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38화 (238/318)

7.

이미 해는 기울어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건만, 조선 원정군의 실질적인 수뇌부

회의라고 할 수 있는 회의는 저녁 식사도 거른 채 계속되고 있었다. 3국 연합함대의

기함인 워리어급 전함의 2번함인 아가멤논(Agamemnon)의 사령관 실의 회의용 원탁에

마주 앉은 조선 원정군 수뇌부의 표정은 제 각각이었다. 조선 원정군 총사령관 겸

연합함대 사령관인 영국 해군의 헨리 켈렛(Henry Kellett) 제독과 연합함대

부사령관이자 미국 해군의 아시아함대 사령관인 미국 해군의 존 로저스(John Rodgers

Jr) 제독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엿보이고 있었고, 조선 원정군 지상군 사령관인 미국

육군의 필립 쉐리던(Philip Henry Sheridan) 장군의 얼굴에는 호전적인 결의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코친차이나함대의 잔여 함선을 이끌고 참전한 연합함대

참모장인 프랑스 해군의 보쉐(Bochet) 대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원정군

수뇌부들이 이러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원탁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조선

원정과 강제 개항에 대한 모든 책임을 쥐고 있는 청국 주재 영국 공사 웨이드 경과

미국의 로우 전권공사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착잡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방금 왔다간 조선 해군 제 2 왕립 근위함대 사령관이라는 자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번 조선 원정에 있어서 모든 전권을 영국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웨이드 경이 물었다.

딱히 누구를 지목하여 묻는 것이 아닌 누구든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해보라는 물음이었다. 웨이드 경의 말이 떨어지자 조선원정군 지상군 사령관인 미국

육군의 필립 셰리던 장군이 입을 열었다.

"무슨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

"제가 볼 때 조선 해군의 함대 사령관이라는 자는 동양인 특유의 허풍을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겨우 8척으로 이루어진 함대를 가지고 우리 원정군 연합함대에

대항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더군다나, 그 정도의 전력가지고 우리

연합함대를 몰살시키겠다니, 허풍도 이런 허풍이 없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하하하! 맞습니다. 허풍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데, 저들의 허풍은 그 정도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셰리던의 말을 받은 이는 연합함대 부사령관 로저스 제독이었다. 연합함대

부사령관이자 미국 해군 아시아함대 사령관인 로저스 제독의 집안은 미국 해군에서

알아주는 명문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인 존 로저스 제독은 미국 해군의

최강 함대인 지중해함대를 창설한 인물이었고, 형인 로버트 로저스(Robert Rodgers)

는 왜국을 강제 개항시킨 미국 해군의 영웅 매튜 페리(Mattew Perry) 제독의

사위이기도 했다. 로저스 제독은 자신은 지난 미국 내전 당시 남부연맹의 해군을

상대로 뛰어난 전과를 기록하여 장성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러므로, 올해

나이가 예순 살인 로저스 제독의 말은 원정군 내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신중하면서도 과단성 있는 로저스 제독까지 이렇게

말하자 좌중의 인물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유독 웨이드 경과 로우

전권공사만은 침통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허나, 말입니다. 저들의 허풍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라면 어떻게 합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웨이드 경. 허풍이 아니라니요?"

조선 원정군 총사령관인 켈렛 제독의 말이었다. 웨이드 경은 침통한 표정을 풀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함대가 언제 바다를 건너올 줄 알고 미리 나와서 대기하고

있다니 말입니다."

"그것은... 사실 우리 3국의 이번 조선 원정은 장시간을 걸쳐서 준비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구요."

켈렛 제독의 말이 맞았다. 영국 미국 법국 등 3국 연합함대의 조선 원정은 비밀이

아니었다. 이미 작년부터 치밀하게 준비를 해 왔었고, 금년 초부터 3국의 함대가

속속 청국의 각 항구에 도착했었다. 그래서 청국의 각 항포구에는 때아닌 양이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었고, 그에 따라 원정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소들이 호황을

맞기도 했었다. 이런 상태이니 만큼 조선에서도 3국 연합함대의 침공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로저스 제독.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어떻게 저들이 우리의 진로를 정확히

예견하고, 또 어떻게 저들이 우리가 오늘 조선의 영해로 넘어올 줄 알고 함대를

이끌고 나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독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저들의 함대를... 꼭

미리 준비하고 온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저들의 함대 사령관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되더라...?"

