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90화 (290/318)

1.

김종완의 일과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오전에는 청국 거주 3국 거류민 보호를

위한 파병 조선군 사령부에서 각지에 파견된 제 1왕립근위함대와 친위천군에서

올라온 보고를 받았고, 오후에는 청국에 주재하는 외국 공관원들이나 외국 상인들의

예방을 받고, 그들의 어려움을 경청하는 일이 일과의 대부분이었다. 중국의 다른

지방은 날마다 청국군과 반란군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지만 조선군이 주둔하는

지역에는 치안이 극도로 안정되어 있었기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과였다. 한 달 전,

한가위를 즈음해서 조선에 다녀온 김종완은 지상군 사령관 안용복 친위천군

사단장과 함께 천진의 서양인 거류지역을 시찰하고 있었다. 가끔씩 이렇게 주둔지를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또한 자신을 비롯하여 조선군의 존재를 확실히 서양

제국(諸國)의 거류민들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었기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부러

라도 시간을 내는 편이었다. 김종완과 안용복은 이런저런 주제로 얘기를 나누며

천진의 신 시가지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일부 참모들과 경호병력까지 대동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신 시가지에 거주하는 서양인들의 눈에 띄었고, 그들을 알아본 여러

사람들이 인사를 하며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김종완은 인사를 하는 서양인들에게

가벼운 목례로써 받아주며 안용복에게 말했다.

"요즘 치안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것 같습니다. 안 장군."

"맞습니다. 사령관님. 우리 조선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곳 천진의 치안이

몰라볼 정도로 안정되었습니다. 저들도 우리 조선군의 치안유지 활동에 대해 아주

우호적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다만, 왜국에서의 일이 있으니 전 부대에 내린 일급 경계령의

유지에 각별한 신경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용복은 대답을 하면서도 한 줄기 아쉬운 마음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조선군 최고 정예 부대 중 하나인 친위천군이 머나먼 청국까지 와서 기껏 치안유지

활동이나 하고 있는 것이 아쉬웠고, 해병대만 실전경험을 쌓는 것도 아쉬웠다.

더구나 날마다 해병대의 승전보가 답지하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은근히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임무를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김종완은 그의 이러한 생각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안 장군의 부대도 곧 활약할 수 있을 겝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건성으로 대답하는 안용복이었지만 한결 기분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조선을

다녀온 김종완이 김영훈의 의중을 듣고 왔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서양인들의 인사하는 모습도

들어왔다. 모두들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를 하는 게 보기에도 좋았다. 안용복의 웃는

얼굴을 보는 김종완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참! 남경과 상해에 주둔 중인 부대에서 올라온 보고가 있다고 했지요?"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2연대장 신정희(申正熙,) 대령의 보고입니다."

"신정희 대령요?"

"그렇습니다."

"가만 있자... 신정희 대령이라면 신헌 대감의 영식(令息)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령관님. 신헌 국방대신 대감의 자제가 바로 신정희 대령입니다."

김종완은 지상군 사령관 안용복의 대답에 흥미가 생겼다. 신정희는 영관급 장교에

불과했지만 그렇게 소홀히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국방대신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지만, 개인의 역량을 놓고 볼 때도 결코 천군 출신 장교들보다

떨어지지 않는 장교였다. 더구나 조선군에서는 개혁 성향이 가장 강한 인물이었고,

차세대 조선 육군의 리더격인 인물이었다. 자신이 비록 해군사령관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무슨 보고입니까?"

"실은 사령관님께서 조선에 가셨을 때, 강남에 출병한 이홍장의 부대가 천지회(

天地會)의 후신인 삼합회(三合會)의 무리들과 대규모 충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난 8월 9일, 이홍장이 이끄는 회군(淮軍)의 일부 부대와

삼합회의 무리가 강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이라는 곳에서 충돌하였다고 합니다."

"규모는 어떻다고 합니까?"

"회군이 약 1만 5천 정도였고 삼합회의 무리는 두 배가 넘는 4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단하군요... 그래서요? 누가 이겼다고 하던가요."

"우수한 화기로 무장한 이홍장의 회군이 승리했다고 합니다."

"음... 당연한 일이군요."

"맞습니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훈련과 우수한 화기로 무장한 회군이 오합지졸

삼합회 무리에게 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런데, 안 장군. 아까 어디라고 했지요? 회군과 삼합회 무리가 충돌한 곳이?"

"경덕진입니다. 사령관님. 강서성과 안휘성(安徽省), 절강성(浙江省)이 만나는 곳이

바로 경덕진이지요."

"음..."

김종완은 생각에 잠겼다. 이홍장의 회군이 강서성의 경덕진에 진출했다는 것은

강서성과 절강성뿐만 아니라 남서쪽의 복건성(福建省)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렇게 되면 강남은 광동성(廣東省)과 호남성(湖南省)

만 아우르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김종완은 이제 다시 무언가를 해야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홍장에게 뭔가를 해야할 것 같군.'

지난 5월 초, 조선군이 청국 각지에 주둔하고부터 여러 가지 상황이 변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서양인-주로 영·법·미 3국인- 거류지역의 치안이 확실히 안정된

것을 꼽을 수 있었다. 막강한 조선군이 주둔하고부터 달라진 점이다. 서양인

거류지역의 치안이 안정되자 힘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청국이었다. 따로 서양인을

보호하기 위한 힘을 쓸 필요가 없어진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이홍장의 회군이

강남으로 출병할 수 있었고, 각지의 반란과 소요사태도 어느 정도는 진정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강남에 국한된 문제였다. 이홍장의 회군과 같은

신식 군대가 없던 다른 지역에서는 오히려 소요사태가 더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신식 군대가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청국군의 현실이었다.

이홍장이 강남을 확실히 장악할 것을 대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김종완이

하고 있는데 안용복이 물었다.

"헌데 사령관님. 오경석 영감과 대정원의 박승인 해외 1국장을 천진에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하하핫! 두 분이 오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보채지 마세요."

김종완이 이렇게 말하자 더욱 궁금해지는 안용복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만 하고

있었지 확실한 것을 알지 못했던 그는 더욱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오경석과

박승인이 오늘 오후에 도착한다고 했으니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되리라는 생각에

궁금증을 지그시 눌렀다. 안용복의 표정을 보며 김종완이 덧붙여 말했다. 일종의

힌트인 셈이다.

"합하께옵서는 이제 슬슬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십니다. 그 문제와 또

다른 일을 다 같이 의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

말끝을 흐리기는 했지만 안용복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표정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활약할 때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가슴은 저절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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