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71화 (271/318)

3.

천진 구 시가지에서 가장 넓은 주작대로(朱雀大路)를 활보하는 특이한 인물들이

있었다. 세 사람은 동양인이었고 두 사람은 서양인이었다. 원래부터 서양인이 구

시가지에 출입하는 일이 많지 않았었고 지난 2월부터 터진 전국적인 소요사태의

여파로 서양인의 모습은 더욱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인데 이런 때에 서양인 두 명이

포함된 일단의 사람들이 구 시가지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주작대로를 밤늦은

시간에 활보하는 풍경은 주변의 모든 청국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그 사람들이 온 거리가 떠나갈 듯 큰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기에

더욱 시선을 끌고 있었다.

"어이 지현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가? 자네가 말하는 홍루(紅樓)는 아직

멀었는가?"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운두 형님. 저도 안가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이 길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토마스씨를 이런데 데려와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토마스가 어디 어린애간디. 벌써 애가 셋이여. 셋."

"그게 아니라 매제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고 운두 형님의 여동생 되시는 분이

뭐라 하지 않을까요?"

"응? 무슨 소리! 괜찮아. 괜찮아! 암시랑토 안 해!"

북경 주재 조선 공사관에서 대정원에서 보낸 공문을 가지고 내려온 요원들은 다름

아닌 박지현과 이민화였다. 박지현과 이민화는 이미 정운두와 토마스를 잘 알고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봐왔던 네

사람이었다. 토마스가 남아프리카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지현과 이민화도

조선으로 복귀하여 얼굴을 못 본지 어느덧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기에 재회의

기쁨은 더욱 컸다. 더군다나 오경석이 정운두 일행을 안내할 안내원으로 두 사람을

임명하자 이 기쁨을 모처럼 함께 나누기 위해서 박지현과 이민화가 정운두 일행을

근사한 곳으로 안내한다는 명목으로 구 시가지의 홍루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전준호와 정운두가 처음으로 나가사키에 나타났을 때 환영식을 벌이던 풍경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었다. 다만 장소가 나가사키의 마루야마 유곽촌이 천진 구 시가지의

홍루로 바뀌었고, 사람들 몇 명이 빠지고 새로 포함되긴 했지만 7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박지현이 토마스에게 말했다.

"토마스씨. 어떻습니까? 괜찮지요?"

"뭐가 말입니까?"

"홍루에 가는 것 말입니다."

"네. 저야 괜찮습니다. 헌데 홍루가 뭐 하는 덴지...?"

토마스가 청국에 있었던 때는 그의 나이가 많지 않았던 때였다. 겨우 스무 살 정도

먹었을 무렵에 청국에 있었으니 홍루에 대해 알 수도 없었고 그런 데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나가사키에 다시 돌아와서야 정운두의 꼬임에 넘어가 마루야마 유곽촌에 몇

번 놀러간 것이 그의 화류계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다. 토마스의 말을 들은

박지현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이런.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겁니까? 천하의 난봉꾼 운두 형님의 매제 되시는

분이 홍루를 모른다니요... 어찌 이런 일이...?"

"홍루가 무엇 하는 곳인데요? 저는 정말 모릅니다."

토마스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일행은 눈들이 휘둥그레졌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토마스가 홍루를 모른다니 다만 놀라울 따름이었다. 선원 생활을 오래 해서 청국의

홍루나 왜국의 유곽촌에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검재선으로서도 토마스의 말이

새삼스럽게 들렸다. 마흔이 가까운 검재선은 자신의 막내 동생 뻘인 토마스를 아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검재선이 은근한 목소리로 토마스에게 물었다.

"여보게. 토마스. 정말 홍루를 모른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검 선생님. 제가 청국에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는데 홍루가 무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검 선생님께서는 아십니까?"

"허-어! 이 사람. 장가가서 애가 셋이나 되는 사람이 홍루를 모르다니. 무늬만

아저씨지 실상은 총각이나 다름없구만."

검재선의 어눌한 조선 말에 모두들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토마스는 네 사람이

무슨 이유로 웃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철이 들면서부터 줄곧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해

왔었고, 아버지가 자딘 머세슨(Jardin & Matheson) 상회의 농간에 죽임을 당한

후로는 자신의 글로버 상회도 쫄딱 망한 덕분에 여자를 경험할 시간이 없었다. 그

후에 정운두를 만나면서 마루야마 유곽촌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 짓도 얼마 안 가

종치고 말았다. 정운두의 여동생과 혼인을 했기 때문이었다. 혼인을 하고 난 후에는

건실한 가장이요, 남편으로서 아내만 바라보고 살다가 남아프리카까지 건너가서

고생고생하면서 다이아몬드를 채굴해 왔는데 홍루가 무엇인지 어찌 알겠는가.

