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45화 (245/318)

11.

덕적군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암험도(巖險島)는 섬 주변의 파도가 거세고, 섬의

산세가 험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1세기 현대 한국에서는 선미도(善尾島)라고

불려지는 암험도의 섬 그늘에 세 척의 전투함이 매복하고 있었다. 바로, 조선

해군사령관 김종완이 이끄는 제 1 왕립 근위함대의 전투함들이다. 김종완이 지휘하는

제 1 근위함대는 기함인 광개토태왕함과 명림답부급 경 순양함의 명명함인

명립답부함, 3번 함인 강감찬함(姜邯贊艦)과 을파소급 구축함의 명명함인 을파소함(

乙巴素艦), 을파소급 구축함의 3번 함인 맹사성함(孟思誠艦)과 5번 함인 유성룡함(

柳成龍艦), 여기에 임시 분함대 사령관인 이원희가 이끄는 여덟 척의 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총 열여덟 척의 함선과 다수의 잠수함으로 이루어진 제 1 왕립

근위함대는 단일 함대로는 세계에서 당할 자가 없을 정도의 엄청난 함대였지만,

지금은 을파소급 구축함 세 척이 3국 연합함대의 수송선단과 호위선단을 타격하기

위해서 덕적도를 크게 우회하여 출정하였고, 임시 분함대에 배속된 여덟 척의 함선이

떨어져 나갔기에 약간은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광개토태왕함과 명림답부함, 그리고 강감찬함을 상대할 수 있는 전함은 지금

시대에는 없다고 할 수 있었기에 이렇듯 당당하게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해군사령관 김종완은 레이더 스크린에 나타난 휘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해진함에서 떼어낸 바로 그 레이더였다. 앞에 있는 휘점은 이원희가 이끄는

분함대가 틀림없었고, 뒤에서 쫓아오는 휘점은 3국 연합함대로 보였다. 그리고, 맨

뒤에 처져있는 또 하나의 무리는 수송선단과 호위선단이 틀림없었다. 마지막으로 세

개의 점이 덕적도를 돌아 수송선단과 호위선단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처음의

어마어마한 군세를 자랑하던 연합함대는 상당수 함선이 아군 임시 분함대의 공격을

당해 침몰한 상태였고, 한-1 잠수함을 비롯한 바다 속의 공포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지금은 겨우 이십여 척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하나둘씩 빛이 꺼져가고 있는 게 아군 임시 분함대의 공격이나, 잠수함의 공격을

받아 침몰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김종완은 레이더 스크린에 나타난 연합함대

중에서 유난히 크게 보이는 하나의 점을 주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워리어급

장갑함이 틀림없었다.

'아가멤논이라고 했던가? 워리어급 전함의 2번함이라고 했지.'

역사의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자신이 지휘하던 이순신함으로 워리어급

전함의 명명함인 워리어를 탈취하여 지금의 양무함으로 개장한 것이 바로 지난

1865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워리어급 전함의 2번함을 자신의 손으로 해치우게

생겼으니, 김종완의 얼굴에 씁쓸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장!"

"네. 사령관님."

"지금부터 적함대에게 포격을 퍼부어도 되지 않을까? 자칫하다가는 이원희 제독이

모두 격침시키겠는걸."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바로 명령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삼별초함의 함장이었다가 새로 건조된 광개토태왕함의 함장으로 임명되어, 어느새

2년이라는 세월을 광개토태왕함에서 보낸 함장 김기진 대령의 얼굴은 기다리던

단비가 내렸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제나저제나 사령관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손만 빨아야 했던 김기진에게는 이만저만 반가운 명령이 아니었다.

