를 가지고 와서 옷 위에 뿌렸다.
“읏…….”
여름옷은 피부에 쉽게 달라붙었다. 더욱이 하얀 옷. 그의 눈에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떠올리자 마냥 참담했다.
“어떻게 할 거야? 귀엽게 부탁해 봐.”
묻혀 있는 상태인지라 젖어 있음에도 제대로 도드라지지 않는 유두를, 옷 위에서 검지와 중지를 붓처럼 움직여 쓰다듬고 있던 가스파르는 그 위로 숨결을 길게 불어넣었다.
“하, 으… 읍.”
대답이 늦춰질수록 가스파르는 제 몸을 더욱 농락하기만 할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게.”
“뭘?”
“네, 네가 와서. 마… 만져 주는 거.”
“좋아. 마음에 들어.”
턱밑의 여린 살을 한 번 간질이고서 가스파르가 멀어졌다. 편지를 쓴다는 것은 사실이었는지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난 뒤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종이 위에서 펜촉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읏……. 읍.”
엉덩이에 뭔가 닿았다. 살랑거리는 듯한 감촉인 걸 보니 커다란 깃털인 듯했다. 맨살에 닿는 감각이 간지럽고 이상해서 닿지 않으려고 애는 쓰는데, 자세가 조금만 바뀌면 꼬리뼈 부근을 간질거렸다. 가만히 있어야 그나마 자극이 덜할 텐데.
“아-”
단순히 안에 들어온 채, 멈춰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살짝 움직일 때 들려오는 질척이는 소리도 그랬다. 젖을 리 없는 곳마저 죄 젖어버린 것처럼.
“하, 아으…….”
허리를 움직이고 싶었다. 자신을 매섭게 몰아붙이는 가스파르의 것에 비하며 크기가 적당해서, 마음껏 움직이면서 무리가 되지 않을 만큼의 쾌감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고, 무심코 생각해 버린 아일럿은 울고 싶어졌다.
안대에 눌려 있던 눈꺼풀 사이에서 기어코 눈물이 번져 나왔다. 손을 쓸 수도 없는 변태가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고 있는데, 고작 한다는 생각이 이 모양이라니. 달뜬 몸을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서러웠지만, 생각마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이 비참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옅어졌다. 비참함은 머릿속에 있지만, 감각은 제 신체를 자유로이 돌아다니면서 감정을 마비시키고 있는 탓이었다.
“흐으, 크… 윽.”
아파야 하는 곳마저 기분이 좋다. 딜도를 삼키고 있는 내부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가스파르가 이상한 약을 발라 버려서, 그 때문에 더 민감해진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일럿은 가까스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저 자신을 다잡으려 했다. 다 그것 때문이야. 싫은데도 결국에는 몸이 움직였다.
“흐…… 아.”
테이블은 멀리 떨어져 있고, 가스파르는 계속 편지를 쓰고 있었다. 조금쯤은 움직여도 보지 못할 거라고 여기며 허벅지로 목마를 꽉 붙잡고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가스파르가 쓰고 있는 편지가 한 장에서 두 장째로 넘어간 것으로 추측되는 소리가 들려 왔을 즈음에는 피부가 열로 홧홧해졌고, 밭은 소리를 내면서 허리를 굽힌 아일럿은 어느새 당연하게 골반 아래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실로 어설프기 그지없는 동작이었지만 스스로의 쾌감을 찾기에는 충분했다.
“아, 읍… 흐으윽.”
“…….”
입으로 참아도 목 안쪽에서 울리는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가스파르는 펜으로 편지를 쓰는 시늉만 하면서 아일럿을 쳐다보고, 숨을 죽였다. 발그레해진 피부가 먹음직스러웠다. 적당히 살이 오른 허벅지는 물론이고 허리, 엉덩이, 땀에 젖은 상체에 매달린 유두까지.
더 보고 있을까 싶으면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편지는 한 장을 쓰는 것으로 끝내 버렸으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일럿에게로 다가갔다.
“흐아… 응, 읏…….”
제가 낸 작은 소리마저 의식하던 아일럿은, 방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모양이다. 코앞까지 다가갔는데도 제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일럿.”
“아, 으흑……!”
목소리를 내고 나니 몸이 펄쩍 뛰었다. 가스파르는 그만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편지는 다 썼어. 여러 기관으로 보내야 하다 보니 시간이 좀 더 걸렸네.”
