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30화 (230/318)

1.

"왜 하필이면 나냐고! 왜! 왜! 왜!"

남양 해군사령부 내의 잠수함 전단 사관 휴게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장보고급

잠수함의 1번함이자 명명함인 장보고함(張保皐艦)의 함장인 홍현태 중령은 숨을

씩씩거리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방금 잠수함 전단장 사무실에 들러서 충격적인

말을 들은 홍현태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홍현태를 보면서 장보고함의

부장인 유응모 대위는 말을 아꼈다. 홍현태의 더러운 성질을 잘 알고 있는 유응모는

괜히 위로한답시고 한 마디 하다가 깨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럴 때는

그저 스스로 화를 삭이고 분을 다스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홍현태가 부하들을 끔찍이도 아끼고 부하들의 신망도 두터웠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전출 요청을 했을 유응모였다. 그리고, 유응모는

홍현태가 이렇게 신경질을 내는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기에 감히 나서서 무어라 말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홍현태의

발광에 가까운 신경질을 본 사관 휴게실 내의 다른 사관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모습이 유응모의 눈에 띄었다. 예상대로 홍현태는 한참을 혼자서 욕을 하며 화를

내다 어느새 진정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심화를 다스리기 위해 사관 휴게실의 창문

쪽으로 걸어가는 홍현태의 뒤를 따르며 유응모가 말했다.

"그래도 한(韓)-1 잠수함도 탈만하지 않습니까? 함장님."

"부장도 한-1 잠수함을 타봤나?"

"예. 그렇습니다. 함장님."

"그래. 부장의 말대로 한-1 잠수함도 탈만하지. 비록 우리 장보고급 잠수함에 비해서

성능이 많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잠수함이라는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지도 못하고

있는 다른 서양 제국(諸國)의 해군에 비하면, 한-1 잠수함은 정말 훌륭한 무기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 한-1 잠수함의 성능이 개량되어 더 떨어지는

것이라면 어떻겠나?"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능이 개량되어 더 떨어지다니요?"

유응모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개량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좀 더 좋은 사양으로 성능이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개량된 잠수함의 성능이 떨어진다니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유응모의 표정을 본 홍현태는 그가 아직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장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

"......?"

"독일 해군사관 몇이 관전무관으로 온다는 것을 말이야."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함장님. 서양 연합함대의 침공이 임박한 상황이라 우리 조선

해군과 서양 연합함대의 해전을 관전하기 위해 온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과

우리가 한-1 잠수함을 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리고, 한-1 잠수함의

성능이 떨어지게 개량이 되었다니요?"

유응모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홍현태는 그런 유응모를 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는 친구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응모는 조선

해군사관학교의 1기 졸업생으로 우수한 해군사관이었으나, 이렇게 가끔씩 보이는

고지식한 모습은 이 친구가 과연 해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관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그 독일 해군사관들을 이번에 우리가 배치된 한-1 잠수함에 태우라는

지시다."

"예? 독일 해군사관을 우리 잠수함에 태워요?"

"그래! 그 빌어먹을 독일 놈들을 태우기 위해 성능을 하향 조정한 잠수함에 우리가

배치되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이고! 알아들어?"

"그런데, 왜 성능을 하향 조정해야 합니까?"

유응모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독일 해군사관 몇이 관전무관

자격으로 잠수함에 동승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 때문에 잠수함의

성능을 하향 조정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고 있었다. 홍현태는 고지식한 부장

때문에 심화가 더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고급 사관을 함부로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약간 고지식한 면을 빼면 유응모는 나무랄 데 없는

잠수함 승무원이었고, 해군 사관이었기에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하는 부장에게 무조건 신경질을 낼 수도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홍현태는 차분한 목소리로 전단장 사무실에서 들은 내용을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전단장님께서는 성능이 하향 조정된 한-1 잠수함에 우리 장보고함 승무원들을

내정했고, 독일 해군의 관전무관을 승선시킨다는 말씀이셨다. 구체적인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고성능의 여러 장비들을 저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성능을 하향 조정한 것 같다. 이제 이해가 가나?"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럼, 어떤 장비들이 빠진 것입니까?"

"몰라 나도. 대충 무전기나 수수께끼 암호해독기, 그리고 음향탐지기 등이 빠졌겠지.

그런 것들은 우리 조선 해군밖에 보유하지 못한 첨단 장비니까 당연히 빠지게된

거겠지. 자세한 사항은 이따 가보면 알게 될 걸세."

유응모는 그제야 이해가 가는 표정이었다. 다른 나라에 없는 첨단 장비를 동맹국

해군 사관이라고 해서 모두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서 홍현태의

신경질과 짜증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었다. 유응모도 홍현태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헌데, 왜 우립니까? 그리고, 원래의 한-1 잠수함에 승선했던 승무원들은 어쩌구요?"

"나도 몰라. 다만, 우리 승무원들 중의 일부는 당분간 휴가를 보내야될 것 같아."

"예? 휴가라뇨?"

"이런! 자네 잠수함 승무원 맞아?"

"......?"

"한-1 잠수함의 승무원이 모두 몇 명인가? 그리고 우리 장보고함의 승무원은 몇

명이고?"

"아! 그렇군요."

한-1 잠수함의 승무원은 사관을 포함하여 모두 35명이었는데, 장보고급 잠수함의

승무원은 사관 포함하여 모두 57명이었다. 그리고 원래의 장비 중에서 빼버린 장비를

운용하던 사관이나 승무원들은 승함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당연히 남는 승무원들은

다른 잠수함을 타든지 아니면 휴가를 가든지 할 것이다. 두 사람이 사관 휴게실 창문

옆에 서서 궁시렁대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누구신가! 새로운 한-1 잠수함의 새 함장과 부장 아니신가?"

