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13화 (313/318)

3.

"공친왕이 거부하려는 모양인데요."

"당연하지. 끌려가면 죽는 다는 것을 아는데 순순히 '나 잡아가쇼' 하겠어?"

친위천군 1보병연대 1대대장 소병찬 중령은 대대 작전참모 송일섭 소령의 말에

이렇게 대꾸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주변에는 막강 친위천군의 1개 대대가 명령이

떨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하얀 설상복까지 갖춰 입고,

얼굴에는 검댕을 덕지덕지 쳐 발라 마치 지옥에서 돌아온 악귀와도 같은

부하들이었다. 믿음직한 모습이었다. 소병찬이 이렇게 생각하는 반면에 일선

중대장들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겨우 오합지졸 청국군이나 상대하려고

북경까지 왔다는데 따른 불만이었다. 비록 그 상대가 황제를 보위하는 황궁

내삼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전 근대적인 병사들을 상대로 우리가 힘을 써야 한다는 게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누가 아니래나. 하지만 어쩌겠어. 금군이 효기영과 전봉영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는

것을... 덕분에 우리 친위천군이 성가(聲價)를 높일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성가는 없느니만 못합니다. 대대장님."

화기중대장 김춘영 대위의 말이었다. 일선 중대장급 이하 간부들은 친위천군이

단순히 서태후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는 줄 알고 있었기에 터트린 불만이었다. 1개

기병연대와 1개 보병대대에 이르는 친위천군이 서태후와 공친왕의 정권 다툼에

시녀노릇을 할 이유는 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었다. 소병찬은

김춘영의 말에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처음에는 이들과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러다 상부로부터 오늘 작전의 모든 것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의구심이 가라앉게

되었다.

"김 대위."

"예. 대대장님."

"우린 군인이다. 군인이라면 상부의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그 명령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명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나?"

"맞습니다. 대대장님."

"그럼 가서 전투 준비를 해라. 화기중대에서 박격포만 발사해도 저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 거야. 굳이 우리가 나서서 피를 볼 일은 없다."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소병찬의 말에 하나 그른 점이 없었기에 김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봐도 화기중대의 박격포 사격 몇 발이면 효기영의 200여 병사들은 뿔뿔이

도망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화기중대로 걸음을 옮기려던 김춘영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헌데 대대장님. 기병연대 병사들은 어디에 있는 겁니까? 분명히 북경에 같이

진입했는데 통 보이지 않아 궁금합니다."

"후후후... 궁금한가?"

"그렇습니다. 대대장님."

"나중에 알게 될 것이야.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일이나 신경 쓰라구. 김 대위는 가서

박격포 사격이나 지휘하게."

"알겠습니다. 대대장님."

소병찬이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얘기를 하지 않자 김춘영은 맥이 풀렸다.

하지만 목전(目前)의 일이나 신경 쓰라는 소병찬의 말도 맞았기에 궁금증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된다니까 그때 가면 알게 되겠지. 김춘영은

걸음을 옮겨 자신의 화기중대로 돌아갔다. 화기중대는 다른 중대와 약간 떨어진

후방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모든 박격포는 방열을 끝내놓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고, 한-1 고속 유탄발사기와 벼락 기관총은 커다란 포장이 둘러쳐진 마차 위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춘영이 화기중대 장병들과 전방을 주시하는데 아이흔이

이끄는 금군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서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커다란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이어서 소병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투준비!"

소병찬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대의 다른 중대원들이 즉시 앉아 쏴 자세를 취했고,

화기중대의 한-1 고속 유탄발사기와 벼락 기관총을 덮어 씌웠던 포장이 걷혀졌다.

그리고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벼락 기관총의 기관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한-1 고속 유탄발사기와 벼락 기관총은 대기하라! 너희까지 나설 필요는 없어!"

김춘영의 명령에 한-1 고속 유탄발사기와 벼락 기관총의 운용병들은 맥이 빠진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것을 본 김춘영의 입에서도 쓴웃음이 피어올랐다. 이때,

소병찬의 명령이 떨어졌다.

"박격포 발사!"

"발사!"

[펑! 펑! 펑! 퍼벙! 퍼버벙!]

김춘영의 명령과 함께 총 20문의 81mm 중(重) 박격포가 불을 뿜었다. 말이 81mm

박격포지 지금 시대의 어지간한 야포보다 성능과 화력면에서 뛰어난 조선군의 81mm

박격포는 변변한 무장도 없고 은폐·엄폐물이 없는 효기영 군사들에게는 재앙이었다.

거의 500m 이상 떨어져 있었는데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직접 효기영 군사들에게 조준사격을 하지 않고 공친왕부의 정문과 담벼락을 향한

사격이었기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지축을 뒤흔드는 포화가 집중된다고 생각을

해봐라. 그 충격과 공포가 얼마나 클 것인가. 김춘영은 쌍안경을 들어 눈으로

가져갔다. 이미 효기영 군사들의 전열은 붕괴됐고, 공친왕부의 화려한 정문과 위엄

있게 서 있던 높다란 담벼락은 무너지고 없었다. 각 박격포 당 겨우 다섯 발 남짓

발사했을 뿐인데도 이런 지경이었다. 다시 소병찬의 명령이 떨어졌다.

"사격중지!"

겨우 다섯 발 정도만 발사했는데 벌써 사격중지라니. 병사들의 얼굴에는 뭔가 모자란

것 아닌가 하는 표정이 쓰여있었다. 하지만 더 사격을 하다가는 일방적인 학살이 될

것 같았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패잔병들의 처리와 공친왕의 검거 같은

일은 어차피 금군이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김춘영은 병사들의

불만을 아랑곳하지 않고 쌍안경을 들어 전방을 관측했다. 아군의 박격포 사격이

중지된 것을 눈치챈 금군이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공친왕부로 쏟아져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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