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69화 (269/318)

1.

"뚝딱! 뚝딱!"

"어영차! 어영차!"

"어이! 그 목재는 쩌그로 가야헐 것 아녀! 어여 서둘러!"

"예. 알겠구만요."

왁자지껄한 고함소리도 들리고 망치질 소리와 톱질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무슨 집을 짓고 있는 현장처럼 보였다. 그런데 엄청나게 넓은 땅에 수많은 고루거각(

高樓巨閣)의 골격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었고 거기에서 일하는 하얀 무명옷을 입은

일꾼들의 숫자가 물경 수천은 되어 보이는 게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쪽에서는

일단의 무리가 단청(丹靑)을 그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또 한 무리가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무수히 많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한쪽에 수북히 쌓여져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서 도면을 보며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엄청나게 큰

목재를 운반하는 일꾼들이 누군가의 선창으로 노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힘든 일을 할

때 서로를 격려하고 일의 흥을 돋구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이 여기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었다.

"남문을 열고 파루(罷漏)를 치니 계명산천(鷄鳴山川)이 밝아온다.

(후렴) 에 에헤이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경오사월(庚午四月) 갑자일(甲子日)에 경복궁을 이룩하세.

(후렴) 에 에헤이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도편수(都邊首)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고서 갈팡질팡한다.

(후렴) 에 에헤이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단산봉황(丹山鳳凰)은 죽실(竹實)을 물고 벽오동 속으로 넘나든다.

(후렴) 에 에헤이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남산하고 십이봉에 오작(烏鵲) 한 쌍이 훨훨 날아든다.

(후렴) 에 에헤이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왜철쭉 진달화 노간죽하니 맨드라미 봉선화가 영산홍이로다.

(후렴) 에 에헤이에이야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흐늘거리는 맛과 함께 씩씩한 기상을 느끼게 하는 것이 힘이 절로 나고 어깨춤이

두둥실 추에 지게 만드는 절묘한 노동요였다. 일꾼들이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있는

이곳은 이미 상당한 공사의 진척이 있어서인지 곳곳에 웅장한 건물의 골격이 세워져

있었다. 천군이 도래한 이후에 수많은 토목공사가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단일 토목공사로는 최대규모의 공사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곳은 바로 경복궁(

景福宮) 중건 현장이었다. 조선왕조를 창업한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창건되어 200여

년 동안 조선의 법궁(法宮) 노릇을 해오다 지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왜국의

침입으로 소실되어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것을 지금에 와서야 중건하기 시작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래도 경복궁 중건사업을 시작한지 2년이 넘게 흐른

지금은 전 공정의 8할 이상이 완공을 봤을 정도로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대로 한다면 왕실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가장 시급히 해야했을 일이나

섭정공 김영훈의 주도로 시행되던 여러 토목공사의 우선순위에 밀려 2년 전인 지난

경오년(庚午年 1870년) 4월에야 시작한 공사였다. 천군이 등장한 이후에 무기

판매대금의 유입과 차관의 도입 등으로 인해 국고의 여유가 생겼기에 더 이상

경복궁의 중건을 미룰 수만은 없다고 섭정공 김영훈이 생각하고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조선의 국력에 걸 맞는 정궁(正宮)이 필요하다는 데 조정과 왕실의

이해가 합치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꽹꽹꽹꽹! 새참 시간이오! 새참이 왔어요!"

주변의 뚝딱거리는 소음을 일시에 잠재우는 꽹과리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소리치자

일꾼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새참을 먹으러 향했다. 이미 수랏간 궁녀들이 머리에

큰 광주리를 이고 줄줄이 공사현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

아이구 우리 항아님. 고생허시네요잉." 하는 소리와 함께 궁녀들이 이고 온 광주리를

받아서 내려놓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열심히 도면을 보고 있던 사람들도 새참을

먹으러 향했다. 척 보아하니 도편수와 휘하의 편수, 대목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자리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도편수 어르신."

"그려, 그려. 어서들 먹소. 자네들도 먹어. 얼른."

"예. 어르신."

초로의 도편수 최원식이 수저와 젓가락을 들자 주변의 사람들이 그제서야 분분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새참으로 나온 음식은 풍성했다. 중화참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배가 부를 정도로 넉넉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궁중의 음식이라서

그런지 깔끔하고 정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거기다 맛도 또한 일품이었으니

경복궁 중건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살판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숙부인

김영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임금도 나름대로 호탕했다. 어차피 왕실의 위엄을

세워주기 위해 일해주는 백성들을 알뜰하게 보살피는 것은 당연하다고 임금은

생각하고 있었다. 임금이 경복궁 중건공사에 온 힘을 다하는 백성들을 위무하는 길은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이는 길뿐이 없다는 것을 수랏간에 명해놓은 게

경복궁 중건공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재경부에서 해마다 왕실로

보내는 내탕금의 상당 부분이 일꾼들 먹이는 일로 소요되었지만 내 집을 지어주는

백성들에게 보답하는 길을 이 길뿐이 없다는 임금의 확고한 의식으로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었다. 덕분에 지난 2년 동안 대궐 안에 있는 대부분의 궁녀들, 외명부(

外命婦)에 속한 마나님들과 휘하의 아낙들이 수랏간 일을 도와야 했을 정도였다.

