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군사령부가 위치한 남양만 앞 바다는 유달리 잔잔했다. 내해에는 군함 몇 척이
닻을 내린 채 정박해 있었고, 외해에는 엄청나게 큰 수송선 한 척이 무언가를 잔뜩
싣고 있었다. 바로 그레이트 이스턴호였다. 아니, 이제는 대쥬신(大朝鮮)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당당한 조선 해군의 수송선이었다. 위대한 동방이라는 영문 이름을 가지고
있던 그레이트 이스턴호에게 조선의 국명을 부여한다는 것에 대해 반감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레이트 이스턴호가 조선에 나포된 이유가 위대한 우리 민족의
기상을 세계 만방에 떨치라는 하늘의 계시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의 해석이 있고
나서는 그런 반감도 수그러들고 말았다. 그런 대쥬신함 옆에는 조그만 증기선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무언가를 싣고 있었다. 그리고, 대쥬신함 주위에는 처음 보는 군함
몇 척이 경계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선 해군의 군함과는 달리 돛이
달려있으면서도 증기기관의 연돌(煙突)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서양 제국(諸國)의
군함으로 보였다. 금발의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 수병들과 잘 차려입고 한 쪽에서
대쥬신함의 화물 선적 모습을 지켜보는 몇 명의 신사와 사관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모든 화물의 선적이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다고 했지요? 대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공사각하. 공사각하께서도 보셨다시피 6척의 한-1
잠수함은 어제 선적이 완료됐으며, 소모성 무기와 조선 해군 군사 고문단의 승함만
끝나면 당장이라도 츨발할 수 있습니다."
"소모성 무기라면... 어뢰를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공사각하. 지금 저기 보이는 나무 궤짝에 든 것이 바로 어뢰들입니다."
티르피츠 대위는 제물포 주재 독일 공사 브란트(Max August Scipio von Brandt)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막 선적되고 있는 나무 궤짝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브란트 공사는 어뢰가 무엇이고, 어뢰의 성능이 해전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정작 어뢰에 관심을 보인 것은 브란트 공사 옆에 있던 중후한 인상의
사나이였다.
"그런데, 대위. 자네가 보기에 잠수함이라는 무기와 어뢰라는 무기가 우리 독일
해군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입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도 직접 한-1 잠수함에 승함하여 시범항해를 참관한
적이 있고, 또한 제가 본국의 해군본부에 보낸 보고서를 보셨을 것입니다. 막강한
육군에 비한다면 몇 수 아래로 평가받는 우리 해군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잠수함 만한 무기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본국 해군본부의 평가도
마찬가지고요."
티르피츠 대위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에 독일 아시아함대 사령관 블랑(George Franz
von Blanc) 제독의 얼굴이 한결 밝아지는 듯 보였다. 원래 티르피츠 대위를 조선
해군의 관전무관으로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이 블랑 제독 자신이었고, 티르피츠
대위의 보고서를 토대로 잠수함의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인물이 블랑 제독이었다.
그리고, 잠수함 도입을 추진하기 전에 아시아함대의 사관 몇을 이끌고 친히 한-1
잠수함에 승함하여 성능테스트까지 참관했던 블랑 제독이었지만, 너무나도 엄청난
가격의 무기라서 그런지 그의 표정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척당 도입 가격이
물경 1천만 파운드에 달하고 그에 따른 소모성 무기의 구입은 별도로 지불한 것을
생각해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가격을 조선에게 지불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조선
측에서는 잠수함의 운영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군사 고문단을 파견해 준다고 했지만,
그에 따른 비용도 모두 독일 측이 부담해야만 했다. 이런 실정이니 해군의 발전에
배가 아픈 일부 육군 출신 대신들이나 장성들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했고, 이런 현실에서 어렵사리 도입한 잠수함이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해군본부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비스마르크 수상의 정국 운영에 상당한 누가
될 수도 있음을 블랑 제독은 잘 알고 있었다.
"제독님! 조선 해군의 김종완 사령관께서 군사 고문단을 이끌고 오십니다."
"응? 아!"
