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르메르 박사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검 선생,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예까지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무슨 일은요. 그저 지나가다가 들른 거지요."
"잘 오셨습니다. 오전 진료가 모두 끝나고 한가했는데...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아직... 같이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검 선생은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시려고 했습니까?"
"그것은 아니지만..."
"하하하... 제가 검 선생의 속을 모를 줄 아셨습니까? 쉬는 날마다 이렇게 제 병원을
찾아오시는 게 식사 때문이라는 것을 저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흐흐흐..."
검 선생이라고 불리는 사내의 얼굴에는 멋쩍음이 엿보였다. 그저 순수하게 르메르
박사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르메르 박사가 손수 구운 맛있는 프랑스 빵과 음식을
먹고 싶었던 것이 르메르 박사의 양의원(洋醫院)을 찾은 이유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조선 사람과 비교해도 그다지 큰 체구가 아닌 검 선생은 조선 사람과 크게
구별되는 신체적인 특징이 있었다. 일반 군사들이 입는 얼룩무늬 군복과 전투화를
신은 것은 별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그의 외모는 조선 사람과는 확연하게
구분되어지고 있었다. 창백한 듯한 하얀 피부가 그것이었고, 붉은 색을 띤
머리카락과 파란 눈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은 콧대도 조선
사람에게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검 선생이라 불린 젊은 사내의 이름은
제이슨 커닝햄(Jason Cunningham), 바로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항해사였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바로 검 선생이었다. 조선 이름으로는 검재선(檢栽鮮)이 바로 검
선생이었다. 검재선은 쥬신호의 포격에 침몰당한 플라잉 클라우드호의 선원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쥬신호의 선원들 손에 구출되었고, 지금은 이렇게 조선에서
새로운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르메르 박사는 누구일까? 르메르 박사는
지난 병인년(丙寅年 1866년) 조선을 침탈했다 무참하게 패했던 법국함대에 종군했던
북경주재 법국공사관 소속의 의사 로제르 르메르(Roger Lemerre) 박사였다. 조선
이름으로는 노제로(盧濟老)라고 불리고 있었다. 노제로는 법국이 조선군에게 패한 뒤
포로로 잡혔는데, 나중에 법국이 조선에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고 포로들을
송환하였을 때도 끝까지 본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조선에 귀화한 사람이다.
노제로는 당시 법국군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조선인 의사들의 뛰어난 의술에 매료되어,
그들의 의술을 배우기를 염원했었고, 그렇게 조선인 의사들과 함께 법국군
부상자들을 치료하면서 조선인 간호사(의녀를 말함)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 간호사와 혼인하여 이렇게 조선 사람이 된 것이다. 마흔이 다 되도록
독신을 고집하던 노제로로서는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를 하지는 않았다. 아니, 후회는커녕 정말 잘한 결정이요, 용단이었다는 생각을
노제로는 하고 있었다.
"마침 잘 됐습니다. 저도 마침 점심 전이니, 함께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박사님."
검재선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다. 검재선이 조선 땅에 들어온 지 벌써 넉
달이 다 되어가지만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이 바로 음식이었다. 목숨을 걸고
부도덕한 아편 밀수를 하지 않아서 좋았고, 광활하기만 한 청국에 비해 조선의
자연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좋았다. 그리고,
어딘지 음울해 보이는 청국인들에 비해 조선인의 얼굴에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무엇이 있어서 더 좋았다. 비록 고국 아일랜드의 척박한 듯 한
자연환경과, 그래서 더욱 사람의 마음을 아리게 만들고, 그래서 더욱 사람들을
강인하게 만드는 듯한 것과는 대조가 되는 자연환경이었지만, 조선 땅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여태껏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한 마디로 조선은 축복 받은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제 겨우 넉 달이 채 되지 않은 조선에서의 생활이었지만 하루
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검재선이 지금까지도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조선의 음식이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것은 청국이나 왜국과 같았다. 그러나 여럿이서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찌개라는 음식의 이상한 맛에도 적응하기 힘들었고, 스프에다
밥을 말아먹는 풍습도 이해하기 어려운 식습관이었다. 그리고 가지가지의 생선을
썩힌 젓갈이라는 것과 꼭 사람의 배설물과 같이 생긴 된장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아무리 애를 써도 쉽게 친해지지 않았다. 고추장이라는 것은 어떤가. 보기에도 매워
보이는 검붉은 색깔의 고추장은 먹었을 때는 별다른 매운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잠깐의 시간이 지나면 고추장 특유의 매운맛이 가슴속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데
정말이지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혀가 얼얼해 지는 것 같은 검재선이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이렇게 노제로를 찾아와 밥 한 끼를 얻어먹는 것이 큰 낙 중 하나였던
것이다.