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좌중의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처럼 보이자 김영훈이 입을 열었다. 김영훈은
먼저 국방대신 신헌을 불렀다.
"위당(威堂) 대감."
"하교하시옵소서. 합하."
"위당 대감께서는 지금 즉시 김종완 해군사령관에게 전문을 보내도록 하세요. 내용은
이번 해전에서 승전한 것을 축하함과 동시에 제 1왕립 근위함대 전 장병들의 노고를
주상전하께서 각별히 치하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명을 받잡겠사옵니다. 합하."
"아울러, 이번 해전에서 침몰한 3국 연합함대의 전투함에 승함하고 있던 승무원들의
구조작업과 사로잡은 포로들의 구휼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이르세요. 가용 가능한
모든 배를 동원하여 연합함대 승무원들을 구조하시고, 숨이 붙어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치료하라 이르세요.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음입니다.
해군에서도 그만한 준비는 하고 있었을 겝니다. 아울러 수송선단에 승선하고 있는
포로들에게 어떠한 가혹행위도 금지한다고 이르세요. 우리 조선이 비록 승전했지만
포로들을 학대한다거나 가혹행위를 한다거나 한다면 국제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합하."
"그리고, 사로잡은 모든 포로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단 강화도로 이송하라고
하세요. 저번에 보고를 들으니 강화도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사단에서 포로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러하옵니다. 합하. 이미 양헌수 장군이 지휘하는 해병사단에서 포로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했다고 하옵니다. 합하. 그 점은 심려치 않으셔도 될 듯
싶사옵니다."
"좋군요... 위당 대감을 믿겠습니다. 헌데, 이번에 한성순보(漢城旬報)의 종군기자도
취재를 하기 위해 제 1왕립 근위함대에 동승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것이
사실입니까?"
"한성순보에서 사진기자와 취재기자 몇을 제 1왕립 근위함대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합하."
"음... 잘됐군요. 위당 대감께서는 관계부처와 협의하여 한성순보가 전하는 승전
소식이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 빠른 시일 내로 알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아울러 이번 해전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빠짐없이 기사화하여 조선의 이천만
백성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세요."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합하. 하온데..."
"말씀하세요."
"지금의 열흘에 한 번 발행되는 한성순보의 가능으로는 한번에 그 많은 소식을
알리기가 어렵지 않겠사옵니까?"
"그것도 그렇군요... 음..."
김영훈과 신헌이 한성순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데 재경대신 김기현이 나서며
말했다.
"합하. 위당 대감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열흘에 한번 발행되는 한성순보로는 그 많은
소식을 모두 알리기가 어려울 것이옵니다. 하여, 차제에 한성순보를 하루에 한번
발행하는 일보로 그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 어떠하올른지요?"
"일보로 확대한다...?"
"그러하옵니다. 합하."
신헌과 김기현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열흘에 한번 발행되는 한성순보로는 잡다한
소식을 싣는 것도 벅찰 지경인데, 거기에 이번 해전에서의 승전 소식까지 모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땅히 하루에 한번 발행되는 일보로 전환되는 것이 순리였다.
김영훈은 김기현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감의 말씀이 맞소. 시대의 흐름상 열흘에 한번 발행되는 순보는 하루에 한번
발행되는 일보로 당연히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점은 여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 문제도 관계부처와 잘 협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세요. 아직까지 민간에서
발행되는 신문이 없는데 차제에 민간에서 신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겠군요."
"맡겨주시옵소서. 합하."
김기현의 당찬 대답에 김영훈은 만족했다. 김영훈은 대충 그 문제가 마무리된 듯
싶자 이번에는 박규수를 찾았다.
"환재(踏齋) 대감."
"신 외무대신 박규수 예 있사옵니다. 합하."
"대감께서도 저들 3국 연합함대에 일단의 외교관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아시겠지요?"
"알고 있사옵니다. 합하."
"그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영·법·미 3국에서 고위급 외교관을
파견한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도 그에 걸 맞는 상대를 보내 저들의 진정한 목적을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감의 뜻은 어떻습니까?"