블랑 제독은 부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날렵한 모양의 증기선 한
척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자신들이 타고 있는 아시아함대의 기함 슈토쉬(Stosh)의
우현에 천천히 접근하는 것이 눈에 띠였다. 갑판에는 일단의 조선 해군 승무원들이
2열로 도열해 있었고, 그 중앙에는 빛나는 대장 계급장을 달고 있는 김종완 조선
해군사령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중장 계급장의 장성 한 사람과 소장
계급장의 또 다른 장성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김종완 조선 해군사령관은 이미
안면이 있지만, 그 옆의 장성 둘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아니! 저 사람은!"
"왜요? 아는 사람입니까? 공사각하!"
브란트 공사의 놀란 외침에 블랑 제독이 되물었다. 브란트 공사는 반가운 표정이
역력한 채로 말을 받았다.
"알다 뿐이겠습니까. 저기 있는 사람이 바로 전 나가사키 주재 조선 공사였습니다.
제가 조선에 부임한 이후에 영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그 뒤로 통 볼 수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볼 줄이야..."
브란트 공사의 말에 블랑 제독은 그 사람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 사람은 김종완 조선
해군사령관에 비해 한 두 살 어린 정도의 젊은 나이를 하고 있었으며, 김종완 조선
해군사령관처럼 장대한 체구를 자랑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들은 뭘 먹었기에 저토록
키가 크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김종완 조선 해군사령관 일행이 우현에
매달린 잔교(棧橋)에 막 내리기 시작했다.
"어서 오십시오. 사령관각하! 승함을 환영합니다."
"반갑습니다. 블랑 사령관."
일개 함대사령관하고 일국의 해군사령관하고는 그 격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사실,
독일 아시아함대는 사실 함대라고 불리기에는 미흡한 감이 많았다. 기함이 슈토쉬를
비롯해서 겨우 3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는 일개 함대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랐다. 아직은 독일 해군의 미흡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블랑 제독이 김종완 해군사령관에 비해서 한참이나 더 먹은 연치를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동북아시아의 신흥 강국 조선
해군의 수장인 김종완 해군사령관을 블랑 제독으로서는 결코 소홀히 접대할 수
없었다. 멋들어지게 거수 경례를 한 블랑 제독은 매끄러운 영어로 안부 인사를
건넸고, 김종완 역시 물 흐르는 듯한 영어로 화답했다. 이어서 한쪽에 서 있던
브란트 공사가 김종완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사령관각하!"
"오! 브란트 공사께서도 계셨군요."
"네. 각하. 그리고, 윤정우 공사각하께서도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브란트 영사. 아니지 이제는 공사로 영전하셨지요?"
"두 분이 아는 사입니까?"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는 브란트 공사와 윤정우 제 1왕립
친위함대 사령관을 보며 한마디했고 그런 김종완의 말을 윤정우가 다시 받았다.
"실은 제가 나가사키 주재 조선 공사로 있을 때 브란트 공사가 당시 나가사키 주재
독일 영사로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브란트 공사가 양국의
수호통상조약을 조인하였고요."
"아! 그렇군..."
김종완과 윤정우의 대거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블랑 제독이 끼어 들었다.
"사령관각하! 저도 소개를 좀 시켜주시지요."
"아! 이런 정신을 봤나. 이쪽은 우리 조선 해군 제 1왕립 친위함대 사령관인 윤정우
제독과 조선 해군 잠수함 전단장 박철우 제독입니다. 뒤에 있는 우리 홍현태 중령은
제독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이번에 귀국 해군에 파견 나가는 군사 고문단을 맡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은 독일 아시아함대 사령관이신 블랑 제독과 브란트
독일 공사입니다. 여러분들도 인사들 나누세요."
김종완의 소개가 있자 양국의 해군 관계자들과 브란트 공사 등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윤정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었다. 이미 한 차례 블랑
제독이 참모들을 이끌고 조선 해군사령부를 방문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분분히
인사를 나눈 브란트 공사와 블랑 제독은 김종완 일행을 사령관 실로 안내했다.
