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창덕궁 희정당에는 오랜만에 임금이 임어한 중신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북경에서
친위천군 1기병연대 병력이 어린 동치제와 서태후 등을 사로잡은 소식은 즉각
운현궁의 섭정공 김영훈에게로 보고됐다. 김영훈은 곧바로 임금에게 알리고 즉시
중신회의를 소집하기에 이른 것이다. 오랜만에 희정당에 자리한 모든 중신들은 숨을
죽이고 김영훈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엄청나고
충격적이었기에 누구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새 그의 말이 모두
끝났다. 좌중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바늘 하나만 떨어져도 들릴 정도의 숨막히는
침묵이었다. 김영훈은 중신들의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관련된
몇몇 중신들만 알고 있는 극비작전이었기에 저들의 놀람도 컸을 것이다. 그는 잠시
중신들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들 정신이 없겠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의 대책을
의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번 일을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는지
의견들을 말해보세요."
"......"
"......"
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꿈에서나 생각해
본 일이 발생했는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보다못한 임금이 먼저 나섰다. 아무래도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누구도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서였다.
"숙부."
"예. 전하."
"숙부께서 이번 일을 계획한 연유가 무엇입니까?"
임금은 처음부터 이번 일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어린 동치제와
서태후 일당을 사로잡을 생각을 한 김영훈은 처음부터 모든 일을 임금에게 상의한
후에 결정했었다. 아무리 자신이 임금 대신에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일까지 마음대로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김영훈은 임금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을 빌어
조정의 중론을 이끌어 내자는 뜻이었다. 그는 임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와 천군이 조선에 도래한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민족의 잃어버린 영광을 다시
재현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는 사명에서였사옵니다. 우리 조선이 자랑스런
조상들의 영광을 재현하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만 있다면 어떠한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도래한 것이옵니다. 다시는 못난 조상들 덕분에
후손들이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옵니다. 그것을 위해 저와 천군은
지금까지 불철주야 매진해 왔던 것이옵니다."
김영훈의 음성을 저절로 떨리고 있었다. 불현듯 21세기 한국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고, 자신들이 왜 시간원정을 감행해야만 했던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릅뜬 두 눈도 물기에 젖어있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뼈에 사무친
것 때문이었고, 약소국의 군인으로써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땅을 치며 통곡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피끓는 듯한 그의 말에 일부 천군 출신 중신들의
눈도 따라서 젖어들었다. 자신들이 시간원정단에 자원한 까닭이 거기에 있었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잃어버린 우리의 고토를 회복하는 것이 순서이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땅히 만주벌판을 회복하여야 하고, 만주벌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청국과 충돌을 해야만 하옵니다. 그러자면 얼마나 많은 우리
장병들의 목숨을 바쳐야 할지 모르고, 얼마나 많은 재화(財貨)가 소모될지 알 수
없는 일이옵니다. 지금 우리 조선의 군사력은 막강한 수준이옵니다. 감히 어느
나라가 우리 조선을 건드릴 수 있겠사옵니까? 하지만 아무리 우리 조선의 군사력이
막강하다고 해도 무력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우리 장병들이 피를 흘리게 되어
있사옵니다. 우리 장병들의 목숨을 바쳐야만 이룰 수 있다는 말이옵니다. 그것이
얼마나 될지 알 수는 없으나 결코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음... 그렇지요. 아무리 우리 조선의 군사력이 막강하고 장병들의 장비와 훈련도가
고도로 뛰어나다고 해도 얼마간의 손실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저는 그것을 걱정하였사옵니다. 아무리 적은 수의 장병이라도
희생되는 것을 저는 원치 않았사옵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이번에 구주 정벌을
하면서 우리 장병들이 흘린 피와 땀이 얼마나 되옵니까? 구주의 왜인들이 흘린 피와
눈물이 아무리 많다고 하여도 우리 장병들이, 우리 아들들이 흘린 피와는 비교할
수도 없고 비교할 가치도 없사옵니다."
