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가스파르의 별장에서 일주일 내내 (3/17)

3. 가스파르의 별장에서 일주일 내내

“손님이 도착하면 내 방 근처로는 아무도 오지 않게 하고.”

“네, 주인님.”

“그리고.”

“예.”

“아니, 이거면 됐어. 슬슬 손님이 올 시간이 되었으니 가서 맞이할 준비를 하렴. 곧장 내 방으로 모셔오도록 해.”

비가 내리는 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지 않을 리는 없을 테고, 채찍만 내리 휘두르다 당근을 내어 주었으니 아마 시간 약속도 철저하게 지킬 가능성이 크다. 가스파르는 시간을 확인해 보고는 읽고 있던 책에 마저 시선을 두었다. 여기서 얌전히, 제 발로 걸어 들어 올 아일럿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훌쩍이는 얼굴이 예쁜 도련님을 괴롭히는 건 어쩌면 이리도 즐거운 일인지.

‘개새끼! 너 이딴 짓을 하고도……!’

쓰고 있던 동그란 안경에 눈물을 죄 번지게 한 것으로도 모자라, 긴 속눈썹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서 쏘아붙이는 목소리와 표정이 걸작이었다. 그뿐이던가. 햇빛과 거리가 먼 듯한 하얀 몸은 유연하고 부드러운데다 만지면 야한 소리를 줄줄 내뱉었다. 아무리 잘 쳐줘도 상급이라고 급을 매겨 주기에는 애매한 가문의 외동아들인 주제에 묘하게 기품이 있는 것도 그랬다.

스칸다로 피서를 오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귀족이 있다고 하기에 누군가 싶어 얼굴이나 보려고 했더니 몇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일 줄은 몰랐다. 실은 이미 이름도 알고 있었다.

아일럿 바슬레인. 저만 보면 길을 잘못 들었다는 양 뒤를 돌아 어색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토끼처럼 보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해서 언제가 되었든 건드려 볼 생각이기는 했는데, 호수에서 그런 난리를 피워서 자신의 집에 오게 되었으니 잡아 먹어달라고 애걸복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벌써 6일 전이었다. 그날, 이 방에서 보았던 아일럿의 얼굴을 떠올린 가스파르는 제 마음이 즐겁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자정까지는 15분 정도가 남았다. 지금 아일럿이 나타난다면 누구보다 아일럿 본인이 여러모로 곤란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집사가 노크를 했다.

“왔니, 아일럿?”

가스파르가 들고 있던 무거운 책을 덮었다. 탁, 하고 종이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 막 방 안으로 들어온 아일럿은 크게 움찔거렸다.

“자루는 거기 내려놓고 이쪽으로 와.”

가스파르는 조용히 눈웃음을 쳤다. 아일럿을 방까지 데리고 온 집사가 문을 닫고 돌아가니, 이 방은 물론이고 층 전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일럿과 가스파르 두 사람뿐이었다.

“밖에 비가 많이 내리지?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서 10분 정도는 봐 줄까 했어.”

“…….”

“내가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

우두커니 서 있던 아일럿의 가까이로 다가온 가스파르가 조금 젖어 있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젖어서 그런지 네 피부 냄새가 조금 진해진 느낌이야.”

“…….”

“일단 옷부터 벗어볼래? 그동안 만나지 못했더니 너무 아쉬웠어.”

이번에도 아일럿은 대답 대신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가까스로 코트를 벗으려 윗부분의 끈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목이 드러나고 쇄골과 가슴팍이 보이려 할 무렵에는 코트를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안에 입고 있는 옷이. 아니, 끈이-

“억지로 해 주는 게 좋아?”

무심코 옷을 추스르는 아일럿을 보고, 가스파르가 코트 윗부분을 잡아당겨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가 갑자기 제 옷을 벗길 거라고 예상치 못한 아일럿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고, 그 탓에 코트 속의 몸을 고스란히 보이게 되었다. 발목까지 내려온 코트를 가스파르가 휙 잡아당겼다.

“하지…… 마!”

“그럼 여기엔 뭘 하러 왔을까, 아일럿.”

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드는 아일럿의 두 팔을 가스파르가 붙잡았다. 곱상한 얼굴과는 달리 손힘이 좋은지라, 아일럿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그에게 나신에 가까운 몸을 보이게 되었다.

“이렇게 어울리는데, 남한테 보여주어야지 않겠니.”

애초에 아일럿을 염두에 두고 고른 물건이었다.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검은색 끈이, 몸을 팽팽하게 조이며 곳곳을 만져달라며 제 손길을 조르는 듯했다. 무엇보다 가슴을 반도 안 되게 가린 천이 오히려 납작한 가슴을 과할 정도로 부각하고 있었다.

“어디 보자, 제대로 입고 온 것 같는데 입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

“윽.”

“아일럿, 이제부터 대답하지 않으면.”

다음 순간 아일럿은 힉- 하고 짧고 새된 울음소리를 냈다. 가스파르가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튕긴 탓이었다.

“숨어 있는 곳이 삐쭉하게 튀어나올 때까지 핥아 줄 테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돼.”

“어……. 어려웠어. 어려웠다구.”

“어려웠어? 어떤 부분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여운이 길었다. 아릿함이 가슴 전체로 퍼져나갈 때, 발끝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목덜미와 가까운 곳에서 가스파르가 낮게 속삭이며, 더운 숨으로 제 목을 간질였다.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두려울 만치 자극적인 행동이었다.

“가슴 쪽에. 자꾸만 끈이 말려 들어가서. 흡.”

“아하.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다시 입었-”

“구멍이 뚫린 부분에 유두가 맞춰 나오게 하려고 계속 움직여 봤을 텐데. 거울 앞에서 입었니?”

“……흐윽.”

제 입술에 입을 맞추려는 것처럼 근접해진 탓에 마구 고개를 끄덕였더니, 근처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입을 맞추는 시늉만 해도 범해지는 것 못지않은 반응을 보이니 가스파르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차림으로 서 있었으니, 이렇게 야해 빠진 몸이 흥분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혼자 하고 온 건 아니지?”

아일럿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서 피하고 싶지는 않은지, 간신히 눈은 치켜뜨고 있었지만 조금 충혈 되어 있는 눈에 물기가 제법 번져 있으니.

“자, 그럼……. 침대에 손을 짚고 엎드려 봐.”

“뭐?”

잔뜩 울리고 싶었다. 더 이상은 못 하겠다고 제 발등에 입을 맞추며 애원할 때까지.

“검사해야지. 위도, 아래도. 그동안 보지 못한 만큼.”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발등에 닿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혹시나 깨물릴지도 모른다는 스릴감이 저를 더 기쁘게 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일럿?”

