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김종완의 제 1왕립 근위함대와 이원희가 지휘하는 제 1왕립 근위함대의 임시
분함대가 3국 연합함대를 맞아 분전하고 있을 때 창덕궁의 희정당에서는 임금이
임어한 중신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어제 3국 연합함대가 조선 영해를 침범하여
이원희가 임시 분함대를 이끌고 그들을 문정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터라, 그들의
목적이 그동안 서양 제국(諸國)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조선의 응징에 있음을 간파한
섭정공 김영훈이 아침 일찍부터 임금이 임어한 중신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전하."
"예. 숙부."
"걱정되시옵니까?"
김영훈은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안절부절못하고 있은 임금이 안쓰러웠는지
넌지시 물었다. 용상에 오르고 나서 처음 맞는 대규모 외적의 침입은, 이제 겨우
나라가 안정되고 있어 한시름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임금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비록, 모든 권한을 섭정공 김영훈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뒤로 물러나
앉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라의 제일 큰 어른으로서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임금이 말했다.
"솔직히 걱정됩니다. 숙부. 3국 연합함대는 전투함만 60척이 넘게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이럴 때 이순신함이라도 있다면 덜 걱정될텐데 지금은 이순신함도 윤정우 제독이
지휘하는 제 1왕립 친위함대에 배속되어 없는 형편이고... 그래서 과인은 더 걱정이
됩니다. 숙부."
"저도 전하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전하. 전하께옵서도
아시다시피 김종완 해군사령관이 타고 있는 광개토태왕함은 이순신함에 버금가는
위력을 가진 전함이옵니다. 아니 주포의 위력만으로 보면 이순신함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그리고 광개토태왕함의 280mm 주포의 사정거리는 오십
리가 훨씬 넘사옵니다. 어디 그뿐이옵니까? 명림답부급 경순양함의 150mm 주포의
사정거리도 광개토태왕함의 280mm 주포의 사정거리와 같사옵니다. 그리고 적 함대가
보유하지 못한 최신예 장비도 다수 보유하고 있구요. 이런 상태에서 우리 조선
해군의 제 1왕립 친위함대가 숫자만 많은 3국 연합함대를 무찌르지 못할 까닭이
없사옵니다. 전하. 심려 거두시옵소서."
김영훈의 이 말은 임금과 희정당에 자리한 여러 중신들에게 안심하라고 한
소리였지만, 실상은 김영훈 스스로에게 한 소리와 같았다. 김영훈 자신도 지금 조선
해군의 엄청난 위용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3국 연합함대의 전투함 60여 척을
무찌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허나,
수치상으로 드러난 전력의 우위가 반드시 전장의 승패와 직결된다고는 볼 수 없었다.
고금(古今)의 수많은 전사(戰史)를 보더라도 열세에 놓여있는 상대가 압도적 전력을
자랑하는 상대를 무찌른 예가 얼마든지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곳이 바로 전장이었다. 하여, 임금을 비롯한 여러 중신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도 같이 달래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번 해전은 향후 세계사에 있어서나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있어서 엄청난 변수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었으니 어찌 유유자적할 수 있으랴.
김영훈이 임금을 비롯한 중신들에게 전황을 예측 설명하며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데 밖에서 대전 내관의 음성이 들려왔다.
"전하. 한상덕 대정원장 대감께서 드셨사옵니다."
"어서, 어서 뫼시어라."
반가운 듯 더듬거리는 임금의 음성이 있자 여닫이문이 스르륵 하고 열리면서
한상덕이 들어왔다. 원래 한상덕은 운현궁의 대정원에서 해군사령부, 또는 제 1왕립
근위함대에서 올라올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상덕이 입궐한 것으로 봐서는
전황에 대한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희정당으로 들어온 한상덕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더구나 입고 있는 전투복 군데군데에 먼지가 묻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운현궁에서부터 급히 말을 몰아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필시
급한 보고이리라. 김영훈은 한상덕이 들어오자마자 해전의 결과부터 물었다.
"한 원장. 어떻게 됐습니까? 이겼습니까?"
김영훈의 입에서 다급한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김영훈도 초조했다는 반증이었다.
한상덕은 기쁨에 겨운 나머지 큰 소리로 외쳤다.
"전하! 그리고, 합하. 기뻐하시옵소서. 김종완 해군사령관 겸 제 1왕립 근위함대
사령관이 이끄는 우리 해군이 영·법·미 3국 연합함대의 전투함 60여 척을 모조리
수장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옵니다."
"그래요?"
"정말입니까? 한 원장!"
"그러하옵니다."
한상덕은 간단하게 전황을 설명하고 김영훈에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갔다.
한상덕의 몸가짐은 진중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조선 해군의 엄청난 승전 소식에
저도 모르게 들떠 있었다. 희정당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상덕에게로
집중되었다. 한상덕은 김영훈의 뒤에 시립하더니 들고 있던 전문을 내밀었다.
김영훈은 한상덕이 건넨 전문을 낚아채고는 단숨에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
전문은 광개토태왕함에 승함하고 있는 김종완이 직접 작성하여 보낸 것이다. 한참
전문을 읽어내려 가던 김영훈은 임금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김종완 해군사령관이 이끄는 제 1왕립 근위함대가 3국 연합함대의 60여 척에
이르는 대함대를 맞아 모조리 수장시키고 80여 척에 이르는 3국 연합함대의
수송선단을 모조리 나포하였다고 하옵니다."
"그것이... 그것이 참말입니까?"