또한 행여 수랏간의 궁녀들이 음식을 소홀히 만들까 염려하여 임금과 중전이 수시로

왕림을 하면서 음식 만드는 일을 점검하였으니 일하는 일꾼들로서는 그런 성군(聖君)

이 없다고 칭송이 자자한 형편이었다. 더구나 섭정공 김영훈은 가끔씩 일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남사당패니 풍물패니 하는 것들을 불러서 위문공연을 펼쳤으니 세상

좋아진 것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었다.

"어르신, 요것 좀 드셔 보십시오. 부침개가 아주 맛깔스럽습니다.."

"내 걱정은 하지말고 자네나 많이 먹어."

최원식은 전유어 한 쪽을 자신에게 내민 부편수 이승업을 쳐다봤다. 오래 전부터

자신을 따라서 목수 일부터 해오던 사람이었다. 천군이 등장한 이후에는 여러 채의

건물을 혼자서 짓기도 했었다. 이제는 독립해서 스스로 일가를 이뤄도 될 실력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더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사양하며 굳이 자신의 옆에서 머무는

이승업이 대견스러웠다. 나이도 자신하고 별 차이 없을 정도의 이승업이었지만

한없이 겸손한 모습을 항상 보여주었기에 그것이 더욱 보기 좋았다. 최원식이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구만. 올해가 가기 전에 모든 일이 끝날 수 있도록 모두들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해야 할 것이야. 알아듣겠는가?"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요. 어르신."

"헌데 어르신."

"응?"

누가 자신을 부르는 가 싶어 최원식이 고개를 돌리는데 거기에 자신의 막내 제자

뻘인 젊은 청년 목수 이호준이 있었다. 자신의 밑으로 들어와 험한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10년이 채 안된 젊은 신참이었다. 10년 동안 한 분야에서

매진하였다면 대단하다고 할지 모르나 목수라는 일이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청년이었다. 최원식은 이 아이가 적어도 10년 이상은 자신의

밑에서 더 배워야 간신히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호준이가 또 무엇이 궁금한 모양이구나. 물어보아라."

"예. 어르신."

이호준은 숨을 가다듬었다. 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놀릴지도 몰랐지만

언제까지 모르는 것을 가슴속에 품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호준의 장점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질문한다는 것이었다. 대개의 조선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도

속으로만 삭인 채 드러내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특이한 청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얼마 있으면 경복궁의 각 건물에 지붕을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벌써 공정이 8할 이상 진행되었으니 지붕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그러면 예전 방식대로 지붕을 올릴 생각이십니까?"

"예전 방식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우리 조선의 전통적인 집 짓는 방식은 지붕의 물매를 잡기 위하여 알매 위에 넣는

지저깨비나, 마루·서까래의 뒷목에 큰 원목을 바리바리 눌러 박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것을 적심을 넣는다고 하지. 헌데, 적심이 왜? 무슨 문제라도 있더냐?"

"지붕 속에 적심을 잔뜩 넣고 거기에 흙을 또 넣고 마지막으로 기와를 올리는 것이

우리 고유의 지붕 올리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했을 경우에 최소한 30년에 한

번은 기와를 들어내고 모조리 갈아줘야만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적심으로

넣었던 나무가 흙 속에서 오래 있으니 습기가 배여 눅눅해지면서 썩게 되고, 그렇게

해서 적심이 가라앉으니 당연히 그 위의 기와가 벌어지면서 틈이 생기게 되고 그

틈으로 물이 새어 속이 썩고 결국에는 단청까지 얼룩이 배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에는 지붕을 다 들어내고 안을 보면 이미 속까지 모조리 썩어있지 않습니까?

그럼 모든 지붕을 다 뜯어내고 새로 올려야 하고."

"그렇기에 기와를 적어도 30년에 한 번씩은 갈아주지 않느냐."

"그렇게 기와를 갈아주어도 결국 흙 속의 습기로 인해 적심으로 박은 나무가 썩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헌데 말입니다. 적심을 아예 넣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응?"