임금을 비롯해서 좌중의 중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상 구주 정벌전에서
조선군이 입은 피해는 아주 미미했다. 하지만 김영훈의 말대로 조선 병사 하나의
목숨은 왜인 백 명의 목숨과도 맞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시옵소서. 만주벌판이 얼마나 넓사옵니까? 우리의 잃어버린 고토가 얼마나
광대하옵니까? 이것들을 되찾는데 일일이 우리 장병들의 피가 요구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사옵니까? 장병 개개인이 우리의 아들이고 우리의 자식들이옵니다.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평생을 살아야할 어미의 심정이 어떻겠으며, 지아비가 죽고
홀로 남겨진 아내의 심정은 어떻겠사옵니까? 저는 이것을 걱정했사옵니다. 어차피
우리 조선이, 아니 우리 민족이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만주벌판을 차지하여 대륙으로 진출하고, 다시 대양으로 나가야만 하옵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사옵니다. 청국이 우리 민족을 위하겠사옵니까? 왜국이 우리
민족을 위하겠사옵니까? 아니면 서양 제국(諸國)이 우리 민족을 위해 힘을 써
주겠사옵니까? 아니옵니다. 저들은 호시탐탐 우리 조선을, 우리 민족을 짓밟기 위해
기회만 엿보고 있사옵니다. 우리가 힘이 없다면 저들은 언제라도 우리에게 비수를
들이댈 상대라는 말이옵니다. 그것은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사옵니다. 이런 때에
아까 말씀드렸던 서태후의 제의가 북경 주재 조선 공사 오경석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서태후는 자신의 정적인 공친왕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 조선군의 힘을 빌릴 생각을
했사옵니다. 공친왕을 제거하고는 싶은데 자신에게는 힘이 없고, 그렇다고 저대로
공친왕을 내버려둘 수도 없었사옵니다. 마침 우리 조선의 친위천군이 천진을 비롯한
청국 전역에 주둔하고 있었던 터라, 간악한 서태후는 우리 조선군의 힘을 빌어
공친왕을 제거하고, 만에 하나 그를 제거한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조야(朝野)에
들끓게 되면 모든 책임을 우리 조선에게 뒤집어씌울 생각이었사옵니다. 실로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아닐 수 없사옵니다. 저는
처음부터 서태후의 이러한 음모를 간파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래서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최대한도의 실리를 취할 생각을 했던 것이옵니다. 그래서 공친왕을
제거하기 위해 우리 조선군을 북경으로 들이는 순간, 청국의 황제와 서태후 일당을
사로잡을 생각을 한 것이지요."
"그럼 숙부께서 취하고자 하시는 실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청국이 강점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고토이옵니다. 바로 만주벌판을
말하는 것이지요. 아울러 저들이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 동안
저질렀던 만행을 생각해 보시옵소서. 그 때문에 우리 조선이 흘린 피가 얼마며, 우리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기를 얼마이옵니까? 그것을 고스란히 저들로 하여금 되 갚게
만드는 것이옵니다."
"허면 저들이 우리에게 한 것처럼 그대로 되 갚아주자는 말씀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사옵니까? 하지만 저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그대로
되돌려준다면 우리는 저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되옵니다. 다만, 저들이 강점하고
있는 만주벌판을 돌려 받고 저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입혔던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을
원할 뿐이옵니다."
김영훈이 말이 떨어지자 임금을 비롯한 희정당 안의 모든 중신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저 꿈에서나 생각해봤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에 대한 감동의
표현이었다. 임금은 중신들이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자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한 번 물꼬가 트였기에 저절로 그에 대한 의견이 나올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법무대신 이세보가 입을 열었다.
"합하. 합하의 웅대한 뜻과 어지신 마음은 신등(臣等)도 익히 알아듣겠사옵니다.
하지만 과연 저들이 합하의 뜻대로 엄청난 영토와 재화를 배상하려 하겠사옵니까?"
"경평군(慶平君) 대감께서 말씀 잘 해주셨습니다. 가능합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 우리 손에는 저들의 황제와 황제의 모후, 그리고 모든 중신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저들이 그것을 들어주지 않을 배짱이 있을까요? 자칫하면
왕조의 맥(脈)이 끊어질 처지에 처했는데 물불을 가를 수 있을까요? 여(余)가
보기에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합하의 말씀에 한 점 그른 데가 없는 줄로 사료되옵니다."
김영훈의 말 그대로였다. 군주가 나라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시대에, 황제와 황제의 모후, 조정의 중신들까지 볼모로 잡고 있는 상태에서 조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황제가 나라이고 나라가 황제인 지금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전제 왕조가 무너지는 20세기 이후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 시대에는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사옵니까?"
"그것에 대해서 대감들께서 의논해 주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알겠사옵니다. 합하."
