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합함대를 향해 기세 좋게 전진하며 함포를 발사하던 양무함을 비롯한 조선 해군
임시 분함대가 선회를 한 것은 양측의 거리가 3km 정도 떨어진 시점이었다. 분함대
사령관이자 조선 해군 제 1 왕립 근위함대 부사령관인 이원희는 양무함 함교에서
자신이 지휘하는 분함대의 선회를 명령했다. 사전에 계획된 대로 적들의 피해를
최대한으로 강요하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이원희의 명령이
떨어지자, 양무함과 건무함, 이지란함과, 김충선함, 박연함과 풍백함, 운사함과
우사함 등 여덟 척의 함선들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오른쪽으로 일제히 선회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거리는 순식간에 2km까지 근접했다.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접근하면 연합함대의 주포 사정거리에 도달할 것이다. 벌써 성급한 적이
함수포를 발사하는 모습이 이원희의 눈에 띄었다. 비록 형편없이 빗나갔기는 했지만
충분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었다. 3국 연합함대의 장병들이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보며, 이제는 복수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함수에 장착되어 있는 함수포를 발사하거나 함수포의 발사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때, 분함대 사령관 이원희의 명령이 또 다시 떨어졌다.
"함대! 어뢰 발사!"
"함대! 어뢰 발사!"
이원희의 명령을 받은 양무함 함장 추선국의 무전이 각 함정으로 전달되자 양무함과
건무함, 이지란함과 김충선함, 박연함 등 어뢰발사관이 양 현측에 장착되어 있는
모든 함정에서 어뢰가 발사됐다. 총 20기의 어뢰가 한꺼번에 바다로 몸을 던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몸체의 길이만 2m가 넘는 청상어 어뢰는 온몸을 던져 바다
속으로 뛰쳐나가더니 쏜살같이 항주하기 시작했다. 장관이었다. 부챗살처럼 퍼져나간
청상어 어뢰는 새하얀 항적을 남기며 전방을 향해 쾌속 항주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른 모든 천군처럼 단정하게 자른 머리에 깔끔한 조선 해군 여름철 정복을 입은
이원희는 '방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발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명령을
내렸다. 조선의 수군이 해군으로 개편되고부터 꾸준히 진행한 해군 근대화의
일환으로 이제는 모든 해군 장병들이 천군처럼 단정한 머리와 천군식 군사용어를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은 이원희와 같은 고급 장성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해군
최초의 증기함인 풍백함의 함장을 시작으로 양무함의 함장을 거쳐 이제는 임시
분함대 사령관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원희는 누구보다도 해군 근대화에 대한 섭정공
김영훈과 해군사령관 김종완의 노심초사(勞心焦思)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조정의
시책에 적극 협력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단발(斷髮)이 시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군에서만큼은 모든 장병들이 짧고 단정한 머리와 수염을
자랑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수염이 있던 턱을 쓰다듬던 이원희는 청상어 어뢰가
발사되자 다시 명령했다. 당연히 천군식 군사용어였다.
"함대! 무차별 발사하라! 쉬지 말고 발사하렷다!"
"맞았습니다.! 또 맞았습니다!"
함미 깃대에 올라간 견시수의 목소리가 전성관을 통해 들려왔어도 어느 누구도
고함을 지르거나 환호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그렇지!
좋았어!' 하는 소리만 가끔 내지르고 있었다. 이들은 이미, 베테랑 해군이 다 된
것이다. 연합함대와 조우하고 나서 이제 겨우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
5분이라는 시간동안 조선 해군 임시 분함대의 장병들은 막강한 3국 연합함대를
상대로 10척이 넘는 적함을 격침시켰고, 방금의 어뢰 공격으로 또 얼마나 많은
적함을 격침시킬지 몰랐다. 그리고, 어뢰가 발사되는 순간에도 함미의 120mm
쌍열주포는 쉬자않고 적함을 수장시키고 있었다. 이제는 한 척의 적함을
수장시켰다고 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신참 해군이 아니었다. 지금도 견시수의
보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함미의 120mm 쌍열주포 2기 4문은 쉬지 않고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양무함의 장병들은 한 발 한 발 발사할 때마다 배가 출렁이듯
요동치고 있어도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할 뿐이었다. 비록, 격리된 함교에
자리잡고 있었기에 주포의 발사소음은 크게 들리지 않았지만, 배가 요동치는 것으로
자신들이 이번 전쟁의 한 복판에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승리가 멀지 않았음도 알고 있었다. 이원희는 연합함대와의
거리를 꾸준히 유지하여 효율적인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함장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함장! 함대의 모든 함정에 명령을 내려 속도 16노트를 유지하도록! 특별한 지시가
없을 때까지 현 상태를 고수한다."
"알겠습니다. 제독님."
연합함대와의 거리를 2.5km에서 3km 정도로 꾸준히 유지하면, 연합함대의 포격은
아군 함대에 한 발도 작열하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적함대는 아군 함대의 무차별
포격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축차소모될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가면 덕적군도의 섬
그늘에서 매복하고 있던 제 1 왕립 근위함대의 광개토태왕함(廣開土太王艦)과
명립답부함(明臨答夫艦)에 장착된 280mm와 150mm에 이르는 다양한 주포들이 뿜어내는
포탄들이 연합함대를 향해 쏟아질 것이다. 사실, 지금 추세대로라면 제 1 근위함대의
지원 없이도 연합함대를 괴멸시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나, 조선 해군
최초의 해전이라는 측면과 제 1 근위함대 최초의 함대와 잠수함의 합동 교전이라는
측면에서 연합함대의 유도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이원희는
자칫하면 김종완이 이끄는 제 1 왕립 근위함대의 먹잇감도 남기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사격지휘반에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직접 사격지휘반으로 통하는
전성관을 부여잡았다.
