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해는 어김없이 떠올랐다. 지난 새벽 끔찍한 굉음과 포성, 단발마적인 비명이 온
천지를 휘감았던 3중대 전술기지에도 해는 떠올랐다. 3중대 장병들은 너나할 것 없이
죽은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부상당한 동료들을 치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은 3중대를 구원하기 위해 출동한 다른 중대의 장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3중대 전술기지로 달려온 것은 전투가 모두 끝나고 난 직후였다. 그들은 행여
아군끼리의 오인사격을 염려하여 3중대 전술기지로 접근하지는 못하고 주변을 포위
차단한 채 대기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모든 전투 행위가 종결되고 도망치는 적들을
섬멸한 연후에 신호탄을 터트리며 3중대 전술기지로 접근했다. 날이 밝으면서 전투의
전말이 드러나자 모두들 경악했다. 3중대가 무려 30배가 넘는 3개 연대 병력의 적을
맞아 싸웠다는 사실에 경악했고, 3개 연대 규모의 적을 거의 아무런 피해 없이
무찔렀다는데 또 한 번 경악했다. 적은 사쓰마군과 휴가번 군사들의 연합군으로
판명됐다. 이 전투에서 적은 모두 4300여 명이 죽었고, 부상자는 800여 명에
이르렀다. 포로로 잡힌 적병도 적지 않았다. 총 500명이 넘었다. 포로로 잡힌 적병의
대부분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에 비하면 3중대의 피해는 피해랄 것도 없었다.
최초로 적 조공부대의 공격을 받은 3소대에서만 피해가 발생했을 뿐 1소대와
2소대의 피해는 전무했다. 적 주공부대가 의외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을 일으킨
결과였다. 3소대의 피해는 막심했다. 가장 많은 적을 맞아 분전한 4분대가 전멸했고,
4분대를 지원한 3분대도 단 세 명만 빼고 모두 전사했다. 1, 2분대도 약 절반 가량의
분대원을 잃었다. 모두 합쳐 3소대의 전사자는 24명이었고, 살아남은 소대원 전원이
부상을 입었다. 적에 비하면 피해랄 것도 없었지만,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다른
사람의 죽을병보다 더 아픈 것이 고금의 진리였다. 아침부터 3중대 전술기지를
둘러보는 일단의 장교들이 있었다. 바로 1여단 3연대 3대대의 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3중대 간부들이었다.
"고생했다. 이 소위."
"죄송합니다. 대대장님."
3소대장 이수현 소위는 3대대장 조형남 중령의 위로에 죄송하다고 답했다. 수많은
부하들이 죽었는데 자신만 살아남아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소대 총원 42명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의 수가 자신을 포함해서 겨우 18명이라면, 절반 이상의 소대원들이
죽었다는 말이다. 그런 전투를 이끈 자신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소리였다. 조형남이
이수현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아니다. 이 소위. 자네가 소대를 잘 지휘했기에 이 정도의 피해로 그쳤지, 그렇지
않았으면 전 중대가 위험했을 거라고 들었다. 자네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것이다.
나는 자네와 자네 소대, 그리고 자네들 3중대가 자랑스럽다."
"......"
조형남의 진심 어린 위로의 말도 이수현의 마음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군인답게
절도 있는 몸가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죽어간 전우들,
죽어간 동료들이 눈에 선했다. 금방이라도 '소대장님!' 하며 달려올 것 같았다.
이수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대장님."
"뭔가? 이 소위."
"저..."
"원하는 게 있으면 주저말고 말을 하게."
"죽은 제 부하들이 국립현충원(國立顯忠院)에 안장될 수 있도록 대대장님께서 힘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이 소위. 자네 부하들은 모두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야. 당연한 소리를 하는구만."
지난 정묘년(丁卯年 1867년)에 세워진 국립현충원은 병인년(丙寅年 1866년)에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인해 죽은 평양연대 소속의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에서
연원(淵源)한다. 국립묘지인 셈이다. 섭정공 김영훈의 명으로 건립된 국립현충원은
청파(지금의 용산)나루를 건너면 지척인 펀던(지금의 동작동)에 위치해 있는데,
병인양요와 죠슈번 정벌 등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유해(遺骸)가
묻혀 있는 곳이다. 조형남은 이수현의 청이라는 것이 오로지 죽은 부하들에 대한
것임을 알고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자네 부하들의 유족들도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조정에서
정한 일이고 여태 그래왔던 일이야. 자네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조형남은 중대 전체의 일 계급 특진이나 훈장의 상신 같은 문제는 구태여 얘기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수현은 자신이 죽은 부하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런 것이나마 신경
써 주고 싶었다. 조형남은 이수현의 마음씀씀이가 한없이 좋아 보였다. 엄청난
전과를 거둔 장본인이 죽은 부하들을 위한 마음씀씀이를 보이니 더욱 장하게
생각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정경진이 나서서 말했다.
"대대장님. 이번 전투로 부상을 당한 부하들이, 병원선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울러 포로로 잡힌 적 부상병들도 치료해
주셨으면 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이미 여단본부에 병원선의 파견을 요청하는 전문을 보냈다네.
그리고 의무대대의 파견도 요청했으니 그 문제도 어려움이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대대장님."
"아무튼 모두 고생했어. 내 이번 전투에 대한 모든 것을 여단장님께 상세히 보고하여
자네들의 무훈을 기리도록 할 것이야. 아울러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네. 자네들은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대단한 전공을 세운 거야. 암! 그렇고
말고."
조형남과 참모들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기쁜 표정이었다. 겨우 1개 중대가 3개
연대를 맞아 이만큼의 전과를 거둔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이만한 전과라면
연대장이나 여단장이 직접 와서 치하를 할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구주 정벌군
사령관이 직접 올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3중대의 전 장병들도 마땅히
기뻐하여야 했지만, 그들은 엄청난 전과와 여러 가지 포상보다도 죽은 전우들이 더욱
마음에 쓰였다. 누구도 기뻐하는 표정을 짓지 않고 있는 게 그런 이유에서였다.
제국(帝國)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