이민화가 토마스에게 홍루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이보게, 토마스. 왜국에 술과 여자를 같이 파는 유곽촌이 있듯이 청국에도 똑같은

곳이 존재한다네. 청루(靑樓)와 홍루가 바로 그곳이지. 청루라는 곳은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예기(藝妓)라고 하여 가무(歌舞)를 곁들여 술자리의 흥을 돋구는 청기(

靑妓)가 있고, 홍루에는 손님의 술시중을 들면서 몸을 파는 홍기(紅妓)가 있다네.

청기가 예기라면 홍기는 창기(娼妓)라고 할 수 있지."

"그럼,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이 홍기가 있는 홍루라는 말입니까?"

"그렇지. 이제야 알아듣는구만."

토마스는 얼굴이 빨개졌다. 혼인하기 전까지는 가끔씩 정운두를 따라서 마루야마

유곽촌에 놀러 가기는 했어도 혼인하고 나서는 일체 외도를 경험하지 않았던

토마스였다. 더구나 자신의 아내는 머나먼 남아프리카까지 자신을 따라와서 갖은

고생을 함께 했던 사람이 아닌가? 지금이야 형편이 좋아져서 자신의 어머님을 모시고

제물포에서 편하게 지낸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그런 아내를 배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 것이다. 아내 생각에 토마스가 막 거절의 뜻을 말하려는

데 토마스의 눈치를 알아차린 정운두가 선수를 쳤다.

"아따! 이 사람. 괜찮어. 남자가 때로는 외도도 할 수 있지. 멀 고런 것 가지고

빠질려고 허는가. 내 진숙이헌테는 비밀로 헐팅게 아무 걱정 허덜 말어."

"하지만, 형님."

"어-허! 암시랑토 안탕게. 걱정허덜 말어. 그나저나 지현이 이 사람. 아직 멀었당가?"

"다 온 것 같습니다. 바로 저깁니다. 형님."

정운두는 토마스의 손을 잡고 억지로 끌고 갔다. 일행은 어느새 빨간 등이 줄줄이

드리워져 있는 어느 거리로 접어들었다. 주변으로는 2층 또는 3층의 목조건물들이

즐비했고 하나같이 빨간 등을 밖에 내 걸은 모습이 영락없는 홍등가(紅燈街)였다.

더구나 2층과 3층의 난간에는 젊은 기녀들이 요상한 비음(鼻音)이 섞인 말을 하며

손수건을 흔들고 있었다. 정운두는 이제야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냐! 이제야 살맛이 나는구나. 흠... 좋다!"

정운두 일행은 박지현의 안내로 홍화루(紅花樓)라고 쓰여진 한 기루로 들어갔다.

박지현은 성큼성큼 홍화루 안으로 들어갔다. 홍화루는 전형적인 중국 전통 양식의

기루였다. 입구를 들어서면 커다란 공간이 나오는데 수많은 탁자들이 널려 있고

손님과 기녀와의 질펀한 술잔치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에 마련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이제는 별도의 방이 나오는데 씀씀이가 크면서 좀더 은밀한

자리를 원하는 부유층들이 이용하는 곳이었다. 정운두 일행이 안으로 들어오자

어디에선가 귀노(龜老)가 나타나 일행을 영접했다. 기루에서 손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을 귀노라고 부르는데 중늙은이 행색의 귀노는 정운두 일행을 보더니만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동양인 세 사람과 서양인 두 사람의 조합은 이곳에서도 너무

눈에 띠였던 것이다. 귀노가 퉁명스럽게 소리쳤다.

"손님 오셨소."

귀노의 소리를 들은 뚱뚱한 몸매에 살이 어찌나 쪘는지 두 눈이 파묻힐 정도로 얼굴

살이 두툼한 주모가 빨간 손수건을 살랑살랑 흔들며 나타났다. 주모도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배짱으로 험난한 이 시국에 양이 놈을 둘이나 끌고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이구! 손님들. 어서 오십시오. 헌데, 무슨 일로...?"

"이 사람 보게. 홍루에 무슨 일로 오다니. 이곳에서 볼 게 술과 계집밖에 더 있겠나.

