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련님.’
‘……으음.’
‘도련님, 주무십니까?’
‘어. 응?’
‘별장에 도착했습니다.’
‘아, 벌써?’
선잠에 들었나 보다. 깜짝 놀라 눈을 뜨니 작년 여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스칸다의 별장이 눈에 들어왔다. 1년 만이구나. 반가운데……. 반갑기는 한데, 왜인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예. 짐을 내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내리십시오.’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아일럿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책을 덮고서 몸을 일으켰다. 방금 집에서 출발한 것 같은 기분이지만 시간이 좀 빠르게 흘렀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마차의 문을 열고 내렸다.
‘왜 그래?’
하인 세 명이 나란히 서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 생활을 전반적으로 챙겨 주고 있는 상냥한 데거, 제 또래로서 어렸을 적부터 함께했던 페드릭, 저보다 두 뼘은 큰데다 근육질인 마구간지기 룹.
‘뭐야. 내 얼굴에 뭐라도 묻은 것처럼.’
나란히 선 세 명이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의아했으나 애써 웃음으로 화답했다. 하나 그다음 순간, 몸이 공중에 들렸다. 키가 큰 룹이 제 몸을 뒤에서 번쩍 들어 버린 탓이었다.
‘룹, 뭐 하는…!’
‘도련님. 이걸 찍어서 가스파르 님께 보내셔야 하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혼자서 많이 힘드셨지요? 도움을 받으시면 수월하실 겁니다.’
‘무슨 소리야, 그만해!’
크게 소리를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룹은 뒤에서 제 상체를, 데거는 하체를 잡고서 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고, 페드릭은 옷을 찢어발겼다. 여름인지라 위도 아래도 가벼운 재질의 옷을 입고 있었으니 얇은 천쯤은 억센 손 사이에서 쉽게 찢겨져 나갔다.
‘어디 한번 봐볼까요?’
순식간에 찢어진 천 쪼가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니, 페드릭은 손을 뻗어 아일럿의 유두 주변을 어루만졌다. 하나, 이내 철썩하고 가슴 위를 강하게 후려친 탓에 아일럿은 절로 몸을 움츠렸다.
‘도련님의 가슴이 함몰된 건, 사실 모르는 하인들이 없었습니다. 다들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을 해 준 거예요.’
‘뭐, 뭐?’
‘하지만 뒤에서는 수군거렸답니다. 도련님이 안에 민소매를 입고 다니시는 건, 유두가 함몰 된 데다 금화 한 닢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아일럿은 크게 소리를 지르려 했다. 세 사람이 이상해졌긴 하지만 다른 하인들이 도와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주변을 둘러보니 별장에 거주하는 하인들은 죄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누구 하나 움직이는 자가 없었다.
‘다들 궁금해하고 있어요. 튀어나온 걸 본 적이 없으니까.’
‘흐, 읍, 으우!’
‘그렇지만 상상과 비슷할 것 같군요. 튀어나오면 분명 손으로 잡고 마구 만질 수 있을 만큼 크겠지요? 혼자 그렇게 만져대셨으니 더 커지셨을 겁니다. 저희에게도 보여 주십시오.’
‘맞습니다. 오랫동안 도련님을 모셔왔지 않나요.’
아니야. 싫어. 고개를 저어봐도 그들의 손이 집요하게 가슴을 지분거렸다. 설상가상으로 손으로 만져서는 잘 나오지도 않던 유두가 금방 보기 흉하게 튀어나왔다. 그런 말을 들은 탓인지 더 커진 것처럼 느껴져서, 눈을 돌리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혼자서 컵을 사용하셨지요? 빨아들이는 소리하며, 도련님의 신음 소리까지. 방문을 닫으셔도 바깥까지 들리던데요.’
페드릭이 제 가슴 위로 입술을 묻고는 질척한 소리가 나도록 핥아 올렸다. 제 다리를 잡고 있던 데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가스파르가 마사지를 핑계로 허벅지를 더듬었던 것처럼 안쪽을 지분거리고, 골반 부근을 만지다가 마침내 음부에 손을 대었다.
‘흣, 흐으, 아……. 읍.’
이건 꿈이야. 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 눈을 꽉 감고 버티니 세 사람은 보이지 않게 되었고,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으나 여전히 몸 위를 더듬는 감각만은 선명했다.
“하지, 흐읏… 아, 아.”
“자면서도 느끼기는.”
가스파르는 눈을 감은 채 버둥거리는 아일럿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벌써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잠든 아일럿이 도무지 일어나지 않기에 여기저기를 만져보다, 약간 재미가 들리고 말았다.
“아일럿, 일어나.”
새벽 동안 한껏 괴롭혀준 덕에 살짝 비틀기만 해도 튀어나온 유두를 손끝에서 둥글렸다. 언젠가는, 아니 가까운 시일 내에 여기에 퍽 어울리는 장식을 만들어 줄 것이다.
“……안 일어나도 좋고.”
가스파르가 입술 끝을 우아하게 올렸다. 그러는 동안 아일럿은 다시 꿈속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세 사람이 전부 보이지 않았는데, 룹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나머지 두 사람도 차례로 선명해졌다.
‘하아, 하… 안 돼. 안 돼!’
이번에는 다른 자세였다. 침대 같은 곳에 누운 채로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살짝만 좁히려는 시도를 해도 페드릭이 계속 벌려대는 탓에, 두 다리가 넓게 벌어졌다.
‘가스파르 님께 가시기 전에 예습은 충분히 하셔야지요.’
‘이러지 마. 이런 건-’
‘도련님이 혼자서 하시기엔 너무 벅찬 일입니다.’
손으로 가리지도 못하게 하는 탓에 비밀스러운 곳을 훤히 보인 채, 그들의 손가락이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입구를 살살 두드리며 입구의 주름을 느릿느릿 매만지는 손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내 한 마디, 그리고 두 마디. 손가락 하나를 전부 넣고 나서는 손끝은 가만히 둔 채 손목을 움직였다.
‘여기로 손가락을 계속 반기고 계시는걸요. 고작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해 버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읏……!’
‘안쪽이 오물거리고 있어요. 입이 아래에도 달리셨네요.’
그럴 때마다 입구가 점차 벌어지고 있다는 게 싫을 만큼 느껴졌다. 부러 거칠게 움직이다 멈추고, 그다음에도 격렬하게 움직인 뒤 멈추기를 거듭하니 몸이 더 강한 자극을 바라며 달아올라, 잔뜩 욕심을 냈다. 차라리 아래쪽이 입이라면 마음껏 원하는 대로 물고 빨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마, 하아, 그만. 안 돼.’
‘이렇게 좋아하시면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이런 게 좋을 리가 없는 거잖아. 데거가 몸을 바싹 붙여오자 아일럿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그것이어서, 덮쳐오는 파도를 밧줄 하나 붙잡고 버티는 사람마냥 고개를 젓고 싫다는 말을 반복했다.
“아일럿, 나중에 네가 싫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면 그건 그것대로 좀 서운해질 것 같아. 이렇게 듣기 좋은 소리로 우는데.”