소모성 무기의 선적과 조선 해군 군사 고문단의 승함만 끝나면 바로 출항할
예정이었지만, 일국의 해군사령관 일행을 갑판에서 접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선이 독일을 비롯한 서양 제국(諸國)처럼 해군성이나 해군본부가 없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조선 해군사령관이라는 직책은 독일로 치면 해군본부 장관이나 마찬가지의
직책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블랑 제독의 안내를 받으며 김종완
일행은 사령관 실로 향했다. 김종완이나 윤정우가 타고 있는 광개토태왕급 전함의
사령관 실에 비해서는 약간 협소한 느낌의 사령관 실은 그런 대로 아늑했다. 블랑
제독은 조선 해군에서 온 귀한 손님들이 자리를 잡자 부관을 시켜 포도주를 내오도록
했다. 조선 해군의 사관들이 근무 중에는 철저하게 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찾아온 손님을 소홀히 대접할 수 있었고, 앞으로 독일과 조선과의 교류, 또는
독일 해군과 조선 해군과의 교류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면 지금 찾아온 손님들은 유럽
2류국 수준에도 끼지 못하는 독일 해군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최대한의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었다.
10척을 약간 넘는 함선과 6척의 잠수함으로 60여 척의 3국 연합함대를 수장시키고,
80여 척의 수송선단을 나포한 조선 해군 수뇌부는 독일 해군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경이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었다. 블랑 제독은 크리스탈 잔에 적포도주를 따르고는
직접 김종완에게 건넸다.
"한 잔 드시지요. 사령관각하."
"고맙소. 제독."
김종완이 블랑 제독이 건넨 잔을 받자 윤정우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분분히 잔을
들었다. 좌중에서 가장 직책이 높은 김종완이 잔을 높이 들고 선창했다.
"조선과 독일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그리고, 독일 해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조선과 독일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그리고, 독일 해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조선과 독일의 영원한 우정을 위하여! 그리고, 독일 해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원래 같으면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마셔야 했을 포도주였지만, 좌중의 조선 해군과
독일 해군 관계자들은 단숨에 적포도주를 들이켰다. 하여튼 무식한 뱃놈들이란...
브란트 공사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종완은 블랑 제독에게 말을 건넸다.
"제독! 우리 이쁜이들 잘 부탁하겠소. 정말이지 귀국 해군에 우리 이쁜이들을
넘기기는 하지만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라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령관각하. 귀국 해군이 아끼는 것 보다 더 우리 해군이
아끼고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제독. 내 제독만 믿겠소."
블랑 제독도 김종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동안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키운 배를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다른 나라 해군에게 넘긴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배라는 것들이 지난번 3국 연합함대를 무찌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한-1 잠수함이라면 그 정도는 더 한 것이리라.
"헌데, 제독."
"말씀하십시오. 사령관각하!"
"이런 질문 하기는 좀 뭐하지만... 귀국의 잠재적 가상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과 프랑스의 해외 파견함대가 득시글거리는 지역을 귀국의 함대가 우리
대쥬신함을 호위하면서 무사히 통과할 수가 있겠습니까?"
대쥬신함은 만재배수량이 18915톤에 이르는 당대 최대의 수송선이다. 조선
해군에서는 대쥬신함을 나포한 후에 해군의 수송선을 사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개장
공사를 실시하였고, 드디어 첫 번째 임무로 한-1 잠수함 6척을 독일로 수송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대쥬신함은 한-1 잠수함 6척을 선적하기 위해서 상부 갑판의
일부를 들어내고 그 안에 한-1 잠수함 6척을 선적하였으며, 선적이 끝난 후에는 상부
갑판을 원상태로 돌려놓아야 했다. 따라서 한-1 잠수함을 선적하고 있다는 것이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나, 영국 해군의 해외 파견함대가 즐비한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아프리카 연안을 어떻게 통과할 지가 김종완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런 것이야 어차피 독일 해군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종완의
입장에서는 시집가는 딸이 무사히 시댁까지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질문한
것이다. 이런 김종완의 마음을 알아차린 블랑 제독은 즉시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령관각하. 우리 독일의 아시아함대는 이미 귀국에서
수출한 무기들을 안전하게 본국까지 수송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 쌓아놓은 다른
나라의 함대 관계자들과의 친분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리고, 한 나라의 군함이라는
것이 그 나라의 영토와 마찬가지의 개념으로 통하는 이때에 귀국의 국적선이
되어버린 그레이트 이스턴호의 진로를 방해하고 임검할 수 있는 함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은 귀국과 정면으로 적대시하겠다는 얘기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그렇지 않구요."