박규수의 물음에 김영훈이 답하자, 희정당 안의 중신들이 일제히 대답을 하고는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너무도 엄청난 충격적인 소식에 말문이 막혔던 게
언제였느냐는 듯이 중신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청국에게서 할양 받을
영토에 대한 것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조선이 입었던 피해, 그리고 그동안
조공이라는 명목으로 조선에게서 갈취해간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중신들에게 있어서 조선은 더 이상 나약한 약소국이 아니었으며,
청국도 더 이상 조선의 상국(上國)이 아니었다. 이제 바야흐로 조선이 웅비해야할
때임을 스스로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청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할 것에 대한
의논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대충 결론이 난 것을 한상덕 대정원장이 대표로
정리해서 보고했다.
"... 이렇게 결정되었사옵니다. 합하."
"좋군요. 그 정도면 부족하기는 해도 충분히 받아낼 수 있겠군요. 허면 우리측 협상
대표로 누구를 임명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것은 국무대신 김종학 대감과 외무대신 박규수 대감이 적임자인 줄로
생각되옵니다."
"알겠습니다. 또 없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사옵니다. 합하."
"말씀해 보세요."
한상덕은 중신들이 의논하는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생각해오던 것이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신 혼자만의 사견임을 전제로 말씀드리옵니다. 신은 이번 기회에
청국의 황제로 하여금 삼전도(三田度)의 치욕을 고스란히 되 돌려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사옵니다."
"삼전도의 치욕을 되 돌려줘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병자호란 당시에 인조대왕께서는 청 태종 황태극(皇太極
홍타시)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당하셨사옵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의 500년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 치욕을
되 갚아주지 않고서는 지하에 계신 인조대왕께서 편히 지내시지 못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오! 좋은 생각입니다.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헌데 저들의 어린 황제를 어떻게 우리
주상전하께 데려온단 말입니까? 저들이 우리 조선으로 오려고 하지 않을 텐데요.
그리고 그에 따른 반발도 만만치 않을 거구요."
"그것은 우리가 주상전하를 모시고 청국에 가면 되옵니다. 합하."
"우리가 주상전하를 모시고 청국에 간다?"
"그렇사옵니다. 합하. 제 1왕립근위함대의 광개토태왕함을 타고 천진에 가서 저들로
하여금 광개토태왕함 함상에서 주상전하께 삼배구고두의 예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옵니다."
"광개토태왕함의 함상에서 삼배구고두의 예를 시킨다! 정말 좋은 생각입니다. 정말
좋아요. 그런 방법이 있었구려."
김영훈은 한상덕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한민족(韓民族)의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 여진족(女眞族)의 수장 따위가 저지른 패륜은 반드시 갚아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이 청국에 신속(臣屬)하던 것을 폐지해야하고
당당한 자주국임을 선포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동안 제후국(諸侯國)의 위치에서
청국의 연호(年號)를 사용하던 것을 중지함은 물론이고, 이제는 제국(帝國)을
선포하여 칭제(稱帝)하고 건원(建元)하여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알릴
생각이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김영훈이 가슴을 활짝 열고 말했다.
"모두 들으세요. 여는 이번 기회에 청에 신속하던 것을 중지하여 우리 조선이 당당한
자주국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울러 변방의 약소국에서 당당한 제국(
帝國)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칭제건원(稱帝建元)하여 주상전하를
황제폐하로 모시고 동양의 강국으로 당당한 첫발을 내딛고 싶습니다. 여의 이러한
생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고 사료되옵니다."
"그렇사옵니다. 합하. 참으로 당연한 일이옵니다."
모든 중신들이 김영훈의 갑작스런 제의에 이구동성으로 찬동하고 나섰다. 조선의
국력이 바야흐로 동양에서 최고를 달리려는 시점에서 언제까지 청에 신속할 수도
없었고, 언제까지 제후국으로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임금의 얼굴에도
덩달아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난한 왕족의 후예에서 이제는 동양 최고 제국의
황제가 되려는 시점이었다. 비록 모든 실권을 김영훈에게 넘긴 이름뿐인 황제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의미는 남다른 것이었다. 김영훈은 임금에게 시선을 한 번 주고는
다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그 일에 대해서도 모두 힘을 모아 준비해 주세요."
"심려치 마시옵소서. 합하."
"그리고 환재(踏齋) 대감께서는 아라사를 비롯한 우리 조선과 수교한 모든 국가의
귀빈을 주상전하의 황제 즉위식에 초청할 수 있도록 최대한 힘써 주세요. 이와 같은
일은 절대 실수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심려치 마시옵소서. 합하."
