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S자 결장과 정조대
“뭐 마시고 싶은 거 없어?”
“……물.”
“차갑게? 아니면 따뜻한 걸로?”
“미지근하게.”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주문을 듣고는 테이블 아래에 놓여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딸랑, 딸랑거리는 소리가 두어 번 울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제가 마실 차, 그리고 아일럿이 마실 미지근한 물 한 잔. 그것을 주문한 뒤에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둔 가스파르는 차가 도착할 때까지 내내 종이 위의 글씨에만 시선을 두었다.
“주인님.”
그러던 도중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일럿에게 미지근한 물 한 잔, 가스파르에게는 차. 아마도 라벤더인 듯했다. 특유의 진득한 향기가 코에 스며들기 전에, 아일럿은 제 몫의 잔을 쥐고는 애매한 온도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권하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 부러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을 고른 것인데, 물을 마시고 나니 차라리 시원하게 마실 걸 그랬다고 조금 후회하게 되었다. 여전히 갈증은 남아 있었고, 목이 개운하지도 않았다.
“…….”
그 이후로 정확히 하루. 24시간이 지나는 동안 가스파르는 약속대로 아일럿의 몸에 손끝 하나도 대지 않았다.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늘 살얼음 위를 걷듯 불안했지만 같은 방에 있을지언정 대부분 아일럿을 없는 사람처럼 대하기 일쑤였다.
이 집에 계속 처박아둘 거면 다른 방에라도 있게 해달라고- 말해 볼까 딱 한 번 고민했다. 그러나 혹시 뭔가 거슬려서 덤벼들기라도 할까 봐 가스파르에게 달리 말은 못 하고 그가 건네주는 책을 읽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가 준 책은 대체로 제 취향에 꼭 맞았다. 불안한 와중에도 내용에 집중이 되어 가스파르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버린 적도 있을 정도로.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찻잔을 몇 번 입에 가져갔던 가스파르가 책을 덮고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의 작은 행동에 움찔했던 아일럿은 아닌 척 고개를 돌렸다.
“난 이만 자러 갈게. 무슨 일 있으면 침대나, 여기 있는 줄을 잡아당겨. 그럼.”
제발 아무 일도 없이 방 밖으로 나가주기를. 망설이다 가스파르를 올려다보니, 그가 입술로 호선을 그렸다. 제 걱정이 기우라는 양, 지극히 산뜻한 표정이었다.
“잘 자.”
신발이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과 부딪치면서 들려오는 소리. 이어서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이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컵만 만지작거리던 아일럿은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묵직했던 어깨가 다소 가벼워졌다. 하나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그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테이블 위에 쌓여 있는 책 사이에 끼워둔 편지를 꺼냈다.
룹이 가져다 준 어머니의 편지였다.
[아버지는 얼마 전에 저택으로 돌아오셨단다. 연금을 당하는 도중에 고초를 많이 겪으셨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외로 무척 좋은 대우를 받으셔서 아버지도 어리둥절하셨다고 하더구나. 일이 아직 다 해결된 것 같지는 않지만, 좋게 풀리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
[스칸다에서는 잘 지내고 있니? 여기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단다. 네가 있었다면 큰일이었을 거야. 부디 스칸다에서 몸조심하렴.]
오늘만 벌써 세 번을 읽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면 편지를 읽는 것이 제법 도움이 됐다. 연금을 당하셨던 아버지가 풀려나셨다는 것도 그렇고……. 낮에는 어머니에게 답장을 보냈다. 집사에게 뭐든 부탁하면 된다고 하기에, 편지를 별장에 있는 룹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설마 그걸 보내지 않을 리는 없을 것이다. 편지를 보낸다고 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까.
“하.”
짧은 숨을 토해냈다. 이제 더 해 볼 욕도 없었다. 아일럿은 하루 종일 앉아 있었음에도 푹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침대로 올라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러고는 몇 번씩 몸을 뒤척거렸다.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마지막에는 이불속에 넣어뒀던 손을 바깥으로 꺼내 배 위에서 깍지를 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도저히 그것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져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손톱으로 손등을 벅벅 긁어댔다.
부정하고 싶지만, 아래가 간지러웠다. 그것도 성기가 아니라 몸 안쪽이……. 덕분에 몸이 지쳤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운 것인데, 애달픈 듯한 감각이 지속되자 눈을 감아도 허벅지 사이를 무심코 좁히게 되고, 앓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었다.
“으, 읍…….”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아래쪽으로 내려서 조금 딱딱해지려던 페니스를 꾹 누르고 나니 다물린 치아 사이로 숨결이 길게 새어 나왔다.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끝이 곱고, 입술을 스치는 숨은 뜨거워졌다.
“읏… 흐으.”
자기 전에 침대 위에서 하는 수음은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면 씻는 도중에, 뒤처리가 쉬운 욕실에서 하는 편을 선호했다. 그러나 이 방은 손을 닦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이 준비되어 있긴 했어도, 욕실은 따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 그것도 가스파르의 저택 안이었다. 줄곧 그런 험한 일을 당해놓고, 그가 건드리지 않는 동안에는 혼자서 수음을 한다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읍.”
