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정경진은 초조한 심정으로 중대 지휘소에서 3소대가 있는 남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3소대가 있는 남쪽에서는 콩 볶는 듯한 총성과 폭음이 쉴새없이 터지고 있었고,
아련한 비명소리가 지휘소까지 들릴 정도였다. 피아 간에 얼마나 많은 젊은 병사들이
죽어나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 숨이 턱턱 막히고
있었다.
"중대장님. 3소대에서 온 전령의 보곱니다."
"그래요? 뭐랍니까?"
정경진은 지휘소로 뛰어들어온 양수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것은 옆에 있던
김기홍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양수연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전령의 보고로는 3소대 4분대가 담당하는 구역으로 적의 대규모 돌격이 있다고
합니다."
"3소대 4분대요?"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3소대 4분대가 담당하는 구역은 진지의 구축이 가장 더딘
곳입니다. 적도 아군의 취약지점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적 병력은 얼마나 된다고 합니까?"
"거의 1개 연대 규모랍니다."
"연대 규모요?"
"그렇습니다. 중대장님."
정경진과 김기홍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개 연대 규모라면 해병대 편제로는
1500명이 넘는 병력이었다. 왜국 구주 제번(諸藩)의 육군 편제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어도, 최소한 1500에서 2000명은 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겨우 40여 명이
방어하는 구역에 2천명에 가까운 적이 몰려들다니. 엄청난 병력이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다고 합니까?"
"3소대 4분대 구역의 철조망 지대에 적이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이 철조망 지대를 돌파했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
"음..."
양수연은 전령이 보고한 대로 정경진에게 3소대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적의
포병대에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며, 적이 철조망 지대를 통과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보고했다. 정경진은 김기홍을 바라봤다.
"김 중위. 적 포병대의 위치는 파악했나?"
"그것이... 적 포병대의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해서 제압사격을 하고는 있지만, 적의
포격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적 포병은 아직 건제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죄송합니다. 중대장님. 아무래도 적 포병대의 위치가 아군 박격포 사격의 사각(死角)
지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야간이라 정확한 관측이 힘들다는 점도 적 포병에 대한
제압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음..."
정경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적 포병대만 제압하면 3소대가 능히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중대장님. 3소대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정 급하면 다른 소대를 빼서라도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이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동원했다면 이것은 주공이 틀림없습니다. 적의 주공이라면 일단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음..."
"저도 행보관님의 뜻과 같습니다. 중대장님."
김기홍까지 나서서 다른 소대를 빼내 3소대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경진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의 말대로 적의 주공이 3소대에 집중되어 있다면 중대
전술기지를 방어하고 적을 분쇄하는 것은 하등 어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3소대
방면으로 몰려든 적이 주공이 아니라 조공이라면? 여기까지 생각하자 쉽게 다른
소대의 차출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니야. 아직 적은 주공을 보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대에서 보낸 전문대로
적이 연대급 규모라고 해도, 우리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왜놈들은 항상 양동작전을 선호한다. 포위섬멸전에 대한 개념을 익히 알만도 한데,
왜놈들은 양동작전을 잘 구사한다. 그것은 대부대일수록 더욱 그렇다. 보통 조공이
1이면 주공은 3이나 4정도로 병력을 나눠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게 일반적인 왜놈들의
전술이다. 우리는 적이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것에 대한 대비도 해야한다. 그리고
조공부대일수록 무식할 정도로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멸을
각오하고 돌격하는 게 저들의 특징이란 말이다.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고 판단된다.
더구나 3소대의 전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적이 1개 연대 규모가 넘는다고 하여도
능히 막아낼 수 있어."
중대장다운 판단이었다. 대국의 전체를 봐야지 일부만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해병대 1개 소대의 전력에 대한 평가도 맞았다. 겨우 1개 소대에
불과할지라도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막강한 해병대였다. 그러나 3소대가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3소대를 공격하는 적이 그의 말처럼 조공부대라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정경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명령했다.
"행보관님. 1소대와 2소대에게 3소대 방면으로 지원사격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세요.
아울러 김 중위는 화기소대의 모든 자산을 총동원하여 3소대 방면으로 돌격해오는
적에게 불벼락을 퍼붓도록 해!"
"적의 포병은 어떻게 합니까?"
"적의 포병은 박격포를 지속적으로 발사하여 제압을 노리도록 하고, 3소대에 대한
지원은 한-1 고속 유탄발사기를 총동원하도록!"
"알겠습니다. 중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