조선과 러시아는 지난 가을에 정식으로 수교한 상태였다. 조선과 왜국과의 전쟁에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빠른 시일 내에 조선이 러시아와 수교를
진행시킨 결과였다. 거기에는 장기(長崎 나가사키) 주재 조선 공사 신철균의 힘이
컸다. 물론 러시아가 원한대로 영토교환협정 같은 것은 체결하지 않은 순수
수교조약만 체결한 상태였지만, 러시아로서는 조선과 수교한 것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박규수에게 외교사절의 초청에 대한 것을 명한 김영훈은 이번에는
국방대신 신헌을 찾았다.
"위당(威堂) 대감."
"하교하시옵소서."
"지금 구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구주는 합하께옵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한 상태이옵니다.
아직까지 소수의 반도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머지 않아 모든 것을 마무리할 것으로
여겨지옵니다."
"좋은 일이군요. 그럼 막부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저들이 하관(下關 시모노세키)
으로 진격할 움직임은 없습니까?"
"아직까지 막부에서는 하관으로 진격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사옵니다. 다만
끈질기게 구주를 지원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줄로 아옵니다. 허나 그것도 우리
해군 함대에 막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음... 그럼 이쯤해서 막부와 종전협정을 체결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세요. 구주를
완전히 점령해가고 있는 마당에 저들과 더 이상 티격태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알겠사옵니다. 합하. 하지만 저들이 끝내 종전협정을 거부하면 어떻게 하옵니까?"
그것도 문제였다. 조선은 이미 구주 전 지역을 거의 점령한 상태였고, 하관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저들이 감수하면서 조선과의 종전협정에 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김영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요."
"마지막 방법이라 하오시면...?"
"저들의 수도 코앞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것입니다."
"무력시위요?"
"그래요. 무력시위! 어차피 더 이상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막부에서 계속 정신을 못 차린다면 제 1왕립친위함대를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벌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해군이 대판(大阪 오사카)과 횡빈(橫濱 요코하마), 강호(江戶
에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저들을 압박한다면, 저들이 더 이상 버티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 어떻게 대항할 수도 없을뿐더러 왜국 백성들의 동요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저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은 반드시 백개투항
할 것입니다."
"알겠사옵니다. 합하."
"우리 조선이 제국을 선포하기 이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지어 주세요. 어차피
청국과의 협상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크게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이렇게 해서 오늘의 중신회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듯 하자 김영훈이 임금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임금은 김영훈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고, 김영훈은 임금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김영훈
덕분에 조선이 드디어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자신의 권력을
양보한 임금 덕분에 이만큼 순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을 서로 엮여서 떨어질 줄 몰랐다.
아! 대한제국(大韓帝國)
서해의 물빛은 탁했다. 그 탁한 겨울바다를 엄청난 위용의 함대가 천천히 서진(西進)
하고 있었다. 지금 시대에는 비교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대는 조선,
아니 이제는 정식으로 국호를 변경한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해군 제
1황립근위함대였다. 기함인 광개토태왕함을 필두로 명림답부함과 강감찬함, 을파소함,
맹사성함, 유성룡함 등으로 이루어진 함대는 힘차게 서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광개토태왕함의 함수 돛대에는 대한제국의 국기인 태극기(太極旗)와 이 황가(李皇家)
를 상징하는 이화기(梨花旗)가 나란히 걸려있었는데, 이것으로 봐서는
광개토태왕함에는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광무황제(光武皇帝)가 승함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광개토태왕함의 사령관 실은 임시로 광무황제가 기거하고 있었는데,
광무황제는 이제는 섭정왕(攝政王)이 된 김영훈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숙부. 천진까지는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요?"
"천진에는 오늘 저녁때쯤 도착할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폐하."
"과인, 아니 짐(朕)의 대(代)에 이르러 이런 광영을 누리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광무황제는 아직 '짐'이라는 칭호가 익숙하지 않은 듯 잠시 말을 더듬었다. 그
모습을 본 김영훈이 엷은 웃음을 띄고 대답했다.
"별 말씀을 다하시옵니다. 당연히 그리되게 되어있던 일이었사옵니다."
"아니에요. 숙부. 모든 게 숙부와 천군 덕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짐이
숙부를 만나지 못하였던들 어찌 짐이 임금이 될 수 있었고, 어떻게 작금에 이르러
황제의 위(位)에까지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더군다나 우리 대한제국이 당당한
동양의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숙부 아닙니까?"
"망극하옵니다. 폐하."
