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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기-262화 (262/318)

2.

"호호호호호호!"

서태후은 자신의 거처인 서육궁(西六宮)의 저수궁(儲秀宮)으로 돌아오자 마자 교성(

嬌聲)을 터트렸다. 건방진 공친왕의 콧대를 꺾어준 것이 여간 통쾌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우시옵니까? 마마."

"오... 어서 오너라. 아해.(兒海)"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운 말이 들리자 서태후의 얼굴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아해는

바로 안득해(安得海)라는 환관을 부르는 서태후만의 애칭이었다. 안득해는

서태후에게 다가오자 마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발 밑에서 한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안득해를 바라보는 서태후의 안색은 색기(色氣)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안득해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경석이 선사한 금강석 반지가 끼어져 있는

오른손이었다.

"너도 오늘 봤지 않느냐. 혁흔(奕 )의 그 표정을 말이다."

"아! 저도 봤사옵니다. 마마."

안득해는 대답을 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고 살며시 입맞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이홍장의 회군이 강남으로 출병하게 되어 기분이

몹시 언짢을 것이옵니다."

"이를 말이더냐. 자신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증국번이 죽었다. 이제는 왼팔이라

할 수 있는 이홍장까지 곁에 없으니 어찌 속이 편하겠느냐. 애가 좀 탈 것이니라...

호호호호!"

"맞사옵니다. 마마. 헐헐헐헐!"

안득해는 서태후의 말에 장단을 맞추며 그녀의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기다란 모조

손톱을 낀 오른손을 나긋나긋하게 주무르는 것이 예사로운 사이는 아닌 걸로

보여지는 두 사람이었다. 안득해는 환관이라서 그런지 웃음소리도 요상했다. 마치

접시 깨지는 소리와 간드러지는 듯한 소리가 합성된 것 같은 안득해의 웃음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아해야."

"말씀하시옵소서. 마마."

"네가 볼 때 오경석이라는 조선 공사가 믿을 만 하더냐?"

"오경석 조선 공사 말이옵니까?"

"그래. 그가 선물이라고 하여 받기는 받았다만 어째 좀 그렇구나."

서태후는 안득해에게서 자신의 오른손을 살짝 빼더니 마치 금강석 반지를 자랑하듯이

오른손을 요리조리 돌려보았다. 안득해가 말했다.

"무엇이 말이옵니까? 마마."

"소국인 조선 공사에게서 뇌물을 받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구나. 자칫 공친왕이

알게되면 또 다른 공격의 빌미만 제공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구..."

안득해는 천천히 일어나며 서태후의 뒤로 돌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대며

천천히 주무르기 시작했다. 서태후는 시원했다. 마치 뼈가 녹는 것 같이 시원함을

느꼈다. 서태후의 어깨를 천천히 그러면서도 나긋나긋하게 주무르던 안득해가 입을

열었다.

"시원하시옵니까? 마마."

"그래 참으로 시원하구나. 어찌 이리도 시원할꼬..."

"마마."

"응? 말해 보거라."

"조선은 소국이옵니다. 그리고 여태 우리 청조에 충성을 다하던 속국이옵니다."

"음... 그렇긴 하지..."

"그런 나라의 공사 나부랭이가 무엇을 원하고 마마께 값비싼 금강석 반지를

선물하였겠사옵니까? 그저 조선이라는 나라를 잘 굽어 살펴주십사 하는 것이겠지요."

"그럴까?"

"그렇지 않구요."

"응..."

서태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충실한 신하의 나라로써

예를 다했던 조선이다. 이제 와서 조그만 땅 때문에 척을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그 땅을 조선이 차지한다면 자연스럽게 아라사와 부딪힐 것이니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마마."

"말해 보거라."

"제 말이 맞았지요? 공친왕이 꼼짝 못할 거라고 하지 않았사옵니까?"

"오냐, 오냐..."

"이제 마마께옵서 큰 걸음을 내딛은 것이나 다름이 없사옵니다. 대통을 향한 큰 걸음

말이옵니다."

"호호호... 별 말을 다하는구나..."

서태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흡족한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공친왕의 한 팔과 같은

이홍장의 회군을 강남으로 출병시킨다는 계책은 원래는 안득해가 내놓은 계책이었다.