“하… 흐우, 흣, 아, 거기……. 흑.”
“여기가 그렇게 좋아? 참는 시늉도 못 하고.”
“데거, 싫…….”
“음?”
“데거, 데거, 아냐. 그만…… 제발. 만지면-”
“세상에나.”
문제는, 그 말을 듣는 게 아일럿의 충성스러운 하인 데거가 아니라 가스파르 루였다는 것. 어제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였던 곳이 안쓰럽게 부어오른 것이 제법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몸으로 느끼는 기쁨은 충분히 알려 준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었다.
마법사들이 만들어 준 약을 넣으면 이 정도 상처는 금방 낫겠지만, 삽입까지 하는 건 좀 그럴까. 새벽까지 엉엉 울리고 말았으니, 낮에는 손가락으로 만지는 것에서 만족하고 물러서기로 마음이 어느 정도 굳혀진 상태였다.
“룹, 르, 읍, 그만. 아니야… 앗!”
“…….”
“페드, 리……. 아, 흐읏!”
그런데 아일럿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자고 있다고는 해도 침대 위에서 상대에게 제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가스파르로서는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페드릭, 흑. 흐아…!”
데거, 룹, 페드릭? 그건 또 누구지? 아일럿의 어젯밤 반응으로 봐서는 살면서 다른 남자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제 행동 때문에 꿈속에서 영향이라도 받고 있는지 거침없이 여러 이름들을 내뱉고 있었다. 유두를 만지면 룹, 아래를 만지면 페드릭. 데거는?
“우으, 흡……. 데거, 어.”
여기구나. 몸을 붙이고서 목덜이 근처를 소리 나게 빨아주자마자 데거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대로 삽입하면 다른 놈의 물건, 아마도 페드릭의 것을 받아먹었다고 생각할까? 한동안 고민이 이어졌으나, 제가 잘 가지고 놀고 있던 와중에 갑작스럽게 끼어든, 누군지도 모를 남자들에게 범해진 것을 관음하는 취향은 아니었다.
“슬슬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가스파르는 아일럿을 깨워 보려 몇 번 뺨을 두들겼다.
“일어나렴, 아일럿.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그를 어렸을 적부터 돌보아 주었던 유모 못지않은 상냥한 목소리였으나, 한편으로는 제 것을 꺼내어 아일럿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이렇게 깨우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면-
“헙, 흐으윽!”
페니스가 불쑥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아일럿이 눈을 크게 뜨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가스파르의 손에 어깨가 눌려 도로 눕게 되었다.
“좋은 아침. 잘 잤니?”
“아, 무, 뭐……. 허, 하아, 아!”
뭐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나 살짝 빠져나갔던 페니스가 치고 들어오자 깨져 버린 말이 신음 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아일럿은 시선을 위로 올린 뒤에야, 입을 크게 벌리고 버둥거렸다. 잠에서 깨자마자 본 모습과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던지라, 무슨 꿈을 꾸었는지 마저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덮치는 건 처음이 아닌데.”
“흐으읏, 흑, 아……!”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건 처음이야.”
하나, 안까지 깊숙하게 치고 들어오며 가스파르가 속닥거리자 순간적으로 흐릿했던 기억이 서서히 형태를 되찾아갔다. 제 옷을 찢고 다리를 벌리게 해서 온몸 곳곳을 애무했던 세 사람. 절대로 자신에게 그럴 리가 없는 이들이 가스파르처럼 저를 위협했다.
“데거, 페드릭, 룹, 이름도 다양했지.”
“흑. 읍.”
“세 사람이랑 해 본 소감이 어때?”
그건 다, 가스파르가 저를 만지고 있었기 때문에 꾸었던 꿈이었으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이름을 들어 보니, 평민이나 사용할 법한 이름이던데. 설마 하인인가?”
“흐, 우윽……. 읏…!”
동요하는 기색이 너무나 선명한지라, 가스파르는 손쉽게 아일럿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놀라워라. 하인들이랑 하고 싶었던 거구나. 동정을 잃기가 무섭게 천한 놈이랑 뒹굴고 싶어지다니, 너도 참.”
“아아, 흑. 아냐. 아니… 아니라구!”
“귀한 놈의 좆보다는 천한 놈의 좆으로 박히는 게 좋았어? 아일럿, 네가 그런 걸로 흥분하는 줄은 몰랐는걸.”
네가 이러지 않았다면 친지나 다름없는 하인들을 상대로 그런 꿈같은 건 꾸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입술이 가스파르로 인해 틀어 막혔다.
“후으, 읏, 흡……. 으!”
입술을 안쪽으로 말고 버텨 보았으나 그의 능숙한 행동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혀가 진득하게 입술 주변을 핥고, 입 꼬리 부근으로 넘어가나 싶더니 한 손으로 제 뺨을 감쌌다. 그와 거의 동시에 시작된 요분질은, 아일럿이 입을 다물 수 없게 만들었다. 욕심을 냈으니 기어코 가져가려고 하는 듯, 몸을 움직이며 키스를 퍼붓던 가스파르는 다시금 어젯밤의 일을 상기시켜 주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아, 이런.”
“……?”
문득 입술을 떼고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던 탓에, 너무나 쉽게 물러나자 아일럿은 두려워하는 한편으로는 의아해했고, 제 몸에 남아 버린 옅은 아쉬움 같은 것을 떨쳐내려 재빨리 몸을 물렸다.
“링이 끊어졌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는 저를 보고서 가스파르가 한 말이 그것이었다. 아일럿이 무심코 그를 바라보다, 아래쪽의 흉기 같은 물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가 침대 옆의 서랍장으로 손을 뻗는 장면은 볼 수밖에 없었다.
“가만, 아, 여기 있다.”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얼떨떨하기만 하던 아일럿은, 침대 위에 떨어져 있는…… 그의 말대로 링 같은 물건을 발견했다. 굉장히 마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팔에 끼기는 힘들 법한 둘레의 물건인데, 왜 저게 침대 위에 있는 거지? 그리고 왜 가스파르는 저걸 꺼내서-
“뭐야. 전부 넣었다고 생각했어?”
이해해 버렸다. 아일럿이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몸이 먼저 그에게서 떨어지려 했다. 침대라서 더 도망칠 곳도 없는데 몸이 자꾸만 움직였다. 더, 더, 가스파르와 한 뼘이라도 떨어진 곳으로.
“나름 배려해서 끼워준 거야. 너 힘들잖아.”
그가 새롭게 꺼낸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두꺼운 링이 뿌리 쪽에 끼워져 있었다. 그렇게나 깊은 곳까지 들어 왔는데 전부 들어간 게 아니었다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일럿을 보며, 가스파르는 태연하게 제 페니스에 방금 끊어졌던 링을 손끝으로 건드렸다.
“그거, 하고 있었던… 방금 전에도?”
“응. 계속 쓰고 있었는데?”
신이시여.
윗부분과 아래를 조금 만져보기는 했으나 제대로 보지 못해서 저런 것이 끼워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빠져나온 부분만 해도 너무 길어서 그게 끝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모, 못 해.”
