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력 11월, 북경의 아침나절은 추웠다. 그것은 날이 밝은지 한참이나 지난 늦은
오전이 되어도 마찬가지였다. 매서운 북풍이 온 세상을 얼려버릴 듯 휘몰아쳤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발을 뿌릴 듯 우중충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직 한 곳만은
춘풍(春風)이 감돌고 있었다. 바로 자금성 내의 저수궁(儲秀宮)이었다.
"마마. 좋으시옵니까?"
"음... 그래. 아주 시원하구나."
서태후의 달뜬 음성에 그녀의 다리를 주무르던 안득해의 손이 더욱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 거기를 좀 더 시원하게 주물러 보아라."
"예. 마마."
눈을 지긋이 감은 서태후는 안득해의 손길에 온몸을 맡겨놓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안득해는 지극 정성을 다해 그녀의 다리 구석구석을 안마했다. 마치 이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지상 최고의 임무라도 되는 것처럼. 안득해의 안마가 한참을
더해지자 견디지 못한(?) 서태후가 몸을 비틀었다. 입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아흥. 으음... 어쩜 이렇게 시원하누."
"과찬이시옵니다. 마마."
"아니야. 너의 안마 솜씨가 점점 좋아지는구나. 이제 경지에 이르렀어. 경지에..."
"별 말씀을 다하시옵니다. 마마."
서태후의 칭찬에 한껏 고무된 안득해의 손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처음 종아리를
더듬던 그의 손이 무릎을 살짝 쥐었다 폈다. 서태후는 다리를 움찔하면서 살짝 몸을
떨었다. 간지러운 듯 하면서도 무언가가 몸 안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콧구멍이 살짝 커지면서 가쁜 숨을 내뱉었다. 안득해는 천천히 허벅지를
더듬기 시작했다. 먼저 허벅지의 가장자리를 매만지는 것 같더니 이내 살집이 두툼한
허벅지 안쪽을 더듬었다. 서태후의 가쁜 숨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녀는 이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 됐다. 그만 하거라."
"예. 마마."
그만 하라는 말을 해 놓고도 어딘지 모르게 아쉬웠다. 나락으로 떨어져 끝을 봐야
하는데... 서태후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안득해를 바라봤다.
"아해야."
"예. 마마."
"드디어 오늘이더냐?"
"그렇사옵니다. 마마. 드디어 오늘이옵니다. 아마도 지금쯤 발칵 뒤집혔을
것이옵니다."
"음..."
서태후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그녀의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갔고 두 눈이 게슴츠레 변해갔다. 두 눈을 게슴츠레 떴다고 해서 못다 푼
욕망을 상상해서 그런 것은 분명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저들이 잘 할 수 있을까?"
"심려치 마시옵소서. 마마. 저들은 분명 잘 할 것이옵니다."
"그래. 헌데, 지금 혁흔이 제 집에 있다고 했던가?"
"그렇사옵니다. 마마.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은지 왕부(王府)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물론, 효기영 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겠지?"
"그렇다고 하옵니다. 마마. 하지만 공친왕부를 지키는 효기영 군사들이야 숫자도
얼마 안될뿐더러, 저들도 만반의 준비를 다 갖췄다고 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문제는 효기영의 본진과 전봉영의 본진이 출동한 이후일 것이야."
"그것도 심려치 마시옵소서. 조선군이 1개 기병연대와 1개 보병대대를 출동시켰다고
하니 별다른 어려움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구말구."
원래 황궁 내삼영을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아무리 공친왕이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홍장의 회군이 강남으로 출병한 후에 신변의 안전을 염려한 공친왕이
독단으로 자신의 사저를 경비하도록 조치했다. 서태후는 충분히 그의 전횡을 막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했다. 그런 것을 문제삼아 그의 경계심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었고, 어차피 그들이 움직이게 되면 추풍낙엽처럼 쓸릴 존재들에게
굳이 신경쓸 것 없다는 생각이기도 했다.
"음... 혹여, 혁흔에게 눈치를 채인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황도의 각 성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우리 편이온데 어찌
저들이 눈치를 챌 수 있겠사옵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 눈치를 챈들 어떻사옵니까.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을요."
"호호홋! 아해의 말이 맞구나. 이제 뜸만 들이면 밥이 되는데 제까짓 것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 암! 그렇구 말구."
"호호호호! 맞사옵니다. 마마."
두 사람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교성(嬌聲)을 터트렸다. 한참 교성을 터트리던
서태후가 다시 말했다.
"너는 알겠지? 나의 꿈을."
"이르다 뿐이겠사옵니까. 마마. 오늘이 지나면 마마의 꿈을 펼칠 수가 있사옵니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그래. 그래야지... 참, 재순(載淳)이도 불렀겠지? 그리고 영록(榮祿)이는?"
"황상께옵서는 조강(朝講)을 마치면 문후(問候) 여쭙겠다고 하였사옵니다. 또한 영
통령께서도 금군 군사들을 동원하여 황궁 요소 요소에 배치해 두었다고 하옵니다.
이제 저들이 그를 제거하기만 하면 마마의 세상이옵니다."
"음... 좋구나! 아주 좋아!"
재순은 현 황제의 이름이었다. 서태후가 아무리 황제의 생모라고 해도 신하된 자
앞에서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은 안득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손뼉을 마주치며 좋아라
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필시 실성한 것으로 오해할 정도로 그녀의
모습은 괴이한 활력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제 세상을 만난 것처럼 힘이 넘치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