그렇지만 어느샌가 몸이 덜덜 떨릴 지경에 이르렀다. 입안은 바싹 메마르고, 잠은 달아나 버렸다. 뒤를 쑤시고 싶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앞이라도 만지고 싶었다. 그럼 그걸로 족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뒤만 건드리지 않으면 되잖아. 전개 되던 생각이 그곳에 이르자, 아일럿은 서둘러 바지를 내렸다. 혹시나 누가 들어오면 금방 다시 올릴 수 있게, 고간 바로 아래까지만.
“하… 아, 아!”
소리가 약간 컸다. 황급히 입술을 깨물고서 이미 발기해 있던 물건을 한 손으로 쥐었다. 끄트머리에서 선액을 질질 흘리고 있었기에 얼마 가지 않아 손이 제법 미끄러워졌다. 소리는 내지 않았어도 흥분으로 달아오른 숨결을 거칠게 내뱉으며, 아일럿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위로, 아래로, 그러다가 귀두를 움켜쥐고서 왼쪽 손도 아래로 내렸다. 처음에는 페니스의 밑 부분만을 만질 생각이었으나.
“……흑!”
입술을 꽉 다문 탓에 안쪽에서 소리가 튀었다. 회음부를 지나, 살짝 더 아래. 하루가 지나서 조금이나마 통증이 덜해진 입구를 건드리고 안쪽으로 중지를 한 마디 정도 넣었다. 그뿐인데도 그 좁은 공간이 제 손길을 반겼다. 아일럿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서 헐떡이다가 페니스를 쥐고 있던 손으로 방해가 되는 옷을 무릎 아래로 내려버렸다. 안 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이었다. 손이 닿자마자, 다시는 뗄 수가 없어져서 손가락 하나를 전부 다 밀어 넣어 버렸다.
“흐읏, 으… 흐으, 하.”
손가락을 안에서 굽혔다. 내부를 천천히 더듬어 가는 동안 묘한 이물감과 쾌감이 퍼져 신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혹시나 가스파르에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간신히 고개를 돌려 베개를 이로 물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손가락으로는 거듭 내벽을 자극했다. 그리고 하나 더. 검지 손가락을 넣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 아……. 아, 흡.”
허리를 작게 들썩였다. 스스로 차분히 쾌감을 찾아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제 몸이니만큼 어디가 좋은지, 얼마만큼 어떻게 만져 주면 좋은지 전부 알고 있기에. 다만, 수음을 계속할수록 처음엔 살짝 만져지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던 몸이, 어느덧 손가락보다 더한 것을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 안. 흐으읏.”
두 개씩 넣은 손가락을 조금 거칠게 움직였다. 둥글게 굽힌 채로 안에서 빠르게 넣었다 빼는 동안 안쪽이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조여 왔다.
“후… 으읏, 응…….”
페니스는 만질 필요도 없었다. 도리어 아래를 들쑤시는 손에 방해만 될 뿐인지라 한쪽 손은 자연스럽게 가슴 위로 향했다. 셔츠 위로 함몰되어 있는 유두를 문질러 보다가 몸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렇게 하니 페니스와 가슴을 동시에 시트에 문지를 수 있었고, 뒤쪽으로 손을 더 깊숙한 곳까지 밀어 넣는 것도 제법 용이했다.
“으, 흐으…… 하으, 윽-”
신음을 참을 생각도 못 하고 시트 위에서 몸을 비비며, 손가락으로는 무심결에 가스파르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었다. 조금만 이성이 남아 있었다면, 제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멈추었을 것이다.
“아흐으읏!”
그러나 이성은 아득히 먼 곳에, 쾌감은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엎드린 자세로 연신 쾌감을 쫓던 아일럿은 페니스에는 제대로 손도 대지 않고 사정을 해 버린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아-”
시트가 지저분했다. 두툼한 재질인 데다 하루에 한 번씩 세탁을 하는 모양이니 뒤집어 놓는다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뒤늦은 수치가 확, 얼굴에 끼얹어져 귀와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하나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까 딱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면.
“…….”
입술을 깨물고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손이 또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여전히 쾌감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만져야만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욕구에 허덕이면서 아일럿은 제 손길을 부르는 안쪽을 매만지며 수음을 계속했다.
*
“아일럿 님, 실례하겠습니다.”
“아, 아. 네.”
아침이 되면 하인들이 방 안을 청소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침대 시트를 비롯한 베개와 이불도 새것으로 바뀌곤 했는데, 이 또한 지극히 당연하게도 하인이 제 앞에서 시트와 이불을 확인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둘둘 말아, 가지고 있는 바구니에 쑤셔 넣을 뿐.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혹시나 가스파르가 다른 지시를 내렸으면 어쩌나, 간밤에 이와 관련된 악몽마저 꾸었던 아일럿은 얼굴이 훅 달아올라 고개를 돌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찾아 주십시오.”
……간밤에 세 번이나 해 버렸다. 두 번이나 뺐는데도 진정이 되지를 않아서 세 번째에는 안에 넣을, 다른 것을 필요로 했다. 손가락이 아닌 것. 딱딱하고 긴 것을 찾아 헤매다가, 별장에 있는 하인이 편지와 함께 전해준 크림이 담겨진 통을 떠올렸다. 아일럿이 가스파르의 별장에 머문다고 하니, 룹이 편지를 놓고 가면서 남긴 것이었다.