이성보다 먼저 입이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스파르는 웃을 따름이었다.
“네가 못 하면 어쩌려고.”
발목을 낚아채 버렸더니, 손쉽게 링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일럿은 버둥일 틈도 없이, 제 팔 길이만 한 페니스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링을 끼우고 있으니 처음 들어왔을 때와 차이는 없을 테지만, 남은 부분이 있다는 걸 본 이후부터는 날이 잘 선 칼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아……!”
큰 것이 들락거리던 구멍이 그새 좁혀지는 일은 없어서, 가장 굵은 부분을 지나자 나머지는 수월하게 들어왔다. 아일럿은 견디지 못하고 손으로 가스파르를 밀어내는 시늉을 했으나, 한편으로는 링이 끊어지기라도 할까 봐 손에 힘을 주지 못했다. 두 번째로 끊어졌을 때는 혹시나 가스파르가 마음을 바꿔서, 링을 끼지 않겠다고 할까 봐.
“더 반항 안 해?”
솜방망이 같은 주먹질이 멎고, 아일럿이 체념한 것처럼 굴자 가스파르는 금세 눈치를 챘다. 제가 추삽질을 할 때마다 참지 못하여 힘겨운 교성을 내뱉는 얼굴을 보면서, 가스파르는 만족스레 웃는 한편으로는 불만족스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널 협박할 때 쓰고 싶어서 준비해둔 말이, 적어도 시집 한 권 정도의 분량은 될 텐데…….”
죽어. 지옥에 떨어져 버려.
입술을 꽉 깨문 아일럿이 눈으로 욕을 하기 시작하자, 가스파르는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직접 욕하지는 않고, 제법 똑똑해졌네.”
“흐윽…!”
퍽, 치고 들어오자 아래쪽에 그가 링을 끼우고 있다는 것을 문득 느낄 수 있었다. 전부 넣지 않기 위해서 저걸 끼우고 있는 것이겠지만, 가스파르가 이성을 놓고 미친 듯이 쑤셔 박다가 저 부분까지 넣어 버릴까 봐 걱정이 됐다.
“힛, 하아, 흐, 읍…… 아!”
공포와 쾌감이 연이어 안쪽을 찧어대면서, 아일럿은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스파르에 의해 몸이 뒤집혔다. 어제도 벽에 짓눌리면서 등을 보이고 한 적은 있었지만, 그가 제 허리를 단단히 붙잡자 부끄러움에 안면이 달아올랐다. 심지어 그 상태로 엉덩이를 몇 대 얻어맞기까지 했다.
“제대로 들어. 허벅지에 힘주고. 이런 것까지 가르쳐 줘야 하니?”
“읏… 아으! 흑!”
맞을 때마다 안쪽이 조이거나 몸이 흔들려서 삽입된 그의 것이 내벽을 눌러대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나, 어느 이유에서든 쾌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아일럿에게는 큰 수치로 다가왔다.
“아…… 파, 앗. 흐, 으윽!”
“벌이라고 생각해.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불렀잖아.”
“흐, 큿…….”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만큼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어.”
그런 것치고는 더없이 즐거워하는, 노래라도 부르는 양 낭랑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서로의 살이 추잡하고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 불협화음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음?”
아일럿의 엉덩이가 이미 새빨갛게 익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손을 올리던 가스파르는, 문득 제 상대가 사정을 하기 직전처럼 몸을 바르작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일럿이 팔다리를 어찌할 줄 모르고 손등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을 보면서, 삽입 중에는 거의 건드리지 않았던 곳을 손으로 움켜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액이 귀두는 물론이고 그 아래의 시트까지 적신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새어 나와 있었다.
“마, 만지지…….”
“또 언제 오줌을 지린 거야?”
“아니. 아냐. 앗… 아흑.”
“내 하인들한테 아일럿 바슬레인은 오줌싸개라고 알려 주고 싶어서 그래?”
“아니라니까!”
“그럼 이건 뭘까. 홍수가 난 것처럼 젖어 있잖아.”
선액을 흘린 것을 알면서도 가스파르는 아일럿을 비웃으며, 그의 페니스를 손으로 가지고 놀 듯 쥐고 흔들었다. 뒤에서도, 앞에서도, 쾌감이 멈추지 않으니 아일럿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크게 벌어진 입으로 그저 애처롭게 숨을 쏟아냈다.
“생각해 보니 이쪽은 너무 예뻐해 주지 않았던 것 같아.”
“하…… 아, 앗, 우읏-”
“여기도 유두 못지않게 귀여워.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은데다, 분홍색이고, 체모는 적고, 깨끗하기까지. 다음부터는 이쪽도 발기시킨 다음 찍어서 보내 볼래?”
“시, 힉, 싫… 흐, 흑. 아아!”
“마음에 든다구?”
“흐, 우웃……!”
제 품 안에서 도리질을 치는 작은 머리통 위에 입을 맞추면서, 바쁘게 손과 허리 아래를 움직이던 가스파르는 신음하며 헐떡이는 아일럿보다는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 흑, 사람… 왔, 어. 제발, 제발 멈춰.”
“후우, 뭐라고?”
도리어 지나치게 열중하고 있었던지라 문밖에 누가 서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도리어 노도 같은 쾌감에 허덕이고 있던 아일럿이 그의 팔을 잡아서 흔들고 나서야, 길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주인님,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야?”
가스파르의 집사가 문밖에 서 있었다. 이미 소리를 들었겠지만, 아일럿은 가스파르가 보지 못하는 틈에 이를 세워 제 손목을 물었다.
“아일럿 바슬레인 님을 모시는 하인이 찾아왔습니다. 아일럿 바슬레인 님을 만나 뵙길 청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
“응접실에… 아니, 이쪽으로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하인이 왔다는 말에 동요하던 아일럿이 곧바로 몸을 뒤틀었다. 뭐라 항의하고 싶지만 하지 못하여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눈에 선하여, 가스파르는 달래듯이 상대의 머리를 정수리부터 쓰다듬었다.
“걱정 마. 아일럿. 문은 안 열 테니까.”
“미쳤……어.”
이윽고 두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가스파르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손등을 물었던 아일럿은, 밖에서 들려오는 룹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었다.
“도련님. 룹입니다. 간밤에 연락이 없으셔서 다들 걱정하고 있습니다. 마님께서 보내신 편지가 도착하기도 했고요.”
“흡. 읍.”
“뭐해. 아일럿.”
땀에 젖어 있지만 굳어 있는 등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면서 가스파르가 재촉했다. 어찌나 예민해졌는지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힉, 흑, 하는 소리를 내던 아일럿은 더듬이가 눌린 달팽이처럼 굴었다. 젖은 등 위에서 손가락을 굴려보던 가스파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대답해줘야지. 부러 여기까지 찾아와 준 친절한 하인인데……. 맞아. 그러고 보니 네가 불렀던 이름 중에 룹이라는 이름이 있었지 않나?”
