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12화 (312/318)

2.

"왕야! 왕야!"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을 떠는 게냐?"

"송구하옵니다. 왕야. 하오나 화급을 다투는 일인지라..."

"어디 말해 보거라."

감기에 걸려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 공친왕의 짜증 섞인 말에 급하게 달려 들어온

공친왕부의 집사는 한껏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지금 왕부 밖에 수상한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사옵니다."

"무어라! 수상한 군사!"

"그렇사옵니다. 왕야. 황궁의 금군으로 보이는 군사들과 알록달록한 양이의 복색을

한 군사들이 같이 몰려왔사옵니다."

"금군과 양이의 군사들이 같이 왔다?"

"그렇사옵니다. 왕야."

공친왕의 안색이 눈에 띄게 하얘졌다. 자신이 며칠 몸이 안 좋아 왕부에만 틀어 박혀

있는 사이에, 그예 여우같은 서태후가 일을 벌인 것이 틀림없었다. 금군이라면

서태후의 정부 중 하나인 영록이란 자가 움직였을 게 틀림없었고 알록달록한 양이의

복색을 한 군사들이라면? 그럼 조선군인가? 헌데 조선군이 왜? 여기까지 생각하자

그의 안색이 더욱 하얘졌다.

"효, 효기영은... 효기영은 어찌하고 있느냐?"

"효기영의 부통령 파해(巴海) 대인께서는 군사들을 이끌고 저들과 대치하고

있사옵니다."

"음... 내가 나가보겠다."

공친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미 왕부는 어수선했다. 하인들뿐만

아니라 집안 식구들도 동요하고 있었다. 공친왕은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만일 금군 단독으로 출정한 거라면

얼마든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나, 거기에 조선군까지 가세한다면 상황을

뒤집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그런 일은 없어야 하는데... 헌데 저들이

어떻게 황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느새 왕부의 정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정문 밖으로는 왕부 경비를 위해

동원한 일단의 효기영 군사들이 잔뜩 긴장한 채 무기를 꼬나 쥐고 있었고, 그들의

앞에는 금군 병사들이 마찬가지 모양으로 대치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복색의

조선군은 한참 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신식군대의 편제로 대대 규모는 돼 보이는

병력이었다. 공친왕이 다가오자 효기영 부통령 파해가 무거운 몸을 뒤뚱거리며

달려왔다.

"어찌된 일이냐? 더구나 조선군이라니."

"송구하옵니다. 왕야. 금군 부통령 아이흔(阿二欣)이 다짜고짜 군사들을 이끌고

몰려오는 바람에..."

"대체 저들이 예까지 몰려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이냐?"

"그것이... 아직 저들과 대화를 해보지 않아서... 송구하옵니다. 왕야."

"이런, 이런... 내 집으로 몰려든 금군 군사들이 왜 몰려왔는지 까닭도 묻지 않았단

말인가! 이런 한심한..."

"송구하옵니다. 왕야."

공친왕의 거듭되는 질타에 뚱뚱한 체구의 파해가 연신 허리를 굽히기 바빴다. 원래

간이 콩알만한 파해는 금군이 왜 공친왕부로 몰려온 것인지 물어볼 배짱도 없었던

터였다.

"니 통령과 아 통령에게는 사람을 보냈더냐?"

"이미 전령을 보냈사옵니다. 왕야."

파해는 효기영 통령 니이혁(泥爾赫)과 전봉영 통령 아극단(雅克旦)에게 전령을 보내

응원군을 청한 일을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그가 유일하게 취한 조치가 효기영과

전봉영의 두 통령에게 전령을 보내 응원군을 청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병신. 그 까짓 전령을 보낸 게 무에 대수로운 일이라고!'

속으로 혀를 찬 공친왕은 친히 무슨 일로 군사들을 동원한 것인지 알아볼 생각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찌됐든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수습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효기영 군사들은 공친왕이 나서자 길을 열어주었다.

"내가 공친왕 혁흔이다! 너희들은 무슨 목적으로 내 집을 찾아온 것이냐!"

공친왕이 나서며 외치자 금군 군사들 뒤에서 요란한 갑주를 차려입은 한 사내가

나섰다. 금군 부통령 아이흔이었다. 아이흔은 냉랭한 표정으로 공친왕을 일별하고

외쳤다.

"죄인 혁흔은 황명을 받들라-!"

"무어라? 죄인?"

공친왕이 발끈하며 말을 받았지만 아이흔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황제의 어보가 찍힌

두루마기를 펼치더니 낭랑한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반역도당과 결탁하여 국본(國本)을 문란케 한 공친왕 혁흔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개소리다!"

"지금 폐하의 황명을 거역하자는 건가? 정녕 그런 건가?"

"나는 믿을 수 없다. 이건 필시 서태후, 그 여우같은 년의 농간이 분명하다! 내

그년을 찢어 죽이고 말리라!"

여기까지 말한 공친왕은 더 이상 말할 가치를 못 느꼈는지 그대로 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파해를 불렀다.

"그대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저들을 막아라! 이미 효기영과 전봉영의 본진이

출동했을 것이다. 그들이 올 때까지 저들을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야. 알겠느냐!"

"하오나 왕야..."

"이것은 여우같은 서태후 년의 농간이다. 니 통령과 아 통령이 온다면 다 해결될

일이야. 그때까지만 버텨라! 알아듣겠느냐?"

"알겠사옵니다. 왕야."

공친왕은 배수의 진을 친 심정이었다. 아무리 여우같은 서태후의 농간일지라도

어보가 찍힌 이상 신하된 도리로 따르는 게 마땅한 일이었으나, 이대로 황명을

받들어 끌려간다면 모든 게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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