누군가의 자신들을 비꼬는 듯한 소리에 발끈한 유응모가 홍현태를 대신하여 한 마디

해주려고 뒤를 돌아보는데 금방 꼬랑지를 내리고 말았다. 바로 장보고급 잠수함의

2번함인 이천함(李狀艦)의 함장 공동우 중령이었다.

"충성!"

"충성."

"야! 너... 너 누굴 염장지르려고 나타난 거야!"

"누구긴 누구겠어. 바로 현태 너를 염장지르려고 온 거지...크크크..."

홍현태와 공동우는 천군 출신의 잠수함 함장이다. 처음 한-1 잠수함이 건조될 때부터

나란히 잠수함 병과에 지원한 두 사람은 지금껏 잠수함 병과에서 잔뼈가 굵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들이었다. 자연히 두 사람의 친분도 아주

두터웠고,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공동우는 홍현태가 새로운 한-1

잠수함의 함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홍현태를 약올리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야? 현태 네가 한-1 잠수함의 함장으로 다시 임명되다니? 너

꼰대한테 잘못보인 거라도 있는 거냐?"

"내가 꼰대한테 잘못보인 게 뭐가 있겠냐."

"그럼? 우리 해군에서 너만큼 잠수함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함장이 어디 있다고

다운 그레이드된 한-1 잠수함을 너한테 맡기냐고?"

옆에서 홍현태와 공동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응모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하늘같은 전당장님을 꼰대라고 부르는 공동우 중령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게 입이 걸기로 소문난 공동우 중령과 맞장구를 치는 홍현태 중령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홍현태와 공동우는 유응모가 눈살을 찌푸리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할말을 하고 있었다.

"꼰대 말이 한시적인 임명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더라."

"한시적인 임명?"

"그래. 이번 서양 연합함대의 침공이 끝나면 다시 장보고함으로 복귀하라더라. 잠시

독일 애들 태우고 돌아다니다 오래더라."

"그럼, 네가 탄 잠수함은 참전하지 않는 거야?"

"왜 참전을 않해? 독일 애들한테 우리 조선 해군의 막강 잠수함의 성능을 보여주는

게 관전무관을 태우는 목적인데."

"그래?"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새 한-1 잠수함을 보러가자. 어떻게 다운 그레이드

됐는지 궁금해 미치겠거든. 어때 괜찮지?"

"그러지 머.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네놈 애마의 상태가 어떤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공동우가 동의하자 홍현태는 여태 꿔다놓은 보릿자루 마냥 한쪽에 서 있던 유용모를

바라보았다.

"뭐해? 부장. 안 따라올 거야?"

"예? 예... 알겠습니다."

처음 남양에 해군이 결성되고 사령부를 세웠을 때는 구(舊) 삼도 수군 통어영의 낡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해군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자 새로운 건물의 신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구 삼도 수군 통어영의 낡고 비좁은 건물 대신에 넓고

깨끗한 건물을 새로 지어 입주한 것이 지난해였다. 외양은 조선 전통의 3층 짜리

석조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각종 현대적 편의시설이 완비된 건물이 바로 지금의

해군사령부 건물이었다. 현대 한국의 청와대(靑瓦臺) 본관 건물과 유사한 모양의

해군사령부는 중후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로 모든 해군 관계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해군사령부 내의 잠수함 전단 사관 휴게실을 빠져 나온 세 사람은

사령부 본관 한켠에 있는 자전거 보관소로 갔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자전거를 찾아서

올라탔다. 해군사령관 김종완을 비롯한 일부 장성들을 제외하고는 전용 마차가

없었고, 또, 사령부 내에서는 급한 군무가 없는 일반 장병들의 말을 타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이렇게 자전거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사령부 본 건물에서 한참

떨어져있는 잠수함 전용 선거까지 가자면 부지런히 자전거의 발판을 밟아야만 했다.

일반 사관이나 부사관, 사병들이 자신들을 보며 거수경례를 하는 것을 그대로

지나치며 세 사람은 자전거의 발판을 계속해서 밟았다. 공동우는 옆에 나란히 서서

자전거를 타는 홍현태를 불렀다.

"야! 현태야!"

"왜?"

"너는 엉덩이가 안 아프냐?"

"쓰바! 내가 무슨 터미네이터냐! 나도 졸라 엉덩이가 배겨 죽겠다구!"

"하하하. 이게 무슨 자전거야! 한국에서는 거지도 이런 것 안 탄다. 안 그러냐?"

"그렇지.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 정도의 자전거를 생산해낼 수 있는 나라는 지금

시대에서 흔치 않다구. 불평하지 말어."

"그렇다는 거지 머. 하기야 이 정도만 되도 정말 훌륭하지. 안 그러냐?"

"그럼."

지금 세 사람이 타고 있는 자전거는 제물포의 삼천리 자전거 공장에서 신기도감의

기술이전을 받아 생산한 삼천리표 자전거였다. 아직까지 합성수지의 개발이나 고무의

수입이 원활하지 않았기에 고무 타이어가 장착되지 않았고, 그래서 부드럽고 푹신한

안장도 없었다. 대신에 두툼한 가죽 타이어에 공기를 불어넣은 바퀴는 나름대로

안정감이 있었고, 널찍하면서도 딱딱한 나무 안장은 지금처럼 잘 닦인 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하등 불편함이 없을 정도였다. 다만, 시골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에는

아직까지 엉덩이가 아프다는 게 단점이었고, 가죽 타이어의 바람이 쉽게 빠지는 것도

단점이었다. 뒤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묵묵히 따라오던 유응모는 이상하다는

듯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전혀 불편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데, 천군은 별 불만을 다 토로한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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