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00화 (300/318)

7.

송관석의 판단은 맞았다. 적이 3소대가 담당하는 외곽 방어진지의 정면으로 물밀

듯이 몰려들자 화기소대 박격포반에서 발사한 조명탄이 연거푸 하늘로 치솟았다.

[펑! 퍼벙! 퍼버벙! 펑! 펑!]

어두컴컴하던 주위가 삽시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적은 죽을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고,

북과 피리 등을 불며 돌격해오고 있었다. 몰려오는 적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적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적이 철조망

지대의 100m 지점에 접근하는 순간, 다시 박격포의 발사음이 들렸다.

[펑! 펑! 퍼벙! 펑! 펑!]

"사격개시!"

[빠바방! 빵! 빵! 빠방! 빠바방! 빵! 빵! 빵!]

[투타타타타타탕! 투타타타탕! 투타타타타타탕!]

[펑! 퍼벙! 펑! 펑!]

외곽 방어진지에 투입된 3소대의 전 장병들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화기를 동원하여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한식보총과 한-4198식 기관총, 유탄발사기가 불을 뿜었다.

더불어서 3소대 담당 진지의 제일 외곽에 거치되어 있는 벼락 기관총도 드르르르륵!

하는 기계음을 토하며 총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화기소대 박격포반의

지원포격이 추가되었고, 한(韓)-1 고속 유탄발사기도 40mm 유탄을 토해냈다. 벼락

기관총과 박격포, 한-1 고속 유탄발사기 등은 이미 적의 예상 침투로를 설정하고

화집점을 잡아놓았기에 즉시 발사할 수 있었다. 온갖 굉음을 토하며 총탄이 난무했고,

짜릿한 섬광이 줄기줄기 앞으로 뻗어나갔다. 진지 주변은 온통 매캐한 화약 냄새와

희뿌연 연기로 뒤덮였다.

"으아아악-!"

"ちっしょ!"

"朝鮮軍の 死ね!"

"地獄に落ちろ!"

단발마의 비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고,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던

적들이 무수히 쓰러졌다. 박격포탄이 한 발 한 발 터질 때마다 인근에 밀집해서

몰려오던 적병 서넛이 비산(飛散)하듯 하늘로 몸뚱이를 솟구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적병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 지점에 방열해 놓은 지는 몰라도 조선군의 일제

사격이 시작된 순간, 75mm 정도로 추정되는 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쓔우우웅! 쓔우우우웅!]

[쿠콰콰콰쾅! 콰아아쾅!]

날카로운 비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우렁찬 굉음이 울리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적의 포격술로 야간에 제대로 된 포격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적이 발사한 포탄은 3소대 담당 진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포병까지

동반된 대규모 공격은 3소대 장병들의 몸을 움츠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병만의

돌격과, 포병을 동반한 보병의 돌격은 얘기가 달라도 한참 달랐다. 한참 신나게 학살(

?)을 즐기던 3소대 장병들은 '앗! 뜨거워라!' 하는 심정으로 진지에 몸을 파묻었다.

괜히 눈먼 포탄에 개죽음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적이 공격해오기 전에 똥이

마렵다던 배장춘도 항문에 잔뜩 힘을 준 채로 괄약근을 최대로 오므리고 한-4198식

기관총을 사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터진 포탄의 굉음에 깜짝 놀라

진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괄약근을 잔뜩 오므린 힘이 순간적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장(腸)에 꽉 차있던 설사가 괄약근을 비집고

새어나오고 말았다.

[빠방! 빠바방! 빵! 빠방!]

[투타타타타타탕! 투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쿠쾅! 콰콰아앙!]

"고개를 들어라! 고개를 들고 제대로 조준해서 쏘란 말야!"

"왜 그러십니까? 배 상병님. 맞았습니까?

사방에서 총탄이 난무하고 폭풍 같은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소대장인지 분대장인지 모를 사람이 악을 쓰고, 부사수 이영복

일병이 자신의 한-4198식 기관총을 대신 붙잡으며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엉덩이 근처가 뜨뜻해지면서, 질펀한 느낌이 엉덩이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머리까지

차고 올라오는 것만 신경 쓰였다. 배장춘은 울상을 한 채로 가만히 주저앉자 있었다.

싼 것이다. 확실히 싼 것이다. 그의 표정은 완전히 똥 밟은, 아니 똥 싼 표정이었다.

저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런... 제기랄! 아! 미치겠네. 씨발..."

죽고만 싶었다. 분대원들이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놀릴 것인가? 더구나

앞으로 후임병들 앞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닐 것인가? 이런 생각이 배장춘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녔다.

"배장춘! 배장춘 어딨나!"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어도 배장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배장춘이 대답을 하지 않자, 누군가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뛰어왔다. 분대장

송관석 하사였다. 송관석은 배장춘이 진지 바닥의 진창에 털썩 주저앉아서 머리를

감싸안은 채로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그의 몸을 붙잡았다.

"야! 배장춘! 너 왜 그래? 어디 맞았나?"

"아, 아닙니다. 분대장님."

"근데 왜 그래? 새꺄! 너 격발기 어딨어? 엉?"

"네?"

"격발기 말야! 지향식지뢰 격발기!"

그때까지도 바지에 설사를 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배장춘은 거듭된

송관석의 추궁에 정신이 들었다. 그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면서 한 쪽을

가리켰다. 3소대가 철조망 바깥에 설치한 지향식지뢰는 모두 30발이었다. 3중대가

전술기지 외곽에 설치한 지향식지뢰가 총 60발이었는데, 3소대가 담당하던 지역의

외곽 방어진지의 구축이 가장 늦었기에 특별히 많이 설치한 상태였다. 1분대에게

지급된 지향식지뢰의 격발기는 배장춘이 관리하고 있었는데, 적이 맹렬히 돌격하여

거의 철조망 지대에 근접하자 터트릴 생각을 한 것이다. 송관석과 배장춘은 급히

격발기를 붙잡았다. 1분대 담당의 지향식지뢰는 모두 8발이었고 격발기는 총 4개였다.

격발기 하나를 누를 때마다 지향식지뢰 2발이 터지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왼쪽에 있는 격발기와 오른쪽에 있는 격발기를 나눠 쥐었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터트리고 나서 중앙에 있는 지향식지뢰를 터트릴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양손이 동시에 두 번씩 부딪혔다.

[뻐버벙-! 뻐벙-!]

[뻐벙-! 뻐버벙-!]

연달아서 8발의 지향식지뢰가 터졌다. 각각 500발이 넘는 작은 쇠구슬이 질풍처럼

쏟아지는 광경은 엄청났다. 천지가 떠나갈 듯 우렁찬 굉음과 함께 부챗살 모양으로

퍼지기 시작한 지향식지뢰는 철조망 지대로 접근하던 적병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거의 2미터 이상 날아가 처박히는 적병이 부기지수였다. 살아남은

적병도 팔과 다리,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신음하기 일쑤였다. 순식간에

일대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송관석이 대충 훑어봐도 적어도 수백 명의 적병이

죽거나 상한 것으로 보였다. 두 사람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교관이 시범으로 터트린 것만 보고, 실전에서 사용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상 이상이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생지옥이었고 아비규환이었다. 끔찍했다.

꿈에 나타날까 두려운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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