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파병 조선군 총사령부 소속 사관의 안내를 받으며 한 방으로 들어간 오경석은
어리둥절했다. 처음 보는 세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조선 사람으로
보였고 두 사람은 서양 사람이었다. 오경석을 안내한 사관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벼운 목례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방안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처음 보는
세 사람 중에서 오경석보다 약간 어린 듯한 조선 사람으로 보이는 이가 말했다.
"북경 주재 조선 공사 오경석 영감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오경석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영감. 저는 왜국 쥬신상사의 부사장 정운두라고 합니다."
"가만... 왜국의 쥬신상사라면?"
"그렇습니다. 영감의 매제 되시는 전준호 사장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오경석은 정운두의 정체를 알아보고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필경 자신의 매제인
전준호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가끔씩 편지를 통해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라고 할지라도 이처럼 전준호의 최측근에 있는 사람이 직접 소식을
가지고 온 경우가 없었기에 더욱 반가운 오경석이었다. 정운두도 정겨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쪽은 제 매제인 토마스라고 합니다. 조선 이름으로는 정도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분은 검재선 선생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영감."
"안녕하세요."
정운두의 여동생과 혼인한 토마스는 조선식의 이름을 새로 만들었는데 처갓집의 성을
그대로 딴 정씨에다 토마스를 뜻하는 도마를 이름으로 하였다. 처갓집의 성을 자신의
성으로 삼는 반인륜적인(?) 망동은 조선에서 있을 수 없었지만 정운두도 그런
토마스의 제의가 싫지 않았기에 그대로 굳어지게 되었다. 조선식으로 하자면
정도마라고 불러야 했지만 그의 위상이라는 게 결코 적지 않았고 처음부터 토마스란
이름이 익숙해져 있었기에 굳이 정도마라고 칭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운두
마저도 정도마라는 이름보다는 토마스가 편했으니 다른 사람이야 오죽 할 것인가.
토마스는 이미 조선인 아내와 산지 6년이 넘었기에 조선말이 능숙했고 검재선도
조선에서 산지 1년이 넘었기에 조선말을 어느 정도는 구사할 수 있었다. 조선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두 서양인이 오경석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헌데 이곳 청국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아니 그것보다 우리 동생 내외는 잘 지내고
있답니까?"
정운두 등 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보다도 동생 내외의 안부가 더욱 궁금한
오경석이었다. 정운두는 그의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꺼내들었다.
"먼저 이것을 보십시오. 영감. 사장님 내외분께서 영감께 전해드리라는 서찰입니다."
"오!"
오경석은 정운두의 손에서 편지를 건네 받더니 그 자리에서 읽어 내려갔다. 편지는
모두 두 통이었다. 하나는 전준호가 보낸 것이고 하나는 누이동생이 보낸 것이다.
특별한 내용은 없는 단순한 안부 편지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생 내외의 따뜻한
마음씨에 절로 마음이 훈훈해지는 오경석이었다. 한참동안 편지를 읽던 오경석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특별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청국말에 능통하고 청국 사정에 밝은 대정원 요원이
있으면 몇 분만 저희들에게 붙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청국땅 어디든지 무사 통과할
수 있는 통행증 같은 게 있으면 얻어주시면 됩니다.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 대정원이나 외무부에서 이곳 요원들에게 따로 협조공문이 갔을 것입니다."
"그래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제게 말씀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죄송합니다. 영감. 대정원이나 외무부에서 협조공문을 보냈을지 모르는데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조금 곤란합니다."
정운두는 빙그레 웃으면서 무슨 일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어차피 오경석이
알아도 상관없는 일이었고 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공적인 자리에 있는
그에게 자신이 나서서 일의 전말을 알리는 것이 어딘가 어색했다. 그리고 그가
알기로는 이미 대정원이나 외무부에서 협조공문을 북경 주재 조선 공사관으로 발송한
것으로 아는 데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공문이 도착한 후에
말해도 모든 것을 말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오경석의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키고 있었다. 왜국 쥬신상사의 부사장이라는 신분으로
봤을 때는 절대 공직에 몸담고 있거나 나랏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대정원이나 외무부를 들먹이고 있었다. 그것으로 봐서는 나랏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완고하게 거절하는 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궁금한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사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미 북경 주재 조선 공사관에는 대정원에서 오경석에게로 보낸 협조공문이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다만 오경석이 며칠 전에 천진에 도착하여 파병 조선군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조선
공사관에서 대기하고 있던 대정원 요원들이 대정원의 지시로 천진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병인년(丙寅年 1866년) 이후 쥬신상사도 많은 성장을 했다. 조정의 도움을 받아서
출범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양적, 질적 팽창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있었다.