‘하……. 으.’
여름만 되면 피부에 여러모로 문제가 생기는지라 지속적으로 만들어서 바르고 있는 크림은, 제법 단단하고 길쭉한 용기에 담겨져 있었다. 굵기도 적당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저 크림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볼 때마다 오늘 일이 떠올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머리가 쾌감에 푹 절여져 있었지만 그것만은 확실했다.
해서 결국 손으로 끝내고, 씻자마자 지친 몸을 침대에 억지로 눕혀 버렸는데, 그러한 연유로 아직까지도 몸에 열이 고여 있는 기분이었다. 태연한 시늉을 하려 의자에 앉고 어제 읽다 그만두었던 책을 들기는 했지만, 신발 속의 발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하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아침에도 아마-
“잘 잤니? 얼굴이 좋아 보이네.”
가스파르가 다가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상념에 빠져 있던 아일럿은 혹시나 제 얼굴이 붉어졌을까 고개를 돌렸고, 가스파르는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잠들기 전에 그러하였듯 아일럿의 앞에 앉아 책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아무 일도 없이.
“차라도 마실래, 아일럿?”
“아니, 물.”
“어떻게?”
“미지근……. 아니, 차가운 걸로.”
그사이에 한 대화라고는 그뿐이었다. 이어서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이따금 가스파르가 소리 없이 차를 마신 뒤 찻잔을 찻잔 받침 위에 가볍게 내려놓을 때 나는 마찰음과 아일럿이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것 정도였다. 아일럿은 가스파르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책에 집중을 했다. 그러던 도중.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가스파르가 억양 한번 다르지 않게, 어제와 똑같은 말을 꺼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은 아니지만 이제 책을 덮고 돌아가려나. 내심 안도하며, 들고 있던 책을 슬쩍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순간 그가 저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48시간 지났어, 아일럿.”
그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성큼, 제 앞으로 다가왔다. 등 뒤에는 앉아 있는 의자의 등받이가 있을 뿐이지만 무심코 뒤로 몸을 물렸던 아일럿은 그의 손에 양쪽 팔이 잡혀 의자에서 일어났다. 얼떨떨해하는 찰나, 두 팔을 잡힌 채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침대와 가까워졌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가스파르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제 위에 올라타, 제 셔츠 단추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
제 앞으로 온 선물의 리본을 잡아당기는 것이라 해도 이것보다는 망설임이 있을 것이다. 몸 위로 쏟아진 무게에 숨을 들이켜면서, 아일럿은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자. 자. 잠깐. 잠깐. 링은… 리, 링 끼고서 해.”
“음?”
가스파르가 의아한 것처럼 고개를 기울이자, 아일럿은 목이 뜨거워지는 것을 참으며 거듭 말했다.
“링 끼우고서 해줘.”
“아하. 그거.”
이 방에는 그의 방에 있었던 서랍이 없었다. 그러니 링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스파르의 주머니에서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링이 나왔다.
“네가 그렇게 말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어.”
처음으로 했을 때는 물론이고 그 뒤에도 마냥 난폭했던 그였다. 이틀 만에 하는 것이니만큼 전과 다르지 않으리라. 링을 끼지 않으면 틀림없이 자제하지 않고 제 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왜…….”
초조하게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지 버클을 푸는 시늉을 하기에 링을 끼울 것이라 여겼는데, 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들고 있던 것을 등 뒤로 던져 버렸다.
“이런 건 초심자한테나 필요한 거지.”
한껏 커져 있는 눈에 가스파르가 꾹 입술을 누르고는 낼름, 핥는 척을 했다.
“넌 그런 것치고는 혼자서도 했지 않아? 그 정도면 링은 필요 없을 텐데.”
“어, 어떻게 알았-”
“찍어 본 건데 맞췄구나?”
“…….”
“왠지 그럴 것 같긴 했어.”
“흐윽.”
함몰되어 있던 유두 속으로 손가락을 슬며시 가져다 대고는, 손끝을 까딱거렸다. 이틀 정도 만져 주지 않았다고, 그새 꽁꽁 숨어서 나오려 하지 않는 유두를 몇 번 잡고 비틀어 보고는 아일럿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가슴 위에 입을 맞췄다. 여전히 숨어 있기는 해도 몇 번 입으로 빨아 주면 언제 그랬냐는 양 튀어나올 것이 뻔했다.
“사흘 동안 너도 혼자서 했을 테고, 그렇게 하루 내내 예뻐해줬는데 갑자기 끊기면 몸이 안 달아오를 리가 없지.”
“아, 아윽…!”
참으려고 애쓰다 결국 입 밖으로 쏟아지는 아일럿의 신음처럼.
가스파르는 다시금 신음을 삼키려 하는 괘씸한 입술을 손끝으로 비집어 열면서 아일럿의 옷을 벗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정하고 평범하지만, 쉽게 벗길 수 있는 옷을 입혀두었다. 덕분에 순식간에 나신이 되어 가스파르의 앞에 드러난 하얀 몸이 서서히 열에 물들어갔다.
