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75화 (275/318)

7.

"어쩜 저렇게 잘 생겼을까?"

"그러게 말이에요. 살다살다 저렇게 키가 크고 잘 생긴 동양인들은 처음 보네요."

"조선 사람은 처음 보지만 여타 다른 동양 사람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안

그래요?"

"맞아요. 맞아."

"생긴 것만 다른 게 아니라 저들이 입고 있는 옷들을 보세요. 우리 서양의 어느 나라

제복보다도 더 세련된 것 같지 않아요?"

"같은 동양 사람들인데 청국 사람이나 왜국 사람들과 어쩜 저렇게 다를 수 있죠?"

"그러게나 말이에요. 저 넓은 품에 안겨 한 곡 추었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네요.

"

"호호호호."

천진 신 시가지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사교클럽 프린스 어브 웨일즈의 중앙 홀인

알버트 홀에서는 지금 한창 파병 조선군 수뇌부를 위한 환영 만찬이 진행 중에

있었다. 알버트 홀의 중앙에는 일단의 젊은 남녀가 짝을 이뤄 춤을 추고 있었고

곳곳에 놓여진 테이블에는 말하기 좋아하는 서양 제국(諸國)의 귀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조선군 수뇌부들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조선군은 달라도 달랐다. 지난해 가을 3국 연합함대를 무찔렀다는 것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조선 해군사령관 겸 파병 조선군 총사령관은

다른 어느 서양인보다도 훤칠하게 컸으며 그 옆의 지상군 사령관은 그보다 더 컸다.

키만 큰 게 아니었다. 나이를 분간하기 어려운 동양인의 특성상 정확히 몇 살이나

먹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기껏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조선군 수뇌부의 모습은-물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껏 멋을 낸 성장 차림의 귀부인들과

철모르는 소녀들의 방심(芳心)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서양 제국(諸國)의

외교관들이나 무관들이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이 지긋한 모습이었으니

아랫도리가 후들거릴 만도 했다.

"오늘 상당히 많은 분들이 오셨군요."

"그렇습니다. 총사령관각하. 모두가 총사령관각하와 파병 조선군 수뇌부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왔다고 합니다."

모든 귀부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김종완은 청국말 통역의 도움으로 웨이드

경을 비롯한 서양 제국(諸國) 외교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에는 안용복이

자리잡고 있었다. 하얀색 해군 정복을 입은 김종완과 푸른색 계열의 육군 정복을

입은 안용복의 주위에는 북경 주재 8국 공사와 수행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행여나

김종완과 안용복의 말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이 달라진 조선의 위상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러실 것까지는 없는데요."

"아닙니다. 총사령관각하. 귀국 해군과 육군의 위용을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헌데,

오늘 모처럼 막강한 조선군 수뇌부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아니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맞습니다. 안드로포프 공사. 본관이 비록 북경 주재 공사로 있다고는

하지만 진정 주재하고 싶은 나라는 청국이 아니라 조선입니다."

"하하하하."

안드로포프 러시아 공사와 맞장구를 치며 김종완의 환심을 사려는 이는 다름 아닌

북경 주재 독일 공사 크리스티안 뮐러(Christian Moller)였다. 안드로포프 공사와

뮐러 공사의 대거리에 여러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는 데 영·법·미 3국 공사만이

안색이 좋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이 오늘 환영 만찬의 주재자라도 되는 양 나서서

설치는 모습은 그들의 심기를 어지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총사령관각하."

"말씀하시지요. 안드로포프 공사."

"귀국과 우리 러시아와 수교협상이 진행 중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그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수교협상이 진행되었으니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그럼요. 그럼요. 하하하하하."

안드로포프 공사는 큰 소리로 웃어 제꼈다.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 조선과 정식으로

수교협상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김종완의 입에서 공인되는 순간이었으니 아니 기쁠

수가 없었다. 이때 벨로네 법국 공사가 김종완에게 물었다.

"총사령관각하."

"예. 벨로네 공사."

"귀국의 오경석 공사께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오경석 공사는 지금 북경에 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무슨 일은요. 그저 오경석 공사께서 보이지 않기에 궁금해서 그럽니다."

"예."

김종완은 무슨 일로 벨로네 법국 공사가 오경석을 찾는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만히 벨로네 법국 공사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안용복이 입을 열었다.

"사령관님. 이 친구가 오경석 영감을 찾는 것을 보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꿍꿍이라뇨?"

"거 있잖습니까? 러시아가 우리와 수교협상을 진행한다고 하니까 이놈들도 몸이

달아서 당장 수교협상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요?"

"그래요?"

"그런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 온 8국 공사들이 할 일이 없어서 온 것도 아니고,

오늘의 환영 만찬이라는 자리가 우리 조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아닙니까? 파병 조선군 수뇌부를 위한 환영 만찬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은 외교관으로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오라. 그런 꿍꿍이가 있었군요."

지금 김종완과 안용복은 조선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대화를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까지 조선말을 할 수 있는 통역은 왜국의 몇몇

통역관만 빼놓으면 전 세계에 거의 전무한 실정이었으니 마음놓고 사담(私談)을 나눌

수 있었다. 반대로 김종완과 안용복은 영어를 잘 구사하였으니 영어로 나누는 대화는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비록 국제 외교가에서의 공용어 비스무레한 언어가

프랑스어라고 해도 가끔씩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의 대화는 나름대로 청취를 하는

이중의 효과를 얻고 있었다.

"그나저나 우리 참모들이 이런 만찬에 잘 적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것을 염려하였지만 일부 참모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제 휘하의 친위천군 참모 일부는 서양 귀부인들과

춤을 추기도 한 걸요."

"그래요? 그럼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굽니까? 천군 출신 참모들은 이런

파티가 낯설긴 해도 거부감이 들 정도는 아닐 것이니 문제는 없을 것이고, 조선군

출신이 문제겠군요."

"그렇습니다. 특히 이원희 제독은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

아무래도 조선군 출신 참모들은 서양 여자들이 가슴과 등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화냥년처럼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은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도덕과 인륜이 살아있는 조선에서라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어디 쉽게 적응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원희와 같은 명문가

출신일수록 그런 놀라움은 더욱 클 것이 분명했다. 이때 누군가가 크리스탈 잔을

두드리며 말했다. 웨이드 경이었다. 어느새 음악도 그치고 춤추는 이들도 모두

들어가고 없었다.

"챙! 챙! 챙! 챙!"

"모두 저를 주목해 주십시오, 오늘 이 자리는 청국에 주재하는 우리 영·프·미 3국

공관과 거류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병한 조선군 총사령관각하와 수뇌부들을 모신 뜻

깊은 자리입니다. 모두들 조선군의 늠름한 모습을 보았기에 한결 든든하고 마음이

놓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파병 조선군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축배를 드십시다."

"옳소!"

여기저기에서 박수소리가 터졌고 너도나도 잔에 술을 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김종완과 안용복도 지나가는 웨이터에게서 포도주가 든 잔을 넘겨받았다.

"김종완 총사령관각하와 파병 조선군 장병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건배!"

"김종완 총사령관각하와 파병 조선군 장병들의 건승을 기원하며! 건배!"

웨이드 경의 선창으로 모두들 잔을 부딪히며 조선군의 건승을 기원했다. 김종완과

안용복에게 일부러 다가와서 축하의 인사와 건배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환영

만찬에 참석한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군의 건승을 기원하며 축배를 드는 모습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모두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렇게 파병 조선군 수뇌부를 한영하기 위한 환영 만찬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무르익고 있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yskevin에게 있으며, 이 글은 오로지 유조아의 소설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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