얼굴이 얼마 안 가 터져나가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색이었다. 그러나 재촉을 하자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머뭇거리지 않고 몸을 돌려서 침대를 손으로 짚어 버렸다. 뒤에서 보니 턱 부근에 힘이 한껏 들어가 있는 것이, 과도한 수치심에 차라리 하라는 대로 하고 빨리 끝내 버리자고 마음이라도 먹은 듯싶었다.

“흐……. 아윽.”

“엉덩이를 치켜든다고 생각하고 발끝은 조금 세워.”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아무리 가스파르가 자신을 가지고 별별 짓을 다 한다 해도, 오늘 밤을 넘기지는 않으리라고 판단을 내렸다. 때문에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편이, 일을 빠르게 진행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렇게 다짐해도 몸이 마냥 그렇게 따라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침착한 시늉이라도 해 보자고 마음을 먹어도 손끝에 경련 같은 것이 일어나고, 억지로 세워진 발끝은 부들부들 떨리고 말았다.

“오늘 보낸 편지에 깜빡하고 안 써서 잊어 버렸을까 걱정했는데, 넣고 왔구나?”

엉덩이 사이에 박혀 있는 작은 크기의 딜도를 가스파르가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보아하니 급하게 쑤셔 넣은 모양이야. 주변이 빨갛게 부어 있어. 그래도 젤은 제대로 사용했나 보네.”

이물감과 불쾌함을 소리도 내지 않고 참아내는 아일럿을 보며 가스파르는 딜도의 끝부분을 잡고, 한 번에 뽑아 버렸다.

“읍.”

“세상에. 갑자기 질질 싸면 곤란하지.”

한 번도 다른 것을 넣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때문에 젤을 잔뜩 사용했고,  마개 역할을 하던 딜도가 뽑히자마자 안쪽에 고여 있던 젤들이 어쩔 수 없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가 준 크림은 쓰지 않았구나. 그걸 점막에 발랐으면 꽤 좋았을 텐데.”

건조한 피부에 바르는 용도로 사용하는 화장품이었기에 미끄럽기는 해도 점성은 없는지라, 그대로 피부를 따라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아일럿은 눈을 꽉 감았다. 가스파르로 인해 실금이라도 한 기분이 드는 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안 돼. 이 상태는 유지해야지. 주먹이 두 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여야 해.”

덜덜 떨면서 허벅지를 좁히려 하자, 그 사이로 가스파르는 손을 밀어 넣어 다시 다리를 벌리게 만들었다. 가뜩이나 엎드리고 있는 상태인지라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고, 뒤에서 가스파르가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도 알 수 없으니 심장이 세차게 쿵쾅거렸다.

“가만히. 이대로 있어.”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도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아직 그의 행동에 쾌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까지 되면 얼마나 비참하게 느껴질까.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역했다.

“혼자 아래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그렇진 않은 모양인걸.”

검사를 한다는 말을 충실히 지키려는지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엉덩이를 잡아서 벌리고는 회음부나, 실수인 척 그의 성기를 건드렸다. 그때마다 아일럿은 어떻게 버티긴 했지만, 그가 제 안에 검지손가락을 밀어 넣었을 때는 손등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수월하게 들어가는 건 손가락 하나 정도구나. 이 이상은 억지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겠어.”

안쪽에서 천천히 원을 그리거나 끝부분만을 긁어내듯 움직이는 감촉이 메스꺼웠다. 그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고, 지금 같은 일이 생기리라고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치, 안쪽에서 괴생명체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감각 외에는-

“기분 나쁘지, 아일럿?”

제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는지, 가스파르가 아일럿의 등줄기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더 기분 나빠해도 돼.”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일럿이 거듭 몸을 굳히는 것을 보고, 제 나름의 검사 과정을 마친 가스파르는 그가 몸을 돌려서 침대 위에 앉게 만들었다. 물론 일반적인 자세는 아니었다.

“자, 손은 뒤로 하고. 그래. 그대로 손목을 붙잡고 있어.”

두 손은 등 뒤로, 다리는 한껏 벌리고서 발바닥까지 침대 위에 대고 있자 가스파르는 아일럿이 두고 온 자루를 들고 와서, 그 안에 들어 있던 고무판을 꺼냈다. 하고 싶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워낙 급하게 하였으나, 모양만큼은 선명히 남아 있었다.

“이렇게 예쁘게 튀어나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쏙 들어가 버렸네.”

고무판에 남은 자국과 아일럿의 현재 상태를 비교하며 가스파르는 웃음을 흘렸다. 패여 있는 홈 속으로 쏙 들어가 있는 유두는, 주인이 흥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딱딱해지기는커녕 여전히 말랑거렸다.

“이제 좀 잘 나오게 됐으려나?”

당연하다는 것처럼 제 가슴 위로 손을 뻗은 가스파르는, 곧장 유두 주변을 손가락 끝으로 살살 누르거나 긁어내렸다. 대각선으로 작게 패여 있는 부분을 매만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전하네. 손길을 부르는 것처럼 부드러운 것도. 잘 나오지 않는 것도.”

“아, 흐읏……. 으, 앗!”

“하긴, 사흘 가지고 변하면 얼마나 변하겠니.”

혀를 차는 시늉을 하던 가스파르를 보고 아일럿은 눈을 돌리려 했으나, 그가 제 허리를 확 끌어당기자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설마, 또.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도망치거나 허리를 비틀지 못하게 단단히 붙잡고는, 입술을 댄 채로 유두를 빨아들이고 앞니로 잘근거렸다. 혼자서 만질 때조차도 선을 넘어 버린 쾌감에 허덕이던 아일럿은 이번에는 비명처럼 신음했다. 제 손이 아닌 타인의 신체로 유두가 만져지는 쾌감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그… 그마, 안, 앗, 하윽……!”

예민해진 곳이 금세 머리를 보였다. 가스파르는 튀어나온 유두에 자물쇠처럼 집게를 집고는, 집게 끝에 달린 리본을 가볍게 흔들었다. 손으로는 여전히 잘 나오지 않았지만, 입술로는 금방 나오게 된 것을 보면 어지간히 손으로 만지거나, 제가 보낸 컵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기특하기는.”

가스파르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숨을 고르는 아일럿에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았다. 가스파르가 이미 밖으로 나온 곳을 손가락으로 굴리면서 다른 곳에도 입을 대자, 통제가 되지 않은 소리들이 입 밖으로 마구 새어 나왔다. 이미 제 몸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듯했다. 몸을 짓이기는 감각도, 귀에 들리는 소리도, 눈에 보이는 형체도, 온통 가스파르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방울도 어울렸는데 리본도 나쁘지 않아.”

튀어나온 양쪽 유두에 모두 리본이 달린 집게가 달렸다.