“…….”
“그건 그렇고. 예전에 기르던 개가 생각나. 발정이 나면 쿠션을 잡고 몸을 앞뒤로 움직이곤 했었지.”
아, 살짝만 더 하면 울겠는걸. 입술이 안쪽으로 몰리는 것을 보니 언제 안대 밖으로 눈물이 흘러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미 운 것 같기는 하지만, 약간만 더 하면 엉엉 울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 지금은 참기로 하고 손을 뻗었다.
“흐, 으……. 응.”
유륜 주변을 슬그머니 희롱하자 아일럿은 신음을 참지 못했다. 안대를 벗기면 스스로도 이런 소리를 내는 것이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그런 점이 괘씸하고, 아드득 깨물어 주고 싶을 만치 사랑스러웠다.
“혼자 노는 건 즐거웠어?”
아일럿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스파르도 대답을 원하지는 않았기에-
“그럼 벌을 받아야지.”
손바닥으로 아일럿의 엉덩이를 가볍게 후려치고는 터뜨릴 것처럼 움켜쥐었다.
“아……!”
갑자기 맞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아일럿이 깜짝 놀라자, 가스파르는 뒤로 묶여 있던 손을 풀어 주더니 두 손으로 목마의 머리 부분을 잡게 해 주었다. 아일럿은 여전히 안대를 차고 있었기에 잡고 있는 것이 기둥인 줄만 알았다. 얼떨떨하게 그가 서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곳을 돌아보았다가, 머리가 잡혀서 다시 정면으로 머리를 향하게 되었다.
“제대로 붙잡고 있어. 자세는 유지해.”
“뭘 하려는 거, 건… 데.”
“말했잖아. 벌. 방금까지 있었던 일은 축에도 못 끼지. 넌 충분히 즐기고 있었잖아.”
말랑거리는 양쪽 뺨을 가스파르가 손으로 꾹 잡아 눌렀다.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온 입술이 앞으로 있을 일을 두려워하며 얕게 떨렸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돼. 못 하겠다고 해도 괜찮고. 그럼 멈출게.”
“우, 읍…….”
“단, 벌이니까 열 대는 맞고 나서.”
말이 끝나자마자 가스파르가 제 등을 눌렀다.
“움직이지 마.”
부모님에게도 이런 식으로 맞아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다른 일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엉덩이를 손으로 맞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아일럿은, 다음 순간 헉 소리를 내며 그에게서 벗어나려 애썼다.
“거기, 느, 윽……. 아!”
“여길 맞는 게 좋다고?”
그런 곳을 맞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일럿이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아래로 내리려 하자, 가스파르는 엄지손가락을 삽입하여 마치 물건을 끌어 올리듯 손을 위로 움직였다.
“아, 읏, 흐악!”
“제대로 엉덩이 들어.”
애매한 자세로 엉덩이를 들자마자 붉어진 입구가 훤히 드러났다. 가스파르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빼냈다.
“……!”
회음부와 함께 애널까지 맞아 버렸다. 이어서 몸을 아래로 내릴 틈도 없이 같은 곳을 또 다시 맞았다. 세 대째였다.
“아, 파흑… 읏!”
“아프라고 때리는 거니까 당연하지. 좋아하면 안 돼.”
네 대째를 때리려고 손을 들었던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페니스를 쥐어 보았다. 아랫배에 거의 달라붙을 기세로 발기하고 있던 물건이, 어째서일까……. 목마 위에서 혼자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때보다 더 젖어 있는 것이 확연했다.
“세상에, 아일럿.”
가스파르가 제 것을 만져주자, 앞이 보이지 않아도 아일럿도 그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 몸이 한껏 흥분한 채였다. 귀두를 슬며시 쥐고 있을 따름인데도 아일럿은 사정 직전에나 낼 법한 신음을 쏟아냈다.
“크, 우으읏…….”
혹시나 이대로 사정을 할까, 페니스에서 손을 거두고 반대편 손바닥을 채찍 삼아 휘둘렀다. 이번에는 회음부는 건드리지 않았으나 아일럿은 예리한 아픔 뒤에 찾아오는 얼얼함에 경련을 일으켰다. 네 대, 그리고 다섯 대. 피하려고 하면 가스파르는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어서 엉덩이를 기어코 치켜들게 만들었다.
