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84화 (284/318)

4.

1872년 임신년(壬申年) 음력 8월 18일, 조선 최초의 해외 정벌을 위해 엄청난 위용의

함대가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광개토태왕급 전함의 2번함인 태종대왕함을 기점으로

좌우에 두 척의 명림답부급 경순양함과 을파소급 구축함 세 척, 이순신함과 해주급

호위함 네 척이 항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 1왕립근위함대에서 지원 받은 다섯 척의

구형 함정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조선 해군의 백두산급 수송선 두 척을

비롯한 수많은 숫자의 수송선와 새로 함대에 합류한 병원선이 뒤따르는 형세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위용이었다. 더구나 바다 속에는 장보고급 잠수함

여섯 척까지 함대를 호위하며 초계하고 있었다. 구주 정벌군을 태운 제

1왕립친위함대의 위용이었다. 구주 정벌군의 기함 태종대왕함의 사령관 실에는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해군사령부에서 방금 들어온 전문입니다."

구주 정벌군 사령관 양헌수의 부관이 입을 열자 모두들 그를 주목했다.

"방금 들어온 전문에 의하면 우리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들이 유구에 상륙하려던 적

함대를 모조리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사령관 실에 있던 모든 참모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양헌수의 부관을 쳐다봤다.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자세히 좀 말해보시오."

"맞습니다. 좀 더 상세한 전투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부관은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당연히 이런 질문이 쏟아질지 알았다는 뜻이었다.

"여기 계신 분들도 그제 제 1왕립근위함대의 명림답부함과 친위천군의 1개 대대

병력이 상륙하여 유구를 접수한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사쓰마번의 함대는

우리가 유구를 우리 영토에 정식으로 편입하고 접수한 것을 모르고 함대가 출정한

것입니다. 우리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 4번함 유형함과 9번함 이억기함은 원래부터 적

함대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사쓰마번이 있는 녹아도 앞 바다에 매복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적 함대가 병력을 싣고 유구로 이동하는 것을 따라가다가 유구에

근접한 순간, 그대로 공격하여 수장시켰다고 합니다."

"그럼 우리 잠수함들의 피해는 없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리 잠수함은 단 한 척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 1왕립친위함대 참모 중 한 사람의 질문에 양헌수의 부관은 담담히 대답했다. 몇몇

참모들을 제외하고는 잠수함의 파견을 모르고 있었기에 모두들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이어 우렁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와와와와!!!"

"이야! 대단하구나!"

사쓰마번에서 파견하는 함대와 병력을 상대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바로

잠수함을 이용하는 작전이었다. 함 대 함 결전에서도 얼마든지 섬멸이 가능했지만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도 없었고, 함대를 분산시켜 사쓰마번의 함대를 상대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에 선택한 작전이었다. 어느 정도 좌중의 흥분이 가라앉자

양헌수가 말했다.

"자, 자! 이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상륙작전을 점검해 봅시다. 함장. 지금 우리

함대의 위치가 어디쯤이라고 했지요?"

"예. 사령관님. 지금 우리 함대는 북위 34도, 동경 129도. 대마도 서남방 12km

지점을 항주하고 있습니다. 지도상으로 보면 이곳입니다."

태종대왕함의 함장 유준희 대령은 지휘봉을 들고 한 쪽 벽면에 자리잡은 커다란 구주

지방의 지도를 가리켰다. 유준희는 자신의 선조인 유형의 이름을 명명한 장보고급

잠수함 4번함이 사쓰마번의 함대를 모조리 수장시켰다는 얘기를 듣고 한껏 흥분된

상태였다. 그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제 잠시 후면 함대 분산 지점에 도착합니다. 우리 함대는 그 지점에서 다시

셋으로 나뉘어집니다. 1전대는 사령관님의 사령부 병력과 해병 3여단과 외인부대

1대대 병력을 태우고 장기(長崎 나가사키)로 항주할 것이고, 2전대는 해병 제

2여단과 외인부대 2대대 병력을 태우고 시모노세키와 마주하고 있는 북구주(北九洲

기타큐슈)로 항주하며, 마지막 3전대는 해병 제 1여단과 외인부대 3대대 병력을

태우고 녹아도(鹿兒島 가고시마)로 향합니다. 이렇게 세 방향으로 항주한 함대는

앞으로 이틀 후인 8월 20일 새벽 다섯시를 기해 전면 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음..."

