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88화 (288/318)

8.

[뻥! 뻐벙! 뻥! 뻥! 뻥!]

을지문덕함과 황희함, 강희맹함의 주포는 쉬지 않고 포탄을 퍼붓고 있었다. 건무함과

박연함에서는 수색대대 병사들이 접수할 목표인 해안포대에 대한 사격을 잠시 멈추고

수색대대 병사들을 엄호하고 있는데 반해, 신형 함정 세 척은 다른 사격목표를

부여받았기에 쉬지 않고 포탄을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김응수는 쌍안경을 들어

을지문덕함의 사격목표인 학환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여명을 뚫고

학환성이 자리잡고 있는 일대만 섬광과 함께 화광이 충천하는 모습은, 소름끼치게

멋진 광경이었다. 김응수는 쌍안경으로 학환성 일대를 관측하면서 흥에 겨운지

혼잣말로 '그래! 그렇지!'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어재연이 물었다.

"함장. 을지문덕함에서 학환성으로 퍼붓기로 되어 있는 총 포탄 수가 얼마나 됩니까?"

"일단 200여 발의 철갑고폭탄(Armour Piercing High Explosive)과 100여 발의 고폭탄(

High Explosive Shell)을 발사할 예정입니다. 장군님."

"음..."

김응수의 대답에 어재연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알기로 왜국의 대부분의

성들은 석성(石城)이었다. 그것은 학환성도 다르지 않았다. 성의 모습이 학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학환성은 평지보다 약 100여 미터 높은 산지에 지어진

성이다. 산성(山城)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했고, 평성(平城)이라고 해도 어정쩡한

성이 학환성이었다. 돌로 쌓은 성곽이기 때문에 굉장히 단단하고 방어에 이점이 있는

학환성이었지만, 전 세계에서 조선군만이 보유한 철갑고폭탄이라면 무너뜨리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인마살상용의 고폭탄까지 같이

사격한다면 성에 남아있던 적 병력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돌로 만든 석성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아랫부분의 돌이 빠지면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니지. 확환성도 그럴 게야."

"이를 말입니까. 우리가 보유한 철갑고폭탄은 적의 성곽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일순간에 성곽이 무너지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장군님."

"함장 말이 맞아요. 석성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그 한계가 있거든. 바로

아랫부분의 돌이 빠지면 바로 무너진다는 것이지. 그런데다가 철갑고폭탄이 성곽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폭발하는 힘에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두 사람의 말이 맞았다. 돌로 쌓은 석성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돌로

쌓았기에 적의 화공에도 비교적 안전했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잘 허물어지지

않았으며, 적들의 공격을 지연시키는데도 효과적이었다. 더구나 거의 수직으로

쌓았기에 적이 쉽게 침입하지 못했다. 수직으로 쌓은 성곽을 보는 순간, 마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로 지레 겁을 먹고 사기를 떨어트리는 효과까지 있었다.

그러나 단점도 있었다. 일단 돌로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공력이 들어야 하므로

상당한 인력과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성을 쌓을 수가 있다. 그리고 아랫부분의 돌이

빠지거나 허술하면 단숨에 온 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게 그것이다. 지금

을지문덕함의 주포 사격은 전적으로 학환성의 성곽과 건물을 겨냥한 사격이었다.

물론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고, 거리도 상당히 있었기에 정확한 사격을 바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어재연은 거듭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일도 아니지..."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머리에 순간적으로 다른 생각이 자리를 잡았다. 학환성에 대한

을지문덕함의 사격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데 다른 함정들은? 여기까지 생각한

어재연은 김응수를 바라보았다.

"참, 황희함과 강희맹함의 사격목표는 어떻게 됐습니까?"

"황희함과 강희맹함의 사격목표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황희함과 강희맹함의 사격도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할텐데 말이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군님. 지금 이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황희함은

사쓰마번의 육군조련소에 대한 사격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희맹함의

사격목표는 바로 저 곳입니다."

뒤쪽에 있는 사쓰마번 육군조련소는 보이지 않았지만 정면에 자리한 강희맹함의

사격목표는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어재연은 김응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면에 보이는 한 지점에서 연신 화염이 충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바로

사쓰마번의 집성관(集成館)이다. 집성관은 전대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명에 의해

건설된 일종의 공업단지를 말하는데, 이곳에는 반사로(反射爐)와 용광로, 찬개대(

鑽開臺 대포의 포신에 구멍을 뚫는 공장) 등 군수 관련 설비뿐만 아니라 유리공장,

단야장(鍛冶場 일종의 대장간), 증기금물세공장(蒸氣金物細工場), 기계공장 등이

들어서 있었다. 특히 1865년에 완공된 기계공장은 왜국 최초, 최고의 기계공장이었다.

신형 함정 세 척의 사격목표가 학환성과 육군조련소, 집성관으로 정해진 이유는

간단했다. 번주가 머무는 학환성을 사격하여 우두머리를 제거하여 적 지휘부를

붕괴시키고, 육군조련소를 사격하여 적 육군 병력을 조기에 무력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집성관을 사격하여 적의 전쟁의지와 전쟁 수행능력을 떨어뜨리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어재연은 김응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손목에 찬

시계로 눈을 돌렸다. 상륙 첨병이 출발한지 벌써 10분 이상이 흘렀기에 슬슬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슬슬 신호가 올 때가 됐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어재연의 조바심을 눈치 챈 김응수가 간단히 응수하고 정면을 응시했다. 무적의 해병

수색대대가 아무런 준비도 안된 상대를 제압하지 못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더불어서 강력한 함대의 상륙 지원사격까지 받았다면 그것은 두 말하면

입 아프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재연의 조바심을 아는지 전방에서

신호탄이 올라오는 게 보였다. 개인용 수타식(手打式) 조명탄이다. 먼저 하나의

조명탄이 앵도 방면에서 올라오더니 차례로 녹아도 해안포대에서 세 개의 조명탄이

더 올라오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장군님. 신호탄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오! 이제야 올라오는구만."

수타식 조명탄은 현대 한국 육군에서 사용하는 신호탄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장비이다. 동그란 막대 모양의 조명탄 밑 부분에 충격을 주면, 그 충격으로 내장된

조명탄이 하늘로 발사되는 방식이다. 대대급 부대 이상에만 보급된 수수께끼

암호해독기가 없는 중대급 부대에게 있어서 수타식 조명탄은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더구나 보병용 무전기까지 없는 상태였기에 수타식 조명탄이 통신수단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재연은 기쁜 표정으로 신호탄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자신의 참모들에게로 돌렸다.

"모두들 준비됐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둔 상태입니다. 여단장님."

"음, 좋아. 함장."

"예. 장군님."

"수송선단 본진에 무전을 보내시오. 이제 본진이 상륙할 때가 다 된 것 같소."

"알겠습니다. 장군님."

어재연의 명령에 김응수가 통신사관을 바라보았고, 통신사관은 즉시 무전기를

개방하여 수송선단 본진에 연락했다. 이제 본격적인 상륙이었다.

"장군님. 부디 적을 섬멸하고 개선하시기 바랍니다."

"걱정 마시오. 함장. 반드시 모든 적을 섬멸하여 승전하도록 하겠소."

"그럼, 건승하십시오, 장군님. 충성!"

"충성!"

어재연과 김응수는 굳은 악수를 나눴다. 바야흐로 조선 최초의 대대적인 해외 정벌이

벌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도 을지문덕함의 150mm 주포는 쉼 없이 포탄을

퍼붓고 있었다.

[뻥! 뻐벙! 뻥! 뻐버벙! 뻥!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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