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빵! 빠방! 빠바방! 빠바바방!]
[투타타타타타탕! 투타타타타탕! 투타타탕!]
[펑! 퍼벙! 퍼버벙! 퍼버벙!]
"침착하게 응사해라! 적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쏴라!"
외곽 방어진지 밖의 불모지 지대에 대규모 적이 관측되고, 연이어서 박격포와 한-1
고속 유탄발사기 등을 이용한 화기소대의 지원사격이 시작되면서 1소대 병사들도
몰려드는 적을 향해 불벼락을 내뿜기 시작했다. 1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진지를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었다. 1소대 병사들도 신원배의 지휘에 차분히
대응했다. 3소대가 1개 연대 규모의 적을 맞아 분전하고 있을 때, 1소대 병사들은
초조하게 전방을 주시하고 있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3소대를
지원하러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 적이 공격을 해 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럴 수 없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3소대를 공격한 적이나 지금 자신들의 앞으로 몰려드는
적이나 같은 놈들일 것이 분명했다. 3소대가 얼마나 당했는지 모르지만 그들의
복수는 이제 자신들이 맡아서 해줄 차례였다.
"니기미, 개 같은 놈들이 허벌나게 몰려들고 있고만잉.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런 개 같은 놈들이 있나."
[뻥! 뻐벙! 뻐버벙!]
[투타타타탕! 투타타타탕!]
[펑! 퍼벙! 퍼버벙! 퍼버버벙!]
1소대 병사들은 한 발 한 발 정확하게 사격을 하면서, 적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손이 근질근질 했었는데 잘됐다는 생각이었다. 오늘 니들이
죽는지 우리가 죽는지 끝장을 보자는 결의였다. 어느새 적은 철조망 지대 밖 300미터
지점까지 진출했다. 신원배를 도와 병사들을 독려하고 지휘하던 1소대 선임부사관
김용길 중사의 표정이 야릇하게 변해갔다.
"소대장님. 저기를 보십쇼."
"뭐 말입니까? 선임부사관님."
"적의 전위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신원배는 김용길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다. 김용길의 말대로 적의 전위가
급속도로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적의 전위부대는 한 눈에 보기에도 제대로 된
전투력이 없는 급조된 부대로 보였다. 칠흙 같은 어둠을 밝히는 조명탄 덕분에 적의
모습이 더욱 잘 보였다. 확실히 전위부대와 후위부대는 차이가 많이 났다. 병사
대부분이 검은색 군복과 소총을 들고 있는 후위부대와는 달리, 전위부대는 복장부터
통일되지 않았고 소총이 없는 병사들도 보였다. 역시나 전투력도, 전투를 하고자
하는 의지도 빈약해 보였다. 더구나 아군의 포격과 사격이 비 오듯 쏟아지자
급격하게 전열이 흐트러지는 게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저, 저런 미친 짓을..."
"저놈들이 지금 제 정신입니까?"
"저놈들도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전위가 무너지고 이탈하려는 시점에서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그렇지..."
적은 전위부대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하자 후위부대의 돌격을 명령했다. 전위부대가
우왕좌왕하면서 전열이 무너지는 것을 본 적장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것도 썩 좋은 수는 아니었다. 앞에서 우왕좌왕하던 전위부대가 뒤에서 밀고
들어오는 후위부대의 기세에 눌려 오도가도 못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앞에서는
아군의 포화가 집중적으로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고, 뒤에서는 후위부대가 압박을 해
오고 있었다. 덕분에 후위부대의 돌격까지 원활치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신원배는 누군지 모르는 적장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선임부사관님은 우리 소대가 보유하고 있는 지향식지뢰를 책임지고 운용해 주십시오.
적이 좀 더 접근하면 치명타를 날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저는 소대원들을 지휘하면서 중대 지휘소에 상황을 전달하고 지원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신원배가 따로 명령할 것 없이 1소대 병사들은 침착하게 적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그들도 눈이 있어서 다 보고 있었다. 적의 전위부대가 급격히 무너지더니 후위부대가
그 뒤로 밀려들고 있었다. 당연히 충돌이 일어나면서 적진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빵! 빠방! 빠바방! 빠바바방! 빵!]
[투타타타탕! 투타타타타탕! 투타타타탕!]
[퍼벙! 펑! 퍼버벙! 펑! 펑!]
"짜슥들, 죽으려면 먼 짓을 못헐 것여."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놈들 완전히 미친 것 아닙니까?"
1소대 병사들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북돋아 주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았다. 엄청난 포화 속에서 속절없이 쓰러지는 적들에게 그들은
아무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 오로지 적을 무찌르고 중대를 지킨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다시 쓔우우웅! 하는 요란한 비행음이 들렸다. 1소대 병사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침착하게 사격을 계속했다. 어차피 저 소리는 아군이 적들을 향해 발사한 박격포탄
소리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곧 바뀌고 말았다.
[쿠콰쾅! 콰콰콰쾅! 쾅!]
"옘병, 요건 또 머시다냐?"
"적의 포격 같습니다."
1소대 병사들은 적의 포화가 자신들이 담당하는 외곽 방어진지 쪽으로 떨어지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이 모습을 본 신원배가 다시 소리쳤다.
"놀라지 마라! 적의 포격은 우리 진지까지 미치지 못한다. 겁먹지 말란 말이다!"
신원배의 말에 병사들이 눈에 띄게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소대장의 말처럼 적의
포격은 자신들의 진지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는 걸 깨닫고 있었다. 더구나 야간에
제대로 된 포격을 적들이 할 리 없다는 생각까지 들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