“피하지 마.”
“으……. 하아. 흐읏!”
가만히 맞고 있는 게 이득인 것을 머리로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오늘따라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들을까.”
왜냐하면, 금방이라도 사정해 버릴 것 같았으니까. 어처구니없게도 맞으면 맞을수록 추삽질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언뜻 그의 손끝이 고환에 닿기라도 하면, 뒤에서 박혔을 때 느껴졌던 감각이 고스란히 돌아왔다.
“그래도 마지막 두 대 남았으니까, 좀 더 참아봐.”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만, 그만, 그만, 목소리라기보다는 숨결에 가까운 소리로 애원하는 아일럿을 한번 쓰다듬고서 가스파르는 재차 손을 들었다. 마지막 열 대에서 아일럿은 결국 최고조로 오른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파정해 버렸다. 기를 쓰고 막았던 곳이 터져 나오자 쏟아지는 쾌감은 폭력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상황도. 같은 남자인 그의 것에 박혀서 사정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이젠-
“괜찮아? 고생 많았어.”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저를 위로하려 했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저를 구하러 온 구원자라도 된다는 양, 어깨를 감싸는 손길에 아일럿은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일럿이 여기까지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내 탓이 아냐. 네가!”
갈무리되지 않은 감정이 숨김없이 쏟아져 나왔다.
“네, 네가…… 그런 약을 발라서.”
“응?”
“기… 기분 좋아지는 약. 그걸. 바, 발랐으니까.”
“그런 약이 어딨어?”
안대를 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일럿은 눈앞에 가스파르의 조소 어린 얼굴이 선연하게 보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랬다.
“그거 그냥 오일이야, 아일럿. 아닌 것 같으면 한번 만져 봐. 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가져다줄까?”
벌어진 입이 한참이 지나도 다물어지지 않았다. 웃음을 참으며 침묵을 지키던 가스파르는 견디지 못하고 먼저 소리를 내었다.
“농담이야, 귀엽기는!”
“…….”
“외국에서 들여온 최음제였어. 오일이랑 비슷하지만, 확실히 최음 성분이 들어 있지. 몸에 바르면 열도 좀 나고.”
“…….”
“안 그랬으면 네가 거길 맞으면서 그 정도로 거하게 싸 버릴 리가 없잖아. 내가 아직 거기까지는 개발을 안 해줬는걸.”
“흐, 우으읏-”
괴롭힘이 너무 심했다. 아일럿이 결국 울음을 터뜨린 것을 보며 가스파르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울릴 생각은 없었는데.”
울려놓고 말해 봤자 소용없는 말이었다. 안대를 풀어주고, 그다음으로 목마에 매달려 있던 발을 풀어준 가스파르는 자기가 앉아 있던 물건을 보고서 힉, 소리를 내는 아일럿을 안아 들었다. 나무로 된 말의 머리까지 달려 있는 삼각 목마는 퍽 기괴한 모양이긴 했다. 품 안에서 부르르 떠는 아일럿의 관자놀이에 가스파르가 입술을 눌렀다.
“많이 아팠을 텐데 잘 참았어.”
아픈 것보다 다른 감각이 훨씬 컸다는 걸 아는 주제에 잘도 지껄였다. 아일럿은 무심코 가스파르를 쏘아보았지만, 눈꺼풀에 입술이 닿으니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안도감 같은 것이 들어 그를 더 노려볼 수 없었다. 사람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그랬다. 힘들 때 다른 사람의 체온이나 살결이 몸 어딘가에 닿아 있으면 그걸로 위안을 받는다.
“괜찮아.”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품 안에서라도 벗어나 보려 아일럿이 미약하게 몸을 뒤틀었으나 가스파르는 그럴수록 제가 안고 있던 몸을 더욱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달랬다. 그 손길이 얼마나 상냥하던지, 또 눈물로 짓무르고 발갛게 변한 눈가에 닿는 입술은 어찌나 따뜻하던지.
“자, 침대로 가자.”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안고서 달래다 침대에 내려놓은 뒤에는 한층 더 다정스러웠다. 성적인 의도는 전부 덜어낸 것처럼 살갑기만 한 손길로 어깨를 감싸는데,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가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부정하는 듯했다. 그것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나는 너에게 다정하기만 할 테니 안심하라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어떻게 모를까. 저를 괴롭게 만든 사람은 가스파르였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릴 만큼 고조 되어 있던 감정은 점차 차분해졌어도 불안함은 여전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가스파르가 물었다. 아일럿이 대답 대신 시선만 굴리자, 그는 쓰다듬고 있던 어깨에 입술을 가져갔다.