"마땅하고 옳으신 판단으로 사료되옵니다. 합하."
"허면, 외무부에서는 격에 맞는 관리를 강화도로 파견하여 한 번 만나보도록 하세요."
"명을 받잡겠사옵니다. 합하."
김영훈은 명은 쉴새없이 이어졌다. 외무대신 박규수에게 몇 가지를 지시한 김영훈은
이번에는 최초로 승전을 보고한 대정원장 한상덕을 불렀다.
"한 원장."
"예. 합하."
"사로잡은 포로들의 심문도 필요한 일이겠지요?"
"당연히 포로들에 대한 심문이 있어야 할 것이옵니다."
"포로들의 심문에 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한 원장에게 일임할 터이니, 최선을 다해
심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까지 각 군 정보기관이 없는 관계로 대정원에서 이
일을 맡아주셔야 하겠습니다. 수고 좀 해주세요. 대신 아까 말한 대로 일체의
가혹행위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심려치 마시옵소서. 합하."
"그리고, 이제 우리 군도 많이 근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군
자체 정보기관이 없는 것이 좀 아쉽습니다. 대외정보원 만으로는 정보수집이나 분석
등 기타 여러 가지에서 손이 달릴 것입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육군과 해군에
정보만을 전담하는 부대를 창설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데... 한 원장의 뜻은
어떻습니까?"
"참으로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합하. 아예, 각 군에 정보부대를 편성하고, 그
정보부대를 총괄하여 지휘할 수 있는 사령부를 신설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음... 정보부대를 총괄할 수 있는 사령부라..."
김영훈은 한상덕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그동안 대정원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을 해 온 것이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한상덕이 지휘하던 특수수색대대 3중대
병력으로 대정원을 창설하여 꾸려왔었는데, 그러다 보니 극심한 격무에 시달린 것도
사실이었다. 국내 정보수집은 물론이고, 해외정보수집까지 대정원이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리고, 대정원은 창설 초기에 비해서
엄청나게 비대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조직이 비대해지면 비대해질수록
내부의 부정과 다툼도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이야
한상덕이 뛰어난 리더쉽과 청렴한 조직관리로 대정원을 잘 이끌어왔다고는 하지만,
모든 대정원 요원들이 한상덕과 같을 것이라는 기대는 금물이었다. 더구나 군
정보기관이 없이 군에 관련된 모든 사항까지 대정원에서 도맡다시피 하는 작금의
현실은 자칫하면 군과 대정원과의 마찰이나 알력을 유발할 공산이 컸다. 지금까지는
나라를 새로 세운다는 신념으로 주먹구구식 월권행위 등, 모든 것이 용인되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오늘 이렇게 군 정보기관의 신설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확실하게 매듭을 짖고, 정확한 기준과 체계를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꺼번에 모든 체계를 만들 수는 없지만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영훈은 생각했다. 어차피 내년부터는 의금부도 독립적 사법기관인
검찰로 개편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더욱 잘됐다 싶었다.
"좋습니다. 한 원장은 국방부를 비롯한 관계부처와 잘 협의하여 이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 짖도록 하세요. 우리가 알고 있는 군 정보기관이 그 본이 될 수 있을 겝니다.
허나, 대정원과 창설될 군 정보기관의 관계는 제대로 정립하여야 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엉뚱한 알력과 다툼이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한 것이 정보기관의
특성이니... 상호보완하고 감시하면서 경쟁하는, 그런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믿으시옵소서. 합하."
대충 3국 연합함대를 물리치고 난 뒤처리를 마무리짓고 있는데 이번에는 여태 가만히
있던 국무대신 김병학이 나섰다.
"합하. 신 국무대신 김병학 긴히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말씀해 보세요."
"예. 합하.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우리 해군에서 3국 연합함대를 무찔렀다는 쾌거를
이룩하였는데, 그것을 기념하여 전국에 사면령을 내리는 것은 어떠하올른지요?"
"사면령요?"