“아으, 읏.”
“같이 하자고 할까? 안으로 불러서.”
“흐으, 으윽….”
“싫어? 그럼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하인한테 뭐라고 말이라도 해 봐.”
선심을 쓰는 척 말을 꺼내면서 가스파르는 제 페니스를 아일럿의 안에서 빼냈다. 그러고는 소리가 나지 않게 쳐올리는 동안, 아일럿은 몇 번이고 신음을 삼키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룹. 나는 여… 여기 조금 더 있다가. 하. 갈 테니까.”
“예?”
“여기, 가스파르의 벼, 별장에. 여기 더 있다가 갈게.”
“도련님, 죄송합니다. 잘 들리지가 않아서…….”
룹은 귀가 어두워서 가끔 했던 말을 다시 묻곤 했었다. 평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그 버릇이 지금은…… 아일럿이 짧게 숨을 토해냈다. 부디 거칠어진 제 숨소리도 듣지 못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여기, 더 있다가 가겠…다구. 흐. 윽. 신경 쓰지 마. 아, 알아서 나중에 별장으로 돌아갈게.”
“알겠습니다. 도련님. 저, 그럼 편지는 어떻게 할까요?”
가스파르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는 아일럿의 귓가에 속삭였다.
“두고 가라고 해. 나중에 읽게 해 줄게.”
“펴… 편지는. 두고 가. 나중에, 흐, 으으읏. 읽을 테니까!”
“도련님? 목소리가-”
“괜찮… 흐아, 악. 웁.”
뒤에서 뻗어 온 손이 입을 막았다. 아일럿의 안쪽이 제 페니스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통에 가스파르는 참지 못하고 아일럿의 입을 막은 채로 힘껏 치대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일럿에게 다행인 것은, 그가 대신 룹에게 말이라도 해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빠르게 허리를 움직이자, 말은커녕 제대로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도 버거웠다.
“편지는 집사한테 전해 주고 가요. 우리 두 사람이 지금 바빠서요. 뭣 좀 한창 하는 중이었거든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눈이 거의 뒤집은 채 흔들리던 아일럿은 돌연 정신을 잃었다. 전조 증상도 없이, 책을 덮는 것처럼 의식이 닫혀 버리고 나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밤새 혹사를 당했고, 이상한 꿈을 꾸느라 깊게 잠들지도 못한데다 자는 도중에 가스파르에게 덮쳐졌다. 가뜩이나 체력이 약해서 여름이면 스칸다로 피서를 와야 했던 자신이었으니, 기절을 하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흐으…….”
하지만 그 뒤로도, 가스파르는 제 안에 쑤셔 박다 못해 사정까지 한 모양이었다. 눈을 뜬 아일럿은 제 음부는 물론이고 엉덩이 사이가 축축해져 있는 것을 깨닫고는 심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눈을 뜨고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을 만큼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아일럿 님.”
“뭐, 뭣.”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제야 아일럿은, 제 주변에 다행스럽게도 가스파르는 없지만 자신이 알몸에 이불만 한 장 덮고 있는데다 방 안에는 하인이 셋이나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자 바닥을 쓸고 닦는 등 할 일이 많은지 이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집사 한 명뿐이었지만, 아일럿은 황급히 제 옷을 찾으려 했다. 하나, 애초에 입고 온 옷이 없다 보니 아무것도 위에 걸칠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집사가 앞으로 내민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인님께서 아일럿 님께 보내신 옷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옷이었다. 저걸 지금 입어야 하긴 할 텐데, 하인들이 방 안에 있다 보니 쉽사리 옷을 향해 손을 뻗을 수가 없어서……. 아일럿이 눈치를 보자, 집사는 하인들에게 손짓을 했다. 간신히 방 안에 혼자 남게 되었다.
“……후으.”
이제 저걸 입고 돌아가도 된다고 하면 좋을 텐데.
혹시나 방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지 재차 확인을 하고는 상자 안으로 급히 손을 뻗었다. 알몸으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엇이라도 걸쳐야 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셔츠와 바지 속으로 각각 머리와 다리를 밀어 넣었더니만, 너무 작았다.
아니, 작은 정도가 아니라 꽉 끼었다. 길이도 이상했다. 상의는 배꼽이 거의 보일 지경이었고, 바지는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지는데다 기장도 무릎을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정도였다.
가스파르와는 체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으니, 그와 비슷한 사이즈의 옷만 준비해 주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명백한 고의였다. 특히나 가슴 부분은 심하게 피부에 달라붙어서, 유두가 튀어나와 있었다면 영락없이 옷 위로 두드러졌을 것이 뻔했다.
이 꼴을 들켜서 좋을 게 없다. 차라리 옷을 벗고 이불을 덮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아일럿이 서둘러 옷을 벗으려 하자, 가스파르는 기다렸다는 양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거 벗으면 네가 입을 옷은 없는데?”
“이런 걸… 어떻게 입으라구.”
“하지만 너한테는 어울려.”
아일럿이 뒤로 물러서자 가스파르는 그만큼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와 허리를 손으로 잡았다. 적당히 낭창하고 부드러운 허리는 손으로 잡기 좋았고, 그 밑으로 이어지는 엉덩이도 마찬가지였다. 양손으로 꽉 쥐는 순간, 품 안의 몸이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건데.”
“네 별장보다 훨씬 시원하고 좋지 않아?”
“이제 그만 돌려보내 줘.”
입술과 이 사이에서 억눌린 목소리를 들으니, 가스파르는 웃음이 나왔다. 조금 얌전해졌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런 말을 거침없이 꺼내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앞으로 6일 더.”
“6일씩이나?!”
“그 뒤로도 계속 부르긴 하겠지만, 일단은 6일로 정했어.”
여름방학 전체가 아닌 걸 감사히 여겨야 하는 걸까. 절망스러운 나머지 발밑이 꺼지는 듯하여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어제 하루만 해도 그렇게나 많은 일을 겪은 참이다. 그런데 6일씩이나 지나면.
“읏. 흐으.”
“이제 살짝만 비틀어줘도 나오게 될 때가 됐는데.”
거미처럼 올라간 손이 가슴에 닿았다. 옷이 딱 붙는 탓에 감각이 한층 더 뚜렷해져 있었다.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가슴을 한껏 움켜쥐었다가 서서히 손가락을 오므리면서 유두를 향하는데, 애써 입을 다물어도 혀와 입천장 사이에서 제 신음소리가 울렸다.
“쉽지가 않네. 계속 고정을 시켜 주면 나으려나.”
함몰된 채로 잘 나오지 않는 유두 주변을 살살 건드리면서 제 몸을 달구려고 하는 가스파르의 손길이 간드러졌다. 아일럿은 허벅지를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바지도 딱 붙거니와 자칫하면 페니스의 윤곽이 옷 위로 두드러져 그의 눈에 띌 것만 같았다.
“그렇게 좋으니? 가만히 있지를 못하네.”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가스파르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집안의 일을 생각하면 손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사이, 그가 허벅지를 다리 사이로 밀어 넣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침대로 다시 가게 될 것이 뻔했다.