“…….”
말없이 위로하는 동안에도 그는 어깨나 팔에 입을 맞추었었는데, 단순히 입술이 맞닿는 행위임에도 그것과는 또 달랐다. 아일럿은 무심결에 옷을 추스르는 듯한 행동을 하다 멈칫했다. 옷을 입고 있는 것은 가스파르뿐이고, 저는 여전히 알몸이었다. 그리고 그 알몸 위로, 가스파르의 손길이 지나갔다. 어딘지 모르게 진득하고, 위험하게.
“아직 부족할 거야.”
불현듯 깨닫고서 재빨리 허벅지를 좁혔지만 가스파르는 손끝으로 허벅지 위를 톡톡 두드렸다.
“잘 참았으니까 편하게 해줄게.”
다 너를 위해서라며 속이는 목소리가 나긋했다. 상대가 거부하기도 전에 아래로 내려가서 무릎 위에 입을 맞추고, 허벅지 사이로 손을 밀어 넣는 손길 또한 그러했다.
“지금은 나한테 접대라도 받는다고 생각해. 네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상냥하게 해 줄 테니.”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몸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대로 가스파르가 방치해둔다면 아쉬울 것은 저였다. 열을 머금은 내부가 여전히 간지러웠고, 지친 것과는 별개로 타인의 체온으로 인해 흥분이 되고 있었다.
“아, 흐.”
거듭된 입맞춤에 결국 허벅지가 열렸다. 빨리 편해지길 바란 것도 있었지만 입술이 닿는 감촉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 입안으로 숨을 삼키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무릎 뒤를 붙잡고서 제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은 가스파르가 페니스를 혀로 핥아 주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선단에 그의 입술이 닿았을 때나 혀가 미끄러져 내릴 때는 급하게 숨을 들이키긴 했어도 놀라지는 않았다.
“하……. 흐윽.”
다만 그가 사용한 접대라는 표현대로 친절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애무가 낯설었다. 혀를 난폭하게 사용하거나 거칠게 빨아들이는 일도 없이, 버겁지 않을 만큼의 쾌감만 남겼다.
“으, 흐읍. 읏-”
허리께를 쓰다듬던 손이 단계를 밟듯 위로 올라왔다. 곧장 유두를 손가락으로 집지 않고, 처음부터 주변을 세심하게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아주 조금씩,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두 위로 올라와서 검지와 중지를 모아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그런 애무가 계속될수록 오르가즘을 느낄 법한 정도는 아니었어도 몸이 반쯤 부유한 기분이었다.
“……나쁘지 않지?”
가스파르가 물었다. 거기에 답하지 않았으나 숨결과 함께 새어 나오는 신음이 그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끈적끈적해진 입술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다. 고환, 그리고 회음부를 지났을 무렵 따뜻한 물에 푹 잠긴 것처럼 흐물흐물해져 있던 아일럿은 눈을 크게 떴다.
“어… 어?”
손으로 맞고 나서 티 나지 않게 부어오른 채 화끈거리고 있던 애널 주변에 가스파르가 입을 대었다. 그것만으로도 헉 소리가 날 지경인데, 혀가 닿기까지 하자 아일럿은 처음 가스파르의 것을 온전히 삽입 당했을 때처럼 놀라 버렸다. 그만하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서 충격적인 광경을 마주 보았다가, 혀로 길게 핥는 순간 몸을 크게 휘며 뒤로 넘어갔다. 삽입과는 또 다른 쾌감이 이를 꽉 맞물리게 했다.
“흐, 그으, 흣, 으흑.”
움츠러들려는 몸을 힘을 주어 열게 하는 대신, 가스파르는 움찔거리는 입구를 혀끝으로 할짝거렸다. 그때마다 보이는 아일럿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도망치려 하는데,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듯했다. 위에서 스치는 시늉만 해도 소리를 삼키지 못한다. 그걸 알기에 가스파르의 혀는 고집스럽게 아일럿이 피하고 싶어 하는 부분을 핥았다. 입술을 붙이다시피 하여 애널 위에 대고, 혀의 넓은 부분으로 스치며 올라가곤, 혀로 쿡 찔렀다.