“하, 아-”

금속으로 만들어진 리본은 도리어 방울보다 조금 더 무게가 나가는 재질이었고, 새로운 집게는 이전에 사용했던 집게보다 조금 더 뻑뻑했던지라 알싸한 고통이 몰려왔다. 하나, 문제는 눈꺼풀로 열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평소라면 다소 짜증스러울 만큼의 아픔밖에는 되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에 대한 서러움까지 겹쳐 고통이 무겁게 쌓였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스칸다로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애초에 그 명문 학교에 입학하지를 말걸. 평생의 소원이었던 명문 학교 입학까지 스스로 부정하게 되니 서글픔이 묵직해졌다.

“아파?”

입술을 안쪽으로 말고서 숨을 내쉰 아일럿의 목에서 끅, 끅, 하고 울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났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코끝은 시큰거렸고 눈시울은 뜨거웠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눈물이 목 안쪽에 잔뜩 고인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였다.

“아픈지 말해야 내가 알지.”

“아…… 아파.”

다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가스파르 때문에, 아일럿은 애써 그렇게 답했다. 저 목소리가 언제 돌변할까 무서웠다.

“어쩔 수 없네.”

말하고 나니 한층 더 눈물이 올라올 듯 말 듯하였기에, 이제는 입술을 앞니로 깨무는 아일럿을 보며 가스파르는 집게를 금방이라도 빼줄 듯 손끝으로 집었다.

“내가 시킨 숙제를 잘 해왔으니까, 오늘은 집게를 쓰지 말까?”

“…응.”

“그럼 손가락으로 집고 있어. 다리는 이대로 잘 벌리고.”

그냥 가슴은 안 건드리면 안 되는 거냐고, 소리를 높이고 싶던 아일럿이었으나 말을 더 했다가는 정말 울게 될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가스파르가 변덕을 부릴까 두렵기도 했다. 손으로 잡고 있기만 해도 자극이 반으로는 줄어드는데, 다시 집게로 집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으, 으…….”

양쪽 유두를 손으로 잡고서 다리를 활짝 벌린 아일럿이 붉어진 얼굴을 숨기듯, 고개를 푹 숙였다.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가스파르의 손이 가증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사흘 내내 가슴은 혼자 잘 만졌으니, 나는 네가 손을 대지 않았던 곳을 만져 볼까.”

그의 긴 손가락은 이미 충분하게 젖어 있었고, 제법 끈적거리기까지 했다. 그 손이 제 아래로 내려가는 찰나, 그만 눈을 콱 감아 버린 아일럿은 그 뒤에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제 엉덩이 사이로 들어간 손가락이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이곳저곳을 누르거나, 다른 손가락의 자리를 만들어내려 바쁘게 움직였다. 도저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책에서 봤는데. 창남을 처음 길들일 때는 꼬박 하루를 공들인다고 하더라. 갓 봉오리가 맺힌 꽃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아픈 것보다는 기쁨을 가르쳐 주어야 하니 세심하게.”

“히, 윽, 흐으.”

“창남이든 귀족이든, 어차피 구멍인 곳은 똑같지 않겠어? 그렇다고 널 창남 취급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창남 취급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 누가 믿을까. 가까운 곳에서 숨결을 쏟아내는 가스파르가 제 뺨에 입을 맞추는 것을 조금이나마 피해 보기 위해, 아닌 척 몸을 뒤트는데 아래쪽이 갑작스럽게 저릿해졌다. 아니, 열 같은 것이 확 번져 나갔다. 가스파르가 제 배 속으로 뜨거운 물을 쏟아 버렸다고 착각할 만큼. 하지만 그다음 순간에는 섬뜩할 정도의 쾌감이 있었다.

“뭐, 흐… 뭐야, 거기……!”

바로 반응해 버린 뒤에 아일럿은 후회했다. 조금이라도 이성이 남아 있었다면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들키지 않게 어떻게든 불쾌한 표정을 짓고 버텼을 텐데, 그렇게 생각했을 무렵에는 이미 가스파르에게 전부 들켜버린 뒤였다.

“힉, 하으, 앗… 아, 그마, 안!”

낮은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울렸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자극은 제가 이제껏 알고 있던 감각과 완전히 궤도를 달리하는 것이어서, 쾌감이 머리를 빼곡하게 채운 나머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았다. 고작 손가락 두 개를 삽입해서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 제 온몸의 감각이 죄 그곳으로 몰린 듯하였다.

“손가락 하나만 넣어서 안쪽만 찔러 보기라도 했니?”

“흐앗, 으, 흐읍. 흐…….”

“너무 감도가 좋은데.”

“아… 으, 앙!”

소리를 참으려는 시도만 하면 가스파르는 아일럿이 다문 입술을 기어코 벌리게 했다. 안달 난 만큼 느리게 빼내는 시늉을 했다가, 소리 나게 안쪽을 쳐올리면 힘껏 감은 아일럿의 눈꺼풀 안쪽에서는 별이 튀었다. 이윽고, 스스로가 어떤 신음 소리를 내는지도 알 수 없어졌다. 젤을 사용해 젖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흥분해 버린 탓에 마치, 제 몸 안에서 액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내 손가락에 달라붙고 있어. 빨리 이보다 더한 걸 달라고 조르는 것처럼.”

이미 페니스에는 손을 댈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선액을 애처롭게 흘리고 있는 귀두를 다른 손으로 슬며시 어루만지자 아일럿은 새된 소리와 함께 허리 아래를 움찔거렸다.

“흐으읏, 아……!”

순식간에 자신의 손과 아일럿 본인의 배를 더럽힐 만큼 질척하고 길게 튀어나온 정액을 보며 가스파르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얼마나 만져줬다고 벌써? 워낙 비좁은 곳인지라 넓히는 데 공을 들이긴 해야겠지만, 몸을 겹치는 기쁨을 가르쳐 주는 부분에는 그리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미 충분할 만큼 쾌감을 알고 있는 몸이라는 걸, 작은 손짓이나 숨결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잠, 하, 하으, 잠깐마아……. 앗!”

한 번 사정을 하고 나서 민감해진 몸을 가스파르는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가 제 어깨를 짓누르자, 아일럿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며 제 나름대로 반항을 해 보았으나 눈이 마주치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새끼는 미쳤다.

번들거리는 파란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찔해졌다. 아래로 내려간 손은 요란스레 움직이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가스파르는 저를 씹어 삼키지 못하니 그 대신 제 몸을 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흐으읏, 우, 아아……. 하으, 흡.”

제가 먹어도 되는 음식이었다면, 이미 그의 어금니 사이에서 갈가리 찢겨 나갔으리라는 상상이 머릿속을 찌르자, 쾌감이 매섭게 몸을 옥죄였다. 처음 사정을 했을 적에는, 손이 페니스를 스치기라도 했으니 그것 때문에 사정한 것이라고 혼자 생각이라도 해 봤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뭉근한 듯 폭력적인 쾌감이 배 속을 퍽퍽 치는 듯했다.

“날 똑바로 봐.”

이미 시선을 돌릴 수도 없는데 가스파르는 제 턱을 움켜쥐고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입으로 말하기 전에 눈도 함께 말하고 있었다.