"이원희 제독이라고 했습니다. 공사각하."

"그래! 이원희 제독! 동양권의 이름은 당최 어려워서 말이지..."

웨이드 경은 자신에게 조선 해군 제 2 왕립 근위함대 사령관의 이름을 가르쳐 준 한

대위를 바라보았다. 그 대위는 연합함대 수뇌부가 앉아 있는 원탁의 뒤에 서 있던

참모진 틈바구니에 끼어 있었다.

'가만! 저 친구가 해군 정보부의 누구더라...?'

잠시 이런 생각을 한 웨이드 경은 다시 고개를 로저스 제독에게로 돌렸다.

"조선 해군 함대의 사령관이라는 이원희 제독의 태도를 여러분들도 보셨지 않습니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표정이었고, 죽을 자리를 찾아온 이를 보는 것 같은 연민에

넘치는 표정이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조선 해군 함대의 명칭을 보십시오. 제 2

왕립 근위함대랍니다. 제 2 왕립 근위함대."

웨이드 경은 일부러 '제 2'라는 말에 힘을 실어 말했다.

"그 말은 제 1 왕립 근위함대도 있다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음... 웨이드 경의 말씀을 듣고 보니 이상하기도 합니다만... 허나, 조선 해군에 또

다른 함대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에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조선에서

저 정도의 해군을 길렀다는 것도 굉장히 놀라운 일 일진데 하물며 또 다른 함대가

존재한다니요. 그건 말이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또 다른 함대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

원탁에 둘러앉은 다른 수뇌부의 표정도 로저스 제독의 뜻과 같았다. 솔직히 이들도

그동안 조선의 군사력을 파악하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나라가 워낙 폐쇄된 나라이다 보니 정확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조선 원정이 계획될 때부터 영국과 미국은 자체적으로 조선의

군사력을 파악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1866년에 조선을 침공하여 무참히

참패한 전력이 있는 프랑스 코친차이나함대 관계자들의 증언도 청취하였고, 왜국에

파병된 조선군 해병대에 대한 정보도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국에서

포섭한 정보원을 통해서, 조선이 왜국으로 수출한 후장식 양식보총(攘式步銃 Type "

Yang" Breech loading Rifle)에 대한 분석도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조선이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동양의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우수한 화기제작 능력과 육군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은 마지막으로 조선의 해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백방으로 정보원을 파견하고, 조선의 수교국인 독일 측에 선을 대어 조선

해군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는 무수한 시도를 하였다. 하지만, 실상 이들이 조선

해군에 대해 취득한 정보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조선의 제물포를 드나드는

청국인 소유의 상선이나, 독일 측 상선 또는 국적선 승무원들에 대한 공작도

있었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프랑스 코친차이나함대의 한 고급

사관으로부터 조선의 해군력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정도라는 말을 들은 것이

유일한 수확이었다. 그러다가, 영국과 미국의 정보원들에게 조선의 해군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플라잉 클라우드호 사건이었다.

미국인이 선주로 되어 있고, 영국 국적의 상사에 용선되어 있던 아편 클리퍼선

플라잉 클라우드호를 조선 국적의 상선이 격침시켰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 사건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조선의 해군력에 대한

나름의 유추를 할 수 있었다. 일개 상사도 무장한 상선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에서

비록 소국이라지만 한 나라의 해군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조선이 비록 육군은 강할지 몰라도 해군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그러나, 여타 다른 동양의 허접한 나라와는 그 격이 다르다.