그동안 조선에서 개발한 여러 신제품을 각국으로 수출하여 톡톡한 재미를 본
쥬신상사는 나가사키뿐만 아니라 왜국과 청국의 여러 곳에 지점을 내었다. 왜국에 네
곳, 청국에 다섯 곳의 지점이 새로 생김으로써 크게 성장한 쥬신상사는 나가사키
지점장인 전준호를 전 왜국 쥬신상사의 사장으로 임명하였고 정운두가 부사장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병인년(1866년)에 해주제철소가 준공되면서부터 하지마 섬의
탄광에서 생산되는 역청탄(瀝靑炭)을 전량 조선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쥬신상사
나가사키 지점에서 하지마 섬을 매입하면서부터 조정에서 일괄구매 하기로
예정되었던 일이었기에 판로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정운두와 토마스가 추진했던
우레시노 차의 수출도 순조로웠다. 우레시노에 세웠던 제다공장에서 질 좋은
우레시노 차가 대량생산되면서 왜국은 물론이고 청국, 멀리 서양까지 수출할
정도였다. 쥬신상사의 나가사키 금은거래소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조선과 청국, 왜국을 연결하는 삼각무역의 길목에 있던 나가사키는 멀리 홍콩의
금은거래소에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을 일거에 해소하는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경쟁상대인 홍콩을 앞지르고 있었다. 더구나 금은거래소에 들어온 금과 은은
고스란히 조선은행으로 유입되었고 조선은행에서는 쥬신상사 나가사키 금은거래소에
그동안 외국에서 차관이나 전쟁 배상금으로 받은 외화를 대금으로 지불하였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거래상대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병인년(1866년) 아프리카로
건너간 토마스는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글로버 다이아몬드사(社)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토지와 광상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는 조선에 귀화한
토마스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이라는 점이 큰 이점으로
작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준호가 얘기했던
남아프리카와 나미비아 등지의 여러 장소에서 연거푸 다이아몬드를 채굴할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별이라고 불리는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의 광상에서 연거푸 채굴되기 시작한 다이아몬드는 토마스에게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 부라는 것이 쥬신상사로 고스란히 들어가는 것일지라도 그의
성공은 엄청난 화제 거리였다. 다이아몬드의 채굴에 성공한 토마스는 인도인 출신의
세공기술자들을 불러들여 가공을 했고 그렇게 가공한 다이아몬드는 고스란히
쥬신상사의 조선 본사로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 해군 장보고급
잠수함의 은밀한 다이아몬드 수송작전이 있었다. 독일이 2차 대전에 사용했던 U-21이
장보고급 잠수함의 원형이었고 U-21의 작전능력이라는 것이 한 번 보급을 받고
출항을 하면 대서양을 건너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가서, 그곳에서 3~4주일
작전한 후에 연료 재보급 없이 독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였으니 장보고급 잠수함이
남아프리카로 가서 다이아몬드를 수송해 오는 것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상을 소유한 토마스는 남아프리카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토마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형제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이미 어머니와
여동생이 조선에 살고 있었고 막내 동생은 그를 도와 남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
광상을 관리하고 있었다. 정운두도 나름대로 바쁜 생활을 보냈다. 병인년(1866년)
이후에도 왜국의 정국은 안정되지 않고 있었다. 막부를 반대하는 여러 소요사태가
잇따라 터지면서 정국의 불안을 가중시켰고 사쓰마번과 같은 토막파(討幕派)가
기승을 부렸던 제번(諸藩)에서는 언제 막부와 일전을 벌일지 몰랐다. 더구나 1863년
사쓰마·영국전쟁 이후에 영국과 급속도로 가까워진 사쓰마번은 해마다 영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해군의 육성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해군이 강했던 사쓰마번은 꾸준히 영국으로부터 해군
함정을 수입하여 지금은 막부도 무시할 수 없는 해군력을 길러놓은 상태였다. 이처럼
불안한 왜국 정국을 틈타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왜국 쥬신상사
부사장 정운두였다. 토마스와 함께 처음 우레시노 차를 계약하기 위해 방문했던
우레시노에서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왜국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예를 만났던
정운두는 임진왜란 이후 왜국으로 흘러 들어간 조선의 국보급 문화재의 구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올 수 있을까