아무 생각 없이 새참을 먹으면서 듣던 최원식과 옆에 있는 다른 편수와 대목들도

어느새 이호준의 얘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비록 30년에 한 번씩 기와를 갈아주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만이 지붕을 모조리 들어내고 새로 짓는 길을 미연에

방지하는 길인 줄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호준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애초에 적심이라는 것은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되는 것이었다. 겨울이

길고 추운 조선의 특성상 난방을 위해 적심을 넣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적심을

넣음으로 해서 지붕의 하중이 많이 나가게 되고 그래서 결국 집의 치명적인 손상을

불러온다는 데 있었다. 당연히 몇 백년을 지탱해도 모자랄 집이 겨우 몇 십년 밖에

수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는 실정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최원식이

이호준을 다시 바라보았다.

"네가 그 소리를 어디서 들었느냐?"

"실은 제가 여러 해 전, 옛날 연희궁(衍喜宮)의 신기도감 본청 건물과 남양의

해군사령부 본관 건물을 지을 때 일을 했었습니다."

"확실히 그런 적이 있었지. 허면 그곳에서는 적심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렸단 말이냐?

"

"그렇습니다. 신기도감의 본청 건물이야 우리 전통의 목조 건물이었는데도 적심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렸으며 남양 해군사령부의 본관 건물은 요즘 유행하는 시멘트와

철근을 섞어서 지은 신식 건물입니다. 헌데 이 해군사령부 본관 건물도 적심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렸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내 신기도감 본청 건물이나 해군사령부 본관 건물이

무너졌다거나 하자가 발생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거늘..."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르신."

"아! 부편수. 자네가 신기도감 본청 건물 지을 때 도편수로 있었지. 그래. 자네가

말해 보게."

원래 이승업이 여러 해 전에 신기도감 본청과 농림도감 본청을 지을 때는 도편수를

역임했었다. 지금이야 조선 제일의 도편수인 최원식이 있었기에 그를 보좌하는

부편수 일을 하고 있지만 혼자서 능히 도편수 일을 맡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호준이의 말이 맞습니다. 어르신. 그때 우리는 공사를 빨리 진행시키라는 천군의

닦달로 밤낮으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지붕을 올려야 할 때가

되었었는데 그때, 지금은 건교부 차관 영감이 되신 천군 공병중대장이라는 분께서

지붕을 올릴 때 적심과 흙을 넣지 말고 올려보자는 얘기를 꺼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깜짝 놀랐지요. 지붕을 올릴 때 적심과 흙을 넣지 않고 올린다는 얘기는 생전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요. 헌데 그분의 주장이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호준이가 말한 대로 적심을 넣을 경우에는 생기는 여러 가지 폐단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아울러 왜국이나 청국의 지붕 올리는 방법도 설명을 해 주시더군요. 제가

듣기에도 일리가 있는 얘기 같았고 또 섭정공 합하의 천군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들이라는 믿음도 있었기에 그분 말씀대로 적심과 흙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렸습니다."

"호-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문제는 없던가?"

"적심과 흙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리니까 지붕이 한결 수월하게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적심과 흙의 무게가 없기 때문인지 건물의 뒤틀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

"예. 그렇습니다. 도편수 어르신."

"음..."

최원식은 고민에 빠졌다. 그도 우리 고유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집을 지을 때는 절대로 쇠못을 쓰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서 짜

맞추기와 나무못만을 사용하는 방식을 고집하고 있던 최원식이었다. 허나, 우리 고유

건축양식의 문제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호준과 이승업이 말한

내용이었다. 우리 고유의 건축양식은 다 좋은데 수명이 짧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잘

지어야 몇 십년에 한 번씩 기와를 갈아주는 것이고 잘 못 지으면 그 사이에 새 집을

지어야만 했다. 기와를 몇 갈아주는 일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비용도

비용이려니와 애초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일이 분명해 보였다. 말하자면 전통의 고수냐 아니면 전통의 틀 안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최원식에게 떠오른 당면 과제였다.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기존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 옳겠는가? 아니면 부편수나

호준이의 말처럼 적심과 흙을 빼고 지붕을 올리는 게 옳겠는가? 기탄 없이 말들

해보게나."

"......"

"......"

모두들 말이 없었다. 문제가 뭔지 뻔히 알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그것을 대놓고

뜯어고치기도 어려웠다. 후대 21세기 한국에서 경복궁 복원사업의 도편수를 맡아보고

계시는 성재(誠齋) 신응수(申鷹秀) 선생이 주장했던 것이 바로 적심과 흙의 삭제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붕의 무게를 줄이고 지붕의 수명과 건축물의 수명을 동시에

늘이게 하자는 것이다. 이웃나라인 일본과 중국의 건축이 그렇게 해서 지어지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몇 백년이 흘러도 건물이 그대로 유지되고 기와도 한 번을 갈지

않는 얘기였다. 단순히 난방을 위해 적심과 흙을 넣었던 것을 이제는 건축물의

수명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신응수 선생은 했던 것이다. 결국 신응수 선생의

주장이 일부 받아들여져 경회루(慶會樓)의 양쪽 추녀를 적심과 흙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렸다. 물론 중앙 부분에는 기존의 양식을 고집하는 일부의 주장으로 적심과

흙을 넣어야만 했지만 어쨌든 전통의 틀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다만 경회루의 중앙에는 기존의 방식 그대로 사용하였기에 몇 십년 후에는 다시

기와를 갈아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양쪽 추녀의 무게를 덜게 됨으로써 건축물의

수명에 상당히 이롭게 작용하는 것은 틀림없었다. 한참을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있던 여러 편수와 대목들 중에서 부편수 이승업이 입을 열었다.