“일부러 혼자 두는 동안 혼자서 열심히 한 모양이구나.”
“아. 안 돼. 흑. 흐……. 링, 끼워-”
“몇 번이나 했어?”
그저 잠시 건드리고, 살결을 어루만지는 것임에도 버거운지 숨을 헐떡이는 아일럿은 쉽게 흐트러졌다. 하나 몸을 쉽게 열지 않으려는지, 허벅지를 좁히고 버티기에 가스파르는 그의 오금을 잡아들어 허벅지의 윗부분이 배와 맞닿게 해 버렸다.
“흐으… 아!”
버티려 하다 졸지에 더욱 수치스러운 자세가 되어 버린 아일럿은 발버둥을 쳤으나 발목을 꽉 움켜쥔 가스파르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아래가 이미 선액으로 흠뻑 젖어 있는 주제에 속옷을 밑으로 끌어내릴 때부터 그랬다. 아일럿 또한 그것을 알아서 울음 섞인 신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참기 힘들지.”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다리는 모아져 있지만 그의 손이 엉덩이 사이로 쉽게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제 손가락으로 쑤시는 것만도 못한 깊이였다.
“참을 수 있겠어? 네가 말하지 않으면 손가락 반 마디도 안 넣고, 이렇게 굴려대기만 할 건데.”
“아, 아… 시…… 히, 흐윽.”
“혼자 만져대서 그런지, 다른 사람 손길이 그리웠나 봐. 물고 조여대는 걸 너한테 보여줄 수가 없어서 아쉽네. 다음에는 거울을 가져와야겠어.”
손가락이 다시 밖으로 빠져나가고는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몸은 어젯밤처럼 달아올라 있는데, 가스파르가 아무것도 해 줄 기미를 보이지 않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의 손은 저보다 길고, 또 관절 한 마디 한 마디가 두꺼웠다. 그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휘어져서 제 안으로 들어가 주기를 바랐다.
“난 하루 정도 더 안 해도 괜찮아. 하루 종일 이럴 수만 있으면.”
“흐앗, 아… 앗, 읍……!”
“난 네 우는 소리만 들어도 좋더라.”
머리로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는데, 몸이 그것을 착실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섬뜩하게 깨달아 버렸다. 안쪽이 간지러웠다. 애가 타서 더 참았다간 가스파르에게 더 수치스러운 꼴을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흐, 세 번.”
“세 번씩이나 했어? 하루 만에?”
“으, 응…….”
“어떻게 했는데.”
“손가락으로, 깊, 깊게 넣어서.”
“그럼 오늘은 링이 필요 없겠네.”
“아냐, 아, 제발. 링은… 끼워줘어. 그런 거 다 못 넣, 흑…… 아!”
“하지만 상은 줘야지.”
발기한 그의 물건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옷에 가려져 있으나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으니 눈에 선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키는 대로 잘했으니까 오늘은 손가락이 닿지 않는 곳까지 쑤셔줄게.”
순간적으로 그 말이, 정말 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려왔다.
“흐……. 으읏.”
아일럿은 그렇게 생각하는 저 스스로가 무서워졌다. 저 괴물 같은 것을 전부 넣어 버리겠다는 말이 어떻게 상이라 여길 수 있는 건지……. 그가 바지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여전히 거대한 물건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이틀 치를 몰아서 하자.”
도망치려 했다. 하나, 그는 여전히 제 몸의 지배자였고, 두 손은 묶인 듯 꼼짝하지 않았다. 이내 다리가 크게 벌어졌다. 귀두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하지만 반 정도 넣은 뒤에는 잡고 있던 어깨를 지지대 삼아 가스파르가 허리를 아래로 찍어 내리듯 움직였다.
“흐…… 허억, 헉, 어… 하아, 흑……!”
이를 악물었다. 시트를 움켜쥐었던 아일럿은 생전 처음으로 듣는 소리가 제 입 밖으로 터져 나온 것에 놀랄 틈도 없이, 생소한 감각에 비명을 질렀다. 끝까지 들어왔다고 생각한 공간 뒤에, 더 깊은 곳이 있었다. 가스파르의 귀두가 그곳까지 들어와서 안쪽을 짓이기자 전신에 바싹 들어갔던 힘이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전류가 찌릿거렸다.
“아… 안, 대, 흐, 힛-”
눈을 감지 않았는데도 시야가 어두워졌다. 퍽, 퍽, 찧어댈 때면 전신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었다. 오직 입만이 자유로워, 그곳으로 신음을 하거나 거친 숨을 뱉고 나면 시야가 빠르게 명멸했다.
“흐악, 윽…! 아, 아냐, 안 돼, 거기…… 그마, 하… 흐으, 극!”
상대의 금발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건, 가스파르가 제 것을 온전히 파묻은 채 몸을 바짝 붙였기 때문이다. 아일럿은 아랫배에서 소름 끼치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의 것이 제 배를 뚫고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흐, 끅. 으우, 읏…….”
빼내지 않고서 접합부를 비비적거리니 배 속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그는 그대로 한참을 있다가 아일럿의 몸에 제 것을 꽂아 넣을 기세로 추삽질을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은 곳까지, 연신.