올해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한 첫해가 된다. 지난해(1872년) 겨울
청국의 어린 동치제와 서태후를 친위천군의 1기병연대가 사로잡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조선의 운명은 빠르게 변모해 갔다. 우선 제후국의 위치에서 청국에 신속했던
것을 중지하고 당당한 제국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가 올해, 그러니까 새롭게 정해진
연호로는 광무 원년(光武元年 1873년) 음력 2월 10일이었다. 오늘이 광무 원년 2월
15일이니까 꼭 닷새 전의 일이다. 김영훈과 조정의 중신들은 청국에 신속하지 않기로
정하고 나서 새로 변경할 국호와 연호, 그리고 즉위식 절차 등에 대해 세심하게
준비했다. 김영훈과 중신들은 새로운 국호로 이미 김영훈과 천군에게 익숙한
대한제국으로 결정하였으며 연호는 광무로 정했다. 즉위식은 광무 원년 2월 10일
새롭게 중건된 경복궁의 근정전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근정전에는 대한제국에
주재하고 있는 모든 외교사절과 각계 각층의 초청 인사들이 자리를 함께 하여
대한제국의 출범과 광무황제의 즉위를 축하했다. 거기에는 새롭게 수교한 청국과
왜국의 외교사절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국은 대한제국이 국호를 변경하기 전인
임신년(壬申年 1872년) 음력 12월 23일에 정식으로 수교조약을 체결하여 수교국이
되었다. 조선과 청국이 수교한 조약의 내용은 간단했다. 청국은 지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조선에 입힌 모든 정신적 물질적인 피해를 전액 보상하고, 그동안
청국에 속해 있던 만리장성(萬里長城) 이북의 모든 영토를 조선에게 영구 할양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조선이 새로 할양받은 영토를 구체적으로 따지면 남으로는
만리장성까지, 북으로는 러시아 국경까지, 서로는 몽골 국경과 고비사막
접경까지였다. 그리고 산해관(山海關)부터 고비사막 접경까지의 만리장성도 조선이
차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영토였지만 황제와 황제의 모후,
조정의 모든 중신들이 볼모로 잡힌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왕조의 맥(脈)이 끊길
수도 있었기에 받아들이는 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청국의 입장에서 보면
마른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았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것은 왜국도
마찬가지였다. 왜국의 막부는 조선 해군의 위력적인 무력시위 앞에 그대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 해군 제 1왕림친위함대가 오사카와 요코하마를 포격하여
쑥대밭으로 만들더니 급기야는 에도 앞 바다에까지 진출하여 강화를 요구하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선이 원하는 구주 땅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까지 모두 들어준다는 조건에서였다. 그때가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이렇게
해서 조선은 그동안 신속했던 청국과 대등한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교린(交隣)하던
왜국과도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양국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조선이 다른
서양 제국(諸國)처럼 불평등한 조약을 강요한 것이 아닌, 평등한 수교조약을 제시한
점이다. 어쨌든 대한제국의 선포와 광무황제의 즉위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전국에
사면령(赦免令)이 내려졌고, 사흘 밤낮을 축제분위기 속에 모든 백성들이 열광했다.
대한제국 만세!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고, 광무황제폐하 만만세! 소리가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범한 대한제국은 과거의 법령과 제도,
정책을 하나하나 개편하여 동양의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대한제국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모든 권력은 여전히
섭정왕 김영훈의 손에 있었다. 김영훈도 의회민주주의를 대한제국에 뿌리내리게 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반 백성들의 의식이나, 삶이 과거
지배계급이었던 양반사대부에는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르게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한다면 대한제국 의회는 구시대의 상징인 양반사대부의 손에
장악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되면 간신히 이룩한, 백성이 주인이
되는 사회가 다시 일부 부유층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사회로 환원될 소지도
다분했다. 하여 일반 백성들의 의식과 삶이 완전히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한 연후에
의회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자신은 섭정왕의 신분에서 물러날 생각이었다. 그렇게되면
대한제국은 의회와 백성이 선출한 총리, 혹은 대통령이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이었다.
물론 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말이다.
"헌데 짐이 걱정이 있습니다. 숙부."
"무슨 걱정 말이옵니까?"
"다름이 아니라... 음... 우리가 이번에는 비교적 손쉽게 청국의 황제를 손에
넣음으로써 이득을 취할 수 있었는데 저들이 언제까지 우리에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폐하께서 옳게 보셨사옵니다."
광무황제는 그동안 꾸준히 김영훈과 천군에게 훈육을 받았기에 국정을 보는 안목이
예사롭지 않았다. 국제정세를 보는 안목도 마찬가지였다. 김영훈은 기꺼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코흘리개 어린애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지금이야 우리 대한제국의 국력이 강성하기에 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언제까지 저들이 고개를 숙이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폐하. 허나 너무 심려치는 마시옵소서. 제가 따로 생각해
둔 것이 있사옵니다."
