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66화 (266/318)

6.

"난리가 났다! 난리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생겼소?"

"어여 피난 갈 준비나 허쇼! 앞 바다가 새까맣소!"

"예? 그게 무슨 말이오? 앞 바다가 새까맣다니?"

"궁금하면 직접 가보슈! 앞 바다에 어느 나라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이양선이 잔뜩

몰려왔다오!"

"예? 그게 사실이오?"

"말시키지 말아요. 나도 더 이상은 모르니까. 나는 가서 피난 보따리나 싸야겠소."

정오가 약간 안된 지금, 천진은 술렁이고 있었다. 구 시가지에 사는 천진부 백성들은

난리가 났다는 소식에 피난 보따리를 싸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일부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바닷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덕분에 천진부 포도아문의 순검들은

난리가 났다며 피난보따리를 싸고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거리로 나선 피난민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조선군이 상륙할 예정이라는 조정의 공문이 천진부

관아에 도착한 때가 어젯밤이었다. 하루밤 사이에 이 소식을 천진부 백성들에게 알릴

수도 없었고 알릴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겨우 조선군이 상륙하는 것으로

천진 시내가 발칵 뒤집힐 것으로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천진 앞

바다가 새까말 정도로 엄청난 대 함대를 목도한 일부 어리석은 백성들이 피난

보따리를 꾸리고 거리로 나서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천진부에서는 급히

포도아문의 모든 순검들을 동원하여 동요하는 피난민들을 달래야만 했다. 포도아문

순검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전말을 깨달은 천진부 백성들이 이번에는 앞 바다에

몰려든 조선군을 구경하겠다고 너도나도 바닷가로 향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조선 사람도 그렇지만 청국 사람들도 돈 안 드는 구경이라면 빠질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반대로 신 시가지에 거주하는 서양 제국(諸國)

거류민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하려는 듯 삼삼오오 짝을 이뤄 바닷가로 모여들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한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베일에

쌓인 조선 해군의 전력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흥분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있을 뿐이었다. 5월의 무더운 날씨에 웃통을 활짝 열어제친 청국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닷가로 몰려들었고, 꼴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서양인 신사들과

잔뜩 멋을 낸 성장(盛裝) 차림의 숙녀들이 양산을 쓰고 신 시가지의 외항으로

모여드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옴메! 저게 다 조선 해군이란 말여?"

"그렇다잖아. 저놈들이 언제 저런 양선을 저렇게나 많이 만들었데...?"

"제놈들이 만들었을라구. 양이놈들한테 샀겄지."

"그렇겠지? 그래도 그렇지. 정말 어마어마하구만..."

천진부 백성들은 엄청난 조선 해군의 위용에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속국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조선에서 저런 어마어마한 해군을-그것도 모조리

양선으로만 이루어진- 육성했다는데 감탄과 함께 질투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서양 거류민들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조선 해군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영·프·미 3국 연합함대를 무찌를 것을 그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의 위용을 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에 그 경악의 정도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서양 거류민들이 운집해 있는 외항의 한 복판에 경비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몇몇 사람들이 조선 해군의 위용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

공사 오경석과 웨이드 영국 공사, 벨로네 법국 공사와 로우 미국 전권공사가

그들이었다. 오경석이 떨리는 가슴을 안고 말했다.

"어떻습니까? 우리 조선 해군의 위용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

"......"

"......"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다. 엄청난 충격에 얼이 빠진 세 사람의 모습은 오경석의 얼굴에

고소(苦笑)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말로만 듣던 조선 해군이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조선 해군의 위용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물론, 세 사람만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경석도 말로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여태 청국에만 주재하고

있었기에 해군의 발전상을 눈으로 본 적이 없던 오경석이었다. 그가 느낀 충격도 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약간 성격이 다른 충격이었다. 오금이 저리고 정신이

멍할 정도의 경악에서 오는 충격과 공포를 세 사람이 받고 있다면 오경석이 받은

충격은 가슴이 저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용솟음치는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멍한 정신을 추스른 웨이드 경이 말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우리 조선 해군의 위용이 대단하지 않느냐고 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대단하지요?"