“내 걸 잘라서 먹을 셈이야?”
목덜미에 뜨거워진 숨을 내뱉으면서 달아오른 목소리로 속삭이던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귀를 이를 세워 깨물었다. 혀로 연골을 비롯해 귀 주변을 핥으면, 아일럿은 악기라도 되는 것처럼 금세 새로운 소리를 내었다.
“이틀 동안 안 해서 조여대는 걸까.”
전부를 삽입한 것이 아니었기에 가스파르도 내심 느끼고 있던 부족함이 드디어 해소된 듯했다. 아일럿이 구멍으로 자신을 씹어 삼키고 있지만, 가스파르는 자신이 통째로 아일럿을 씹어 삼키고 싶었다.
“아니면 네가 내 걸 너무 좋아해서 이러는 걸까.”
“으흐윽… 아!”
만약 조금만 더 익숙한 몸이었다면,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어서 뼈 하나 남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흣, 으읏, 흐윽.”
감도가 좋고 쉽게 음란해지는 몸이지만, 쾌감에는 연약했다. 바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빼내는 시늉만 하고는, 종이 한 장 더 끼어들 틈도 없이 꽉 조여오는 곳으로 페니스를 욱여넣은 가스파르는 연달아 스팟을 찔러댔다.
“하, 아아, 우, 흐으읏…….”
견디지 못하겠는지 파드득파드득 떨어대는 주제에, 아래는 침입자를 꽉꽉 물고 있었다. 거기에 앞은 홍수가 난 것처럼 젖어, 가스파르는 한 번도 사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일럿은 벌써 서너 번은 가 버린 듯했다. 그중에는 정액이나 오줌이 아닌 이상한 것을 쏟아내며 오르가즘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만, 나, 부…… 서져, 아, 힉-”
받아들이고 있는 곳이든, 더 깊은 곳이든, 어느 쪽이든 이미 망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머리. 과도한 쾌감에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귀두 끝에서 짓이겨지는 쾌락점이 부풀어 오르기라도 하는 걸까. 감당 못할 감각이 끝나지 않는다.
“흑, 으아, 아앗, 흑, 으으. 하, 흐으.”
하염없이 긴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짧았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는 가스파르가 제 몸을 뒤집었을 때였다.
“아… 아아앗!”
젖은 배에 시트가 달라붙었다. 얼마나 제가 사정했는지, 배는 물론이고 가슴도 끈적끈적했다.
“혼자 했을 때 어떻게 했어?”
“우으, 흡. 으…….”
“이 자세로도 했을 것 같은데. 뒤로 하는 거 꽤 좋아하지 않아?”
“아니, 아, 아냐, 아, 하으으으, 흐읏, 흑, 아, 으읍. 우-”
하나 수치심을 참을 필요는 없었다. 그럴 여유도 없이 가스파르는 자신을 몰아붙였고,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흘리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이전까지는 그저 안쪽이었다면 지금은 배까지 길이 뚫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윽, 읏…!”
한 번 알게 된 이상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러한 사실을 새겨질 만치 지독히 깨닫고 난 뒤 가스파르가 안에서 파정을 했을 무렵, 속눈썹 사이사이까지 젖어 버린 눈을 베개에 파묻으며 아일럿은 길게 앓았다. 한껏 긴장했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여린 몸이 침대 위에서 납작해졌다.
“아일럿, 뱉지 말고 삼켜야지.”
처음 한 번에 끝내 주는 것은 배려 아닌 배려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가 내보낸 것을 쉬이 흘려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좁게 다물린 채 오물거리던 구멍을 바라보던 가스파르는 양쪽 엉덩이를 손으로 움켜쥐고, 입구를 다물리게 만들다가 옆으로 벌렸다. 그 좁았던 곳이, 지금은 원형으로 벌어진 채 새빨간 내부를 보이며 제가 사정한 것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다.
“곤란한걸.”
가스파르는 손끝으로 입구를 천천히 매만져보다 정액을 조금씩 긁어서 도로 삼키게 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다시 흘려버릴 것 같고-
“흐, 아…….”
아일럿은 얼굴을 파묻은 채 신음했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만 자극 때문에 몸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여전히 제 몸의 주도권은 가스파르에게 넘어가 있었다.
“착하지. 가만히.”
뭔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말릴 기력이 없었다. 하지 마, 싫어. 숨소리에 끊겨 버리는 희미한 목소리를 내다 눈을 감았고, 허리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났을 무렵에는 의식이 끊겼다. 그와 가진 관계의 끝이 대부분 그러하듯.
완전히 지쳐 버린 아일럿은 긴 잠에 빠지고 말았다.
*
“주인님께서는 한 시간 전에 수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다음 날 새벽, 일찍 자버린 탓에 이른 시각에 깨어난 아일럿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희소식을 맞이했다. 가스파르가 수도로 올라갔다니.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렇다면 적어도 오늘 하루는 그에게서 온전히 자유로울 가능성이 컸다.
“다… 다른 말은 없었나요?”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아일럿 님께서 일어나시면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 역시. 아일럿은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삼켰다. 편지에 또 가슴을 고무판에 찍어서 남겨두라거나 하는 말만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일럿 님.”