고민하던 정운두는 전준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하나둘씩 야금야금 우리 문화재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죠슈번이 사라지면서 야마구치 일대의 지역 유지들이
덩달아서 몰락하는 틈을 타 상당한 양의 우리 문화재를 구입 또는 탈취할 수 있었고,
그 후에도 왜국의 정국이 혼란한 틈을 이용해 상당한 양의 왜국의 국보급 문화재를
음성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있었다. 이때, 탈취 또는 수집한 품목 중에서는 왜국의
유명한 국보급 문화재-이것들도 대부분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들이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석상신궁(石上神宮)의 칠지도(七支刀)와 광륭사의
목조 미륵보살반가사유상(彌勒菩薩半跏思惟像), 법륭사(法隆寺)의 백제관음상(
百濟觀音像)과 몽전관음보살입상(夢殿觀音菩薩立像), 고려시대의 미술작품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조선초기 화가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등이
유명했다. 그리고 가장 구입과 운반에 어려웠던 문화재를 꼽으라면 쓰루가(敦賀)에서
입수한 신라 범종(梵鐘)을 꼽을 수 있었다. 전체높이 111cm, 구경 66cm의 상당한
크기의 범종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범종 중에서도 세 번째로 큰 범종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했던 오타니 요시쓰쿠(大谷吉繼)가 약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범종을 운반하기 위해 쥬신상사의 상선이 쓰루가까지 가야만
했을 정도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던 일이다. 얼마나 정운두가 이 일에 힘을
쏟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었다. 사기업이면서도 공기업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쥬신상사와 야마구치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연대의 도움과 지원에
힘입은 결과였다. 물론 일부 돈에 눈 먼 막부 고관의 도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욕심
같아서는 왜국의 유명한 건축물까지 해체하여 조선으로 옮겨오고 싶었던
정운두였지만 그렇게 할 경우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었기에 후일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정운두가 갖은 고생과 막대한 금액을 뿌려가며 수집하고 탈취하고
취득한 우리 문화재들은 즉시 조선으로 옮겨져 문교부 차관 이창훈의 지휘아래
안전한 곳에 보관되기에 이르렀고, 정운두는 이 공으로 민간인 최초의 금관(金冠)
문화훈장(文化勳章)을 수여 받게 되었다. 개성의 평범한 중인 출신의 정운두가
민간인 최초의 1등급 훈장 수여자라는 명예까지 덤으로 얻은 일은 그의 가문에
두고두고 회자될 엄청난 영광이 되었다. 말하자면 가문의 영광이었다. 혼인까지
제쳐두고 그 일에 매달려온 정운두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정운두가 활약할 또 다른 기회가 왔으니 다름 아닌 조선군의 청국 파병이었다.
상하(常夏)의 나가사키의 4월은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이번에 청국에 거주하는 3국 거류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군을 파견한다는
소식은 나가사키의 쥬신상사 왜국 본점에도 알려졌다. 조선군이 청국에 파병한다는
소식은 평소처럼 거리에 나가 왜녀들의 살랑거리는 궁둥이를 구경하던 정운두에게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즉시 전준호를 찾았다. 전준호는
정운두의 취미생활을 잘 알고 있었다. 한가한 시간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나가
지나가는 왜녀들과 서양 여자들을 구경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그러한 취미생활을 즐길
시간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 신기했는지 전준호가 한마디했다.
"어쩐 일입니까? 취미생활을 팽개치고 오시고."
"사장님. 지금 취미생활이 문제가 아닙니다."
"왜요? 무슨 큰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큰 일이라면 큰 일이지요."
정운두의 결연한 표정에 이 양반이 무슨 일을 또 저질렀나 하는 생각을 하던
전준호가 다시 물었다.
"뜸들이지 말고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인지."
"사장님. 저를 청국으로 보내주십시오."
"청국에요? 청국에는 왜요? 청국 유녀(遊女)들이 부사장을 부르기라도 합니까?"
"에이, 사장님은 제가 여자밖에 모르는 놈인 줄 아십니까?"
전준호의 일부러 놀리는 말에 정운두가 눈을 살짝 흘겼다. 그도 전준호의 농담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사장님도 아시겠죠? 청국에 우리 조선군이 파병된다는 것을요."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헌데, 그 문제하고 부사장이 청국에 가는 것하고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생각을 해 보십시오. 사장님. 우리 조선군이 청국에 파병한다면 이번처럼 우리 조선
사람들이 어깨에 힘주고 돌아다닐 기회가 언제 또 다시 오겠습니까."
"그래서 이번 기회에 청국 여자라도 하나 꿰차시겠다?"
"사장님!"
거듭 전준호의 놀리는 말에 정운두가 고함을 꽥하고 질렀다. 정운두가 정말 화가 난
듯 하자 전준호가 정색을 했다.