"어르신.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말해 보시게."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조금 있습니다. 지금 당장 지붕을 올려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 사이에 사람을 보내 신기도감 본청 건물과 해군사령부 본관 건물 등 적심과 흙을

넣지 않고 지은 건물의 지붕이 어떤 상태인지 면밀히 분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분석해서 결과가 적심과 흙을 넣지 않아도 되겠다 싶으면 우리도 경복궁의 각 건물에

적용을 해 보는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옛 것을 토대로 새 것을 만들되 그 근본정신은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법고창신. 좋네! 그럼, 부편수 자네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게나. 생각 같아서는 내가 가고 싶지만 나는 이곳에

매인 몸이니 갈 수가 없네. 자네가 몇 사람을 이끌고 가서 확실한 것을 알아보고

오게나. 내 영건도감(營建都監)의 제조 대감께 청을 넣을 것이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다녀오시게나."

"알겠습니다. 어르신."

"그럼, 가서 일들 보시게나."

"예. 어르신."

휘하의 편수와 대목들이 각자의 구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최원식은 가만히

품속에서 담배를 하나 빼 들었다. 궐련이었다. 최원식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깊게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후'하고 내쉬던 최원식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후후후.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더니 드디어 나의

시대도 가려는가? 그래도 저들이 있어서 안심할 수 있겠구만..."

"혼자서 무얼 그렇게 중얼거리고 계십니까?"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리길래 무심코 고개를 돌린 최원식은 그만 깜짝 놀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yskevin에게 있으며, 이 글은 오로지 유조아의 소설란과

다음카페(데프콘 포레버러브, 흉겔의 소설나라)에서만 연재되고 있습니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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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짧습니다. 경복궁 중건 장면을 쓰면서 현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복궁

복원사업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도편수 신응수 선생에 대한 조그만 자료를

찾게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온 "적심과 흙에 대한 얘기"가 바로 그것이지요. 그런데

적심과 흙을 넣지 않고 지붕을 올렸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것은 찾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신응수 선생께 전화로 여쭤볼까 하다가 그냥 제가 상상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말하자면 저의 상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까지 쓰고 올릴까 생각했는데 앞으로 7권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독자

여러분들을 조금이라도 자주 찾아뵙기 위해 지금 올립니다. 더불어서 이 시간까지

저의 졸작을 기다리시는 골캡님, 푸홀스님, 풍륜님 등 大韓帝國記를 사랑해 주시는

애독자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올렸습니다. 이해를...^^

안내 말씀드립니다. 아직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지만 6권이 아마도

수요일이나 목요일쯤에 나올 것 같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 조판을 했으니 충분히

나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6권도 많이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벤트는

다음 연재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123 동트는 새벽...2

"앗! 섭정공 합하를 뵈옵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편수 어르신."

"황공하옵니다. 합하. 헌데 여기까지 어인 일로...?"

섭정공 김영훈이 경복궁 중건현장을 한 두 번 방문하는 것도 아닌데 최원식은

새삼스럽게 황송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나라 조선의 최고실권자가 수시로 공사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과거 같으면 인구에 회자될 일이었으나 김영훈은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가끔씩 경복궁 중건현장을 찾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간편한

생활한복 차림에 한상덕을 비롯한 수행원 몇 명만 대동한 채 최원식에게 온 것이

어찌 일국의 최고실권자의 행차라고 할 수 있을까. 최고실권자의 행차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소탈한 모습이었다. 김영훈은 최원식의 송구한 표정에 오히려 미안한 듯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하. 무슨 일이 있어야 오는 겝니까? 그저 도편수 어르신을 뵙고 싶어서 온

것이지요."

"예."

"어떻습니까?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합하의 염려와 관심 덕분에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다행입니다. 모두가 도편수 어르신께서 열과 성을 다해 힘써 주시는 덕분입니다."

"망극하옵니다. 합하."

"그러지 말고 편히 계십시오. 어르신. 이러시면 제가 외려 불편합니다."

"제가 어찌..."

