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총원 전투배치!"
전성관(傳聲管)을 통해서 함장 홍현태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106 잠수함의 모든
승무원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현태를 제외한 서른네 명의 승무원과 한
명의 관전무관이 모두 각자의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홍현태는
손목에 찬 시계를 드려다 보았다. 홍현태의 옆에 있는 부장 유응모도 마찬가지로
손목을 드려다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와 같은 스탑-워치(Stop-Watch)를 가지고
있었다면 훨씬 시간을 재는데 편했을 것이나 아직까지 그런 것은 없었다. 하여,
지금처럼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잴 수밖에 없었다.
"어떤가?"
"그런 대로 만족할만한 수준입니다. 함장님. 정확히 25초가 걸렸습니다."
"음... 좋아. 이 정도면 괜찮아."
홍현태는 대체로 만족하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자신들이 타고 있던 장보고함보다는
훨씬 작고 성능도 떨어지는 한-106 잠수함인데, 거기다가 독일 해군 관전무관의
동승으로 인하여 기존의 성능보다도 더욱 다운 그레이드 된 한-106 잠수함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잠수함을 인수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달이라는
기간동안 장보고함에서는 익숙해져버린 일상을 한-106 잠수함에 맞추기 위한 훈련이
반복적으로 실시되었다. 방금 실시한 비상대기 훈련도 마찬가지였다. 적함과의
우발적인 조우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목적으로 실시되는 비상대기 훈련은
일상적인 임무를 수행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던 승무원들이 얼마나 빨리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여 전투 준비를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원래의 한-106 잠수함이나
장보고함이었다면 비상 경보음이 울리며 모든 승무원들이 각자의 위치로 이동하였을
것이나, 지금의 한-106 잠수함은 다운 그레이드 된 잠수함이었다. 당연히 비상
경보음도 없었다. 지금처럼 각 방으로 연결된 전성관을 통해서 명령을 전달해야만
했다. 덕분에 악을 고래고래 써야하는 홍현태나 유응모의 목만 죽어라 고생해야 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것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홍현태는 조타실 한 쪽에 마련된 의자에
어중간하게 앉아 있는 독일 해군 관전무관 티르피츠 대위를 바라보았다. 마땅한
보직이 없는 티르피츠 대위는, 따라서 그 위치도 어정쩡할 수밖에 없었다. 조타실의
다른 사관들처럼 타기 조정반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홍현태나 유응모처럼
전투정보실에서 전투를 지휘하거나 잠수함을 조함할 수도 없었다. 그저 조타실에
마련된 의자에서 알 수 없는 기호로 된 해도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어떤가? 티르피츠 대위. 할 만 한가?"
"괜찮습니다. 함장님."
홍현태의 매끄러운 발음의 영어 물음에 티르피츠 대위도 영어로 대답했다. 막상
괜찮다고는 했지만 티르피츠 대위는 아직까지 정신이 없었다. 홍현태가 지휘하는 한-
106 잠수함에 티르피츠 대위가 승함한 것은 이틀 전이었다. 독일 공사관의 얀커
서기관과 함께 해군사령부에 도착한 독일 해군 관전무관 티르피츠 대위는 간단한
신체 검사를 마친 후 바로 한-106 잠수함이 있는 비밀 선거로 안내되었다. 물론 두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린 채였다. 아무리 동맹국 해군 사관이고, 관전무관이라고 해도
군사기밀을 함부로 노출시킬 수는 없었기에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렇게
안대로 두 눈을 가린 채 잠수함이 계류 중인 선거에 안내된 티르피츠 대위는 두 눈이
자유롭게 되자, 경악하고 말았다. 시커먼 선체를 자랑하는 배와 비슷한 물건 하나가
바닷물에 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실로 괴이했다. 겨우 수면 위로 1m 정도밖에
나오지 않은 검은 선체는 굉장히 독특한 모양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의 시커먼
선체를 자랑하는 배 비슷한 것이 바닷물이 들어온 선거에 떠 있었다. 잠수함이었다.
그때 티르피츠 대위가 받았던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서양 제국(諸國)에서는 이제
겨우 잠수함의 개념 정도만 이해를 하고 있었는데, 미개한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는
벌써 잠수함을 상용화하여 군용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말로만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 충격과 경악은 한-106 잠수함에 승함한 후에도 계속되었다. 시커먼
쇠로 된 잠수함이라는 물건이 물에 뜬다는 것도 경악할 만한 일이었고, 수상 항주를
하다 수중으로 잠항하여 어뢰를 사용하여 적함을 공격한다는 설명도 충격 그
자체였다. 서양에서는 이제 계발되기 시작한 어뢰를 조선 해군은 진작부터
상용화하여 사용하였다니 다만 놀라울 따름이었다. 무엇보다도 티르피츠 대위를
놀라게 만든 것은 조선 해군 잠수함의 함장과 승무원들의 자신감에 넘치는
눈빛이었다.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군용 잠수함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눈빛은 서양인 티르피츠 대위를 주눅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티르피츠
대위를 바라보는 승무원들의 눈빛은 '잘난 양이놈들이 이런 잠수함을 만들 수나
있느냐?' 하는 조롱으로 느껴졌다. 지금이야 잠수함에 승함한지 이틀이나 지났고,
남양의 조선 해군사령부를 떠나 서해 바다로 출항한지 역시 이틀이나 지나 어느 정도
잠수함과 승무원들에게 익숙해졌기에 그런 느낌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허나,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해도 겨우
이틀에 불과한 시간에 모든 것에 적응할 수는 없었다. 방금의 비상대기 훈련에서
티르피츠 대위는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차에 화장실에 연결된 전성관을 통해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큰 소리를 듣고 채 볼일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달려와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좁아 터진 화장실에서 맘놓고 볼일도 보지 못하고 달려와야
했으니, 어찌 불만이 없겠는가. 그러나 티르피츠 대위는 그런 불만을 내색하지
않았다. 동맹국 관전무관이라는 허울로 이 잠수함에 승함한 것만 하더라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최첨단 무기인 잠수함의 운용과 훈련에 대한 기술을 더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홍현태는 화장실에서 달려나온 티르피츠 대위를 보더니
씨익하고 웃어주었다. 그리고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긴급잠항! 잠항각 최대로! 심도 35!"
