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78화 (278/318)

3.

왜국의 성곽 축성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천수각(天守閣)

이다. 천수각은 성주가 기거하는 건물로 보통 성 중앙에 가장 높게 축조되어 있는데

가고시마의 쓰루마루성(鶴丸城) 천수각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사카성(大阪城)

구마모토성(熊本城), 히메지성(姬路城) 등 소위 말하는 왜국의 3대 성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쓰루마루성도 막강한 사쓰마번의 본거지답게 나름대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쓰루마루성의 천수각 맨 꼭대기 5층에는 일단의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사쓰마번의 주요 인사들이었다. 번주(藩主)인 시마즈

타다요시(島津忠義)와 시마즈 타다요시의 아버지이자 번부(藩父)인 시마즈 히사미쓰(

島津久光)까지 참석한 회의였다. 시마즈 히사미쓰는 전대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

島津齊彬)의 이복동생으로 한 때는 그의 강력한 경쟁자였으나, 그가 죽으며 자신의

아들인 시마즈 타다요시를 양자로 입적하고 번주의 위(位)를 물려줌으로써 당당하게

번부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었다. 번부란 새롭게 번주의, 또는 번의 아버지란 뜻으로

시마즈 타다요시의 뒤에서 그를 도와주는 일종의 후견인과 같은 직위였다. 한 번도

번주의 위에 올라보지 못한 시마즈 히사미쓰였지만 번부라는 경칭으로 불리면서

번주에 뒤지지 않는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런 시마즈 히사미쓰까지 천수각에 나타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써 그만큼 심각한 회의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 소에지마님의 보고를 통해서 짐작하시겠지만 조선이나 영국 등에게 지지를 얻는

것은 요원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하여 저는 번부와 주군(主君)께 새로운 건의를

하고자 합니다."

사이고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침묵하며 다음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소에지마로부터 나가사키에 간 일에 대한 보고를 받았고 오야마로부터는 류큐

어민들이 살해당한 사건까지 보고를 받은 터였다. 이제는 사이고가 이렇게 갑작스런

회의를 소집한 이유를 들을 차례였다.

"아직 나하(那覇 류큐의 수도)에 주재하는 관리들이 정식 보고를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대만의 원주민들이 류큐의 어민들과 우리

어민들을 살해한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류큐는 우리 번의

영향력 하에 있는 왕국인 동시에 우리 번의 이득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

모두들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이고의 말에 한치의 그른 점이 없었다.

명목상으로는 독립국인 류큐였지만 실제로는 사쓰마번에 예속된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15세기 중반까지 남잔(南山), 쥬잔(中山), 호쿠잔(北山)으로 나뉘어 나름대로

평화롭게 공존하던 류큐는 1429년에 쇼하시(尙巴志)라는 걸출한 인물이 통일을

달성한다. 새롭게 출범한 류큐 왕국은 장장 180년이라는 세월을 하나의 왕국으로

유지해 왔었다. 그러다가 1609년 사쓰마번의 침략으로 점령당하게 되는데, 당시 명(

明)과의 대외무역을 중시하던 사쓰마번에서는 류큐의 일부만-아마미 제도(奄美諸島)-

직할 식민지로 지배하고 나머지는 독립을 유지하게 하였다. 류큐는 명의 조공국(

朝貢國)이면서도 지리적인 위치 상 주변국과의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고

있는 형편이었는데, 명과의 조공무역을 염두에 두었던 사쓰마번에서는 아마미 제도만

직할 식민지로 지배하고 나머지는 독립을 유지시켜주는 정책으로 대외무역을 통한

이득을 추구했던 것이다. 실제로는 완전한 가신(家臣)에 지나지 않는 신분이라고 말

할 수 있었지만 굳이 독립 왕국이라는 형식을 강조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쓰마번에서는 류큐인이 왜국식 풍속을 따르는 것을 금지하고, 명에서

사절이 올 때는 사쓰마번의 관리를 나하에서 피난시켰다. 반대로 장군이 바뀌어

류큐에서 경축 사절이 에도로 올 경우에는 일부러 중국풍 옷을 입게 하고 사절

일행의 이름도 중국어로 부르게 하고 식사 예절까지 중국식으로 강요했다. 이 시대를

일지양속(日支兩屬) 시대라고 한다. 식민지였지만 겉으로는 독립을 유지시키면서 대(

對) 중국무역의 선을 유지했던 것이다. 이재(理財)에 밝은 사쓰마번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명이 망하고 청(淸)이 들어서서도

변하지 않았다. 류큐는 정치적으로는 독립을 유지했던 것과는 반대로, 경제적으로는

철저하게 수탈 당했는데 그 가장 좋은 예가 설탕산업이다. 류큐에서는 꽤 일찍부터

사탕수수를 감미 식량으로 재배하였다. 1623년에는 기마신죠(儀間眞常)가 중국에서

제당법을 배워와서 처음으로 설탕을 생산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설탕은 중국이나

남방 국가에서 수입하는 고가품이었으므로 류큐의 설탕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났다.