굳이 비교하자면, 왜국보다는 약해도 청국보다는 강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여, 원래의 영국, 혹은 미국 단독으로 조선 원정을 할 계획이었던 것이 영미 양국

연합군의 구성으로 선회하였고, 막판에 프랑스가 합류하여 3국 연합함대가

구성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보병 몇 개 연대만으로 구성된 조선

원정군 지상군을 편성할 생각이었으나, 조선의 상대적으로 강한 육군을 상대하기

위해서 양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팽창이 있었다. 이렇게 구성된 3국

공동 조선 원정군의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지상군으로 영국이 4개 연대, 미국이

5개 연대, 프랑스가 1개 연대를 파견하여 총 10개 연대의 지상군이 편성되었으며,

해군은 영국 해군의 전투함 및 포함 30여 척, 미국 해군의 전투함 및 포함 20여 척,

프랑스 해군의 3 척 등 총 60여 척의 전투함과 80여 척에 이르는 수송선단이

구성되었다.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영국을 제외한 세계 어느 나라의 해군이라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저스 제독을 비롯한

원정군 수뇌부에서는 조선 해군에 또 다른 함대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격퇴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이다.

"로저스 제독의 말이 맞습니다. 저들의 함대가 우리의 예상보다는 훨씬 강력하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저들에게 또 다른 함대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동양의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묵묵히 대화를 듣고만 있던 조선 원정군 총사령관이자 연합함대 총사령관인

켈렛 제독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원정군 총사령관인 켈렛 제독의 말은 묵직하게

이어졌다.

"저도 공사각하의 걱정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알겠습니다. 솔직히 조선 해군 함대를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동양의 미개한 나라에서 강력한 장갑함을 두 척이나 보유하고

있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 장갑함이 있다면 우리도

장갑함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장갑함 아가멤논은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전함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미국 해군에서 동원한 장갑함 뉴 아이언사이드(

New Ironside)는 어떻습니까? 아가멤논의 7인치 암스트롱 후장포로도 파괴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함선이 바로 미국 해군의 모니터함입니다. 모니터함의 8인치

중장갑은 아게멤논의 7인치 암스트롱 후장포로도 무력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니터함의 8인치에 달하는 중장갑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함선이 바로

뉴 아이언사이드입니다. 뉴 아이언사이드는 막강한 11인치 댈그랜 중포(重砲)를

14문이나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조선 원정군 연합함대의 기함인 아가멤논은 워리어급 전함의 2번함이다. 지난 1865년

왜국의 시모노세키 앞 바다에서 무력시위를 하던 영미 연합함대가 허무하게 사라지자,

부랴부랴 취역시킨 함이 바로 아가멤논이다. 그리고 미국 해군 아시아함대의 기함인

뉴 아이언사이드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당시 미국 해군의 자존심으로 일컬어지는 뉴

아이언사이드가 다른 몇 척의 함선과 함께 사라지자, 미국 해군 당국은 그렇게

사라진 뉴 아이언사이드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동급 함을 취역시켰고, 뉴

아이언사이드의 함명을 계승시킨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아까 보셨지 않습니까? 저들 기함의 주포를 말입니다."

켈렛 제독은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웨이드 경과 로우 전권공사와 같이

군사 분야에 있어서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을 빼 놓고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중앙포곽함에 대한 개념을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겨우 5인치

정도에 불과한 주포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5인치 주포로는 우리 장갑함의

측면장갑은 고사하고 상갑판도 뚫지 못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조선 해군의 주력함은 중앙포곽함(Central Battery Ship)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했다. 지금 시대의 장갑함의 건조 사상은 현측포문함(Broadside

Battery Ship)이 대세라고 할 수 있었다. 범선 시대의 함선처럼 상갑판 아래에

중갑판인 건 데크(Gun- Deck)를 갖추고 다수의 주포를 현측에 장착하여 적함을

공격하는 형태의 함선을 현측포문함이라고 하는데, 이 현측포문함이 도태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탑재되는 주포의 중포화 경향 때문이었다. 함선에 탑재되는 주포가