"그러하옵니다. 합하. 고래(古來)로부터 나라에 경사가 있으면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
君主)는 그 경사를 모든 백성들과 나눌 수 있도록 사면령을 내렸사옵니다. 그것은
나라에 우환이 들어도 마찬가지였사옵니다. 나라에 큰 가뭄이 들 경우에 군주는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여, 스스로 검약한 생활로 백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금주령을 내리고 가축의 도살을 금지하기도 했었사옵니다. 또한 죄를 지어 옥에
가두고 있는 죄인들을 석방하는 사면령을 내려 위신(威信)과 인덕(仁德)으로
백성들을 보듬었다고 하옵니다. 오늘 우리 조선 해군이 이룬 승전은 전자(前者)의
경우로 마땅히 온 백성들과 이 기쁨을 같이 나눠야 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합하."
"영초(穎樵) 대감의 말씀이 맞습니다. 여가 잠시 그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깨우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초 대감."
"황공하옵니다. 합하."
김병학의 말에 김영훈은 속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전후처리에 대한 것만
생각했지 사면령을 내려 백성들과 기쁨을 함께 나눌 생각은 미쳐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국무대신 김병학이 그런 자신을 깨우쳐 준 것이다. "늙은 생각이 맵다."
라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김영훈의 뒤에 앉아서 회의 돌아가는 사정을 가만히
지켜보던 임금의 얼굴에 화색이 돈 것도 김병학의 말이 있은 직후였다.
한상덕으로부터 해군의 승전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부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몰랐던
임금은 장인인 김병학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더욱 기꺼워하게 되었다. 김영훈이
임금에게 말했다.
"전하. 영초 대감의 의견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과인도 마땅히 사면령을 내려 만 백성들과 함께 오늘의 기쁨을 같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옳은 일입니다. 숙부."
"알겠사옵니다. 전하. 하오면 전하께서 내리시는 사면령을 전국에 시행하도록
조치하겠사옵니다."
김영훈은 임금에게 가볍게 고하고 나서 법무대신 이세보에게 명을 내렸다. 오늘의
승전을 만 백성들과 함께 나누겠다는 주상전하의 교서를 각 고을에 하달하고 즉시
시행하라는 명이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승전에 대한 모든 처리가 마무리된 듯 하자
임금이 김영훈을 불렀다.
"숙부."
"예. 전하."
"과인이 숙부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
난데없이 청이라니? 김영훈은 임금의 말에 잠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임금의
청이라면 당연히 들어줘야 하는 것이지만, 그 청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다.
"말씀해보시옵소서. 전하."
"과인이 오늘처럼 기쁜 적이 없었어요. 정말이지 우리 조선 500년 역사이래 최대의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오늘의 승전을 이룬 우리 해군 장병들을 과인이
직접 위로하고 싶어요..."
"마땅히 위로하셔야지요. 당연한 일이옵니다. 전하."
김영훈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당연한 일을 새삼스럽게 말하는 임금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임금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과인이 직접 덕적군도에 행차해도 되겠습니까?"
"예-에? 지금 말입니까?"
김영훈의 눈이 똥그래지는 것이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난데없이 지금
덕적군도로 행차하겠다는데 놀라지 않고 배겨낼 수는 없었다. 평소 어떠한 경우에도
위엄을 잃지 않았던 김영훈의 놀란 모습은 그만큼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임금의
얼굴에는 개구쟁이 시절의 치기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정말이지, 오늘의 승전을 일궈낸 우리 해군 장병들을 꼭 보고싶어요. 숙부. 그리고
60여 척의 대함대가 모조리 수장 당한 역사의 현장을 과인의 이 두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어요. 부탁이에요. 숙부."
"허-어! 이것 참! 난감한 일이로세..."
임금이 우리 나이로 스물이 넘었고 두 명이 여인과 한 아이를 둔 남편이요,
아버지라고는 했지만 아직은 무언가 미숙하고 철이 덜 든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면 한국에서는 겨우 대학생 정도에 불과할 나이였다. 따라서
역사에 빛날 위대한 승전을 일궈낸 장병들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그 현장을
보고싶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영훈의 생각은
달랐다. 어차피 임금 전용의 증기선이 있기에 덕적군도까지 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정작 문제는 아직까지 그 일대가 제대로 전장 정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에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해도 겨우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경과했을 것인데, 그 참혹함이라는 것은 말로는 형용하지 못할 정도일 것이 분명했다.