"그래요? 그게 무엇인가요? 말씀해 주세요. 숙부."
'허! 이럴 때는 꼭 어린애 같다니까. 하기야 어린 나이에 생부와 형제들을 잃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김영훈은 광무황제의 치기 어린 표정에 쓴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렇다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광무황제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김영훈이었다.
"폐하. 지금 청국의 인구가 얼마나 되는 줄 아시옵니까?"
"글쎄요... 한 2억 정도 하지 않나요?"
"아니옵니다. 폐하. 지금 청국의 인구는 3억이 훨씬 넘사옵니다."
"예? 3억요?"
"그러하옵니다. 폐하."
"지금 우리 대한제국의 인구가... 음... 새로 편입된 영토에 살던 백성들을
포함한다고 해도 3천만이 약간 넘는 정도 아닙니까? 헌데 3억이라니. 근 열 배가
넘는 인구군요."
"그러하옵니다. 만주벌판과 내몽골 지역에 살던 백성이 약 천만을 넘고 구주에 사는
백성의 수가 약 500만에 이르니 근 3500만 정도의 인구를 우리 대한제국이 보유하고
있지요. 하지만 저들의 인구는 우리의 열 배에 해당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지요."
광무황제는 기가 질린다는 표정이었다. 열 배가 넘는 인구를 가진 대국이 대한제국을
호시탐탐 노릴 것을 생각하니 식은땀이 절로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곧 그런 걱정을
지웠다. 그런 걱정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지만 김영훈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고는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광무황제였다.
"무슨 방법이 있겠죠? 그렇죠?"
"방법은 딱 하나가 있사옵니다. 그것은 바로 저들을 분열시키는 것이옵니다."
"저들을 분열시켜요?"
"그러하옵니다. 폐하. 우리 대한제국의 영토와 인구가 아무리 팽창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청국에 비하면 미미하기 이를 데 없사옵니다. 이런 이웃 국가를 그냥
놔둔다는 것은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일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하여 저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생각해왔고, 그에 대한 나름의 대비를 해 왔사옵니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숙부십니다."
"폐하께옵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청국의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럽사옵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익히 알고 있어요."
"저는 그것을 이용하여 청국을, 아니 중국대륙을 둘 또는 세 개의 나라로 쪼개놓을
생각이옵니다."
"......?"
의아해하는 광무황제를 보며 김영훈은 그동안 대정원이 벌였던 청국에서의 공작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대정원의 공작은 오로지 김영훈과 한상덕, 그리고 그 일에
관련된 대정원 요원들뿐이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광무황제도 처음 듣는
일이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지금 청국의 강남에서 세력을 떨치며 청조에 반역하는 무리들을 토벌하는 이홍장은
죽은 공친왕의 심복이었사옵니다. 그는 자신의 주군인 공친왕이 서태후의 간악한
술수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원수를 갚을 수 있을까 절치부심하고 있사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옵니다."
"그것을 이용한다?"
"그러하옵니다. 이홍장의 야심을 부추겨서 청조에 반역하는 마음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옵니다. 서태후에 대한 반감을 최대한도로 이용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반역의 마음을 품었을 때 우리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옵니다.
그렇게되면 이홍장은 강남에서 독립하여 독자노선을 걷게될 것이옵니다."
"오-! 그런 수가 있었군요."
"그러나 이홍장만 독립시킨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옵니다."
"그러면요? 또 누가 있습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관희명이란 자를 이용하는 것이옵니다."
"그 가로회(哥老會)의 우두머리라는 자 말인가요?"
"그러하옵니다. 폐하. 관희명은 처음부터 우리 대정원에서 무기를 공급했던
자이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그는 청국군의 수 차례에 걸친 토벌을
효과적으로 물리쳐, 지금은 사천을 포함하여 운남과 귀주, 청해 지역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다고 하옵니다. 이홍장이 강남에서 독립한다면 관희명이 새로 나라를 세울
마음이 들지 않을 까닭이 없사옵니다. 그렇게되면 청국은 자연스럽게 세 개의 나라로
쪼개지게 되옵니다. 더구나 신강 지역에서는 아라사의 지원을 받는 토착세력이
독립을 꿈꾸고 있으니, 그들과 함께 외몽골을 독립시킨다면 청국은 서너 개의 나라로
발기발기 찢길 수도 있사옵니다."