날 똑바로 보지 않으면 네 몸을 산산조각 내 버릴 거야.

기이하게도 그런 위협감이 피부를 서늘하게 만드는 동시에, 아래를 한계까지 달구어 버렸다. 아일럿은 가스파르와 눈을 맞춘 채 입술을 깨물고, 턱에 힘을 주며 입을 다물다가, 종래에는 입을 크게 벌렸다. 잇자국이 잔뜩 남은 입술을 무겁게 눌러오는 것은 가스파르의 몫이었다.

“하우, 읏, 읍. 우……. 흐으으. 읍.”

참으려 애쓰며 막아두었던 신음이 전부 상대방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갔지만, 그것은 사랑의 표현과는 거리가 멀었다.

“왜, 놀랐어?”

입술이 떨어진 뒤, 가슴을 처음 만져졌을 때보다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아일럿을 보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조금 다치긴 할 테지만, 슬슬 시도를 해 볼까.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던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위로 올라타 보려다 멈춰 섰다.

“으, 읏…….”

“음?”

배와 고간이 방금 전에 자신이 두 번씩이나 내보낸 정액으로 더러워진 주제에, 아일럿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한번 어디까지 하나 볼까 싶어서 지켜만 봤더니 물러서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침대에서 일어나 그대로 저를 지나쳐 도망치려 하는 것이 아닌가. 가스파르는 웃음이 나왔지만 아일럿을 붙잡았다.

“그러고 나가려고?”

세게 붙잡지는 않았다. 그 탓인지 아일럿은 겁에 질리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가스파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네가 도망치면 억지로 눕혀서 이대로 덮칠 줄 알았어?”

“…….”

“그보다 아일럿. 도망쳐도 좋긴 한데, 그 꼴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옷은 위에 걸치고 가야 하지 않겠니.”

“…….”

“그리고 참고로 말하는데, 난 두 번은 안 붙잡아.”

그렇게 말하고서 가스파르는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풀었다. 도망치기 위해 버둥거리던 아일럿은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잊고 있었던 현실이 무겁게 치고 들어왔다. 만약, 여기서 이대로 가스파르를 뿌리치고 간다면 집에 아무 일도 없을까.

“어떻게 할래?”

설상가상으로 그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코트까지 들어서 제 앞으로 가지고 왔다. 아일럿이 정 도망치려 한다면 코트를 어깨에 걸쳐 주고, 더 나아가서는 입혀준 뒤에 마차를 태워 별장으로 보내 줄 생각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어떻게 할지. 글쎄, 아일럿의 상상보다 살짝 더 심할 수도 있을 터.

“…아니야.”

“뭐가?”

“할게.”

“뭘.”

아일럿이 다시 침대로 걸어갔다. 처연한 모습과는 달리 가죽끈으로 감싸여져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몸이 마냥 음탕했다. 가스파르는 핥는 듯한 시선으로 그의 몸을 위아래로 쓸었다. 아일럿은 입안이 끈적끈적해질 만큼 야한 모습이지만은.

“네가, 시키는 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을 했다.

“너는 한 번 나한테서 도망쳤어.”

침대 앞에 어설프게 서 있던 아일럿은 그제야 가스파르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에 침대 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로 제 위에 올라타려고 할 줄만 알았는데.

“그러니까, 마음이 상한 나를 위해 제대로 된 예를 갖춰 주어야 하지 않을까?”

“예의라니.”

“침대 위로 가서 내가 들어갈 구멍을 네 손으로 직접 벌려 봐.”

조금 도와주는 게 좋겠지. 가스파르는 뻣뻣해져 있는 아일럿이 침대에 몸을 반쯤 눕히게 해 주고는 그에게서 두세 걸음 정도 물러섰다. 그가 하는 행동을 철저히 관음하겠다는 의도였다. 그것이 아일럿에게도 선연했다.

“안 할 거니?”

재촉을 하자 아일럿이 눈을 감고서 다리를 넓게 벌렸다.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보다 이게 낫다며 스스로 결정을 내린 얼굴이었다. 어깨너비로 다리를 벌리고는, 양쪽 손으로 엉덩이를 붙잡아 방금 전까지도 가스파르의 손가락이 들어왔었던 구멍을 보이게 했다.

“응. 잘 보이네.”

손가락으로 제법 오래 만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틈도 보이지 않고 달라붙은 곳을 가스파르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나 그뿐이었다.

“그런데 왠지 할 마음이 안 드는 걸.”

“뭐?”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대체 또 뭐가 문젠데? 수치심도 잊고서 아일럿이 눈을 부릅떴으나 가스파르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 봐, 아일럿. 네 배는 정액으로 더러워졌고. 추잡한 몰골을 한데다 날 거절하기까지 했어. 내 성욕이 식어도 이상하지 않은 거 아냐?”

“시킨 건 너야.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나야. 하지만 별로 끌리지 않게 됐어.”

가스파르가 성큼 다가왔다. 방금 전까지 소리를 질렀던 아일럿은, 그의 구둣발이 제 페니스를 향하자 화들짝 놀랐으나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딱딱한 구둣발로 아프지 않게 페니스를 건드렸다.

“방법을 바꿔 볼까, 아일럿? 부탁을 해 봐. 네 좋은 머리를 잘 굴려서, 어떻게 하면 내가 흥분할지……. 아, 혹시 몰라. 네가 여기서 조금 더 난잡해지면 내가 좋아하게 될지도.”

구둣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움직임은 야살스럽고 다정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본인 스스로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느낌이 그랬다. 단단한 쪽으로는 툭툭 건드리는 듯하다가 곧장 부드러운 가죽이 씌워져 있는 옆 부분으로 페니스를 어루만지는 시늉을 하는데, 아일럿이 움찔하자 가스파르는 발을 거두고는 의자를 끌고 왔다.

“해 봐. 내가 시범을 보여줬잖아.”

가스파르는 아예 의자까지 끌고 오더니, 아일럿의 다리 사이로 묵직한 물건을 툭 던져 주었다. 위는 가늘어도 아래로 갈수록 점점 굵어지는 데다 휘어 있기까지 한 딜도였다.

“도대체.”

처음 안에 넣었던 딜도보다도 가늘긴 하나 그 밑은-

“어디까지 시킬 셈이야.”

아일럿의 인내심은 진즉 한계에 도달했지만 간신히 마지막 줄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뭐, 앞에서 자위하면서 쇼라도 하라는 거야? 눈으로 열이 몰렸다. 시야가 살짝 흐려지기는 했어도 마음은 차게 식어 있었다.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걸 알아도,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가시처럼 뾰족해졌다.

“아일럿, 양쪽 유두가 새빨갛게 익었어. 그 주변에는 내가 입으로 애무해 준 자국이 남았지. 앞니 자국이 아직 남아 있어. 입술 사이로 빨아 준 자국은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사라질까?”

