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19화 (219/318)

8.

"아... 잘 먹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박사님. 그리고, 사모님."

검재선은 노제로에게 말할 때는 영어로 얘기했고, 노제로의 부인에게 말할 때는

어눌한 조선말로 얘기를 했다. 검재선의 어눌한 조선말이 우스운지 노제로의 부인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풋! 별 말씀을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아닙니다.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입니다."

검재선은 재차 노제로의 부인에게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하며 사의를 표했다. 사실

지금 먹은 프랑스식과 조선식이 혼합된 식사는 노제로가 했다기보다는 노제로의

부인이 했다는 표현이 맞았다. 노제로의 부인은 노제로와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생활하다보니 노제로가 좋아하는 프랑스 음식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고,

지금은 프랑스 음식에 대한 솜씨가 노제로 못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사실

노제로의 부인이 만드는 프랑스 음식은 정통 프랑스 음식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퓨전

프랑스 음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검재선의 입에서 감탄사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들고 있었다. 노제로 부인의 이러한 퓨전 프랑스 음식은 사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 빵이야 얼마든지 밀을 사다가 만들 수 있는 문제였고, 고기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프랑스 음식의 기본 양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소스와 버터, 치즈 등도 제물포에 있는 독일공사관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노제로는 검재선이 거듭해서 자기 부인의 음식 솜씨를 칭찬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헌데 우리 병원까지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아까 보니 말이 보이지 않는 것

같던데요?"

"전차(電車)를 타고 왔습니다."

"왜요? 검 선생은 서울 시내에서도 말을 탈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검재선이 청파에서 이곳까지 전차를 타고 왔다는 데에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이

알기론 검재선은 서울 시내에서도 말을 탈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검재선이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일반적인 군무(軍務)가 없는 사람이 서울 시내에서 말을 탄다는 것이 여간

미안하지 않았거든요, 박사님께서도 아시고 계시듯이 조정의 시책이 서울 시내에는

급한 군무가 있는 자 아니고서는 말을 탈 수 없질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저만 그러한 특권을 받는 다는 것이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래도 그렇지요. 조정에서 검 선생에게 특별히 부여한 권한인 것을요..."

"아닙니다. 사실 저는 여태 전차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전차를 한 번 타볼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침 전차가 우리 부대 앞까지 운행을 하고

있기에, 그 전차를 타고 이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검재선이 말하는 부대란 지금의 용산인 청파에 세워진 외인부대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검재선은 정식 외인부대원은 아니었다. 일종의 위탁 교육생의

신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재선처럼 조선에 귀화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는

외인부대의 조선 문화와 조선의 사상, 그리고 국가관에 대한 교육과 훈련이 가장

쉽게 세뇌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검재선의 특기가 항해에 있음에도 외인부대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쥬신호를 노리던 플라잉 클라우드호가 되려

쥬신호에게 당하고 나서,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유일한 생존자로 쥬신호의 선원들에게

구조된 검재선은 바로 제물포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으며

검재선과 노제로는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치료 기간 내내 노제로와 같이 지냈던

검재선은 노제로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본인의 뜻인지는 몰라도 조선에 남기를

원했다. 그리고 조선과 미국과의 플라잉 클라우드호 사건에 대한 조사에서도 한치의

거짓없이 증언하여 미국 관리들을 당혹하게 만든 이가 바로 검재선이었다.