김영훈의 말에 광무황제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이지
그렇게만 된다면 청국뿐만 아니라 한족(漢族)에 대한 걱정도 상당부분 덜 수
있으리라. 사실 김영훈의 말처럼 청국을, 또는 중국대륙의 한족을 분열시키지
않고서는 대한제국의 온전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새삼 김영훈의
노심초사가 엿보이는 것 같아 광무황제의 마음은 더 없이 기꺼워만 갔다. 더구나
이제 천진에 닿으면 인조대왕의 치욕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김영훈을 신뢰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가고 있었다.
"오랑캐 황제가 톡톡히 곤욕을 치르겠군."
"에구. 저게 뭐 하는 짓거린지 몰라."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린다는구만."
"삼배구고두의 예?"
"그래. 세 번 절하고 아홉 번을 머리를 조아린다는 말이네. 완전한 항복을 의미하는
말이지."
"그럼 오랑캐 황제가 조선의 왕한테 항복한다는 소리야? 아니 언제 저들이 조선하고
전쟁을 했길래?"
"이 사람은. 그것도 모르는가? 조선군 기병대가 자금성에 난입해 오랑캐 황제를
사로잡지 않았는가."
"그래도 그렇지. 삼배구고두의 예라니. 조선과 같은 조그만 나라한테 그럴 수야 있나.
"
"안 하면 어쩔텐데? 조선군의 손아귀에서 언제 죽을 줄 모르는데 안하고 베기겠어?"
"하기야..."
"헌데 정말 조선의 함대는 엄청나구만. 그러니까 오랑캐 조정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당한 것이겠지만..."
"그러게.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가 봐도 정말 대단한 위용이야."
한족 백성들 중에서는 아직도 전조(前朝)인 명(明)에 대한 깊은 향수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청조는 만주 오랑캐가 명을 멸하고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배척의 대상이었다. 평소에 자신들만 있을 때는 스스럼없이
오랑캐 황제라고 비하하는 그들이었다. 따라서 지각 있는 사람들은 오랑캐 황제가
조선의 임금에게-이들은 대한제국의 출범을 모를 뿐더러 안다고 해도 조선이라고
칭할 것이다-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를 하는 것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없었다. 다만
일반 백성들은 대국의 황제가 소국의 임금에게 죄를 비는 것에 대한 못마땅한 마음이
많았다. 하지만 조선군이 눈을 부라리고 순시를 돌고 있는 형편에서 어찌할 상황도
아니었다. 물론 그럴 상황이라고 해도 엄한 목숨 버리고 싶지도 않겠지만. 천진의
백성들은 너른 부둣가에 나와 동치제가 청조의 중신들을 이끌고 쪽배를 타고서 조선
해군의 전함으로 건너가는 것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진에 사는 모든 서양인들도 오늘의 구경을 놓치고 싶지
않은지 쌀쌀한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 신시가지의 외항에 나와
있었다. 그들 사이로 영국 공사 웨이드 경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심난한 표정으로
대한제국 해군의 광개토태왕함과 동치제 일행을 태운 쪽배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2개 연대 병력이 이곳에 주둔한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 것을..."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입맛이 씀을 느꼈다. 저들은 결코 좋은 뜻으로 2개 연대에
달하는 병력을 주둔시킨 게 아니었다. 당시 자신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지만 설마..
.? 라고 생각한 일이었다.
동치제와 청조의 중신들은 태운 세 척의 쪽배는 출렁거리는 바다를 가르며 대한제국
해군의 광개토태왕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동치제 일행은 광개토태왐함에
다 달았고, 함수에서 빠져나온 잔교(棧橋)에 배를 댔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한
몸짓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광개토태왕함의 함수 갑판에는 승무원들이 이열로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180mm 함수포 바로 앞에는 커다란 휘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안에는 대한제국의 광무황제와 섭정왕 김영훈이 조정 중신들을 거느리고 앉아
있었다.
"청국 황제 동치제 등장이오!"
다소 장난기 어린 외침이 있고 함수 끄트머리에 도열해 있던 취타대가 우렁차게
나발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뿌-웅! 뿌우웅-! 뿡-!]
동치제는 중신들을 이끌고 휘장 앞에 섰다. 그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 때문에 떠는 것이 아닌, 참을 수 없는 굴욕과 수치심 때문에 떠는 것이었다.