문제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가스파르 루에게는. 제 나름대로 날을 세운 것은 알겠는데, 뾰족해진 유두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본인의 음란해진 몸을 조금 묘사해 주었을 뿐인데, 아일럿은 다시금 수치심에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붉어졌다.

“계속 손 멈추고 있을 거니?”

무엇을 해도 그저 보기 좋은 모습일 뿐인걸.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유두를 가리키고는 손으로 돌리는 시늉을 했다.

“그거 다시 들어가면, 이번에는 집게로 고정할 거야. 간간히 만져 주는 것도 잊으면 안 되겠네. 그리고 어디까지 시킬 셈이냐는 네 질문에 굳이 대답해 주자면, 오늘 밤이 지나면 네 몸에 내가 모르는 구석은 없게 될 정도? 그만큼 이것저것 시킬 게 많으니까 괜히 물어보지 마.”

마주 보는 입술이 들썩거렸다. 또 욕을 하려나, 아니면 소리를 지르려나. 애원? 떠오르는 것은 많았지만 나름대로 아일럿을 위해 가스파르는 한마디를 덧붙여 주었다.

“너 무섭잖아.”

그 한마디에 아일럿은 눈앞이 아찔해져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가스파르의 앞에서는 어떤 행동도 무력했다. 그와 자신의 넘을 수 없는 신분 차이가 있는 한. 반항을 하면 그는 그것대로 즐거워 할 것이었다. 어차피 어떤 힘도 가지지 못하므로.

“자, 슬슬 해 볼까? 너도 알 테지만 나는 극장에서 기다려 본 적이 없거든.”

황족들이 주로 가는 오페라 극장에는 황족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처럼 기다려서 입장을 할 필요도 없으며, 그들이  입장하면 곧장 공연이 시작된다. 그것을 아일럿도 잘 알고 있었다. 가스파르는 은근하게 아일럿과 자신의 신분 차이를 읊어 주면서, 의자를 두들겼다.

“하면 되잖아.”

“응. 해 봐.”

아무렇지 않은 척은 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무너질 때까지는 괜찮은 척을 하고 싶었다. 갈고리 형태의 딜도를 든 아일럿은 망설이지 않고 끄트머리 부분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처음에는 쉬웠다. 딱 처음에만.

“하……. 앗, 흐윽!”

안쪽으로 밀어 넣은 딜도를 위쪽으로 움직일 때마다 몸도 함께 들썩였다. 가만히 두려 해도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하여 몰래 얕은 곳을 쑤시면서, 당치도 않게 기분이 좋은 척을 해 보려 했지만…….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스파르가 말하기를.

“아일럿, 연기는 충분히 본 것 같으니 그만할까? 굽혀진 부분을 안쪽으로 넣어. 좋아하는 곳을 자극해줘야지.”

“후, 으읍.”

단숨에 알아차렸다. 어쩔 도리 없이 손에 힘을 주고 삽입을 하니, 나름 진지한 척 바라보던 가스파르는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아아, 하, 으으읏…….”

쓸모없는 저항이 가여울 따름이다. 아일럿은 제가 흥분하면 가슴께부터 서서히 물이 드는 것처럼 붉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거부하면서도 얼마나 애달픈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니 그런 우스운 표정을 짓는 게지. 지금은 퍽 자연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낯선 쾌감에 시달리면서도 손을 멈추지 못하고, 딜도의 손잡이를 잡고 움직였다.

“하아, 아, 흑.”

아일럿은 내벽과 딜도 사이에서 젤이 마찰하며 흘러나오는 소리에, 스스로 괴롭혀지고 있었다. 찔꺽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참으려 해도 치아 사이로 흘러나와 고막을 건드리는 소리도 그랬다. 딜도를 깊게 넣지 않으려 하는데, 한 번 넣고 뺄 적마다 미세하게나마 깊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크……. 흣. 흡. 으-”

조금만.

조금만 더 깊은 곳까지 넣으면 좋을 텐데. 딱 그 근처까지 갔다가 빼내 버리니 점차 이성이 흐려졌다. 어느샌가 아일럿은 어깨너비보다 다리를 더 벌린 것도 모자라, 가스파르가 보고 있음에도 골반을 움츠리는 척 흔들고 있었다. 거기에 다른 손으로는 번갈아 가면서 유두가 다시 함몰되지 않게 만지기도 했으나, 그 목적은 바뀐 지 오래였다.

저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나, 익숙지 않고 강렬한 쾌감은 지나치게 달았다. 넣고 빼는 것뿐만이 아니라, 넣을 수 있는 곳까지 밀어 넣어 품은 뒤에 꽉 조이는 것도 색다른 쾌감이었다. 점차 숨을 달아오르게 만들어, 몸 곳곳으로 관능을 퍼지게 하는-

“좋아. 마음에 들어.”

“……하, 아앗!”

가스파르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제 상황을 깨닫게 될 만큼 열중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크게 놀란 아일럿은 딜도를 잡은 손으로 무심코 안쪽을 찔렀다가, 불처럼 번진 감각에 허리를 숙였다.

“아, 히으, 우, 흐으윽…!”

급히 빼내기는 했으나 이제까지의 쾌감은 그저 봄바람 같은 것이었다는 걸 알았다. 편안하고 기분 좋기만 한. 그러나 안쪽은 전혀 달랐다. 일순, 폐를 꽉 조이는 듯한 느낌이 화상 같아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왜 그래? 겁먹은 얼굴이야.”

성경험이 없었던 아일럿에게는 너무 벅찬 일이었다. 하나, 몸에 남은 잔여물 같은 자극을 떨칠 틈도 없이 가스파르가 의자를 치우고 다가왔다.

“아, 아…….”

혼자서 할 것을 요구했을 때,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가스파르는 어디에 갔는지. 완전히 다른 눈빛을 한 그의 바지 앞섶이 눈에 들어오자 아일럿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힘없는 손은 그에게 붙잡혀 아래쪽으로 속절없이 끌려갔다.

“잡아봐. 네 안으로 들어갈 건데 어떤 모습인지는 너도 알아야지 않니?”

가스파르는, 부정하다 못해 침을 뱉고 싶은 심정이나 객관적으로는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글서글한 인상과 말끔한 피부. 그러면서도 이목구비를 하나씩 따져 보자면 정교하기 그지없었고, 하얀색에 가까운 금발과 벽안은 그를 정석적인 미남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섬세하지 않은 곳이 없는 얼굴을 하고서 아래는…… 손으로 언뜻 쥐기만 해도 크고 투박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지점으로 네 안을 사정없이 긁어낼 거야.”

“…흐. 으.”

가장 두꺼울 귀두, 그 밑. 그의 밝은 피부색과 유사한 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딱딱하고 긴 것도 모자라서 핏줄이 서 있었다. 억지로 잡아 보니 제 손이 결코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지와 중지가 겨우 닿을까 말까 할 정도였다.