이원희가 이끄는 임시 분함대의 활약을 스크린을 통해서 바라만 봐야했을 때는

자신의 먹잇감을 이원희가 모두 차지하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 광개토태왕함의 280mm와 150mm

부포, 명림답부함의 150mm 주포는 진작부터 3국 연합함대를 사정거리 안에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조선 해군이 처음 맞는 실전이라는 측면에서 지금과 같은 교전을

한 것이고, 섬 그늘에서 숨어서 지원 포격을 하는 광개토태왕함과 명림답부함의 보다

정확한 사격을 위해서 이원희의 임시 분함대가 연합함대를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진은 통신사관에게 명령을 내려 명림답부함과 강감찬함에게 포격 준비를

지시했고, 포술장에게도 암험도의 산꼭대기에서 연합함대를 관측하고 있는

관측장교가 제공한 정확한 사격제원을 하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섬 그늘에

가려있어서 사격지휘반이 제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투정보실의 레이더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보다 정밀한 사격을 위해서 별도의 관측반을 암험도에 파견한

상태였다. 그것은 레이더가 없는 망림답부함과 강감찬함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김기진의 명령이 떨어지자 광개토태왕함의 함수와 함미에 장착된 3연장 280mm주포

2기 6문이 일제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은 좌현에 장착된 4문의 150mm 부포도

마찬가지였다. 광개토태왕함의 주포만 고개를 쳐든 것은 아니었다. 명림답부함과

강감찬함에 장착된 각각 3기 6문의 150mm 쌍열주포도 모든 사격준비를 완료하고

김종완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가? 함장. 이순신함이 그립지 않나?"

"솔직히 이순신함이 그립습니다. 사령관님. 이순신함에 장착된 고성능 레이더라면

따로 관측장교를 암험도에 파견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무척 아쉽습니다."

"하하하... 나도 사실 이순신이 그립기는 마찬가질세. 그러나, 언제까지 이순신에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오랫동안 조선 해군의 기함 노릇을 해왔던 이순신함은 지금 북양도에서 조선으로

돌아오고 있는 윤정우가 지휘하는 제 1 왕립 친위함대에 배속되어 있었다. 조선에서

북해도와 북양도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장거리 항해를 하는 윤정우의 제 1 왕립

친위함대는, 이순신함의 고성능 탐색레이더로 인해 불필요한 충돌이나, 불가피한

노출을 피할 수 있었다. 러시아나 왜국, 미국 등 다른 나라의 함대나 상선, 또는

어선들을 이순신함의 엄청난 레이더는 미리 포착하여 함대의 진로를 결정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조선의 해군력을 다른 외국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였지만, 지금처럼 섬을 가로질러서 포격을 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이순신함의 고성능 레이더와 전자식 사격통제장치가 무척 아쉬운

김기진이었다. 그것은 김종완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김종완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명령을 내렸다.

"사격지휘반에 명령해서 일단 한 번 정확한 탄착점을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사격지휘반! 일단 1번 주포만 발사하도록!"

[알겠습니다. 함장님. 1번 주포 초탄 발사!]

"뻐버벙! 뻐벙!"

포술장의 우렁찬 복명 소리와 함께 광개토태왕함이 크게 한 번 출렁거렸다. 드디어

280mm에 이르는 막강한 광개토태왕함의 주포가 불을 뿜은 것이다. 김종완과 김기진을

비롯한 광개토태왕함 전투정보실에 있는 장병들은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많은 시간동안 함포 사격을 연습했지만 실전은 처음인지라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 암험도. 여기 암험도. 탄착점 수정. 거리 500 밀어. 효력사 요망!]

암험도의 관측반에서 무전이 들어오자 김기진은 즉시 광개토태왕함과 명림답부함,

강감찬함의 사격지휘반을 호출했다.

"사격지휘반! 거리 500 밀어! 효력사!"

[거리 500 밀어! 효력사!]

[거리 500 밀어! 효력사!]

[거리 500 밀어! 효력사!]

"뻐벙! 뻥!"

"뻐버벙! 뻥!"

"뻥! 뻐엉!"

광개토태왕함의 280mm 3연장 주포 2기 6문과 150mm 부포 4문, 명림답부함과

강감찬함의 각각 3기 6문의 150mm 주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총 6문의 280mm

주포와 광개토태왕함의 부포를 포함하여 총 16문의 150mm 주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

모습은 엄청난 장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원희의 임시 분함대와 잠수함들의 파상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 3국 연합함대이었건만, 이번의 공격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다. 120mm 포탄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크기의 280mm 포탄과 150mm 포탄의

불벼락을 맞게 될 연합함대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았다. 어디서

누가 때리는 지도 모르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벼락을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할

연합함대의 이름 모를 승무원들이 안쓰럽게 여겨진 것은 비단 김종완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움직임이 후방의 수송선단과 호위선단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108 오직 바다만이 알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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