60여 척에 이르는 전투함이 모조리 침몰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투함에 승함하고
있던 승무원들이 못돼도 1만에서 2만은 됐을 것이다. 최소한 1만의 승무원이 죽은
현장은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지옥에 임금이 행차하고
싶다고 한다. 김영훈은 난감했다. 그런 생지옥과 같은 곳에 임금을 모시고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적이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1만이 넘게 희생되었다. 그런 곳에 가서 희희낙락할 수는 없었다. 아니,
희희낙락하지 않더라도 임금을 그런 곳에 모시고 갈 수는 없었다.
"전하. 제가 생각하기에 지금 덕적군도 일대로 행차하시는 것은 어려울 듯
싶사옵니다. 이제 겨우 전투가 끝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지라 아직까지
전장 정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또한 전하가 친히 행차하신다면
장병들의 사기는 크게 오를 것이 틀림없지만 반대로 장병들이 임무를 수행하는데
불편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그럴까요?"
임금은 눈에 띠게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역사적인 해전의 현장을 자신이 직접 가서
그 결과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김영훈의
소리에 모든 기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임금의 풀이 죽은 모습을 보던
김영훈의 마음은 씁쓸했다. 잠시 잠깐 마음을 돌려먹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임금의 표정은 안쓰러울 정도였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하는데 머릿속에 무언가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전하."
"말씀하세요. 숙부."
예의 잔뜩 풀이 죽은 음성이었다.
"전하께서 직접 전장에 나가시는 것보다 더 좋은 구경거리가 있사옵니다."
"예? 그게 뭔가요? 숙부."
"그것은 바로, 우리 조선 해군 최초의 관함식(觀艦式)을 여는 것이옵니다."
"관함식요? 그게 뭔데요?"
관함식이라는 말에 임금은 호기심이 동했다. 당연히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소리가 김영훈의 입에서 나왔다면 구경거리도 보통의 구경거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함식이란 해군 함정을 모아놓고 그 위용을 점검하는 일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바다에서 벌이는 열병식(閱兵式)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바다에서 벌이는 열병식이라...?"
"그러하옵니다. 전하. 우리 조선 해군의 모든 함정을 모아놓고 전하께옵서
사열하시는 것이옵니다. 생각해 보시옵소서. 전하. 얼마 있으면 윤정우 제독의 제1
왕립 친위함대도 북양도에서 돌아올 것이옵니다. 그럼, 김종완 해군사령관의 제1
왕립 근위함대와 윤정우 제독의 제1 왕립 친위함대의 모든 함정을 바다에 모아놓고
전하께옵서 친히 사열을 하신다... 대단하지 않겠사옵니까?"
"관함식이라... 관함식."
임금의 얼굴에는 방금의 풀이 죽은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나는 게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찾은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았다. 한참 "관함식"을
되뇌던 임금이 말했다.
"알겠어요, 숙부. 대신에 관함식에는 반드시 과인을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전하. 관함식은 전하께옵서 친히 전 해군 함정을 사열하셔야
하옵니다. 바로 전하의 해군을 말이옵니다."
김영훈은 일부러 "전하의 해군"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관함식이라는 조선
해군 최초의 행사에 오로지 임금만이 사열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자신이 임금을 대신하여 섭정한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금은 이 나라 최고의
어른이요, 만 백성의 어버이였다. 절대 그 정치적 영향력이 작은 게 아니었다.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결코 임금에게 섭섭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나라
조선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린 임금은 가끔씩 오늘과 같은 때아닌 떼를 쓰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성군(聖君)의 자질이 충분한 군주였다. 그런 임금이 기뻐한다면 자신도
기뻤다. 불연 듯 떠오른 생각이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 분명했고, 이쯤해서
해군의 발전된 모습을 임금을 비롯한 모든 중신들과 백성들에게 공개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을 실현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천군이 도래한 이후에 관함식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개최한 일은 아직까지 없었다. 해군 함정의 진수식이네, 제철소의 준공식이네, 또,
강화도연대의 승전 잔치네 하면서 임금을 모시고 조촐한 행사를 가진 적은 있었다.
