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43화 (243/318)

"방위 1-3-7. 거리 4350!"

홍현태의 명령이 있자 조타수가 수직타를 움직였는지, 한-106 잠수함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감지되었다. 홍현태는 두 번째 공격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나자 주저

없이 발사 명령을 내렸다.

"2번 어뢰 발사!"

"2번 어뢰 발사!"

1번 어뢰가 잠수함을 발사된 지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2번 어뢰가 발사되었다.

목표는 뉴 아이언사이드 오른쪽 약간 뒤에서 항주하고 있던 목조 프리깃함

아이오와였다. 콜로라도급 목조 프리깃 2번함인 아이오와는 4772톤의 배수량을 가진

미국 해군에서 손꼽히는 함선 중 하나였다. 각각 577명과 595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는 미국 해군의 주력함 뉴 아이언사이드와 아이오와를 향해 두 발의 어뢰가 물살을

가르며 힘차게 항주하기 시작했다. 2번 어뢰마저 발사한 한-106 잠수함은 유응모의

명령으로 어뢰를 재 장전하기 시작했고, 홍현태는 잠시 공격잠망경에서 접어

불필요한 노출을 피하도록 하고 티르피츠 대위를 바라보았다.

"어떤가? 대위! 긴장되지 않나?"

"예? 예. 솔직히 긴장됩니다. 함장님."

"그럴 거야. 나도 긴장되는데 자네라고 긴장되지 않을 리 없지."

"함장님께서도 긴장되신다고요?"

티르피츠 대위는 눈이 똥그래졌다. 타고난 군인이요, 잠수함 함장이라고 생각하던

홍현태의 입에서 긴장된다는 말이 튀어나왔으니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홍현태는

솔직하게 긴장된다고 인정하면서 다음 말을 이었다.

"왜 아니겠나. 실은 나도 이번이 처음 맞는 실전이라네."

"예에?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지 않나. 그동안 잠수함을 건조하고 훈련만 해왔으니 어디 실전을 치를 수나

있었나. 그저 죽어라고 훈련만 해왔지. 더구나 우리 조선이 다른 나라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으니 언제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나."

"예..."

홍현태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티르피츠 대위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바로, 조금 전에 발사한 어뢰에 관한 것이다.

"헌데, 함장님. 방금 발사한 어뢰는 언제 폭발하는 겁니까? 이제는 폭발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티르피츠 대위는 세계최초의 실전에서의 어뢰 발사라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잠수함

함장치고는 생각 외로 느긋한 표정의 홍현태의 행동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티르피츠 대위의 질문에 홍현태는 별 걱정을 다한다는 표정의 웃음을 머금더니

유응모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부장. 얼마나 남았나?"

"예. 1번 어뢰. 명중까지 이제 20초 남았습니다."

"그래! 어디 한 번 볼까? 자네도 한 번 보게나."

티르피츠 대위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조선 해군 최초의, 아니, 전 세계 해군

최초의 잠수함을 이용한 실전과 격침 전과가 될지도 모르는 엄청난 역사적 현장을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홍현태의 명령에 떨떠름한 표정을 짖고 있는 유응모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티르피츠 대위는 유응모가 쳐다보던

탐색잠망경에 눈에 댔다. 엄청난 숫자의 3국 연합함대의 전투함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때 유응모가 조선말로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셋. 둘. 하나. 꽈앙!"

"명주웅!"

"우와! 이야! 끼야호오!"

홍현태를 비롯한 한-106 잠수함의 모든 승무원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잠수함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고 환호성을 울렸지만,

홍현태는 그들을 무어라 나무라지 않았다. 21세기 잠수함전이라면 적의 음향탐지를

피하기 위해 숨을 죽이고 승리의 기쁨을 가슴속으로만 표현해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19세기 중반이었다. 홍현태는 승무원들에게 주의를 줄

생각도 없었고, 자신부터가 흥분에 휩싸여 있었다. 반대로 홍현태의 맞은 편에서

탐색잠망경을 붙들고 있던 티르피츠 대위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엄청난 광경에 할

말을 잃어버렸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알기론 저 함선은 분명

미국 해군 아시아함대의 기함인 뉴 아이언사이드가 분명했다. 현존하는 세계최고의

장갑함 중 하나인 뉴 아이언사이드가, 단 한 발의 어뢰에 용골이 부러지면서

들썩하고 들리는 듯 싶더니, 그대로 두 동강이 나면서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말 그대로 굉침이었다. 마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바다 속에서 주먹을 내지른 것처럼 용골 한 가운데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뉴 아이언사이드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티르피츠 대위가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나오는지도 모르고 엄청난 광경을

얼이 빠진 듯 바라보고 있는데, 유응모의 숫자 세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예의

알아들을 수 없는 조선말이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꽝!"

"야호! 또 맞았다!"

"우와아아아! 죽인다아아! 이야!!!"

흥분의 도가니였고, 감동의 물결이었다. 잠수함을 세계최초로 건조한 조선 해군

잠수함전단의 열다섯 척에 이르는 잠수함 중에서, 세계최초로 실전에서 적함을

격침한 최초의 잠수함이 바로 자신들이 타고 있는 한-106 잠수함이라는 사실은 35명

전 승무원들을 포효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조국을

침략하는 건방진 양이놈들을 수장시켰다는 사실은 핏줄 속에 내제되어 있던 조상들의

늠름한 기상을 여실히 입증하는 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은 두 손은 굳게

마주 잡혀 있었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른이 된

이후로는 다시는 울 일이 없을 것 같은 강철같은 사내들의 두 눈에서 어린아이의

눈물과 같이 굵디굵은 눈물이 흘러나오는 광경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차마 눈뜨고

못 볼 것을 봤다고 혀를 끌끌 찼을 일이었지만 누구도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이방인인 티르피츠 대위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해군 잠수함 승무원의

흥분에 전염된 독일 해군 관전무관 티르피츠 대위의 두 눈에서도 닭똥 같은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잠수함만 있다면 숙적 영국 해군에게 대항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천군 출신의 함장 홍현태의

눈물도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강대국의 횡포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찢겼던 약소국

한국에서 최후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시간원정이었다. 다시는 외세에 의해

억압받고 핍박받는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시간원정이었다. 그 시간원정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해전이었다. 19세기의

최강국인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잠재적 강국인 미국의 연합함대를 상대로 한치의

굴함도 없이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는 사실은 분단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서 살아왔던

홍현태에게는 벅찬 감동이요, 주체할 수 없는 희열이었다. 함장과 승무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고 있던 때, 유응모는 티르피츠 대위에게 빼앗겼던 자신의

탐색잠망경을 다시 붙잡았다. 비록 결정적인 순간은 놓쳤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탐색잠망경을 붙잡고 이리저리 돌리던 유응모의 눈에

연합함대 전투함 몇 척이 피격되는 순간이 포착되었다.

"함장님! 저길 보십시오. 적함이 또 다시 침몰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홍현태는 눈 두덩이가 벌개진 채로 잠망경에 얼굴을 들이밀었고,

이어서 몇 척의 적함이 침몰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다른 구역을 담당한 다른

잠수함의 공격이 틀림없었다. 이러다가 다른 잠수함들한테 먹잇감을 모두 뺏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홍현태가 승무원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잘 들어라!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우리 모두

자랑스런 조선 해군 잠수함전단의 이름을 세계 만방에 떨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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