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조선군은 정말이지 이상하기 그지없구만."
"그러게 말야. 어찌 저렇게 요상한 것을 입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런데 왜 조선군이 황궁 앞을 수비하는 거래?"
"너나 나 같은 쫄짜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겠냐. 그저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하면
장땡인 것을."
"니 말도 맞다. 위에서도 무슨 생각이 있으니까 저들을 부른 것이겠지."
자금성(紫禁城)의 오문(午門)을 수비하고 있는 금군 소속의 군사들은 눈앞에 등을
보이고 도열해 있는 조선군 기병대 병력을 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원래 금군은
황제의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군사들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 아침에는 자금성의 각
궁문을 경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더구나 일부 군사들은 따로 어디론가 출동한
상태였기에, 가뜩이나 해이된 군기가 더욱 해이해져 있었다.
"헌데, 파 부통령이 이끌고 간 군사들은 어디로 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겄냐? 그리고 아까 내가 말했지. 그런 것은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한다고."
"하기야..."
오문은 자금성의 네 군데 궁문 중에서 남문에 해당하는 정문이었다. 당연히 다른 세
군데의 궁문보다도 훨씬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위엄이 있었다. 오문의 높이는 35.6m로
다섯 개의 승루가 건조되어 있었기에 오봉루라고도 한다. 오봉루에 올라서면
북경성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지금 잡담을 나누는 금군 군사들의 눈앞에는
조선군 기병대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오문 위의 금군
군사들은 오늘 아침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오문을 비롯한 네 군데 궁문의 수비를 바꾼
일과, 금군 부통령 파해가 이끄는 일단의 군사들이 공친왕을 척살 하기 위해 출정한
일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조선군 기병대가 오문 앞에 왜 진을 치고
있는지도 몰랐다. 조선군 기병대가 오문을 비롯한 네 군데의 궁문에 병력을 나눠서
경비하고 있는 이유는 효기영와 전봉영의 잔당들이 행여나 황궁을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서태후의 염려에 의한 요청이었다는 것을 까마득하게 모르고 있었다. 그저
위에서 지시한 일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이런 생각뿐이었다. 말단
군사들까지 일일이 사건의 전모를 알릴 필요는 없었기에 취해진 조치였지만 그것이
결국 재앙을 불러올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금군 군사들이 한가롭게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멀리 동화문(東華門)과 조양문(朝陽門) 사이에서 폭음이
들리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뭐야?"
"왜 그래?"
호기심이 동한 군사들이 급히 뛰어가며 그쪽을 바라봤다. 동화문은 황궁의 동문이고,
조양문은 북경성의 동문이다. 동화문과 조양문 사이는 여러 관아와, 고급 관리들의
저택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당연히 군사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이 그쪽을 바라보느라 정신을 놓고 있는데, 한 군사가 또 다시 소리쳤다.
"어! 저건 또 뭐야?"
그 소리를 따라 오문 앞을 바라보던 금군 군사들은 깜짝 놀랐다. 오문을 등지고 있던
조선군 기병대 군사들이 어느새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고, 그
앞에는 마차에 실린 시커멓고 이상한 물건 두 개가 자신들에게로 조준되어 있었다.
모두들 눈이 동그랗게 떠지면서 저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생각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데 재앙이 그들을 덮쳤다.
"사격개시!"
[따따따따따따따땅! 따따따따따따땅! 따따따따따땅!]
[펑! 퍼벙! 퍼버벙! 펑! 퍼버벙! 퍼벙!]
친위천군 1기병연대장 한수길 대령의 명령과 동시에 천진에 남아있던 보병연대에게서
빌려온 1정의 한-1 고속 유탄발사기와 1정의 벼락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무방비
상태로 있던 금군 군사들이 찢어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피를 뿌리며 쓰러지기
시작했고, 오문의 굳게 닫힌 문도 와지끈!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귀청을 찢을 것
같은 발사음이 연달아 들렸고 더불어서 비명소리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수길은 비장한 표정으로 주위의 참모들에게 말했다.
"김 중령. 자금성의 각 문에 병력의 배치는 완료됐나?"
"각각의 궁문에 저희 4대대의 1개 중대가 모두 배치되었습니다. 연대장님."
자금성은 정문인 오문을 포함하여 모두 네 개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이
정문으로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 서쪽을 서화문(西華門), 북쪽은 신무문(
神武門)이라 부르며 네 모퉁이에 각루(角樓)가 서 있다. 1기병연대 예하의 4개 대대
중 3개 대대가 오문에 집결해 있었고, 4대대만이 병력을 나눠 각 중대별로 자금성의
네 궁문에 집결하여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한수길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사투리를 잘 사용하는 그였으나 긴장된 탓인지 사투리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제 우리 연대가 작전을 개시할 때가 됐다. 다들 알겠지만 이번 작전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 연대는 반드시 서태후와 동치제(同治帝)를 사로잡아야 한다. 어떠한
희생이 있더라도 여우와 그 새끼를 포획해야 한다는 말이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좋아. 그럼 지금부터 작전명 '여우사냥'을 시작한다. 모두들 무운을 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대장님. 충성!"
"충성."
조선군이 서태후의 요청으로 북경에 파견한 군세(軍勢)는 1개 기병연대와 1개
보병대대에 달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태후의 요청으로 조선군이 그녀의 정적
제거에 이용당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조선군도 나름대로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원래 서태후의 요청을 받은 조선에서는 이 기회를 이용해 청국의 주요 실권자를
모조리 사로잡을 생각이었다. 소병찬이 이끄는 보병대대가 일부 금군 군사들과 함께
공친왕을 제거하고 그의 추종세력인 효기영과 전봉영을 무력화시키는 사이에,
한수길이 지휘하는 기병연대는 자금성으로 난입하여 황제와 서태후, 그리고 청조의
대신들을 모조리 사로잡는 것이 목적이었다. 보병대대가 공친왕부를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기병연대가 자금성으로 쳐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공친왕부가 있는 동화문과
조양문 사이의 고급 관리들의 저택이 있는 지역에서 들려온 폭음이 바로 작전개시를
알리는 신호였다. 어느새 귀를 찢을 것 같던 폭발음이 잠잠해져 있었다. 한수길은
오른손을 쳐들고는 앞으로 쭉 뻗으며 외쳤다.
"연대-! 앞으로-!"
한수길의 명령과 함께 3개 대대 1800명이 넘는 인마(人馬)가 대오를 갖추고 오문으로
접근했다. 오문은 한꺼번에 겨우 서너 명 정도가 어깨를 맞대고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기에 천천히 줄을 맞춰 진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럽다. 부러워. 누구는 자금성으로 들어가서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누구는
궁문 경비나 서고 있어야 하다니."
"내 말이 그 말이당께. 어찌 요로코롬 불공평한 일이 다 있다냐잉..."
전우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오문을 통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4대대 장병들의
얼굴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1대대와 2대대, 3대대는 자금성을 들이쳐서 맡은바
임무를 수행할 것이지만 4대대는 네 군데의 궁문을 지키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청국군의 저항이나 난입을 제압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다. 당연히 자신들도 자금성을
들이쳐서 청국의 어린 황제와 서태후, 그리고 여러 고관대작들을 사로잡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누군가는 남아서 궁문을 지켜야 했기에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