편지를 건넨 하인은 아일럿이 편지 봉투를 뜯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용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방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일럿은 조심스럽게, 약간은 껄끄럽게 첫 문장을 눈에 담았다.
[아일럿에게]
[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은 수도에 다녀와야 할 것 같구나. 잠시 동안은 집에 다녀와도 좋아. 하지만 새벽에는 다시 스칸다로 돌아올 것 같으니, 너무 오래 있지는 말고. 간단한 용무 정도만 보고 오는 편이 좋을 거야.]
[추신. 내가 없는 동안 혼자 자위를 하는 일은 없기를. 들키게 되면 살짝 아픈 일을 당하게 될 테니까.]
추신까지 읽고 나서 편지를 접고, 다리를 움직이려던 아일럿은 애매한 자세에서 멈칫했다. 아래쪽이 쎄하고 묵직했다. 자는 동안 익숙해졌는지 가만히 있으면 의식을 못 할 정도였지만 몸을 움직이는 순간 확연해졌다. 제 안쪽에 무엇인가 들어와 있었다.
“이게… 뭐야.”
속옷은 아니었다. 단단한 가죽인 듯했다. 설마 하며 바지를 살짝 아래로 내리고 안을 들여다본 아일럿은, 이물감을 느끼고 움찔거렸다. 아, 세상에. 언제인가 친구들과 함께 돌려보던 야한 책에서 언뜻 삽화로 본 적이 있는 정조대였다. 그걸 제가 차고 있었다.
“우, 읏.”
자위를 하지 말라고 했지, 정조대를 빼지 말라는 말은 없었다. 애초에 이걸 차고 있으면 생활이 불가능했다. 망설이던 아일럿은 윗부분에 손을 대었다. 꽉 조이지도 않고, 별도의 잠금 장치도 없는 듯 보였다. 그냥 아래로 내리면-
“하으, 윽…….”
정조대를 조금 내리다가 손을 멈췄다. 안쪽에 들어와 있는 것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빼내는 찰나 돌기가 입구를 긁으면서 빠져나갔다. 예상치 못한 자극이었다.
“흡.”
기분이 좋았다. 보리알만 한 작은 돌기들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더. 게다가 아침인지라 아래도 딱딱해져 있었다. 하인도 나간 데다, 가스파르도 자리를 비웠다고 하니 이대로……. 아니야. 안 돼. 아일럿은 가까스로 고개를 저으며 참았다. 낮이고 밤이고, 온통 그 짓으로만 가득 차는 기분이 드는 것이 역겨웠다.
어떻게든 자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한시라도 빨리 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해 버리면, 몸에 힘이 빠져 돌아가는 시간만 지체될 것이다.
“으…….”
살짝 빼냈던 정조대를 도로 밀어 넣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벗어봤자 마땅히 숨길 곳도 없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별장으로 가서 푸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적응이 되는 듯도 싶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침대 근처에 있던 줄을 잡아당겼다. 줄에 연결된 종소리를 듣고서 가스파르의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
“찾으셨습니까?”
“저기… 집에 다녀오려고 하는데. 마차 좀 준비해 주시겠어요?”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거울 앞에서 대충 머리만 정돈하고는 옷을 걸쳤다. 무엇을 하든 별장으로 가서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아일럿은 한 걸음씩 조심스레 방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천연스럽게 걷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
마차에 탔을 때가 문제였지. 아일럿은 마차 내의 손잡이를 잡고서 엉덩이를 좌석에서 슬쩍 든 채로 애매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마차가 덜컹거리는 탓에 정조대가 안에서 덜컥덜컥 움직였다. 자세가 힘에 겹기도 하고, 길이 좀 고른가 싶어 엉덩이를 붙이기만 하면 또다시.
“젠… 장.”
어설프게 들고 있는 허벅지가 부르르 떨렸다.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무릎을 대고서 빨리 별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다가, 마차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자 좌석에 다시 앉았다. 완전히 멈추었을 무렵에는 날도 덥지 않은데 이마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아일럿 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뇨. 괜찮아요. 돌아가셔도 됩니다.”
마부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아일럿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이른 시각이다 보니 밖에 나와 있는 하인들은 없었고 주변은 고요했다. 차라리 이 편이 낫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가서 곧장 침실로 들어갈 생각을 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도련님?!”
“루……룹.”
하나, 별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기가 무섭게 막 물건을 나르고 있던 룹이 문 앞으로 달려왔다. 그가 별장으로 찾아왔을 때, 그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 대답하면서 가스파르에게 범해졌었다. 그 탓인지 룹을 보는 것이 영 어색했다. 아일럿은 애써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도련님, 별일은 없으셨지요?”
“그럼. 별일은 무슨.”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그렇고, 다들… 도련님께서 그 별장에 머무른다고 하셔서 혹시 다른 일이라도 있으셨나 하고-”
“별일 아니야. 그냥, 집안에 생긴 일 때문에.”
“아……. 주인어른의 선박이 압수당한 일 말씀이시지요?”
“그래, 그거. 마침 그쪽이 나랑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혹시 비위 좀 맞춰주면 일에 도움이 될까 해서. 응.”