"대단하군요. 특히 저기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두 척의 장갑함(?)과 주변의 약간

작은 크기의 장갑함들은 처음 보는 것들이군요."

막상 말은 이렇게 했지만 웨이드 경이나 옆의 벨로네 공사, 로우 전권공사가 느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가 물밀 듯이 밀려오는 형국이었다.

웨이드 경이 가리키는 전함은 제 1왕립근위함대의 기함인 광개토태왕함과 제

1왕립친위함대의 기함인 태종대왕함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작은 장갑함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명림답부급 경순양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원래 조선 조정에서 세운

계획은 김종완의 제 1왕립근위함대와 친위천군을 청국에 파병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청국에 파병하는 조선군의 주둔지가 여러 군데로 나눠지는 것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천진, 상해, 남경, 광주 등 총 네 군데의 대도시에 조선군을 나눠

파병하는데 각각의 대도시에 보통 1개 연대를 파병하여 주둔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송선과 호위함대가 필요했고 그래서 윤정우가 지휘하는 제 1왕립친위함대까지 모두

동원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지금 네 사람이 보는 조선 해군의 위용은 그렇기에 더욱

막강해 보였다. 두 척의 광개토태왕급 전함과 네 척의 명림답부급 경순양함, 다섯

척의 을파소급 구축함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풍경일 터였다. 거기에 양무함을 비롯한

여덟 척의 장갑 호위함 또는 목조 호위함과 마지막으로 풍백급 호위함 세 척까지,

모두 스물 두 척의 전투함과 백두산급 수송선 두 척을 비롯한 수송선단 60여 척이

한꺼번에 천진 앞 바다에 정박해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압권이었다. 가시거리

밖에서 21세기 첨단 전투함인 이순신함이 강력한 레이더를 운용하며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상사에 대비하고 있었고, 바다 밑에는 장보고급 잠수함 여러 척이 초계하고

있는 것까지 이들이 알았다면 그 충격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을 것이나

지금 눈에 보이는 함대만으로도 이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이들이

알고 있는 서양 제국(諸國)의 해군 함대와는 차원이 다른 조선 해군의 위용은

엄청났다. 이들이 알고 있는 당대 최고의 전함인 워리어급 전함의 길이가 겨우

116미터에 불과한데 지금 보이는 조선 해군의 광개토태왕함과 태종대왕함의 길이는

무려 188미터에 이르렀고 명림답부급 경순양함의 길이가 160미터에 이르렀으니 그

충격과 공포가 어느 정도일지 실감할 수 있었다. 원래, 지금 시대 서양에서 건조하는

함정의 톤수 계산법은 현대적인 톤수 계산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조선 해군은

20세기의 미래에 확립된 톤수 계산법으로 함정을 건조하였으니 전근대적 톤수

계산법을 사용하고 있는 서양의 함정들과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길이로만

따지면 을파소급 구축함도 워리어급 전함보다 더 길었으니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결과는 당대 최고의 전함인 워리어를 능가하는 전투함이 한꺼번에 열 한 척이나

출현한 작금의 상황은 세 사람의 넋을 앗아가기에 충분한 위용이었다. 정말이지

엽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조선 해군의 위용이었다.

오경석은 웨이드 경이 물어보는데도 할 말이 없었다. 자신도 처음 보는 해군의

위용인지라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인데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그가 어떻게 대답을 해야하나 난감해 하고 있는데 멀리서 조그만 증기함 한 척이

다가오는 게 눈에 띠였다. 조선의 국기인 태극기와 해군기, 그리고 사령관이

탑승했음을 알리는 사령관기가 나란히 게양되어 있는 증기함은 조선 해군에서

연락선으로 사용하고 있는 광재함이었다. 지난 병인년(丙寅年 1866년), 평양을

침범했던 제너럴셔먼호가 바로 지금의 광재함이었다. 광재함의 주변으로는 풍백급

함정 세 척이 천천히 호위를 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수많은

수송선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외항에 바로 접안할 수 있는 작은 수송선들이 먼저

병력의 일부와 탑재하고 있는 물자를 하역할 모양이었다.

