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직은 동트기 전이라 어슴푸레 어둠이 깔린 밤바다 위를 몇 척의 커다란 배들이
미끄러지듯 항주하고 있었다. 명림답부급 경순양함의 2번함인 을지문덕함을 기함으로
하는 구주 정벌군 3전대 함정들이었다. 3전대는 대마도 인근에서 다른 전대와 헤어진
후에 전 속력으로 녹아도 인근까지 와야했다. 다른 전대는 이동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3전대는 제일 멀리 떨어져 있는 녹아도까지
이동해야만 했기에 기관을 최대로 돌려야 했다. 거기에 행여나 다른 선박들에게
관측될 것을 염려하여 기존의 해로를 삥 돌아서 와야만 했었다. 구주 정벌전의
전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상륙작전의 시간을 맞추는 일인데, 다행히 제 때에
녹아도 인근 해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작전 개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함장. 공격 시간이 다 된 것 아니오?"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무선함과 정운함에게 공격 명령을 내릴
생각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함대가 녹아도만(鹿兒島灣 가고시마만)에 진입해야
합니다. 장군님."
"그렇지요."
"통신사관! 최무선함과 정운함에게 공격 명령을 하달하도록!"
"알겠습니다."
을지문덕함의 함교에서 함장 김응수 중령은 구주 정벌군 녹아도 상륙부대 사령관이자
해병 3여단장인 어재연 소장의 말을 받으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이미 장보고급
잠수함의 3번함 최무선함과 7번함 정운함은 녹아도 앞 바다 밑에 매복하고 있었다.
두 잠수함이 녹아도 앞 바다에 정박 중인 사쓰마번의 해군 함정들을 침몰시킨 연후에
전투함들이 녹아도의 해안포대와 앵도의 해안포대를 공격할 것이다. 그리고
사쓰마번에서 운용하는 모든 해안포대가 침묵하고 나면 함포의 지원을 받는
소송선단이 해안에 접안하여 해병 여단 장병들과 외인부대 장병들을 상륙시킬 것이다.
불쌍한 사쓰마번의 왜군들은 누가 공격하는지도 모른 채 속절없이 죽어갈 것이
틀림없었다. 하기야 전쟁 징후라도 있었어야 대비를 해도 할 것이 아닌가. 전쟁
징후도 없는데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얻어맞는
것과 진배없었다. 통신사관에게 명령을 내린 김응수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함대. 전속항진! 목표는 녹아도만이다."
"함대. 전속항진!"
잠수함들에게 공격 명령을 하달한 통신사관은 다시 김응수의 명령을 각 함정에
하달했다. 을지문덕함과 황희함, 강희맹함, 건무함, 박연함 등의 전투함이 먼저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그 뒤에 수송선단 1진이 따라왔다. 수송선단 1진은
소형이면서도 속도가 빠른 수송선 위주로 편성되었는데 1진에 속한 다섯 척의 소형
수송선에는 해병 3여단 수색대대 병력이 승선해 있었다. 수색대대 병력은 일종의
상륙 첨병이었다. 그 뒤로는 수송선단 본진이 따르고 있었다. 함대가 속력을 높이자
녹아도와 앵도 사이의 해협이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했다. 목표 지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제 녹아도 앞 바다에 정박 중이던 사쓰마번의 해군 함정과
해안포대가 시야에 들어올 때가 되었다.
"기관감속! 출력 2/3! 황희함과 강희맹함은 기함을 호위하여 속도를 감속하고
건무함과 박연함은 그대로 항주한다! 수송선단 1진은 건무함과 박연함의 뒤를
따르도록!"
"황희함, 강희맹함은 기관감속! 출력 2/3! 건무함과 박연함, 수송선단 1진은 현재
속도 유지!"
김응수는 을지문덕함과 황희함, 강희맹함 등 신형 함정에 대해서는 속도를 늦출 것을
명령했고, 건무함과 박연함 등 구형 함정에게는 현재 속도를 유지할 것을 명령했다.
그때, 쌍안경을 통해 전방을 관측하던 어재연이 소리쳤다.
"함장! 저 것을 보시오. 전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있소."
폭발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녹아도 앞 바다 여기저기에 정박 중이던 사쓰마번의 해군
함정들이 연속해서 폭발하며 침몰하고 있었다.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금지할 것을
지시했기에 침몰하는 배는 사쓰마번 해군 함정이 분명했다. 아직도 어둑어둑한
어둠이 사위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덕분에 잠수함만 공격 대상을 식별하느라고
고생하고 있었다. 사쓰마번 해군 함정들이 아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으면서
발생한 폭발과 화염으로 인해 주위가 밝아졌고, 침몰하는 배들이 어재연의 시야에
들어왔다. 쌍안경을 든 김응수의 눈에도 침몰하는 배들이 보였다. 방금 침몰한 배는
제법 큰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화염이 치솟으며 침몰한 것으로 봐서 탄약고가 유폭한
것으로 보였다.
"건무함과 박연함은 적 해안포대와의 거리가 2.5km 지점이 되면 사격한다."
"건무함과 박연함은 적 해안포대와의 거리가 2.5km 지점이 되면 사격하라!"
김응수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쌍안경을 들어 전방을 주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을지문덕함과 황희함, 강희맹함은 이미 속도를 2/3로 줄인 상태였기에 건무함과
박연함이 선두로 치고 나서고 있었다. 구형 함정인 건무함과 박연함은 주포의
사정거리가 겨우(?) 4km를 넘을 뿐이었다. 그러나 신형 함정인 을지문덕함과 황희함,
강희맹함은 주포의 사정거리가 20km를 넘을 정도로 엄청났다. 따라서 해안에
접근하여 포격을 할 이유가 없었다. 사정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은 건무함과 박연함이
앞서나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건무함과 박연함은 점점 해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두 함정이 막 녹아도와 앵도의 중간 지점에 들어섰을 때 통신사관의 보고가
들어왔다.
"건무함과 박연함이 해안으로부터 2.5km까지 접근했습니다."
"기관감속! 출력 1/3! 조타수! 좌현 전타! 준비된 함정부터 사격 개시!"
통신사관의 보고를 받은 김응수가 즉시 기관실로 감속을 명령했고, 조타수에게는
타를 조작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바로 포격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통신사관이
다시 각 함정에 하달했다.
"기관감속! 출력 1/3! 좌현 전타! 함대 사격 개시!"
각 함정의 사격목표는 미리 분배되어 있었다. 하나의 목표에 여러 함정이 동시에
사격할 수 있었기에, 사전에 미리 사격목표를 분배한 것이다. 을지문덕함의 150mm
주포 6문도 이미 사격목표를 향해 고개를 세워놓고 있었다. 을지문덕함의 목표는
해안포대가 아니었다. 바로 사쓰마번의 번주 시마즈 타다요시가 머물고 있는 학환성(
鶴丸城)의 천수각이었다. 사쓰마번의 우두머리를 초반에 제거한다면 앞으로
사쓰마번을 무찌르고 구주를 점령하는 게 한결 수월하리라는 계산에서 계획된
목표였다. 사쓰마번에 아무리 뛰어난 수하들이 많다고 하여도 번주가 죽고 나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정해진 목표였다. 김응수의 명령이
떨어지자 을지문덕함의 150mm 주포 6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뻥! 뻥! 뻐버벙! 뻥! 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