생산된 설탕 중에서 일부는 조세로서, 대부분은 류큐 왕부가 사들여 되파는 방법으로

사쓰마번의 손에 넘어갔다. 사쓰마번은 류큐 왕부에게서 오사카 시장에서 거래되는

설탕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설탕을 사들였다. 류큐 왕부는 농민에게서

사쓰마번에 되파는 가격의 6할 정도로 설탕을 사들였고, 이것은 오사카에서 거래되는

설탕 가격의 3할도 안 되는 몫이 농민에게, 2할이 조금 넘는 몫이 왕부에게, 그리고

5할 이상이 사쓰마번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설탕 생산으로 말미암아

가장 고통받았던 이들은 사쓰마번의 직할 식민지였던 아마미 제도의 농민들이었다.

아마미 제도에서도 18세기 초부터 설탕 수매가 시작되었는데, 18세기 말에는 공물을

전부 설탕으로 대신 내게 했던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서는 관리가 감시하는 가운데

농민을 노예처럼 강제노동에 동원하여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설탕을 생산한 후 생산된

설탕의 전량을 싸게 사들이는 정책을 취하였다. 이 때문에 아마미 제도에서는 쌀과

기타 모든 생활필수품을 가고시마에서 수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쓰마번은

아마미 제도의 농민들이 생산한 설탕을 싸게 사들여 오사카 시장에 되파는 방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을 뿐 아니라, 아마미 제도에서 생산할 수 없게 된 쌀 등

생활필수품을 비싸게 팔아 이중으로 폭리를 취하였다. 류큐는 이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사쓰마번은 오히려 막강한 경제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2) 이런

곳이었으니 사쓰마번에서는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헌데 류큐의 어민 54명과 우리 어민 4명이 대만에 표류하였다가 그곳 야만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단순하다고 생각하면 단순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류큐를 실질적으로 통치했던 우리 번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결코 좌시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날도 더운데 체면 때문에 예장용 비단 하오리를 차려입은 시마즈 히사미쓰는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로 물었다. 예를 중시하는 시마즈 히사미쓰로서는 오랜만에 가신들과

만나는 자리였기에 어쩔 수 없이 예장용 비단 하오리를 입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는 상당한 고역이었다. 사이고는 그에게 무겁게 목례를 취하며

대답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그렇게도 염원해 마지않던 주변국들의

인정을 받아 독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번부."

"으음... 어떻게?"

"번부께서도 아시다시피 대만은 청국의 부속 도서입니다. 반대로 류큐는 우리의

식민지이기도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청국의 조공국입니다. 류큐의 특수성은

청조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의 청국 백성들이 우리

어민들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은 대단히 심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이고는 처음과 달리 대만의 원주민이 류큐 어민들을 살해한 사건을 '대만의 청국

백성들이 우리 어민들을 살해했다'고 표현했다. 업어치나 매치나 그 말이 그 말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말이란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상당히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이었다. 사이고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점을 이용해서 우리는 류큐 어민을 포함한 우리 어민 58명의 살해사건을 따진다는

명목으로 대만을 침공하는 것입니다."

"으응?"

시마즈 히사미쓰를 비롯한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겨우(?) 어부 몇 명이

죽은 것을 가지고 사건을 너무 확대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굳이 무리하게 대만 침공을 감행해야 하느냐는

의구심을 표출한 것이기도 했다. 좌중의 우려 섞인 반응에도 사이고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복안이라도 있는 듯 진중하게 좌중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동안 아버지가 있어서 자중하고 있던 번주 시마즈 타다요시가 입을 열었다.

"설마 대만을 완전히 집어삼키자는 말은 아닐 테고...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인데 어디 한번 말해보게."

"물론 대만을 집어삼키는 일 같은 경우는 필요치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대만을

침으로써 청국의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청국의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주군. 우리가 우리 어민들 살해 사건을 응징한다는 명목으로 대만을

침공한다면 청조에서는 어떻게든 우리의 침공에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름뿐인 청국 해군이 대응해도 좋고 그렇지 않고 순순히 대만을 접수하게 되어도

좋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목적은 대만을 수중에 넣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에 목적을 두고 대만을 침공한다는 말이오?"