“으으, 읏…… 거기, 아, 안, 흑, 아으읏. 하지 마… 아, 흡!”
더욱이 오일을 바른 탓에 몹시 민감해진 몸은 스치는 듯한 애무에도 반응을 보였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아일럿이 조금 심하게 몸을 비틀어대면 두 손가락을 모아 유두를 지분거리곤 했다. 손가락 사이로 솟아오른 부분을 집고 살며시 잡아당기자 반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 흐으. 흐. 읏. 하…….”
허리 쪽에 힘이 들어갔다. 몇 차례 크게 들썩이고는 사정이 가까워졌는지 허벅지를 바르르 떨었다. 오르가즘 직전에는 대체로 이러했다. 한 톤 높아진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가스파르는 성기 위에 제 입술을 가져갔다. 그저 상냥하기만 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윗입술과 아랫입술에 힘을 주고서 길게 빨아들이자마자 아일럿은 발끝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하아, 흡…… 으우, 읏, 아…!”
쾌감이 몸을 직선으로 꿰뚫고 지나가는 듯한 찰나가 지나고, 번져나가는 듯한 쾌감이 아랫배를 무겁지 않게 짓눌렀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떨리는 숨을 내뱉고 나니 일순 쾌감으로 어두워졌던 머리가 천천히 맑아졌다.
“……아-”
숨을 고르고서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제 정액을 남김없이 삼킨 가스파르는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까지 당연하다는 듯 핥은 다음, 요도 끝을 혀 아랫부분으로 야살스럽게 핥고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입은 그대로 두고서 파란 눈으로만 웃어 보이는데 설명할 길 없이 퇴폐적인 모습인지라 입술이 붙어 버렸다. 저를 범하는 것도 모자라서, 치욕스러운 꼴을 보이게 하고, 또 그걸로도 부족한지 정액마저 다 삼켜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가스파르의 입술이 다시금 달싹거리자 아일럿 또한 또다시 시야를 두 손으로 가려 버렸다.
“왜?”
“잠깐만, 잠, 하으으. 으응…… 읍.”
“보게 해줘, 아일럿.”
“흐읍, 아으읏, 흐. 아냐, 이러지 마, 앗-”
하지만 그 입술은 아래쪽이 아니라, 가슴 위로 올라와서 유륜을 가볍게 머금었다. 안쪽으로 쏙 들어가 있는 유두를 나오게 하려는 것처럼, 입술과 입술로 유륜을 문지르다가 혀를 내밀어 안쪽을 지그시 눌러오는데 예상치 못한 자극에 입에서 짧은소리가 터져 나왔다.
“흣, 아…….”
눈을 감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가슴뿐만이 아니라 아래쪽으로도 파고들려 했다. 혀로 인해 젖어 있던 입구는 가스파르의 손가락을 잘도 받아들였다. 입구에서 머물고는 한 마디씩 아주 느리게 밀어 넣는데, 이미 그보다 더 두꺼운 딜도가 삽입되어 있었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인 것처럼 몸을 애무하고 풀어 주었다. 그에 따라 내부가 서서히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 풀어. 잘하고 있어.”
“하, 아… 후으.”
“앞도 많이 젖었고. 여기도 많이 열렸어.”
손가락 두 개가 안쪽에서 잦은 움직임을 가졌다. 입으로는 솟아오른 오른쪽 유두를 계속 핥아 주고 있었다. 부러 사정하지는 못하게.
“네 가슴이 내 혀랑 앞니에 닿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알아? 물론 아래도 마찬가지야.”
“응…… 흐, 하으으, 읍…….”
가스파르는 쾌감을 적당히 조절했지만 아일럿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밀어내기는커녕 몸을 조금 더 내밀어 버렸다. 몽롱한 쾌감이 머리를 절였다.
“흐으……. 읏-”
수치나 아픔, 걱정과 두려움 없이 처음으로 오롯하게 하나의 감각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런 감각에 깊게 빠져, 가스파르가 입을 맞춰오는지도 모르고 혀를 내밀어 조르던 아일럿은 일순 몰아붙이듯 쏟아지는 쾌감에 앓는 소리를 냈다. 전신을 기분 좋은 떨림이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가스파르가 제 다리 사이에서 자리를 잡는 모습을 본 순간, 기억하고 있었던 옅은 공포가 되살아났다. 자비 없이 안을 짓치고 들어오던 폭력 같은 쾌감. 익숙하지 않은 스스로의 모습까지.