"1전대의 기함으로는 사령관님과 윤정우 제독님이 타고 계신 태종대왕함이며,

양만춘함과 이지란함, 김충선함과 해주함이 지원을 합니다. 2전대는 이순신함이

기함이며 양무함과 공주함, 전주함과 대구함이 지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3전대는

을지문덕함을 기함으로 하고 황희함과 강희맹함, 건무함과 박연함이 지원을 합니다.

각 전대는 두 척의 장보고급 잠수함의 지원을 받습니다."

유준희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해병사단의 작전 참모 강혁수 대령이 나섰다.

"이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혁수는 뚜벅뚜벅 지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역시 그의 손에도 지휘봉이 하나

들려있었다.

"여기가 우리 정벌군의 목표인 구주입니다. 구주는 왜국의 세 개 섬 중에서도 본토

격인 본주를 제외하고는 가장 큰 섬입니다. 우리 조선의 충청도와 전라도를 합한

크기만 하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구주의 북부는 축자(筑紫 쓰쿠시)라고 불리는

산지(山地)가 동서로 이어져 있고, 그 남쪽, 그러니까 중부는 구주에서도 높은 축에

드는 산이 여러 개 있는 산악지형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부는 화산지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3여단과 2여단이 상륙하는 장기와 북구주에 대한 상륙작전은 솔직히

걱정할 것이 못됩니다. 북구주를 마주보고 있는 구 죠슈번 지역의 시모노세키에는

우리 해병연대가 주둔하고 있고, 또 자체 해안포도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륙작전을 펼치기에 수월합니다. 그것은 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기는 일찍부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해 왔기 때문에 해안의 방어 시설은 미비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1여단이 상륙작전을 펼칠 녹아도는 사정이 다릅니다. 녹아도의 사쓰마번은 지난

계해년(癸亥年 1863년) 자신들을 침략한 영국함대를 맞이하여 분전을 펼쳤던 5개

포대가 그대로 남아 있고, 녹아도 앞 바다 4km 지점에 있는 앵도(櫻島 사쿠라지마)의

포대도 견고합니다. 따라서 앵도에 있는 포대와 녹아도의 나머지 다섯 개 포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상륙작전의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토박이 유준희가 왜국의 여러 도시들을 조선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했지만

천군 출신 강혁수까지 조선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익숙한

지명은 왜국말로 불렀기에 그 어색함이 더했다. 하지만 구주를 조선이 차지하고

나서는 조선 이름으로 바꿔 불러야 마땅했기에 그도 유준희처럼 바꿔 부른 것이다.

우리말로 앵도라고 부르는 사쿠라지마는 지금이야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바다에 떠 있는 섬이었다. 그러던 것이 1914년에 사쿠라지마의 화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내린 용암이 바다를 메우게 되었고, 그래서 육지와 연결된 것이다.

육지와 약 4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사쿠라지마의 해안포대는 가고시마의 다섯 개

해안포대와 함께 1863년 당시 가고시마만을 침범한 영국함대를 협공하였는데, 이

전투에서 영국은 전사 13명, 부상 65명의 피해를 입었다. 물론 사쓰마번의 피해는

이보다 훨씬 더 컸지만 동양의 미개한 나라에게, 그것도 일개 지방 영주의 군대에게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던 전례가 없었기에 상당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사쓰마번과 화해한 영국은 지금껏 꾸준히 사쓰마번을 후원해오고 있었다.

"윤 제독. 구주에 위치한 제번(諸藩)의 해군력은 어떻습니까?"

"특별히 해군력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사령관님. 가장 해군력이 강성한

번으로는 사쓰마번이 있는데 지금 사쓰마번의 해군은 유구와 대만으로 출병한 육군

병력을 수송 호위하기 위해 절반 이상이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제

대마도에서 합류한 대정원 해외 2국(왜국 담당) 한성호 차장의 보고이기 때문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윤정우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성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윤정우가 조선으로

귀환하면서 같이 귀환한 전 나가사키 주재 조선 공사관 경비 책임자 한성호는 그

후에 다시 왜국으로 건너와 지금까지 대정원 해외 2국에서 파견한 요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파악한 구주 제번(諸藩)의 정보를 가지고 어제 대마도에서

합류했다. 윤정우의 시선을 받은 한성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한 차장. 지금 구주에 있는 제번(諸藩)과 막부의 해군력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제독님."