"저기 보십시오. 파병 조선 해군 사령관께서 승함한 배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세 사람은 일제히 쌍안경을 들어 얼굴로 가져갔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조선 해군사령관이라는 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은 욕심의 발로라고나 할까?

일단의 사람들이 경비 병력의 옹휘를 받으며 함수에 서 있는 모습이 세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조선 해군사령관 겸 제 1왕립근위함대 사령관 김종완과 친워천군

사단장 안용복, 제 1왕립근위함대 부사령관 이원희와 참모들이었다.

"어느 분이 파병 조선군 총사령관이십니까?"

웨이드 경의 물음이었다. 웨이드 경도 일전에 이미 이원희는 한 번 만나봤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알기로 이원희가 조선 해군사령관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저기 함수 가운데 서 계신 분이 조선 해군사령관 겸 '청국 주재 3국 공관과 거류민

보호를 위한 파병 조선군' 총사령관이신 김종완 제독이십니다."

"조선 해군 정복을 입고 계신 키 큰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웨이드 경이 다시 쌍안경을 들었다. 오경석이 말한 대로 함수 중앙에 키가 큰 장성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일반적인 조선 사람들보다는 훨씬 키가 큰 조선 해군사령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옆에 서 있는 얼룩무늬 옷을 입은 이의 키는 그보다 더 커 보였다.

참모들의 키도 상당히 큰 게 지난날 본 평범한 키의 이원희와는 상당히 달라 보였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물씬 풍기는 모습이었다. 오경석과 세 사람이 김종완 일행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새 그들이 탄 배가 부두에 닿았다. 먼저 처음 보는 형식의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일단의 경비 병력이 튀어 내리며 사주경계를 했다. 이어서

김종완과 그의 참모들이 차례로 내렸다. 네 사람은 기다렸다는 듯이 김종완

일행에게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 대감.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오경석 영감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이미 김종완과 한 차례 안면이 있는 오경석은 파병 조선군 수뇌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는 웨이드 경을 비롯한 세 사람을 그들에게 소개시켰다.

"사령관 대감. 이들이 바로 영·법·미 3국의 공사들이옵니다. 인사들 나누시지요."

"안녕하십니까? 사령관각하. 영국 공사 웨이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사령관각하. 법국 공사 벨로네입니다."

"미국의 전권공사 로우라고 합니다. 먼 길에 고생하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조선 해군사령관 김종완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한 세 사람은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170cm가 넘는 큰 키의

자신들이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김종완의 키가 큰 것도 기분 나빴지만 영어를

막힘 없이 구사하는 데 더 기분이 나빴다. 자신들은 이들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시피 한 형편인데 조선 측에서는 자신들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 더욱 기분 나빴던 것이다. 무엇 하나 조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점이 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침통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어색한 웃음을 머금은 웨이드 경이 말했다.

"사령관각하. 저쪽으로 가시지요. 사령관각하와 조선군을 환영하는 조촐한 환영식을

준비했습니다."

"아닙니다. 웨이드 경. 일단 장병들과 보급품을 하역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도 병력을 파견해야 하는 마당에... 환영식은 다음으로 미루지요."

"그래도..."

"받은 걸로 하겠습니다. 먼저 사령부 건물을 한 번 봤으면 좋겠는데요. 어떻습니까?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요?"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좋군요. 바로 사령부를 설치하고 임무를 시작하도록 하죠. 우리가 여기 놀러온 게

아니니까요. 앞장서십시오."

여기까지 말한 김종완은 참모들에게 하역작업을 서두를 것을 명령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렇게되자 세 사람의 표정은 눈에 띠게 어두워졌다. 그렇다고 김종완의

말을 거스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할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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