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오... 하느님..."
"신이시여, 우릴 버리시나이까..."
"이럴 수가..."
수송선단과 호위선단 소속의 배 위에서 연합함대 전투함들의 몰락을 지켜보던 조선
원정군 지상군 병력과 고위급 외교관들의 입에서는 경악성이 튀어나왔다. 지구상에서
단일함대로는 최강의 전력을 가진 함대라는 평가를 받아온 연합함대였다. 그런,
연합함대의 50척이 넘는 전투함들이 전투 개시 10여 분만에 모조리 침몰 당한 것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수송선단에서 가장 큰 수송선인 그레이트 이스턴(Great Eastern)호에 탑승하고 있던
영국 공사 웨이드 경과 로우 미국 전권공사는 망연자실(茫然自失)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상군 사령관인 미국의 젊은 장군 필립 셰리던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오! 신이시여..."
"음..."
애초에 연합함대의 기함인 아가멤논에 승선해 있던 웨이드 경과 미국 아시아함대의
기함인 뉴 아이언사이드에 승선해 있던 로우 미국 전권공사는 오늘 아침 함대가
출발하기 전에 다른 외교관들과 함께 지금의 수송선으로 자리를 옮겼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상하게 켈렛 제독이 그런 권유를
하였고 자신들도 켈렛 제독의 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만약 자신들이 전투함에
승함한 상태였다면 다른 연합함대의 장병들처럼 자신들의 목숨도 한 줌 고혼이
되었을 것이지만 누구도 그런 소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저, 멍하니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셰리던 장군의 음성이 두 사람을 깨웠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응? 아!"
"......"
셰리던 장군의 물음에 웨이드 경이 잠에서 깨어난 아기처럼 응수라도 한 반면에 로우
전권공사는 대답이 없었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함대를 돌려야지요. 연합함대의 주력 전투함대가 무너진 마당에 우리가 무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공사각하!"
"장군! 현실을 직시하세요. 지금 우리가 가진 전력으로는 조선 해군을 무찌를 방법이
있습니까! 50척이 넘는 전투함대가 몰살당한 마당에 겨우 10척의 호위선단으로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 끄응..."
로우 미국 전권공사는 원래 직업 외교관이 아니다. 원래는 유망한 기업가였지만 링컨
행정부 시절 정계에 입문하여 샌프란시스코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역임한 인물이었다.
지난해 청국에서 있었던 톈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랜트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동양으로 건너온 인물이었다. 그런, 로우 전권공사에게 지금의 해전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공포로 가다왔다. 웨이드 경과 셰리던 장군이 철수를 하네 마네 하면서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있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막, 셰리던 장군이
로우 전권공사를 부르려는 데 견시수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적함이 오고 있습니다!"
상갑판에 나와있던 모든 사람들이 견시수의 손 끝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세 척의
조선 해군 장갑함(?)이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예의 그
돛도 없는 이상한 형태의 장갑함이었다. 다행히(?) 자신들에게 오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철수합시다."
여태 아무런 말이 없던 로우 전권공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한마디했다. 로우
전권공사의 말이 떨어지자 셰리던 장군이 무어라고 반박하려고 했지만 곧, 웨이드
경의 놀란 외침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이상 늦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저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지금 우리
수송선단을 포위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런! 제기랄!"
원래부터 입이 건 셰리던 장군은 웨이드 경과 로우 전권공사 앞이라고 해서 말을
조심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일국을 대표하는 고위급 외교관들
앞에서 뱉을 수 없는 말이기는 했지만 셰리던 장군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셰리던 장군의 막말에 인상을 살짝 찌푸린 웨이드 경은 곧 선장을 불렀다.
"선장! 지금 즉시 다른 배들에게 연락해서 전속력으로 이 해역을 빠져나간다!"
"알겠습니다. 공사각하. 헌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나도 몰라! 일단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이 해역을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알겠습니다. 공사각하."
이번 조선 원정의 실질적인 두 책임자인 웨이드 경과 로우 전권공사의 철수 명령이
떨어지자 조선 원정군 연합함대의 수송선단과 호위선단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직진하던 항로를 급격히 선회하여 처음 출항했던 청국 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죽은 동료들과 전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살아남은
자들만이라도 무사히 도망가는 것이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