아일럿은 횡설수설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룹은 눈치가 꽤 빠른 데다 오랜 시간 저와 함께한 탓에 미세한 감정의 변화도 쉽게 눈치채곤 했다.
“가스파르가 별로 나쁜 사람도 아니고. 같은 학교도 다니고 하니까.”
“세상에. 그러셨군요.”
“으응. 많이 친해졌어. 아마, 며칠 더 그쪽 집에 머물게 될 것 같아.”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다. 오히려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고, 아일럿은 한숨을 돌렸다.
“그럼 짐을 챙겨놓을까요?”
“어. 고마워.”
“별말씀을요. 도련님.”
“그리고, 새 옷도 한 벌, 내 방문 앞에 놓아줄래?”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 드릴게요.”
룹이 하던 일을 내려놓고 드레스룸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일단 침실로 들어왔다. 제가 없는 사이에도 청소를 소홀히 하지 않은지라 깨끗한 것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좋은 냄새가 나는 침실을 보고 있노라니, 여기서 쭉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가스파르의 저택이 아무리 넓고 시원하다 한들, 별장에 있는 침실만 못했다.
문을 잠근 아일럿은 커튼까지 치고서 침대 위로 올라가 얇은 이불을 덮고, 바지를 발목 아래로 내렸다.
“으.”
오는 길에 마차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정조대의 앞부분이 축축해져 있었다. 만지거나 따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안쪽에서 제 페니스가 어느 정도 딱딱해진 채로 젖어 버렸다는 것을 어떻게 모를까. 아일럿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는 길게 숨을 토해냈다.
“도련님, 말씀하신 옷은 여기 두고 가겠습니다.”
“응. 알았어.”
제가 부탁한 대로 새 옷을 문 앞에 놓아둔 룹의 발소리가 멀어져갔다. 자, 이제. 가스파르의 별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정조대를 잡고서 아래로 내리기만 하면 된다. 눈을 꽉 감고서 손에 힘을 주었다. 페니스를 압박하고 있던 부분이 먼저 내려가고, 그다음에는 딜도가 부착되어 있던 부분이 빠져나갔다.
“흐……. 아.”
묘한 개운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아일럿은 눈을 크게 떴다. 깨닫는 순간 소름이 확 끼쳤다. 아, 설마. 돌기가 달려 있는 딜도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이물감이 생생해졌다. 제가 잠들기 전에 무슨 일을 하나 싶었더니, 정조대를 빼내자 고여 있던 정액이 한꺼번에 빠져나왔다.
“미친놈!”
삽시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어떻게 수습을 할 틈도 없이 아일럿은 시트를 적시고 말았다. 제가 잠들어 있는 동안 더 해대기라도 한 것일까. 침대에 생겨나는 얼룩을 내려다보니 몸이 여러 의미로 벌벌 떨렸다. 이런 행위에서마저 얕은 열락이 솟아오르는 몸이 원망스러웠다. 페니스가 아랫배에 달라붙을 만치 단단해진 채로 발기해 있었다. 조금만 만져줘도 금방-
“하.”
가냘픈 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젖어 있던 선단에 손을 대고서 손을 천천히 미끄러뜨리니 가까이에 손가락 대신 사용할 수 있을 정조대의 딜도가 눈에 띄었다. 방금 빼낸 주제에, 젖어서 번들거리는 것을 보니 입안이 축축해졌다.
이건 다 가스파르 탓이다.
그놈이 제 몸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려서.
전부 그것 때문이야. 손끝으로 딜도의 오돌토돌한 표면을 건드리다가 두 손으로 딜도를 잡아 제 안쪽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들어가는 순간에 느껴지는 압박감, 이어서 뭉근하게 번지는 쾌감에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흐으, 하고 낮은 소리를 흘렸다. 가만히 두는 것만으로는 이미 몸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마차가 덜컹 거릴 때마다, 딜도가 내벽 곳곳을 짓누르던 것을 떠올리니 더더욱 그랬다.
“아, 아… 흡.”
끝까지 단숨에 밀어 넣고서 아일럿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가슴 언저리에 열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대로 열 번이 조금 안 되게 움직였을 뿐인데, 페니스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면서도 사정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수치심을 느끼기에는 어젯밤에 이미-
“하으, 흐. 윽, 읏…… 아!”
가스파르에게 박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일럿은 허리 아래를 잘게 들썩이다 절정을 맞았다. 한껏 미간을 좁히고서 온몸에 퍼지는 여운에 어깨를 움츠리고 나니, 탈력감이 서서히 전신으로 번져 나갔다. 시트는 물론이고 다리 사이가 죄 더러워져 버렸으니, 처리할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지만 당장은 그런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이 쾌감을 계속 이어가는 것만이 중요했다.
“흐, 아… 앗, 아으윽-”
가스파르의 것에 비하면 딜도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그라면 조금 더 안쪽을 찔러 주었을 텐데. 끝까지 밀어 넣은 채로 있는 힘껏 저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지난밤의 열기가 몸을 데웠다.
“으. 흣, 좋아… 아. 흑……!”
두 번째 사정에 이르기까지는 처음보다 시간이 더 걸렸지만, 머릿속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긴 쾌감이 한순간에 끝난 기분이었다. 안타까움과 허무함에 아일럿은 이를 악문 채 숨을 몰아쉬었다.