"긴급잠항! 잠항각 최대로! 심도 35!"
"알겠습니다. 긴급잠항. 잠항각 최대로. 심도 35."
홍현태가 명령을 내리자 부장인 유응모가 복창했고, 다시 수평타를 조작하는
조타수가 반복해서 복창을 했다. 모든 명령과 이행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티르피츠 대위가 또 무엇을 하길래 저렇게 바쁘게 복명과 복창이
이어지나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잠수함이 갑자기 밑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티르피츠 대위는 홍현태의 명령이 있는 순간 나름대로 준비를 하여 의자를 꽉
움켜쥐었지만,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하는 잠수함의 움직임에 심한 멀미를 느꼈다.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일이었기에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했건만 몸이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느낌과,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이러한 느낌은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았다.
"조타수 조심해라! 지난번처럼 뻘 밭에 처박지 말고!"
"걱정 마십시오. 함장님. 지난번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조정하느라 그런 겁니다."
조타수의 볼멘 소리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잠수함을 진동시켰다. 한 달 전 처음
한-106 잠수함을 인수하고 나서 실시한 긴급잠항 훈련에서 수평타를 잘못 조작하여
뻘 밭에 잠수함을 박은 적이 있었다. 다행히 부드러운 뻘 밭에, 그것도 심하게
처박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며칠 동안 선거에서 수리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홍현태는 그 점을 상기시킨 것이고, 그 점을 잊지 않고 있던 승무원들은
웃음으로 조타수를 놀린 것이다. 티르피츠는 속이 거북하고 가슴이 울렁거려,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밖에 먹지 못했던 조선 음식이 넘어올 지경이 되었건만,
태연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한-106 잠수함의 승무원들이 부러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수함이 일정 심도에 다다르자 멈추는 것을 느꼈다.
"지금의 심도가 어떻게 됩니까? 함장님."
"응? 지금은 35m 정도 잠항한 상태다. 왜 불편한가? 티르피츠 대위."
"아닙니다. 함장님. 다만,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티르피츠 대위는 솔직했다. 남양의 조선 해군사령부로 오는 사두마차에서 이미
조선의 과학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느낀 티르피츠 대위였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입증되었다. 지금 시대에서 증기를 돌려 충전한
충전기로 잠항할 수 있는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나라는 조선 외에는 없었다.
그것은 잠수함 구석구석에 설치된 전기를 이용하여 빛을 내는 전등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이렇게 인정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에는 엄청난 충격과 경악으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기도 했고, 한낱 노란
원숭이에 불과한 동양의 소국 조선에서 잠수함이라는 어마어마한 전략적 무기를
건조한 것에 대해서 배가 아프기도 했지만, 이제는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처음의 소심했던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이제는 최첨단 무기인 잠수함의 운용을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생각으로 충만했다.
"방금 35m 정도 잠항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잠수함의 최대
잠항 심도는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방금 같이 함을 급격하게 기동하는 이유는
무엇이구요?"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이 잠수함의 최대 잠항 심도는 60m 일세. 그리고, 방금과
같은 급격한 기동을 하는 이유는 수상 항주를 하다 적함을 발견하게 되면 적함의
탐지를 피하고 효율적인 공격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훈련이라고 할 수가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충분한 훈련만이 실전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네."
"네. 잘 알겠습니다. 허면, 최대 잠항 심도까지 잠항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음... 그것은 말이지 두 가지의 이유가 있네. 지금 시대에서 우리 잠수함을
탐지하여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네. 이런 상태에서 굳이 최대
잠항 심도까지 잠항하여 연료를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서해 바다의 수심과 관계가 있네."
"서해 바다(West Sea)요?"
"아! 자네는 서해 바다라고 하면 잘 모르지. 황해(Yellow Sea) 말일세. 우리 조선의
위치에서 보자면 서쪽에 있는 바다이기 때문에 서해라고 부리지. 하여튼 이 서해
바다의 수심은 깊은 곳이 겨우 50m에서 60m에 불과할 정도로 낮지. 그래서
긴급잠항을 할 경우에는 항상 바닥에 처박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네."
홍현태의 설명을 들은 티르피츠 대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티르피츠 대위의 얼굴에는
하나하나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는 생각을 가진 어린 학생처럼 열의가 충만했다.
홍현태와 티르피츠 대위와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응모가 가만히 손목을
내려다보고 말했다.
"함장님. 이제 이동해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