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천진부 포도아문의 순검(巡檢) 장일(張一)은 오늘 새벽도 여느 때처럼 신 시가지의
순찰을 돌고 있었다. 신 시가지는 서양 제국(諸國)의 공관도 많았고 서양인
거류민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에 다른 어느 곳보다도 순찰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청국 전역에 세워진 근대적 군수공장 중 하나인
천진기기국(天津機器局)이 천진 신 시가지의 개항장 근처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공친왕과 청국 조정의 양무파들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양무운동의 일환으로
청국 각지에 세워진 신식 군수공장들은 지난 1861년 안경(安慶)에 세워진
안경내군기소(安慶內軍基所)를 필두로 지금까지 총 9군데의 근대적 군수공장이
전국에 세워지기에 이르렀다. 특히 북양삼구통상대신(北洋三口通商大臣) 숭후(崇厚)
에 의해 세워지고 총포, 탄약, 화약 등을 생산하는 천진기기국은 이홍장이 세운 상해(
上海)의 강남제조국(江南製造局)과 남경(南京)의 금릉기기국(金陵機器局), 상군(湘軍)
출신의 민절총독( 浙總督) 좌종당(左宗堂)에 의해 세워진 복주선정국(福州船政局)
과 함께 청국 근대 군수공장의 4대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천진의 포도아문에서는 특별히 신 시가지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겨우 순검 몇이 24시간 맞교대로 순찰을 도는 수준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장일은 동료 순검 몇과 신 시가지를
어슬렁거리며 순찰을 돌고 있는데, 막 천진기기국의 뒷담을 넘어 나오는 청년들이
장일의 눈에 띠였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 담을 넘어오더니만 순식간에 열 명을
넘어서고 있었고, 그 숫자는 지금도 꾸준히 증가하는 형편이었다.
"웬놈들이냐!"
청년들은 순검 장일의 외침에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바로
등을 돌리더니 쏜살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분명 손에 육혈포(六穴砲)를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장일을 비롯한 순검들을 쓰러트리는 것은 일도 아닐 것 같아 보였는데
어쩐 일인지 그저 내빼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호같은 몸놀림이었다. 장일은 목에
걸고 있던 호루라기를 입으로 가져가 길게 한 번 불고는 소리쳤다.
[삐익! 삐이이익!]
"섯거라!"
"잡아라!"
때아닌 호루라기 소리와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신 시가지에 울려 퍼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장일과 동료 순검들은 숨이 턱에 차 올랐다. 수상한 청년들은
몸이 날래기가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인데 자신들은 겨우 몇 발짝 떼지 않았는데도
벌써 이 모양이라니 장일은 짜증이 솟구쳤다. 도저히 청년들의 빠른 몸놀림을 쫓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장일은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고 어깨에 매고 있던 소총을
꼬나 쥐었다. 강남제조국에서 생산되는 청국 최초의 근대식 소총인 갑식보총(
甲式步銃)이었다. 조선에서 수출한 양식보총(攘式步銃)의 청국식 카피 판이 바로
갑식보총이었다. 성능은 양식보총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그런 대로 쓸만한
소총이었다. 장일과 동료 순검들이 갑식보총을 꼬나 쥐고 방아쇠를 막 당기려는 순간,
재앙이 그들을 덮쳤다.
[콰쾅! 쿠와와앙! 쾅! 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뜨거운 기운이 대기를 달구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건물들을
때리고 지나갔다.
[쨍그랑! 쨍! 쨍! 쨍그랑!]
"이크! 뭐야!"
"폭탄이 터졌다!"
[콰콰콰광! 쾅! 콰콰아앙! 쾅! 쾅!]
[쿠웅! 쿵! 쿠쿠쿵!]
엄청난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들리더니 주변의 건물 유리창이 깨지기 시작했고,
시뻘건 불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어서 폭발의 여파로 천진기기국의 높다란
담장이 무너지면서 장일과 그의 동료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장일과
그의 동료들은 피할 새도 없이 무너진 담장에 깔리고 말았다. 장일과 그의 동료들을
삼켜버린 폭발은 연이어서 계속되고 있었다.
한편, 순검 일행의 추격을 따돌리고 해하로 돌아가던 이괘교 청년들도 엄청난
폭발음에 정신이 나간 것은 마찬가지였다. 겨우 도시락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폭탄 스무 개가 터졌다고 이렇게 엄청난 폭발이 연속적으로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괘교 청년들이었다. 그저, 멍한 정신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데, 누군가 소리쳤다.
"뭣들 하나! 어서 가자! 서둘러!"
청년들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해하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행인지 천진기기국에서는
한 사람도 발각되지 않고 모든 폭탄을 예정된 장소에 설치할 수 있었다. 폭탄을
설치하는 위험한 임무도 성공리에 마친 상태에서 탈출하는 일에 꼬리를 밟힐 수는
없었다. 아직도 폭탄은 계속해서 터지고 있었고, 천진기기국 내의 탄약과 화약이
유폭하는지 폭발음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가끔씩 콩 볶는 소리 비슷한
폭발음까지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천진기기국에서 생산하는 총탄까지 터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해하에 도착한 이괘교 청년들은 대기하고 있던 배에 올랐다. 남쪽
하늘이 벌겋게 물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그렇게 해하를 건넜다. 해하를 건넌
이괘교 청년들은 현지 안내인의 안내를 받으며 구 시가지의 어느 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에서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가더니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는 다시
뒷문으로 달려갔다. 이미 치밀하게 준비한 듯 안내인의 움직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안내인의 안내를 받으며 뒷문을 빠져나간 이괘교 청년들은 한 동안 좁은 골목길을
쉴 새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다시 어느 가정집으로 들어갔고, 마찬가지로 뒷문으로
빠져 나왔다. 마지막으로 이괘교 청년들이 들어간 곳은 커다란 대문이 인상적인
저택이었다. 청년들은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입고 있던 옷부터 갈아입었다. 아무런
특징 없는 옷이었지만 만에 하나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지 몰랐기에 순순히
안내인의 지시에 따랐다. 이괘교의 젊은 청년들이 천진에 거주하는 허름한
막노동꾼으로 변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