"그러니까 어서 말씀해 보세요. 무슨 일인지."
"우리 조선군이 청국에 파병하는 마당에 우리 조선의 위상이라는 것은 말도 못하게
올라갈 것 아닙니까?
"그래서요?"
"또한 청국에서 전국적인 소요사태가 발생하는 이 때가 기회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때에 청국에 있는 쓸만한 유물이나 골동품을 우리 조선 사람이라면 보다 쉽게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청국으로 가면 청국의 유물과 공돌품을 모조리 싹쓸이
해오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제 생각이. 지난번 왜국에서처럼 비교적 손쉽게 여러
유물들을 훑을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호-오!"
전준호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미 정운두의 번뜩이는 재기는 익히 알고
있던 전준호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또 다시 이런 말이 나오자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정운두의 계획을 한참을 곱씹던 전준호의 입이 열렸다.
"그럼, 혼자 가실 생각입니까?"
"음... 이번에는 토마스를 데려가고 싶습니다."
"토마스까지요?"
"그렇습니다. 당분간 토마스가 남아프리카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성 싶고, 또
청국말도 능숙하니 데리고 다니면 쓸모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음... 그럼 이렇게 하세요. 토마스와 검재선씨를 같이 데리고 가세요. 요즘 검
선생과 토마스가 많이 친하다고 하던데. 그리고 서양인들이 오히려 그런 일을 더 잘
할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둘 다 일종의 실향민이라고 할 수 있어서 친하게 지낸다고 하더군요."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일등항해사 출신의 검재선은 외인부대에서의 소양교육을 마치고
나가사키의 쥬신상사 왜국 본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토마스도 비슷한 시기에 남아프리카에서 돌아왔기에 두 사람은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토마스도 영국에 의해 착취당하고 스코틀랜드 출신이었고 검재선도 영국의
지배를 받는 아일랜드 출신이라서 그런지 서로 죽이 잘 맞았다.
"그리고, 제가 조선에 연락해서 세 분을 도울 일을 알아볼 테니까 청국에 가서
도움을 받으세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사장님."
"정운두씨가 하려는 일이 어디 정운두씨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하는 일인가요? 내가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는 길을 알아볼 테니 최선을 다해 수집해 오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러나 개인적인 착복은 없어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하이고메. 사장님은 절 여지껏 모르십니까? 지난번 왜국 각지에서 수집한 그 많은
유물들을 고스란히 조정에 헌납한 것을 보고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참말로
섭섭합니다."
"알아요. 알아. 이만 가서 준비할 것 있으면 하세요. 이왕에 가기로 결정했으면 빨리
가도록 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 왜국 쥬신상사와 토마스의 글로버 상회도 이제
틀이 잡혀 있으니 뒷일은 걱정하지 말구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전준호는 정운두가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쥬신상사의
나가사키 지점을 세울 때부터 줄곧 같이 생활해왔던 두 사람이었다. 그동안 숱한
어려움을 함께 헤쳐온 형제와도 같은 두 사람이었다. 중인이라는 신분상의 어려움과
일을 하면서 자연히 생기기 마련인 부정에 대한 여러 가지의 유혹을 꿋꿋이 이겨내고
이 자리에까지 올라온 정운두는 그런 의미에서 입지전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매제가 되는 토마스는 또 어떻던가. 정운두의 여동생과 혼인하여 조선으로
귀화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외가 홀로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가서 숱한
어려움을 이기고 다이아몬드 광상을 매입하여 그것을 고스란히 쥬신상사에 바치는
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 일을 스스럼없이 마친 사람이 바로
토마스였다. 정말이지 눈곱만치도 사심 없이 일을 행해 온 토마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과 같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쥬신상사가
있을 수 있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전준호는 말은 안 했지만 항상 두 사람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신이 났군. 신이 났어. 그나저나 청국에 있는 쓸모 있는 유물이라면 뭐가 있을까?
음..."
전준호는 생각에 잠겼다. 정운두의 생각은 정말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아직까지
제국주의 열강의 본격적인 청국 수탈도 없을 때였다. 그러했기에 상대적으로 여러
유물이나 골동품이 많이 남아있을 터였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서 발견되는 여러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대해서도 생각이 미쳤다. 이런 것들은 말 그대로 먼저 찜 해
놓는 놈이 임자나 마찬가지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더구나 청국이 혼란한 때를
이용하자는 생각도 좋아 보였다. 나라가 시끄러울수록 일반 백성들은 돈이 되는
물건들을 수중에 지니려고 하는 법이다. 또한 먹고살기 힘들면 자연히 그런 물건들을
팔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하면 충분히 값진 유물들과
골동품들을 수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잘만하면 좋은 것들을 수집할 수 있겠는데... 진시황릉(秦始皇陵)도 발견되기
전이고 병마용갱(兵馬俑坑)도 그렇고... 음... 은허유적(殷墟遺蹟)도 그렇지. 히야.