최원식은 김영훈의 스스럼없는 태도에 더욱 민망해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대접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건만 언제나 민망하긴 마찬가지였다. 김영훈은 중건공사가 한창인

경복궁의 이곳저곳을 둘러볼 심산인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상덕과 최원식이

뒤를 따랐다. 행여 공사에 방해가 될까 염려하여 다른 수행원들은 떼어놓은 단출한

행차였다. 김영훈의 행차를 본 일꾼들이 허리를 굽히고 인사를 하고 다시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미 여러 차례 김영훈이 보았음인지 일꾼들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고 있었다. 경복궁의 정전(正殿)인 근정전(勤政殿)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김영훈이 최원식에게 물었다.

"중건공사에 사용할 재목(材木)이 모자라거나 하진 않습니까?"

"다행히 모자라지는 않을 듯 하옵니다."

"잘됐군요. 저는 근정전 2층 지붕을 받치는 네 귀의 고주(高柱)를 만들 재목이

없다는 말을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고주로 쓰일 목재도 구하셨겠지요?"

고주란 한옥의 여러 기둥 가운데 특별히 높게 세운 기둥을 말하는 것인데 경복궁의

으뜸 전각이고 정전인 근정전의 경우에는 2층을 떠받들던 네 귀퉁이에 고주가 있었다.

헌데, 지난 임진왜란 당시에 소실된 근정전의 네 고주를 만들 재목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최원식에게 물어보는 김영훈이었다. 최원식은 새삼 황송한

표정이었다. 하찮다면 하찮을 수 있는 고주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다행히 고주에 쓰일 재목을 구할 수 있었사옵니다. 합하."

"그래요?"

김영훈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정말 잘됐습니다. 어르신께서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합하.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따름이옵니다."

최원식의 겸양에 김영훈이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웅장한

골격을 자랑하고 있는 근정전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목재와 여러

연장들이 흩어져 있었기에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김영훈의 옆에서 묵묵히

따르던 한상덕이 말했다.

"실상 최 도편수께서는 고주로 쓰일 재목을 구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신 걸로

아옵니다. 합하."

"그래요?"

"그러하옵니다. 합하. 근정전의 고주로 쓰기 위해서는 수령이 최소 200년에서

300년은 되고 높이가 11.5m에 지름은 67cm가 넘어야 하는데 그만한 재목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하옵니다. 다행히 최 도편수께서 전국의 산판을 샅샅이 뒤져 지지난해

겨울 재목을 찾아냈다 하옵니다."

"음..."

김영훈은 근정전 네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고주를 어루만지며 감탄한 듯한 신음성을

토했다. 아직 단청을 칠하지 않아서인지 송진이 묻어나며 손바닥을 찐득거리게

만들었다. 찐득거리는 송진을 두 손으로 비비며 김영훈이 말했다.

"이게 도편수 어르신께서 갖은 고생 끝에 찾아낸 고주란 말이지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장하십니다. 어르신. 정말 장하십니다."

"망극하옵니다. 합하."

"아닙니다. 어르신께서 이 공사에 쏟는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단하십니다. 헌데, 어르신."

"하교하시옵소서. 합하."

"제가 듣기로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소나무를 벌목할 때는 그에 따른 의식과 절차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김영훈은 자신의 아버지뻘 연배의 최원식에게 스스럼없이 높임말을 쓰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이 나라 조선의 최고실권자라고 해도 아버지뻘의 노인에게 함부로

말을 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사옵니다. 합하. 예로부터 궁궐의 동량재(棟樑材)로 쓸 큰 소나무를 베어낼

때는 그에 걸맞은 벌목의식을 행해 왔사옵니다."

"그래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궁궐의 재목감으로 쓰이는 소나무를 벨 때는 함부로 그냥 베는 법이 없었다. 궁궐의

재목으로 쓰이는 만큼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줬다고나 할까. 말하자면 살아있는

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나무의 생명을 뺏는 일이었지만 벌목의식을 행함으로써 궁궐의

재목감으로서 또 다른 생명을 부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벌목의식은

나름대로 절차가 있었다. 먼저 곧은 나무는 곧은 대로, 굽은 나무는 굽은 대로 제

몫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선별하는 엄숙한 과정을 거쳐야했다. 그리고 선별된 나무를

위해 조촐한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산신께 고사를 지낸다. 하늘과 나랏님의

명령으로 불가피하게 나무를 베야함을 알리는 일이었다. 고사가 끝나면 이제

벌목하는 일만 남는다. 정갈하게 목욕재개한 벌목꾼은 "어명이오"하는 소리를 세 번

외친 후에 벌목을 시작한다. 산신의 가호아래 산천의 정기를 받아 수 백년을 꿋꿋이

살아온 나무의 목숨을 뺏는 일은 벌목하는 사람에게도 편치 않는 일이었다. 편치

않은 마음의 벌목꾼이 스스로를 달래는 절차이자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셈이다. 이렇게 벌목된 소나무들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졌고, 기둥·보·도리감의