"그러하옵니다. 전하."
"아군의... 아군의 피해는? 아군의 피해는 어느 정도라고 하더이까?"
임금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절대로 이와 같은 보고를 맨 정신으로 믿지
못하겠다는 듯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가슴은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이제 어른
티가 제법 나는 임금은 여태까지의 의젓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쁨에
겨운 한 사람의 조선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김종완 해군사령관의 보고에 의하면 아군의 피해는 전무(全無)하다고 하옵니다.
전하."
"전무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제 1왕립 근위함대는 단 한 척의 아군 함정도 잃지 않고 무려
60여 척에 이르는 대함대를 모조리 수장시켰다고 하옵니다. 또한 3국 연합함대
수송선단의 80여 척의 수송선을 나포하였고, 수송선단에 승선하고 있던 적병을
포함하여 도합 2만이 넘는 적병을 포로로 잡았다고 하옵니다."
"이런 일이... 이런 일을 해내다니... 오..."
임금은 주체할 수 없는 감동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기리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이 정도로 완승을
거두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정말이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전선(戰船)을 이끌고 나가 수백 척의 왜(倭) 수군을 무찌른 쾌거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쾌거였다. 임금은 두 눈에 무언가가 낀 것처럼 뿌예지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영국과 법국, 미국이 어떤 나라던가. 동양의 대국 청국도
어쩌지 못했던 서양의 강대한 나라들이 아닌가. 그런 서양의 강대한 나라가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연합하여 조선을 치기 위해 왔다고 했다. 전투함만 60여 척을
동원했고, 2만이 넘는 전투병력을 투입했다고 했다. 말이 60여 척의 전투함이고,
2만의 전투병력이지 정말로 어마어마한 군세(軍勢)가 아니던가. 청국도 단 1만의
영국군에게 패해 나라 살림이 거덜나고 황제는 피난을 가야했다고 했다. 그런 서양의
강대한 군세를 맞아 단 열네 척의 함선과 다수의 잠수함으로 이루어진 조선 해군 제
1왕립 근위함대가 분전했다고 했다. 아니, 이것은 분전 정도가 아니었다. 압승이었다.
압승도 이만저만 압승이 아니었다.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누군가 큰 소리로 임금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자 그 소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감축 드리옵니다. 전하."
희정당에 자리한 모든 중신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임금은 벌떡 일어났다. 감격에 겨운
나머지 용상에서 벌떡 일어난 임금은 김영훈에게로 다가왔다.
"숙부."
"전하."
용상에서 일어난 임금이 자신에게 다가와 자신의 손을 덥석 잡자 김영훈도 놀랐다.
임금이 몸소 용상에서 일어나 자신의 손을 잡을 줄을 미쳐 생각지도 못한
김영훈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임금이 자신의 손을 잡은 적은 있었다. 가끔 대궐에서
주위의 시선이 없을 때 손을 잡은 적도 있었고, 몇 년 전에 육군사관학교
입학식에서도 손을 잡았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중신회의 도중에 용상에서 일어나
자신의 손을 잡은 적은 처음이었다.
"전하..."
"아무 말씀도 마세요. 숙부."
임금의 눈은 이미 벌개져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과 김영훈에 대한 고마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던 것이다. 어찌 보면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자신과 만신창이나
진배없는 이 나라 조선을 이만큼 성장할 수 있도록 아껴주고 보살펴 준 김영훈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조금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훈은 다시 말했다.
"하오나, 전하..."
"숙부. 이 모든 공이 숙부에게 있음을 과인은 잘 알고 있답니다. 정말이지 과인과
우리 조선의 이천만 백성들이 숙부와 천군에게 진 빚을 어떻게 갚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이지, 정말이지... 과인은..."
좌중은 삽시간에 숙연해졌다. 임금의 돌연한 행동에 희정당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대부분 중신들의 얼굴에는 훈훈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반대로, 일부 종친부
인사들의 얼굴에는 한 가닥 못 마땅한 기색이 드러나고 있었다. 어찌됐든 한 나라의
임금이 사사로이 정을 표시한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 종친부 인사들에 국한된 얘기였다. 지난해부터
공공연하게 임금의 친정을 얘기했던 법무대신 이세보까지도 임금과 김영훈 사이의
훈훈한 정에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끼고 있는 이때, 누구도 그들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았다. 김영훈은 임금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임금을 용상으로 인도했다.
"전하. 일단 고정하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조선이 이만큼 번듯하게 설 수 있었던
것이 어찌 저 혼자만의 공이겠사옵니까? 이 모두가 전하와 우리 이천만 조선
백성들의 홍복인 줄로 아옵니다."
"숙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나라 조선의 종묘와 사직을 평안케
하고 나아가서는 이천만 조선 백성들의 안위를 돌본 공은 모두 숙부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숙부."
"망극하옵니다. 전하."
어느 정도 임금의 감격이 진정된 듯 하자 김영훈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이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외침을 삽시간에 다른 중신들이
따라서 외치기 시작했다.
"주상전하! 천세! 천세! 천세!"
"대 조선국! 천세! 천세! 천세!"
희정당에 자리한 모든 중신들이 한마음으로 외치는 "주상전하! 천세!"와 "대 조선국!
천세!" 소리는 낭랑하게 울리며 온 누리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중신들만 외친 것이
아니었다. 회랑에서 대기하고 있던 내관들과 상궁·나인들, 번을 서고 있던 추밀원
소속의 위사들까지 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