‘링이 끊어졌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흉흉한 물건이 두려웠다. 뿌리 부분이 들어가지 않도록 링을 끼우고 있었는데도 그 정도로 깊게 제 안을 찔러 대었으니 링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상상하기만 해도 소름이 돋아났다. 가스파르가 바지 위로 제 엉덩이를 더듬고, 골 사이로 손을 넣을 것처럼 굴고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윽…….”
“도저히 안 되겠어?”
“제, 제발. 밤새도록… 했잖아.”
가슴까지는 저항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쉽게 내어 주더니, 금방이라도 옷을 찢고 손가락을 삽입할 기세로 행동하니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제 손목을 쥐려 했다. 가스파르는 잠시 고민하는 시늉을 하다, 애처로움이 그득해진 눈동자 주변에 입술을 꾹 눌렀다. 아일럿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렇게 할까?”
사실은 저 좋을 대로 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는 말임에도, 당치도 않게 선택권을 주는 척한다. 하지만 일단은 그의 손길이 멈춰 있었기에 조금이나마 시간을 끌고 싶어서, 아일럿은 부러 느리게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입으로 해 봐.”
“그건!”
“그럼 이틀간은 손가락 외에는 삽입하지 않을게. 이만하면 괜찮은 거래 아닌가?”
애초에 아무것도 안 한다는 선택지가 없었다. 가스파르는 제 입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벌려서 매만져보다 안쪽으로 손가락을 스쳤다. 혀끝에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감각이 이질적이고 불쾌했다.
“약속 지켜.”
그의 손가락이 혀 중앙까지 오기 전에, 아일럿은 고개를 뒤로 물리고서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의 행동 때문에 목이 꽉 멘 듯했다.
“나 의외로 약속은 잘 지키는 타입이야.”
퍽이나.
“넌 못 믿을 것 같지만.”
6일씩이나 더 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이틀이면…… 이틀이면 그의 말대로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큰 것이 입에 전부 들어갈 리 없었다.
“이쪽으로 와, 아일럿.”
도망칠까.
침대에 걸터앉은 그를 보고서 다리는 그쪽으로 움직였지만 도망치자는 생각이 이성을 두드렸다. 같은 남자의 성기를 입으로 무는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런 끔찍한 일을 했다가는 평생 기억에 남을 거라고. 이성이 소리를 높였다.
“아, 아윽. 뭐 하는 짓이야!”
“네가 고민이 많아 보여서 도와주려고.”
앞에 서서 우물쭈물 거리는 아일럿에게 가스파르가 발을 걸었다. 얼떨결에 앞으로 넘어져서 그의 허벅지를 잡고 무릎으로 서게 된 아일럿은 바로 그를 쏘아보았지만, 가스파르는 더 말을 잇는 대신 아일럿의 머리를 잡고 누를 따름이었다.
“무릎 꿇어야지.”
“…….”
“손으로 꺼내 봐.”
치욕스러움과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의 떨림을 멎지 않게 만들었다. 아일럿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가스파르의 두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침대의 높이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이 그의 고간과 가까웠다.
“아일럿?”
꺼내라는 말을 했기에, 두 손을 가스파르의 바지에 가져가서…… 끈을 풀고 끌어내리는 동안, 아일럿은 제 심장이 여기서 콱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적어도 집안에 별다른 일은 없을 테니까. 하나, 아일럿의 심장은 무섭도록 세차게 뛸 뿐 멈추지 않았다.
“해…… 했어.”
반쯤 발기한 페니스를 손으로 어설프게 꺼냈다. 성교를 하면서 구음을 하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으나, 그 방법은 전혀 모르고 있는 아일럿이었다. 가스파르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머리를 눌러 강요하는 대신 굳어 있는 아일럿의 입술 위에 제 것을 대고 약하게 눌렀다.
“입으로 머금어 봐. 다음에 어떻게 할지 가르쳐 줄 테니까.”
그러고 나서 입술을 벌리는 데 족히 수십 초는 걸렸다. 조금 벌리는 듯싶다가도 다물고, 페니스 근처에서 한숨 같은 숨을 내뱉으면서 거부하고 싶은 티를 냈다. 그러나 눈앞의 물건이 점점 더 크기를 키우는 듯싶자, 마음을 바꿨는지 입술을 열었다. 가스파르는 단숨에 밀고 들어가는 대신 귀두와 그 밑 부분까지만 입안에 넣게 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하게 될 테니,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후, 웁. 프……. 흐.”
“혀를 말아서 잘 감싸봐. 입은 그대로 벌리고서.”
아일럿은 눈을 질끈 감았다. 별다른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고, 체모도 많지 않았으나 입에 담는 것 자체가 역했다. 제 안을 긁어내는 것처럼 움직였던 것이 목구멍까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부분은 두 손으로 잡아봐.”
혹여나 제 머리를 짓누를까. 불안하던 차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손톱 끝으로도 건드리기 싫은 것을 두 손으로 잡았다. 사람의 신체 일부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치 뜨겁게 느껴지니, 아일럿은 견디지 못하고 눈을 떴다. 소용없다는 것은 알아도 몸이 무심코 애원을 했다.
“흐, 흐으. 우웁.”
“빨리 끝내는 법을 가르쳐 줄게.”
두 손으로 잡았는데도 입안을 가득 채우는 페니스가 슬슬 목젖을 건드리려고 했다. 목 안쪽이 간지러워지고, 눈물과 함께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입은 그대로 두고 손을 움직여 봐. 입으로는 무리일 것 같으니까. 손으로 하는 건 너도 잘 알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지.”
발끝이 허벅지를 지나서, 허벅지와 딱 달라붙은 옷에 숨겨져 있는 페니스를 가볍게 건드렸다. 이어서 톡, 톡. 아일럿이 꿈틀거리자 가스파르는 약간의 힘을 실었다.
“혼자 했을 때를 생각해 봐.”
“푸하, 흡……!”
아일럿이 한계에 달했다. 하여, 입을 그대로 두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물고 있던 것을 뱉어냈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이전보다 더 깊은 곳까지 페니스를 머금게 되었다. 말을 이어가던 가스파르는 한쪽 손으로 아일럿의 머리를 꽉 누르고는, 이내 머리 위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는 시늉을 했다.
“더 깊숙하게 넣어 줄까? 난 그것도 좋아.”
“우으으, 윽, 웁……. 흐.”
“다 넣으면 틀림없이 목까지 들어갈 텐데.”
“읍. 우……. 흐으, 끅.”
“지금은 링도 안 끼웠잖아. 아래보다 입으로 먼저 다 받아먹어 보고 싶었어?”
입술 끝에 제 손가락이 닿았다. 더 삼키지 않으려고 버티면서도 가스파르의 것을 세게 쥐지는 못하고, 위에서는 힘을 주어 누르고 있으니, 자칫하다가는-
“내 생각이 틀려?”
“허억, 헉, 흐으. 하……!”