어서 안내하게."

"하오나, 손님..."

"어-허! 이런 경우를 봤나!"

이민화와 주모의 실랑이를 보던 정운두가 박지현을 쳐다봤다. 청국말을 모르는

정운두는 무슨 일이냐는 뜻으로 박지현을 쳐자본 것이다. 박지현은 정운두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모에게 큰 소리를 쳤다.

"이보시게. 주모. 이 집은 손님 접대를 이리 하는가? 손님이 왔으면 바로바로 안내를

해야지, 어찌 미적거리는 게야!"

"세 분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저기 뒤에 있는 양이놈들은 안되겠습니다."

손가락질까지 하며 짐짓 기분 나쁜 얼굴로 쌀쌀한 말투를 내뱉는 주모였다. 더구나

양이놈들이라니! 박지현과 이민화의 굵은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러나

박지현과 이민화가 누구던가? 청국 땅에서만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 정도 일로 화를 낼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결코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생각도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세 사람은 되고 저 두 사람은 안되다니. 양인의 돈은 돈이

아니란 말인가? 수고비라면 넉넉하게 낼 터이니 어서 안내하시게."

"죄송합니다요. 손님. 우리 집은 양이놈들을 손님으로 받을 만큼 배알이 없는 집이

아니랍니다."

"이런 발칙한!"

"얘들아! 손님 나가신다. 배웅해 드려라."

주모는 이민화의 서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운두 일행을 내쫓을

생각인지 자기들 패거리를 불렀다. 어느 곳이건 이와 같은 기루에는 자질구레한

뒷일을 해결하며 기생하는 무리가 있게 마련이었다. 홍화루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한 떼의 건장한 청년들이 웃통을 열어제친 채 정운두 일행을

꼬나보고 있었다. 박지현과 이민화는 난처했다. 저들 건달패들은 아무 문제가 될 수

없었다. 허나 기껏 정운두 일행을 안내해 접대 좀 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으니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 이곳 천진에도 자신들과 가까운 세력이

있었다. 그들을 부르면 이와 같은 난관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허나 그들과 자신들의

관계는 이런 일에 손을 벌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언제나 도도하게 대의(大義)

와 명분(名分)을 내세우며 그들을 이끌며 손을 잡지 않았던가. 오늘과 같은 하찮은

일로 인해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를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고 재수 없는 포수는 곰을 잡아도 쓸개빠진 곰만 잡는다더니

이들의 꼴이 바로 그 꼴이었다. 하필 요즘의 시국이 어지러운 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더구나 자신들이 이렇게 만든 책임(?)도 있었으니 무어라 할말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박지현이 이민화에게 말했다.

"어떡할까요? 형님."

"에잉... 할 수 없지 않는가. 저들이 양인들한테는 술을 팔 수 없다는데 우리가 어쩔

것인가? 그렇다고 소란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도..."

"어쩔 수 없네.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수밖에. 지금 청국 백성들의 분위기가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자네가 정운두씨한테 잘 설명하게나."

"... 알겠습니다."

박지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운두에게 설명을 했다. 지금 청국에서 일어난

일들이며 청국 백성들의 양인들에 대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오늘은

이쯤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운두는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가사키만 되었어도 오늘과 같은 수모는 당하지 않는

것인데 확실히 뙤놈들 땅은 별나다는 생각이었다. 다섯 사람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홍화루를 빠져나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짙게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가게로 갈 생각도 없었다. 오늘과 같은 분위기가

어찌 한 가게만의 분위기일 것인가. 전체 홍루의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신 시가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정운두가 말했다.

"이보게. 지현이."

"예. 형님. 말씀하십시오."

"이런 식이면 우리가 하려는 일에 지장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청국 땅 곳곳에서

양인들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노골화된다면 우리가 일을 하는데 어려움이 심할 수도

있겠는걸..."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곳 천진이 유달리 양인들에게 배타적인 분위기의 도시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북경은 이미 여러 나라의 공사관이 있는 곳이기에 별 문제

없고, 다른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돈황과 같은 시골에는 생전가야 양인들

구경도 못했을 건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아쉬워서 어떡헌데야... 참말로 아쉽고만잉...

"

"어쩔 수 없죠. 대신에 북경에 가면 좋은 데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오늘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것이 어찌 자네 잘못이던가. 시절이 하 수상허니 그런 것이제. 그나저나

북경에서는 확실히 객고를 풀어야 쓸 것이구만."

"여부가 있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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