김종완과 블랑 제독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영미 양국과 정식으로 수교한
조선의 입장으로 볼 때 그들이 조선 해군의 수송선을 가로막고 임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독일 해군의 호위를 받는 대쥬신함을 임검한다는 것은,
자칫하다가는 두 나라와 적대시할 수도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귀 함대의 항해가 순조롭기만을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각하."
"그리고, 우리 홍현태 중령과 군사 고문단 일행들도 잘 돌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친구가 외국 경험이 전무한 실정이기에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령관각하! 홍현태 중령이라면 어려운 타국
생활에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블랑 제독의 너스레에 좌중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일부 독일
아시아함대 참모들은 홍현태 중령에게 친근함을 보이며 안심하라는 듯한 표정을
건네기도 했다.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자 브란트 공사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사령관각하! 혹시 청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요사태에 대해 아시는 게
있습니까?"
"청국에서의 소요사태요?"
"그렇습니다. 사령관각하!"
"음... 청국 각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소만,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헌데, 왜요?"
사실 김종완도 지금 청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소요사태에 대해서 정확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정원에서 주도한 모종의 공작이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고, 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아는 바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여, 관심을
가지고 브란트 공사의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정확한 사실은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페킹(북경) 주재 우리 공사관에서
보내온 전문을 보면 청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요사태가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 때문에 청국에 공관을 두거나 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특히, 지난해 귀국에게 패한 3국 연합함대로 인해 청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서양 제국(諸國)의 힘이 급속도로 감소한 시점에서 벌어진 대규모 소요사태는 간신히
힘을 추스르기 시작한 청국 정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
브란트 공사가 이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그도 실상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막연히 북경 주재 자국 공관에서 보내온 정보를 토대로 운을 떼본
것이다. 혹시나 청국의 소요사태를 조선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오랫동안 청국의 속국으로 지내던 조선이 지난해 있었던 3국
연합함대의 침공을 물리치고 나서 어떤 식으로든 청국에 대한 관계를 재정립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도무지 그런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넌지시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그 실체를 한 번 들여다보길 원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꺼낸 것이다. 특히, 동북아 최강의 단일함대를 지휘하고 있는 조선 해군사령관
김종완이라면 무슨 낌새를 보이지나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와 같은 일에
대해서 운을 뗀 것이다. 그러나, 김종완은 그런 브란트 공사의 염원을 여지없이
저버리고 말았다.
"본관과 같은 군인이 구태여 남의 나라 내정까지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본관은 그저 우리 조선의 영해를 지키는 일개 해군사령관인 것을요..."
"예..."
이미 예상하고 있던 대답이었지만 브란트 공사는 입맛이 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또 본 것이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과거에 친분을 쌓아뒀던 윤정우를 쳐다봤다. 오랜만에 만난 윤정우에게
안부 인사를 겸해서 뭔가를 물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런 브란트 공사의 생각도
누군가가 외친 조선 말 소리에 깨지고 말았다.
"사령관님! 대쥬신함에 모든 화물이 선적되었습니다. 이제 출발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은 들은 김종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블랑 제독. 모든 화물의 선적이 끝났다고 합니다. 먼 길에 고생하십시오. 그리고
무사히 귀국에 도착하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각하! 다음에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김종완과 일행들은 블랑 제독을 비롯한 독일 아시아함대 참모들에게 차례로 악수를
건네며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조선 해군 최초로 외국에 군사 고문단으로
파견 나가는 홍현태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홍 중령. 잘 다녀오게. 그동안 자네의 장보고함은 잘 모셔둘 테니..."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충성!"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