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46화 (246/318)

12.

연합함대 사령관 켈렛 제독의 얼굴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마치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켈렛 제독의 표정은 곁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애초에 허접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라는 조선 해군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 아직까지 연합함대는 조선 해군의 제 2왕립 근위함대에게 제대로

된 사격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반대로 조선 해군의 제 2왕립 근위함대는

끊임없이 명중탄을 쏟아 붓고 있었다. 쏘는 족족 연합함대의 전투함에 명중했으며,

명중하는 즉시 침몰했다. 목조함들은 겨우 한 두 발의 포탄만 피격당해도 속절없이

침몰했으며, 두터운 장갑을 덕지덕지 두른 장갑함들도 단 서너 발의 포탄에 침몰했다.

한 마디로 악몽이었다. 도대체 어떤 포를 주포로 사용하길래 사정거리가 4500야드가

넘고 어떻게 포술 훈련을 시켰길래 쏘는 족족 명중탄을 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연합함대의 지금 피해는 더 이상의 전투가 무의미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였다.

그리고, 후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한 전투함까지 포함하면 벌써 침몰 당한

전투함만 25척이나 됐다. 수송선단을 호위하기 위해서 뒤로 쳐진 호위선단의

연안포함과 캐스코급 모니터함이 모두 10척이었고, 10척의 호위선단은 이번 전투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10척의 호위선단을 제외하면, 총 64척의

연합함대의 전투함 중에서 절반 가까운 전투함이 침몰 당한 상태였다. 반대로 조선

해군 제 2왕립 근위함대는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었다. 연합함대의 전투함에서 가끔

발사하는 함수포는 조선 해군 함대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

해군의 함선들은 돛도 없는 이상한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도 연합함대의 추격을 여유

있게 뿌리치면서 함포를 발사해대고 있었다. 반대로 연합함대의 모든 전투함들은

죽을 힘을 다해 기관을 가동시키고 있었지만 양자간의 거리는 전혀 좁혀들지 않고

있었다. 제대로 된 전투에서 이렇게 당했다면 원통하지나 않을 것이나, 전투다운

전투 한 번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켈렛 제독을 비롯한 연합함대의

모든 장병들은 원통한 마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제는 함대의 전멸을 각오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켈렛

제독이 이런 생각을 하며 후퇴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데 견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어떤 배가 침몰했는가? 켈렛 제독은 참담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적 함대가 무언가를 발사했습니다!"

"그게 뭔가?"

"모르겠습니다. 다만, 기다란 막대기 같은 것 수 십 기를 물 속으로 발사했습니다."

"이런..."

"으악! 뭔가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마치 화살 같습니다. 물 속을 달리는

화살!"

"뭐야!"

일개 견시수가 어뢰에 대한 것을 알 수는 없었다. 1866년에 처음 개발된 어뢰에 대한

것은 일부 해군 관계자나 무기제조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견시수의 보고에 켈렛 제독은 양미간을 심하게 찡그렸다. 그렇지 않아도 적 함대의

엄청난 능력에 넋이 나갈 정도인데 이번에는 또 무엇인가? 바다 속으로 발사한

그것의 정체가 궁금한 켈렛 제독은 양미간을 심하게 찡그린 채로 막 함수 쪽

난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아무리 고개를 빼고 전방을 주시해도 탁한 황해(

Yellow Sea)의 빛깔은 그것의 모습을 감추고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아니, 사방에서

터지는 포탄과 포탄이 터지면서 만들어내는 물보라가 그것의 모습을 감추었는지도

몰랐다. 짜증이 난 켈렛 제독이 막 걸음을 다시 옮기려는 순간 바로 앞에서 항주하던

제이슨급 코르벳함 울버린(Wolverine)과 이클립스급 코르벳함 시리우스(Sirius)가

쿠쿠궁 쿠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용골이 들썩이면서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울버린, 시리우스만이 아니었다. 아가멤논의 좌현에서 항주하고 있던 중앙

포곽함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도 침몰하고 있었고, 또 다른 중앙포곽함 시 프린스(

Sea Prince)도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무려 10척이 넘는 전투함이 한꺼번에

침몰하고 있었고, 그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아가멤논의 상갑판에 나와있던

수병들과 사관들, 그리고 켈렛 제독과 참모들의 눈에 침몰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럴 수가..."

"오... 신이시여..."

알렉산드리아의 상갑판있던 일부 수병들은 공포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배에서

뛰어내리고 있었고, 건데크에서 비명을 지르며 올라오는 어느 수병의 군복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애처로운 비명을 지르던 그

수병은 잠시 후 상갑판에 쓰러지고 말았다. 물론 불길은 아직도 그 수병의 몸을

태우고 있었다. 아비규환이었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아가멤논의 상갑판에 있던 모든

장병들이 그 광경을 보며 안타까워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죽어 가는 동료의 명복을 비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천천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폭음이 들리기는 했지만 포탄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멀쩡하게 항주하던

전투함들이 침몰하는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넋이 나가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켈렛 제독의 가슴에 쐐기를 박는 광경이었다. 켈렛 제독은 급히 프랫 대령을

불렀다.

"함장!"

"예. 제독님."

프랫 대령의 음성은 착잡함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켈렛 제독 자신도 방금의

끔찍한 광경을 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프랫 대령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 즉시 전 함대에 신호를 보내라! 후퇴한다!"

"제독님! 그것만은 안됩니다."

"왜 안 된다는 말인가!"

"그건, 그것은..."

"방금 침몰한 배가 몇 척이나 되는 줄 아나! 정확히 14척이야! 14척이라고! 그리고

지금도 침몰 당하는 배가 속출하고 있고! 이건 전투가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이다! 더

이상 전투를 한다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야! 시간이 없다! 어서 서둘러!"

"알겠습니다. 제독님."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호위선단으로 빠진 10척의

연안포함과 캐스코급 모니터함을 제외한 54척의 대 함대가, 지금은 겨우 10척이 약간

넘는 정도만이 항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둘씩 침몰하고 있었다.

전투라고도 할 수 없는 일방적인 전투를 계속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뿐더러

학살을 방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켈렛 제독은 생각한 것이다. 켈렛 제독의 후퇴

결정은 지금 상황에서 지휘관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조선 해군은

이들이 쉽사리 도망치게 놔두지 않았다. 프랫 대령이 켈렛 제독의 명령을

통신사관에게 하달하여 살아있는 전 함대에 후퇴를 명령하려는 순간, 재앙이 그들을

덮쳤다. 지금까지의 조선 해군의 포격과는 상당히 다른 커다란 파공음이 들리는 가

싶더니, 엄청난 파괴력의 대구경 포탄들이 살아남은 연합함대의 잔여 전투함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씨우융! 쓩! 씨우웅! 쓔우웅! 쓩! 쓩! 쓔웅!"

"쿠왕! 쿠아앙! 쾅! 콰콰쾅! 쿠콰콰콰쾅! 콰쾅! 쾅! 콰르르르쾅!"

엄청난 양의 280mm에 이르는 대구경 포탄과 150mm의 중구경 포탄이 쏟아지면서 겨우

10척 남짓 남아있던 연합함대를 찢어버린 것은 불과 눈 깜짝할 사이였다. 정확히

탄착군을 형성하여 쏟아지는 포탄의 폭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투함은 없었다.

제일 먼저 아가멤논이 280mm 포탄 세 발에 허무하게 침몰했고, 아가멤논보다 소형의

나머지 전투함은 한 두발의 명중탄에 속절없이 침몰했다. 켈렛 제독을 비롯한

연합함대의 모든 장병들은 자신들을 공격한 무기가 어떤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불벼락을 맞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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