“네가 좋아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이미 다 알고 있어. 난 네 허벅지를 잡고서, 네 추한 꼴이 내 눈앞에 다 드러나게 만들겠지.”

하지 마. 하지 말아줘. 아일럿이 하지 못한 말이 혀끝에서만 맴돌았다. 애원할 때 할 수 있는 모든 말이 거기에만 고여 있었다.

“바로 삽입하면 아까처럼 도망치지도 못할걸. 너한테 삽입하고 나면 네 몸 곳곳을 씹어놓을 테니까.”

“가스파…….”

“네가 살짝 닿자마자 놀랐던 곳을 기억해?”

이가 빠르게 맞부딪쳤다. 도망치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가스파르가 그것을 허락했기 때문라는 걸 아일럿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지금은 도망치지 못한다. 그는 저를 침대에 눕히고서, 오금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엄청난 압박감이 다리 사이를 눌렀다.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고, 미끄러뜨리는 정도지만. 분명 곧. 못 해. 못 해. 못 해.

“나, 나아, 모… 못 하겠. 흐, 악!”

“할 수 있어. 먹고 싶어서 아래가 뻐끔거리잖아.”

아일럿이 마구 도리질을 쳤다. 역시 안 되겠어. 못 해. 가문의 일도, 가스파르에 대한 두려움도 패닉 상태에 빠지자 모두 먼 것이 되고 오직 지금 상황에 대한 두려움만 남았다. 그의 것이 입구에 닿기만 했는데도 섬뜩했다. 딜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직접 손으로 만져봤던 페니스가 전부 안으로 들어오면, 어떤 기분이 되는 건지 알고 싶지 않았다.

“이만 하면 오래 참았어.”

“안 돼. 싫- 허, 허억.”

속삭인 목소리가 선고처럼 들렸다. 주변을 맴돌 듯 미끄러지던 것이 정확하게 입구에 닿았다. 느린 움직임도 없이 단숨에 삽입하고는, 나머지 반도 아일럿의 어깨를 잡은 채 내벽에 파묻었다.

“……!”

꿰뚫린 순간의 고통은 찰나였으나 몸으로 퍼지는 시간은 마냥 길게 느껴졌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입은 한껏 벌어졌어도 숨을 쉬지는 못했다. 제 배 속을 가득 채운 양 찔러 들어온 페니스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고 나서야 가쁜 숨이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안 된다는 말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끝까지 치고 들어온 페니스가 사납게 내부를 짓치자, 손가락 하나마저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직 가스파르만이 제 몸 위에서 자유로웠다.

“아, 하으윽!”

“딱 내 크기로 넓혀 줄까, 여기.”

전부 넣고서 빼지 않고 허리를 부빈 가스파르가 한 말이었다. 내부는 좁았다. 조이는 게 아니라 제 것을 씹는 듯 좁았기에 제 형태에 맞게 늘려 주고 싶었다. 아일럿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것만은 싫었는지, 두려운 표정을 지었지만 몸으로는 반겼다. 거부할 수도 없게, 그 스스로도 그것을 지독히 잘 알고 있었다.

“움직, 이지 마, 하아, 아……!”

사흘간 혼자서 가슴을 만져대었을 때도, 그리고 이 저택으로 와 그의 눈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자위를 했을 때도, 제 몸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가스파르의 직접적인 행동에 비하면 그 모든 것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건 그저 제 몸을 차근차근 달아오르게 하는 행동이었을 뿐이다. 발끝부터 전율이 일어나 파도처럼 머리끝을 향해 흘러갔다.

“아, 안 돼, 하으, 힛… 안 돼, 그마, 앗!”

발끝이 곱고, 아래를 조이고, 허리를 뒤틀고, 가슴을 더 만져주길 바라게 되고. 가스파르의 입술이 목에 닿으면 여지없이 신음이 터졌다. 거기서 더 위로 올라가면 받아들이지 못한 쾌감이 눈을 적시게 만들었다.

“히, 아, 흐으으, 아, 우으…….”

기분이 좋지라도 않으면 나을 텐데, 끔찍하게 좋았다. 참아 보려 한 번 이를 악물었던 것이 허무하게 벌어지고, 가스파르의 허벅지 위에 앉게 된 뒤로는 소리를 참아보자는 생각도 못 했다. 그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뇌가 곤죽이 된다. 이미 가스파르 때문에 반은 으깨진 듯하기도 했다.

“앗, 하으……. 우, 으읍, 흐!”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러서야 잠깐 멈추어 주고, 발작하듯 몸을 떨면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허벅지 위에 제 몸을 앉힌 것은 막 다시 파묻히려던 유두를 입으로 빨기 위해서였다. 빨갛게 부은 유두가 가스파르의 아랫니와 입술에 놓여 있었다. 아일럿이 두려워하며 내려다보는 순간, 고운 입술 사이에서 추접한 소리가 들렸다.

“하그, 흐, 흣, 흐으윽-”

처음 경험하는 것임에도 지나치게 과했다. 안경 너머의 눈은 초점도 맞지 않을 만큼 풀린 데다,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해서 요염하지 못한 신음을 흘려대는데도, 가스파르는 부족하게만 느껴져 앞니로 가볍게 머금은 유두를 봐주지 않고 빨아들였다. 그러는 사이에 아일럿은 비명이나 다를 바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두 번인가 사정을 했다.

“닳을 대로 닳은 놈들도 너처럼 행동하지는 않아.”

“흡. 으, 읏, 아아, 윽…… 아, 아……!”

“사흘 동안 애가 타서 어떻게 버텼어. 하인에게 만져달라고 하지는 않았니?”

방금까지 빨아대던 곳을 도로 밀어 넣을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눌렀다. 아일럿은 사정의 여운으로 몸이 벌벌 떨려 가스파르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가 제 손목을 잡아서 침대에 밀어 눕혔을 때가 되어서야 잠깐,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일럿.”

눈을 피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게 유일한 반항이라고 생각하려 했는데, 가스파르에게 있어 아일럿의 반항기 어린 얼굴은 그가 신음하며 애원하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겹쳐 보이는 정도. 그도 그럴 것이.

“넌 지난 일주일 동안 적어도 한두 번은 여기로 했지?”

“……?”

의아해하는 그에게 답을 주려 페니스를 몸으로 눌러주자마자 금세 표정이 달라져 버렸다. 아일럿은 한 박자 느리게 의미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난 한 번도 하지 않았어. 네 안에 전부 싸질러 줄 생각으로 참고 있었거든.”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일럿의 허벅지가 파득파득 떨렸다. 잡고 있던 손은 움직이지 못했지만 두 다리가 가만히 있지 못하니, 가스파르는 양쪽 허벅지를 잡고서 제 아래에 깔려 있는 몸을 짓눌렀다.