용도에 따라 적당한 크기로 산판에서 잘려진 후에 건조와 제재, 치목(治木)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천년 궁궐의 건축재로서 두 번째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 민족이 얼마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나무 하나를 베는데도 그런 절차와 의식이 있다니... 우리 민족의 품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군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특히 대대로 건축자재로 사용하는 소나무는 우리 민족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호-오. 그래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김영훈은 점점 최원식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다. 최원식도 처음의 어색함이 많이

희석되었는지 도도한 언변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최원식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합하께옵서도 "어라하 만수 어라하 대신, 성주 본향(本鄕)이 어데메인고, 경상도

안동 땅에 제비원이 본향이라…."로 이어지는 성주풀이를 들어보셨을 것이옵니다."

"들어보았지요. 지지난해 경복궁 중건을 시작하면서 내수사(內需司) 무당들이

성주풀이를 하지 않았습니까? 헌데, 성주풀이는 왜요?"

"이 성주풀이에 소나무가 우리 민족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 내력이 나와 있사옵니다."

"그래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사온데 들어보시렵니까?"

"어디 한번 들어보십시다."

"성주신(城主神)이 우리 민족 전례의 집지킴이 가운데 으뜸 신으로 집안의 길흉화복(

吉凶禍福)을 관장함을 합하께옵서도 잘 알고 계실 것이옵니다."

"그렇지요. 그건 저도 알고 있답니다."

본디 성주신과 솔씨(소나무 씨앗)의 근본이 안동 땅 제비원인데 원래 천상 천궁에

있던 성주신이 죄를 짓고 땅으로 유배를 왔다고 한다. 땅에 내려온 성주신은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다가 강남제비를 따라 제비원으로 들어가 숙소를 정했다.

헌데, 제비원에서 바라본 인간 세상은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하여 나무 위에 살거나

땅을 파고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고 집 없이 사는 인간들에게

집을 지어 주고 싶어했다고 전한다. 성주신은 하느님에게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을

전해들은 하느님이 크게 감동하여 응답하시기를 "제비원에서 솔씨를 전해 받으라."고

했다 한다. 성주신은 솔씨를 전해 받아 온 산천에 골고루 뿌렸고 소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집 지을 재목감이 되자 그 중에서 자손번창하고 부귀공명을 누리게 해 줄

"성주목"을 고르게 하였다. 이 성주목은 "산신님이 불 끄러 오시고 용왕님이 물을

주고 키운 나무"이기에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였다. 날을 받아 갖은 제물로 산신제를

올린 뒤에 베고 다듬어 집을 지었다. 이 때 성주신은 대들보에 좌정하였으므로

상량신(上樑神)이라고도 한다. 성주풀이는 성주신의 근본과 솔씨의 기원이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에 있으며 이곳에서 솔씨가 생겨나 전국으로 퍼졌다는 설화를 노래한

것이다. 이 내력으로 인해 성주풀이는 새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여 성주신을

맞아들이는 성주굿에서 불리고, 음력 정월 초에 집안의 안녕과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성주받이굿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집의 대주가 성주대를 잡게 하여 성주신을

내리시게 했다. 이때 성주대를 사용하는 것이 소나무였고 이 소나무는 집을 지은

나무의 상징이자 성주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집을 지을 때 주요 건축자제로 소나무를

사용하였고 그 소나무를 신격화하여 모심으로서 집안의 안녕과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는 소박한 신앙의 표현이었다.

"오호라! 그래서 성주풀이를 하는 것이군요. 저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렇사옵니다. 이렇게 소나무와 우리 민족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음... 그럼, 궁궐을 지을 때 하고많은 소나무 중에서 굳이 금강송(金剛松)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알기로도 우리 조선에 자생하는 소나무의 종류가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우리 조선에 자생하는 소나무는 크게 네 종류가 있사옵니다. 먼저 합하께옵서

말씀하신 금강송이 있고 두 번째로 곰솔이 있사옵니다. 이 곰솔은 바닷가에서 주로

자란다고 하여 해송(海松)이라고도 부르지요. 세 번째로는 잎이 쟁반처럼 퍼졌다

하여 이름지어진 반송(盤松), 네 번째로는 중국 땅에 주로 자라는 백송(白松)이

있사옵니다. 정조대왕께옵서 청국에서 종자를 들여와 심은 충청도 보은 땅의 백송이

유명하지요. 헌데 이 많은 소나무 중에서 강원도 일대와 경상도 북부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금강송을 궁궐을 지을 때 주재목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금강송이 나무가

곧고 길게 자라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금강송이 잘 썩지 않는

나무이기 때문이옵니다."

"잘 썩지 않는다구요?"