실제로는 1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으나 아일럿에게는 수십 분보다 긴 시간이었다. 제 무릎을 잡고 헐떡거리는 아일럿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가스파르는, 나지막하게 웃음을 흘렸다. 울먹이며 기침을 하던 아일럿은 그 웃음소리를 듣고서 가스파르를 올려다보았지만 미약하게 피어오른 적개심은 하찮기만 했다.
“자, 다시 입 벌려. 이틀씩이나 삽입하지 않는 대가잖아.”
양 볼을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으로 힘껏 눌러 주니 새빨갛고 통통한 혀가 삐죽 튀어나왔다. 이제 그 혀가 제 페니스에 감겨서 달라붙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여기까지 참고 버텨 주는 제 인내심이 경이로웠다. 상대방은 그걸 몰라 줄 테지만.
“흐, 우읍……. 흐.”
다시 혀끝에 닿게 된 선액의 맛이 끔찍하여, 아일럿은 미간을 좁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몇 차례 귀두를 물었다 놓는 동안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사정시키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가스파르가 마음을 바꿔서 방금 전과 같은 짓을 또 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수음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좋아. 잘하네.”
혀가 거듭 귀두 위와 아래에서 미끄러졌다. 같은 남자의 몸이다 보니 만져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따로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간혹 힌트를 주듯이 제가 기분 좋은 곳에서 단숨을 흘렸다. 이렇게 되면 싫어도 상대가 어디를 좋아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어설프게나마 밑 부분까지 애무하는 것을 보며, 가스파르가 칭찬하듯 발끝을 움직였다. 어제는 죽어도 하기 싫은지 안에 싸달라고 하더니. 뒤로 정액을 받아내고서 훌쩍거렸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때도 다리 사이를 세우고 있었지.
“너도 아까보다 단단해진 것 같은데.”
“후으, 윽……!”
가스파르가 구둣발로 옷 위로 두드러진 페니스를 누르다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윗부분으로 길게 스치고 지나가는 과정에서 아일럿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 행위를 반복하니 입을 가만히 두기가 어려울 만큼 기이한 감각이 솟아오르는지라, 아일럿은 저도 모르게 눈을 위로 굴렸다. 가스파르는 표정만 언뜻 자애로웠지. 제가 입을 떼기라도 하면-
“아일럿.”
고막에 달라붙는 듯 야한 목소리였다. 생각이 들킨 것만 같아, 몸을 굳히는 아일럿의 머리를 찬찬히 쓰다듬으면서 가스파르가 속삭여왔다.
“……입으로 삼킬래. 아니면 가슴으로 받을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러고는 아주 잠시간, 가스파르를 쏘아 보았는데, 아일럿은 자신이 그리 쳐다본 탓에 가스파르가 제 눈꺼풀 위에 정액을 듬뿍 흘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걸 모를 것이다.
“빨리 골라.”
입으로 말하게 할 생각은 없는지 아일럿의 머리카락을 그러쥔 채 가만히 있었다.
“으… 우읏.”
깊은 망설임, 그 끝에 아일럿은 페니스를 물고 있는 입 대신 눈으로 답을 말했다. 어느 쪽도 원하지 않을 테지만 시선은 아래로 내려갔다. 한 방울이라도 삼키는 것보다는 피부에 묻히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단추 풀어.”
귀두를 간신히 물고 있던 아일럿이 몸을 뒤로 물리고는, 덜덜 떠는 손으로 단추를 풀었다. 옷이 워낙 작은 탓에 단추를 풀기가 무섭게 가슴이 옷 사이에서 도드라졌다.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어깨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함몰되어 있는 유두를 제 물건으로 누르고 문질렀다. 이미 흠뻑 젖어 있던지라, 아일럿의 유두마저도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하……. 으윽.”
그러던 차에 유두가 슬그머니 밖으로 삐져나왔다.
“…아.”
유두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은, 대개 참담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중 지금이 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길게 튀어나온 유두 위를 가스파르가 제 것으로 문지르다가, 선단의 움푹 파인 부분에 유두를 밀어 넣듯 움직여댔다. 사정이 가까운지 거칠게 행동하는 탓에 아일럿은 눈조차 뜰 수가 없었다.
“읏. 으읍-”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귀두로 유두를 둥글리기도 하고, 전체를 문대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희롱하는 장면이 언뜻 스칠 때마다 얼굴이 타오를 듯 뜨거워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곤란했던 것은 가슴이 저릿하고 간지러워서 애가 탄다는 것. 조금만 더. 가스파르가 앞니로 건드리는 동시에 혀로 핥아 주었던 것을 떠올리면 한참은 부족했다.
“흐우읏. 흐, 아…….”
이런 생각을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도 부족한 쾌감이 몸을 달구면 산산조각이 났다.
“……!”
그 와중에 하필, 정액이 제가 눈을 뜨고서 그의 것을 보고 있을 때 쏟아져 나왔다. 다행히 안경이 눈을 가려 주는 탓에 직접적으로 눈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지만, 유두뿐만이 아니라 턱과 뺨, 안경에까지 튀어 얼굴마저 더러워졌을 때는 표정을 구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경이 이럴 때 좋네.”
제 비참함을 한층 강조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일럿은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입으로 물고 있는 동안 배어 나왔던 선액의 역한 맛이 혀에 달라붙는 기분이었다. 더욱이 가슴은…… 판판한데도 불구하고 흘러내리지 않고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보니 당장이라도 손으로 닦아내고 싶었다. 가스파르가 손목을 잡아 말리지 않았더라면 바로 그리했으리라.
“씻고 싶지? 잠깐 참고 저쪽으로 가서 등이라도 돌리고 있어. 방으로 욕조를 들여오라고 할 테니까.”
위로하듯 건넨 말이 가관이었다. 그에 이어 가스파르가 격려하는 것처럼 제 어깨를 두드릴 때, 아일럿은 제 목숨의 절반을 대가로 그의 얼굴을 한 대라도 후려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때까지는 닦지 말고 기다려.”
사람이 어떻게 저 정도로 가증스러울 수 있을까. 우두커니 서서 벽을 바라보고 있던 아일럿은, 하인들이 커다란 욕조를 끌고 올 무렵이 되어서야 슬쩍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아일럿 님, 욕조를 가지고 왔습니다. 목욕 시중은-”
“괜찮습니다. 저, 저 혼자 할게요. 그냥 나가 주세요.”
“그럼 준비만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일럿은 겉옷을 벗으면서 가슴과 얼굴에 묻어 있던 정액을 벅벅 문질러 닦았다. 동시에 바지도 급하게 내렸다. 어차피 욕조에 들어갈 테니 옷을 벗고 있는 게 나을 것이다. 그만큼 꼴이 사나운 모습이었다.
“30분 뒤에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인이 입욕제를 욕조 안으로 몇 개 더 떨어뜨렸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유두가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아래쪽으로 몸을 미끄러뜨렸더니, 수온을 보존하기 위함인지 옆으로 다가온 하인이 욕조 위로 두꺼운 천 같은 것을 덮었다.
“…개새끼.”