“아, 아-”

“깊숙한 곳에 싸 줄게. 네가 뱉어내는 것조차 힘겨워할 만큼.”

살이 맞붙었다 떨어졌다. 이전의 움직임에도 배려는 없다 여겼는데, 추삽질이 거듭될수록 말도 안 되지만 가스파르가 조금 전에는 배려를 했었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처음인 것을 고려하여 절제를 한 편이었다. 그게 배려였다.

“나, 하아, 아, 주… 흐, 죽어, 아, 앗, 흑, 흐앙!”

허리 아래를 진득하게 맞댄 채로 쉴 새 없이 삽입을 하는 탓에 눈이 까뒤집힐 지경이 되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삽입하기 전에 제 손으로 잡아본 적이 있는 귀두가 내벽을 찍어 누르고, 긁고, 과한 쾌감에 온몸을 멋대로 떨게 만들었다.

“아흐, 읏… 아, 아아…….”

정액도 아닌 무언가가 페니스 끝에서 물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을 때,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만 감각만은 선명했던지라 그와 엇비슷하게 가스파르가 사정했음을 깨달았다. 안쪽에 무엇인가 퍼져나가는 감각이 싫었다. 빼내고, 몸을 털어내고 싶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를 천천히 긁으면서 물러서는 페니스가, 입구에서 잠깐 걸렸다가 병에서 마개를 뽑는 양 빠져나가자 정액이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얼마나 깊은 곳에 사정했는지, 숨을 고르는 와중에도 조금씩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

“…아랫입에 한 번 했으니까, 이번에는 윗입에도 먹어 볼래?”

치욕을 견뎌내려 애쓰는 얼굴을 보며 가스파르는 태연하게 지껄였다. 아일럿은 차라리 어딘가에 머리를 박은 뒤 죽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예고와는 다르게, 가스파르는 경악으로 가득 찬 제 얼굴에 몇 번 입을 맞추고는 몸을 뒤로 물렸다. 사정을 했으니 이제 그만할 생각인가 싶었는데, 그렇다기에는…… 가슴을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한참을 박아대는 동안 만져 주지 않았다고 도로 숨으려 드는 유두를.

“…….”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아일럿이 두 팔을 겹쳐서 제 가슴을 가렸다. 이렇게 해도 가스파르는 교묘한 술수를 써서 제가 원하는 것을 가져갈 테고, 그 방법이 자신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이제 알지만. 거기까지 생각해 줄 수 있는 이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일차원적으로 몸이 그를 막으려 했다.

“싫으면 한 번 더 할까?”

묻는 것은 자그마한 유희일 뿐이었다. 아일럿은 여전히 가슴을 가린 채로 말을 잇지 못하였기에 가스파르가 재촉했다.

“대답해 봐. 솔직하게.”

당연히 싫다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문과도 같은 쾌감이 두렵다.

“가슴을 만지는 것도 안 된다. 박아대는 것도 안 된다. 네가 이러면 난 뭘 하라는 거야? 네가 이러면 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밖에 없는걸.”

아래. 위. 선택지는 두 개였다. 하나를 고르지 않으면 둘 다 해 버리겠다는 뉘앙스가 풍겨졌기에 진퇴양난임에도 어느 한쪽을 확실히 고르라고 가스파르는 아일럿에게 종용하고 있었다.

“……가슴.”

애써 손을 내리며 내린 대답이었다. 가스파르가 입에서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이제 슬슬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자세히 말할 때가 되지 않았어?”

“가슴, 빠… 빨아줘. 입으로 해줘. 아래, 하는 거 더는 싫어.”

“가슴 어디.”

“튀어나온. 유… 유두. 입으로-”

“아프지 않게 씹어주고 이 사이에서 굴려줬으면 좋겠지?”

아래로 당하는 게 너무 싫어서 차라리 가슴을 만져달라고 하는 것인데도, 가스파르가 그렇게 말하니 몸이 그것을 달가워했다. 아일럿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제가 그것을 좋아해서 그러는 것처럼 느껴져 고개를 숙였으나, 혹여 그가 마음을 바꿀까 도리질을 치지 못했다.

“또 아프다고 울지 마.”

사람이 너무 지치면 기절을 했는지, 맑은 정신으로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가스파르는 다시 삽입하긴 했어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아일럿을 안고서 유두를 혀끝으로 할짝거리거나 손바닥 전체로 굴렸다.

“하으으, 읏, 흑…… 읍, 아아!”

그러는 사이에 유두가 어찌나 붓게 됐는지, 시간이 지나도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 되고 나서야 잠시 쉴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연결되어 있었고, 북받쳐 오르는 숨을 가라앉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하는 동안, 여전히 그가 제 몸을 뒤에서 만져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가슴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허벅지, 엉덩이, 등, 어깨. 그가 다시 가슴을 만져댈까 봐 몸을 움직이지 않았더니, 짧게나마 수마가 내려앉았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잠이 달아나고 서서히 정신이 맑아졌다. 그의 스킨십 때문이 아니라…… 요의가 간질거려서.

“왜?”

인형처럼 품에 넣고 만져대던 것이 꿈지럭거리자 가스파르는 다정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퍽 마음에 들지 않는지 손에 힘을 주었다. 아일럿은 입술을 한 번 꾹 깨물었다가 잔뜩 쉰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응?”

“화장실, 가고 싶다구.”

“잘 안 들리는데.”

“안 들리는 척하지 마! 이 거리인데-”

“가서 뭘 하고 싶은데.”

그런 것까지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냐고- 말해 보려다 눌러 담았다. 아쉬운 쪽은 저였다. 이러고 있다가 살짝 실수를 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고 벌써 아래가 무거웠다. 단 몇 초라도 빨리 변기 앞에 서고 싶었다.

“오줌 싸고 싶어.”

“그래?”

“정말 급해.”

“어쩔까.”

아일럿은 왜 저런 반응이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다니. 원하는 대로 말해 주었으니 당연히 가게 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스파르를 대입하자, 온몸에 불쾌하게 들러붙어 있던 땀이 싸하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그만 빼줘.”

아직도 넣은 채였다. 내부가 아려올 정도로 박힌 탓인지 넣고 있는 정도로는 신음을 흘리지 않고 버틸 수 있긴 했는데, 그것도 이제 슬슬 불안했다. 빠져나가기 위해 무심코 몸을 뒤틀자 가스파르는 뒤에서 밧줄처럼 제 몸을 휘감았다.

“너.”

새빨개진 얼굴에는 쾌감에 못 이긴 나머지 흘러내린 눈물이 곳곳에 말라붙어 있었다. 관자놀이에 입을 맞춘 가스파르는 흔적을 더듬어 가며, 뒤에서 거듭 입술을 눌러댔다. 허리를 조금 움직이자 아일럿의 몸이 요동을 쳤다. 아, 아, 그만. 그만. 제 허벅지를 손으로 잡아 밀어내려 하기에 그 손을 가슴 위로 오도록 붙잡아서 고정을 하자, 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화장실까지 갈 필요가 있어?”