"사격지휘반! 주포의 발사속도를 분당 10발로 늦추도록!"
"알겠습니다. 제독님!"
이원희가 지휘하는 임시 분함대의 함미에 장착되어 있는 화력은 엄청났다. 양무함의
함미에 120mm 쌍열주포가 2기 4문 장착되어 있었고, 그것은 건무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3000톤급의 목조 프리깃 이지란함을 비롯한 목조 함선 6척이 각각 1기 2문의
120mm 쌍열주포가 있었으니, 함미에 장착되어 있는 120mm 주포의 숫자는 모두 20문에
달했다. 20문의 120mm 주포가 분당 15발을 발사한다고 했을 때, 단 5분만에 1500발의
포탄을 연합함대에게 작렬시킬 수 있었고, 분당 10발로 늦춰도 1000발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화력이었다. 물론 연속사격을 하지 못하고 순차사격만 할 수 있는 풍백함급
함선의 포격능력을 감안하더라도, 그 화력이라는 것은 최소한 분당 150발에서
200발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3국 연합함대는 초반부터 두들겨 맞기 시작하여
이원희의 뒤꽁무니를 쫓을 때도 줄창 얻어맞고 있었으니, 때리는 입장에서야 이렇게
재미있는 싸움이 없었지만, 맞는 입장에서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은 싸움이었다.
거기에 잠수함까지 가세하여 두들겨 패고 있으니 일러 무엇하랴.
조선 해군 임시 분함대의 기함인 양무함의 포술장인 함종문 소령은 자신이 지휘하는
사격지휘반 부하들을 사정없이 닦달하고 있었다. 초반의 쉼 없는 발사 때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는 발사였지만, 그래도 한치의 소홀함도 용납할 수 없다는 함종문의 서슬
퍼런 닦달에 사격지휘반 소속의 포수들과 탄약수, 장전수와 관측병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쏜 포탄에 적함이 격침되었다는 포술장과 관측병,
함미 견시수의 들뜬 보고가 그런 모든 괴로움을 모조리 씻어주고 있었다.
"4번 주포! 사격 준비 끝!"
"발사!"
"발사!"
"뻥! 뻐벙! 뻐버벙! 뻥!"
"5번 주포! 사격 준비 끝!"
"발사!"
"발사!"
"뻐엉! 뻥! 뻐벙! 뻐어엉!"
함종문의 발사 명령에 함미의 4번 주포와 5번 주포가 다시 불을 뿜었고, 배가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 함종문은 쌍안경을 눈에서 떼지 않고 연합함대를 관측하고
있었다. 4번 포에서 발사한 2발의 120mm 철갑고폭탄(Armour Piercing High Explosive)
이 목조함으로 보이는 적함의 현측에 작렬하는 것이 보였다. 연달아서 굉음이 두 번
울리더니 그 목조함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구멍이 뚫렸고 이어서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쓰러지기 시작했다. 5번 주포에서 발사된 두 발의 120mm 철갑고폭탄도
적함을 놓치지 않았다. 5번 주포에서 발사된 두 발의 철갑고폭탄은 적함의 탄약고를
들이받듯이 들어가서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탄약고의
유폭이 있었고, 적함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명중! 잘했다!"
함종문의 칭찬에 사격지휘반 요원들이 함박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맡은바 임무를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측거의(測距儀)로 적함과의 거리를 재던
관측병이 적함과의 거리를 불렀고, 광학조준식 사통장치를 사용하던 또 다른
관측병이 사격제원을 불렀다. 그리고, 포수들이 주포 안정장치와 탄착오차
보정장치를 사용하여 정확한 사격 준비를 마쳤고, 장전수들은 반자동 장전장치를
이용하여 포탄을 장전하고서 함종문을 쳐다보았다. 풍백함을 건조할 때부터 사용하던
광학조준식 사통장치를 포함하여, 해군력 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설치운용하기 시작한
사격지휘반과 측거의, 주포 안정장치와 탄착오차 보정장치, 그리고, 반자동
장전장치에 대해 조선 해군 장병들이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도입된 지
2년이나 지났기에 지금과 같은 숙달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믿음직한 부하들의
날렵한 움직임에 흡족한 웃음이 입가에 걸린 함종문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포수들의
우렁찬 외침이 있고 난 후였다.
"4번 주포! 사격 준비 끝!"
"5번 주포! 사격 준비 끝!"
"4번 주포! 발사!"
"발사!"
"뻐벙! 뻐엉!
"5번 주포 발사!"
"발사!"
"뻥! 뻐벙!"
한치의 오차나 군더더기 없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움직이는 사격지휘반 요원들의
사격은 빈틈이 없었다. 쾌속항진하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함미에 장착된
120mm 쌍열주포 2기 4문은 90% 이상의 사격명중률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훈련을 통해서 그 성과를 입증해 보였기에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실제로
19세기 말 영국 해군 아시아함대의 스코트(Scott) 대령은 중구경 속사포에
조준장치를 장착하여 90% 이상의 명중률을 기록했었다. 겨우 19세기 말의 허접한
조준장치로도 그러한 엄청난 명중률을 자랑하는 실정에서 21세기의 전술과 20세기의
무장을 사용하는 19세기의 조선 해군이 그러한 명중률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두 척의 적함이 또 다시 서해 바다의 용왕님께로 달려간
것은 함종문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분함대의 함포 사격과 어뢰
발사로만 벌써 스무 척이 넘는 적함을 수장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