"그렇사옵니다. 합하. 금강송을 달리 천년송(千年松)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사옵니다. 금강송을 사용하면 천년이 지나도 목재가 썩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굳이 금강송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최원식의 말대로 금강송은 잘 썩지 않는 나무였다. 경상도 안동에 있는 봉정사(

鳳停寺) 극락전(極樂殿)이 그것을 증명한다. 봉정사는 67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에 수많은 중건과정을 거치는데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에 마지막으로 중건되었다. 이때 사용된 소나무가 금강송이다. 2003년에

문화재청과 충북대 연륜연대 연구팀은 국내 최초로 봉정사 극락전에 사용된 금강송의

나이테 연륜 분석을 실시했다. 나이테 분석결과 최소한 6백년동안 고쳐짓지 않은 채

원형을 유지해 온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극락전에서 나온

나무들의 상태가 현재 목재로 다시 사용해도 좋을 정도로 부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썩지 않는 금강송, 해답은 바로 촘촘한 나이테에 숨어있었다. 금강송은 같은 굵기의

일반 소나무에 비해 3배나 나이테가 조밀했다. 더구나 황장(黃腸)이라 불리는

나이테의 붉은 부분은 송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송진은 나무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금강송을 보호하기 위해 황장금표(黃腸禁標)

를 세워 벌채를 금했다. 만일 금강송을 사사로이 벌목하면 곤장 백대와 3년의 형을

살았으니 금강송을 보호하기 위해 쏟은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저는 왜 금강송을 고집하는지 여태 몰랐답니다.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도편수 어르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합하와 같은 분 덕분에 저희 같은 미천한 것들도 살아갈 수

있음을 소인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미천하시다니요. 우리 조선이 어르신 같이 일 평생을 한

길만을 바라보고 매진해오신 분들이 대접받는 나라가 되는 게 저의 바람입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더구나 신분의 벽이 없는 시대에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아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어르신."

"송구하옵니다. 합하."

김영훈의 말이 맞았다. 지금의 조선은 신분의 벽이 허물어진 사회였다. 올해 시작된

제 2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 용단을 내려 전국의 사노비를

조정에서 사들였고 사노비를 사들이면서 덩달아서 신분제도를 혁파한 상태였다. 물론

그에 따른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조정에서 제 2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 사노비를 사들였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신분의 벽을 허무는 일임을

일부 머리가 있는 사대부들은 알고 있었다. 사노비를 포함한 천민이 조선 인구의

3할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3할 중에서 사노비의 비중은 9할이 넘었다. 9할이 넘는

사노비들을 한꺼번에 일반인으로 환원하였을 때 기존의 양반사대부가 느낀 충격은

엄청난 정도였다. 더구나 사노비만 해방된 것이 아니라 그동안 천대받던 광대와 백정,

무당 등 모든 천민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양반상놈의 신분상의 구분까지 없앴으니

그 파장이 실로 만만치 않았다. 비록 양반을 포함한 백성들의 권리와 의무라는 것이

신분의 구분 없이 시행된 지가 6,7년에 이른다고는 하지만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이미 양반들도 일반 상민들처럼 군역의 의무를 지고 있었고 세금을

균등하고 납부하고 있었다. 더구나 양반에게만 주어지던 관리로의 등용의 길도

천민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에게로 확대된 지 오래였다. 과거를 없애고

성균관대학이나 사관학교 출신 중에서 시험을 통해 관리를 뽑았으니 일반 천민들도

성균관대학과 사관학교에 입학하던 지금은 아무런 신분상의 차별이 없는 시대였다.

각 고을의 관아에 있던 관노와 관기의 해방이 있은 지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약간 늦은 감이 없지 않게 있었다. 다만 양반과 중인,

상민과 천민의 경계만큼은 굳건히 지켜지고 있었기에 그걸로 나마 위안을 삼았던

양반사대부였다. 헌데, 올해부터는 그러한 신분의 경계마저 허물어졌고 사유재산이랄

수 있는 사노비마저 조정에서 여러 공장과 국영 기업체에서 일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반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해방시켰으니 반발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그들의 시대가 아니었다. 섭정공 김영훈은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고 그것을 뒷받침할 힘이 있었다. 더구나 일반 백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를 지지하는 층은 그동안 억압받고 살던 상민과

천민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중인은 물론이고 생각이 트인 양반사대부와

진보적 성향의 종친들의 지지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일부

몰락한 양반사대부들이 거스를 수는 없었다. 당연히 그런 움직임과 목소리는 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수그러들고 말았다. 이제는 변화의 흐름에 동참하여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야 하는 것이 당면 과제였으니 김영훈의 개혁을 거스를 수 있는 세력은

조선 땅에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개국이래 가장 막강한 군사력과 그것에

기반을 둔 경제의 활성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송구해하는 최원식을

뒤로하고 김영훈이 말했다.