이번의 질문은 사쓰마번의 또 다른 실권자 구로다 기요타카의 질문이었다. 구로다

기요타카는 아직까지 사이고가 말하는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회의에 참석한 다른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가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한다고 하더라도 직접 대만을 다스리거나 복속시킬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만을 침공함으로써 청조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 무릎을 맞대고 협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통해 청조와 정식으로 단독 협상을 하고, 그럼으로써 그동안 막부에 예속되어 있는

일개 번국으로서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나라대 나라의 대등한 위치로 격상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 그렇구려."

"헌데 과연 청조에서 우리의 의도대로 협상에 임할까? 그리고 협상에 임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저들이 우리를 대등한 관계의 나라로서 인정을 해 줄까?"

사이고의 숨은 의도에 감탄사를 자아내던 사람들이 뒤이어서 들려온 시마즈

히사미쓰의 음성에 단숨에 풀이 죽어버렸다. 그의 말처럼 청조에서 자신들을 대등한

관계로 대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좌중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각되고 말았다. 사이고의 말을 들을 때는 단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다시 곰곰이 헤아려보니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것에 비례해서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엄청난

자괴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차라리 아니 들은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이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번부."

"그렇게 되도록 만든다? 무슨 수로?"

"그동안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던 류큐를 이번 기회에 완전히 복속시켜

우리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 대만 침공과 더불어서 시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청조에서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번부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청국의 사정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조선이

서양 3국의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도 막지 못했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

"더구나 대만과 류큐가 차지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의미를 따져봤을 때 청조에서는

결코 그 문제를 간과하고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군대를 출병시켜 우리와

한 판 싸움을 벌일 여력도 없습니다."

"잠깐. 대만이야 다들 알아들었을 테고. 방금 류큐의 지정학적 위치와 의미를

말했는데 그것의 정확한 개념, 그러니까 청조에서 생각하는 류큐의 지정학적 위치와

의미에 대한 것을 먼저 설명하는 게 순서일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번부."

시마즈 히사미쓰의 말에 사이고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우물안

개구리에 불과한 사쓰마번의 인사들이 류큐가 동북아시아와 청조에 끼치고 있던

지정학적 위치와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소홀히 넘긴 것이다.

"류큐는 섬입니다. 그것도 동북아시아로 들어오는 바닷길을 제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섬입니다. 해상무역의 중요한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청조의

입장에서 봤을 때 류큐는 청국을 방어하는 최남단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시마즈 히사미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한낱 조그만 섬 무리에 지나지 않는 류큐가 어떻게 청국을

방어하는 최남단의 거점이 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청국은 엄청나게 너른 영토와 많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나라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청조에서는 광활한 국경선을 방비하기 위해서 여러 조공국을 활용해

왔습니다. 청조의 대표적인 조공국을 들자면 조선이 있고 류큐가 있으며 안남(安南)

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선과 류큐가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릅니다. 왜 남다르냐?

바로 조선과 류큐가 그동안 청조에 충성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조선과 류큐는 그동안 청조의 안전에 있어서 가장 유용한

국가였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조선은 북경을 중심으로 한 화북(華北) 이북을

방어하는데, 류큐는 장강 이남의 연안을 방어하는데 방파제 역할을 해 왔던 것입니다.

"

사이고의 말은 사실이었다. 청조에 충성하는 주변의 여러 조공국 중에서도 조선과

류큐가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른 것이었다. 조선은 호시탐탐 남진을 노리는

러시아로부터 북방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 왔었고, 류큐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청국의 해군력-거의 없다시피 한 해군이었지만-을 상쇄하면서 아울러 해상무역의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여러 조공국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중요한 취급을 받아온 양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류큐를 완전히 복속시키고 대만을 침공하여 청조로 하여금 협상에

임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협상에 임했을 때 청조에게 이런 제의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 류큐가 담당하던 연안 방어와 해상무역의 안전에 대한 책임을 우리가

대신 지겠다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가 청조의 조공국이 되자는 말인가?"

"아닙니다. 소에지마님. 막부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는데 청조에 고개를 숙일 수는

없는 일이지요."

"허면?"

"우리는 청조의 빈약한 해군력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힘이 있습니다. 이것을

미끼로 장강 이남의 연안을 방어하는 일과 해상무역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에 우리가

힘을 써준다고 약속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는 청조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 지지라는 것이 겨우 우리를 독립국으로 인정해 주는 것임을

주지시킨다면 청조로서는 결코 손해보는 장사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굳이 대만을 침공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시마즈 타다요시의 물음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얘긴지 알아듣지 못하던 그도, 이제는

확실히 알아듣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이고는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군. 청조에서는 우리와 직접 협상을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막부라면 모를까 일개 번국이 자신들에게 직접 협상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저들의 영토인 대만을

침공한다면 저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와의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류큐를 완전히 장악하고, 그 다음에 대만을 침공하여

먼저 손에 쥔 연후에 청조와의 협상에 임해야 합니다. 이치대로 하자면 우리는 우리

어민들의 살해 사건을 빌미로 얼마든지 금전적인 배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서 군대를 동원하는데 소용된 비용까지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그저 우리를 지지하고 인정한다는 협정만 체결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들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강요하지 않음으로 해서 좀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호-오."