“아일럿.”
잊고 있었던 기억이 무방비해진 몸으로 스며들자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가스파르는 나지막하게 속삭이며 떨고 있는 귀와 목에 입술을 가져갔다.
“걱정하지 마. 다 안 넣을 테니까.”
정상위로 삽입을 하려고 하자 아일럿이 두려워하며 제 팔을 잡는 것을 보고, 가스파르는 그의 얼굴 위에 거듭 입을 맞춰주며 삽입을 시도했다. 아무리 크다고는 하지만, 흥분으로 벌어져 있는 곳은 이제 그의 것이 없으면 도리어 괴로울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입구에 닿은 성기를 반기듯이 삼키면서, 안쪽으로 빨아들였다.
“흐, 아……. 아아…!”
제 몸의 반응에 스스로가 놀란 표정이었다. 애타게 기다려왔던 내부가 침입자를 기쁘게 반겼으나 가스파르는 반도 안 되게 넣고서 허리를 뒤로 뺐다. 갑자기 돌변하여 난폭하게 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을 만큼 정중하고 침착한 태도였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아일럿을 진정시켜 주는 것처럼, 몇 번이나 같은 행동을 하고서 멈추었다.
“봐. 전부 안 들어갔지?”
“으응…….”
“다 안 넣어. 괜찮아.”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두 손을 잡고서 익숙해질 시간을 주자, 아일럿은 붉어진 눈으로 제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 그의 흥분이 몸 위로 온전히 쏟아지는 듯하여 고개를 돌리고 싶었으나 그리 할 수가 없었다.
“…가스파르.”
이유 없이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고서 입술을 사리물었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떨림이 완전히 멎은 후에야 허리를 움직였다.
“아으, 읏, 아……!”
표현하자면 달디 달았다. 그런 관계였다. 제가 사정을 하고 나서도 가스파르가 사정을 하지 않아서 막 사정하여 예민해진 몸에 묵직한 쾌감이 쏟아지기 일쑤였는데, 접대라고 했던 표현처럼 가스파르는 아일럿만을 우선시했다. 안달이 날 만큼 다정하게. 오로지 한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그래서인지 삽입을 하고 나서 딱 한 번 만에 끝나 버렸다. 늘 그랬듯 쾌감의 절정에서 그보다 더 높은 단계의 쾌감을 주던, 자신을 사납게 몰아붙이던 행위도 당연히 없었다. 사정 직후에 예민해진 몸을 붙잡고 추삽질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몸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를 벌렸지만 닿아온 것은 입술이었다.
“너무 좋았어, 아일럿.”
그 결과로 아일럿은 가스파르와 관계를 가진 후에 처음으로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면 얼마 못 가서 기운이 빠져 잠에 빠져 버렸었는데…….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그가 제 몸을 씻겨주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어야 했다.
“내가 할-”
“그러지 말고 맡기기만 해.”
차라리 정신을 잃는 게 나았던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저를 욕조에 넣어서 씻겨 주었다가 몸을 수건으로 닦아 주고, 보습 크림까지 바른 직후에 가운을 입혀 주는 것은 모두 가스파르의 몫이었다. 마지막으로 침대에 눕혀 주는 것까지도.
“나한테 이걸 들킬까 봐 새벽까지 잠도 제대로 못 잤을 것 같은데.”
슬슬 희미해지고 있는 글자를 가스파르가 손으로 꾹 누르고는 조금 젖어 있는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서 다 보고 있기라도 했는지, 반박할 수가 없는 내용이었기에 아일럿은 시선만 옆으로 돌렸다.
“피곤해 보여. 낮잠이라도 좀 자는 게 좋겠어.”
아일럿은 이불로 가려진 다리를 오므렸다.
……부족하지 않아.
이제까지 중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왜 자꾸만 덜 채워진 듯한 기분이 드는지. 생각을 할수록 부족함이 느껴져서 그의 품 안에 있는 것이 괴로웠다. 닿지 못한 안쪽이 간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한 번만 더. 아니면 끝까지 넣어 주었다면 좋았을까. 고뇌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가운데-
“잘 자, 아일럿.”
불면의 원인이 그렇게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