지긋지긋한 앵글로 섹슨족의 억압에서 탈출하려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검재선이었지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두에서 강제로 끌려와서 악덕 선주 아가일

밑에서 뼈빠지게 일해야만 했던 그에게 앵글로 섹슨족이라면 정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아니, 뼈 속 깊이까지 원한이 사무쳤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한

검재선에게 앵글로 섹슨족이 주름잡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별다른 애정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자신의 고국인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으니, 영국이나 미국이나 그놈이 그놈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가 처음 보는 그림책이 신기하고

재밌듯이,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 사람들은 그림책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검재선에게

커다란 흥미와 희열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그림과 주인공이 등장하여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처럼,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

사람들은 그에게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활하고 황량한 청국과는

차원이 다른 조선 땅의 아름다움도 그를 사로잡았다. 동양인이라면 미개하기 이를 데

없는 인종들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검재선에게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획기적인 방식의 공업단지와 발달된 도로망, 철도, 전차는 검재선의 그러한

선입견을 일거에 무너뜨려 버리는 것이었다. 제물포에서 치료를 받고 서울로 오는

길에 타봤던 조선 최초의 서울 제물포간 철도는 바다에서만 생활하느라 기차라는

것을 보지 못했던, 그래서 난생 처음 기차라는 것을 탄 검재선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고 차창 밖으로 언뜻 본 공업단지(경공업단지를 말함)는 활기에 넘쳐

보였고, 철로와 나란히 건설된 도로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깨끗하면서도

널찍하게 포장된 것이 대단히 보기 좋았으며, 한강에 건설된 철교와 다리는 대단히

잘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서울을 끼고 흐르는 한강과, 한강을 오가는

수많은 배들은 사람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잊고 있었던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욕구가 핏줄 속에서 끓어오르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것은 경이 그 자체였고, 충격 그 자체였으며, 감탄의 연속이었다. 동양의 일개

미개국에서 발달된 공업화를 자랑하는 영국이나 미국 못잖은 선진화된 공업단지와

철도를 비롯한 발달된 도로망, 거기에 희망에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은,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생활의 기억밖에 없었던, 그래서 삶의 지난함에 절망하고 좌절해야만

했던, 검재선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래, 전차는 탈만 합디까?"

"예. 처음 타보는 것이지만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고생스러웠지만, 이런 것이 사람 사는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참

좋았습니다."

"재밌었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전차가 처음 등장하던 때를 잊지

못한답니다."

"그래요? 박사님께서는 전차가 처음 나왔을 때도 조선에 계셨습니까?"

검재선은 처음 듣는 얘기에 부쩍 흥미가 생기는지 무릎을 바싹 당겼다. 의자가 없는

순 조선식의 방인지라 조선식 좌식문화가 그의 무릎을 아프게도 할 것인데,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니, 벌써 좌식문화에 익숙해 졌는지도

몰랐다.

"검 선생께서는 조선에 산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시겠지만, 사실 전차가 조선에

등장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랍니다. 제가 지난 1866년부터 조선에 머물기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서울 장안에 마차도 없었습니다."

"마차도 없어요? 그럼 당시에는 무엇을 타고 다녔습니까?"

"일반 사람들은 모두 걸어서 다녔고, 일부 부유층 사람들만 가마라는 것을 타고

다녔지요."

"가마요?"

"예. 가마라는 것은 네모 반듯한 의자와 같은 것인데, 그 의자에 사람이 타면 네

명의 가마꾼이 그것을 떠메고 다니곤 했지요. 그러던 것이 마차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가마는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시내에 전차가 다니더니, 이제는 서울 제물포간 철도까지 놓이게 되었지요. 그것이

불과 5년 내에 일어난 변화랍니다."

"예... 그렇군요..."

검재선은 도저히 실감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불과 5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러한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차도 없었던 나라에서 세계최초의

전차가 다니고, 철도가 놓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쉬이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를 다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본

것으로 전체를 미루어 짐작하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조선이 5년 동안에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짐작하는 것과 같은 경이적인 발전은 있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본 것과 같은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는 일부 수도권 지방과 공단이 밀집되어 있는 신흥공업도시에

국한된 경우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에 귀화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조선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실상을 파악하기에는 서양 출신이라는 신분상의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직 조선의 구석구석까지 근대화와 산업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것은 아니었고, 지방에 내려가면 제대로 된 도로마저 없는 곳도 있을

정도였다. 도로망의 정비가 완벽하게 마무리되기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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