중포화, 대형화하면서 전체적인 배수량의 증가를 불러왔고, 배수량의 증가는

건조비의 상승을 부채질했다. 하여, 대안으로 등장하는 함의 형태가 바로

중앙포곽함이다. 중앙포곽함은 소수의 대형 중포를 중앙에 밀집시켜 놓고, 주포가

위치한 중앙 부위만 장갑으로 보강한 형태의 함선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록 소수의

주포지만 밀집시킨 주포의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건조비의

상승을 나름대로 억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앙포곽함의 시대는 도입과 동시에

사라지게 되는데 다름 아닌 포탑의 등장으로 인해서이다. 포탑은 1문 내지 2문의

주포 전체에 장갑을 씌운 천장으로 둘러싸고, 주포와 일체화된 포탑이 회전하면서

주포의 사격각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포탑이 처음으로

채택되어 등장하는 배가 미국 내전에서 활약한 모니터(Monitor)호였다. 스웨덴계

미국인 기술자 존 에릭슨(John Ericsson)에 의해 고안된 포탑이 탑재된 모니터호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남부연맹의 해군을 저지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렇게 모니터호의 활약에 고무된 미국 정부군은 다수의 연안 또는 하천용의 저현

모니터호를 건조하게 되는데, 워낙 모니터호의 활약이 인상깊어서인지 포탑을 탑재한

연안 또는 하천용 함선을 보통 모니터함이라고 칭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포탑을

탑재한 모니터호가 등장하던 때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에서도 포탑을 탑재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영국 해군의 콜즈(Coles) 대령이 그 계획의 최초 입안자였다. 콜즈

대령의 계획은 미국의 연안 또는 하천용의 소형 모니터호와는 달리 원양에서 항해할

수 있는 대형함에 포탑을 장착하는 대담한 계획이었다. 콜즈 대령의 의견을 받아들인

영국 해군성은 두 척의 원양포탑함을 건조하는데 그것이 바로 배수량 8300톤의

모나크(Monarch)와 6963톤의 캡틴(Captain)이었다. 그러나, 모나크와 캡틴은 함체의

건현이 지나치게 높게 설계된 함이었다. 따라서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높았고,

지나치게 높은 무게중심은 전복의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모나크와

캡틴은 지나치게 높은 무게중심으로 인하여 훈련도중 전복되었고, 승무원 전원이

사망하기에 이르는데 그때가 바로 지난해인 1870년이었다. 오늘 연합함대 수뇌부가

본 조선 해군의 주력 장갑함은 대형 장갑함이면서도 무게중심은 낮은, 따라서

원양포탑함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일이었으나, 청국에서 오랫동안 함대 사령관으로

재직하였던 켈렛 제독은 모나크와 캡틴의 건조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오늘 본 조선 해군의 주력 장갑함을 중앙포곽함으로 부르는 우를 범한 것이다.

그리고, 아가멤논의 사령관 실에 앉아 있는 연합함대의 다른 수뇌부들도 이제 겨우

등장하기 시작한 포탑 탑재형 함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현측포문함이 무엇이고, 주포의 파괴력이 어떤지에 대해서 잘 모르는 웨이드 경은

켈렛 제독의 말에 따로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심중에 남아있는

꺼림칙한 기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일이면

본격적인 조선 해군과의 해전이 시작될 것이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꺼림칙한 마음이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페킹(Peking 북경)의

조선 공사 오경석의 얼굴과 오늘 본 조선 해군 제 2 왕립 금위함대 사령관 이원희

제독의 얼굴이 교차하면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함대의 모든 전투함과 수송함에 연락하여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보일러를 항시 가동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들이 야간에

기습이라도 하면 큰 곤란을 겪을 수도 있으니까요."

"... 음 ... 알겠습니다. 공사각하."

켈렛 제독은 웨이드 경의 신중한 성격을 이해하고 싶었다. 동양권에서 반생을 보낸

노 외교관의 마지막 임무가 될지도 모르는 이번 조선 원정과 강제 개항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그의 외교관 인생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로 웨이드 경의 신중함을 이해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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