그러나, 관함식처럼 대규모의 행사는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관함식이라면 다른
외국의 해군 함정도 초청해야할 터였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아니, 외국 해군의
함정이 없더라도 조선 해군 관함식은 역사에 길이 남을 행사가 될 것이 분명했다.
조선 해군의 전 함정이 참가하는 관함식.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 오르는 일이
아닌가. 관함식도 관함식이지만, 관함식을 함으로써 부수적으로 따라올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 을축년(乙丑年 1865년) 흥인군 이최응과 여흥 민씨
일당이 주도했던 반란을 적발하고 일당을 도륙낸 후로 아직까지 김영훈과 천군에
저항하는 무리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못마땅하고 불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었다. 그저 불만을 있어도 그것을
안으로 삭이고 있을 뿐이리라. 김영훈은 여기까지 생각하게 되자 관함식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가 더욱 마음에 들었다. 외부로부터의 적은 막아냈다. 내부로부터의
적도 이미 한 번 속아낸 상태다. 그러나, 내부로부터의 적은 언제든지 다시 고개를
쳐들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내부로부터의 적의 도발에
쐐기를 박아버릴 심산이었다. 자신과 천군이 이뤄놓은 엄청난 힘을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그런 잠재적 적대세력의 도발의지를 아예 꺾어 버릴 생각이었다.
*이 글의 저작권은 저자 yskevin에게 있으며, 이 글은 오로지 유조아의 소설란과
다음카페(데프콘 포레버러브, 1904대한민국, 흉겔의 소설나라)에서만 연재되고
있습니다. 타 게시판이나 사이트에 이 글의 부분 및 전체에 대한 어떠한 업로드는
금지되어 있으며, 기타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법률의 보호를 받습니다.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글에서 오탈자 및 오류, 또는 의견, 건의를 보내실 분들은
리플이나 감상, 비평란 또는 저자의 개인 전자우편 [email protected]이나
[email protected]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채택되신 의견이나 건의는
저자가 판단하여 글의 진행에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케빈입니다. 오늘 연재는 이미 예고한대로 지난 챕터 "오직 바다만이 알고 있다"의 "
못 다한 얘기"였습니다. 원래는 출판본에만 넣으려다 특별히 집어넣었지요, 모쪼록
재미있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시점은 해전이 끝난 직후입니다. 그리고, 다음 연재는
내일이나 모레 올리겠습니다. 역시 "못 다한 얘기"를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
전에 올라온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습니다. "김종완의 제1 왕립 근위함대와
윤정우의 제1 왕립 친위함대가 서로 이름이 바꿔야 맞지 않나요?" 하는 것입니다.
여태 답을 안 드렸는데 이번 기회에 드리도록 하지요. 원래 근위(近衛)나 친위(親衛)
나 비슷한 개념의 말입니다. 그런데, 정확히 따지면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근위라는 말은 [임금이나 국가원수를 가장 가까이서 경호함]을 이르는 말이고,
친위는 단순한 [임금이나 국가원수에 대한 경호]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최측근에
있는 호위병이 근위병이고 그저 호위를 하는 호위병이 친위병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말 그대로 친위라는 말은 포괄적 개념의 호위를 뜻하지요. 제가 근위천군과 친위천군,
또, 근위함대와 친위함대의 구분을 둔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근위천군은
임금의 최측근에서 호위하는 부대이기 때문에 한양의 훈련도감 동별영에 주둔합니다.
말 그대로 최측근이니까요. 그래서 친위천군은 한양 바깥에 있는 남한산성에
주둔하는 것이지요. 해군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위함대는 임금의 가장 가까운 곳에
모항을 두어 주둔하고, 친위함대는 북양도와 북해도를 오가는 함대이기 때문에 멀리
있는 원산이 모항입니다. 가끔 근위부대와 친위부대의 개념을 혼동하는 분들이
있는데 의문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117 폭풍 속으로...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