하인이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얼굴에 물을 묻혔다. 안경은 진즉 벗어 내려둔 탓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닦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얼굴과 가슴만 더 닦은 다음, 천을 조금 더 위로 끌어당겼다.
가스파르가 한 말대로 그의 저택은 시원하다 못해 옷을 벗고 있으면 서늘했다. 마법으로 무슨 처리라도 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약간의 추위를 느낀 아일럿은 뜨끈한 물이 차분히 제 몸을 감싸자 눈을 감았다.
기분은 더러웠지만 몸이 너무 피곤했다. 전신을 침식한 피로가 상념을 잘근잘근 씹어 버렸다. 차라리 그게 다행인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일럿은 아무리 지친다 하더라도 가스파르를 끊임없이 원망하고 싶었다. 그리 하지 않으면-
“……?”
필사적으로 생각을 이어가던 도중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강에서 목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욕조에 잘 고여 있는 물이 갑자기 움직일 리가 없었다.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른 찰나, 어떤 것이 발목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이 선연했다.
“뭐, 뭐야.”
무심결에 무릎을 굽히자 이번에는 오금을 스치면서 물고기 같은 것이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다. 물고기라기엔 너무 길었다.
“윽.”
뱀? 아일럿이 견디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욕조를 덮고 있는 천이 욕조에 딱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천은 거의 쇄골 아래에 붙을 정도로 가까웠기에 몸을 위로 뺄 수도 없었다.
“젠장, 무슨 짓을!”
일반적인 천이 아니었다. 잡고 떼어내려 하였으나 가까이로 끌어당겼을 때와는 달리, 접착제라도 발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그 탓에 더욱 욕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 아일럿은 혼자서 난리를 쳤다. 하인을 부를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가스파르가 시켜서 한 일일 텐데, 그들이 미쳤다고 자신을 도와주겠는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빠져나가는 편이 나았다.
“흐읍.”
그러나 도저히 제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도 가늘고 미끄러운 것이 지나갔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한두 마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아, 으으읏…….”
천을 밀어내는 걸 포기하고 몸을 위로 빼려 했지만 엉덩이 부분이 걸려서 나올 수가 없었다. 천을 끌어당기지만 않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부화가 생각보다 빨랐네?”
“가스파르!”
양동이를 한 손에 들고 온 가스파르가 가벼운 걸음으로 욕조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고는 허리까지 나와 있던 아일럿의 어깨를 잡고 아래로 누르는데, 팔 힘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던지라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져 욕조 안에 몸을 담갔다.
“네가 마음에 들었나 봐. 보통은 한 시간은 있어야 나오는 애들인데.”
어차피 들켜 버렸으니 아일럿은 큰 목소리로 따져댔지만, 정작 듣는 사람은 한 귀로 흘려버린 탓에 아무 소용도 없었다. 가스파르는 대답 대신 양동이에 든 액체를 천 위로 뿌렸다.
“어디 어떻게 됐나 볼까.”
순식간에 검은 천이 유리처럼 투명해지고, 그제야 욕조 속 사정을 알게 된 아일럿은 제 허벅지를 칭칭 감고 있는 검은 촉수들을 보고서 기겁을 했다.
“예전부터 번식시키고 있던 촉수였는데, 사람한테 써보는 건 네가 처음이야.”
“무슨 짓이야, 이 미친…… 노, 흑!”
“아일럿한테 외국에서 들여온 신비로운 크리쳐를 사용하는 짓?”
참지 못한 아일럿이 어색한 욕을 내뱉었지만, 가스파르는 태연하게 욕조 밑의 마개를 잡아당겼다. 고여 있던 물이 밑으로 빠지고 나니, 수십 마리의 뱀 같은 촉수에 휘감긴 몸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앗, 흐… 악!”
피부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양 돌아다니던 촉수들은 부어 있던 애널을 콕콕 건드렸다. 당연하게도 아일럿이 움찔거리며 난리를 치고 손을 뻗어 뜯어내려 하자, 촉수는 오히려 흥분한 것처럼 매달리거나 안쪽으로 파고들려고 했다.
“삽입, 아, 안 한다고 했으면서……!”
“내 아랫도리는 보다시피 정숙해. 네 근처로도 가지 않을 테니 안심하렴.”
가스파르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어부에게 물고기가 살려달라고 비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예 자리까지 잡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가스파르에게, 끓어오르는 듯한 혐오감을 느끼며 아일럿은 열심히 발버둥을 쳤다. 어떻게든 촉수를 떨어뜨리려고 발로 밀어내고, 손을 아래로 내려 촉수들을 욕조 밖으로 던져 버렸는데-
“아, 안……. 흑!”
촉수들은 서로 뭉치는 습성이 있었다. 아무리 던져대도 다시 다른 촉수들이 있는 곳으로 모이려 하는지라, 종래에는 제 허리께에서 똬리를 틀어 버렸다. 두 손은 그때 촉수에게 결박당하다시피 했다.
“흐, 우으, 흐으읏…….”
허벅지를 좁히고 최대한 욕조 바닥에 붙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촉수는 너무 미끌미끌한데다 크기가 다양해서 좁은 틈으로도 쉽게 머리를 들이 밀었다. 게다가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어떻게 막아본다 쳐도, 가슴과 머리는 그렇지 못했다.
“으……. 허, 윽!”
구불거리는 촉수가 가슴 위로 올라온 뒤, 반으로 쩍 갈라져 자잘한 돌기로 가득한 내부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 촉수가 당연하다는 듯 제 양쪽 가슴을 빨아들이자 온갖 비명이 다 튀어나왔다.
가스파르는 그래도 사람이었다. 물론 사람에게 당하는 일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이제는 정체 모를 생명체가 그 대상이 되었으니, 끔찍함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싫… 아, 우그, 흑…….”
촉수는 단숨에 함몰되어 있던 양쪽 유두를 소리 나게 빨아들였다. 침이 잔뜩 고인 입으로 빨아들이는 듯한, 그런 소리가 나는 것도 모자라 유두가 떨어질 듯했다. 거기에 아래쪽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심코 몸을 앞으로 굽히자 허벅지가 들리고, 촉수는 그 사이로 빠르게 미끄러져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후, 으아……. 앗, 흐… 으우, 흡. 우읍.”
처음에는 가느다란 촉수였지만, 그것이 얌전히 있지는 않았다. 안쪽에서 마구 몸을 굴리며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래에서 일어난 자극이 번개처럼 요동을 치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한데다가 골반에 들러붙어 있던 촉수들은 아일럿이 저항을 하지 못하도록 그의 몸을 단단히 고정해 버렸다.
그 과정에서 허벅지는 거의 옆구리에 붙을 정도로 벌려졌고, 촉수는 회음부를 지나 고환 위쪽의 성기에까지 슬금슬금 달라붙었다.
“이제 이건 필요 없겠는걸.”
고정시키는 천이 없어도 아일럿이 움직이지 못하리라 생각한 가스파르는, 일부가 투명해진 천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겨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우흐으, 읏, 아… 응!”