"경복궁 중건사업에 투입된 일꾼들의 숙련도는 어떻습니까?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들도 잘 적응하고 있사옵니다. 합하."

"그래요? 좋은 일이군요. 저는 저들이 잘 적응하지 못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만..."

"저들도 조선 사람이 분명하옵고 조선 사람이라면 자기 집을 지을 수 있는 기본적인

목공 실력은 갖추고 있는 형편이옵니다. 만일 그런 목공 실력이 없다면 저들이

경복궁의 쓰러져 가는 담벼락에 무단으로 집을 짓고 잘지도 못했을 것이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군요. 일반 백성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고 했으니

저들이 이 일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겠군요."

지금 두 사람이 말하는 저들이란 바로 임진왜란 이후에 쓰러져 가는 경복궁의

담벼락에 무단으로 집을 짓고 살던 천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몇 백년 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두었던 경복궁인지라 집도 절도 없는 일부 유민들과 천민들이 그

담벼락에 보금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나둘 야금야금 생기기

시작한 불법가옥들이 작금에 와서는 근 수백 가구를 헤아릴 지경이었으니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어차피 없애야할 불법 가옥을 철거하고

청파에 새로운 집을 지어주고 이주비를 주어 이주하게 한 후에 일거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경복궁 중건사업에 투입한 일이었다. 조정에서는 양질의 노동력을 값싸게

얻어서 좋고 일꾼들은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받게 되어서 좋은 일이었다.

"아무튼 도편수 어르신께서 끝까지 좋은 모습으로 경복궁 중건의 막중한 대업을

이루시기를 빌겠습니다.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이 나라 2천만 모든 백성의 한결같은

마음일 겁니다.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망극하옵니다. 합하. 성심을 다하여 주상전하와 합하의 은혜에 보답하겠사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혹시라도 무슨 문제나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운현궁으로 오십시오. 도편수 어르신이라면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망극하옵니다. 합하. 살펴 가시옵소서."

멀어져 가는 김영훈의 모습을 보면서 최원식이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했다.

눈자위에 물기가 번지는 게 상당한 감동을 받은 듯 보였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yskevin에게 있으며, 이 글은 오로지 유조아의 소설란과

다음카페(데프콘 포레버러브, 흉겔의 소설나라)에서만 연재되고 있습니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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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택되신 의견이나 건의는 저자가 판단하여

글의 진행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케빈입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올립니다. 원래 오늘 연재가 지난 연재에 같이

포함되었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런데 글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부득이하게 잘라서

올렸습니다. 이해를...^^;; 사실, 오늘 연재는 지난밤에 올리려고 했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와 채팅을 즐기느라 글을 미쳐 쓰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밤을 새서 글을

쓰고 이제야 올립니다.^^;;

6권이 나왔습니다.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풀린다고 합니다. 6권도 많은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책 좀 많이 사 주세요!!!!! 아니면 주변의 책방에 강력하게 압력을 행사해

주시는 것도 환영합니다.^^;;

그럼, 6권 이벤트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6권 이벤트는 써클마스터님이 주신

의견대로 하겠습니다. [글 속의 보물찾기] 본문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문구를

찾아서 올려주는 겁니다. 물론 메일로 제게 보내주시는 거죠. 예를 들어(이것은

써클마스터님의 예입니다.) ex)이게 가장 웃깁니다. 그래서 맘에 듭니다.(왜녀의

살랑거리는 궁둥이 구경이 취미)...ㅡㅡ;;; 이런 식으로 말이죠. 지금까지 연재된

내용 중에서 아무 거나 찾아서 보내주시면 추첨을 통해서 6권을 우송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이벤트 방식에 대한 저의 질문에 답해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별로 많지는 않지만... -_-;; noname님, 뿔뿔루수카이님, 써클마스터님, 백호(白虎)

님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이분들 중에서 백호(白虎)님은 이미 증정본을 받으셨으니

제외하고 noname님, 뿔뿔루수카이님, 써클마스터님께 6권 증정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세 분께 감사 드립니다.(이분들 중에서도 전에 이벤트에

선정되신 분이 계시면 다른 분께 기회를 넘길 것입니다.) noname님, 뿔뿔루수카이님,

써클마스터님 어서 주소와 전화번호 우편번호와 이름이 적힌 메일을 보내주십시오.

책은 제가 받는 대로 우송해 드리겠습니다. 아울러 다른 독자들께서도 이벤트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다음 연재는 토요일에 올립니다.^^

P.S : 실제 역사에서 근정전 고주는 크기에 맞는 금강송 재목을 구하지 못해서

하나의 고주만 금강송으로 하고 세 개의 고주는 전나무를 사용했답니다. 근데,

이것을 그냥 네 개의 고주 모두 금강송을 사용하여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124 동트는 새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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