한성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주에서 가장 유력한 번으로는 사쓰마번과 구마모토번, 후쿠오카번, 그리고

사가번이 있습니다. 이중 사쓰마번과 사가번을 제외하면 별다른 해군력은 없는

실정입니다. 해군이 있다고 해도 구식 기범선 몇 척이 전부이고 그것도 대부분

상업에 종사할 목적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는

사쓰마번의 경우에는 원래 세 척의 3천톤급 장갑함과 다수의 목조 기범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구와 대만으로 파견한 함대가 모조리 수장 당한 지금은 적성(

赤城 아카기)이라 불리는 2500톤급 장갑함 한 척과 구식 기범선 승평환(昇平丸

쇼헤이마루)과 서경환(西京丸 사이쿄마루) 등 다섯 척만이 남은 형편입니다. 구식

기범선의 배수량은 모두 2000톤 미만입니다. 그리고 사쓰마번의 해군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가번의 해군력도 구주의 제번(諸藩) 중에서는 제법 막강한 수준입니다.

사가번은 1700톤급의 일진(日進 닛신)을 비롯해서 모두 다섯 척의 기범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장갑함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막부의 해군은 장기에

몇 척의 연락선이 있는 게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본주의 횡빈(橫濱 요코하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음... 구주 제번(諸藩)의 해군력이 제법이군요. 하지만 윤 제독의 함대가 있는데

걱정할 것은 없을 것 같군요."

한성호의 보고를 들은 양헌수가 고개를 자신에게로 돌린 채 말하자 윤정우는 바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적 해군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함대가 모조리 수장시킬

것입니다."

"뭐, 친위함대의 함정까지 나설 게 있겠습니까? 장보고급 잠수함만으로도 충분한

것을요. 아니 그렇습니까?"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하."

"아마도 그럴 겝니다. 하하하."

한쪽에서 두 사령관의 얘기를 듣고 있던 유준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을 흘렸다.

유준희는 선조의 이름을 명명한 장보고급 잠수함의 4번함 유형함이 이번 정벌에

참전했다는 것도 큰 영광으로 생각했지만, 조선 최초의 해외 정벌에 자신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더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한국군은 모든 부대나

함정, 잠수함에 4자가 들어가 있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없었다. 죽을 사(死) 자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불길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섭정공 김영훈은 그러한

금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금기에 정면으로 맞서서 타파하는 것을

선호했다. 일부러 해군 함정에 4번함을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다른 참모들도

양헌수와 윤정우를 따라서 웃었다. 적들이 아무리 강력한 해군을 자랑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제 1왕립친위함대의 막강한 위용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불필요한

희생을 무릅쓰기보다는 장보고급 잠수함으로 공격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이제는 수중

고혼이 된 사쓰마번에서 유구와 대만으로 출정한 다른 함대처럼 말이다. 구주

정벌전의 요체는 간단했다. 윤정우의 제 1왕립친위함대는 바다에서 구주 제번(諸藩)

의 해군을 격멸하는 것과 동시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막부의 도발을 효과적으로

막으며 구주로 들어오는 모든 해상을 철저히 봉쇄하는 게 해군 작전의 요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일이 구주를 완전히 봉쇄하는 일이다. 구주 제번(諸藩)의

해군력이야 함대와 장보고급 잠수함만으로도 충분히 격멸시킬 수 있었지만 네

방향으로 뚫려있는 바닷길을 봉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제

1왕립근위함대에서 구형 함정 다섯 척을 빌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구주에

접근하는 세력은 누구를 막론하고 초반에 격멸하기 위한 조치였다. 해군 함정이고

민간 선박이고를 떠나서 구주에 접근하는 모든 선박은 조선 해군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어쨌든 전투함이 15척, 수송선이 30여 척,

잠수함이 6척이나 동원된 조선 해군의 위용은 막강했다. 거기에 유사시에는 제

1왕립근위함대까지 지원하기로 되어 있는 대규모 작전이었다. 해군 작전의 요체가 적

함대의 완전 섬멸과 구주의 봉쇄에 있다면, 해병사단을 위시한 지상군 작전의 요체는

세 군데로 나눠진 상륙지점에 거점을 마련한 후에 차츰차츰 점령지를 넓혀서

최종적으로는 전 구주를 점령하는 것에 있었다. 물론 세부적인 작전계획도 수립되어

있었고, 수 차례의 도상훈련도 있었기에 양헌수는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상륙작전에

대한 점검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보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령관님. 이제 함대 분산 지점에 다 온 것 같습니다."

"그래요? 벌써 다 왔다는 말인가?"

"예. 사령관님."

"좋습니다. 각 전대의 기함으로 옮겨야할 분들도 있으니 오늘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구주를 완전히 점령한 후에 장기의 조선 공사관에서 뵙도록 하지요.

모두들 건승하십시오."

"예. 사령관님. 충성!"

"사령관님. 건승을 기원합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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