“히, 악, 흐윽, 흐, 앗……!”

“내 앞에서 해 봐.”

이 미친 새끼는 무슨 말을 해도 항상 진심이었다.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자 거기에 마저 입술을 가져다 대고는, 거듭 속삭였다.

“나랑 같은 명문 학교 학생이, 오줌도 못 참고 싸 버리는 꼴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해.”

“미…… 하, 악.”

안쪽,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부분에 닿은 페니스가 연달아 움직이자 가뜩이나 무거웠던 페니스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위험했다. 당장 그가 제 것을 빼낸다고 해도 화장실로 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다, 다른 거, 하. 할게. 네가 시키는 거. 다……. 아.”

“아일럿.”

결국 어쩔 수 없이 꺼낸 말이 그것이었다. 실금을 한다 해도 그의 눈앞에서는 하고 싶지 않아 꺼내 본 말이었는데, 그는 움직임을 느리게 하는 척하더니만 곧장 허리를 잡고 쳐올렸다.

“난 너한테 뭐든 시킬 수 있어.”

나름의 자비를 베푸는 것도, 의사를 묻는 것도, 전부 아일럿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스파르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일 뿐이다. 그 말은 아일럿에게는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하, 읍. 우으읍!”

새어 나왔다. 입술을 깨물어도 소용이 없었다. 한 번 해방감을 맛본 이후 남은 것을 막아두는 일은 불가능했다. 아래에 힘이 풀리면서 정액과는 다른 액체가 넓은 침대 위에 깔린 시트를 적셨다.

“아, 아, 읏… 으으…….”

“이게 무슨 일이야, 아일럿. 설마 이 나이까지 오줌도 제대로 못 가릴 줄은 몰랐네. 지저분해. 냄새도 나고 말야.”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를 들으니, 수치심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코끝이 시큰해지고 있음에도 속에서 격한 감정이 일어났다. 네가 박아대지만 않았어도 참을 수 있었다고- 속마음은 그렇게 말했으나 입을 열었다가 가스파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두려웠다. 제 생각으로는 헤아리는 것조차 불가능할, 상상 그 이상의 변태, 쓰레기, 그리고-

“허, 윽…!”

가스파르가 제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어 뒤쪽으로 몸과 몸을 밀착시켰다. 아일럿이 소스라치게 놀라 그를 돌아보는 찰나, 태연하기 그지없게 뺨에 입을 맞추는 얼굴이 마냥 산뜻했다.

“이제 시원해졌지? 한 번 더 하자.”

“안, 흐, 우으…… 아!”

버둥거리는 아일럿을 벽에 납작하게 짓누른 가스파르는 도망치지 못하는 몸을 제 흉기와 같은 물건으로 사납게 괴롭혀대었다. 손을 뒤로 뻗어봤자 한계가 있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허벅지를 밀어내는 정도인데 결국 그것도 여의치 않아 벽만 긁고 말았다.

“제바, 하, 윽, 사… 살살. 아으윽!”

유두와 성기가 모두 벽에 짓눌려 아프게 쓸렸으나, 뒤에서 치대면 고통이 단숨에 쾌감으로 변했다. 긴 페니스로 배 속이 헤집어지는 저릿한 감각이 왜 이렇게까지 좋다고 느껴지는 건지. 까치발로 선 채 그의 허벅지 위에 앉다시피 하는 자세가 되자 얕은 움직임마저 숨을 막히게 했다. 한계까지 들어온 페니스가 너무 깊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흐, 아, 아흑, 깊…… 어. 아, 흐앙!”

“내가 윗입에도 먹여 준다고 하지 않았었던가?”

“흑…!”

소용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벽지를 긁어대던 손을 다시 내려, 가스파르의 허벅지를 제게서 밀어대던 손이 뚝 멈췄다.

“기억 안 나?”

반항이라기에는 우스운 동작을 멈추자, 가스파르는 빠른 허릿질을 멈추고 부러 느리게 제 것을 빼내고 삽입했다. 천천히 밀어 올려진 내벽이, 빼내려 할 때는 제 페니스에 달라붙었고, 땀에 젖은 허벅지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내가 묻잖아, 아일럿.”

두려운 기색이 역력할 표정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으나, 아쉬운 대로 목덜미에 이를 세워 물자 아일럿은 우는 듯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안에…… 안에 해줘.”

“안에 하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아, 아니야. 좋아해. 안에… 부. 부탁할게. 안에 해 주는 거 너무 좋아서. 어.”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는데. 그럼 앞으로는 계속 안에 해 주면 좋겠어?”

“으응. 계, 계속. 안에……. 좋아.”

억지로 밀어 붙여져서 실금을 했을 때 이미 반쯤 무너졌던 상황인지라, 가스파르가 조금 더 손끝에 힘을 주자 아일럿은 더는 버티지 못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동안에도 아일럿은 쾌감에 헐떡였고, 이전보다 더욱 깊숙한 곳으로 그의 정액이 쏟아졌다.

“하, 아-”

그러고는 한동안 머무르며 수차례 더 움직인 뒤에야 내벽을 가득 채우고 있던 페니스가 아일럿의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 무렵, 의식은 한 번 끊겼다. 눈을 뜨고는 있었던 것 같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는 몸과 침대 시트가 전부 깨끗해져 있었으며, 몸에서는 가스파르와 같은 냄새가 났다.

……간신히 끝났구나. 짧은 생각이 방울처럼 떨어졌다.

“그만 자. 정오가 되기 전까지는 깨우지 않을 테니.”

가스파르도 지치지 않았을까. 그에서 떨어지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금 이 방을 나서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몸에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만 쉬게 해 줘. 피로에 찌든 육신이 계속 잠을 요구하니, 정신은 속절없이 그 안에 갇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아일럿?”

자도 된다는 말을 하자마자 잠에 푹 빠져 버린 얼굴을 하곤 고른 숨을 내뱉었다. 어지간히 힘들고 피곤하긴 했을 테지, 그래도 이만하면 봐준 편이지 않을까? 웅크려서 자는 것을 편히 눕혀주고 이불을 끌어오는데, 판판한 가슴 위에서 빼꼼 튀어나온 유두가 제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드려 달라고, 혹은 입술로 물어달라고 아양을 떠는 모습이다. 워낙 공을 많이 들인 곳이어야 말이지. 아래보다도 더 만지고 핥아댄 곳인지라 양쪽 유두가 퉁퉁 부어서 다시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였다. 좀 가라앉으면 다시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할까? 가스파르는 아일럿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지그시 눌렀다.

이대로 집게나 고정판 같은 것을 붙여 놓으면 이대로 유지시킬 수도 있을 터였으나 생각을 접었다. 나중에 또 뽑아내는 재미도 있을 테니.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