안득해는 공친왕의 한 팔인 이홍장을 강남으로 출병시키기만 한다면 눈에 가시 같은

공친왕을 제거하기는 여반장(如反掌)과 같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홍장이 강남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 때 공친왕을 천천히 고립시키고, 그렇게 한 연후에 공친왕을

제거하려는 심산이었다. 공친왕의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이홍장이 자신의

회군을 이끌고 강남으로 출병한다면 공친왕을 제거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지금 출병한다면 회군이 아무리 강력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1년 안에는

북경으로 되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그럼 그 안에 공친왕을 도모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저변이 깔린 계책이었다. 어차피 공동 섭정인 동태후는 이런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공친왕만 제거한다면 자신들의 손으로 조정을

틀어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여우같은 동태후를 처치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서태후는 새삼 안득해가 예뻤다.

허수아비 황제 함풍제가 죽었을 때는 정말이지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저

함풍제가 임명한 여덟 명의 고명대신의 손에 무참히 죽임을 당할 날만 기다리던

자신이었다. 그때 안득해가 나타났다. 원래부터 대단히 준수하게 생긴 용모를 가지고

있던 안득해를 볼 때면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녀였다. 저 놈이 어떻게

해서 환관이 됐을꼬... 그런 안득해는 생긴 대로 머리도 잘 돌아갔다. 함풍제가 죽고

나서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해야만 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차에 안득해가 살 길을 열어주었다.

함풍제의 황후인 동태후를 설득할 계책을 알려준 것도 안득해였고, 목숨을 걸고

북경의 공친왕과 연락을 취한 것도 안득해였다. 자신의 밀지를 머릿속에 숨겨놓고

가서 공친왕과 담판을 지은 것도 안득해였다. 또한 함풍제가 죽은 연후에는 홀로

독수공방하던 자신에게 운우(雲雨)의 참 맛을 일깨워주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어제는

조선 공사라는 자까지 데려와서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크기의 금강석 반지까지 선물

받게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정말이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람이 바로

안득해였다. 그러나 서태후가 모르고 있는 게 있었다. 안득해가 오경석을 구워삶아서

금강석 반지를 선물로 준 것이 아니라 오경석이 안득해를 구워삶아서 자신을 배알한

것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홍장의 회군을 강남으로 출병시켜 조선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실로 만만치 않음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사실, 안득해는 환관이되

물건이 달린 환관이었다. 함풍 5년인 1855년, 12살의 나이로 환관이 된 안득해는

양물을 잘랐지만 이상하게 양물이 다시 자랐다고 한다. 원래부터 뛰어난 용모의

소유자였던 안득해가 함풍제 사후에 서태후의 총애를 받았던 데에는 다 그런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서태후가 어디 보통 여자였던가. 정력이 절륜하기로는 겨눌 상대가

없는 서태후였다. 아무리 안득해가 한창 팔팔한 나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색탐을 다

받아줄 수는 없었다. 그때 등장한 이가 바로 대정원의 비밀 요원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서태후와 선을 댈 생각을 하던 대정원에서는 안득해의 고민을 해구신

몇 개로 일거에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더불어서 재물을 좋아하는 환관의 약점을 잘

파악하여 온갖 값진 보석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물론, 그의 사가(私家)

에 그만을 위한 어린 숯 처녀들을 진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교적 손쉽게

안득해에 대한 공작을 성공한 대정원에서는 어제 드디어 오경석으로 하여금 서태후를

배알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금강석 반지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토마스 글로버를 대리인으로 내세운 쥬신상사가

남아프리카에서 채굴한 다이아몬드는 보석광인 서태후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당연히 뒤에 이어질 공작이 있었지만 서태후나 안득해는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잡은 후에 인생을 즐기면 그뿐이었다.

"오늘따라 우리 아해의 손이 왜 이리도 나긋나긋하누..."

서태후는 오경석이 선물한 반지가 끼워져 있는 오른손을 올려 어깨를 주무르는

안득해의 손을 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끌었다.

"어머! 어머! 마마. 이제 젖어미들이 들 시간이옵니다.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마마.

"

계집처럼 호들갑을 떠는 안득해였지만 오히려 서태후에게는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원래 서태후는 매일 오후가 되면 애기 엄마의 젖을 먹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었다. 젊은 애기 엄마의 신선한 모유를 먹음으로써 미모와 피부의

탄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애용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서태후의 몸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이것저것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미 시중들던 궁녀들도

안득해가 오자 알아서 몸을 피한 상태였다. 누구도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못하는데

그깟 젖어미들이 좀 기다린다고 대수일까.

"기다리라고 하여라. 지깟 것들이 기다리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 이리 오너라."

"아이! 이러시면 아니 되는데..."

안득해는 살포시 서태후의 품에 안겼다. 말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그의 손은 이미

서태후의 가슴을 훑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정염(情炎)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yskevin에게 있으며, 이 글은 오로지 유조아의 소설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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