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93화 (293/318)

4.

오경석이 서태후를 만나고 있을 때 친위천군 2연대장 신정희는 이홍장을 만나고

있었다. 이홍장의 회군은 양자강변의 안경(安慶)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령부를 두고

있었다. 원래는 남경의 외곽에 주둔하고 있다가 차츰차츰 강남을 안정화시키면서

사령부도 따라서 남하한 상태였다.

"안녕하십니까. 각하."

"오! 어서 오시오. 신 대령."

두 사람은 통역의 도움을 받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회군과 친위천군 2연대가

비슷한 시기에 남경에 주둔하면서부터 알게된 두 사람은 상당히 친밀한 사이였다.

"이렇게 불쑥 어쩐 일이오? 연락도 없이 찾아오고."

"제가 못 올 데를 왔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실은 각하께 드릴 우리 조정의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선물요?"

이홍장은 선물을 가져왔다는 신정희의 말에 구미가 당겼다. 남경에 내려오면서

알게된 젊은 조선군 장교는 자신을 만나러 올 때마다 선물을 지참했는데, 그

선물이라는 것이 항상 자신의 예측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홍장은 오늘은 또 무슨

선물을 가져왔나?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더구나 조선 조정에서 보낸 선물이라고

하였으니 결코 가벼운 선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각하. 전에 제가 듣기로는 회군이 사용할 총탄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음... 불행히도 그렇소. 폭도들에게 모든 군수공장이 파괴되고 난 후에 우리 군은

심각한 보급품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소. 헌데 총탄은 왜?"

"실은 우리 조정에서 각하를 위해 총탄을 보내왔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그렇습니다. 비록 수량은 얼마 안 되지만 우리 조정의 성의로 알고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각하."

"이런 고마울 데가..."

이홍장에게 있어서 신정희의 의미는 약간 색달랐다. 신정희의 부친이 조선의 군권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알아두면 결코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만남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천진기기국(天津機器局)을 비롯한 양무운동의

결과물이 모조리 사라진 지금은 어떻게 하면 신정희의 배경을 이용하여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만남이었다. 그러했기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이가 바로 신정희였다. 어떻게 보면 하찮은 조선군 장교 따위를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새삼스레 처량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여태껏 이홍장은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이렇게 뜻밖의 선물을 가져오는 상대를

어떻게 소홀히 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홍장이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이자

신정희도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렸다. 신정희가 김종완의 명령과 총탄을 받은 때는

며칠 전이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홍장에게 선을 대놓으라는 것과 약소한(?

) 선물로 그의 환심을 사라는 명령은 일선 연대장인 신정희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임무였다. 그저 조정에서 무슨 일을 꾸미는 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급하게 보내느라 많은 수량은 준비를 못했다고 합니다. 일차로 양식보총(攘式步銃)

의 총탄 30만 발을 보내왔고 앞으로 한 두 번 더 지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각하."

"오! 신 대령. 정말 고맙소. 정말 고마워."

30만 발이라면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하지만 앞으로 한 두 차례 더 가져온다고

했으니 모두 합하면 물경 100만 발에 가까운 양이었다. 100만 발의 총탄이라면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일 정도는 되었다.

"신 대령이 이런 선물을 하는데 나는 신 대령한테 아무런 도움도 못되니 미안해서

어쩐다..."

"무슨 말씀입니까. 각하. 각하께서 하루속히 임무를 완수하셔야 우리 조선군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각하께서 하시는 일이 곧 우리 조선군의

귀향을 재촉하는 일인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더구나 이게 제가 각하께

드리는 선물입니까. 우리 조정에서 각하께 드리는 선물이지..."

"그런가..."

이홍장은 신정희의 말에 동의를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정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해도 일단 선물은 받고 볼 일이었다. 나중에 무슨

어려운 청탁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참! 이번에 경덕진에서 승전하셨다 들었습니다. 감축 드립니다. 각하."

"고맙소, 신 대령. 사실 보급만 원활하다면 저들 폭도들을 진압하고 무찌르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닐텐데 그 놈의 보급이 문제에요. 보급이! 군수공장만 남아 있어도 이런

걱정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조정에서 어련히 알아서 하겠습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될 것입니다."

"잘돼야지요. 그래야 귀국 병사들도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우리 조선군이 고향에 빨리 돌아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각하의 손에

달려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하하핫! 그게 그렇게 되나..."

"암요. 그렇고 말고요."

신정희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이홍장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반란과

소요사태를 진정시켜야 조선군이 돌아간다는 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생각까지 겹치자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신화(神話)를 만드는 사람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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