이런 데를 발굴하기만 하면 정말 엄청난 일이 될텐데..."
여기까지 생각한 전준호는 가슴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발굴이
될 것을 생각하니 온몸에서 전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지고 말았다.
"그런데, 진시황릉이나 병마용갱, 은허유적 같은 데를 어떻게 우리가 차지한다는
말인가. 청국땅 한복판에 있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곳들을 발굴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야 할 것인데. 딴 건 몰라도 우리 민족의 흔적이랄 수 있는
은허유적만큼은 차지하고 싶은데..."
전준호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운 먹이였다. 문제는
그것들을 먹을 방법이 없다는데 있었다. 한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진시황릉이나
병마용갱도 놓치기 아쉬웠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인 은허유적은 정말이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방법이 없었다. 청국땅 한복판에 있는 은허유적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중국 대륙을 조선이 모두 먹지 않는 이상 이것들을 차지할 수
없었다. 어차피 발굴은 천천히 해도 된다. 조선에서도 여러 역사 유적과 유물의
발굴은 아직 시행하지 않고 있었다.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석굴암(石窟庵)에 대한 복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복원하고 발굴하는 일은 단순히 그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복원하고 발굴한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문제였다. 당장 복원할
실력도 없을뿐더러 유물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도 없었다.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미흡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문화재의 발굴과 복원도 후일을
기약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남의 땅에 있는 것까지 발굴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발굴을 하지 않고 단지 차지하는 것조차도 어려웠으니 전준호의
마음이 쓰린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한참을 끙끙 앓던 전준호는 일단 조정에 연락해
보기로 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천상 조정의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설령 앞에서 열거한 유적들을 차지할 수는 없어도
정운두의 생각을 전하고 무언가 도움 받을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나가사키
주재 조선 공사관으로 달려간 전준호는 수수께끼 암호해독기를 이용해 정운두의 뜻을
대정원의 한상덕에게 알렸다. 그리고 도움을 청했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여러 유물과 골동품에 대한 자료뿐만 아니라 자신의 여러 유적에 대한 생각까지
물었다. 며칠 후에 회신이 왔다. '정운두의 생각은 참으로 혁신적인 생각이다.
어차피 가만 놔두면 서양 제국주의 열강에서 차지하게 될 것. 우리가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의 회신이었다. 다만, 앞에서 전준호가 열거한 유적들에 대한
것은 접어두라는 내용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는 현실이었으니 그냥
놔두라는 얘기였다. 한상덕은 덧붙여서 여러 자료를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19세기
청국으로부터 서양 각지의 수집상들에게로 팔려나간 유물과 골동품에 대한 세세한
목록이 적혀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에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팔려나간 중국 유물들도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자료도 첨부되어 있었다. 특히
한상덕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무슨 일이 있어도 회수할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북경 주재 조선 공사관의 도움과 몇몇 대졍원 요원들을 붙여주겠다는
호의까지 보였다. 더불어서 쥬신상사에서 입을지 모르는 손실에 대한 보전까지
약속했다. 한마디로 원하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소리였다.
조국 조선에 충성하려는 충정으로 가득 찬 정운두와 토마스, 검재선의 청국 유물
입수작전이 시행되기에 이르렀고 파병 조선군에 합류하여 천진으로 건너가기 위해 세
사람은 급히 조선으로 건너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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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입니다. 오늘은 좀 여태까지와는 조금 다른 에피소드였습니다. 어차피 딴 놈들이
차지할 것 우리가 먼저 먹어버리자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내용도 있어야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 지난 회 연재 말미에 6권 출판 이벤트에 대한 의견을 물었었는데
불행히도 백호(白虎)님 한 분 빼놓고는 아무도 의견을 주지 않으셨더군요. ㅠ.ㅠ...
그냥 이벤트 하지 말까요? ^^;; 좋은 의견 있으면 보내주세요. 아니면 제 맘대로
하렵니다.^^ 그럼, 이만...
P.S : 사신령(이주원)님. 님에게 보낸 5권이 돌아왔어요. 어서 다시 전번과 주소를
보내주세요. 빨리요.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122 동트는 새벽...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