“…….”
이성을 잃을 만큼 환희에 절여졌었던 시간이 끝났다. 짙은 혐오에 구역질을 하고 싶은 기분을 느끼면서, 아일럿은 자괴감에 얼굴을 묻었다.
*
“도련님? 시트는 왜-”
“아니, 실수로 뭘 좀 쏟아서.”
“그러셨군요. 이리 주십시오.”
혹시나 들켜 버릴까 봐, 빨래를 해야 할 하인에게는 미안했지만 그 위에 물까지 새로 쏟아 버렸다. 둘둘 말아 버린 시트를 룹에게 넘겨준 아일럿은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목욕물 좀 준비해 줄래? 가기 전에 몸을 좀 씻고 가고 싶어서.”
“욕조를 방으로 옮겨 드릴까요?”
시트는 처리했으니, 이제 몸을 좀 씻고 싶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지 못하고 급한 대로 원래 입었던 옷을 입은지라 다리 사이가 여전히 끈적끈적했다.
“응. 그리고 시중은 필요 없어. 입욕제는 아무거나 다 좋지만 라벤더는 빼줘.”
“네, 도련님.”
하인이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보고 아일럿은 방 안으로 돌아와, 아무 의미 없이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마음이 착잡하여,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초조함이 가시와 같은 형태로 입안에서 돋아나 버릴 듯했다. 오래 있지 말라고 하였으니 목욕을 하고 나면 가스파르의 별장으로 가야 할 터였다.
아, 부디 폭우라도 쏟아져 내려서, 혹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가스파르가 스칸다로 돌아오는 길이 하루라도 지체되었으면.
“도련님, 욕조는 이쪽에 두겠습니다.”
“고마워. 나중에 부를게”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소리를 입안에 담고 있던 아일럿은 룹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내보냈다. 어떤 입욕제를 풀었는지 푸르게 반짝이는 물에서 상쾌한 냄새가 흘러, 우울함을 조금이나마 가시게 해 주었다. 깨끗한 옷을 욕조 가까이에 두고, 더럽혀진 옷을 벗은 뒤 욕조 안에 발끝을 담갔다.
‘예전부터 번식시키고 있던 촉수였는데, 사람한테 써보는 건 네가 처음이야.’
따뜻한 물 덕분에 몸이 노곤해지면서도, 마지막으로 욕조에 들어갔던 사흘 전 일이 떠오르니 불쾌감이 피부 위를 기어 다녔다. 그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불안하여 발바닥으로 슬며시 욕조 바닥을 긁어보다가 가슴 아래까지 몸을 미끄러뜨렸다. 알몸인 채로 있으면 가스파르가 남긴 검붉은 자국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왼쪽만 튀어나오고 오른쪽은 그대로네. 이거 어떻게 해 줄까.’
‘하으, 흑, 읏… 힉…….’
마주 본 채로 짓쳐대던 그가, 그것으로는 부족했는지 처음에는 목덜미를 물었다. 그러고는 쇄골과 유두 주변을……. 팔다리는 자유로웠으나 그를 밀어낼 힘은 없었다.
‘이로 살짝만 물어도 튀어나올 텐데.’
지난밤의 일이 머리를 찔렀다. 아일럿은 얼굴까지 욕조에 가라앉히고서 한계까지 버티다 빠져나왔다. 숨이 막혀서가 아니라 언뜻 눈을 떴을 때,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봐 버린 탓이었다. 양쪽 손으로 욕조를 잡고서 몸을 일으킨 아일럿은 오른쪽 다리를 욕조 위에 올렸다.
“……이게 무슨.”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안에서는 하늘색 입욕제 때문에 가려져 흐릿하게 보였는데, 물 밖에서는 붉은색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허벅지 안쪽에…… 2라는 숫자가 쓰여 있었다. 혹시 무엇인가 묻은 것일까 싶어 물을 묻혀 벅벅 문질러 봐도, 지워지기는커녕 주변의 피부만 붉어지고 숫자는 도드라졌다.
처음 가스파르의 저택에서 바지를 내리고 정조대를 풀려고 했을 때, 이런 것은 없었다.
“맙소사.”
2가 무엇을 의미할까. 잠시 생각해 보던 아일럿은 그 숫자가 저 혼자서 자위를 하여 사정했던 숫자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 정조대에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던 게 아닐까. 가스파르가 한 짓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설마. 설마……. 알몸인 것도 잊고 서둘러 침대 밑에 숨겨둔 정조대를 꺼낸 아일럿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정조대 안쪽에 아주 희미하게, 무척이나 작은 글씨로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문자가 적혀 있었다.
“큰일… 났다.”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서 정조대를 채운 거였다. 이걸 빼내면서 참지 못하고 할 거라는 걸 알았던 거야. 그리고 저는, 그런 가스파르의 덫에 손쉽게 걸려 버렸다.
[추신. 내가 없는 동안 혼자 자위를 하는 일은 없기를. 들키게 되면 살짝 아픈 일을 당하게 될 테니까.]
편지의 끝에 적혀 있었던 추신이, 상상 속에서 둥글게 휘어져 저를 비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