“가까이서 보니 더 장관이네. 이 순간을 기억 속에 기록해 둘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쉬워.”
하나 그렇게 난리를 쳤을 때도 꼼짝하지 않았던 천이, 손쉽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며 의아해할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요도 주변을 맴돌던 가장 얇은 촉수가 울컥, 하고 끈끈한 액체를 내보냈다.
“아, 안 돼, 싫어…… 어, 흐으, 응…….”
“그래. 이건 곤란하지. 나도 아직 못 건드려봤는데.”
가스파르가 페니스에 달라붙어 있던 가느다란 촉수를 잡아 치워 버렸다. 제가 잡을 때는 난리를 치고 곧장 달라붙더니, 그가 유리병 안에 집어넣을 때는 마냥 얌전했다. 분명 자신이 몸을 담그고 있던 물에 뭔가 특수한 처리를 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알았다 해도, 제 처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흐, 우으… 하, 아, 하아, 하으, 으-”
유두는 촉수에게 빨리고 있고, 안쪽으로는 손가락처럼 들어온 촉수들이 개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몸을 휘감고서 다리를 붙잡고 있는 촉수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제 신체 곳곳에서 성감대를 찾으려는 양, 옆구리나 무릎 뒤, 어깨, 등, 심지어는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스치고 지나가며 저를 사정시키려 했다.
“아아, 아……!”
입이 없는 대신 촉수는 표면으로 정액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족해 했다. 촉수들한테서 튀긴 액체로 인해 안경이 희뿌옇게 물들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이 끊임없이 탐욕스러워한다는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뭐, 흐, 아, 하려는.”
“촉수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주려고.”
“으윽, 읏…!”
“촉수보다는 금속이 더 낫지, 아일럿?”
끝에 고리가 달린 막대는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길었다. 저걸 어디에? 엉덩이에 넣기에는 터무니없이 얇았다. 그러면-
“헉, 우……. 으윽. 흑, 으, 아악!”
면도칼에 제대로 베였을 때 느꼈던 아픔이 가장 민감한 페니스 위에서 터졌다. 날카로운 고통, 그 뒤에도 가라앉지 않는 따가움 때문에 몸을 뒤틀자 촉수들은 아일럿이 도망치려 한다고 생각했는지, 불쑥 내부에 들어가 있던 촉수가 크기를 키웠다. 아픔과 압박감이 동시에 퍼져나가자 한순간, 가쁘게 쏟아져 나오던 여린 숨마저 멎어 버렸다.
“계속 정액을 먹으면 촉수가 한도 끝도 없이 불어나거든. 조금만 참아봐.”
가스파르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멀찍이 서서 또다시 관람하겠다는 태도였다. 애초부터 그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게 당치도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쪽은 쳐다보지 않으려 했던 아일럿이었으나.
“아으, 읏……. 앗, 흡… 하으으…….”
시간이 지날수록 징그러운 촉수들이 폭주하듯 몸 위에서 날뛰었다. 페니스와는 또 다르게, 미끄럽고 물컹거리는 것이 깊은 곳까지 치고 들어오면 그대로 제 입으로 나오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가스파르와는 달리 링도 차지 않았는데, 길이는 제 다리만큼이나 긴 것들이었다.
“안 돼, 아… 흐악!”
수치스러운 자세로 촉수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도 비참하고 괴로웠다. 가슴은 촉수가 주변의 살들까지 전부 끌어모은 채로 유두를 빨아대고 있고, 아래는 다양한 굵기의 촉수들이 둥지라도 튼 듯 꿈틀거리며 전립선을 쉴 새 없이 긁고 찔러대고 있었다.
“흐읏, 윽, 으, 아, 앗-”
가스파르에게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한계까지 몰린 몸이 시키는 일에 가까웠다. 그러나 가스파르는 결코 아일럿을 돕지 않았고, 긴 시간 동안 아일럿은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촉수에 시달렸다. 사정은 하지 않았어도 셀 수도 없는 절정이 몸을 덮었다.
“예쁘구나, 아일럿.”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가스파르는 미술품을 감상하는 듯한 시선을 하고는 짧은 감상을 남겼다.
“우으… 아, 하아, 윽!”
이후에도 종종 제 얼굴과 눈을 바라본 모양이지만, 아일럿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지나친 쾌감은 기억과 의식을 툭툭 잘라먹었고, 가스파르를 볼 틈도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 촉수가 액체 상태로 돌아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으, 읏.”
욕조 안에서 빠져나올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지쳐 버린 상태로, 발밑에서 찰랑거리는 액체의 소리만을 들었다. 전신의 떨림이 멎지 않았다. 팔과 다리 또한 이미 제 것이 아니고, 그저 몸에 붙어 있는 살덩이처럼 느껴졌다. 손끝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목 위만이 온전히 자유로웠으나 할 수 있는 거라곤 눈을 깜빡이는 것과 입술을 달싹이는 정도였다.
“흐…….”
가스파르가 수건을 가지고 제 몸을 감싸 일으켰을 무렵에는 희미하게나마 반항을 했으나 안긴 채 들리고 나니 온몸이 마냥 벌벌 떨렸다. 계속된 오르가즘으로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린 것이 분명했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나마 자신을 버티게 했다.
“더 안 할게. 진정해. 괜찮아.”
욕을 할 기운도, 심지어 생각할 기운도 없었다. 촉수를 애초에 풀어놓았던 게 누군데. 그 당사자가 자신을 위로하며 보살펴 주는 것도 우습고 역겨운 일이다. 그런데 매달릴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가스파르 루의 품속, 언제든 변덕을 부릴 수 있는 개자식의 팔 안.
“잘 참았어. 착하지.”
하지 마. 만지지 마. 속삭이며 감겨오는 손길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은 제가 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듯 지나치게 다정했다. 하여 마음 같아서는 죄 치워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여전히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그리고 혹시나…… 그가 다시 촉수들을 가져올까 봐.
떨림이 멈추지 않는 것은 그 때문도 있었다. 가스파르는 거리낄 게 없다. 더 하지 않겠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그저 안긴 채로 침대까지 향하는 동안, 아일럿은 이를 부딪치지 않으려고 입술을 사리물었다.
“……!”
저를 침대에 내려놓고서 치골 아래로 손을 내린 가스파르가 손끝에 고리를 걸었다. 이어, 그의 손에 의해 요도를 막고 있던 마개가 느리게 빠져나오자…… 안쪽에 고인 채 나오지 못했던 정액이 물처럼 흘러나왔다.
“읍.”
아주 약한 쾌감. 그 뒤를 따라오는 얼얼함. 사정을 하는 감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쩌면 몸이 너무 지쳐서 더 이상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쉬고 있어도 돼.”
새로운 수건들과 함께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온 가스파르가 눈 위를 손으로 덮었다.
“조금 자도 괜찮고.”
손길은 따뜻한데다 나긋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포근한 침대까지. 완전히 지쳐 버린 몸에 수면제와 다를 바 없는 것들이 연달아 쏟아지자 아일럿은 최면에 걸린 것처럼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