아니면 자금성에 갇혀 있는 동안 느낀 회한 때문일 수도 있었다. 더구나 어마어마한
광개토태왕함의 함포는 동치제와 청조 중신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위용이었다. 그들은 떨리는 가슴을 안고 광무황제와 김영훈 앞에 서서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때 한쪽에 서 있던 한상덕이 나서서 광무황제의 교서(
敎書)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짐이 말하노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낳아서 군장(君長)을 세워, 이를 길러 서로
살게 하고, 이를 다스려 서로 편안케 했다. 그러므로 군도(君道)가 득실(得失)이
있게 되어 인심(人心)의 복종과 배반이 있게 되고 천명(天命)의 떠남과 머물러
있음이 매이게 되었으니, 이것이 이치의 떳떳함이다."(*3)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광무황제의 교서는 다시 청국말로 통역이 되어 동치제와
청조의 중신들에게 전달되었다.
"일찍이 대청제국(大淸帝國)을 개국한 애신각라(愛新覺羅) 누루하치 태조 황제께서는
스스로 신라(新羅)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그리하여 근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애신각라를 성(姓)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누르하치 태조 황제께서는 동족의
땅인 조선을 넘보는 대신에 중원으로 눈길을 돌려 간악한 한족(漢族)을 내 쫓고
대제국을 건설하셨다. 그야말로 대영웅의 기개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그 후,
누르하치 태조 황제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른 황태극(皇太極) 태종 황제는 동족의
나라인 조선과 연합하여 한족의 명(明)을 물리칠 것을 제의하였으나, 부족한 조선의
선조들은 오히려 황태극 태종 황제를 실망시키기에 이른다. 실로 통탄할
노릇이었으니 짐의 마음이 어찌 편할 것인가. 부끄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도다. 허나 아무리 선조의 잘못이 크다고 하더라도 어찌 짐이 망령되이 그것을
논할 것인가. 또한 동족이 도움을 주지 않다고 하여 동족의 나라에 창검을 겨눈 것은
분명코 잘못된 일이었다. 황태극 태종 황제는 동족의 나라에 창검을 겨누고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었으니 이로써 이 황가와 애신각라 황가 사이에는 원한만 쌓이게
되었다. 짐은 오늘 이것을 바로잡고 동족간에 화해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이 자리를
준비했다. 오늘 부로 우리 이 황가와 그대들 애신각라 황가는 다시금 형제의 의(
兄弟之義)로 굳게 뭉치게 되었으니 실로 우리 대쥬신족(大朝鮮族)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도다."
어느새 낭랑하게 울려 퍼지던 광무황제의 교서가 모두 끝이 났다. 원래 오늘의
교서는 김영훈의 뜻대로 만들어진 교서였다. 청조를 세운 애신각라 씨가 조선과 같은
배달민족이라고 하여도 그들은 이미 중원에 뿌리를 내려, 근본에 대한 자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여도 아직까지 만주벌판에는 만주족
백성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뿌리가 무엇인지,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칠 필요는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들을 대한제국의 품으로 아우를 생각이었다.
아울러 청조와 더 이상의 척을 지지 않음으로써 후일에 대한 여지(餘地)를 남겨놓은
것이다. 단순히 치욕의 역사를 씻는 것으로 의미가 국한된 것이 아닌, 앞으로의
일까지 염두에 둔 교서였다. 교서가 모두 낭독되자 동치제는 청조의 중신들과 함께
광무황제에게 예를 표했다. 바로 삼배구고두의 예(三拜九叩頭禮)였다. 동치제와
청조의 중신들은 세 번 절을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면서 외쳤다.
"광무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대한제국! 만세! 만세! 만만세!"
광무황제는 동치제의 예가 모두 끝나자 몸소 저들에게로 다다가 동치제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웠다.
"고맙네. 아우님. 고생했으이. 고생했어."
"망극하옵니다. 형님 폐하."
이때 함수의 취타대가 우렁차게 무령지곡(武寧之曲)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당하는
동치제와 청조의 중신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모욕이었지만 대한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처럼 통쾌한 날도 없을 것이다. 김영훈은 그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대한제국의 웅비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암!"
일기는 청명했고 하늘은 맑았다. 푸르른 가을날의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마치
대한제국의 앞날을 축복이라도 해주려는 것처럼 맑은 하늘이었다. 참으로 맑은
하늘이었다.
(*3)광무황제의 즉위교서 서두는 대한제국 시대에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로 추존(
追尊)된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卽位敎書)를 편집하여 작성했음을 밝힌다. 관련
사이트 http://ghostent.new21.org/home/6history/61gyoseo1.htm에서 도움을 받았다.
이로서 대한제국기를 끝냅니다. 독자분께서는 기왕이면 대여점에서 한번더 빌려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여점에 책이 없다면 구비해달라는 부탁이라도 해 주신다면 고맙겠구요.
그럼 다음엔 환타지소설 무뢰한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