"저들로서는 하등 손해나는 장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일리가 있군."

"그리고 또 있습니다. 주군."

"또 있어? 무엇이 말인가?"

"우리가 공식적으로 류큐를 복속시키면 미국(米國)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주군."

"미국까지? 어떻게 말인가?"

청국을 끌어들이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을 것인데 거기다가

미국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에 좌중의 인사들은 한결같이 눈이 동그래졌다.

그것은 시마즈 히사미쓰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이고는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번부께서는 지난 안세이 원년(安政元年 1854년) 류큐와 미국 사이에 체결된

류미수호조약(琉米修好條約)을 잊으셨습니까?"

"아! 그게 있었구나."

시마즈 히사미쓰는 무릎을 탁 치며 읊조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인사들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류큐와 미국 사이에 체결된

류미수호조약을 사이고가 들먹이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방금

사이고가 말한 류미수호조약이란 지난 1854년 미국 해군의 로버트 로저스(Robert

Rodgers) 대령이 프리깃함 존 핸콕(John Hancock)을 이끌고 포함외교를 실시하여

체결한 조약을 말한다. 당시 로저스 대령은 포함외교에서는 드물게 적전상륙(

敵前上陸)까지 감행하여 류큐와 사쓰마번의 인사들에게 양이함대(洋夷艦隊)의

무서움을 각인시킨 인물이었다. 참고로 로버트 로저스 대령은 지난해 조선을 침공한

3국 연합함대의 부사령관 신분으로 참전하여 장렬하게(?) 산화한 존 로저스(John

Rodgers Jr)의 친형이기도 한 인물이다. 아무튼 류큐와 미국은 본격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나름대로는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형편이었다. 사이고는 이런 상황에서

사쓰마번에서 류큐를 완전히 복속시킬 경우에 자연스럽게 미국까지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암암리에 사쓰마번의

육군력을 육성하는데 도움을 주어왔던 미국의 행태로 봐서는 류미수호조약의 준수를

조건으로 내 건다면 별로 어렵지 않게 사쓰마번에 대한 지지와 독립국으로의 인정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막부로서도 함부로

군사력을 동원하여 사쓰마번을 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의 계산을

읽은 시마즈 히사미쓰가 아들에게 물었다.

"너는 사이고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가 생각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의견 같습니다. 아버님.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형편이었는데 사이고의 말대로 우리가 대만을 침공한다면 보다 능동적으로 정국

변화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 정국 주도권까지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국면 전환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할 만큼의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번부."

시마즈 히사미쓰가 고개를 돌려 다른 이들에게 묻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좋다. 그럼 사이고가 전권을 가지고 이번 일을 성사시키도록! 아울러 얼마만큼의

병력으로 대만을 침공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논을 하도록!"

"감사합니다. 번부."

시마즈 히사미쓰는 이 말을 마치고 천수각을 빠져나갔다. 대만을 침공하기로 결정한

이상, 이제는 실무자들이 나서서 계획을 세우는 일만 남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했기에 자신이 굳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을 믿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격식을 갖춰 입은 예장용 비단 하오리가 너무 더웠기 때문에, 더

이상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곤란할 지경이었기에 일어선 것에 불과했다. 이 점을

알지 못하는 가신들은 분분히 일어나 인사를 하였고, 그가 나가자 대만 침공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결정된 대만 침공의 최고

지휘관으로는 해군을 책임지고 있던 사이고가 임명되었으며 육군은 오야마가 1개

사단의 군사를 동원하여 지휘하기로 결정되었다. 최대한 많은 병력을 동원하면

좋겠지만 언제 막부와 불화가 생길지 모르는 형편에서 어느 정도의 병력은 본토에

남겨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결정된 것이다. 육군을 책임지고 있던 구로다

기요타카는 내심으로 자신이 육군 병력을 이끌고 대만을 침공하기를 바랬지만,

사이고가 최고 지휘관으로 임명된 마당에 그의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육군의 지휘는 오야마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내에 모든 준비를 완료하여 대만으로 침공하는 것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단순하다면 단순할 수 있는 류큐 어민 살해 사건을 가지고 류큐를

복속시키고 대만을 침공하여 주변국들과의 유대를 강화하여 독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쓰마번의 계획이 천천히 무르익어 가고 있는 오늘은 1872년 음력 7월

하순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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